
카카듀
Description
책소개
- MD 한마디
- 조선 최초의 서구식 다방, 카카듀로 오세요박서련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취향 저격일 것이다.
하와이 태생 현앨리스와 영화감독 이경손 등 실제 근현대사 속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시대와 조국의 운명에 정처없이 흔들렸던 예술인,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단면을 그려낸 작품.
2024.04.02. 소설/시 PD 김유리
예술을 사랑하고 불안을 살아낸 망국의 청년들이
경성 관훈동의 서양식 카페 ‘카카듀’에 있었다
3·1 운동의 뜨거움이 가시지 않은 경성 한복판 관훈동.
그곳에 조선인이 만든 서양식 카페 ‘카카듀’가 들어선다.
짧은 성공과 잦은 실패를 반복하는 영화인 이경손과 신파의 얼굴 속 비밀을 감춘 신여성 현앨리스가 그곳의 동업자이다.
카카듀에는 젊은 예술인이 모여들어 문학과 영화를, 사랑과 시대를 논한다.
커피 향 가득한 낭만의 전당으로 보이던 끽다점의 평안도 얼마 있지 않아 그 불안한 진실을 드러내고 마는데…….
《카카듀》는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현실을 살아낸 청년들이 건네는 뜨거운 안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도 엉망진창일 것만 같”으며 “끝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과연 무엇으로 견뎌냈는지, 또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견뎌내야 할는지 일러주는 대화다.
1928년 끽다점에 모인 그들이 이곳의 당신에게 커피 한잔을 권한다.
오직 경성 제일 끽다점, 카카듀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경성 관훈동의 서양식 카페 ‘카카듀’에 있었다
3·1 운동의 뜨거움이 가시지 않은 경성 한복판 관훈동.
그곳에 조선인이 만든 서양식 카페 ‘카카듀’가 들어선다.
짧은 성공과 잦은 실패를 반복하는 영화인 이경손과 신파의 얼굴 속 비밀을 감춘 신여성 현앨리스가 그곳의 동업자이다.
카카듀에는 젊은 예술인이 모여들어 문학과 영화를, 사랑과 시대를 논한다.
커피 향 가득한 낭만의 전당으로 보이던 끽다점의 평안도 얼마 있지 않아 그 불안한 진실을 드러내고 마는데…….
《카카듀》는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현실을 살아낸 청년들이 건네는 뜨거운 안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도 엉망진창일 것만 같”으며 “끝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세상을 과연 무엇으로 견뎌냈는지, 또한 지금 우리는 어떻게 견뎌내야 할는지 일러주는 대화다.
1928년 끽다점에 모인 그들이 이곳의 당신에게 커피 한잔을 권한다.
오직 경성 제일 끽다점, 카카듀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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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미옥
2부 부산
3부 카카듀
4부 앨리스
에필로그 성탄
작가의 말
참고 자료
2부 부산
3부 카카듀
4부 앨리스
에필로그 성탄
작가의 말
참고 자료
책 속으로
나는 예술을 믿는다.
신을 믿듯이 아름다움을 숭앙한다.
아름다움을 추종함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현앨리스가 나타났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가장 정확한 요약이다.
--- p.9
행여 그 여자를 놓칠까 봐 부랴부랴 카메라와 필름통을 끼고 대합실로 달려갔다.
짐도 무겁거니와 앞뒤 없이 달려간 참이기도 해서 부딪치듯 쾅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크고 동그랗되 눈썹 길이만큼 옆으로 길게도 뻗어 있는 눈 한쪽은 쌍꺼풀이 짙었고 한쪽은 홑꺼풀인 듯 속쌍꺼풀이 있어 묘한데, 서로 비대칭처럼 보이는 눈의 균형을 좁은 콧대가 아슬아슬 조심스레 가누었고 그 아래에 붉은 마침표 같은 입술이 갓난애의 조막만 한 크기로 야무지게 놓여 있었다.
신파(新派), 신파다.
새 시대의 얼굴이다.
--- pp.35-36
“라남에서 온 라운규올시다.”
누구…… 하고 물으려던 참에 운규가 서양인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자기 가슴팍을 가리켰다.
억양이 약간은 특이했는데 알고 보면 그건 저 지독하다는 동북방언의 흔적을 노력으로 거의 지워내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영화가 좋아서 왔다고 말했다.
1지망으로 배우를 하고 싶고, 기회를 준다면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즉 운규는 등장부터 나의 라이벌이었던 셈이다.
나도 감독으로 조선키네마에 입사하였지만, 고좌가 나의 신상명세(나이)를 알고는 태도를 바꾸어 감독은 아직 이르다고 선을 긋는 바람에 조감독 신세였다.
부디 와달라 간청할 때는 언제고, 고작 나이를 가지고.
감독 노릇도 졸렬하고 유치하기 짝 없는 주제에.
나는 처음 보았을 때는 물론 이후로도 결코 운규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으나 그가 연상이고 내가 상대적으로 연소한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감독 지망으로 들어오는 형이라면 나를 앞질러 감독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그가 마음에 들었다.
--- pp.82-83
앨리스가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라서도 그렇지만, 막연한 꿈을 이뤄줄 조력자로서 앨리스가 더욱 반갑고 기꺼웠다.
“그런데 저 때문에 친구분을 내보내서 어쩌지요.”
“아니다, 오늘 볼일은 다 보았는걸.”
“경성엔 아직도 카페 하나가 없군요, 카페라도 있으면 우리가 거기 가서 얘기하면 되는데.”
“아주 없지는 않은데, 아마 거의가 외국인 전용으로들 하고 있을 거야.”
바로 이때에 앨리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우리가 카페 하나 차려보지 않을래요?”
--- pp.122-123
[초록 앵무새]에서 이름을 빌려온 우리 가게에는 초록은커녕 푸른색의 기미조차 한 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바로 그 때문에 나와 앨리스의 가게가 고유하게도 느껴졌다.
우리의 카카듀는 검고, 붉고, 희다.
자리를 빌리고 이름을 빌렸지만, 그 이상 무엇도 흉내 내지 않고 우리의 것을 만들어갈 참이다.
개업을 앞둔 가게에서, 이름도 없이 붉은 바가지 세 점으로 간판을 대신한 가게에서 나는 나의 각오와 다짐을 곱씹었다.
지금껏 그 존재를 몰랐으나 새로 이식받아 알게 된 장기처럼, 새삼스럽고도 몸에 꼭 맞게 느껴지는 이상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는 깨끗이 씻은 간을 몸에 넣은 토끼였고, 제우스와 화해하여 더는 닳지 않는 새로운 간을 얻은 프로메테우스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쓸쓸한가.
--- pp.155-156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멍청하게 앨리스의 말을 따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몇 마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가게를 나와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혼자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행복했다.
뿌듯했다.
2리터짜리 빨간색 페인트 통에 검정색이든 흰색이든 다른 색 페인트 몇 방울을 섞는다고 해서 2리터의 빨강이 아예 다른 색이 되지는 않는다.
나의 행복은 2리터의 빨강처럼 자명했다.
막연한 심정으로 나는 앞으로의 모든 성탄절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할 까닭은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 p.244
한참 만에 앨리스는 다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뭐라 말한 다음의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멀리에 서 있었고 우리 사이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앨리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입모양과 아주 가늘게 들려온 목소리로 내용을 짐작할 뿐.
……지 마.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오지 마 또는 죽지 마.
앨리스는 나에게 뭔가를 금지하려 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예배당으로 돌아갔을 때, 연극은 모두 끝나 있었다.
신을 믿듯이 아름다움을 숭앙한다.
아름다움을 추종함과 마찬가지로 사랑을 믿는다.
그리고 현앨리스가 나타났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가장 정확한 요약이다.
--- p.9
행여 그 여자를 놓칠까 봐 부랴부랴 카메라와 필름통을 끼고 대합실로 달려갔다.
짐도 무겁거니와 앞뒤 없이 달려간 참이기도 해서 부딪치듯 쾅 소리를 내며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 여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크고 동그랗되 눈썹 길이만큼 옆으로 길게도 뻗어 있는 눈 한쪽은 쌍꺼풀이 짙었고 한쪽은 홑꺼풀인 듯 속쌍꺼풀이 있어 묘한데, 서로 비대칭처럼 보이는 눈의 균형을 좁은 콧대가 아슬아슬 조심스레 가누었고 그 아래에 붉은 마침표 같은 입술이 갓난애의 조막만 한 크기로 야무지게 놓여 있었다.
신파(新派), 신파다.
새 시대의 얼굴이다.
--- pp.35-36
“라남에서 온 라운규올시다.”
누구…… 하고 물으려던 참에 운규가 서양인처럼 과장된 동작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 자기 가슴팍을 가리켰다.
억양이 약간은 특이했는데 알고 보면 그건 저 지독하다는 동북방언의 흔적을 노력으로 거의 지워내고 남은 것이었다.
그는 영화가 좋아서 왔다고 말했다.
1지망으로 배우를 하고 싶고, 기회를 준다면 감독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즉 운규는 등장부터 나의 라이벌이었던 셈이다.
나도 감독으로 조선키네마에 입사하였지만, 고좌가 나의 신상명세(나이)를 알고는 태도를 바꾸어 감독은 아직 이르다고 선을 긋는 바람에 조감독 신세였다.
부디 와달라 간청할 때는 언제고, 고작 나이를 가지고.
감독 노릇도 졸렬하고 유치하기 짝 없는 주제에.
나는 처음 보았을 때는 물론 이후로도 결코 운규에게 나이를 묻지 않았으나 그가 연상이고 내가 상대적으로 연소한 것은 그도 알고 나도 알았다.
감독 지망으로 들어오는 형이라면 나를 앞질러 감독이 될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나는 왠지 그가 마음에 들었다.
--- pp.82-83
앨리스가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조카라서도 그렇지만, 막연한 꿈을 이뤄줄 조력자로서 앨리스가 더욱 반갑고 기꺼웠다.
“그런데 저 때문에 친구분을 내보내서 어쩌지요.”
“아니다, 오늘 볼일은 다 보았는걸.”
“경성엔 아직도 카페 하나가 없군요, 카페라도 있으면 우리가 거기 가서 얘기하면 되는데.”
“아주 없지는 않은데, 아마 거의가 외국인 전용으로들 하고 있을 거야.”
바로 이때에 앨리스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러니까요 아저씨, 우리가 카페 하나 차려보지 않을래요?”
--- pp.122-123
[초록 앵무새]에서 이름을 빌려온 우리 가게에는 초록은커녕 푸른색의 기미조차 한 점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바로 그 때문에 나와 앨리스의 가게가 고유하게도 느껴졌다.
우리의 카카듀는 검고, 붉고, 희다.
자리를 빌리고 이름을 빌렸지만, 그 이상 무엇도 흉내 내지 않고 우리의 것을 만들어갈 참이다.
개업을 앞둔 가게에서, 이름도 없이 붉은 바가지 세 점으로 간판을 대신한 가게에서 나는 나의 각오와 다짐을 곱씹었다.
지금껏 그 존재를 몰랐으나 새로 이식받아 알게 된 장기처럼, 새삼스럽고도 몸에 꼭 맞게 느껴지는 이상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나는 깨끗이 씻은 간을 몸에 넣은 토끼였고, 제우스와 화해하여 더는 닳지 않는 새로운 간을 얻은 프로메테우스였다.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쓸쓸한가.
--- pp.155-156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멍청하게 앨리스의 말을 따라 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몇 마디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가게를 나와 마침내 혼자가 되었을 때, 혼자서 거리를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행복했다.
뿌듯했다.
2리터짜리 빨간색 페인트 통에 검정색이든 흰색이든 다른 색 페인트 몇 방울을 섞는다고 해서 2리터의 빨강이 아예 다른 색이 되지는 않는다.
나의 행복은 2리터의 빨강처럼 자명했다.
막연한 심정으로 나는 앞으로의 모든 성탄절이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할 까닭은 하나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순간,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 p.244
한참 만에 앨리스는 다시 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작은 소리로 뭐라 말한 다음의 일이었다.
우리는 서로 멀리에 서 있었고 우리 사이에는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앨리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입모양과 아주 가늘게 들려온 목소리로 내용을 짐작할 뿐.
……지 마.
앨리스는 그렇게 말했다.
오지 마 또는 죽지 마.
앨리스는 나에게 뭔가를 금지하려 했고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예배당으로 돌아갔을 때, 연극은 모두 끝나 있었다.
--- pp.330-331
출판사 리뷰
■ 새 시대를 위한 역사소설
설령 망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억해서 어쩔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다만 기억하고…….
-157쪽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에서 보여주었듯 소수자의 기록 한 줄로 스쳐 지나갈 법한 역사적 사실에서 서사적 진실을 길어 올린다.
전작이 평양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경성의 청년 예술가, 보헤미안, 코뮤니스트 들의 이야기다.
카카듀의 동업자 이경손과 현앨리스 모두 실존 인물일뿐더러,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그 시대 문화 예술인과 심훈, 김구, 박헌영 인물이 소설 속에 다채롭게 등장한다.
이경손은 나운규의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그만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현앨리스는 가부장적 사회에 선연히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사상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와 활동, 웃음과 침묵 모두 애처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망국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모두 식민지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박서련은 실제 그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 청년들을 호명해 소설의 전당에 세운다.
짧은 역사적 기록에 충실하되 기록의 빈칸을 서사적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카카듀》는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가닿는다.
그것은 거대한 사건, 위대한 인물, 상징적 배경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부산항에서, 경성 영화사 사무실에서, 작디작은 끽다점에서, 상해 조계지 거리에서 역사는 한 걸음, 그도 아닌 반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닿았고, 지금의 우리가 그 걸음걸음의 기억을 읽는다.
퇴폐가 만연한 가파른 시국에 그들은 ‘카카듀’에 모였다.
100년이 지난 여기에서 우리는 어디에 모여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역사소설 《카카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과 거짓의 전당에서
마침내 앨리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인물도 사물도 아닌 사상이었다.
-260쪽
작가는 주인공 이경손의 행적을 비교적 상세하고 차분히 따른다.
그가 참여한 작품과 함께한 동료들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그 시대의 예술사를 읽는 것과 같다.
의관의 집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식민지 현실에 방황하고 결국 예술가가 되고자 한 인물, 이경손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으로 정의한다.
만세 운동에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어쩔 수 없는 타협에 쉽게 응하기도 한다.
그는 예술가로서 실패하고 실패를 잊으려 애쓰고 실패로부터 도망가길 반복한다.
열망과 비관 사이에 싹튼 불안이 그를 잠식할 때쯤,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카페 동업을 제안한다.
예술가의 쉼터이자 작업실이 될 수도 있는 카카듀, 조선인을 위한 문예 카페 카카듀…….
카카듀에서 그는 조금씩 안식을 느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현앨리스의 삶은 이경손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여권을 얻었고, 경성과 상해, 하와이에서의 삶을 모두 경험했으며 목사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망설이는 사랑과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고, 어디든 홀연 나타날 수 있는 여성, 현앨리스는 친척 아저씨인 이경손 앞에 예전처럼 갑작스레 등장한다.
현앨리스는 이경손에게 끽다점 동업을 제안한다.
빨간 바가지 셋을 문에 걸고, 데카당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서양식 카페 카카듀는 그렇게 문을 열고, 관훈동의 문예 카페로, 미모의 마담이 있는 커피 하우스로 서서히 알려지게 되는데…….
그곳의 마담 현앨리스는 아무래도 수상쩍다.
코뮤니스트 현앨리스가 보헤미안 이경손을 데리고, 누구도 연극이라 눈치채지 못할 연극을 벌이고 있었으니.
설령 망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억해서 어쩔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다만 기억하고…….
-157쪽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에서 보여주었듯 소수자의 기록 한 줄로 스쳐 지나갈 법한 역사적 사실에서 서사적 진실을 길어 올린다.
전작이 평양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경성의 청년 예술가, 보헤미안, 코뮤니스트 들의 이야기다.
카카듀의 동업자 이경손과 현앨리스 모두 실존 인물일뿐더러,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그 시대 문화 예술인과 심훈, 김구, 박헌영 인물이 소설 속에 다채롭게 등장한다.
이경손은 나운규의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그만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현앨리스는 가부장적 사회에 선연히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사상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와 활동, 웃음과 침묵 모두 애처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망국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모두 식민지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박서련은 실제 그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 청년들을 호명해 소설의 전당에 세운다.
짧은 역사적 기록에 충실하되 기록의 빈칸을 서사적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카카듀》는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가닿는다.
그것은 거대한 사건, 위대한 인물, 상징적 배경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부산항에서, 경성 영화사 사무실에서, 작디작은 끽다점에서, 상해 조계지 거리에서 역사는 한 걸음, 그도 아닌 반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닿았고, 지금의 우리가 그 걸음걸음의 기억을 읽는다.
퇴폐가 만연한 가파른 시국에 그들은 ‘카카듀’에 모였다.
100년이 지난 여기에서 우리는 어디에 모여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역사소설 《카카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예술과 거짓의 전당에서
마침내 앨리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
그것은 인물도 사물도 아닌 사상이었다.
-260쪽
작가는 주인공 이경손의 행적을 비교적 상세하고 차분히 따른다.
그가 참여한 작품과 함께한 동료들의 이름만 나열하더라도 그 시대의 예술사를 읽는 것과 같다.
의관의 집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자랐으나 식민지 현실에 방황하고 결국 예술가가 되고자 한 인물, 이경손은 스스로를 보헤미안으로 정의한다.
만세 운동에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어쩔 수 없는 타협에 쉽게 응하기도 한다.
그는 예술가로서 실패하고 실패를 잊으려 애쓰고 실패로부터 도망가길 반복한다.
열망과 비관 사이에 싹튼 불안이 그를 잠식할 때쯤, 오촌 조카 현앨리스가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카페 동업을 제안한다.
예술가의 쉼터이자 작업실이 될 수도 있는 카카듀, 조선인을 위한 문예 카페 카카듀…….
카카듀에서 그는 조금씩 안식을 느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감정에 젖어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현앨리스의 삶은 이경손에 비해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하와이에서 태어나 미국 여권을 얻었고, 경성과 상해, 하와이에서의 삶을 모두 경험했으며 목사의 신분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에게는 남편과 아이가 있었고, 망설이는 사랑과 굳건한 신념이 있었다.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고, 어디든 홀연 나타날 수 있는 여성, 현앨리스는 친척 아저씨인 이경손 앞에 예전처럼 갑작스레 등장한다.
현앨리스는 이경손에게 끽다점 동업을 제안한다.
빨간 바가지 셋을 문에 걸고, 데카당스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서양식 카페 카카듀는 그렇게 문을 열고, 관훈동의 문예 카페로, 미모의 마담이 있는 커피 하우스로 서서히 알려지게 되는데…….
그곳의 마담 현앨리스는 아무래도 수상쩍다.
코뮤니스트 현앨리스가 보헤미안 이경손을 데리고, 누구도 연극이라 눈치채지 못할 연극을 벌이고 있었으니.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4년 03월 13일
- 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380g | 128*188*17mm
- ISBN13 : 9791192638331
- ISBN10 : 1192638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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