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이 순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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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책소개
진보 한국역사학자 한홍구가 읽어내는 현대사
『대한민국사』를 비롯하여 근현대사에 관해 활발하게 저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홍구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기술한다.
혹자는 현대사가 역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기에 현대사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잡힌 서술이 어렵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놓자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입장이다.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주관으로 저자는 1980년에서 2009년까지의 한국현대사를 기술했다.
1980년 이후 실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군사독재는 끝났지만 1987년 양김의 분열로 반쪽도 안 되는 민주화로 이행했고, 제대로 된 역사를 세우기에 김영삼 정부는 시작부터 보수대연합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교체하는데 실패하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 '저울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있듯 대한민국사는 자본주도의 세계화에 노출된 채 양극화와 이념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안은 채 험난한 항해를 하고 있다.
이렇듯 책은 격동의 30여 년을 명쾌한 시각으로 분석해 낸다.
저자가 우려하는 바는, 역사가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예전으로 퇴행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진지하게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대한민국사』를 비롯하여 근현대사에 관해 활발하게 저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홍구 교수가 한국 현대사를 기술한다.
혹자는 현대사가 역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기에 현대사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균형잡힌 서술이 어렵기 때문에 다음 세대의 몫으로 남겨놓자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입장이다.
역사는 배우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주관으로 저자는 1980년에서 2009년까지의 한국현대사를 기술했다.
1980년 이후 실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군사독재는 끝났지만 1987년 양김의 분열로 반쪽도 안 되는 민주화로 이행했고, 제대로 된 역사를 세우기에 김영삼 정부는 시작부터 보수대연합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기적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이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정권을 교체하는데 실패하지만 IMF 구제금융 이후, '저울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이 있듯 대한민국사는 자본주도의 세계화에 노출된 채 양극화와 이념갈등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안은 채 험난한 항해를 하고 있다.
이렇듯 책은 격동의 30여 년을 명쾌한 시각으로 분석해 낸다.
저자가 우려하는 바는, 역사가 항상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가 예전으로 퇴행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진지하게 이러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머리글_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
프롤로그_ 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인가·
제1강 광주의 자식들, 그리고 노무현_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낀 사람들
광주 전야
왜 광주에서 그토록 잔인했을까
가장 긴 새벽이 ‘지금 이 순간’을 열다
광주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제2강 장엄한 패배, 위대한 부활_ 80년 5월이 87년 6월로
유신의 아들들, 그들만의 '새 시대'
당근 한 조각과 영혼을 갉아먹는 채찍질
전두환, 한판 붙자!
100명이 100만 명으로
제3강 노태우ㆍ김영삼의 물탄 민주화_ 민주주의의 전진과 후퇴
6월 항쟁, 거리가 교실이던 순간
7·8·9월 노동자 대투쟁과 두툼해진 월급 봉투
노태우, 민주주의에 물먹이다
잘 가다 길을 잃은 문민정부
제4강 여름에 진 인동초, 김대중_ 행동하는 양심의 마지막 불꽃
독재에 맞선 젊은 정치
망명·납치·투옥·사형선고, 고난의 세월들
태조 이성계 이후 최초의 정권 교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집니다!”
제5강 개천에서 난 마지막 용, 노무현_ 정의가 이기는 세상을 꿈꾸다
개천에서 난 용,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르다
바위를 깨뜨린 모난 돌
탄핵이 가져다 준, 절호의 기회
승천하지 못한 용의 눈물
제6강 이명박 정권, 다시 죽음의 시대에_ 떡볶이와 목도리, 그리고 용산의 불구덩이
용산과 법비들의 난
부유한 야만과 싸우는 법
보론 대한민국 야당사
한국 보수 야당의 역사
한국 진보 정당의 역사
프롤로그_ 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인가·
제1강 광주의 자식들, 그리고 노무현_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낀 사람들
광주 전야
왜 광주에서 그토록 잔인했을까
가장 긴 새벽이 ‘지금 이 순간’을 열다
광주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제2강 장엄한 패배, 위대한 부활_ 80년 5월이 87년 6월로
유신의 아들들, 그들만의 '새 시대'
당근 한 조각과 영혼을 갉아먹는 채찍질
전두환, 한판 붙자!
100명이 100만 명으로
제3강 노태우ㆍ김영삼의 물탄 민주화_ 민주주의의 전진과 후퇴
6월 항쟁, 거리가 교실이던 순간
7·8·9월 노동자 대투쟁과 두툼해진 월급 봉투
노태우, 민주주의에 물먹이다
잘 가다 길을 잃은 문민정부
제4강 여름에 진 인동초, 김대중_ 행동하는 양심의 마지막 불꽃
독재에 맞선 젊은 정치
망명·납치·투옥·사형선고, 고난의 세월들
태조 이성계 이후 최초의 정권 교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반드시 집니다!”
제5강 개천에서 난 마지막 용, 노무현_ 정의가 이기는 세상을 꿈꾸다
개천에서 난 용, 사람들 가슴에 불을 지르다
바위를 깨뜨린 모난 돌
탄핵이 가져다 준, 절호의 기회
승천하지 못한 용의 눈물
제6강 이명박 정권, 다시 죽음의 시대에_ 떡볶이와 목도리, 그리고 용산의 불구덩이
용산과 법비들의 난
부유한 야만과 싸우는 법
보론 대한민국 야당사
한국 보수 야당의 역사
한국 진보 정당의 역사
책 속으로
어른들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말렸지만, 바위가 깨졌다.
그런데 계란이 꾸었던 꿈만큼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깨진 계란과 그 선배들은 무언가가 되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이해찬은 국무총리가 되고, 임채정은 국회의장이 되고, 김근태, 유시민은 장관이 되고, 386 학생회장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그 밖에도 수두룩 빽빽하게 무언가가 되었다.
20대에 감히 꿈도 꾸지 않은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민주화였다.
……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만큼 민주화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벼랑에서 뛰어내려야 할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얘기해야 한다.
--- pp.8~9
도대체 1970년대와 비교해서 1980년대는 뭐가 달라졌습니까? 1980년대 세대들은 뒷일을 생각 안 하는 바보인가요? 아닙니다.
다 알면서 그 짓을 했어요.
왜 그랬습니까? 생각이 광주에 미치면 그다음부터는 계산이 안 돼요.
셈이 안 되는 겁니다.
1980년대 세대는 계산을 할 수 없는 세대였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도청에서 총 들고 계엄군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는데 데모한다고 죽이기야 하겠어? 그 생각을,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연변이 변종들.
그 사람들이 광주의 자식들입니다.
--- p.59
광주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무장봉기입니다.
처절하게 패배한 봉기였지요.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볼 때 광주만큼 성공한 운동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광주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 세대에 걸친 역사가 광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패배한 싸움이었던 광주가 새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잘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밤낮 이기겠습니까? 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이겨야지요.
힘 약한 우리는 한 번 지면 깊은 상처를 받고 회복하는 데 힘이 듭니다.
불리한 싸움은 하면 안 되고,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서 꼭 이겨야지요.
그러나 싸우다 보면 부득이하게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싸움을 잘해야 합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잘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광주에서의 죽음은, 광주의 장엄한 패배는 수많은 광주의 자식에 의해 위대하게 부활했습니다.
--- p.69
드디어 1985년 4월 대우자동차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파업이 일어난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대우자동차가 파업했다고 대학원에서 축하 술을 마시러 갔거든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대한민국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대기업 남성 사업장에서 드디어 파업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경축할 만한 일이었어요.
1970년대까지 어땠습니까? 파업은 전부 중소기업의 여성 사업장에서 일어났지요.
동일방직, YH, 반도상사, 한일합섬, 남양나이론, 청계피복, 해태 등등 주요 파업 현장이 중소규모의 여성 사업장이었습니다.
“야, 왜 여공들만 노동운동을 할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연구논문이 지금도 많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이 잘못된 것 같아요.
“왜 여성들만 노동운동을 할까?”가 아니라 “왜 남성들은 노동운동을 안 했을까?” 묻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성들은 파업을 안 했을까요? 저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 갔다 와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노조나 파업 같은 찌질한 짓을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 p.112
한국 사회에서 군에 대응하는 조직은 학생뿐이었어요.
그러니까 학생과 군의 격돌이 기본 구도로 되었던 셈입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정권이 퇴진하면서 군이 물러나고, 1991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도 뒤로 물러납니다.
많은 사람이 1990년대 이후에 학생운동이 약화되었다고 평가하는데, 현상적으로 맞는 얘기입니다만 그 원인은 조금 깊이 있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생운동이 짊어져야 했던 과도한 짐을 시민사회의 각 영역이 조직화되면서 나눠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 p.173
참 인연이 희한한 게 김대중 씨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지방색이나 연고주의가 약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지역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출마했어요.
김대중 씨도 별 연고가 없는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했는데 이때 자유당이 압박해 선거등록을 무효화했어요.
청년 김대중이 분해서 군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으로 당시 5사단장을 찾아갔습니다.
강원도에서는 군의 힘이 세잖아요.
그런데 마침 사단장이 출장 중이어서 못 만났습니다.
그 사?장이 누구냐? 바로 박정희였습니다.
혹시 김대중과 박정희가 그때 만났다면 우리 역사가 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까요?
--- p.198
저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 1987년 이후에 좋은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1987년이죠.
이겨야 하는 선거,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가 1997년 외환위기였다고 생각해요.
정말 위기상황이었죠.
그렇다고 병원에서 무조건 빨리 퇴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잖아요? 완치되어 퇴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저는 너무 빨리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재벌과 관료를 개혁할 좋은 찬스였습니다. IMF가 재벌개혁, 관료개혁 하라고 했죠. IMF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나 노동유연성만 권한 게 아니에요.
물론 노동유연성도 권했습니다.
노동의 구조조정도 해야죠.
그런데 왜 자본 구조조정은 안 합니까? 자본의 구조조정이 더 시급하죠. IMF에서 지적한 것을 순서대로 따지면 노동유연성 문제는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였어요. IMF는 먼저 재벌개혁, 관료개혁을 권했던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요? IMF의 지배에서 빨리 빠져나오면서 어떻게 됐습니까? 개혁 대상이어야 마땅한 재벌과 관료가 돌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칼자루를 쥐더니 노동 쪽을 치기 시작했어요.
--- pp.227-278
솔직히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아주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여러 가지 불만이 많았었지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겪으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입원하시기까지 마지막 두 달을 보고는 푹 꼬꾸라질 정도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 pp.242-244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군필자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런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해서 탈영한 자들입니다.
군대에서 복무하다 탱크 몰고 나왔잖아요.
이렇게 옆문으로 청와대 들어온 사람들 빼고 최초로 군대 갔다 온 대통령이 된 거죠.
--- p.254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인터넷에 동영상들이 쫙 떴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밤새 인터넷에 있는 동영상들을 보면서 ‘아 맞아, 저런 일이 있었지.
맞아, 저랬어’ 하다가 점점 빠져드는 생각이 뭐냐면 ‘맞아, 저랬어.
저렇게 이야기하니까 죽었지.
한국 사회에서 저렇게 이야기하니까 죽은 거야’ 싶더라고요.
그리고 동영상을 더 보다 보니까 ‘아냐 아냐, 저렇게 얘기하니까 죽였지’라는 생각까지 드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동영상이 바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하며 했던 말씀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준 가훈을 소개했습니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였다는 거죠.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1980년대에 시위하다 감옥에 간 젊은 아이들을 변호하다 보니까 그 어머니들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무도 젊은이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더라는 거죠.
당신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지난 600년 동안 부모들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아이들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치십니까? 아니면 나서지 말라고 가르치십니까? 세상에 어떤 부정이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져도,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그저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던 역사, 그렇게 해야 밥 먹고 살았죠.
그렇게 해야 잡혀가지 않고, 그렇게 해야 칼 맞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 pp.265-267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에게, 특히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씨에게 김주익 위원장이 고공 크레인에서 넉 달 넘게 농성하다가 목을 맨 뒤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은 너무나 큰 상처였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씀이 있었지요.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 변호사는 김주익의 변호사이기도 했습니다.
김진숙 씨는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 pp.296-297
이명박 정권이 정말 웃긴 게 이념 공세를 많이 하잖아요.
진보진영이나 민주진영을 보고 좌파다, 빨갱이다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대면서 많은 정책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꾸려고 하는 정책들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린벨트 누가 쳤습니까? 박정희가 쳤습니다.
평준화 누가 했습니까? 박정희가 했습니다.
의료보험 누가 했습니까? 박정희가 했어요.
정말 웃기는 현상 아닙니까? 평소에 박정희 욕하는 진보진영은 박정희가 만든 정책을 지키자고 하고, 박정희를 떠받들었던 보수 수구세력은 박정희가 펴놓은 정책을 깨려고 하는 굉장히 웃기는 지형입니다.
--- pp.310-311
법비란 법의 지배가 낳은 새로운 비적입니다.
만주의 민중, 심지어 일제에 협력하는 만주인들조차도 법만 내세우는 일본 관리들을 법비라고 불렀어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법률 조문을 내세우고 법률 기술을 마치 금고털이 기술처럼 써먹는 자들이 법비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법비들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법비들이 국민을 상대로 난을 일으켰어요.
지들 잘못은 서로 눈감아주고, 국민들이 금만 밟아도 죽인다고 달려들고…….
잔인한 권력이 주권자에게 휘두르는 교활한 법치주의, 이게 바로 법비의 난입니다.
--- p.312
우리 역사는 참 정직한 것 같아요.
대중이 흘린 눈물만큼 역사가 변했습니다.
우리가 싸운 만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겁니다.
--- p.324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민주당이 만든 플랜이 무엇입니까? ‘뉴민주당 플랜’이라고 하죠.
이게 오른쪽으로 한 스텝도 아니고, 두 스텝 가는 겁니다.
한나라당하고 거의 똑같은 정책을 쓰자는 거예요.
쉽게 이야기해서 “부자 되세요” 정책입니다.
여러분이 부자라면 누굴 찍으시겠습니까? 한나라당 찍겠습니까, 민주당을 찍겠습니까?
야당이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해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부자 되기 경쟁을 벌이면 그 게임은 백전백패예요.
왜 그런 게임을 합니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한테는 그게 장사가 되거든요.
자기 지역구에서 먹혀듭니다.
하지만 민주당 전체로 보면, 야당 전체로 보면 망하는 길이죠.
그런데 계란이 꾸었던 꿈만큼 세상이 바뀌지는 않았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깨진 계란과 그 선배들은 무언가가 되었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고, 이해찬은 국무총리가 되고, 임채정은 국회의장이 되고, 김근태, 유시민은 장관이 되고, 386 학생회장들은 국회의원이 되고, 그 밖에도 수두룩 빽빽하게 무언가가 되었다.
20대에 감히 꿈도 꾸지 않은 높은 자리, 좋은 자리를 차지했지만 세상은 그만큼 좋아지지 않았다.
그들만의 민주화였다.
……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만큼 민주화되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
한국이 얼마나 민주화되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노무현 같은 대통령이 벼랑에서 뛰어내려야 할 만큼 민주화되지 않았다고 얘기해야 한다.
--- pp.8~9
도대체 1970년대와 비교해서 1980년대는 뭐가 달라졌습니까? 1980년대 세대들은 뒷일을 생각 안 하는 바보인가요? 아닙니다.
다 알면서 그 짓을 했어요.
왜 그랬습니까? 생각이 광주에 미치면 그다음부터는 계산이 안 돼요.
셈이 안 되는 겁니다.
1980년대 세대는 계산을 할 수 없는 세대였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도청에서 총 들고 계엄군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있는데 데모한다고 죽이기야 하겠어? 그 생각을, 그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그런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돌연변이 변종들.
그 사람들이 광주의 자식들입니다.
--- p.59
광주는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실패한 무장봉기입니다.
처절하게 패배한 봉기였지요.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볼 때 광주만큼 성공한 운동도 찾기 어려울 겁니다.
광주는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한 세대에 걸친 역사가 광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패배한 싸움이었던 광주가 새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잘 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밤낮 이기겠습니까? 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이겨야지요.
힘 약한 우리는 한 번 지면 깊은 상처를 받고 회복하는 데 힘이 듭니다.
불리한 싸움은 하면 안 되고, 싸우면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해서 꼭 이겨야지요.
그러나 싸우다 보면 부득이하게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싸움을 잘해야 합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잘 지는 것이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광주에서의 죽음은, 광주의 장엄한 패배는 수많은 광주의 자식에 의해 위대하게 부활했습니다.
--- p.69
드디어 1985년 4월 대우자동차에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파업이 일어난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대우자동차가 파업했다고 대학원에서 축하 술을 마시러 갔거든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대한민국에서 해방 이후 최초로,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대기업 남성 사업장에서 드디어 파업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경축할 만한 일이었어요.
1970년대까지 어땠습니까? 파업은 전부 중소기업의 여성 사업장에서 일어났지요.
동일방직, YH, 반도상사, 한일합섬, 남양나이론, 청계피복, 해태 등등 주요 파업 현장이 중소규모의 여성 사업장이었습니다.
“야, 왜 여공들만 노동운동을 할까?” 이게 굉장히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연구논문이 지금도 많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질문이 잘못된 것 같아요.
“왜 여성들만 노동운동을 할까?”가 아니라 “왜 남성들은 노동운동을 안 했을까?” 묻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성들은 파업을 안 했을까요? 저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 갔다 와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노조나 파업 같은 찌질한 짓을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 p.112
한국 사회에서 군에 대응하는 조직은 학생뿐이었어요.
그러니까 학생과 군의 격돌이 기본 구도로 되었던 셈입니다.
그러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부정권이 퇴진하면서 군이 물러나고, 1991년을 거치면서 학생운동도 뒤로 물러납니다.
많은 사람이 1990년대 이후에 학생운동이 약화되었다고 평가하는데, 현상적으로 맞는 얘기입니다만 그 원인은 조금 깊이 있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학생운동이 짊어져야 했던 과도한 짐을 시민사회의 각 영역이 조직화되면서 나눠 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죠.
--- p.173
참 인연이 희한한 게 김대중 씨가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때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지방색이나 연고주의가 약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지역을 이리저리 옮겨 가면서 출마했어요.
김대중 씨도 별 연고가 없는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했는데 이때 자유당이 압박해 선거등록을 무효화했어요.
청년 김대중이 분해서 군의 도움을 요청할 생각으로 당시 5사단장을 찾아갔습니다.
강원도에서는 군의 힘이 세잖아요.
그런데 마침 사단장이 출장 중이어서 못 만났습니다.
그 사?장이 누구냐? 바로 박정희였습니다.
혹시 김대중과 박정희가 그때 만났다면 우리 역사가 좀 다른 길로 갈 수도 있었을까요?
--- p.198
저는 우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 1987년 이후에 좋은 기회를 세 번이나 놓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1987년이죠.
이겨야 하는 선거,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다음 두 번째가 1997년 외환위기였다고 생각해요.
정말 위기상황이었죠.
그렇다고 병원에서 무조건 빨리 퇴원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잖아요? 완치되어 퇴원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 저는 너무 빨리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때가 재벌과 관료를 개혁할 좋은 찬스였습니다. IMF가 재벌개혁, 관료개혁 하라고 했죠. IMF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나 노동유연성만 권한 게 아니에요.
물론 노동유연성도 권했습니다.
노동의 구조조정도 해야죠.
그런데 왜 자본 구조조정은 안 합니까? 자본의 구조조정이 더 시급하죠. IMF에서 지적한 것을 순서대로 따지면 노동유연성 문제는 다섯 번째인가 여섯 번째였어요. IMF는 먼저 재벌개혁, 관료개혁을 권했던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요? IMF의 지배에서 빨리 빠져나오면서 어떻게 됐습니까? 개혁 대상이어야 마땅한 재벌과 관료가 돌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칼자루를 쥐더니 노동 쪽을 치기 시작했어요.
--- pp.227-278
솔직히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아주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었습니다.
여러 가지 불만이 많았었지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시절을 겪으면서 김대중 대통령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입원하시기까지 마지막 두 달을 보고는 푹 꼬꾸라질 정도로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 pp.242-244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의 군필자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런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해서 탈영한 자들입니다.
군대에서 복무하다 탱크 몰고 나왔잖아요.
이렇게 옆문으로 청와대 들어온 사람들 빼고 최초로 군대 갔다 온 대통령이 된 거죠.
--- p.254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인터넷에 동영상들이 쫙 떴습니다.
그 동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밤새 인터넷에 있는 동영상들을 보면서 ‘아 맞아, 저런 일이 있었지.
맞아, 저랬어’ 하다가 점점 빠져드는 생각이 뭐냐면 ‘맞아, 저랬어.
저렇게 이야기하니까 죽었지.
한국 사회에서 저렇게 이야기하니까 죽은 거야’ 싶더라고요.
그리고 동영상을 더 보다 보니까 ‘아냐 아냐, 저렇게 얘기하니까 죽였지’라는 생각까지 드는 거예요.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동영상이 바로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하며 했던 말씀입니다.
노무현 후보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준 가훈을 소개했습니다.
“야, 이놈아,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면서 살아라”였다는 거죠.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1980년대에 시위하다 감옥에 간 젊은 아이들을 변호하다 보니까 그 어머니들도 똑같이 가르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놈아.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만둬라.
너는 뒤로 빠져라.”
이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아무도 젊은이에게 정의를 가르치지 않더라는 거죠.
당신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 지난 600년 동안 부모들이 비겁한 교훈을 가르쳐왔다는 겁니다.
여러분, 어떠십니까? 아이들에게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치십니까? 아니면 나서지 말라고 가르치십니까? 세상에 어떤 부정이 있어도, 어떤 불의가 눈앞에 벌어져도, 강자가 약자를 짓밟아도 그저 모른 척하고 고개 숙이고 외면해야 했던 역사, 그렇게 해야 밥 먹고 살았죠.
그렇게 해야 잡혀가지 않고, 그렇게 해야 칼 맞지 않고 살 수 있었는데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떳떳하게 불의에 맞서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 pp.265-267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노무현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에게, 특히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씨에게 김주익 위원장이 고공 크레인에서 넉 달 넘게 농성하다가 목을 맨 뒤 노무현 대통령이 한 말은 너무나 큰 상처였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씀이 있었지요.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 변호사는 김주익의 변호사이기도 했습니다.
김진숙 씨는 글을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다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 pp.296-297
이명박 정권이 정말 웃긴 게 이념 공세를 많이 하잖아요.
진보진영이나 민주진영을 보고 좌파다, 빨갱이다 어쩌고저쩌고 떠들어 대면서 많은 정책을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꾸려고 하는 정책들을 한번 살펴보세요.
그린벨트 누가 쳤습니까? 박정희가 쳤습니다.
평준화 누가 했습니까? 박정희가 했습니다.
의료보험 누가 했습니까? 박정희가 했어요.
정말 웃기는 현상 아닙니까? 평소에 박정희 욕하는 진보진영은 박정희가 만든 정책을 지키자고 하고, 박정희를 떠받들었던 보수 수구세력은 박정희가 펴놓은 정책을 깨려고 하는 굉장히 웃기는 지형입니다.
--- pp.310-311
법비란 법의 지배가 낳은 새로운 비적입니다.
만주의 민중, 심지어 일제에 협력하는 만주인들조차도 법만 내세우는 일본 관리들을 법비라고 불렀어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법률 조문을 내세우고 법률 기술을 마치 금고털이 기술처럼 써먹는 자들이 법비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 법비들의 난이 일어났습니다.
법비들이 국민을 상대로 난을 일으켰어요.
지들 잘못은 서로 눈감아주고, 국민들이 금만 밟아도 죽인다고 달려들고…….
잔인한 권력이 주권자에게 휘두르는 교활한 법치주의, 이게 바로 법비의 난입니다.
--- p.312
우리 역사는 참 정직한 것 같아요.
대중이 흘린 눈물만큼 역사가 변했습니다.
우리가 싸운 만큼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겁니다.
--- p.324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에 민주당이 만든 플랜이 무엇입니까? ‘뉴민주당 플랜’이라고 하죠.
이게 오른쪽으로 한 스텝도 아니고, 두 스텝 가는 겁니다.
한나라당하고 거의 똑같은 정책을 쓰자는 거예요.
쉽게 이야기해서 “부자 되세요” 정책입니다.
여러분이 부자라면 누굴 찍으시겠습니까? 한나라당 찍겠습니까, 민주당을 찍겠습니까?
야당이 자기 정체성을 어떻게 확보해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부자 되기 경쟁을 벌이면 그 게임은 백전백패예요.
왜 그런 게임을 합니까? 민주당 내 일부 의원들한테는 그게 장사가 되거든요.
자기 지역구에서 먹혀듭니다.
하지만 민주당 전체로 보면, 야당 전체로 보면 망하는 길이죠.
--- p.357
출판사 리뷰
2009년에 우리는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다.
특히나 노무현의 서거는 “1980년 광주를 겪으며 새롭게 등장했던 민주화운동 세대가 주역이 되었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노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많은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분통해하고, 의아해했다.
그러고선 한국현대사,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무현의 죽음이 곧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계와 좌절을 의미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에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특강을 준비한다.
이미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대사의 여덟 가지 주요 쟁점을 생생히 전해주었던 한 교수는 이번에 두 번째 현대사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원지라 할 5?18 광주, 광주의 장엄한 패배를 딛고 일어선 80년대 민주화 운동, 노태우·김영삼 정권하의 과도기적 민주화,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현재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까지 지난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인가?
흔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라기보다는 현재의 관점에서 불러내고 해석한 과거”이다.
여기에 한홍구 교수는 좀 더 과감하게 역사를 정의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며,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고.
매순간이 격변기이고, 매순간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이지만, 지난 2009년은 좀 더 특별한 한 해였다.
연초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 세입자의 권리를 외치던 5명의 시민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5월에는 고향 마을에 내려간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한 여름,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역사라 할 김대중 대통령이 숨을 거둔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를 이룬다는 사실을 절감한 한 해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생생히 경험한 그 엄청난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옥상에 올라가 살 권리를 지켜달라며 외치던 세입자들에게 “중재나 타협은 없다!”며 경찰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두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역사의 주무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됐다는 민주화운동 세대가 주역이 되었던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이 이뤄낸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이 맞서 싸웠던 권위주의 정부의 ‘반민주’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한홍구 교수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만든 가장 가까운 사건, 오늘을 규정한 가장 큰 변화의 계기부터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시작이 5?18 광주였다고 말한다.
한 권으로 읽어내는 한국 현대사 30년 - 1980~2009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의 일이지만, 가장 큰 엔진 역할을 한 것은 5?18 광주였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 남아 죽을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였던 수백 명 광주 시민들의 장엄한 선택이었다.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 자리를 지킨 사람들”, 그들이 지킨 “가장 긴 새벽”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광주의 자식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 힘이 80, 90년대 죽음을 각오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의 슬픔의 에너지가 되어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고 체육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다.
책은 이후 양김씨의 분열로 인한 노태우의 준(準)군사정부의 탄생, 3당 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문민정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정권 교체를 이뤄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개천에서 난 진짜 용 노무현의 참여 정부, 지금의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 재교체 과정을 숨가쁘게 전개해나간다.
이는 현대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강의를 옮겨낸 구어체의 흡인력, 한홍구 교수의 특유의 입담과 역사적 맥락을 잡아주는 풍부한 사례와 해석이 담겨져 평면적인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입체적인 역사로 재탄생한다.
또한 모든 일상사가 정치사이며, 정치적 격변이 대중의 일상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한 교수의 관점은 몇몇 정치인과 정치세력 간의 이합집산에 얽힌 비사로 흐르고 마는 속류 정치사의 한계를 넉넉히 넘고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 30년사’라는 한 두름으로 엮어진다.
너무나도 뼈아픈 세 번의 기회
지난 30년 간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며 한홍구 교수가 안타까워하는 세 번의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87년 양김씨의 분열로 인한 대선 패배, 97년 외환 위기 당시 재벌 개혁과 관료 개혁의 좌절, 그리고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마련된 여대야소 국면에서의 개혁 실패이다.
지난 한국 현대사는 분명히 성공한 역사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3세계로 출발한 나라 가운데,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나라, 거기에 엄청난 경제 발전까지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 세 번의 국면에서 좀 더 빨리, 좀 더 완성된 민주주의의 혜택을 대다수 국민들이 나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87년 당시 양김씨가 분열하지 않았더라면, 민주주의는 최소 5년은 앞당길 수 있었고, 3당 합당에 이어진 경남 지역의 보수화를 막고, 지금 현 시점에서의 민주 벨트도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97년 당시 IMF가 요구한 것은 노동유연성이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우선해서 자본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개혁의 대상이어야 마땅한 재벌과 관료가 돌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도사가 되어, 칼자루를 쥐고 노동 쪽을 치기 시작”했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는 탄핵 후 마련된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이른바 민주화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 처리에 실패했고, ‘대연정 제안’이라는 “저쪽에 던진 수류탄이 자기 진영에서 터져버리”며 대선 패배로 이어진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민주화진영이 놓친 그 세 번의 기회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감당해야 할 불완전한 민주주의라는 현실로 눈앞에 서 있다.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을 이루고, 그 개인사와 가족사가 모여 한 나라의 역사를 이룬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선택의 누적분이 당신이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지난 세월 역사적 선택의 누적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역사의 방향을 선택하기 위한 선행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책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역시 우리가 지난 2009년 목도한 두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그것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5?18 광주에서부터 짚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우리 앞에 놓인 역사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의로운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던 노무현마저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게 만든 세상,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라는 말에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서 만들어가야 할 역사는 어떤 것일까?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안하면 반드시 지게 돼 있다”는 사실이 아닐 런지…….
특히나 노무현의 서거는 “1980년 광주를 겪으며 새롭게 등장했던 민주화운동 세대가 주역이 되었던 한 시대가 끝났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노무현의 갑작스런 죽음을 접한 많은 시민들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분통해하고, 의아해했다.
그러고선 한국현대사,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무현의 죽음이 곧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계와 좌절을 의미하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한홍구 교수는 이에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과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특강을 준비한다.
이미 『특강-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대사의 여덟 가지 주요 쟁점을 생생히 전해주었던 한 교수는 이번에 두 번째 현대사 특강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원지라 할 5?18 광주, 광주의 장엄한 패배를 딛고 일어선 80년대 민주화 운동, 노태우·김영삼 정권하의 과도기적 민주화,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현재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 시대로의 회귀까지 지난 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왜 지금 이 순간의 역사인가?
흔히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일 자체라기보다는 현재의 관점에서 불러내고 해석한 과거”이다.
여기에 한홍구 교수는 좀 더 과감하게 역사를 정의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이며, 지금 이 순간의 역사”라고.
매순간이 격변기이고, 매순간 굴곡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이지만, 지난 2009년은 좀 더 특별한 한 해였다.
연초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 세입자의 권리를 외치던 5명의 시민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5월에는 고향 마을에 내려간 전직 대통령이 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한 여름,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 있는 역사라 할 김대중 대통령이 숨을 거둔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모여 역사를 이룬다는 사실을 절감한 한 해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렇게 생생히 경험한 그 엄청난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옥상에 올라가 살 권리를 지켜달라며 외치던 세입자들에게 “중재나 타협은 없다!”며 경찰을 앞세운 이명박 정부의 법치주의의 의미는 무엇일까? 두 대통령의 죽음과 함께 역사의 주무대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게 됐다는 민주화운동 세대가 주역이 되었던 시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들이 이뤄낸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었으며, 그들이 맞서 싸웠던 권위주의 정부의 ‘반민주’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한홍구 교수는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을 만든 가장 가까운 사건, 오늘을 규정한 가장 큰 변화의 계기부터 짚어나간다.
그리고 그 시작이 5?18 광주였다고 말한다.
한 권으로 읽어내는 한국 현대사 30년 - 1980~2009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은 87년 6월 항쟁 이후의 일이지만, 가장 큰 엔진 역할을 한 것은 5?18 광주였다.
그리고 한홍구 교수가 무엇보다 주목하는 것은 80년 5월 27일 새벽, 전남도청에 남아 죽을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였던 수백 명 광주 시민들의 장엄한 선택이었다.
“죽을 것을 뻔히 알고 죽음을 기다리면서 그 자리를 지킨 사람들”, 그들이 지킨 “가장 긴 새벽”을 통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느끼며 자신의 인생을 바꾸기로 결심한 광주의 자식들이 태어나게 되었다.
그 힘이 80, 90년대 죽음을 각오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사람들의 슬픔의 에너지가 되어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고 체육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쟁취한다.
책은 이후 양김씨의 분열로 인한 노태우의 준(準)군사정부의 탄생, 3당 합당을 통한 김영삼의 문민정부,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던 정권 교체를 이뤄낸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개천에서 난 진짜 용 노무현의 참여 정부, 지금의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 재교체 과정을 숨가쁘게 전개해나간다.
이는 현대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역사적 사실들이지만, 강의를 옮겨낸 구어체의 흡인력, 한홍구 교수의 특유의 입담과 역사적 맥락을 잡아주는 풍부한 사례와 해석이 담겨져 평면적인 역사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입체적인 역사로 재탄생한다.
또한 모든 일상사가 정치사이며, 정치적 격변이 대중의 일상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한 교수의 관점은 몇몇 정치인과 정치세력 간의 이합집산에 얽힌 비사로 흐르고 마는 속류 정치사의 한계를 넉넉히 넘고서, 격동의 ‘한국 현대사 30년사’라는 한 두름으로 엮어진다.
너무나도 뼈아픈 세 번의 기회
지난 30년 간의 현대사를 되돌아보며 한홍구 교수가 안타까워하는 세 번의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87년 양김씨의 분열로 인한 대선 패배, 97년 외환 위기 당시 재벌 개혁과 관료 개혁의 좌절, 그리고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마련된 여대야소 국면에서의 개혁 실패이다.
지난 한국 현대사는 분명히 성공한 역사였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제3세계로 출발한 나라 가운데,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낸 나라, 거기에 엄청난 경제 발전까지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하지만 그 세 번의 국면에서 좀 더 빨리, 좀 더 완성된 민주주의의 혜택을 대다수 국민들이 나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우리가 놓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87년 당시 양김씨가 분열하지 않았더라면, 민주주의는 최소 5년은 앞당길 수 있었고, 3당 합당에 이어진 경남 지역의 보수화를 막고, 지금 현 시점에서의 민주 벨트도 훨씬 넓어졌을 것이다.
97년 당시 IMF가 요구한 것은 노동유연성이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우선해서 자본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개혁의 대상이어야 마땅한 재벌과 관료가 돌연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도사가 되어, 칼자루를 쥐고 노동 쪽을 치기 시작”했다.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가 본격적으로 심화된 것이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는 탄핵 후 마련된 여소야대 국면이었다.
하지만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이른바 민주화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 입법 처리에 실패했고, ‘대연정 제안’이라는 “저쪽에 던진 수류탄이 자기 진영에서 터져버리”며 대선 패배로 이어진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는 말이 있지만, 민주화진영이 놓친 그 세 번의 기회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감당해야 할 불완전한 민주주의라는 현실로 눈앞에 서 있다.
역사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
한 사람의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을 이루고, 그 개인사와 가족사가 모여 한 나라의 역사를 이룬다.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은 “선택의 누적분이 당신이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지금 이 순간의 역사’는 ‘지난 세월 역사적 선택의 누적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 지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궁극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역사의 방향을 선택하기 위한 선행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책 『지금 이 순간의 역사』 역시 우리가 지난 2009년 목도한 두 대통령의 죽음을 계기로, 그것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5?18 광주에서부터 짚어내고 있다.
그렇다면 시시각각 우리 앞에 놓인 역사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정의로운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던 노무현마저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게 만든 세상,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라는 말에 적잖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 현실의 벽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서 만들어가야 할 역사는 어떤 것일까?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안하면 반드시 지게 돼 있다”는 사실이 아닐 런지…….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10년 03월 08일
- 쪽수, 무게, 크기 : 385쪽 | 578g | 153*224*30mm
- ISBN13 : 9788984313774
- ISBN10 : 8984313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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