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이 걷힌 자리엔
Description
책소개
- MD 한마디
- 경성의 기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격변의 시대, 경성의 미술품·골동품 중개상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
『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동명의 웹툰을 작가가 직접 각색한 소설로, 풀리지 않는 고민을 안은 인간과 영물, 신과 원혼의 사연을 그린다.
소설책에는 원작에 없는 부분을 서장에 함께 실어 이야기의 깊이를 더했다.
2022.02.22. 소설/시 PD 박형욱
누적 2천만 뷰 화제의 카카오웹툰 『어둠이 걷힌 자리엔』 전격 소설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된 도시 경성, 오월중개소를 찾아온 기묘한 존재와 사연들!
격동의 시기인 1900년대의 경성, 골목 한편에 자리한 미술품과 골동품 중개상점인 ‘오월중개소’에는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중개상 ‘최두겸’이 있다.
그 덕분에 손님을 내쫓는 세화를 가진 찻집 주인, 이승을 떠나지 않는 혼령 고오, 자신이 날려버린 부처를 살려 달라 찾아온 담비 동자, 삼십 년 간 비밀을 간직해온 이야기 들어주는 귀님, 인간을 사랑한 샘물 신 등, 기이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인간을 비롯해 여러 신들과 영물들, 원혼들이 자기의 고민을 해결달라고 오원중개소를 찾는다.
그런 두겸 앞에 어린 시절 자신의 목숨을 살린 존재이자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만든 특별한 영물 뱀 치조가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와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을 때까지 도움을 청한다.
그와 동시에 두겸과 치조의 주변에서는 원한 서린 목소리가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치조에게는 ‘썩은’ 조각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는데….
저자 홍우림은 카카오웹툰 누적 조회수 1억 뷰의 문제작 『묘진전』을 쓰고 그린 젤리빈 작가로, 이 소설은 저자가 카카오웹툰에서 연재한 『어둠이 걷힌 자리엔』을 직접 각색한 작품이다.
웹툰으로 다 표현해내지 못한 인물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글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담아냈으며, 원작에는 없는 이야기 「감기지 않는 눈」을 새롭게 써넣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혼재된 도시 경성, 오월중개소를 찾아온 기묘한 존재와 사연들!
격동의 시기인 1900년대의 경성, 골목 한편에 자리한 미술품과 골동품 중개상점인 ‘오월중개소’에는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중개상 ‘최두겸’이 있다.
그 덕분에 손님을 내쫓는 세화를 가진 찻집 주인, 이승을 떠나지 않는 혼령 고오, 자신이 날려버린 부처를 살려 달라 찾아온 담비 동자, 삼십 년 간 비밀을 간직해온 이야기 들어주는 귀님, 인간을 사랑한 샘물 신 등, 기이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인간을 비롯해 여러 신들과 영물들, 원혼들이 자기의 고민을 해결달라고 오원중개소를 찾는다.
그런 두겸 앞에 어린 시절 자신의 목숨을 살린 존재이자 특별한 능력을 갖도록 만든 특별한 영물 뱀 치조가 인간의 모습으로 찾아와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을 찾을 때까지 도움을 청한다.
그와 동시에 두겸과 치조의 주변에서는 원한 서린 목소리가 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치조에게는 ‘썩은’ 조각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는데….
저자 홍우림은 카카오웹툰 누적 조회수 1억 뷰의 문제작 『묘진전』을 쓰고 그린 젤리빈 작가로, 이 소설은 저자가 카카오웹툰에서 연재한 『어둠이 걷힌 자리엔』을 직접 각색한 작품이다.
웹툰으로 다 표현해내지 못한 인물들의 감정과 이야기를 글을 통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담아냈으며, 원작에는 없는 이야기 「감기지 않는 눈」을 새롭게 써넣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서장 감기지 않는 눈
1장 어쩌면 러브 스토리1
2장 어쩌면 러브 스토리2
3장 귀빈
4장 귀신 잡아먹는 우물
5장 치조
6장 담비 동자
7장 삼십 년 술래잡기 1
8장 삼십 년 술래잡기 2
9장 어떤 사랑은
10장 SOS PUPPY
11장 우리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12장 배웅
13장 길 찾기1
14장 길 찾기2
종장 새로운 시작
1장 어쩌면 러브 스토리1
2장 어쩌면 러브 스토리2
3장 귀빈
4장 귀신 잡아먹는 우물
5장 치조
6장 담비 동자
7장 삼십 년 술래잡기 1
8장 삼십 년 술래잡기 2
9장 어떤 사랑은
10장 SOS PUPPY
11장 우리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12장 배웅
13장 길 찾기1
14장 길 찾기2
종장 새로운 시작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 손님은 응접실 소파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 벽면마다 전시된 골동품과 미술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늘고 길게 빠진 눈꼬리,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긴 올림머리가 꼭 미인도를 연상케 했지만 갸름한 턱 선이나 오묘하게 찢어져 올라간 입가가 보통의 미인도의 푸근함과는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일 텐데 요즘 경성에서 유행하는 차림새는 아니니 지방에서 오셨으려나? 손님은 두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알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인간이 붙인 이름 중에서는 토지신이 가장 그럴듯하겠군요.”
사근사근한 말투다.
“자연의 영물은 본래 인간에게 무관심한 편이지요.
헌데 그런 우리 사이에서도 당신은 유명하더이다.”
종종 눈앞의 손님과 같은 존재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거나 문제 해결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
그럴 때 두겸은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인데, 그 같은 두겸의 이야기가 손님 같은 존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 p.25~26
* 후우.
두겸은 심호흡을 했다.
삽을 들고 혼자 손님의 텃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건 여러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다.
특히 이 장소를 집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목격할 필요 없다.
푹, 푹.
텃밭을 파헤치는 삽질엔 의욕이 없었다.
두겸은 이 아래에서 자신이 발견할 것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다.
만개 하다 못해 이제는 극성을 부리는 것만 같은 흰 꽃들 사이, 시들어 버린 덩굴 아래, 새카만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철의 시체였다.
(…) 두겸은 비틀거리며 텃밭에서 나와 여관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오래전 그의 도움을 받은 마을신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겁줄 때 말을 듣지 않으면 괴물이 잡아갈 것이라고 하지.
그런데 말야.
진짜로 있어.
나쁜 아이들을 잡아가는 귀신이.
그것은 사람들의 염원을 듣고 와.
-말도 안 돼요.
당시 두겸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귀신이 누구 좋자고 나쁜 아이들을 골라 잡아갑니까?
히히히히.
마을신은 웃었다.
그리고 두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귀신 좋자고 잡아가지.
왜냐하면 그런 아이들은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으니까.
--- p.100~101
* 소년은 우물 앞에서 감당하지 못할 감정에 북받쳐 한참을 울었다.
주변의 나무와 풀과 바위의 경계가 선연해질 때쯤 몸을 일으켰다.
우물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귀신 잡아먹는 우물일 수 없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소년은 살아 있었으나 마을 사람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
이제 내게 고향은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지만 그 또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본 듯한 그 초록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기억할 것은 그것뿐이다.
치조라고 했던가.
치조.
그 이름을 잊지 말아야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아니,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는 소년의 머리 위로 흰 목련 꽃잎이 떨어져 내렸다.
--- p.129~130
* 두겸이 오월중개소로 돌아왔을 때 눈에 익은 윤곽이 응접실 소파에 무사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새벽의 문제적 방문객, 담비였다.
허.
올 때마다 전략이 발전하고 있잖아? 처음엔 동 트기도 전에 집으로 들이닥치더니 이젠 업무 시간에 직장으로 찾아올 줄도 알고? 이쯤 되면 감탄이 나온다.
그러나 발전하는 전략과 달리 인간의 행색만 겨우 갖춘 외형은 그대로다.
키는 두겸의 허리 정도, 어린아이의 얼굴이긴 하나 귀는 꼭 주전자에 달린 손잡이처럼 큼지막하고 입은 쭉 찢어졌으며 눈은 부리부리하다.
제 딴에는 사람으로 둔갑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담비는 담비였다.
아직 둔갑술이 능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정말 이 녀석 눈엔 인간들이 저렇게 보이는 걸까? 두겸은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 p.149
* 아아.
두겸은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온내의 갈 곳 모를 화와 혼란이 깃든 굳은 눈매를 잘 알았다.
그것은 우물에 던져져 죽은 어린 동생의 기억과, 역시 우물에 던져져 죽다 살아나며 얻은 능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방황하던 십 대, 이십 대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이 아이는 아마 앞으로도 이 마음의 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가벼워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 사라 지지 않을 것이다.
방황하던 두겸이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없는 것을 보고 듣는 능력을 이용해 영물들과 귀신들, 산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씩 좋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 짐을 감당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했지만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한 것처럼.
--- p.201~202
* 흐~으음.
치조가 천천히 눈을 굴렸다.
샘은 다정한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지만 치조가 보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다정한 인간 본인이다.
분명 덕재란 자는 다정한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 육신에 남아 있던 다정함이, 그 육신을 홀라당 뒤집어쓴 샘물에게 들어가버린 게 분명하다.
샘물은 다정한 인간 때문에 소멸한 게 아니라 다정해서 소멸했다.
치조는 두겸이 우물에 버려졌을 때를 생각했다.
그때 두겸은 정말 작았다.
지금도 작지만 그때는 콩알만 했다.
우물에 던져진 사람들, 두겸의 동생, 그리고 치조를 가여워하며 펑펑 울던 자그마한 아이.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때 아이는 다정했기 때문에 우물에 던져졌을 것이다.
--- p.237
* 무엇이, 누가 이런 상황을 지속되게 하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들의 삶은 어찌해야 하나.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그러나 생존자이기도 한 두겸 역시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두겸은 동생을 죽인 마을 사람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지옥의 아귀들에게 매일 내장을 뜯어 먹히는 고통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겸은 옅고 길게 숨을 쉬었다.
떨지 않으려고 양손을 움켜쥐었는데도 자꾸 떨렸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원혼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위협적인 압박이었다.
두겸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영원히 상처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술렁술렁.
주변이 들끓었다.
--- p.301
* “저건 함박꽃나무예요.”
여자가 말했다.
치조에겐 이름이 모두 다른 아이들인데 여자 에겐 전부 함박꽃나무였다.
조선 각처의 깊은 산 중턱 골짜기에 주로 서식하는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낙엽소교목’이란다.
치조와 여자는 같은 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로 뭔가 바뀌고 있구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우리 모두 휩쓸려 가.
(…) 생각에 잠긴 치조의 의식 뒤쪽으로 여자의 말이 웅웅웅 뭉개졌다.
치조는 눈을 들어 현실 너머 태고의 생명을 머금은 산과 그 기운을 받은 영화로운 짐승들과 그들이 누렸던 시간을 본다.
치조가 알던 세계는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치조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창백한 피부, 초승달 같은 눈썹, 가늘고 길게 빠진 눈꼬리, 참빗으로 곱게 빗어 넘긴 올림머리가 꼭 미인도를 연상케 했지만 갸름한 턱 선이나 오묘하게 찢어져 올라간 입가가 보통의 미인도의 푸근함과는 다른 인상을 만들었다.
(…)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것일 텐데 요즘 경성에서 유행하는 차림새는 아니니 지방에서 오셨으려나? 손님은 두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걸 알았는지 먼저 입을 열었다.
“제 소개를 하자면… 인간이 붙인 이름 중에서는 토지신이 가장 그럴듯하겠군요.”
사근사근한 말투다.
“자연의 영물은 본래 인간에게 무관심한 편이지요.
헌데 그런 우리 사이에서도 당신은 유명하더이다.”
종종 눈앞의 손님과 같은 존재가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거나 문제 해결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곤 했다.
그럴 때 두겸은 그저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인데, 그 같은 두겸의 이야기가 손님 같은 존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져나간 모양이었다.
--- p.25~26
* 후우.
두겸은 심호흡을 했다.
삽을 들고 혼자 손님의 텃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건 여러 사람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다.
특히 이 장소를 집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사람들은 목격할 필요 없다.
푹, 푹.
텃밭을 파헤치는 삽질엔 의욕이 없었다.
두겸은 이 아래에서 자신이 발견할 것이 무엇일지 알고 있었다.
만개 하다 못해 이제는 극성을 부리는 것만 같은 흰 꽃들 사이, 시들어 버린 덩굴 아래, 새카만 흙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철의 시체였다.
(…) 두겸은 비틀거리며 텃밭에서 나와 여관 툇마루에 주저앉았다.
오래전 그의 도움을 받은 마을신이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겁줄 때 말을 듣지 않으면 괴물이 잡아갈 것이라고 하지.
그런데 말야.
진짜로 있어.
나쁜 아이들을 잡아가는 귀신이.
그것은 사람들의 염원을 듣고 와.
-말도 안 돼요.
당시 두겸은 그렇게 대답했었다.
-귀신이 누구 좋자고 나쁜 아이들을 골라 잡아갑니까?
히히히히.
마을신은 웃었다.
그리고 두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귀신 좋자고 잡아가지.
왜냐하면 그런 아이들은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으니까.
--- p.100~101
* 소년은 우물 앞에서 감당하지 못할 감정에 북받쳐 한참을 울었다.
주변의 나무와 풀과 바위의 경계가 선연해질 때쯤 몸을 일으켰다.
우물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귀신 잡아먹는 우물일 수 없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소년은 살아 있었으나 마을 사람들에게도 엄마에게도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
이제 내게 고향은 없다.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지만 그 또한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속에서 본 듯한 그 초록의 눈동자를 떠올렸다.
이곳에서 기억할 것은 그것뿐이다.
치조라고 했던가.
치조.
그 이름을 잊지 말아야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아니, 꼭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는 소년의 머리 위로 흰 목련 꽃잎이 떨어져 내렸다.
--- p.129~130
* 두겸이 오월중개소로 돌아왔을 때 눈에 익은 윤곽이 응접실 소파에 무사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있었다.
새벽의 문제적 방문객, 담비였다.
허.
올 때마다 전략이 발전하고 있잖아? 처음엔 동 트기도 전에 집으로 들이닥치더니 이젠 업무 시간에 직장으로 찾아올 줄도 알고? 이쯤 되면 감탄이 나온다.
그러나 발전하는 전략과 달리 인간의 행색만 겨우 갖춘 외형은 그대로다.
키는 두겸의 허리 정도, 어린아이의 얼굴이긴 하나 귀는 꼭 주전자에 달린 손잡이처럼 큼지막하고 입은 쭉 찢어졌으며 눈은 부리부리하다.
제 딴에는 사람으로 둔갑했다고 굳게 믿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보나 뒤로 보나 담비는 담비였다.
아직 둔갑술이 능숙하지 않거나 아니면 정말 이 녀석 눈엔 인간들이 저렇게 보이는 걸까? 두겸은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 p.149
* 아아.
두겸은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온내의 갈 곳 모를 화와 혼란이 깃든 굳은 눈매를 잘 알았다.
그것은 우물에 던져져 죽은 어린 동생의 기억과, 역시 우물에 던져져 죽다 살아나며 얻은 능력을 감당하기 어려워 방황하던 십 대, 이십 대의 자신과 닮아 있었다.
이 아이는 아마 앞으로도 이 마음의 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가벼워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절대 사라 지지 않을 것이다.
방황하던 두겸이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없는 것을 보고 듣는 능력을 이용해 영물들과 귀신들, 산 사람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하나 둘씩 좋은 인연들을 만나면서 그 짐을 감당하는 법을 조금씩 터득했지만 완전히 자유로워지진 못한 것처럼.
--- p.201~202
* 흐~으음.
치조가 천천히 눈을 굴렸다.
샘은 다정한 인간을 조심해야 한다지만 치조가 보기에 조심해야 하는 건 다정한 인간 본인이다.
분명 덕재란 자는 다정한 인간일 것이다.
그래서 육신에 남아 있던 다정함이, 그 육신을 홀라당 뒤집어쓴 샘물에게 들어가버린 게 분명하다.
샘물은 다정한 인간 때문에 소멸한 게 아니라 다정해서 소멸했다.
치조는 두겸이 우물에 버려졌을 때를 생각했다.
그때 두겸은 정말 작았다.
지금도 작지만 그때는 콩알만 했다.
우물에 던져진 사람들, 두겸의 동생, 그리고 치조를 가여워하며 펑펑 울던 자그마한 아이.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때 아이는 다정했기 때문에 우물에 던져졌을 것이다.
--- p.237
* 무엇이, 누가 이런 상황을 지속되게 하는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피해자들의 삶은 어찌해야 하나.
결국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왜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는가.
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그러나 생존자이기도 한 두겸 역시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두겸은 동생을 죽인 마을 사람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지옥의 아귀들에게 매일 내장을 뜯어 먹히는 고통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두겸은 옅고 길게 숨을 쉬었다.
떨지 않으려고 양손을 움켜쥐었는데도 자꾸 떨렸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원혼들이 자신을 지켜보는 게 느껴졌다.
위협적인 압박이었다.
두겸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하지만 영원히 상처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술렁술렁.
주변이 들끓었다.
--- p.301
* “저건 함박꽃나무예요.”
여자가 말했다.
치조에겐 이름이 모두 다른 아이들인데 여자 에겐 전부 함박꽃나무였다.
조선 각처의 깊은 산 중턱 골짜기에 주로 서식하는 ‘미나리아재비목 목련과의 낙엽소교목’이란다.
치조와 여자는 같은 대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로 뭔가 바뀌고 있구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우리 모두 휩쓸려 가.
(…) 생각에 잠긴 치조의 의식 뒤쪽으로 여자의 말이 웅웅웅 뭉개졌다.
치조는 눈을 들어 현실 너머 태고의 생명을 머금은 산과 그 기운을 받은 영화로운 짐승들과 그들이 누렸던 시간을 본다.
치조가 알던 세계는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치조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 p.339
출판사 리뷰
카카오웹툰 누적 조회수 1억 뷰의 문제작 『묘진전』
젤리빈 작가의 신작 웹툰 『어둠이 걷힌 자리엔』 소설화!
격변의 시대, 경성의 오월중개소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양복, 기모노가 뒤섞인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시대의 아픔과 의지가 혼재된 1900년대의 경성.
안국정(지금의 안국동) 골목 상점가 모퉁이에 위치한 미술품·골동품 중개상점 오월중개소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중개인 최두겸이다.
그 덕분에 기이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두겸을 찾아 오월중개소의 문을 두드린다.
반골을 가지고 태어나 원통하게 목숨을 잃고 저승길을 마다한 혼령 고오와 그를 데리고 나타난 토지신, 자기도 모르게 불상의 목을 날려버린 담비 동자, 기묘한 손님과 함께 마을에서 사라져버린 사람을 이야기하는 소녀, 삼십 년 동안 묵혀왔던 비밀을 털어내려는 신,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샘물 등 저마다 기이한 사연을 지닌 인간과 영물, 신들이 찾아와 두겸에게 고민 해결을 청한다.
그러던 어느 밤, 어린 시절 두겸의 목숨을 살리고 두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던 영물 뱀, 치조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두겸을 찾아온다.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번개에 뛰어 들었다가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들을 되찾을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 책 『어둠이 걷힌 자리엔』 은 카카오웹툰에서 연재되어 누적 조회수 2천만 뷰를 기록한 동명 웹툰을소설로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 웹툰의 작가인 홍우림(젤리빈)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다.
그 덕분에 영물 뱀 치조와 최두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과 그들을 찾아오는 신묘한 존재와 사연들은 깊이와 매력을 더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었다.
더불어 소설 『어둠이 걷힌 자리엔』에는 원작 웹툰에는 없었던 손님을 내쫓는 세화 이야기(「감기지 않는 눈」)가 서장에 실려 있다.
우리를 둘러싼 어둠이 걷힌 뒤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는 그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최두겸이 어린 시절에 살던 작은 마을에는 ‘귀신 잡아먹는 우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부정 탄 것, 껄끄러운 것, 불편한 것들을 모조리 집어던져 넣음으로써 잊었다.
남편에게 맞고 살던 이웃 누이가 도망쳤을 때 사람들은 누이의 신이 귀신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고, 이 부자네 말더듬이 시종이 죽었을 때에도 그가 쓰던 식칼이 귀신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맞아 죽고, 괴롭힘 당해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귀신 들린 신발과 식칼을 우물에 던져져 넣고 그들의 죽음과, 그 죽음 뒤의 진실에 눈을 감았다.
두겸의 병든 동생도, 그 우물을 부숴 없애려던 두겸도 발작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에 의해 우물에 던져지고 말았다.
그런 두겸을 살려낸 것이 바로 우물에 봉인되어 있던 영물 뱀 치조였다.
치조 덕분에 생명을 되찾고 특별한 능력까지 생겼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두겸은 그날 이후 동생의 죽음을 상처로 안고 산다.
소설 속 두겸이 마주치는 사연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이 귀한 집안에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나 반골을 가졌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처럼 살다 여인이 되어버린 혼령 고오, 소작제 개선을 하려다 어이 없이 죽은 사내 조기, 살기 위해 비밀을 간직한 채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쳐버린 온내, 붉은 눈썹의 사내만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마을의 금기를 깼다 죽은 여인 어정 등, 살아 있는 인간과 영물, 신들이 실어온 사연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어둠이 걷힌 자리엔』 속 두겸과 치조, 여러 존재가 풀어놓는 사연에는 인간이 가진 상처와 불안, 약함을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한편 인간을 위해 ‘귀신 잡아먹는 우물’을 만들었으나 인간의 이기만을 확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비구니의 원혼 앞에서 두겸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영원히 상처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해내왔어요.
정말 느리지만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들은… 아주 천천히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과 맞서 왔어요.
제가 사는 세상은, 제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테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또 다를 겁니다.”(301~302쪽)라고.
두겸의 말처럼 이야기 속 상처 입은 존재들은 시간이 걸려도 자기 어둠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집안의 무시와 억압을 박차고 나와 제 의지대로 살았던 고오와 조기, 삼십 년 가까운 죄책감을 대신해 네 아이를 키워낸 온내, 여인의 몸으로 마을의 금기를 깨려 했던 어정….
누군가는 원혼이 되어 두겸과 마주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끝내 제 한을 털어내고 제 갈 길을 간다.
두겸과 치조 역시 각자의 불안을 견디며 미지의 세계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기담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각자가 겪는 어둠이 걷힌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무엇이 남을 것인지.
젤리빈 작가의 신작 웹툰 『어둠이 걷힌 자리엔』 소설화!
격변의 시대, 경성의 오월중개소를 배경으로 펼쳐진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양복, 기모노가 뒤섞인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시대의 아픔과 의지가 혼재된 1900년대의 경성.
안국정(지금의 안국동) 골목 상점가 모퉁이에 위치한 미술품·골동품 중개상점 오월중개소에는 특별한 사람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보고 들을 수 없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중개인 최두겸이다.
그 덕분에 기이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두겸을 찾아 오월중개소의 문을 두드린다.
반골을 가지고 태어나 원통하게 목숨을 잃고 저승길을 마다한 혼령 고오와 그를 데리고 나타난 토지신, 자기도 모르게 불상의 목을 날려버린 담비 동자, 기묘한 손님과 함께 마을에서 사라져버린 사람을 이야기하는 소녀, 삼십 년 동안 묵혀왔던 비밀을 털어내려는 신,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버린 샘물 등 저마다 기이한 사연을 지닌 인간과 영물, 신들이 찾아와 두겸에게 고민 해결을 청한다.
그러던 어느 밤, 어린 시절 두겸의 목숨을 살리고 두겸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던 영물 뱀, 치조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두겸을 찾아온다.
본래의 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번개에 뛰어 들었다가 잃어버린 자신의 조각들을 되찾을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 책 『어둠이 걷힌 자리엔』 은 카카오웹툰에서 연재되어 누적 조회수 2천만 뷰를 기록한 동명 웹툰을소설로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 웹툰의 작가인 홍우림(젤리빈) 작가가 직접 각색을 맡았다.
그 덕분에 영물 뱀 치조와 최두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과 그들을 찾아오는 신묘한 존재와 사연들은 깊이와 매력을 더하며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되었다.
더불어 소설 『어둠이 걷힌 자리엔』에는 원작 웹툰에는 없었던 손님을 내쫓는 세화 이야기(「감기지 않는 눈」)가 서장에 실려 있다.
우리를 둘러싼 어둠이 걷힌 뒤엔 무엇이 남을 것인가?
우리는 그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최두겸이 어린 시절에 살던 작은 마을에는 ‘귀신 잡아먹는 우물’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에 부정 탄 것, 껄끄러운 것, 불편한 것들을 모조리 집어던져 넣음으로써 잊었다.
남편에게 맞고 살던 이웃 누이가 도망쳤을 때 사람들은 누이의 신이 귀신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고, 이 부자네 말더듬이 시종이 죽었을 때에도 그가 쓰던 식칼이 귀신 들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이 맞아 죽고, 괴롭힘 당해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귀신 들린 신발과 식칼을 우물에 던져져 넣고 그들의 죽음과, 그 죽음 뒤의 진실에 눈을 감았다.
두겸의 병든 동생도, 그 우물을 부숴 없애려던 두겸도 발작을 일으키며 마을 사람들에 의해 우물에 던져지고 말았다.
그런 두겸을 살려낸 것이 바로 우물에 봉인되어 있던 영물 뱀 치조였다.
치조 덕분에 생명을 되찾고 특별한 능력까지 생겼지만 보통 사람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된 두겸은 그날 이후 동생의 죽음을 상처로 안고 산다.
소설 속 두겸이 마주치는 사연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손이 귀한 집안에 사내아이로 태어났으나 반골을 가졌다는 이유로 없는 사람처럼 살다 여인이 되어버린 혼령 고오, 소작제 개선을 하려다 어이 없이 죽은 사내 조기, 살기 위해 비밀을 간직한 채 마을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쳐버린 온내, 붉은 눈썹의 사내만 사냥을 할 수 있다는 마을의 금기를 깼다 죽은 여인 어정 등, 살아 있는 인간과 영물, 신들이 실어온 사연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어둠이 걷힌 자리엔』 속 두겸과 치조, 여러 존재가 풀어놓는 사연에는 인간이 가진 상처와 불안, 약함을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한편 인간을 위해 ‘귀신 잡아먹는 우물’을 만들었으나 인간의 이기만을 확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비구니의 원혼 앞에서 두겸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영원히 상처 속에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어요.
우리는 지금까지 계속 해내왔어요.
정말 느리지만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들은… 아주 천천히 혐오와 차별, 그리고 폭력과 맞서 왔어요.
제가 사는 세상은, 제 아이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테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또 다를 겁니다.”(301~302쪽)라고.
두겸의 말처럼 이야기 속 상처 입은 존재들은 시간이 걸려도 자기 어둠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집안의 무시와 억압을 박차고 나와 제 의지대로 살았던 고오와 조기, 삼십 년 가까운 죄책감을 대신해 네 아이를 키워낸 온내, 여인의 몸으로 마을의 금기를 깨려 했던 어정….
누군가는 원혼이 되어 두겸과 마주하기도 했지만 그 역시 끝내 제 한을 털어내고 제 갈 길을 간다.
두겸과 치조 역시 각자의 불안을 견디며 미지의 세계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는 기담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는다.
각자가 겪는 어둠이 걷힌 자리에 무엇을 남길 것인지, 무엇이 남을 것인지.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2년 02월 21일
- 쪽수, 무게, 크기 : 416쪽 | 512g | 135*205*25mm
- ISBN13 : 9788965964988
- ISBN10 : 8965964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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