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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골렘
닥터 골렘
Description
책소개
현대 의학을 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사회학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는 「골렘」 시리즈의 최신작으로, 흔하게 나타나는 의학, 과학의 오류들을 짚어내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논한다.
앞선 두 권의 「골렘」 시리즈에서와 같은 방식으로 의학과 과학의 이슈들을 다루는 한편, 저자들이 직접 의료 사건에 관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각 사안의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대해 논의하기도 한다.

진단의 불확실성, 뚜렷하게 진단 내릴 수 없는 증상들, 대체의료 등 실제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의료환경과 관련된 다양한 요소들을 함께 고려해 살펴보고 있다.
이와 같은 부분들이 나타난 사례들을 다양하게 제시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현실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런 과정을 통해 전문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의학 분야를 대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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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서론 과학으로서의 의학과 구원으로서의 의료
1장 │ 플라시보 효과 의학의 심장부에 뚫린 구멍
2장 │ 가짜 의사 현장에서 진짜로 가장하기
3장 │ 편도 절제 수술 진단과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4장 │ 비타민 C와 암 대체 의료와 소비자의 문제
5장 │ 만성 피로 증후군 존재하지 않는 질병의 침투
6장 │ 심폐 소생술 죽음에 저항하기
7장 │ 에이즈 활동가 일반인 전문성의 미래
8장 │ 백신 접종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
결론 닥터 골렘 바로 보기
주(註)
참고 문헌
옮긴이의 글 의학과 의료를 보는 안목 넓히기

출판사 리뷰
의학계의 불확실성에 과학 사회학의 메스를 대다!
지난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식물 인간 상태의 어머니 김씨에 대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며 병원을 상대로 낸 김씨 자녀들의 소송에 대해 “연명 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 존엄을 해치게 되므로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존엄과 행복 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라 하여 존엄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09년 6월 23일 세브란스 병원 측은 김씨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러나 김씨 할머니는 10여 일이 지난 7월 초까지도 체온, 호흡, 심박수 면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식물 인간 상태에서 연명 치료를 받는 환자가 3000명이나 되는 상황에서 갑자기 내려진 존엄사 인정 판결은 의료계는 물론이고, 환자 가족과 사회 전체에 혼란과 곤혹스러움을 더해 주고 있다.
하루 수십만 원의 연명 치료를 감당 못하는 환자 가족은 연명 치료의 중단을 요구하고, 각 병원들에서는 명확한 지침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는 이 존엄사 논쟁은 의료/의학(medicine)에서 전문가(의사/의학계)와 일반인(환자/시민 사회) 사이의 협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시금석 같은 사건이다.
‘죽음을 판단’하는 문제 앞에서는 의사의 전문성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환자와 시민 사회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구 의학과 의료 시스템의 수입과 정착에 몰두해 온 한국 사회에는 의료/의학의 가이드라인을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통해 마련해 본 역사가 일천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의학이 근본적으로 사회적 협상의 산물이며, 전문가와 일반인, 의사와 환자, 의료계와 시민 단체의 역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 주는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와 트레버 핀치(Trevor Pinch)의『닥터 골렘: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Dr.
Golem: How to Th ink about Medicine )』은 존엄사 논쟁과 앞으로 있을 의료/의학 관련 논의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줄 수 있을 것이다.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는 지식 사회학의 대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학자들이다.
과학 지식이 과학계의 내적 질서에 따라서만 생산되는 ‘순수한 지식’이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그때그때 새롭게 구성되는 ‘구성적 지식’임을 주장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과학학계의 지적 흐름을 주도해 왔다.
특히 1990년대를 뜨겁게 달군 과학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 사이의 논쟁인 ‘과학 전쟁’에서 인문·사회학 진영의 대표 주자로 활약한 바 있다.
실험실과 학회 같은 과학자 사회의 내밀한 속살을 파헤친 것뿐만 아니라, 쿼크 이론 같은 ‘순수 이론’조차 과학자 사회의 이해 관계와 권력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 준 연구로 유명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 성과 중 일부를『골렘: 과학에 대해 모두가 알아야 할 것』(국내 번역서 부제: 과학의 뒷골목)과 『확대된 골렘: 기술에 대해 당신이 알아야 할 것』(국내 미출간) 같은 책으로 펴냈다.
의학계에 과학 사회학의 메스를 겨눈 이 책 『닥터 콜렘』은 『골렘』 시리즈의 최신작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의료와 의학의 문제를 지식 사회학의 문제로 다룬다.
다시 말해 “의료 지식이란 무엇인가? 의료 지식은 과학 지식과 어떤 관계인가? 의료 지식은 얼마나 확실한가? 누가, 어떤 상황에서 그러한 지식을 소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지식을 얼마나 신뢰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의료/의학에서 ‘전문성’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형성되는지 해명해 나간다.
결국 의학/의료의 전문성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만들어질 것임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의학은 골렘일 뿐, 의료/의학은 사회적 협상의 산물이다!
유대 교 신화에 등장하는 골렘은 진흙과 물로 빚고 주문을 걸어 사람의 형체를 갖도록 만든 피조물이다.
골렘은 사람의 명령을 따르고 일을 대신 해 주며 적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도 있지만 통제를 받지 않으면 주인을 파괴할 수도 있다.
…… 그러나 골렘 과학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 비난하면 안 된다.
그 실수는 바로 우리가 저지른 실수이기 때문이다.
--해리 콜린스, 트레버 핀치

유대 전설에서 유래한 골렘은 인간이 만들었으되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지도 모르는 “서투른 피조물”을 상징한다.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는 『골렘』 시리즈에서 ‘골렘’을 과학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하며 과학을 “신비주의를 타파하는 기사”로 믿는 과학 낙관론자들의 과학 찬양과, 과학을 “자본가와 관료의 꼭두각시”로 보는 과학 비관론자들의 일방적 비판을 모두 공격한다.
『닥터 골렘』은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상에서 의료/의학 역시 ‘골렘’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8개 장(1장 「플라시보 효과: 의학의 심장부에 뚫린 구멍」, 2장 「가짜 의사: 현장에서 진짜로 가장하기」, 3장 「편도 절제 수술: 진단과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4장 「비타민 C와 암: 대체 의료와 소비자의 문제」, 5장 「만성 피로 증후군: 존재하지 않는 질병의 침투」, 6장 「심폐 소생술: 죽음에 저항하기」, 7장 「에이즈 활동가 일반인 전문성의 미래」, 8장 「백신 접종: 개인과 공동체의 긴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의학/의료이라는 골렘이 한국의 존엄사 논쟁처럼 삐거덕거리는 순간을 포착해 낸다.

플라시보 효과 문제, 가짜 의사 문제, 비타민 C가 암 치료제인가를 둘러싼 논쟁, 에이즈 치료약 임상 실험을 둘러싼 의사들과 환자 공동체의 갈등 같은 현대 의학의 독특한 사건들 속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돌리면서, 개인을 위해 질병을 치료하는 것과, 공동체를 위해 질병을 이해하는 게 결코 같은 게 아님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의학이라는 전문 지식을 독점한 의사와, 자신의 병과 고통에 대해 유일한 보고자이자, 치료의 대상인 환자와 그 보호자라 할 수 있는 시민 사회의 갈등과 협상을 통해 의료/의학의 ‘전문성’이 형성됨을 보여 준다.

의학의 심장부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1990년대 초반 앳킨스라는 이름의 의사가 자격증을 위조한 가짜 의사임이 밝혀졌다.
1961년부터 무려 30년간 일반의로서 활동하던 그는 동명 이인에게 수여된 진짜 의사 자격증의 사본과 위조된 추천장을 가지고 의사 생활을 했다.
그는 독특한 처방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그 어떤 환자도, 그 어떤 의사도 30년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단, 한 번 그의 독특한 처방 중 가장 악명 높은 인후 감염에 비듬 예방 샴푸를 치료제로 쓰라는 처방을 약사가 지역 가정의 위원회에 문제 제기해 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었다.
앳킨스 박사를 조사한 전문의 조사팀은 앳킨스가 살짝 실력 없는 의사처럼 보이기는 한다는 보고는 했지만, 가짜 의사라는 것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이 조사 후에도 앳킨스는 의사 행세를 계속했고, 심지어 인후 감염에 비듬 예방 샴푸를 사용하라는 처방을 다른 의사(정식 자격을 가진 진짜 의사)들도 받아들이는 일이 벌어졌다.
앳킨스는 결국 가짜 의사임이 탄로 나는 데 그것은 결코 의학적 오류나 의료 사고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원한을 품은 가족 중 한 사람이 투서를 했기 때문이다.
-가짜 의사 ‘닥터 앳킨스’의 사례

“실제 수련 외과의가 처음 병원에 오면 거의 하는 일이 없습니다.
나중에 내가 마취 의사였을 때 유심히 관찰해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 18세 된 고등학생을 데려다가 이 일을 맡기고 1주일쯤 가르치면 5년 동안 훈련을 받은 수련 외과의만큼 조수 역할을 잘할 겁니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하나의 단계에 불과하지요.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한 중간 단계 말입니다.” -의대를 중퇴하고 가짜 자격증으로 병원에 들어온 ‘닥터 도널드’의 고백

저자들은 의료/의학계가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로, 플라시보 효과를 둘러싼 논쟁과 가짜 의사 문제를 언급한다.
플라시보 효과 문제가 의료/의학의 치료와 신약의 개발과 임상 실험이 언제나 실험을 하는 의사나 실험 대상이 되는 환자의 욕망과 환경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주는
이론적인 문제라면, 가짜 의사 문제는 의사들의 전문성과 그것을 검증하는 시스템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구체적인 문제이다.

저자들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미국과 영국에서 발견된 가짜 의사들의 사례 약 130건을 분석해, 상식적인 추정과는 달리, 의료상의 실수로 인해 발각되는 가짜 의사들의 수가 상당히 적으며 의료/의학의 시스템 자체가 가진 불확실성이 가짜 의사들을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의료/의학의 과학성을 담보하기 위해 마련되어 있는 무작위 표본 추출 임상 실험 방식과, 한 가지 질병에 대한 다양한 치료 방식의 병용과, 신참내기 의사가 숙련의가 될 때까지 병원 구성원들이 관대하게 봐주고 도와주고 가르쳐 주는 정당한 관행이 의료/의학계의 심장부에 오히려 구멍을 뚫고 있다는 역설적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줌으로써, 의료적 전문성이라는 게 불안한 토대 위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러한 의료/의학계 심장부에 뚫려 있는 불확실성의 구멍은 환자와 의사, 의료/의학계와 사회의 갈등을 야기한다.
갈등의 양태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는 의료/의학계 밖의 사람들이 의료/의학계에 문제 제기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저자들은 이 대표적인 사례들을 비타민 C가 암 치료제인가 하는 문제를 둘러싼 한 의학계 밖 과학자와 의료/의학계 사이의 논쟁과,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 증후군’, ‘과민성 대장 증후군’, ‘섬유 근육통’ 같은 신종 질병의 문제를 둘러싼 환자와 의사 ?이의 논쟁을 소개한다.

의사만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사가 아닌 이도 마찬가지이다
1981년 12월 5일 노벨 화학상(1954년)과 노벨 평화상(1962년)을 수상한 위대한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의 아내 애바 폴링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암 진단을 받은 지 5년 뒤의 일이었다.
암 진단을 받은 후 애바 폴링은 분자 교정 의학(인체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분자들의 양을 조정함으로써 신체 건강 상태를 조정할 수 있다는 폴링의 의학 이론)을 주장하고 있던 남편 라이너스 폴링의 뜻에 따라, 다른 암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비타민 C(아스코르브산)만 대량으로 섭취하고 있었다.
그녀는 암은 5년 뒤 생존율이 13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기에, 라이너스 폴링은 비타민 C의 약효가 확인되었다고 믿었다.
라이너스 폴링은 비타민 C가 암에 효과가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력, 유명세, 경제력, 과학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결국 비타민 C를 섭취한 암 환자들의 치료 효과가 가짜 약이나 설탕물을 섭취한 암 환자들의 치료 효과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도 폴링은 199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비타민 C가 암 치료제라는 주장이나 분자 교정 의학은 여전히 대체 의료라는 어중간한 세계에서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그러나 논리적인 측면에서 따져 보면, 비타민 C 치료법이 암의 증상을 완화시키고 환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아마 연장시켜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주장이 결정적으로 반박된 적은 없다.
하지만 보통은 가볍게 무시되었을 법한 비타민 C 치료법 주장은 노벨상 2회 수상이라는 거대한 권위의 응원을 받아 가며, 생명을 유지했다.
결국 대체 의학적 주장 중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가고, 가장 오랫동안 진행되었으며, 가장 권위 있는 기관에서 가장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검증한 주장이 되었다.

저자들은 이 사건에서 개인을 위한 치유의 구원과, 공동체를 위한 치유의 과학이 갈등하는 모습을 읽어 낸다.
개인적으로는 비타민 C를 이용해서 치료 효과를 볼 수는 있다고 믿을 수 있고, 그것을 시행할 수는 있지만, 그 믿음을 의료/의학 시스템 전체에 강요하거나 그 실천을 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믿음이 아무리 과학적 내용과 형식은 물론이고, 권위까지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사례도 찾을 수 있다.
환자들의 주장이 의사들의 주장을 압도하고, 새로운 의료/의학 개념과 분과를 창출할 수 있다.
저자들은 곧바로 “여피 독감”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만성 피로 증후군’과 ‘빌딩 증후군’, ‘걸프전 증후군’, ‘반복 사용 긴장성 손상 증후군’, ‘과민성 대장 증후군’, ‘섬유 근육통’ 같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질병들이 환자 공동체의 권익 주장과 투쟁을 통해 의료/의학계의 일부가 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늙은 개에게 재주 가르치기’, 환자가 의사를 가르칠 수 있다!?
우리가 전문가다.
의사나 건강 상담사, 물리 치료사들이 아니라 우리가 전문가인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이 병과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 병에 관해 알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물어보아야 할 대상은 바로 우리다.
--- 환자 권익 보호 단체의 선언 중에서

저자들은 환자들 역시 전문성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한다.
자신의 증상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환자 자신이고, 자신의 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도 알고 있고, 어떤 치료가 잘 듣는지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또 혈압계, 혈당계 같은 기본적인 의료 기기들의 데이터를 의사나 의무 보조사처럼 해석할 수도 있다.

한 의사와 치료 계획을 협상하고 어떤 의사가 나은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심지어는 의사들이 반복적인 작업 환경 속에서 체계적으로 간과하기 쉬운 새로운 증상과 원인을 지적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환자들이 과학의 언어와 방법을 배우면 과학자가 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환자들의 활동이 조직화되어 환자 권익 옹호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여러 사례를 들어 가면 보여 준다.
또 에이즈 치료 사례에서 보듯이 에이즈 환자들이 다른 에이즈 환자들을 보살피고, 의학적 안내를 하는 영역을 벗어나서 의사와 의료/의학계에 새로운 치료법을 제시하고 심지어는 표준적인 임상 시험 방법조차 바꿔 의료 과학의 변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 준다.
이러한 성공은 과학이 자격을 갖춘 과학자들만 할 수 있는 뭔가가 아님을 말해 준다.
일반 시민들은 배관, 목공, 법률, 부동산 등에 전문성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과학 기술에서 적어도 일부 영역에 대해서는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영역에서 그들은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보다 실제적으로 중요한 경험들을 이미 더 많이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그러한 전문성을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에이즈 활동가들이 성취해낼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임상적 죽음과 생물학적 죽음의 차이
생존율은 소생 노력이 갖는 러시안룰렛 같은 측면을 감추고 있다.
‘생존율’이라는 용어는 생명 구조의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동일한 의료 개입이 신경 손상을 일으킬 가능성, 실로 높은 가능성을 얼버무린다.
…… 생존율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우리는 심폐 소생술(CPR)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는 심한 뇌졸중으로 혼수상태에 빠진 가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하는 가슴이 찢어지는 과정을 겪어본 사람들의 딜레마와 동일하다.
--- 본문 중에서

저자들의 과학 사회학적 메스는 의료/의학계가 죽음에 대처하는 방식도 가만두지 않는다.
현대의 어떤 의료/의학도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 의료/의학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조금 비켜가게 할 수 있거나 늦출 수 있는 ‘소생’의 힘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인다.
저자들은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심폐 소생술’이라고 지적해 낸다.
흉부 압박으로 심장 내 혈압을 올려 심장이 정지된 환자를 되살릴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은 1950년대 후반이다.
저자들은 심폐 소생술의 역사를 개괄하면서, 현대 의료/의학이 ‘임상적 죽음’과 ‘생물학적 죽음’을 구분함으로써 치료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주었고, 죽음에 대한 자신들의 발언권을 획득했다고 주장한다.
생물학적 죽음은 살아 있는 생물로서 기능할 수 없게 된 상태를 일컫는다.
뇌사, 식물 인간 등은 생물학적으로 죽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심장과 허파가 뛰고 있는 한 임상적으로는 죽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임상적 죽음과 생물학적 죽음 틈 사이에서 의료/의학계와 새로운 권위와, 치료와 구원을 꿈꾸는 환자들의 희망이 싹트는 것이다.

심폐 소생술 등장 초기, 심폐 소생술의 소생률이 극히 낮았고 실제로는 소생한 사람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료/의학계가 이 기술 개발과 훈련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은 개인을 위한 구원으로서의 의료/의학이라는 측면이 적극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이러한 저자들의 분석은 생물학적 죽음과 임상적 죽음 사이에서 연명 치료의 연장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존엄사 논쟁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의사와 환자들에게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래도 좀 더 과학에 가까운 것을 택하라!
2000년대 초반 영국에서는 풍진(MMR) 백신을 둘러싸고 의료/의학계 및 보건 당국과 일반 국민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유아 사이에서 유행하던 풍진을 예방하는 백신이 아이의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잠정적인 연구 결과와 부모들의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대적인 풍진 백신 접종 거부 운동이 영국 사
회를 휩쓸었다.
1990년대 후반 광우병에 대해 잘못된 대처를 한 영국 정부 당국에 대한 국민들의 뿌리 깊은 불신은 문제를 한층 꼬이게 만들었다.
수많은 방송 토론, 격렬한 데모가 이어졌다.

저자들은 이 사례가 개인의 예방의 원칙(위험한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과 공동체의 예방의 원칙(유행병이 발생하는 것을 미리 막아야 한다.)이 정면 충돌한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의료/의학계의 전문가들은 이 문제 앞에서 무기력했다.
왜냐하면 임상 실험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이나 부모들은 지금 당장의 대답을 원했다.
전문가의
대답은 얻을 수 없는 상태에서 전문성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저자들은 아이를 키우는 저자 자신들이 유사한 문제(아이에게 신체적 위험을 가할 수 있는 전염병 예방 백신 접종)에 대해 어떤 과정을 거쳐 판단을 내리게 되었는지 분석해서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여러 불확실성 중에서 좀 더 불확실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밖에 없었으며, 소문과 과학 사실 사이에 펼쳐진 스펙트럼에서 좀 더 과학 사실에 가까운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판단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계속 껴안고 가야 할 골렘, 의학
대중은 기성 체제에 반대하는 과학 견해의 비중을 가늠해 보고 서로 다른 종류의 과학자들을 분별해내는 법을 알아야만 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대중은 더 많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 필요가 있다.
--- 본문 중에서

저자들은 의료와 의학 역시 과학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골렘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 준다.
우리가 만들었으나, 우리가 잘 통제하지 못하는 서투른 피조물.
그러나 우리는 그 이상을 아직은 만들지 못한다.
그리고 그 골렘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닥터 골렘』은 의료/의학계의 전문성의 윤곽이 불확실함을 보여 주고, 의료/의학계의 전문성을 획득하는 과정이 제도화된 영역 밖에도 무수히 있음을 보여
준다.
환자가 의사를 가르치고, 화학자가 의사들의 교리를 뒤집고, 소수자들이 임상 실험의 표준 체계를 혁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들은 동시에 이러한 불확실성과 갈등이 새로운 전문성을 만들어 가는 역동적인 협상과 소통의 출발점임을 지적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러한 지적 때문에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저자들이 기존의 「골렘」 시리즈에서 하던 주장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과학 지식이 가진 힘과 불확실성이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이렇게 구체적으로 맞부딪치는 분야가 의료/의학 외에 있을까? 저자들은 그 역동적인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구원으로서의 의료와 과학으로서의 의학의 갈등으로, 개인적 치료와 공동체적 이해의 확대의 갈등으로 설명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의료/의학은 과학 중심주의자들이나 일부 의사가 주장하듯, 아무도 건들지 못하는 성스러운 기사도 아니오, 과학 비판가들과 의학 관련 시민 운동가들이 주장하듯, 권력과 자본의 노
예이자 도구도 아님을 명확히 한다.
우리가 계속 껴안고 가야 할 ‘골렘’인 것이다.

과학 구성주의와 지식 사회학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 기술학이 과학과 의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상대주의적 논의로 폄하하는 편향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의료/의학적 전문성이 형성되는 역동적인 메커니즘을 흥미진진하고 시사성 넘치는 사례로 소개하고 분석하는 이 책은 과학 기술학이나 의학에 대한 사회적 접근에 대한 우리 지식 사회의 오해를 불식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우리는 구원 대 과학, 단기적 관점 대 장기적 관점, 개인 대 공동체의 문제라는 대립 구도에서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 결국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이러한 고려 사항들을 깊이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

*의료 전문직과 의학은 반복해서 잘못을 범하게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 일반, 그 중에서도 특히 의학의 본질이다.
의학은 심지어 물리학이나 공학보다 훨씬 더 자주 잘못을 저지를 것이다.
그러나 의학이 잘못을 저지르니까 이를 버려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옳지 않다.
…… ‘의료의 기사’가 빛나는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판금은 삐걱거리고 녹이 슬어 벗겨졌고, 들쭉날쭉한 가장자리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피부가 찢기기도 하며, 검은 무디고 이가 빠져 있다.
따라서 기사에게 접근할 때에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되, 이를 키우고 연마하고 미소도 보여 주어야 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사의 임무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보검은 여전히 허공을 가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09년 07월 06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42쪽 | 544g | 142*214*30mm
- ISBN13 : 9788983711212
- ISBN10 : 89837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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