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식하는 자본주의
Description
책소개
경제는 계속 발전한다는데
왜 삶은 갈수록 고단하고 불안한가
자기 파괴적인 자본주의에 관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인 대화
이 책은 선도적인 사회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와 라엘 예기가 나눈 심도 깊은 대화의 기록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통찰하는 예리한 사유들로 빼곡하다.
저자들은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며, 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비판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정연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사회질서가 점차 자기 포식 행위로 인해 침식되다가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독자들은 낸시 프레이저의 현대적이며 설득력 있는 분석을 만나볼 수 있다.
라엘 예기는 날카로운 질문과 반론들을 통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제3의 논점이나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는 논의로 도약하곤 한다.
자본주의의 본성과 미래, 그리고 오늘날 사회의 핵심 문제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사유의 지평을 확장해줄 것이다.
왜 삶은 갈수록 고단하고 불안한가
자기 파괴적인 자본주의에 관한
가장 현대적이고 지적인 대화
이 책은 선도적인 사회철학자인 낸시 프레이저와 라엘 예기가 나눈 심도 깊은 대화의 기록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통찰하는 예리한 사유들로 빼곡하다.
저자들은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며, 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비판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정연하고 포괄적인 이론을 선보인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사회질서가 점차 자기 포식 행위로 인해 침식되다가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독자들은 낸시 프레이저의 현대적이며 설득력 있는 분석을 만나볼 수 있다.
라엘 예기는 날카로운 질문과 반론들을 통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제3의 논점이나 새로운 영감을 던져주는 논의로 도약하곤 한다.
자본주의의 본성과 미래, 그리고 오늘날 사회의 핵심 문제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사유의 지평을 확장해줄 것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책 속으로
‘거대 이론 작업’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중 위기 경향의 구조적 토대를 하나의 동일한 사회적 총체로서, 즉 자본주의 사회로서 드러낼 필요가 있어요.
마르크스주의의 통찰을 페미니즘, 생태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통찰과 융합시키면서도 각각의 약점은 피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해요.
--- p.34
포드주의가 중심부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의 소비주의를 촉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남성의 피고용노동과 여성의 가사노동이 결합된 반프롤레타리아화된 가계를 통해서였어요.
또한 주변부에서 상품 소비 발전을 억누른 덕분이기도 했고요.
수십억 인구를 공식 경제에서 추방해 자본이 가치를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비공식 회색 지대로 몰아넣음으로써 축적 전략 전체를 새로 구축한 거예요.
--- p.55
기본적인 생각은 어떤 사물을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상품으로 다룰 경우에 그 사물과 우리가 맺는 관계 그리고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가 변한다는 거예요.
비인격화나 무관심이 그런 사례들인데, 이런 변화는 본래의 가치와 대립되는 도구적 가치의 맥락에서 세상과 관계를 맺도록 몰아가죠.
이런 방식으로 시장은 구조화하는 질적 힘을 행사해요.
‘세계관’, 우리 삶의 ‘문법’을 조형하는 거죠.
--- p.62
마르크스는 착취라는 감춰진 장소 밑을 파고들어가서, 제가 ‘수탈’이라 불렀던 훨씬 더 당혹스러운 영역을 발굴하죠.
마르크스의 논증에 직접 의거하되 그가 나아간 곳보다 더 멀리 나아가면, 감춰진 장소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로서 수탈이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수탈이라는 배경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국주의적·인종적 억압이 차지하는 구조적 위상을 분명히 드러내요.
--- p.87
자본주의라는 제도화된 사회질서의 각 구성 요소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으로 구성돼요.
‘정치’와 대조하지 않고는 ‘경제’를 생각할 수조차 없고, ‘재생산’과 대조하지 않고는 ‘생산’을, (인간) ‘사회’와 대조하지 않고는 (비인간) ‘자연’을 생각할 수 없어요.
물론 이 ‘공간들’ 간의 경계선은 역사 속에서 변동하죠.
하지만 이 변동은 단순히 경제·생산·사회가 끝나는 지점, 정치·재생산·자연이 시작하는 지점이 바뀌는 데만 한정되지 않아요.
서로가 맺는 관계에서 각각의 본성이 질적으로 변화하기도 하죠.
--- p.125
외부 관찰자에게 위기로 보이더라도 이는 그 사회 내부의 참여자가 위기로 여기기 전까지는 역사에서 실제 위기로 발현하지 않아요.
오직 결정적인 다수 대중이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버틸 수 없다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야 한다고 결론 내릴 때에만 기존 사회질서의 한계를 넘어서고 중요한 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여는 사회적 행위가 등장해요.
--- p.135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이 겪는 심각한 긴장 탓에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요.
많은 사람이 잔뜩 웅크린 채 정서적·물리적 장벽을 쌓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죠.
연대의 고리가 오그라들고 ‘우리’를 ‘저들’과 분리하는 선이 굳어질 수 있어요.
이것은 적어도, 반동적 포퓰리즘의 현재적 형태 이면에 도사린 충동이에요.
--- p.171
북반구의 소비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여전히 석탄과 석유를 주 연료로 삼다가 이제는 수압파쇄로 얻은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를 보완하죠.
이런 와중에 여기저기에서 재생에너지를 추가하고 있지만, 탄소 발자국 총량은 줄이지 못하고 있어요.
전반적인 결과는 남반구에 지구환경 부담을 다른 곳보다 여전히 더 많이 전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죠.
--- p.187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유리 천장 깨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고,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처럼 페미니즘을 광고에 이용하는 발상이 유행하고 있어요.
고용주들이 인종주의나 젠더 지배를 인종이나 젠더를 이유로 재능을 무시해버리는 인적 자본 낭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효율성과 자본주의적 축적의 장애물로 바라보는 방식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요.
--- p.201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공허감에 관해 말하고, 인간적 연결의 상실을 빈번히 언급해요.
이런 윤리적 비판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내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모두 반드시 진보적이거나 해방적 내용을 정식화한 것은 아니고, 일부는 상당히 보수적·회고적이거나 심지어는 반동적이죠.
--- p.236
자본은 산 노동을 지배하는 적대적 힘으로 변형돼버린 과거 노동의 응결일 뿐이죠.
‘살아 있는’ 인간은 상품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 즉 인간이 복종하는 대상인 바로 그 힘의 생산자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과거는 현재를 지배해요.
--- p.246
자본주의의 규범성은 단일하지 않고 다중적이에요.
자본주의의 모든 주체는 한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규범 조합과 연결돼요.
위기 경향이 폭발해 가시화될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단지 물질적 결핍이나 불안정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규범적 갈등이죠.
어떤 시기에는 이런 갈등이 ‘규범 간 격리’를 통해 완화돼요.
어떤 때에 어떤 ‘영역’에 한해서는 연대주의적 성격을 띠고, 다른 때에 다른 ‘영역’에서는 경쟁적 성격을 띠는 식으로요.
‘정상적’ 시기에는 이런 분할이 유지되죠.
하지만 명백한 위기 시기를 비롯한 다른 시기에는 벽이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다중적 규범성이 정면충돌해요.
--- p.270
자본주의 역사의 모든 축적 체제는 경제와 정치, 생산과 재생산,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고유한 긴장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뤄야만 하죠.
만약 어떤 체제에 버틸 힘이 남아 있다면, 한 시대에 걸쳐 역사적으로 지속할 능력이 있다면, 이는 이런 모순을 완화하거나 책략을 통해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때로는 이 긴장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을 끌어낼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하죠.
--- p.286
이전에 중간계급 백인 여성의 무급 의무였던 저임금 불안정 돌봄 활동을, 지금은 주로 이주민과 유색인이 짊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문제에 중대한 계급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계급이 ‘진짜’ 쟁점이고 인종과 젠더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과잉 단순화된 사고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죠.
오히려 저는 방금 제가 계급에 관해 말했던 내용을 역으로 뒤집은 명제 또한 주장하고 싶어요.
젠더와 인종/민족/국민 차원이 억압된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상태라고 말이죠
--- p.309
저는 이런 투쟁들의 역학 자체에 관한 직접적 관찰을 포함하는, 좀 더 내재적인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고 여전히 확신해요.
이에 따라 우리는 이 운동들의 퇴행적 역학 혹은 비퇴행적 역학을 제시함으로써 각 운동의 해방적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대목에서 위기 분석의 틀이 단서를 제공해줘야 하죠.
--- p.324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모순과 위기의 증상이 사회운동의 동인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비해방적이거나 심지어 퇴행적이라 여겨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미 언급했죠.
이런 운동은 자본주의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적 투쟁의 역학에 속하지만, 이 운동들의 단지 일부만 해방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다수가 상당히 심각하게 반해방적이고 심지어 파시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이에요.
--- p.349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 정책에 그치지 않아요.
이는 또한 역사적 블록을 결집시킴으로써 헤게모니를 달성하려고 분투하는 정치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신자유주의가 선호하는 전략은 신자유주의의 금권적·수탈적 분배 정치를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인정 정치와 연결하는 것이죠.
신자유주의는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에요.
신자유주의의 진보적 지류도 있고, 퇴행적 지류도 있죠.
차이는 인정의 측면에서 나타나요.
두 버전 모두 주로 1%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분배 정치를 고취하지만, 둘 중 하나는 외관상 포용적인 인정 정치와 이 프로그램을 접합하고, 다른 하나는 이를 노골적으로 배제적인 대안과 결합하죠.
반신자유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반동적 신자유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헤게모니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쪽은 특히 신자유주의의 진보적 지류였어요.
--- p.365
트럼프는 소득, 자산, 자원, 기회에 관한 한 “노동계급”의 한 사람이 결코 아니지만, 특정한 아비투스와 생활방식과 관련해 노동계급에게 말을 걸죠.
즉, 트럼프의 호소력은 경제적 불만에 관해 말하는 방식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원의 특정한 카리스마와도 관련되죠.
트럼프는 일종의 ‘하층계급 억만장자’예요.
하층계급의 언어, 태도, 원한 감정을 갖춘 억만장자죠.
그래서 사기꾼처럼만 보이지는 않는 면이 있어요.
--- p.379
지금은 진보적 포퓰리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대항헤게모니 블록을 구축할 기회도 열려 있어요.
평등주의적이고 친노동계급적인 경제적 지향과 포용적이고 비위계적인 인정 정치 지향을 단일한 프로젝트에 결합함으로써, 이 세력 편성은 적어도 노동계급 전체를 단결하게 할 싸움의 기회를 가질 거예요.
--- p.388
노동 대중은 유례없이 확장된 병적 증상, 즉 원한에서 비롯되고 희생양 만들기로 표출되는 혐오에, 한바탕 억압이 휩쓸 때마다 폭발하는 폭력에, 연대가 거의 소멸할 지경에 이르는 사악하고 비정한 세상에 몰두하겠죠.
이런 운명을 피하려면, 신자유주의 경제와 분연히 단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 신자유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 다양한 인정 정치와도 결정적으로 단절해야 해요.
단지 배제적인 혈통민족주의만이 아니라 자유주의-능력주의적 개인주의와도 절연해야 하죠.
다중 위기 경향의 구조적 토대를 하나의 동일한 사회적 총체로서, 즉 자본주의 사회로서 드러낼 필요가 있어요.
마르크스주의의 통찰을 페미니즘, 생태주의, 포스트식민주의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통찰과 융합시키면서도 각각의 약점은 피하는,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이해를 어떻게든 만들어내야 해요.
--- p.34
포드주의가 중심부 국가들에서 노동계급의 소비주의를 촉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남성의 피고용노동과 여성의 가사노동이 결합된 반프롤레타리아화된 가계를 통해서였어요.
또한 주변부에서 상품 소비 발전을 억누른 덕분이기도 했고요.
수십억 인구를 공식 경제에서 추방해 자본이 가치를 엄청나게 빨아들이는 비공식 회색 지대로 몰아넣음으로써 축적 전략 전체를 새로 구축한 거예요.
--- p.55
기본적인 생각은 어떤 사물을 판매하기 위해 생산된 상품으로 다룰 경우에 그 사물과 우리가 맺는 관계 그리고 우리가 자신과 맺는 관계가 변한다는 거예요.
비인격화나 무관심이 그런 사례들인데, 이런 변화는 본래의 가치와 대립되는 도구적 가치의 맥락에서 세상과 관계를 맺도록 몰아가죠.
이런 방식으로 시장은 구조화하는 질적 힘을 행사해요.
‘세계관’, 우리 삶의 ‘문법’을 조형하는 거죠.
--- p.62
마르크스는 착취라는 감춰진 장소 밑을 파고들어가서, 제가 ‘수탈’이라 불렀던 훨씬 더 당혹스러운 영역을 발굴하죠.
마르크스의 논증에 직접 의거하되 그가 나아간 곳보다 더 멀리 나아가면, 감춰진 장소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장소로서 수탈이 눈에 들어와요.
그리고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수탈이라는 배경 이야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국주의적·인종적 억압이 차지하는 구조적 위상을 분명히 드러내요.
--- p.87
자본주의라는 제도화된 사회질서의 각 구성 요소가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공동으로 구성돼요.
‘정치’와 대조하지 않고는 ‘경제’를 생각할 수조차 없고, ‘재생산’과 대조하지 않고는 ‘생산’을, (인간) ‘사회’와 대조하지 않고는 (비인간) ‘자연’을 생각할 수 없어요.
물론 이 ‘공간들’ 간의 경계선은 역사 속에서 변동하죠.
하지만 이 변동은 단순히 경제·생산·사회가 끝나는 지점, 정치·재생산·자연이 시작하는 지점이 바뀌는 데만 한정되지 않아요.
서로가 맺는 관계에서 각각의 본성이 질적으로 변화하기도 하죠.
--- p.125
외부 관찰자에게 위기로 보이더라도 이는 그 사회 내부의 참여자가 위기로 여기기 전까지는 역사에서 실제 위기로 발현하지 않아요.
오직 결정적인 다수 대중이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버틸 수 없다고,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야 한다고 결론 내릴 때에만 기존 사회질서의 한계를 넘어서고 중요한 제도 변화의 가능성을 여는 사회적 행위가 등장해요.
--- p.135
오늘날 사회적 재생산이 겪는 심각한 긴장 탓에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어요.
많은 사람이 잔뜩 웅크린 채 정서적·물리적 장벽을 쌓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죠.
연대의 고리가 오그라들고 ‘우리’를 ‘저들’과 분리하는 선이 굳어질 수 있어요.
이것은 적어도, 반동적 포퓰리즘의 현재적 형태 이면에 도사린 충동이에요.
--- p.171
북반구의 소비는 에너지 집약적이고, 여전히 석탄과 석유를 주 연료로 삼다가 이제는 수압파쇄로 얻은 석유와 천연가스로 이를 보완하죠.
이런 와중에 여기저기에서 재생에너지를 추가하고 있지만, 탄소 발자국 총량은 줄이지 못하고 있어요.
전반적인 결과는 남반구에 지구환경 부담을 다른 곳보다 여전히 더 많이 전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죠.
--- p.187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유리 천장 깨기 캠페인이 벌어지고 있고, ‘유나이티드 컬러스 오브 베네통’처럼 페미니즘을 광고에 이용하는 발상이 유행하고 있어요.
고용주들이 인종주의나 젠더 지배를 인종이나 젠더를 이유로 재능을 무시해버리는 인적 자본 낭비로 간주할 수 있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를 효율성과 자본주의적 축적의 장애물로 바라보는 방식도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요.
--- p.201
오늘날 많은 이들이 공허감에 관해 말하고, 인간적 연결의 상실을 빈번히 언급해요.
이런 윤리적 비판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내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모두 반드시 진보적이거나 해방적 내용을 정식화한 것은 아니고, 일부는 상당히 보수적·회고적이거나 심지어는 반동적이죠.
--- p.236
자본은 산 노동을 지배하는 적대적 힘으로 변형돼버린 과거 노동의 응결일 뿐이죠.
‘살아 있는’ 인간은 상품의 생산자일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 즉 인간이 복종하는 대상인 바로 그 힘의 생산자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과거는 현재를 지배해요.
--- p.246
자본주의의 규범성은 단일하지 않고 다중적이에요.
자본주의의 모든 주체는 한 가지 이상의 영역에서 살아가고,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규범 조합과 연결돼요.
위기 경향이 폭발해 가시화될 때,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은 단지 물질적 결핍이나 불안정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규범적 갈등이죠.
어떤 시기에는 이런 갈등이 ‘규범 간 격리’를 통해 완화돼요.
어떤 때에 어떤 ‘영역’에 한해서는 연대주의적 성격을 띠고, 다른 때에 다른 ‘영역’에서는 경쟁적 성격을 띠는 식으로요.
‘정상적’ 시기에는 이런 분할이 유지되죠.
하지만 명백한 위기 시기를 비롯한 다른 시기에는 벽이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다중적 규범성이 정면충돌해요.
--- p.270
자본주의 역사의 모든 축적 체제는 경제와 정치, 생산과 재생산, 인간 사회와 비인간 자연 사이에서 발생하는 시스템의 고유한 긴장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다뤄야만 하죠.
만약 어떤 체제에 버틸 힘이 남아 있다면, 한 시대에 걸쳐 역사적으로 지속할 능력이 있다면, 이는 이런 모순을 완화하거나 책략을 통해 지연시킬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때로는 이 긴장에서 뭔가 긍정적인 것을 끌어낼 방법을 찾아내기까지 하죠.
--- p.286
이전에 중간계급 백인 여성의 무급 의무였던 저임금 불안정 돌봄 활동을, 지금은 주로 이주민과 유색인이 짊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문제에 중대한 계급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계급이 ‘진짜’ 쟁점이고 인종과 젠더는 부수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과잉 단순화된 사고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니죠.
오히려 저는 방금 제가 계급에 관해 말했던 내용을 역으로 뒤집은 명제 또한 주장하고 싶어요.
젠더와 인종/민족/국민 차원이 억압된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상태라고 말이죠
--- p.309
저는 이런 투쟁들의 역학 자체에 관한 직접적 관찰을 포함하는, 좀 더 내재적인 접근법이 있을 수 있다고 여전히 확신해요.
이에 따라 우리는 이 운동들의 퇴행적 역학 혹은 비퇴행적 역학을 제시함으로써 각 운동의 해방적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대목에서 위기 분석의 틀이 단서를 제공해줘야 하죠.
--- p.324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모순과 위기의 증상이 사회운동의 동인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비해방적이거나 심지어 퇴행적이라 여겨질 수 있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룰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이미 언급했죠.
이런 운동은 자본주의에 의문을 던지는 사회적 투쟁의 역학에 속하지만, 이 운동들의 단지 일부만 해방적이지 않은 게 아니라 다수가 상당히 심각하게 반해방적이고 심지어 파시즘적이거나 근본주의적이에요.
--- p.349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 정책에 그치지 않아요.
이는 또한 역사적 블록을 결집시킴으로써 헤게모니를 달성하려고 분투하는 정치 프로젝트이기도 해요.
신자유주의가 선호하는 전략은 신자유주의의 금권적·수탈적 분배 정치를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인정 정치와 연결하는 것이죠.
신자유주의는 거대한 덩어리가 아니에요.
신자유주의의 진보적 지류도 있고, 퇴행적 지류도 있죠.
차이는 인정의 측면에서 나타나요.
두 버전 모두 주로 1%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분배 정치를 고취하지만, 둘 중 하나는 외관상 포용적인 인정 정치와 이 프로그램을 접합하고, 다른 하나는 이를 노골적으로 배제적인 대안과 결합하죠.
반신자유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반동적 신자유주의 세력을 물리치고 헤게모니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쪽은 특히 신자유주의의 진보적 지류였어요.
--- p.365
트럼프는 소득, 자산, 자원, 기회에 관한 한 “노동계급”의 한 사람이 결코 아니지만, 특정한 아비투스와 생활방식과 관련해 노동계급에게 말을 걸죠.
즉, 트럼프의 호소력은 경제적 불만에 관해 말하는 방식과 관련될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원의 특정한 카리스마와도 관련되죠.
트럼프는 일종의 ‘하층계급 억만장자’예요.
하층계급의 언어, 태도, 원한 감정을 갖춘 억만장자죠.
그래서 사기꾼처럼만 보이지는 않는 면이 있어요.
--- p.379
지금은 진보적 포퓰리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대항헤게모니 블록을 구축할 기회도 열려 있어요.
평등주의적이고 친노동계급적인 경제적 지향과 포용적이고 비위계적인 인정 정치 지향을 단일한 프로젝트에 결합함으로써, 이 세력 편성은 적어도 노동계급 전체를 단결하게 할 싸움의 기회를 가질 거예요.
--- p.388
노동 대중은 유례없이 확장된 병적 증상, 즉 원한에서 비롯되고 희생양 만들기로 표출되는 혐오에, 한바탕 억압이 휩쓸 때마다 폭발하는 폭력에, 연대가 거의 소멸할 지경에 이르는 사악하고 비정한 세상에 몰두하겠죠.
이런 운명을 피하려면, 신자유주의 경제와 분연히 단절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 신자유주의 경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 다양한 인정 정치와도 결정적으로 단절해야 해요.
단지 배제적인 혈통민족주의만이 아니라 자유주의-능력주의적 개인주의와도 절연해야 하죠.
--- p.400
출판사 리뷰
“두 명의 저명한 학자가 펼쳐내는
매력적이고 면밀한 대화”
_데이비드 하비, 도시지리학자
이 모든 계급통은 다 무엇인가
일상에서 자본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거의 의식되지 않지만, 문득 날카롭게 감지될 때가 있다.
고소득자의 뉴스 기사, 동료의 더 높은 연봉, 지인의 자산 증식 등의 소식을 접했을 때가 그러하다.
왜 어떤 사람은 많이 벌고, 어떤 사람은 적게 버는가.
아무리 운과 능력에 차이가 있다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부의 불평등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한번쯤은 분배 정의를 떠올리며 이른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전형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훌쩍 넘어서고자 한다.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론화하여, 포괄적이고 섬세한 자본주의 비판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당연하게도 이론적 유희가 아닌,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바탕한 다양한 실천의 모색이다.
이제까지 분배 정의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갇혀 있던 자본주의 비판이 저자들의 이론 작업을 통해 돌봄, 비인간 자연, 공적 정치 등으로까지 확장된다.
두 저자는 비판 이론의 전통에 있는 저명한 학자들로,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독보적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잘 알려져 있고, 라엘 예기는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제자로 비판 이론 제4세대의 촉망받는 학자다.
이 둘이 어우러지는 대화는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통찰하는 예리한 사유들로 빼곡하다.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며, 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현실을 통찰하는 비판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정연한 이론을 선보인다.
자본주의의 감춰진 장소들과
자기 파괴적인 탐욕의 질주를
선명히 드러내는 지적 대화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질서’로 정의하며, 특히 그것이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분배만을 다루는 협소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재생산, 자연, 공적 권력, 인종적 위계 등 다양한 배경 조건 위에 성립한다.
경제적 이윤 축적은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값싸게 취해온 자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통한 수탈, 공적 정치 체계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편, 라엘 예기는 자본주의를 ‘삶의 형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경제적 구조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실천, 규범, 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한다.
예기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삶을 어떻게 왜곡하고 소외시키는지를 분석한다.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을 기능주의적 관점, 도덕적 관점, 그리고 삶의 형태적 관점으로 나눠 검토하면서, 이 모든 층위가 종합될 때 비로소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경계투쟁’이다.
자본주의는 전경과 배경을 ‘분리’하고, 전경이 배경에 ‘의존’하면서도, ‘책임을 부인’하고, 결국 배경을 ‘불안정화’한다.
이때 전경은 임금노동과 시장경제라는 표면적 질서이고, 배경은 그 전경이 의존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무시하는 사회적 기반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사회질서를 전경과 배경의 메커니즘으로 갉아먹으며 포식하다가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돌봄의 위기, 생태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인종적 갈등은 모두 이 경계투쟁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복합위기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가 폭로하는 균열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프레이저가 마르크스와 폴라니의 위기론을 통합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과 노동의 착취 관계를 통해 위기를 분석했다면, 폴라니는 노동·토지·화폐를 시장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시도가 사회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프레이저는 두 이론을 이어, 자본주의가 계급투쟁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맺는 긴장에서 위기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때 계급투쟁은 물론, 성별, 인종, 생태, 정치적 갈등까지 모두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이해된다.
“통제 불능으로 기울어진 세상에 꼭 필요한,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사유”
_안드레아스 말름, 정치생태학자
이 책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낸시 프레이저의 자본주의 논의를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장기적인 대규모 사회 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오래도록 현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저작이다.
특히 라엘 예기는 꼼꼼하고 날카롭게 질문과 반론을 제기하여 프레이저의 논의를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펼쳐낸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의 관한 프레이저의 저작 중에서도 완성형의 사상을 간직하는 동시에,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세하고 생생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학계 연구자에게는 물론, 비판 이론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도 적합하다.
학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저작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의 복합적 위기를 이해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프레이저의 다른 저작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이론을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처음 이 두 명의 학자를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길잡이 삼아 21세기 비판이론의 최전선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이고 면밀한 대화”
_데이비드 하비, 도시지리학자
이 모든 계급통은 다 무엇인가
일상에서 자본주의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거의 의식되지 않지만, 문득 날카롭게 감지될 때가 있다.
고소득자의 뉴스 기사, 동료의 더 높은 연봉, 지인의 자산 증식 등의 소식을 접했을 때가 그러하다.
왜 어떤 사람은 많이 벌고, 어떤 사람은 적게 버는가.
아무리 운과 능력에 차이가 있다 해도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부의 불평등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한번쯤은 분배 정의를 떠올리며 이른바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이런 전형적인 자본주의 비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이를 훌쩍 넘어서고자 한다.
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론화하여, 포괄적이고 섬세한 자본주의 비판을 수행하려는 것이다.
그 목적은 당연하게도 이론적 유희가 아닌, 자본주의적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에 바탕한 다양한 실천의 모색이다.
이제까지 분배 정의의 틀 안에서 협소하게 갇혀 있던 자본주의 비판이 저자들의 이론 작업을 통해 돌봄, 비인간 자연, 공적 정치 등으로까지 확장된다.
두 저자는 비판 이론의 전통에 있는 저명한 학자들로,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커다란 질문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한다.
낸시 프레이저는 독보적인 자본주의 관점으로 잘 알려져 있고, 라엘 예기는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의 제자로 비판 이론 제4세대의 촉망받는 학자다.
이 둘이 어우러지는 대화는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위기들을 통찰하는 예리한 사유들로 빼곡하다.
자본주의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고들며, 왜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현실을 통찰하는 비판적 접근을 할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정연한 이론을 선보인다.
자본주의의 감춰진 장소들과
자기 파괴적인 탐욕의 질주를
선명히 드러내는 지적 대화
프레이저는 자본주의를 단순한 경제 체제가 아니라 ‘사회질서’로 정의하며, 특히 그것이 제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생산과 분배만을 다루는 협소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재생산, 자연, 공적 권력, 인종적 위계 등 다양한 배경 조건 위에 성립한다.
경제적 이윤 축적은 여성의 무급 돌봄노동, 값싸게 취해온 자연, 제국주의와 인종주의를 통한 수탈, 공적 정치 체계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편, 라엘 예기는 자본주의를 ‘삶의 형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는 경제적 구조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 실천, 규범, 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한다.
예기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자율성과 공동체적 삶을 어떻게 왜곡하고 소외시키는지를 분석한다.
그녀는 자본주의 비판을 기능주의적 관점, 도덕적 관점, 그리고 삶의 형태적 관점으로 나눠 검토하면서, 이 모든 층위가 종합될 때 비로소 자본주의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는 ‘경계투쟁’이다.
자본주의는 전경과 배경을 ‘분리’하고, 전경이 배경에 ‘의존’하면서도, ‘책임을 부인’하고, 결국 배경을 ‘불안정화’한다.
이때 전경은 임금노동과 시장경제라는 표면적 질서이고, 배경은 그 전경이 의존하면서도 체계적으로 무시하는 사회적 기반을 말한다.
자본주의는 자신이 스스로 수립한 사회질서를 전경과 배경의 메커니즘으로 갉아먹으며 포식하다가 결국 위기에 처하게 된다.
돌봄의 위기, 생태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 인종적 갈등은 모두 이 경계투쟁 속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복합위기는 개별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가 폭로하는 균열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프레이저가 마르크스와 폴라니의 위기론을 통합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자본과 노동의 착취 관계를 통해 위기를 분석했다면, 폴라니는 노동·토지·화폐를 시장화하려는 자본주의의 시도가 사회적 반발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프레이저는 두 이론을 이어, 자본주의가 계급투쟁뿐 아니라 사회 전체와 맺는 긴장에서 위기가 발생한다고 본다.
이때 계급투쟁은 물론, 성별, 인종, 생태, 정치적 갈등까지 모두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이해된다.
“통제 불능으로 기울어진 세상에 꼭 필요한,
냉철하면서도 열정적인 사유”
_안드레아스 말름, 정치생태학자
이 책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주로 낸시 프레이저의 자본주의 논의를 중심에 두고 진행된다.
장기적인 대규모 사회 이론을 다루고 있는 만큼, 오래도록 현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저작이다.
특히 라엘 예기는 꼼꼼하고 날카롭게 질문과 반론을 제기하여 프레이저의 논의를 더욱 정교하고 치밀하게 펼쳐낸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의 관한 프레이저의 저작 중에서도 완성형의 사상을 간직하는 동시에, 다른 책에서는 보지 못했던 자세하고 생생한 논의를 담고 있다.
이 책은 학계 연구자에게는 물론, 비판 이론에 처음 입문하는 독자에게도 적합하다.
학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저작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의 복합적 위기를 이해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사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다.
프레이저의 다른 저작을 이미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녀의 이론을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처음 이 두 명의 학자를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길잡이 삼아 21세기 비판이론의 최전선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것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9월 15일
- 쪽수, 무게, 크기 : 440쪽 | 570g | 140*210*27mm
- ISBN13 : 9791189336875
- ISBN10 : 1189336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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