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112069","title":"줬으면 그만이지","description":"\u003ccenter\u003e\u003cdiv style=\"text-align:center\"\u003e\u003cimg src=\"https:\/\/tmgdisk01.cafe24.com\/images\/vs\/4172\/sv\/3jYEEtBfS7tWSyUDFxOl3tRPXMImAW.png?v=1765125330\" style=\"max-width:100%;max-height:10px\"\u003e\u003c\/div\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u003e\n\u003cdiv style=\"text-align:center;font-size:30px;font-weight:bolder;line-height:1.6em\"\u003e줬으면 그만이지\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border-bottom:1px;border-bottom-style:dotted;border-color:;padding-bottom:20px\"\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 align=\"center\" width=\"100%\"\u003e\u003ctbody style=\"border:0px\"\u003e\n\u003ctr\u003e\u003ctd align=\"center\" style=\"line-height:1.2em;text-align:center;font-size:18px;color:black;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n\u003ctr\u003e\u003ctd style=\"text-align:center\"\u003e\u003cimg src=\"https:\/\/image.yes24.com\/goods\/116433040\/XL\" style=\"max-width:100%;height:auto\"\u003e\u003c\/td\u003e\u003c\/tr\u003e\n\u003c\/tbody\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split_style6}padding-top:20px;padding-bottom:20px\"\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font-size:16px;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Description\u003c\/div\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word-break:break-all;font-size:14px;line-height:1.6em;\"\u003e\n\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책소개\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u003e “이만큼 베푼 사람은 많지만\u003cbr\u003e이만큼 드러내지 않은 이는 없다”\u003cbr\u003e\u003cbr\u003e20대 중반부터 50년 넘게 이어온 \u003cbr\u003e기대 없이 베풀고 대가 바라지 않는 삶\u003cbr\u003e선한 영향력 절로 넓혀가는 김장하 바이러스 \u003cbr\u003e도대체 무엇이 이런 삶을 가능하게 했을까\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김장하 선생의 허락을 받았느냐”는 말이었다.\u003cbr\u003e하지만 선생은 허락한 적이 없다.\u003cbr\u003e선생은 그동안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비롯한 여러 공적인 단체에 몸을 담고 공적인 활동을 해왔다.\u003cbr\u003e따라서 선생은 공인(公人)에 준(準)하는 인물을 취재하겠다는데, 그것까지 못하게 막을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u003cbr\u003e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u003cbr\u003e찾아오는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선생의 약점(?)을 공략했을 뿐이다.\u003cbr\u003e그리고 많은 분이 자연스럽게 선생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다.\u003cbr\u003e그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u003cbr\u003e2021년 11월 엠비씨경남 김현지 피디로부터 함께 취재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덕분에 내가 아예 접근하지 못했거나 놓쳤을 것들을 얻어 건진 것도 많았다.\u003cbr\u003e특히 김현지 피디와 강호진 촬영감독, 차선영 작가의 기획력과 섭외력, 취재현장의 순발력에 덕본 게 많다.\u003cbr\u003e\u003cbr\u003e‘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를 취재 과정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쁨이었다.\u003cbr\u003e하남칠 교장은 ‘장학금 돌려주기’ 차원에서 모교 학생들에게 오랜 세월 매년 장학금을 주고 있었고, 본문에 등장하진 않지만 명신고 출신 건축가 박범주(1970~) 씨도 문화예술계에 든든한 후원자로 김장하를 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u003cbr\u003e이 책에 등장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이미 ‘김장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많았다.\u003cbr\u003e이런 선순환이 돌고 돌아 김장하 선생이 꿈꾸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u003cbr\u003e\u003cbr\u003e취재 과정에서 김현지 피디는 만나는 사람마다 “김장하 선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이라는 질문을 던졌다.\u003cbr\u003e‘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호의(好義)와 경의(敬義)의 표본’ ‘남명 조식 선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 다양한 표현이 나왔다.\u003cbr\u003e그런데 내가 가장 공감했던 표현은 ‘이 시대의 강상호 선생’이었다.\u003cbr\u003e극단현장 고능석 대표가 한 말이었다.\u003cbr\u003e대중적으로 강상호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방송용으로는 별로였겠지만, 호의호식할 수 있는 부자임에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세상의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 편에서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섰다는 점에서 가장 닮은 두 사람이었다.\u003cbr\u003e- 작가의 ‘닫는 말’ 중에서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ul\u003e \u003cli\u003e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u003cbr\u003e\u003cspan\u003e미리보기\u003c\/span\u003e\n\u003c\/li\u003e \u003c\/ul\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목차\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여는 말 7\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1부 생애\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취재의 시작 17\u003cbr\u003e이어지는 모임 22\u003cbr\u003e삶의 지표를 정해준 할아버지 32\u003cbr\u003e한약업사 시험 합격 42\u003cbr\u003e아버지와 어머니 47\u003cbr\u003e조용한 소년 김장하 51\u003cbr\u003e사천 석거리의 젊은 한약사 60\u003cbr\u003e도시로 나온 남성당한약방 73\u003cbr\u003e문전성시 79\u003cbr\u003e그 남편에 그 아내 90\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2부 전달식 없는 장학금\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장학사업의 시작 105\u003cbr\u003e투사가 된 장학생들 118\u003cbr\u003e이어지는 우연과 인연 125\u003cbr\u003e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 129\u003cbr\u003e무한한 믿음과 지지 148\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3부 학교 설립과 헌납\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전 재산을 털어 설립한 고등학교 159\u003cbr\u003e교육부 감사와 세무조사를 받다 162\u003cbr\u003e이 학교의 두 가지 불법행위 166\u003cbr\u003e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 177\u003cbr\u003e전교조 해직교사가 없었던 이유 183\u003cbr\u003e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 192\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4부 공동체를 치유하다\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알고 보니 나도 그 돈을 받았네 209\u003cbr\u003e행동하는 시인 박노정과 진주신문 가을문예 215\u003cbr\u003e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 232\u003cbr\u003e지역문화공간 토종서점을 살려내고 241\u003cbr\u003e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기 위해 244\u003cbr\u003e남강을 지키고 지리산을 살리는 일 250\u003cbr\u003e남명학관 건립 비사( 史) 256\u003cbr\u003e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 259\u003cbr\u003e여성평등기금과 농민열사 장례비 271\u003cbr\u003e진주정신과 진주문화를 찾아서 274\u003cbr\u003e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 279\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5부 김장하의 기질\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 287\u003cbr\u003e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 291\u003cbr\u003e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 307\u003cbr\u003e처음으로 화를 낸 이유 310\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6부 줬으면 그만이지\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진정한 보시의 삶이란 321\u003cbr\u003e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 333\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제7부 김장하의 철학\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운명을 바꾸며 살자 341\u003cbr\u003e진주정신에 관한 소고 345\u003cbr\u003e생활신조와 인생관 349\u003cbr\u003e\u003cbr\u003e닫는 말 353\u003cbr\u003e\u003cbr\u003e김장하 선생 약력 357 \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책 속으로\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남성(南星)이라는 그의 호(號)와 남성당한약방이라는 상호의 뜻을 물었다.\u003cbr\u003e“남성이 수를 맡은 별이라고.\u003cbr\u003e목숨 수(壽)자.\u003cbr\u003e남성이 비치는 곳에는 오래 산다는 그런 속설이 있습니다.\u003cbr\u003e할아버지가 지어주신 건데, 남성당을 상호로 쓰고 남성을 아호로도 쓰라고 했어요.\u003cbr\u003e남극노인성이란 별자리를 딴 거지.”\u003cbr\u003e-손자가 오래 살라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주신 겁니까?\u003cbr\u003e“약방에서 지어준 약을 먹고 다들 오래 살라는 뜻이지.\u003cbr\u003e또 그 별은 보일 듯 말듯하면서도 그러나 역할은 한다, 앞에 나서지 말고 항상 제 역할을 하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뜻이지요.”\u003cbr\u003e-할아버지가 그런 깊은 뜻을 가지고 지어주셨구나.\u003cbr\u003e“별빛처럼 빛이 아니지만 뭔가 공헌을 하고 있거든.\u003cbr\u003e하지만 공헌했다는 표를 내지 말고 그렇게 살아라….”\u003cbr\u003e---「취재의 시작」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김장하는 8세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았다.\u003cbr\u003e20세에 사천 석거리에서 남성당한약방을 연 후 사실상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u003cbr\u003e27세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석거리에 모셔 부양했고, 29세에 자신을 길러준 계모의 장례를 치렀다.\u003cbr\u003e30세에는 홀로 된 아버지를 위해 새어머니를 모셔왔고, 42세에 아버지를 보내고 남은 새어머니에게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집을 팔아 노후를 보장해드렸다.\u003cbr\u003e물론 이런 과정에서 아래 동생들을 키우고 시집·장가 보내는 것도 장하의 몫이었다.\u003cbr\u003e\u003cbr\u003e---「아버지와 어머니」중에서 \u003cbr\u003e\u003cbr\u003e“장하는 딸과 아들 결혼식에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어요.\u003cbr\u003e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수많은 사람이 하객으로 참석했는데, 축의금을 받는 창구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u003cbr\u003e참석한 하객들은 최상의 음식을 대접받았지만, 일부 불쾌하게 여기는 이도 있었죠.\u003cbr\u003e자신은 모든 지인의 경조사에 다 참석해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고도 받지 않으니 ‘돈 있다고 유세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요.”\u003cbr\u003e---「조용한 소년 김장하」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김장하는 1992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 서훈을 받게 되었는데 전수식 참석을 거부하여 경남교육청이 난리가 났다.\u003cbr\u003e표면적인 거부 이유는 ‘약방을 비울 수 없어서’였다.\u003cbr\u003e당시 관선 교육감이 ‘내 목이 날아간다’며 사정사정하는 통에 결국 참석은 했으나 두고두고 회자되는 일화다.\u003cbr\u003e2003년 1월에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부산에서 개최한 오찬간담회와 토론회에 1번으로 초청을 받았으나 불참했다.\u003cbr\u003e역시 같은 이유였다.\u003cbr\u003e나도 사람들과 어울려 선생과 몇 번 점심을 먹은 적이 있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 시간이 되면 “손님이 기다린다”며 어김없이 일어섰다.\u003cbr\u003e---「문전성시」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1987년 2월에 제1회 명신고등학교 졸업식이 열렸을 때였다.\u003cbr\u003e키가 그리 크지 않으신 아주머니께서 운집한 학부형들의 뒤쪽에서 앞이 보이지 않아 까치발로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한 교사의 눈에 띄었다.\u003cbr\u003e이사장 부인이셨다.\u003cbr\u003e살며시 다가가 단 위의 자리로 옮기실 것을 권하자 극구 사양하시면서 자기가 여기 온 것을 어디에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셨다.\u003cbr\u003e이윽고 졸업식이 마치자 이사장 부인께서는 조용히 버스를 타러 학교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u003cbr\u003e남편의 필생 사업인 학교의 첫 졸업식에 와 보고 싶은 마음이야 인지상정이겠지만, 행여 누가 보고 폐를 끼칠까 보아 조심하는 모습에서 그들 가족의 마음 씀이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u003cbr\u003e---「그 남편에 그 아내」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습니다.\u003cbr\u003e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u003cbr\u003e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u003cbr\u003e---「헌법재판관 문형배의 경우」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개교 초기 잠시 있었기는 했다.\u003cbr\u003e커다란 책상과 명패, 소파 등이 있는 교실 1개 크기의 이사장실이었다.\u003cbr\u003e처음엔 으례히 그런가 보다 하고 거기서 집무를 봤는데, 한 달 정도 지나 보니 학교 시설이 부족한 데다 이사장이 자리를 차지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u003cbr\u003e김장하는 교장에게 이사장실을 비우라고 했다.\u003cbr\u003e그리고 그 자리를 양호실로 쓰도록 했다.\u003cbr\u003e특별한 행사나 회의가 있는 날 말고는 학교에 자주 가지도 않았다.\u003cbr\u003e이사회도 교장실에서 열었고, 결재할 일이 있으면 서무실에서 했다.\u003cbr\u003e학교에 갈 때도 버스나 자전거를 타고 갔다.\u003cbr\u003e이사장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학생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u003cbr\u003e---「다 있는데 이사장실만 없는 학교」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이사장 퇴임식에는 집사람도 같이 참석했거든.\u003cbr\u003e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놔버리니까 섭섭하제?’ 하고 물어요.\u003cbr\u003e왜 안 그렇겠어요? 서운하지.\u003cbr\u003e그런데 내가 그때 ‘섭섭할 것 하나도 없다.\u003cbr\u003e우리 둘이 만날 때 빈손이었잖아.\u003cbr\u003e지금 이거 내버려도 우리 먹고 살 만큼 남아 있고, 빚진 게 하나도 없는데 뭘 서운할 게 있나.’ 그랬지.”\u003cbr\u003e-속으로는 서운했지만 사모님한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죠?\u003cbr\u003e“그렇지.”\u003cbr\u003e---「100억대 학교를 무상헌납한 까닭」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형평운동가 강상호 선생 묘역’이 있다.\u003cbr\u003e‘백촌강상호지묘(栢村姜相鎬之墓)’라는 묘비 하나만 있었다.\u003cbr\u003e누가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는 묘비였는데, 뒷면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u003cbr\u003e“모진 풍진의 세월이 계속될수록 더욱 그리워지는 선생님이십니다.\u003cbr\u003e작은 시민이.”\u003cbr\u003e‘작은 시민’이 과연 누굴까 궁금했다.\u003cbr\u003e수소문 끝에 김경현(1966~)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전문위원이 1999년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u003cbr\u003e왠지 이 ‘작은 시민’이 김장하 선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u003cbr\u003e김경현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u003cbr\u003e“그걸 도대체 누구한테 듣고 나에게 확인하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 들었는지 그 이야기부터 좀 해보세요.”\u003cbr\u003e“누구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요.\u003cbr\u003e그냥 내 느낌이 아무래도….”\u003cbr\u003e끝내 그의 실토(?)를 받아냈다.\u003cbr\u003e내 감이 맞았다.\u003cbr\u003e김장하 선생이었던 것이다.\u003cbr\u003e---「친일청산과 평등세상을 위하여」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상담소 이사회에 기금이 1억이 있고, 이 기금을 활용하여 여성들 피난시설을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렇게 의논을 드렸죠.”\u003cbr\u003e“아 좋다고, 시설을 하자, 아주 전폭적으로.\u003cbr\u003e그동안 그런 생각하고 있었냐고, 자기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어찌 그런 생각을 다 했냐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셨어요.\u003cbr\u003e다른 이사들이 불평 안 하도록 자기가 방패를 쳐주겠다.\u003cbr\u003e그렇지 않으면 집을 짓기 힘들 거다.\u003cbr\u003e그\u003cbr\u003e래서 김장하 이사장님 아니었으면 이 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u003cbr\u003e---「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이 사진도 그렇고, 저 사진에서도 그렇고 김장하 선생은 항상 끄트머리에 있네요?\u003cbr\u003e“잘 보셨네요.\u003cbr\u003e가운데 자리에 이사장님 자리라고 딱 놔두죠? 사양하세요.\u003cbr\u003e여기서도 제일 끝에 앉아계시죠? ‘아유 나 그런데 안 간다’면서 스스로 구석진 자리에 항상 가세요.\u003cbr\u003e사람들이 막 이렇게 모시는 걸 또 굉장히 싫어하세요.”\u003cbr\u003e-그런 것 같네요.\u003cbr\u003e본인이 돋보이는 걸 싫어하는.\u003cbr\u003e“바로 이런 거에요.\u003cbr\u003e참 지적을 잘 하셨는데, 우리한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시려면 가운데 앉으셔야 돼요 하고 자리를 마련해도 안 앉으셔.”\u003cbr\u003e---「학대받는 여성을 구조하라」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버렸으면 미련없이 버려야지.\u003cbr\u003e줬으면 그만이지.\u003cbr\u003e감사패 그거 뭐하려고….”\u003cbr\u003e9일 오후 5시 경상국립대 행사장.\u003cbr\u003e원래 선생은 원치 않았던 자리였다.\u003cbr\u003e하지만 받는 쪽에서 간곡하게 부탁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참석한 자리였다.\u003cbr\u003e그래서일까? 행사 내내 선생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지만, 표정은 계속 불편해보였다.\u003cbr\u003e그럼에도 예정된 인사말은 A4 용지 1.2매가량을 꼼꼼히 써오셨다.\u003cbr\u003e그 마지막 대목은 이랬다.\u003cbr\u003e“재단 설립 20여 년이 지난 오늘 제대로 이루어 놓은 것은 없고 뒤떨어진 지역문화를 발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u003cbr\u003e이에 남성문화재단을 해산하고 남은 재산을 경상국립대학교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u003cbr\u003e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게 해서 죄송합니다.”\u003cbr\u003e---「수십억 남은 재산 기부하고 60년만에 은퇴」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정치인들은 다 옆에 누구를 배석해가지고 몇 시에 언제 어디서 다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가지고 나오라고 안 하나? 그분은 절대로 거기 나가는 분이 아니고 정치인들 하고는 안 만나는 분이다.\u003cbr\u003e그래서 만나고 싶다면 그냥 한약방으로 찾아가면 된다고 그랬지.”\u003cbr\u003e당시 대통령 후보 보좌역이었던 김성진(1963~ ) 씨는 그런 사실을 보고했고, 노무현 후보는 건너편에 차를 세운 뒤 횡단보도를 건너 남성당한약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u003cbr\u003e약 50분 간 만나고 나온 노무현 후보는 김성진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u003cbr\u003e“참 좋은 분을 만났네.\u003cbr\u003e정말 좋은 분이다.\u003cbr\u003e정치인을 만나 훈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u003cbr\u003e훗날 김장하 선생한테 “왜 훈수를 좀 하지 않으셨어요? 희망이나 바람을 이야기해줄 수도 있었잖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u003cbr\u003e그랬더니 “정치 10단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u003cbr\u003e---「권력과 정치를 멀리하는 이유」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앞서 말했듯이 북한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u003cbr\u003e그러나 이해가 안 된 것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했을 때다.\u003cbr\u003e적어도 김일성 종합대학은 북한에서 최고의 대학이요 세계 100대 대학에 든다니 교수진은 어떻고 시설은 어떠며, 학생들의 열심히 학문 탐구하는 모습이라도 볼 거라 생각했는데 본관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안내한 곳은 김정일 위원장의 김일성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한 이야기로부터 재학생활 연구활동 및 졸업할 때까지의 전시실을 14실이나 돌고나니 김일성 종합대학의 방문은 끝이다.\u003cbr\u003e서운하기가 말할 수 없다.\u003cbr\u003e이번 방문에서 이북에 계시는 형님의 소식을 듣지도 못하고 돌아가자니 마음 한 구석에 또 피가 맺히는 느낌이다.\u003cbr\u003e그래도 이북에는 동토의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 형제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평양을 떠난다.\u003cbr\u003e---「감시받고도 빨갱이 콤플렉스가 없는 노인」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지청장은 굳은 얼굴로 그 잔을 자신이 마셔버렸다.\u003cbr\u003e순간 분위기가 싸늘해졌다.\u003cbr\u003e검사들이 수군거렸다.\u003cbr\u003e“그래서 술판이 깨져버렸지.\u003cbr\u003e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내가 자리를 피했어야 하는데….”\u003cbr\u003e선생이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옆자리에서는 술 권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u003cbr\u003e선생과 마주 앉은 나도 술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u003cbr\u003e이처럼 김장하는 한 번 결심한 일은 확실히 지키는 사람이었다.\u003cbr\u003e그만큼 자기 절제력이 대단했다.\u003cbr\u003e아무리 반가운 사람이 찾아와 점심을 먹더라도 약방 근무시간이 되면 딱 끊고 일어선다.\u003cbr\u003e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화내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u003cbr\u003e김장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최관경 교수도 그랬고, 이용백 명성한약방 원장도 같은 말을 했다.\u003cbr\u003e“김장하 선생이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u003cbr\u003e아무 말도 안 하는 게 화난 것이다.”\u003cbr\u003e---「검사의 폭탄주를 거절한 지역유지」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요새 만 원 어치 봉사를 하면서 고아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백만 원 어치 피알(PR)을 한다든지, 그 봉사의 가치를 되받으려 한다든지, 반대급부를 바라고 봉사를 한다든지, 이런 봉사의 개념에서는 정말 맞지 않는 이 스님의 이야기를 우리는 떠올려 봐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u003cbr\u003e실제 김장하의 삶과 나눔이 이런 걸 철저히 배격하며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u003cbr\u003e대가 없는 나눔, 간섭 없는 지원, 바라는 것도 없고 기대할 것도 없는 보시 이런 걸 실천해온 사람이 김장하였다.\u003cbr\u003e---「진정한 보시의 삶이란」중에서\u003cbr\u003e\u003cbr\u003e한 군데에 다 주지 말고 1억 원씩 나눠 서른네 곳에 나눠주면 어떨까? 모르겠다.\u003cbr\u003e그 서른네 곳을 선정하는 과정은 더 큰 논란과 비판을 불러오지 않았을까 싶다.\u003cbr\u003e김장하 선생한테 자신에 대한 비방과 헛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u003cbr\u003e“나도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u003cbr\u003e그러나 결과를 보면 알잖아.”\u003cbr\u003e-세월이 증명해주는 거라고요?\u003cbr\u003e“예.\u003cbr\u003e그걸 다 증명하려고, 변명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화를 낼 필요도 없었고, 그냥 참고 견디는 거죠.” \u003c\/div\u003e \u003cdiv\u003e---「비방과 험담, 그리고 비판」중에서\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출판사 리뷰\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u003e한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나눔과 베풂 이야기\u003cbr\u003e\u003cbr\u003e가난 속에 일군 부 아낌없이 내놓은 김장하\u003cbr\u003e언론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김장하\u003cbr\u003e베풀고도 내세우지 않는 자세는 어디에서 연유할까?\u003cbr\u003e그이를 본받으려는 100명, 1000명의 김장하 장학생\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를 취재한 기록이다.\u003cbr\u003e책을 보면 김장하는 보통 사람들은 따라 하기 어려운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u003cbr\u003e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한약사로 성공해 대단한 부를 일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u003cbr\u003e선생은 나눔과 베풂을 일상 속에서 실천했다.\u003cbr\u003e20대 젊은 시절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남몰래 장학금을 주었다.\u003cbr\u003e지금까지 선생의 장학금을 받은 사람이 1000명을 웃돈다고 한다.\u003cbr\u003e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세운 사학 명신고등학교는 자리를 잡자마자 바로 국가에 헌납했고 필생의 사업이었던 한약방을 접을 때도 30억 원이 넘는 자산을 국립경상대에 기부했다.\u003cbr\u003e선생의 지원은 교육뿐 아니라 사회·문화·역사·예술·여성·노동·인권 등 정치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이런 얘기들이 한동안은 소문으로만 떠돌았다.\u003cbr\u003e장학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준 사람은 없었다.\u003cbr\u003e형평운동·남성문화재단·진주신문 등 쉽게 노출되는 일조차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커녕 자기 이름이 거명되는 것까지 한사코 꺼렸다.\u003cbr\u003e도움을 받은 사람은 줄줄이 널렸는데 정작 베푼 사람은 보이지 않는 이상한 현상은 50년 남짓 이어졌다.\u003cbr\u003e『줬으면 그만이지』는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이기도 하지만 ‘허락받지 못한 취재기’이기도 하다.\u003cbr\u003e김장하 선생은 본인의 정의로운 베풂을 여태 꽁꽁 숨겨왔다.\u003cbr\u003e보통 사람이라면 열 배 백 배 뻥튀기해 알리고도 남았을 텐데 선생은 그랬다.\u003cbr\u003e이런 선생이 본인에 대한 취재를 허락했을 리가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전직 기자인 김주완 작가는 허락받지 않은 취재를 하면서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u003cbr\u003e지난 30년 동안 기자로 살았지만 이토록 많은 이들로부터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취재 협조를 받은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u003cbr\u003e선생이 베푼 범위가 넓다 보니 겹치는 인연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정의를 위해 선의로 베푼 것이다 보니 아름답게 여기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u003cbr\u003e이렇게 펼쳐지는 취재기는 30년 경력 취재 기자의 남다른 필력이 돋보인다.\u003cbr\u003e본인의 허락이 없었기에 선생의 생애 전체가 일목요연하게 들여다보이지는 않으나 그래도 이런 정도면 어지간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u003cbr\u003e선생의 기부와 나눔과 베풂도 모든 것을 샅샅이 찾아내지는 않았지만 모자라지 않을 만큼은 담아내었다.\u003cbr\u003e게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숨은 이야기도 제법 실려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흥미로워하는 것은 도대체 선생이 왜 그랬을까가 아닐까 싶다.\u003cbr\u003e그렇게 열심히 번 돈을 선생은 왜 그렇게 아낌없이 기부하고 나누고 베풀었을까? 그렇게 세상과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내세우고 싶었을 텐데 어떻게 해서 선생은 시종일관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을까? 이 책은 선생의 행적을 제대로 밝혀놓은 것만으로도 제 몫을 하고 있다.\u003cbr\u003e하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나눔과 베풂을 하면서도 본인은 드러내지 않는 평소 소신과 생활 태도까지 쉽게 풀어놓고 있다.\u003cbr\u003e선생의 소탈한 인간적인 면모와 꾸밈없는 유머감각도 책갈피 여기저기에서 읽은 재미를 더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이런 선생에게 그이를 본받고 배우려는 이들이 100명, 1000명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u003cbr\u003e선생은 장학생들에게 나에게서 받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나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대신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고 했다.\u003cbr\u003e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선순환, 이른바 ‘김장하 바이러스’다.\u003cbr\u003e\n\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n\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padding-top:20px;padding-bottom:20px\"\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font-size:16px;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GOODS SPECIFICS\u003c\/div\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font-size:14px;line-height:1.6em;\"\u003e\n\u003cdiv style=\"width:100%;margin-bottom:5px;line-height:1.6em;font-size:14px\"\u003e- \u003cstrong\u003e발행일 : \u003c\/strong\u003e2023년 01월 01일\u003c\/div\u003e\n\u003cdiv style=\"width:100%;margin-bottom:5px;line-height:1.6em;font-size:14px\"\u003e- \u003cstrong\u003e판형 : \u003c\/strong\u003e반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u003c\/div\u003e\n\u003cdiv style=\"width:100%;margin-bottom:5px;line-height:1.6em;font-size:14px\"\u003e- \u003cstrong\u003e쪽수, 무게, 크기 : \u003c\/strong\u003e359쪽 | 152*225*30mm\u003c\/div\u003e\n\u003cdiv style=\"width:100%;margin-bottom:5px;line-height:1.6em;font-size:14px\"\u003e- \u003cstrong\u003eISBN13 : \u003c\/strong\u003e9791186351543\u003c\/div\u003e\n\u003cdiv style=\"width:100%;margin-bottom:5px;line-height:1.6em;font-size:14px\"\u003e- \u003cstrong\u003eISBN10 : \u003c\/strong\u003e1186351543\u003c\/div\u003e\n\u003c\/div\u003e\n\u003c\/div\u003e\n\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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