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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의 밤
재활의 밤
Description
책소개
★★★ 김도현, 하은빈, 문영민 추천 ★★★
“재활에 대한 한 장애인 당사자의 학제적이고 성찰적인 자기보고서.”
“알거나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지고 만져지기 위해서 이 책을 펼치기를 바란다.”
“장애와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책.”

뇌성마비 장애 당사자이자 당사자연구 분야의
대표적 연구자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규범 밖 움직임, 관계 맺음, 섹슈얼리티, 자립, 삶에 관한 치열한 연구

‘정상적’ 신체의 움직임을 강요받은 ‘재활의 밤’들을 지나,
손상을 지닌 몸으로 세상과 교섭할 방도를 궁리하며 꿈틀댄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자전적 일대기


선천적 경직성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 당사자이자 소아과 의사, 생명과학자인 구마가야 신이치로가 청소년기까지 경험한 재활 치료와 그 이후 자립생활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몸과 장애, 규범과 섹슈얼리티, 자립과 삶에 대해 학제적이고 성찰적으로 탐구한 기록.
장애학·사회학·의학·공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관점으로 장애와 자립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라는 유명한 문장을 쓴 구마가야 신이치로의 첫 자전적 에세이로 제9회 신초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으며, 장애 및 질병의 당사자가 주체가 되는 일본 당사자운동 및 연구에 중요한 영향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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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추천의 글
들어가며

서장 재활 캠프

1장 뇌성마비 체험

1 뇌 속 가상현실
2 긴장하기 쉬운 몸
3 접칼 현상의 쾌락
4 움직임을 받아들여 사람을 다루다

2장 트레이너와 트레이니

1 풀리는 몸
2 응시당하는 몸
3 버려진 몸
4 마음에 개입하므로 몸이 경직된다
5 신체에 대한 개입이 폭력으로 변할 때
6 대학생 트레이너와 함께한 춤

칼럼-뇌성마비 재활의 사회사

3장 재활의 밤

1 석양
2 걷지 않는 아이의 방
3 걷는 아이의 방
4 여자 목욕탕
5 자위에 열중하는 소년

4장 탐닉

1 대비에 빠져들다
2 받아들일 수 없는 섹스
3 규범, 긴장, 관능
4 내게 맞은 여자애

칼럼-규율 훈련과 마조히즘

5장 움직임의 탄생

1 사물과 함께 만들어 내는 움직임
(1) 화장실과 연결되다
(2) 신체 외 협응 구조 아이디어
(3) 전동 휠체어는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
2 사람과 함께 만들어 내는 움직임
(1) 사물과의 협응 구조를 모색하다 - 레지던트 1년 차
(2) 사람과의 협응 구조를 깨닫다 - 레지던트 2년 차
3 '큰 틀의 목표 설정'이 중요한 이유
4 세계에 시선을 쏟고 공유하다
5 서로 돕기에서 폭력으로

칼럼 - 땅바닥과 '풀면서 서로 줍는 관계’

6장 틈에 자유가 깃든다

1 양서류와 파충류의 중간쯤
2 '변의'라는 타자
3 신체에게 구원받다
4 맺고 열고 이어지고
5 쇠퇴를 향해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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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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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열여덟 살까지 매일 재활을 하러 갔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대개 하루 세 번으로 나눠 한 시간씩 재활하는 게 일과였다.
매달 한 번씩은 전문가에게 경과 관찰과 지도를 받으려 옆 동네에 있는 복지센터와 양호학교 로 갔다.
그리고 여름 방학이 되면 재활 강화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산속에 있는 시설로 향했다.

--- p.18

재활 시설에 도착하면 나의 몸은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져 짧은 털실 매트가 깔린 싸늘한 바닥에 놓인다.
나와 세계 사이로 들어와서 다양한 사물과 나를 연결하고 매개해 주는 휠체어가 없어지니, 내 몸은 바닥과 바닥에서 몇 센티미터 이내에 있는 사물이라는 제한된 범위 사이에서만 관계 맺게 된다.
그전까지 관계 맺던 책장이나 책상은 머리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가 있다.
손이 닿지 않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는 천장과 비슷하다.
나는 다시금 ‘2차원의 세계’로 되돌아온 기분이 든다.
그런 상태에서 내 움직임을 줍는 것은 바닥뿐이다.
나는 앞으로 일주일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 바닥과 함께 보내게 될 것이다.
바닥의 온도나 마찰, 습기, 냄새 등을 느끼면서 배를 깔고 엎드려 땅을 기는 포복 전진과 같은 방식으로 스멀스멀 움직일 것이다.
바닥은 이 기묘한 나의 운동을 받아들여 ‘이동’의 형태로 변환시켜 줄 것이다.
나의 운동은 허공을 가르는 무의미한 운동이 되지 않고, 바닥에 의해 의미를 부여받는다.
나의 움직임에 의미를 주는 것은 이 바닥뿐이다.

--- p.20~21

떨어짐 너머에 있는 세계를 나는 잘 안다.
그곳은 예전에 내가 있던 세계다.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것은 열세 살 무렵이다.
그전까지 나는 마치 부착생물처럼 바닥 위 2차원을 기며 움직였다.
다시 2차원의 세계로 떨어진다.
간신히 3차원 세계에 손을 얹은 지금도 내 삶에는 여전히 2차원의 세계로 이어지는 문들이 함정처럼 여기저기 빠끔히 열려 있다.
(…) 그러나 동시에 2차원의 세계는 나에게 그리운 곳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나는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
이 세계에서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바닥에 나를 맡기면 된다.
바닥은 크고 강해서 나를 단단히 안아 준다.
아이처럼 편히 잠들어도 괜찮고, 좋아하는 공상에 빠져 놀아도 괜찮다.
과거의 익숙한 장소로 되돌아왔다는 안도감이 쌓여 간다.
그래서 바닥으로 넘어지는 것은 내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타임슬립이다.

--- p.30~31

그런데 왜 내 몸은 넘어지기 쉬운 것일까? 또 왜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나는 2차원의 세계로 빠져들고 마는 걸까? 이런 의문은 기이하고 유희적인 물음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왜냐니, 네 몸이 뇌성마비라는 장애를 갖고 있으니 당연히 부자유스러운 게 아니겠어?” 이런 어이없어하는 듯한 반문이 들릴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피상적인 설명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뇌성마비’, ‘장애’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나의 경험을 설명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그 알맹이가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내가 경험해 온 것을 생생하고 분명히 재현해 줄 수 있는 말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간 넘어졌고 지금도 넘어지는 나의 경험을 읽는 이가 어렴풋하게나마 함께할 수 있게끔 할, 그런 설명을 이 책에서 쓰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독자 여러분을 끌고 같이 넘어지고 싶은 것이다.

--- p.31~32

우리가 ‘내 몸이 움직이는 감각’을 느끼는 것은 실제로 움직인 몸에서 오는 피드백 정보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움직였는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후부 두정엽 속에 있는 ‘내부 모델internal model’이 수행한 운동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실제로 일어난 운동으로 착각할 뿐이다(이 착각을 ‘거짓 고유감각’이라고 한다).
이처럼 뇌 속에는 신체와 외부 세계를 투영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이를 ‘내부 모델’이라 부른다.
또 실제로 움직였든 아니든 간에 우리의 의식은 내부 모델이 계산으로 만들어 낸 가상현실 속에서 자신의 의사, 운동 그리고 세계의 변화를 체험한다.

--- p.42

이렇게 나는 어릴 적부터 스스로 실행할 수 없는 ‘정상적인 움직임’에 대한 이미지를 내면화해 왔다.
그렇게 산출된 ‘정상적인 움직임’의 이미지와 실제 내 몸의 운동 사이에는 당연히 간극이 있다.
이 틈을 메우고 싶어 하는 주변의 바람 때문에, 나는 어릴 적부터 십수 년에 걸쳐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실행할 수 있도록 재활을 받아야 했다.

--- p.69

트레이너의 움직임은 나의 움직임과 전혀 무관하게 수행되고, 내 몸에서 발산하는 두려움이나 아픔의 신호를 트레이너는 줍지 못한다.
트레이너는 타협할 수 없는 타자이며, 강력한 완력을 가진 타자로서 내 몸에 힘을 휘두른다.
이내 내 몸은 적에게 영토를 점점 빼앗기듯, 트레이너의 힘에 굴복한다.
팔이, 다리가, 허리가 하나둘씩 트레이너의 힘에 패배해 긴장이 훅 빠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접칼 현상 때와 같은 쾌락은 없다.
오히려 팔, 다리, 허리를 내 몸에서 떼어내 트레이너라는 타자에게 넘겨 주는 느낌이다.

--- p.87

몸을 맡기듯 해서 푸는 ‘풀면서 서로 줍는 관계’와 달리, ‘응시하고/응시당하는 관계’와 같은 상황에서는 초조함을 느끼고 몸이 서서히 뻣뻣해진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초조함과 경직의 악순환은 포복 전진 시합 때와 비슷하게 곧 나를 패배의 관능으로 이끄는데, 나의 움직임은 점점 무질서하고 방향성을 잃은 것으로 변한다.
그리고 내 안에 초조함과 경직으로 쌓인 에너지는 어느 선을 넘으면 온몸이 주기적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경련이 되어 허공으로 소멸하고, 나의 신체 내 협응 구조는 단숨에 풀려 몸이 흐물흐물해진다.

--- p.91

아마도 나는 이때 처음으로 관능적인 대비에 어울리는 ‘약하고 작은 나’라는 자아상이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계속 감시하고 조절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는 크게 개의치 않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다른 사람한테 내가 어떻게 보일지 갑자기 신경 쓰기 시작한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 p.158

규범에서 벗어날 것 같은 때에는 몸이 뻣뻣해지고, 규범에서 벗어나면 몸이 풀린다.
이러한 규범을 둘러싼 경직과 이완의 반복 운동에는 관능이 따른다.
우리는 그런 ‘나만의 세계’에 갇혀 끝없이 탐닉하고 있던 것이다.
‘풀면서 서로 줍는 관계’로 열릴 관능을 가져다 줄 타자, 나의 기묘한 움직임을 받아주는 타자는 어디에 있을까…….

--- p.182

개조한 화장실을 본 순간, 내 몸은 서서히 열리는 듯이 움직였다.
마치 내 몸을 새 화장실에 튜닝tuning, 조율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번에는 나를 패배로 몰아넣은 화장실이 이제 내 움직임을 줍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화장실이 내민 손길에 이끌리듯 내 몸은 신체 내 협응 구조를 조금 느슨히 했고, 이에 따라 생긴 놀이가 신체 내 협응 구조의 재구성, 즉 튜닝을 가능하게 했다.
개조 공사로 변모한 화장실에 영향을 받아 내 몸도 변화한 것이다.

--- p.203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을 때 세상을 느끼는 방식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지 않을 때와 완전히 다르다.
다양한 장소로 재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외부세계와의 틈이 작아지는데, 그전까지 나와 무관했던 사물이나 장소가 멀리 있다가 갑자기 가까워진 듯 공간에 대한 거리 감각이 변한다.
운동의 변화량, 나아가 세상이 보이는 방식의 변화량이 커지면서 시간의 흐름도 빨라진 것 같다.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크게 늘면서 나의 신체 이미지도 더 큰 가능성을 지녔다고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전동 휠체어는 나의 몸을 비롯해 세계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 p.222~223

이렇게 완성된 나만의 독창적인 움직임은 종종 보조자의 몸을 필수적인 요소로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나와 보조자 사이에는 강한 신체 외 협응 구조, 즉 팀워크가 성립한다.
예를 들어 채혈할 때 나를 보조하는 데 익숙한 동료는 내 몸이 어떤 움직임 패턴을 갖고 있는지 잘 알아서, 내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내 손끝의 미세한 움직임에 반응해 그 움직임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환자의 팔꿈치를 받치는 손의 위치를 조정한다.
마치 보조자와 나, 두 몸이 확장되어 하나의 커다란 몸처럼 느낄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다.
환자의 팔이라는 동일한 대상을 두고 나와 보조자의 두 몸이 함께 채혈이라는 운동을 수행하려 힘을 합칠 때, 그 순간 내 몸과 보조자의 몸의 경계가 모호해진 듯한 느낌이다.

--- p.237~238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에서 숨통을 틀 수 있는 계기는 큰 틀의 목표를 잠시 제쳐두고서 서로 교감하며 서로의 몸을 알아 가려는, 일종의 관능적인 동인動因이라고 생각한다.
목표 달성에 집착하는 ‘응시하고/응시당하는 관계’보다,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패배하더라도 서로 교감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기쁨을 느끼며 몸이 열리는 ‘풀면서 서로 줍는 관계’를 우선시하는 마음가짐은 서로의 신체 이미지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협응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러면 경직되었던 팀은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하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 목표에 도달할 것이다.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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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오래된 신화인 재활치료를 벗어나
‘정상적’ 신체와 움직임의 규범을 거부하고
타인과 ‘서로 줍고 주워지는 관계’를 맺으며 자립하기까지


저자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출산 과정에서 산소 결핍으로 뇌에 손상을 입어 선천적으로 뇌성마비를 지니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해 참여했던, 유년기를 지배한 기억인 ‘재활 캠프’에서 경험한 고통과 수치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몸과 장애, 자립을 새롭게 정의한다.
재활 캠프에서는 휠체어나 보조 기구를 금지하고 ‘정상적인 움직임’, 즉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학습시켰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몸은 ‘정상적 신체’의 정형적이고 규범적인 움직임을 습득하지 못했다.
성인이 된 후 저자는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모범으로 삼아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발달 과정에 맞춘 혹독하고 고통스러운 재활 훈련과 결별하고 자립생활을 하며 자신만의 움직임과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경험을 자세히 책 속에 담았다.

저자는 쉽게 굳고 뻣뻣해지는 자신의 몸을 운동생리학자 베른슈타인(Nikolai Bernstein)의 ‘신체 내 협응 구조’라는 의학적 개념으로 설명한다.
뇌성마비가 있는 몸은 과도한 신체 내 협응 구조 때문에 감각기관과 운동기관이 조화롭게 동작하지 않고, ‘정상적인 움직임’을 해내지 못한다.
저자는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 자신의 움직임을 보완하기 위해 사물이나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했고, 이를 ‘신체 외 협응 구조’라고 이름 붙였다.
장애를 가진 몸이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해내지 못해도 주변 사물/사람과의 협응이 이루어지면 자립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저자는 ‘정상적인 움직임’이라는 규범에서 벗어나 무용하고 무의미해지는 자신의 움직임을 타자에게 ‘주워지지 못한’ 것이라는 독창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또한 서로 움직임을 ‘줍고’, 서로의 움직임이 ‘주워진’다면 규범에서 벗어난 몸과 움직임으로도 충분히 자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예시로 저자는 혼자 살기 시작한 집에서 화장실을 개조한 일화를 자세히 소개한다.
개조되지 않은 화장실에서는 ‘거부당하는’ 감각을 느낀 반면, 자신의 몸과 움직임에 맞춰 개조된 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화장실이 자신의 움직임을 ‘주워주는’ 경험을 한다.
저자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경험, 병원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했던 경험 등을 통해 장애를 가진 몸이 사물과 적극적으로 타협하며 규범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움직임’을 만들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레지던트 시절 동료와의 협동이나 돌봄을 수행하는 활동지원사와의 협응을 예시로 들며 사물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서로 줍고 주워지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유년 시절 반복되었던 재활치료의 강압적이고 불평등한 과정에 관한 생생한 경험을 풀어내며, 장애를 가진 몸과 그 움직임을 교정하려는 치료적/의학적 관점의 재활치료 현장의 역사와 맥락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날카롭게 비판한다.
또한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 ‘비장애인의 움직임’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세상/타인과 교섭할 방도를 탐구한 치열한 과정이 담겨 있다.

관찰당하는 몸, 패배의 관능, 실금의 자유, 쇠퇴의 경험…
기이하고 생생한 관능과 자유의 장애 정치


재활 캠프에서는 ‘비장애인의 움직임’을 달성하기 위한 규범적인 운동 목표가 설정되고, 트레이너는 훈련을 받는 트레이니의 움직임을 일방적으로 계속 주시했다.
그러다 보니 트레이니 역시 트레이너의 시선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움직임을 실현하려 애쓰게 되었다.
저자는 트레이너와 트레이니의 관계가 ‘서로의 움직임을 풀면서 줍는 관계’가 아니라 ‘응시하고/응시당하는 관계’, ‘가해/피해 관계’로 나아갔다고 설명한다.
트레이니의 몸은 더더욱 긴장하고, 움직이려는 노력은 실패하고, 트레이너는 트레이니의 몸에 강제로 개입하고, 결국 트레이니는 점차 힘을 잃고 무너지며 굴복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반복해서 겪으며 기묘한 쾌감과 관능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가장 주요하게 드러나는 개념은 ‘관능’이다.
저자는 장애를 가진 몸이 큰 힘에 의해 열리거나 풀어져 긴장을 잃을 때 느꼈던 쾌감을 ‘패배의 관능’이라고 명명한다.
그는 재활 캠프와 일상에서 신체에 대한 개입을 경험하며 피학적인 섹슈얼리티를 갖게 되었고, 작고 왜소한 몸집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섭식장애를 앓았음을 고백한다.
또한 이러한 고백 속에서 장애 당사자의 섹슈얼리티를 드러냄과 동시에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관계에서 오는 두려운 관능이 아닌, 상호적이고 협응하며 실패를 받아들이는 관계에서 오는 안전한 관능에 대한 욕망도 보여준다.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의 움직임을 받아들여 주고, 안전하게 무너지고 몸을 맡길 수 있는 대상을 갈망해왔다.

저자가 탈규범적 관능의 예시로 가장 주목하는 것은 그가 재활의 세계를 떠나 자립하기 시작한 후 가장 처음 시도했던 활동인 ‘배변’의 실패, ‘실금’이다.
자신을 도와주는 조력자나 자신의 몸에 맞춰진 화장실이 없는 상태에서 변의를 이기지 못했던 순간,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의 ‘배설’ 개념을 가져오며 굴욕과 황홀감을 묘사하는 기이하고 날것의 서술은 묘한 힘을 가지고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저자는 실금의 순간을 사물 및 사람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상태로 설명하며,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나 자신의 몸에 맞춰진 환경이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들여지고 세상과 다시 연결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게 저자는 ‘규범에서 벗어난 일’, ‘있어서는 안 되는 일’로 규정된 것을 ‘규범에서 벗어났더라도 괜찮은 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인식할 때 생겨나는 자유를 보여준다.

나아가 이러한 해방적인 자유에 관한 인식을 확장해, 나이가 들고 2차 장애가 생겨나며 점차 ‘쇠퇴’하는 몸에 대한 수용과 인정으로 사유를 넓힌다.
장애를 가진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쇠퇴하는 존재이며, 언제까지나 ‘정상적’이고 규범적인 움직임을 수행할 수 없고, 그러므로 더더욱 규범 바깥을 인식하고 주변 환경 및 타인과 적극적으로 협응하며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저자가 경험한 생생한 굴욕과 기묘한 관능에 몰입하고, 세상과 타인을 향한 끊임없는 상호작용 시도에 이입하며, ‘정상적인’ 규범에서 일탈하고 다시 연결되는 자유와 해방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당사자의 시선과 몸에서 이루어지는 ‘당사자연구’,
장애 당사자의 자립과 삶을 가장 급진적으로 탐구하다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장애나 질병 당사자가 의사나 사회복지사에게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능동적으로 자신의 장애와 질병을 연구하고 자립을 고민하는 ‘당사자연구’ 분야의 대표적인 연구자다.
현재 그는 도쿄대학교 첨단과학기술연구센터 교수로 재직하며 신체장애, 정신장애, 발달장애 등의 당사자연구에 힘쓰고 있다.
《재활의 밤》은 그가 당사자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한 첫 저작이다.
한국에서도 비장애중심성에 대한 비판적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으며, 장애학은 진보적 운동과 사상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장애학은 정상성 규범과 배제에 대한 주요한 비판적 관점이며, 상호의존성과 관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지점이다.

장애 운동과 당사자 운동의 앞선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자립과 의존, 정상성과 치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이 책은 장애학에 관심을 가진 한국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재활치료나 활동지원 등 장애 당사자의 곁에서 움직임과 일상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영역에 있는 전문가들에게 급진적이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망가져 있음을 수용하고 주장하고 포용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뇌병변 장애 당사자이자 작가인 일라이 클레어는 《눈부시게 불완전한》에서 이렇게 썼다.
구마가야 신이치로는 정상 규범에서 벗어난 몸과 움직임, 욕망을 가지고 어떻게 사회와 교섭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자신의 경험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장애 당사자가 느낀 비장애중심주의와 그에 저항한 치열한 시도를 마주하게 하고,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해방과 관능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다.
"]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03일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384g | 128*205*16mm
- ISBN13 : 9788972971849
- ISBN10 : 897297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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