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유물론 패러다임
Description
책소개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 세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 요인들을 전경화(foregrounding)하고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은 21세기에 공존의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신유물론 패러다음』은 철학, 정치학, 문학, 문화,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유실된 유물론의 현실을 인식하고 물질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며 인간을 둘러싼 물질적 요소들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탄생했다.
유물론의 갱신, 신유물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각각의 글들은 자연스레 서로 교차하고 공명하며, 이는 신유물론에 대한 패러다임을 무수히 촉발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 요인들을 전경화(foregrounding)하고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은 21세기에 공존의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신유물론 패러다음』은 철학, 정치학, 문학, 문화,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유실된 유물론의 현실을 인식하고 물질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며 인간을 둘러싼 물질적 요소들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탄생했다.
유물론의 갱신, 신유물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각각의 글들은 자연스레 서로 교차하고 공명하며, 이는 신유물론에 대한 패러다임을 무수히 촉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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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론 9
물질성의 힘
신유물론으로 가는 길 위 생기론이라는 행선지 ―제인 베넷 73
비-변증법적 유물론 ―펭 치아 105
물질의 관성과 살의 생성성 ―다이애나 쿨 37
비인격적 물질 ―멜리사 A.
오를리 173
정치적 문제들
페미니즘, 유물론, 그리고 자유 ―엘리자베스 그로츠 205
공포와 자율성의 환상 ―사만다 프로스트 231
경험의 물질성 ―윌리엄 E.
커놀리 259
‘생명 자체’의 정치와 죽어 감의 새로운 방식들 ―로지 브라이도티 291
파괴의 경제
알기 어려운 물질―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레이 초우 319
지향성 물질 ―사라 아메드 337
시몬 드 보부아르―불일치하는 유물론들과 교전하기 ―소니아 크룩스 373
역사 유물론의 유물론 ―제이슨 에드워드 405
역자 해제|신유물론의 현재와 존재-윤리학 427
참고문헌 444
찾아보기 465
글쓴이 소개 477
물질성의 힘
신유물론으로 가는 길 위 생기론이라는 행선지 ―제인 베넷 73
비-변증법적 유물론 ―펭 치아 105
물질의 관성과 살의 생성성 ―다이애나 쿨 37
비인격적 물질 ―멜리사 A.
오를리 173
정치적 문제들
페미니즘, 유물론, 그리고 자유 ―엘리자베스 그로츠 205
공포와 자율성의 환상 ―사만다 프로스트 231
경험의 물질성 ―윌리엄 E.
커놀리 259
‘생명 자체’의 정치와 죽어 감의 새로운 방식들 ―로지 브라이도티 291
파괴의 경제
알기 어려운 물질―개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레이 초우 319
지향성 물질 ―사라 아메드 337
시몬 드 보부아르―불일치하는 유물론들과 교전하기 ―소니아 크룩스 373
역사 유물론의 유물론 ―제이슨 에드워드 405
역자 해제|신유물론의 현재와 존재-윤리학 427
참고문헌 444
찾아보기 465
글쓴이 소개 477
책 속으로
현대 서구문화에서 물질에 대한 지배적인 의식은, 생존의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미적인 표현의 매체로서 변형해서, 그것에 주관적 의미를 부여하는 인간에 의해 작동되는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재료라는 것이었다.
행위성 혹은 의미가 내재적으로 부재하며, 의식에 대해 외생적인(heterogeneous), 무기력한 물질이라는 견해는 고전 과학과 철학에 공고한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저기 바깥의’ 자연 세계를 당연히 본질적으로 주어진 대상들의 집합으로 여기는 자연주의적 태도, 혹은 상식과 일치하며, 그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물질을 이와 다르게, 즉 스스로 변화 가능하며, 개별적이고, 관념적이며, 주관주의적인 영역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는 행위자적 능력과 실존적 의미로 이미 충일해 있는 활기찬 물질성으로서 상상해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우리 현대인들이 이러한 내재하는 생성성을 표현하는 데 어떤 개념적, 혹은 비유적 수단들을 도움으로 삼을 수 있을까? 물활론(animism)이나 종교, 혹은 낭만주의로부터 유래하는 신비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물질의 역동적이고 때로는 저항적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물질화의 과정과 그것의 생성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 p.137
조나단 리어는 마음을 본질적으로 붕괴 경향이 있는 기능으로 묘사하였다.
의식적인 물질은 삶의 압박 아래 놓이기 때문에 파괴되는 경향이 있다.
삶은 단순히 “너무 과도(too much)한 것이다”.
우리는 비인격적 에너지를 주체와 세계라는 안정된 관념으로 추상화하는데, 그러한 에너지가 힐끗 보일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고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한다.
그러한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인 에너지는 우리에게 친밀하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정체를 완전히 식별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와 같이 비인간적인 것을 개인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를 떨게 만들고 뒤흔드는 그러한 과잉은 강도와 흐름을 가진 양적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리어에 의하면 인간의 반복적인 무력함은 내용이 없는 어떤 사건의 반복이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무력감은 너무 많은 에너지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질이 없는 양의 돌출.
만약 실제로 반복이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의 돌파와 파괴를 유의미한 일상의 삶에 주입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 p.196
그렇게 그는 어떤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어서 행동이 중지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여기에서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인물들로 구성된 이 첨단기술의 만화는 연결선이 무리하게 늘어나 있는 빠른 속도의 세계에 붙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점을 제기한다.
이 영화는 메를로퐁티가 암묵적으로 가정한 삶의 속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애착을 탐구하고 갱신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더 진전된 종류의 애착을 개발하고, 우리 내부와 주위에서 너무 쉽게 일어나는 추상적 적의를 물리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존적 적의의 불씨가, 일단 뿌려지면, 파괴적인 사건, 미디어의 광란, 그리고 정치 캠페인에 의해 어떻게 불타오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투자, 소비, 교회 집회, 언론보도, 투표의 패턴, 국가적 우선순위와 같은 제도적 관행에 주입되는지 숙고해 볼 것을 권유받는다.
이 세계에 대해 처음 가졌던 돌봄의 감각이 열려 증폭되는데, 이것은 전술적 수단과 미시정치에 의해 무시되거나 더 강화될 수 있는 감각이다.
--- p.285
요점은 간단하다.
우리가 ‘행위를 함’은 우리가 ‘행위할 수 있음’을 촉발한다.
이것은 ‘함’이 단순히 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행위를 함’이 몇몇 능력들을 확장하고 개방한다.
특정 방향에서의 어떤 ‘확장’이 우리가 다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례로 제한할 것이라 해도 말이다.
우리가 신체의 특정 부분들을 더 많이 활동하게 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동시에 우리가 다른 신체 부분들을 더 적게 활용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적어진다.
그래서 만약 젠더가 우리가 ‘행위를 함’을 모양 짓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양 짓는다.
--- p.368~369
일상적 삶의 실천과 공간의 구조화가 모두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기능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하거나 일상과 공간에 대한 개별적 경험이 획일적(또는 단순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 환원주의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시된 근대성에 대한 끝없이 암울한 전망을 그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현대의 삶을 구성하는 물질적 실천이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실제로 르페브르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 『리듬분석』에서 일상생활의 리듬, 특히 도시 공간의 맥락에 서 리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 점을 추구한다.
여기서 ‘리듬’은 일상의 반복적인 성격을 의미하지만, “무한히 동일한 절대적인 반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반복과 차이의 관계이다.
그것이 일상, 의례, 의식, 축제, 규칙 및 법에 관한 것이라면 반복적인 것에는 항상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것, 즉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매일 같은 경로로 출근하고, 친구들과 같은 종류의 바, 레스토랑 또는 클럽에 가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도시 생활공간과 가상적 상호작용을 하는 비디오게임을 하는 등 매우 반복적으로 보이는 현대 도시의 실천 속에도 차이와 그러한 실천이 정치적 저항과 변혁의 장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역사 유물론은 전통적으로 이 마지막 유형의 실천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러한 분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의 재생산을 이해하고 사회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생활공간의 조직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는 경제 생산, 국가, 국제 체제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연결되어야 한다.
행위성 혹은 의미가 내재적으로 부재하며, 의식에 대해 외생적인(heterogeneous), 무기력한 물질이라는 견해는 고전 과학과 철학에 공고한 기원을 두고 있으며, ‘저기 바깥의’ 자연 세계를 당연히 본질적으로 주어진 대상들의 집합으로 여기는 자연주의적 태도, 혹은 상식과 일치하며, 그것을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물질을 이와 다르게, 즉 스스로 변화 가능하며, 개별적이고, 관념적이며, 주관주의적인 영역에 위치한다고 여겨지는 행위자적 능력과 실존적 의미로 이미 충일해 있는 활기찬 물질성으로서 상상해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우리 현대인들이 이러한 내재하는 생성성을 표현하는 데 어떤 개념적, 혹은 비유적 수단들을 도움으로 삼을 수 있을까? 물활론(animism)이나 종교, 혹은 낭만주의로부터 유래하는 신비주의에 의존하지 않고, 물질의 역동적이고 때로는 저항적인 능력을 파악하기 위해 물질화의 과정과 그것의 생성적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 p.137
조나단 리어는 마음을 본질적으로 붕괴 경향이 있는 기능으로 묘사하였다.
의식적인 물질은 삶의 압박 아래 놓이기 때문에 파괴되는 경향이 있다.
삶은 단순히 “너무 과도(too much)한 것이다”.
우리는 비인격적 에너지를 주체와 세계라는 안정된 관념으로 추상화하는데, 그러한 에너지가 힐끗 보일 때마다 무력감을 느끼고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한다.
그러한 파괴적이며 비인간적인 에너지는 우리에게 친밀하게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정체를 완전히 식별할 수도 없고 통제할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그와 같이 비인간적인 것을 개인화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를 떨게 만들고 뒤흔드는 그러한 과잉은 강도와 흐름을 가진 양적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리어에 의하면 인간의 반복적인 무력함은 내용이 없는 어떤 사건의 반복이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무력감은 너무 많은 에너지의 경험에서 비롯한다.
질이 없는 양의 돌출.
만약 실제로 반복이 있다면, 그것은 에너지의 돌파와 파괴를 유의미한 일상의 삶에 주입하려는 우리의 시도에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 p.196
그렇게 그는 어떤 다른 행동을 할 수 없어서 행동이 중지된 상태에 머물게 된다.
여기에서 불확실하고 불분명한 인물들로 구성된 이 첨단기술의 만화는 연결선이 무리하게 늘어나 있는 빠른 속도의 세계에 붙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점을 제기한다.
이 영화는 메를로퐁티가 암묵적으로 가정한 삶의 속도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세계에 대한 애착을 탐구하고 갱신하도록 우리를 초청한다.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더 진전된 종류의 애착을 개발하고, 우리 내부와 주위에서 너무 쉽게 일어나는 추상적 적의를 물리치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리고 우리는 실존적 적의의 불씨가, 일단 뿌려지면, 파괴적인 사건, 미디어의 광란, 그리고 정치 캠페인에 의해 어떻게 불타오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투자, 소비, 교회 집회, 언론보도, 투표의 패턴, 국가적 우선순위와 같은 제도적 관행에 주입되는지 숙고해 볼 것을 권유받는다.
이 세계에 대해 처음 가졌던 돌봄의 감각이 열려 증폭되는데, 이것은 전술적 수단과 미시정치에 의해 무시되거나 더 강화될 수 있는 감각이다.
--- p.285
요점은 간단하다.
우리가 ‘행위를 함’은 우리가 ‘행위할 수 있음’을 촉발한다.
이것은 ‘함’이 단순히 능력을 제한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우리가 ‘행위를 함’이 몇몇 능력들을 확장하고 개방한다.
특정 방향에서의 어떤 ‘확장’이 우리가 다른 측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차례로 제한할 것이라 해도 말이다.
우리가 신체의 특정 부분들을 더 많이 활동하게 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진다.
동시에 우리가 다른 신체 부분들을 더 적게 활용할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적어진다.
그래서 만약 젠더가 우리가 ‘행위를 함’을 모양 짓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모양 짓는다.
--- p.368~369
일상적 삶의 실천과 공간의 구조화가 모두 자본주의의 재생산에 기능적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하거나 일상과 공간에 대한 개별적 경험이 획일적(또는 단순히 수동적)이라고 생각하는 환원주의의 함정을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제시된 근대성에 대한 끝없이 암울한 전망을 그리는 것과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현대의 삶을 구성하는 물질적 실천이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근거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한다.
실제로 르페브르는 그의 마지막 저서인 『리듬분석』에서 일상생활의 리듬, 특히 도시 공간의 맥락에 서 리듬에 대한 성찰을 통해 이 점을 추구한다.
여기서 ‘리듬’은 일상의 반복적인 성격을 의미하지만, “무한히 동일한 절대적인 반복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반복과 차이의 관계이다.
그것이 일상, 의례, 의식, 축제, 규칙 및 법에 관한 것이라면 반복적인 것에는 항상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것, 즉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매일 같은 경로로 출근하고, 친구들과 같은 종류의 바, 레스토랑 또는 클럽에 가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고, 도시 생활공간과 가상적 상호작용을 하는 비디오게임을 하는 등 매우 반복적으로 보이는 현대 도시의 실천 속에도 차이와 그러한 실천이 정치적 저항과 변혁의 장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역사 유물론은 전통적으로 이 마지막 유형의 실천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러한 분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본주의사회의 재생산을 이해하고 사회관계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를 고려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과 생활공간의 조직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도 중요하지만, 이는 경제 생산, 국가, 국제 체제 간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연결되어야 한다.
--- p.419~420
출판사 리뷰
“막대한 물질성의 세계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유물론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깨지기 쉽고 덧없는 이 세계를 혁신하기 위한
단 하나의 돌파구, 신유물론!
약탈과 불안, 상실과 파괴의 시대를 직시하는
신유물론적 사상의 최전선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 세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 요인들을 전경화(foregrounding)하고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은 21세기에 공존의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신유물론 패러다임』은 철학, 정치학, 문학, 문화,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유실된 유물론의 현실을 인식하고 물질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며 인간을 둘러싼 물질적 요소들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탄생했다.
유물론의 갱신, 신유물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각각의 글들은 자연스레 서로 교차하고 공명하며, 이는 신유물론에 대한 패러다임을 무수히 촉발시킨다.
유물론으로 돌아가기
현재의 우리가 유물론을 긴급히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물질이 너무나 난해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진보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점점 물질세계와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상상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물질, 특히 생명체와 관련된 진보들은 윤리적이고도 정치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살아 있는 물질에 대해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빠르게 재배치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는 총 세 개의 부로 나누어 이를 소개한다.
첫 번째, ‘물질성의 힘’에서는 신유물론의 존재론을 탐색하며, 물질과 물질성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이는 포스트휴머니즘적인 방향으로서, 살아 있는, 또는 행위자를 드러내는 물질 자체에 관한 파악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들’에서는 신유물론의 존재론적·과학적·기술적 차원들이 어떻게 권력, 윤리학 그리고 정치학의 형식과 영역의 재구성을 요청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당연히 생명과 인간에 대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주제로 이어진다.
마지막 ‘파괴의 경제’에서는 신체의 물질성과 실천의 물질성의 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 변형의 공간과 그 가능성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신유물론적 학제를 통해 우리는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사회경제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저 그것을 행하고, 세계를 사랑해 보자”
인간은 모두 유한하며 물질적인 존재이다.
니체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 삶을 긍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것은 삶과 삶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잃는 것이 인간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으로부터 단절되려 할수록, 우리 경험의 고정된 이미지와 주체의 잘못된 인상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고통을 받고, 정확히는 우리의 고통을 강렬하게 겪거나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은 어떠한 덕이 각각의 본능들에 생명을 불어넣는지, 그것이 탁월함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다른 본능과 전체(우리가 타고 태어난 ‘전체’는 비인격적 물질의 총체로서의 자연 전체이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히 의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내가 정말로 무엇을 경험했는가?”, “그 당시 내 주변과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우리의 경험의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의 통역사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찰적 판단뿐만 아니라 물질적 민감성도 훈련해야 한다.
_본문 193쪽 중에서
신유물론은 우리에게 선과 악 같은 초월적인 가치를 넘어 실존적 가치, 내재적 기준을 윤리로 삼기를 원한다.
“신체는 말 그대로 신유물론 윤리의 터전”으로서, 이 안에서 슬픔 정념뿐만 아니라 관대함과 즐거움이라는 능동적 정서 역시 배양된다.
이러한 교전의 한가운데 우리는 슬픔과 고통에 끊임없이 투쟁하고, 행동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어떻게 유물론자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깨지기 쉽고 덧없는 이 세계를 혁신하기 위한
단 하나의 돌파구, 신유물론!
약탈과 불안, 상실과 파괴의 시대를 직시하는
신유물론적 사상의 최전선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물질로 구성되어 있으며, 물질적 세계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물질적 요인들을 전경화(foregrounding)하고 물질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재구성하는 것은 21세기에 공존의 조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신유물론 패러다임』은 철학, 정치학, 문학, 문화, 여성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필자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유실된 유물론의 현실을 인식하고 물질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며 인간을 둘러싼 물질적 요소들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탄생했다.
유물론의 갱신, 신유물론에 대해 말하고 있는 각각의 글들은 자연스레 서로 교차하고 공명하며, 이는 신유물론에 대한 패러다임을 무수히 촉발시킨다.
유물론으로 돌아가기
현재의 우리가 유물론을 긴급히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물질이 너무나 난해하고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진보는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으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점점 물질세계와 그것의 가능성에 대한 대중의 상상을 변형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물질, 특히 생명체와 관련된 진보들은 윤리적이고도 정치적인 관심을 촉발시켰다.
살아 있는 물질에 대해 사유하는 새로운 방식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빠르게 재배치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는 총 세 개의 부로 나누어 이를 소개한다.
첫 번째, ‘물질성의 힘’에서는 신유물론의 존재론을 탐색하며, 물질과 물질성에 대해 탐구한다.
특히 이는 포스트휴머니즘적인 방향으로서, 살아 있는, 또는 행위자를 드러내는 물질 자체에 관한 파악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치적 문제들’에서는 신유물론의 존재론적·과학적·기술적 차원들이 어떻게 권력, 윤리학 그리고 정치학의 형식과 영역의 재구성을 요청하는지를 탐구한다.
이는 당연히 생명과 인간에 대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주제로 이어진다.
마지막 ‘파괴의 경제’에서는 신체의 물질성과 실천의 물질성의 관계를 분석하고, 더 나아가 정치적 변형의 공간과 그 가능성들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신유물론적 학제를 통해 우리는 더 광범위한 지정학적·사회경제적인 구조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물질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저 그것을 행하고, 세계를 사랑해 보자”
인간은 모두 유한하며 물질적인 존재이다.
니체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 마주하지 않으면 결국 삶을 긍정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고통을 피하려 한다는 것은 삶과 삶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경험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이다.
즉,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에 대한 본능적 감각을 잃는 것이 인간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통으로부터 단절되려 할수록, 우리 경험의 고정된 이미지와 주체의 잘못된 인상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 의해 고통을 받고, 정확히는 우리의 고통을 강렬하게 겪거나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의 희생자가 된다”.
이것은 어떠한 덕이 각각의 본능들에 생명을 불어넣는지, 그것이 탁월함을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다른 본능과 전체(우리가 타고 태어난 ‘전체’는 비인격적 물질의 총체로서의 자연 전체이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명확히 의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내가 정말로 무엇을 경험했는가?”, “그 당시 내 주변과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우리의 경험의 통역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경험의 통역사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찰적 판단뿐만 아니라 물질적 민감성도 훈련해야 한다.
_본문 193쪽 중에서
신유물론은 우리에게 선과 악 같은 초월적인 가치를 넘어 실존적 가치, 내재적 기준을 윤리로 삼기를 원한다.
“신체는 말 그대로 신유물론 윤리의 터전”으로서, 이 안에서 슬픔 정념뿐만 아니라 관대함과 즐거움이라는 능동적 정서 역시 배양된다.
이러한 교전의 한가운데 우리는 슬픔과 고통에 끊임없이 투쟁하고, 행동하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3년 09월 14일
- 쪽수, 무게, 크기 : 480쪽 | 152*224*30mm
- ISBN13 : 9788976828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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