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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 2026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 2026
Description
책소개
수필과 평설, 그 아름다운 조화

AI 시대에도 문예지는 출간되지만, 종이책보다 스마트 폰을 더 많이 들여다보는 게 현재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책에 나온 약력보다는 포털 검색으로 인지도를 측정하고, 많이 언급될수록 유명하다고 여겨지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문예지에만 글을 발표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가장 신속하게 독자의 반응을 살필 수 있는 ‘포털 사이트’라는 공간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평론가가 뽑은 좋은 수필』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네이버라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독자와 소통의 공간을 직접적으로 연결한 책이라는 점이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면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 작가의 이름과 작품을 널리 알리는 훌륭한 기폭제가 됐다.
수필다운 수필, 감동으로 물든 글이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새로운 공간에 제대로 자리 잡을 ‘좋은 수필’이 계속 나와야 한다.
이 책이 그 밀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첫 책의 키워드를 ‘미래’로 잡았다.
미래의 수필은 보다 자유롭고 다양하여 그 경계가 없을 때 수필의 미래가 빛날 것이며,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다.
─「발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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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발간사_수필과 평설, 그 아름다운 조화

1부 엄정하고도 아름다운

김애자 『하현달 아래서』_엄정하고도 아름다운
정태헌 『푸른 비망록』_인연, 투명하고도 푸른 흔적
조헌 『눈물, 그 소중한 기능』_눈물은 영혼의 언어
이경은 『바깥』_바깥에 대한 전복적 시선
황진숙 『포구에서』_껍데기를 벗고 순정한 자아로
이명지 『성당 가는 길』_이토록 유쾌한 자기 긍정
노혜숙 『적막이 풍경이 될 때』_광장이 일류가 되는 날
송명화 『뿌리혹』_탄탄한 중층구조와 연민의 치유시학
송혜영 『사라지는 사람들』_사라지는 사랑의 붐빔을 걱정하다
박태선 『두모가치』_아버지라는 책
고경서(경숙) 『회광반조(回光返照)』_슬픔의 환치

2부 빗장을 풀고 존재로 나아가기

강현자 『대문 즘 열어 봐유』_빗장을 풀고 존재로 나아가기
백송자 『소대(燒臺)』_소대, 죽음에 대한 원형상징의 공간
손봉호 『보일러 속이기』_명징하면서 유쾌한
최윤정 『별안간』_‘별의 안간’에는 사랑의 꽃이 핀다
김백윤 『아내의 바다』_삶으로 빚어진 글
신금철 『소반다듬이』_전략적 상상으로 해석하고 문장의 신비로 형상화
김진숙 『중독 유감』_중독의 패러다임에 관하여
이승애 『요변(窯變)』_변화를 받아들이는 일
홍재숙 『마음이 눈을 만나 뛰어나오고』_눈〔雪〕의 표정은 이중적이다
이명진 『미여지뱅듸』_슬픔에 대한 예의
권순이 『손끝에 혼을 담다』_예와 정성으로 몸을 가리다

3부 도시적 풍물의 ‘사이’론

김철희 『모탕의 시간』_볼품없는 존재에 대한 경의
조재형 『묘한 이야기』_뜻밖의 정경, 고양이와의 시적(詩的) 조우
이혜연 『거품 실종 신고』_통섭하면 보이는 새로운 세계
최운숙 『획을 새기다』_살아냄으로써 용서하기
이재헌 『불이 꺼지지 않는 방』_‘불이 꺼지지 않는 방’, 사랑의 메타포
김정애 『고목과 나비』_‘아하 모먼트’의 발견과 전이 시학의 전개
권경자 『깨진 유리창론』_친밀하게 바라보는 사물은 그 시선에 응답한다
박소윤 『사이, 그 사이』_도시적 풍물의 ‘사이’론(論)
강표성 『초록을 품다』_초록으로 이루는 영혼의 광합성
김은숙 『그랴』_말은 마음을 담은 기호
임이송 『인간의 얼룩』_얼룩과 무늬의 상호적 탄생

4부 권태, 그 현대적 불안

김귀선 『기다리다 못하여서』_닫힌 문 앞의 삶을 기억하다
이신애 『빨래 널기』_초기화할 수 없는 기억
윤성근 『권태 vs 권태』_권태, 그 현대적 불안
김경혜 『남편의 방』_부부, 역할과 존재의 관계
이춘희(봄희) 『섬에 들다』_나의 이름을 찾아서
김종희 『바닥, 그 깊은 언어』_언어, 사유를 이끄는 변환의 에너지
노상비 『푸른 슬픔』_후회 없는 삶에 바치는 푸른 송가(頌歌)
이호윤 『로고스의 물임을』_로고스의 물,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
정옥순 『오늘도 봄동』_날것에서 숙성으로
장은경 『달의 뒷면』_종도 안 쳤는데 내게 온 빛
임미옥 『그해 눈 오던 날』_고백 없는 길에 대한 그리움

5부 막장에 피는 꽃

김정화 『막장』_일제의 잔재, 막장에 피는 꽃
임병미 『물방울이 튄다』_‘엄마’라는 존재를 생각하다
전미란 『압구정 전단지』_불온한 삶을 챙기다
김정태 『감꽃 핀 자리』_자연에서 찾은 생(生)의 시원(始原)
추선희 『율원에 산다』_무용(無用)함을 예찬한다
김미경 『고흐의 별, 나선은하 M51a』_별, 경이로운 예술의 시원(始原)
이난영 『박물관에 안긴 어머니』_회광(回光)하여 반조(返照)하는 사랑
황혜란 『진혼굿』_울음으로 완성되는 공감의 장(場)
강길수 『어떤 연』_자연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자연
박지니 『막걸리 한 잔』_반추하는 술의 모멘텀
임승주 『꽉』_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여정

편집 후기

책 속으로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육체가 노쇠해지면 지나간 날들을 그리워하게 된다.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시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데, 할 일 없이 적막한 일상에 갇히면 궁핍으로 얼룩졌어도, 배신과 화해의 경계에서 골머리를 앓게 했던 사건들마저도 그리움으로 윤색된다.
별것 아닌 사소한 것들조차 그리움의 너울을 쓰고 웅얼거림으로 다가온다.

아내와 청소를 마치면 커피 타임으로 들어간다.
아내가 타준 커피를 마시는 그는 늙은 아내가 눈부처다.
삼시세끼 꼬박꼬박 밥상 차려주는 아내는 중력과 인력의 법칙 안에서 존재하는 80억 인구 중에서 만난 사람이고, 가장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사이다.
아내 역시 남편이 눈부처다.
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삼시세끼 밥상을 차리겠는가.

--- p.14

김애자의 「하현달 아래서」는 노년의 시간을 ‘하현달 아래’라는 아름다운 공간적 이미지로 전이시켜, 달관에 이른 노년 풍경을 완성한다.
“그이는 하현달 아래서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다.” 첫 문장은 하현달의 희미한 빛 아래 생의 층계를 내려가고 있는 그이의 이미지를 통해 몽환적인 장면을 그려낸다.
인생의 밤에 접어들었으나 달빛이 감싸고 있으므로, 밤과 ‘하현달’ ‘아래’ ‘내려가다’로 중첩된 하강의 강도가 묽어진다.
이 느낌은 이어지는 문장 “천천히 가벼운 걸음으로 내려가고 있다.”에서 확고해진다.
내려가고 있지만 서글프지 않고, 억울함이나 미련, 노욕에서 자유로운 것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들이 열매와 잎을 땅으로 내려보내듯, 다 털어내 가벼워진 상태인 것이다.

--- p.16

“못 가십니다.
보호자 없이는 여행을….”
언젠가 듣도록 운명 지어진 말이다.
그때가 바로 지금이란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조금 빠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서둘러 오셨군 싶었다.
창피한 마음과 서글픔이 스쳐 지나갔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쉽지 않았다.
가면이 잘 써지질 않아 버둥거리다가, 그레고르 잠자의 버둥대는 팔다리가 떠올랐다.
가슴에 고인 수액이 사방으로 빠져나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 p.30쪽

“못 가십니다.
보호자 없이는 여행을….”
누구나 언젠가는 듣게 될 말이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불쑥 듣게 될 때, 이제껏 당연하게 누려왔던 세계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저지당할 때, 그 누구든 막막함과 충격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경은의 「바깥」은 거대한 절벽을 마주한 것 같을 이 경험을 응시하고 곱씹음으로써 눈부신 전복적 결론에 도달한다.
--- p.34

내 목소리는 어떤 모양과 각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다 문득 호랑나비 애벌레 우화를 떠올린다.
하늘까지 닿은 유일한 기둥에 오르기 위해 밟히고 밟으며 기어가는 애벌레.
마침내 도달한 기둥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세상엔 또 다른 기둥들이 있었지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애벌레.
기둥 끝에 도달하기 위해선 기어갈 것이 아니라 날아서 가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지만 번데기가 되는 시간이 두려워 망설이는 애벌레.
그 우화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자화상을 닮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
소시민의 안이하고 나태한 삶 속에서 자기 목소리는 내 본 적도 없이 습관적 반성 뒤에 숨어 살아온 건 아닌지.

--- p.52

노혜숙은 「적막이 풍경이 될 때」를 통하여 자신이 체험한 적막을 고백한다.
본연의 비어있는 상태인 적막에 ‘풍경처럼 펼쳐진 상념’에서 ‘그늘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그늘이 맑은 물길로 흘러가길 바라는 욕심을 갖는다.
그러한 상념은 절대적 고독에서 자아의 참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 삶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에너지가 된다.
이때 적막은 풍경으로 반전된다.

--- p.54

누구나의 가슴에도 빙하는 흐른다고 하였다.
가슴속 빙하는 지하수로 흐르다가 덮개가 단단하지 못한 부분을 찾아 용출한다.
차게 흐르던 내면의 온도가 외부의 온기를 느끼고 누그러지면 비로소 안도의 숨길을 찾는 것, 마음속 상처는 그런 것일까.
기묘한 뿌리혹들이다.
천리포수목원에서 만난 분화구들을 어찌 설명할까.
연못가를 걷는 오릿길을 돌아 나오다가 낙우송 무리를 만났다.
수사처럼 엄숙하게 도열해 있는 나무둥치 아래에 생경한 것들이 눈길을 끌었다.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가상제국의 축소판인가.
땅에서 솟아 나온 수많은 돌기들이 수석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앉아서 세운 무릎처럼 여기저기 불쑥 솟은 기이한 것들, 뿌리도 아닌 것 같은데 땅에서 자라 올라온 종유석 형상이다.
푯말을 보니 식물의 뿌리 호흡을 돕기 위해 생겨난 기근이라 했다.
--- p.56

작가는 망원경적 시각으로 숲을 두루 살피고, 현미경적 세심함으로 나무를 두루 어루만진다.
낙우송의 살아남기 위한 진화와 적응의 상징인 뿌리혹과 왕따 사고로 자식을 잃은 시인의 아픔, 정신병원에서 창밖 낙우송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연결을 읽어낸 고흐, 친구의 괴롭힘으로 상처받은 자신의 과거를 한 꿰미에 엮어 관찰-고찰-통찰-성찰이라는 사찰을 통해 문학적 성취를 이루어내었다.
주동 및 배경 인물은 상처받은 이들이며, 지향점은 치유다.

--- p.61

낮과 밤이 교차하는 해 질 녘에는 모든 존재, 즉 빛과 어둠, 삶과 죽음, 생성과 소멸, 순간과 영원 등이 이중성을 드러내며 순환하거나 종지부를 찍는다.
뉘엿뉘엿 지는 해는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을 보는 것 같아 알싸한 통증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끊임없이 살아 꿈틀거리는 형상은 감정이입으로 흔들리고 만다.
매번 감정의 진폭도 다르다.
세월의 풍파에 노화된 육체가 견디고 버텨낸 삶의 무게를 내려놔야 하는 부담감으로 홀가분하지가 않다.
종국에는 잊힐 법도 한 참담한 기억까지 선연히 떠올라서 등뼈를 곧추세우며 석양을 뜨겁게 껴안을 수밖에 없다.
눈시울을 붉히는 노을은 회한이요, 그리움이다.

--- p.76

고경서의 수필은 특별하다.
소재를 묘사 문장으로 이끌면서 한 편의 수필을 쓰는 그만의 필력 때문이다.
문학적 미감이 충만한, 세세하고도 깊은 그만의 시선이 담긴 글을 쓰는 수필가가 고경서 작가다.
문장 훈련을 위해 필사할 작품을 찾는 이가 있다면 이 작가의 수필을 권하고 싶다.
이미 말한 바(졸저, 『작은 눈으로 읽는 서사수필』) 있는데, 작가가 한자리에 선 채 사과 하나를 들여다보며 써 간 「홍옥은 시다」라는 수필은 그 독특함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글은 볕 좋은 가을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오로지 잘 익은 홍옥 한 개로 쓴 원고지 16매 길이의 수필이다.
밀도 높은 촘촘한 묘사 문장들 속에 깃든 사유가, 묘사와 팽팽하게 조화를 이룬 수필이었다.

--- p.149

새북에 들에 갔다 오다 보먼 이층집언 여적 한밤중여유.
그 집 아자씨가 대처루 출퇴근을 허니께 싸이클인가 뭔가 허능기 우덜이랑은 다르겄지유.
암만 그려두 그맇지 어찌다 대문 안을 딜이다 보믄유 난리두 아녀유.
잔디를 깔은 거 겉은디 잡풀이 더 많어유.
제초제를 치덩가 풀을 뽑덩가 해야 허는디 도대처 만나야 갈쳐 주쥬.
과실 낭구에 과실은 지대루 딘게 항개두 읎는규.
약을 안 치서 벌거지 존 일만 시킨다니께유.
소독약 통을 빌려줄 팅께 가져가라 혀두 오덜 안 혀유.
빌려줘두 쓰덜 못 헌대유.
그래 우리가 나서서 해주구 싶어두 농삿일 바쁜 우리가 워디 짬이 나야 말이쥬.
때 디먼 전지두 히주야 가쟁이가 배깥이루 안 넘어 가넌디 도시 그란디는 관심이 읎는 건지 몰러서 못 허는 건지 답답혀서 죽겄슈.
그래 항개씩 알켜 줄래두 도통 문 열구 나오덜 않어유.
85쪽강현자의 「대문 즘 열어 봐유」는 개별적 존재자로서 관계와 소통에 대한 절실한 소망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대문을 경계로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대문 안의 세계와 대문 밖의 세계가 그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이 처한 세계가 지배하는 관습이 몸에 배면서 서로 비슷한 문화의 옷을 입고 상생하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런 문화 속에서 개인은 세계와 끊임없이 영향, 즉 인과 연을 주고받으며 상생하고 변환하면서 사회인으로 성장한다.

--- p.89

나는 요즘 먼동이 틀 때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그 시간에는 아주 따뜻한 날이 아니면 보일러가 꼭 가동된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의 노랑이 근성이 작동한다.
조금만 참으면 햇빛과 전기난로가 집안 온도를 18도로 올려 보일러 작동을 멈출 텐데 그때까지 가스가 소비되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기난로를 켜서 조절기를 향해 돌려놓는다.
난로의 열을 받은 조절기는 5분도 안 되어서 18도를 가리키고 가스는 그 이상 타지 않는다.
집안 온도는 아직도 17도인데 보일러가 속은 것이다.
그러나 점점 더 강해지는 햇빛과 계속 열을 내뿜는 전기난로 덕으로 집안 온도가 다시 17도로 내려가진 않는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보일러 작동이 조금 일찍 중지되므로 그만큼 가스가 절약되는 것이다.
나는 ‘티끌 모아 태산’의 신봉자다.

--- p.97

‘보일러 속이기’란 태양열 전기난로를 사용해 조절기 온도를 올리는 것을 뜻한다.
평소 온도를 18도로 설정하고 부족한 온기는 햇빛과 전기난로로 보충해 오던 터라, 요즘 먼동이 틀 때쯤 보일러가 가동되는 것이 아깝다.
조금만 참으면 햇빛과 난로가 18도로 올려줄 텐데 그때까지 가스가 소비되는 것이 아까운 것이다.
‘노랑이 근성’을 발휘해 조절기를 향해 난로를 돌려놓는다.
그랬더니 바로 18도가 되어 보일러가 멈춘다.
그런데 집안 온도는 아직 17도이므로 보일러가 속은 것이다.

--- p.101

나에게는 일정 기간 특정 사물이나 행위에 대한 묘한 중독성이 있다.
삼사 년 동안 저녁마다 혼자서 마시던 맥주 한 캔은 하루를 마감하는 신성한 의식이 되었다.
맥주를 마신 후의 나는 현실과 비현실의 중간, 이른바 알딸딸한 상태가 되어 웃고 있었다.
‘위안을 주는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맥주의 역사와 종류, 맛 등에 관해 기꺼운 탐구를 거듭하였다.
이는 커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으며, 가볍고 세련된 하루키의 글들도 맥주나 커피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우면서는 세상의 모든 고양이에 빠져서 내 우뇌의 80% 이상이 모두 고양이로 채워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어떤 대상이나 행위에 흠뻑 빠져 있던, 이른바 중독되어 있던 기간은 내가 삶의 한 모퉁이를 힘들게 지나던 시기였었다.
어려운 시기에 하나의 방어기제로서 관심을 다른 데로 분산시켰을 것이고 그렇게 내 정신과 육체를 자발적으로 소모하는 동안 힘든 시간은 흘러갔을 것이다.

--- p.124

중독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난처한 삶의 대증요법(對症療法)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것은 금단이 아닌 향유와 음미의 영역이 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김진숙의 「중독 유감」은 피폐해진 현실의 극단을 모르지 않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중독의 또 다른 활로랄까 다른 측면을 트여보는 수필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김진숙의 ‘빵굽기’는 직업적 소임이 아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베이커리를 완성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과 공력, 그리고 집중의 모드가 긴장감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
자신을 옥죄고 있거나 현실적 고통들을 완충하거나 진정시키기 위한 일종의 대안적 성격의 안티테제로서의 심리적 활성으로 보는 것이 무방하다.
마음이 살아야 몸이 살고 몸이 살아야 마음도 거기에 부합하는 안정과 평화를 통해 활기를 도모한다.

--- p.127

살면서 가슴에 사무치는 일 한두 번 겪지 않는 사람 어디 있으랴.
삶은 사람을 내치고 담금질하고 고달프게도 하며 애가 타고 눈물짓게 하는 일의 반복이다.
그 사이마다 아금받게 자신을 추스르며 살아갈 때 볕이 드는 것이다.
삼십 년 만에 홀로 밥을 지어 먹으며 일 나가는 그의 마른 몸이 안쓰러울 때도 있다.
후회나 마음 어지럽히던 질척한 것들 다 빠져나가고 강단만 남은 것이려니 한다.
이제 매월 몇백만 원씩 빚을 갚아나간다.
절구(?句)처럼 그가 앞서고 내가 받쳐줄 때 우리의 아로새김도 의미를 가질 터이다.
맞잡은 우리 부부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 p.177

김성수 조각가의 꼭두는 밝은 외양과 달리, 그 원재료는 소위 ‘행복하게 자란 나무’가 아니다.
작가는 추운 겨울에, 그것도 남쪽 북쪽 산에서 자란 나무를 선호한다.
북쪽에 있는 산에서도 기왕이면 좀 더 가파른 곳에서 빛을 제대로 쬐지 못한 나무, 못 먹고 못 자라고 병을 앓느라 몸을 비틀며 자란 것들을 그는 선택한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비틀어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자란 불구(不具)의 나무들이 위로의 형상을 품고 있다는 역설이야말로 고통이 우리에게 주는 보상이 아닐까? 최운숙의 「획을 새기다」는 공방에서의 경험을 통해 같은 의미의 전언을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들려준다.

--- p.179

흰 나비가 노란 유채꽃을 향해 날아든다.
날개 끝에 회색 끝동을 달고 까만 점을 나란히 두 개씩 박은 멋쟁이다.
요 작은 아이는 꿀을 빨기보다는 놀기에 정신이 팔려 재빠르게 날갯짓하며 꽃 위로 날아만 다닌다.
자세한 모습을 살피려 눈동자 초점을 잔뜩 오므려 날개의 선율을 쫓아가 봐도 좀체 다리쉼을 하거나 꽃에 긴 대롱 입을 맞추지 않는다.
그러더니 친구를 만나 서로 대각선으로 날기도 하는 등 사랑놀이에 여념이 없는 게 아닌가.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알레그레토의 화려한 기교가 이 작은 나비들의 경쾌한 날갯짓에서 영감을 받았을까.
나비 날개에 음률을 매달아 흥얼거려본다.
나비를 향한 클로즈업 시선을 풀어 풀 샷으로 긴 유채꽃밭을 바라본다.
온천천변에 노란 명주 숄이 드리워진 것 같은 꽃 위로 흰 꼬꼬마들이 단체로 유희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안 보였는데, 만화방창(萬化方暢)한 계절을 한껏 만끽하고 있는 이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자유로움의 심장 같은 멋진 날개를 달기까지 그들의 과거는 어떠했을까.

--- p.189

단테의 『신곡』과 버무려진 중층성이 돋보이는 김정애의 「고목과 나비」는, 일흔이 넘는 지점에서 건강의 적신호를 느끼고 그에 맞는 삶의 방식에 적응하려는 안일함에 젖어있던 작가가 고목의 새순을 발견하면서 전이 미학의 옷을 입는다.
“늙은 나무의 몸에서 어찌 저리 연한 순이 온몸을 덮을 수 있단 말인가.” 작가는 고목을 만난 충격적 감동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으로 육화할 제재로 고목의 새순을 낙점한다.
작가는 제재를 깊이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기 삶의 모습과 의지를 중층구조로 짜고, ‘베르길리우스’란 제재에 담아 발효시켜 나간다.

--- p.194

일몰 시간의 지하철에서는 밖이 어떤 곳인지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일그러진다.
달리면서 자세한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마음이 흐려진다.
달리면서 볼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달리면서 무언가를 볼 수는 있는가.
무엇과 무엇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무언가를 보려고 애쓰는 사람은 달리는 순간에도 무엇과 무엇 사이의 무엇을 알려고 애쓴다.


일몰은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인생의 많은 것들은 일몰처럼 훅 밀려온다.
지하철은 빨리 달리고,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해가 지는 풍경을 제대로 못 본다.
실은 해가 지는 것을 실제로 보지 못함을 잊는다.
눈이 보는 걸 마음은 보지 못하고, 마음이 아는 걸 머리는 모른다.
붉게 보이는 태양의 가장 뜨거운 곳은 푸른색이며, 태양이 지기 직전에는 잠시 초록빛이 보인다.
일몰과 일출 사이에는 일몰도 일출도 아닌 초록과 푸르름의 시간만이 그 자리를 채운다.

--- p.205

박소윤의 「사이, 그 사이」는 특히 도시적 시공간(視空間)에 작용하는 이 빛의 뉘앙스를 ‘사이(distance)’라는 개념으로 그 겨를의 순간을 명징하게 포착하는 눈썰미가 쏠쏠하기 그지없다.
흔히 회색빛 도시의 멜랑콜리와 분위기를 말할 때 우리는 흔히 정체된 기분을 주로 노출하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포착하듯 그려내는 도시적 일상의 풍광은 ‘사이’라는 겨를을 통해 상당히 역동적이고 인상적인 스크린을 제공한다.
횟감을 잘 저며내는 셰프처럼 달리는 지하철에서 맞이하는 창밖의 풍경과 풍속의 단면을 통해 우리가 처한 도시적 삶의 극적(劇的) 이미지를 추출하여 진설한다.
무연한 듯 날카롭게 사물과 풍경을 인상적으로 재단하는 방법은 ‘사이’라는 콘셉트로 풍경의 변화를 간파하듯 주시하는 것이다.
무딘 시간 속에 날카롭게 촘촘하니 박인 시간의 풍광들을 인화하는 마음은 “조금 전, 책을 읽고 있던 남자의 자리에 다른 여자가 서있”음을 발견하는 새삼스러움에 대한 자의식 같은 것이다.

--- p.207

사람들 사이에서 길을 잃을 때면 녹색을 기웃거린다.
입에 쓴 물이 고일 때, 마음이 쑥대밭 같을 때면 나무를 찾는다.
울울창창할수록 좋다.
거친 숨결을 다스리며 헉헉대노라면 그들은 내 몸의 신호를 경청한다.
호들갑 떨지 않고 억지로 연민의 표정을 짓지 않고 묵묵히 지켜본다.
말없이 어깨를 다독이는 초록 물결, 풍경이 내 안으로 슬며시 밀려온다.

푸른 잠언들의 숲이다.
거기서는 행간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밑줄을 긋거나 괄호 표시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그린 그림 앞에 선다.
일체를 벗어 놓고 존재 자체가 되어 본다.
침묵과 대면하니 마냥 고요해진다.
솜털 하나하나 열려, 온몸으로 스며드는 기운을 받아들면 그만이다.
더할 나위 없는 위로의 편지, 따뜻한 처방전이 거기 있다.

--- p.210

강표성은 인간과 자연은 운명적으로 도반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초록에 몰입하여 초록을 품을 줄도 안다.
사실은 초록이 작가를 품었는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는 자연과 하나 되는 사유의 과정이 전략적으로 숨어있다.
“초록에 대한 인식, 초록이 주는 혜택, 초록이 스며든 자아”의 순서로 사유가 진행된다.
먼저 마음 비우기를 한 다음 초록에 몰입하여 자연과 우주를 통찰한다.
자연의 본질을 체득하면 진정성이 깨어나고 나아가 영적 사유로 자연과 합일에 이른다.
이쯤 해서 독자도 작가의 사유에 빠져버린다.

--- p.214

제대로 깊어진 욕망은 기회를 바로 알아본다.
촉수가 예민하다.
어느 날 들른 브런치 카페의 내부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단정하거나 자유롭게 아늑했다.
특히 목재가 엉기성기 받치고 있는 천정과 화장실 입구의 둥근 모서리가 눈에 들어왔다.
가볍지만 단단하고 뽐내는 곳도 없고 서로 기대는 곳도 없었다.
공간의 정체감이 확실했다.
나는 건축가 연락처를 구했고 상담을 의뢰했다.
집으로 온 건축가는 서재의 낡고 얼룩진 벽지를 들여다보더니 좋은데요, 라고 했다.
안방의 장판, 구형 가스레인지 등 뜻밖의 것에 감탄했다.
내 생각에도 아름다운 것은 모두 시간의 손길이 더해진 것이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아름다움은 시간이 마무리한다.
그 건축가에게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 p.332

추선희의 「율원에 산다」는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 제목이 마치 ‘욜로에 산다’ 같다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율원’과 ‘욜로’ 둘 다 2음절에 울림소리가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실용성을 중시하지 않는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로부터 기인한 착각이다.
작가는 “어느 구석 어느 사물이 눈에 거슬리는 날이 있다.
가구나 그림일 수 있고 연필꽂이일 수 있고 연필꽂이 앞 핸드크림일 수도 있다.
꿈틀대는 마음 따라 사물이 움직이고 공간은 달라진다.”라고 쓴다.
나아가 그는 적극적 향유를 위해 이 공간을 “어느 날 들른 브런치 카페의 내부”처럼 꾸미려 작정한다.
--- p.336

나에게 아버지는 투명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모든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건 아니어도 앞뒤 사정은 가늠할 수 있었다.
어쩌다 내게 화를 낸 후에는 금세 필요한 건 없냐, 가고 싶은 데는 없냐며 말을 걸어왔다.
그 모습이 잘못을 저지르고 눈치 보는 어린아이 같아서 보기 싫었다.
그런 아버지의 딸인 나 역시 어린아이와 다름없었기에 내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면서 아버지의 와인 한 잔은 막걸리 반 사발이 되었고 마지막 몇 달 동안은 술을 금해야 했다.
건강했을 때도 정종은 맛없다던 아버지.
제사상에 막걸리 한 잔은 어떠세요? 물으면 아버지는 뭐라고 할까?
--- p.368

박지니의 「막걸리 한 잔」은 압생트 같은 독주에 얽힌 내력이 아닌 애주가 아버지와 비애주가인 딸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 만남은 시간의 일치와 시간의 불일치마저 술을 매개로 하나로 아우른다.
술자리는 아무려나 딴전을 피워도 좋은 판에 실상은 삶을 곡진하게 응시하는 뒤끝을 남기기도 한다.
돌아보면 숙취만 남기고 술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박지니에게 아버지는 물음법을 선사했다.
“오늘 기분이 어때?” 이는 일견 범박한 듯하지만, 누구에게든 ‘네 실존은 어떻게 꾸려져 잘 굴러가고 있느냐.’ 에둘러 묻는 것만 같다.
단순한 물음에서부터 웅숭깊은 성찰의 화두까지 견인해준 아버지의 애주가 지닌 소박한 풍류 때문인지도 모른다.
--- p.370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20일
- 쪽수, 무게, 크기 : 381쪽 | 145*220*30mm
- ISBN13 : 9791160871500
- ISBN10 : 116087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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