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터에 관한 낯선 시선
Description
책소개
지상파 방송사 25년 차 직업인이 포착한일과 일터에 깃든 인간적인 얼굴
“고통스럽게 일했지만 신나게 놀기도 했지!”
버거운 업무와 까다로운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지친다고? 정말 그럴까?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면 과연 행복해질까? 지상파 방송사에서 25년간 홍보부터 편성, 기획까지 다양한 일을 해온 프로페셔널 출근자가 섬세한 관찰력에 문학과 철학,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인문적 지식을 곁들여 무익하고 절망적인 일터에서 소모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므로, 일터의 시간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자율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창의적인 놀이의 추억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일터에 갇혀 힘겨워하는 모든 직업인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되어줄 책
“고통스럽게 일했지만 신나게 놀기도 했지!”
버거운 업무와 까다로운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고 지친다고? 정말 그럴까? 더 좋은 곳으로 이직을 하거나 아예 일을 그만두면 과연 행복해질까? 지상파 방송사에서 25년간 홍보부터 편성, 기획까지 다양한 일을 해온 프로페셔널 출근자가 섬세한 관찰력에 문학과 철학,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인문적 지식을 곁들여 무익하고 절망적인 일터에서 소모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수반하므로, 일터의 시간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자율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창의적인 놀이의 추억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일터에 갇혀 힘겨워하는 모든 직업인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되어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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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목차
프롤로그.
돈 버는 일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
1장.
시작하기
─차가운 일터에서 따뜻한 사람을 만난다면
입사는 삶의 결정적 순간일까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취업 준비는 자책의 연속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회사라는 곳
영웅은 빈손으로 돌아와도 영웅
훌륭한 페르소나를 가진 직업인들
일터와의 거리두기에 관하여
좋아 보이는 사람과 좋은 사람의 차이
재밌고 괜찮은 사람이란 평판의 힘
2장.
즐기기
─고통스럽게 일했지만 신나게 놀기도 했지
회사만큼 재밌는 곳은 없다?
슬럼프, 진정한 일의 동반자이자 동료
일터에서 받은 상처는 놀이로 치유한다
무게 중심을 쌓는 공부를 시작한다
다양한 우주의 여러 거울에 나를 비춰본다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
물러나야 할 때와 맞서 싸워야 할 때
일의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 빠른 진통제
방학이 없는 회사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다
3장.
나아가기
─다름을 넘어서 같음을 공유하는 마음
언보싱 사회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
남보다 예민한 사람을 위한 사회생활 비법
버티는 직장인과 이상한 정년 논의
너의 노동에 기대어 산다는 마음
즐기는 현직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정신과 육체, 일과 놀이의 균형을 찾아서
모두가 서로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이만하면 괜찮은 출근
에필로그.
어쩌다 보니 장기근속
감사의 말
참고문헌
돈 버는 일에 관한 이런저런 생각들
1장.
시작하기
─차가운 일터에서 따뜻한 사람을 만난다면
입사는 삶의 결정적 순간일까
좋은 회사란 무엇인가
취업 준비는 자책의 연속이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 회사라는 곳
영웅은 빈손으로 돌아와도 영웅
훌륭한 페르소나를 가진 직업인들
일터와의 거리두기에 관하여
좋아 보이는 사람과 좋은 사람의 차이
재밌고 괜찮은 사람이란 평판의 힘
2장.
즐기기
─고통스럽게 일했지만 신나게 놀기도 했지
회사만큼 재밌는 곳은 없다?
슬럼프, 진정한 일의 동반자이자 동료
일터에서 받은 상처는 놀이로 치유한다
무게 중심을 쌓는 공부를 시작한다
다양한 우주의 여러 거울에 나를 비춰본다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착하게 산다는 것
물러나야 할 때와 맞서 싸워야 할 때
일의 고통을 덜어주는 효과 빠른 진통제
방학이 없는 회사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다
3장.
나아가기
─다름을 넘어서 같음을 공유하는 마음
언보싱 사회에서 리더가 된다는 것
남보다 예민한 사람을 위한 사회생활 비법
버티는 직장인과 이상한 정년 논의
너의 노동에 기대어 산다는 마음
즐기는 현직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정신과 육체, 일과 놀이의 균형을 찾아서
모두가 서로의 노동에 빚지고 있다
이만하면 괜찮은 출근
에필로그.
어쩌다 보니 장기근속
감사의 말
참고문헌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회사는 왜 이처럼 이상한 걸까?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일상과 동떨어진 낯선 세계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일 듯하다.
일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회사는 이윤 추구와 같은 별난 목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회사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밀림으로 들어가 미지의 부족에 몸을 맡기는 일과 닮아있다.
밀림은 인가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초와 벌레, 야생동물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사는 부족은 길목마다 자기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위험 표식을 덕지덕지 붙여놨다.
생존을 위한 나름의 규율이자 법칙인 셈이다.
이런 표식을 읽어가며 어렵게 당도한 미지의 부족 마을엔 괴팍한 족장이 살고 있다.
‘미래’나 ‘기획’, ‘전략’이란 이름을 가진 무당도 있다.
그들은 뜬금없이 화를 내거나 모든 게 잘못됐다며 고함을 지르곤 하는데, 부족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방인 입장에서는 그들이 늘 화가 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 p.42~43
사회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고 서로를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온통 나쁜 사람만 눈에 보이고 주변을 지키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 결과 순수한 관계의 새가 찾아와도 무심코 손을 내젓거나 편한 사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대해 내쫓는 우를 범한다.
“좋은 사람에게 더 잘하고, 나쁜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말자.”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이다.
우리는 종종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악인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며 에너지를 낭비한다.
알량한 납덩이로 이 새도 저 새도 잡으려는 포수처럼 욕심을 부리다 좋은 사람은 떠나고 나쁜 사람만 주위에 바글대는 관계의 실패를 맛본다.
만약 순수한 관계의 새를 발견했다면 상대의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만나는 횟수가 뜸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기보다 그 사람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에 멀어지기 마련이다.
--- p.73
회사형 인간은 가면을 제 얼굴인 양 자랑하며 놀이가 아닌 공연을 시작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손과 발에는 의무와 욕망의 낚싯줄이 걸려 있다.
그들은 의외성과 우연성이 만든 재미 대신 자발성을 가장한 복종을 연출한다.
생산을 위한 꼭두각시로 살아가며 무대에서 춤을 추다 타인을 향해 섬뜩한 대사를 날린다.
“일을 놀이처럼 하란 말이야! 그래야 성과가 난다고!” 권력과 산업 사회의 추종자들은 본능적으로 놀이와 웃음을 싫어한다.
놀이는 자유와 비생산성을 무기로 기존 체제를 위협하고 웃음은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을 다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 편에 독을 발라 사람들이 웃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설정이 등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권력은 늘 놀이와 웃음을 두려워한다.
--- p.93~94
친절은 자기를 채찍질하며 반성하는 노력 없이도 세상과 자신을 구할 수 있다.
대화에서 소외돼 머뭇거리는 신입 사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 주변 동료에게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보거나 먼저 웃으며 말 건네기….
이런 일들은 자신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다른 이에겐 큰 힘이 돼주니 이보다 남는 장사가 있을까?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악인을 마주하게 된다.
소시오패스와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이 두려워지거나 그들처럼 사는 게 현명한 처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악인으로 가득하게 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칸트의 도덕적 상상력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사회와 집단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류의 역사는 꾸준히 증가하는 악인의 비율을 조정하여 균형을 회복하는 에너지가 사회에 내재돼 있음을 보여준다.
--- p.138~139
신입 시절엔 팀장이 어디서 썩은 사과 같은 일을 가져오는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
그중엔 아예 못 먹을 만큼 상한 사과도 많았다.
어느 날, 팀장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업무 회의에 대신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 사과 고르기의 구조를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보스가 보따리를 풀어 테이블 위에 열 개의 사과를 펼쳐 놓는다.
회의를 거쳐 우리 부문 임원은 그중 네 개를 가져온다.
국장은 이 가운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어도 될 사과는 제하고 세 개를 팀장에게 던진다.
팀장은 그중 이미 상한 걸 제하고 한두 개를 가져오는 구조다.
이런 시스템에선 사과를 아예 고르지 않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욕심이 지나쳐 사과를 주는 대로 척척 받아서도 안 되지만, 팀장 입장에서 가끔은 그런 사과들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불어 괜찮은 사과를 요령 있게 골라 오거나,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멀쩡한 부분만 잘 살려 가져오는 게 좋은 팀장의 역할임도 알게 됐다.
--- p.172~173
늦은 밤 편의점에 들렀다.
덕분에 출출할 때 배를 채워줄 간식과 시원한 콜라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슬렁거리며 밤길을 걷다 보니 벌써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실어가느라 분주했다.
덕분에 주변이 깔끔해져 청소 근로자들에게 감사했다.
강아지와 함께 벚꽃이 핀 어둑한 길을 산책하는 평화로운 광경은 밤에도 환히 불을 켜고 일하는 경찰관과 소방관, 의료진 덕분이다.
집에 와서 따끈한 핫도그를 먹고 휴대전화로 유튜브 콘텐츠를 본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 소시지 공장 근로자와 휴대전화 회사 직원,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감사했다.
그렇게 서로의 노동에 감사하는 사회가 될 때, 상대 직업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이 살아날 때, 노동은 사회를 지탱할 신성한 힘을 회복한다.
직업의 귀천은 희미해지고 누구든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일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만, 회사는 이윤 추구와 같은 별난 목적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회사라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은 밀림으로 들어가 미지의 부족에 몸을 맡기는 일과 닮아있다.
밀림은 인가 근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독초와 벌레, 야생동물이 득실거리는 위험한 곳이다.
그곳에 사는 부족은 길목마다 자기들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위험 표식을 덕지덕지 붙여놨다.
생존을 위한 나름의 규율이자 법칙인 셈이다.
이런 표식을 읽어가며 어렵게 당도한 미지의 부족 마을엔 괴팍한 족장이 살고 있다.
‘미래’나 ‘기획’, ‘전략’이란 이름을 가진 무당도 있다.
그들은 뜬금없이 화를 내거나 모든 게 잘못됐다며 고함을 지르곤 하는데, 부족 문화에 익숙지 않은 이방인 입장에서는 그들이 늘 화가 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 p.42~43
사회는 치열한 경쟁의 장이고 서로를 딛고 일어서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온통 나쁜 사람만 눈에 보이고 주변을 지키는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 결과 순수한 관계의 새가 찾아와도 무심코 손을 내젓거나 편한 사이라는 생각에 함부로 대해 내쫓는 우를 범한다.
“좋은 사람에게 더 잘하고, 나쁜 사람에게 신경 쓰지 말자.”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인간관계에 대한 교훈이다.
우리는 종종 나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악인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며 에너지를 낭비한다.
알량한 납덩이로 이 새도 저 새도 잡으려는 포수처럼 욕심을 부리다 좋은 사람은 떠나고 나쁜 사람만 주위에 바글대는 관계의 실패를 맛본다.
만약 순수한 관계의 새를 발견했다면 상대의 작은 변화도 알아챌 수 있도록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만나는 횟수가 뜸하면 관계가 소원해진다기보다 그 사람의 변화에 적응할 수 없기에 멀어지기 마련이다.
--- p.73
회사형 인간은 가면을 제 얼굴인 양 자랑하며 놀이가 아닌 공연을 시작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손과 발에는 의무와 욕망의 낚싯줄이 걸려 있다.
그들은 의외성과 우연성이 만든 재미 대신 자발성을 가장한 복종을 연출한다.
생산을 위한 꼭두각시로 살아가며 무대에서 춤을 추다 타인을 향해 섬뜩한 대사를 날린다.
“일을 놀이처럼 하란 말이야! 그래야 성과가 난다고!” 권력과 산업 사회의 추종자들은 본능적으로 놀이와 웃음을 싫어한다.
놀이는 자유와 비생산성을 무기로 기존 체제를 위협하고 웃음은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웃음을 다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희극 편에 독을 발라 사람들이 웃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설정이 등장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권력은 늘 놀이와 웃음을 두려워한다.
--- p.93~94
친절은 자기를 채찍질하며 반성하는 노력 없이도 세상과 자신을 구할 수 있다.
대화에서 소외돼 머뭇거리는 신입 사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 주변 동료에게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보거나 먼저 웃으며 말 건네기….
이런 일들은 자신에겐 사소한 일이지만 다른 이에겐 큰 힘이 돼주니 이보다 남는 장사가 있을까? 우리는 살면서 어쩔 수 없이 악인을 마주하게 된다.
소시오패스와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이 두려워지거나 그들처럼 사는 게 현명한 처사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악인으로 가득하게 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칸트의 도덕적 상상력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거나 악행을 저지르는 사회와 집단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준다.
악인으로 가득한 세상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무엇보다 인류의 역사는 꾸준히 증가하는 악인의 비율을 조정하여 균형을 회복하는 에너지가 사회에 내재돼 있음을 보여준다.
--- p.138~139
신입 시절엔 팀장이 어디서 썩은 사과 같은 일을 가져오는지 의아할 때가 있었다.
그중엔 아예 못 먹을 만큼 상한 사과도 많았다.
어느 날, 팀장이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업무 회의에 대신 들어간 적이 있는데, 그때 사과 고르기의 구조를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보스가 보따리를 풀어 테이블 위에 열 개의 사과를 펼쳐 놓는다.
회의를 거쳐 우리 부문 임원은 그중 네 개를 가져온다.
국장은 이 가운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먹어도 될 사과는 제하고 세 개를 팀장에게 던진다.
팀장은 그중 이미 상한 걸 제하고 한두 개를 가져오는 구조다.
이런 시스템에선 사과를 아예 고르지 않는 건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욕심이 지나쳐 사과를 주는 대로 척척 받아서도 안 되지만, 팀장 입장에서 가끔은 그런 사과들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불어 괜찮은 사과를 요령 있게 골라 오거나, 썩은 부분은 도려내고 멀쩡한 부분만 잘 살려 가져오는 게 좋은 팀장의 역할임도 알게 됐다.
--- p.172~173
늦은 밤 편의점에 들렀다.
덕분에 출출할 때 배를 채워줄 간식과 시원한 콜라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어슬렁거리며 밤길을 걷다 보니 벌써 청소차가 와서 쓰레기를 실어가느라 분주했다.
덕분에 주변이 깔끔해져 청소 근로자들에게 감사했다.
강아지와 함께 벚꽃이 핀 어둑한 길을 산책하는 평화로운 광경은 밤에도 환히 불을 켜고 일하는 경찰관과 소방관, 의료진 덕분이다.
집에 와서 따끈한 핫도그를 먹고 휴대전화로 유튜브 콘텐츠를 본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느끼게 해준 소시지 공장 근로자와 휴대전화 회사 직원, 크리에이터들에게도 감사했다.
그렇게 서로의 노동에 감사하는 사회가 될 때, 상대 직업에 대한 존중과 경외심이 살아날 때, 노동은 사회를 지탱할 신성한 힘을 회복한다.
직업의 귀천은 희미해지고 누구든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직업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 p.201~202
출판사 리뷰
온 마음으로 바라던 일터가 싫어진 건 왜일까?
어른의 삶은 대부분 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우리는 노동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매일 이를 악물고 출근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생활에 익숙해지면 당연하다는 듯 또 일과 일터를 미워한다.
한때는 온 마음으로 바라던 일터가 싫어지는 건 자신의 문제일까, 회사의 문제일까? 이 책 『일터에 관한 낯선 시선』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일과 일터에 깃든 인간적인 얼굴을 포착한 직업인의 에세이다.
회사라는 육체적?정신적 수용소에 갇혀 힘겨워하는 직업인들에게 일터에서 소모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25년간 홍보부터 편성, 기획까지 다양한 일을 해온 저자는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움츠린 태도는 일터가 남긴 대표적 상흔이다.
일터의 시간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자율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창의적인 놀이의 추억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은유로 일상을 새롭게 하기’, ‘다양한 거울로 자신 비추기’, ‘자기만의 거리 감각 갖기’, ‘놀이하는 사람 되기’ 등등.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에 문학과 철학,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인문적 지식을 곁들여 퇴색된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은 아이디어를 풀어놓는다.
지금부터라도 완성품만을 요구받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의 즐거움을 맛보는 삶을 꿈꿔보자고 독려하는 이 책은,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직업인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워라밸’은 일과 휴식이 아니라 일과 놀이의 균형이다!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즐겁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마음껏 발산해야 한다
매일 아침 알람을 끄고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직업인의 삶은 고통스럽다.
매번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출퇴근을 거듭하는 건 고되고 쓸쓸한 일이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한 사람처럼 고통의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걸까?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걸까? 월급이 낮아서 만족감이 떨어지는 걸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보지만, 통증의 선명한 감각만이 남을 뿐이다.
도대체 이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자는 많은 사람이 버거운 업무와 까다로운 인간관계에 지친 나머지 일터를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데, 미워하고 바꿔야 할 대상을 더 정교하고 신중하게 지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일터와 새로운 환경도 익숙해지면 다시 고통이 찾아올 수 있으니, 어쩌면 만악의 근원은 일이 아니라 익숙하고 지루한 일상일지 모른다는 의견이다.
애초에 일과 놀이는 하나였으나 근대 산업화를 거치며 놀이가 떨어져 나가면서 일은 온전한 고통으로 변해버렸다.
기울어진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업무에 매진하는 만큼 놀이에도 시간을 쏟으며 일터에서 고통을 받은 자아에 숨 쉴 틈을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가 말하는 일과 놀이의 균형은 단순히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마친 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찾아 실행함으로써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행위를 뜻한다.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거나,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그 자체로 즐겁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마음껏 발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계용 노동과 놀이용 노동이 큰 바퀴와 작은 바퀴처럼 합을 맞추어 굴러간다면, 삶의 질은 높아지고 우리는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몰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터와의 거리두기’부터 ‘무해한 진통제 복용법 익히기’까지
자아를 지키면서 건강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적 삶의 방식
회사는 개인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매출 증가, 예산 절감, 고객 만족도 향상 등 기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일의 기획부터 진행 과정, 결과 보고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그에 따른 상벌도 존재한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법한 사소한 실수도 브랜드 가치 손상을 따지며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바람에 모두가 긴장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표정 없는 가면을 쓰고 서로 사무적으로 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직과 퇴직의 전성시대, 돈과 고통의 관점으로 노동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직업과 일터에 대한 근본적 관점의 전환을 시도한다.
프로페셔널 출근자로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소박한 고민에서 시작해 일의 본질에 대한 탐구, 즐기는 현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칙,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에 이르는 비결까지 무뎌진 생존 감각을 되살려 다시 즐겁게 일하게 하는 인문학적 방법을 소개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사이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일터와의 거리두기’는 매일 8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며 일에 몰두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58쪽).
회사라는 단일 우주에 매몰되기보다는 취미, 학업, 자격증, 봉사, 운동 등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거울로 자신 비추기’는 자기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126쪽).
힘들고 지칠 때는 ‘무해한 진통제 복용법 익히기’를 참고하여 원인 분석보다는 지금의 고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의미를 부여해 보자(148쪽).
그런 다음 경제 보상형부터 신체 케어형, 영혼 충전형까지 일의 고통을 덜어주는 다양한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를 살아내자.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위인 동시에 타인을 위한 행위다
‘인간은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며 고행하듯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라는 노동관은 이제까지 현대인이 걸어야 할 마땅한 길이자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됐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자고로 열심히 일해야지”, “눕는 건 관에 들어가면 실컷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자주 회자하곤 했다.
덕분에 우리는 일의 가치나 자신의 취향 따위 따질 겨를도 없이 학교를 졸업하면 무언가에 홀린 듯 곧바로 직장에 들어가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저자는 이런 오염된 노동의 신화 때문에 일하는 보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사라지고 노동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일터에는 성실과 열심이란 태도만 남은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역설한다.
노동이 기계적으로 소비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서로를 지배하고 착취하게 될 뿐이다.
저자는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오염된 노동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익숙함이 우리를 지치게 하며, 일의 본질은 서로에게 노동을 빚지고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사랑하는 존재와 가족을 위해 노동한 나는 또한 너를 위해 일한 것이기도 하다.
어른의 삶은 대부분 일의 기억으로 채워진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우리는 노동으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매일 이를 악물고 출근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생활에 익숙해지면 당연하다는 듯 또 일과 일터를 미워한다.
한때는 온 마음으로 바라던 일터가 싫어지는 건 자신의 문제일까, 회사의 문제일까? 이 책 『일터에 관한 낯선 시선』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일과 일터에 깃든 인간적인 얼굴을 포착한 직업인의 에세이다.
회사라는 육체적?정신적 수용소에 갇혀 힘겨워하는 직업인들에게 일터에서 소모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지상파 방송사에서 25년간 홍보부터 편성, 기획까지 다양한 일을 해온 저자는 노동의 대가가 주어지는 일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고 말한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이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움츠린 태도는 일터가 남긴 대표적 상흔이다.
일터의 시간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자율적이고 비일상적이며 창의적인 놀이의 추억을 채워 넣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은유로 일상을 새롭게 하기’, ‘다양한 거울로 자신 비추기’, ‘자기만의 거리 감각 갖기’, ‘놀이하는 사람 되기’ 등등.
삶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에 문학과 철학, 영화와 예술에 대한 인문적 지식을 곁들여 퇴색된 직장 생활과 인간관계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은 아이디어를 풀어놓는다.
지금부터라도 완성품만을 요구받는 삶에서 벗어나 과정의 즐거움을 맛보는 삶을 꿈꿔보자고 독려하는 이 책은,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직업인에게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전환점이 되어줄 것이다.
‘워라밸’은 일과 휴식이 아니라 일과 놀이의 균형이다!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즐겁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마음껏 발산해야 한다
매일 아침 알람을 끄고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직업인의 삶은 고통스럽다.
매번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출퇴근을 거듭하는 건 고되고 쓸쓸한 일이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봉변을 당한 사람처럼 고통의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하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 걸까?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걸까? 월급이 낮아서 만족감이 떨어지는 걸까?’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보지만, 통증의 선명한 감각만이 남을 뿐이다.
도대체 이 고통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자는 많은 사람이 버거운 업무와 까다로운 인간관계에 지친 나머지 일터를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데, 미워하고 바꿔야 할 대상을 더 정교하고 신중하게 지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일터와 새로운 환경도 익숙해지면 다시 고통이 찾아올 수 있으니, 어쩌면 만악의 근원은 일이 아니라 익숙하고 지루한 일상일지 모른다는 의견이다.
애초에 일과 놀이는 하나였으나 근대 산업화를 거치며 놀이가 떨어져 나가면서 일은 온전한 고통으로 변해버렸다.
기울어진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 업무에 매진하는 만큼 놀이에도 시간을 쏟으며 일터에서 고통을 받은 자아에 숨 쉴 틈을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저자가 말하는 일과 놀이의 균형은 단순히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생계를 위한 노동을 마친 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을 찾아 실행함으로써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행위를 뜻한다.
타인의 기준에 부합하거나, 무언가를 생산하거나, 누군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롯이 그 자체로 즐겁고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마음껏 발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계용 노동과 놀이용 노동이 큰 바퀴와 작은 바퀴처럼 합을 맞추어 굴러간다면, 삶의 질은 높아지고 우리는 보다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몰입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일터와의 거리두기’부터 ‘무해한 진통제 복용법 익히기’까지
자아를 지키면서 건강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주체적 삶의 방식
회사는 개인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매출 증가, 예산 절감, 고객 만족도 향상 등 기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일의 기획부터 진행 과정, 결과 보고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그에 따른 상벌도 존재한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길 법한 사소한 실수도 브랜드 가치 손상을 따지며 모든 것이 돈으로 환산되는 바람에 모두가 긴장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표정 없는 가면을 쓰고 서로 사무적으로 대하게 된다.
저자는 이직과 퇴직의 전성시대, 돈과 고통의 관점으로 노동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벗어나 직업과 일터에 대한 근본적 관점의 전환을 시도한다.
프로페셔널 출근자로서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살 수 있을까?’라는 소박한 고민에서 시작해 일의 본질에 대한 탐구, 즐기는 현직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원칙, 궁극적으로 행복한 삶에 이르는 비결까지 무뎌진 생존 감각을 되살려 다시 즐겁게 일하게 하는 인문학적 방법을 소개한다.
회사가 요구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사이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일터와의 거리두기’는 매일 8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며 일에 몰두하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58쪽).
회사라는 단일 우주에 매몰되기보다는 취미, 학업, 자격증, 봉사, 운동 등 다양한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거울로 자신 비추기’는 자기만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126쪽).
힘들고 지칠 때는 ‘무해한 진통제 복용법 익히기’를 참고하여 원인 분석보다는 지금의 고통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 의미를 부여해 보자(148쪽).
그런 다음 경제 보상형부터 신체 케어형, 영혼 충전형까지 일의 고통을 덜어주는 다양한 진통제를 복용하며 하루를 살아내자.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위인 동시에 타인을 위한 행위다
‘인간은 노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며 고행하듯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라는 노동관은 이제까지 현대인이 걸어야 할 마땅한 길이자 이상적인 삶으로 제시됐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람 구실을 하려면 자고로 열심히 일해야지”, “눕는 건 관에 들어가면 실컷 할 수 있어”라는 말이 자주 회자하곤 했다.
덕분에 우리는 일의 가치나 자신의 취향 따위 따질 겨를도 없이 학교를 졸업하면 무언가에 홀린 듯 곧바로 직장에 들어가 일에만 몰두해야 했다.
저자는 이런 오염된 노동의 신화 때문에 일하는 보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사라지고 노동 생산성이 떨어졌으며, 일터에는 성실과 열심이란 태도만 남은 사람들이 가득하다고 역설한다.
노동이 기계적으로 소비되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서로를 지배하고 착취하게 될 뿐이다.
저자는 휴식을 죄악시하고 성실과 열심만을 강요하는 오염된 노동의 신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어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익숙함이 우리를 지치게 하며, 일의 본질은 서로에게 노동을 빚지고 그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데 있다는 설명이다.
사랑하는 존재와 가족을 위해 노동한 나는 또한 너를 위해 일한 것이기도 하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21일
- 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312g | 135*205*16mm
- ISBN13 : 9791193228067
- ISBN10 : 1193228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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