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Description
책소개
성탄절이 생겨난 뒤, 다시 말해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고 축제 삼기로 한 문화적 발명 이후, 인류는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그 이야기들은 크리스마스에 나누는 인사말처럼 따뜻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전한다.
대개는 절망 끝에 희망이 오고 맑은 영혼은 구원받는다는 결말이다.
그런 희망이 섣부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낌없는 축복의 언어와 선량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은 삭막한 세상에 그나마 온기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달콤한 위로와 약속으로 현실의 균열을 봉합하지 않는 이야기, 읽고 나면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그만큼 단단하게도 해주는 이야기, 희망이 그러하듯 절망 또한 함부로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소 괴팍한 산타클로스가 된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만을 정성껏 골라 독자에게 건네본다.
그 이야기들은 크리스마스에 나누는 인사말처럼 따뜻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전한다.
대개는 절망 끝에 희망이 오고 맑은 영혼은 구원받는다는 결말이다.
그런 희망이 섣부르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낌없는 축복의 언어와 선량한 이웃에 대한 상상력은 삭막한 세상에 그나마 온기를 더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달콤한 위로와 약속으로 현실의 균열을 봉합하지 않는 이야기, 읽고 나면 마음을 무겁게 만들지만 그만큼 단단하게도 해주는 이야기, 희망이 그러하듯 절망 또한 함부로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야기들 말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다소 괴팍한 산타클로스가 된 마음으로, 그런 이야기만을 정성껏 골라 독자에게 건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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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9 전나무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27 경찰과 찬송가 - 오 헨리
41 신호수 - 찰스 디킨스
67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쥘 쉬페르비엘
99 죽음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13 낙엽 쓰는 사람 - 뮤리엘 스파크
125 한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로베르트 발저
133 엮은이의 글
139 작가 소개
143 원전 및 저작권
27 경찰과 찬송가 - 오 헨리
41 신호수 - 찰스 디킨스
67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쥘 쉬페르비엘
99 죽음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113 낙엽 쓰는 사람 - 뮤리엘 스파크
125 한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 로베르트 발저
133 엮은이의 글
139 작가 소개
143 원전 및 저작권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생쥐들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정말이지 호기심 많은 생명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예요? 가본 적 있다면 말해줘요.
혹시 식료품 창고에도 가본 적 있나요? 선반마다 치즈가 가득하고 들보마다 햄이 매달려 있는 곳 말이에요.
거기선 기름 초 위에서 춤출 수도 있고, 홀쭉이로 들어갔다가 뚱뚱이가 되어서 나올 수도 있다던데요.”
“그런 곳은 몰라.” 전나무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숲을 알아.
햇살이 쏟아지고 작은 새들이 노래하는 곳이지.”
전나무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은 생쥐들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숨죽인 채 귀 기울여 듣고는 감탄했다.
“와! 정말 많은 걸 보면서 살았군요.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가?” 전나무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그 시절은 제법 즐거웠지.”
전나무는 사탕과 양초로 장식되었던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도 들려주었다.
“와, 운이 참 좋았군요, 늙은 전나무 아저씨.” 생쥐들이 감탄했다.
--- p.20 「전나무」 중에서
소피는 문득 두려워졌다.
무슨 끔찍한 마법에라도 걸려서 자신에게 체포 면역 세포 같은 게 생겨버린 건 아닐까? 휘황찬란한 극장 앞에 유유히 서 있던 경찰을 발견한 소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공질서 문란 행위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인도 위에서 소피는 주정뱅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춤도 추고 악도 쓰며 하늘이 떠나가라 소란을 피웠다.
경찰관은 곤봉을 빙빙 돌리면서 소피에게 등을 돌리고는 한 행인에게 말했다.
“예일대 녀석들 중 하납니다.
오늘 경기에서 하트퍼드 대학에 완승을 거둔 게 신나서 다들 저 야단이지 뭡니까.
시끄럽지만 해 끼칠 건 없으니 오늘은 내버려두라는 지시입니다.”
낙담한 소피는 헛된 소란을 멈추었다.
정녕 그 어떤 경찰도 자신을 체포해 가지 않을 셈인가?
--- p.35 「경찰과 찬송가」 중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앞으로 몸을 숙이며 말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속삭이는 것보다는 약간 컸지만 여전히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제 두 번은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괴롭히는 게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젯밤 저는 선생님을 다른 누군가로 착각했어요.
그게 제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착각해서요?”
“아뇨, 그 누군가 때문에요.”
“그게 누구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닮았어요?”
“모르겠습니다.
얼굴은 보지 못했거든요.
왼팔로 얼굴을 가리고, 오른팔은 흔들고 있었어요.
아주 격렬하게요.
이렇게 말입니다.”
나는 그가 하는 동작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 절박하게 “피해요, 제발!”이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몸짓 같았다.
--- p.51 「신호수」 중에서
당나귀는 구유의 왼쪽에, 소는 오른쪽에 서 있었다.
예수가 탄생할 때와 같은 위치였다.
소는 형식과 의례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런 배치에 유난히 집착했다.
소와 당나귀는 마치 보이지 않는 화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라도 하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다소곳이 그 자리를 지켰다.
아기는 다시 눈꺼풀이 감겼다.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잠의 문턱 몇 걸음 너머에는 빛나는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아니 어쩌면 아기에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사는 예수의 꿈에서 걸어 나와 마구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향해 몸을 숙이고 아기의 머리 둘레에 투명한 후광을 그려주었다.
두 번째 후광은 마리아의 머리에, 세 번째 후광은 요셉의 머리에 그려졌다.
천사는 눈부신 깃털이 달린 날개를 휘날리며 다시 사라져 갔다.
그 날개는 빛나는 흰색이었는데 마치 바다의 파도에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물거품처럼 시시각각 빛깔이 변했다.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소가 말했다.
“천사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나 당나귀나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니까.
게다가 우리가 무슨 공을 세웠다고 저런 후광을 받겠어?”
--- pp.71-72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중에서
어미 캥거루는 자신의 새끼 캥거루 하나를 예수에게 선물로 드리겠다고 우겼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선물이며, 집에는 다른 새끼들도 많기 때문에 받으셔도 괜찮다는 것이 어미 캥거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고 캥거루는 결국 새끼를 품에 안고 돌아갔다.
타조는 운이 좋았다.
사람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마구간 구석에 알을 하나 낳고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당나귀가 그 ‘기념품’을 발견했다.
이처럼 크고 단단한 알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나귀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었다.
요셉이 그 알로 오믈렛을 만들어 먹자 당나귀의 착각은 금세 풀렸다.
물살이들은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정 탓에 직접 오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갈매기에게 대리 방문을 부탁했다.
새는 노래를, 집비둘기는 사랑을, 원숭이는 장난기를, 고양이는 시선을, 산비둘기는 목젖의 부드러움을 각각 선물로 남기고 떠났다.
이 밖에도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어 했던 동물들이 있었다.
아직 세상에 발견되지 않아 이름이 없는 이 동물들은 땅속 깊은 곳이나 바다의 심연, 별빛도 달빛도 심지어 계절의 변화도 닿지 않는 영원한 밤 속에서 이름 붙여지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이었다.
--- pp.89-90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중에서
밤은 푸르스름했다.
달빛이 환했다.
하늘에 엷은 구름이 드문드문 떠다녔지만 얼음처럼 섬세한 달은 가리지 않았다.
마당 여기저기 달빛을 받은 눈더미에 쇳조각처럼 날카로운 반짝임이 일었고, 비둘기빛 서리가 앉은 나무들은 시커먼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별채의 방은 난방이 잘 되어 따뜻했다.
이반이 아담한 전나무를 심은 질그릇 화분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슬렙초프가 겨드랑이에 나무상자를 끼고 본채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뺨에는 잿빛 먼지가 묻어있었다.
이반은 마침 십자가 모양으로 다듬은 전나무 꼭대기에 양초를 달려는 참이었다.
슬렙초프는 전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그게 뭔가?”
이반은 주인에게서 상자를 받아 들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야, 저리 치워버리게.” 슬렙초프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그날을 잊어버릴 수 있다니.
--- p.107 「죽음」 중에서
당시 조니는 고모와 함께 살았다.
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연휴에 조니의 고모인 게디스 여사가 조카의 소책자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제목은 『크리스마스에 부자가 되는 법』이었다.
꽤 솔깃한 제목이었지만, 읽어보니 크리스마스에 부자가 되려면 크리스마스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니의 첫 시도에 불과했다.
3년도 지나지 않아 조니는 ‘크리스마스폐지협회’를 설립했다.
그가 새로 쓴 책 『크리스마스를 폐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이 끊이지 않았고, 나도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덮을 무렵 그의 논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언젠가 나는 헌책방에서 그 책을 6펜스에 다시 구했는데, 세월이 흘렀어도 크리스마스가 국가적 범죄라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놀라울 만큼 치밀해 보였다.
--- p.114 「낙엽 쓰는 사람」 중에서
밖으로 나오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들로부터 떠나왔다.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서글펐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욱한 눈발 사이로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시는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눈송이들이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며 사랑스럽게 흩날렸다.
한 송이가 입술에 닿으니 마치 입맞춤을 받은 기분이었다.
모자와 외투는 이내 새하얗게 변했고 거리도 집도 행인도 모두 눈으로 덮였다.
고요 속에 불빛들이 반짝였다.
그 순간 세상에는 오직 아늑한 집과 다정한 사람들, 즐거운 기운과 친절한 말, 형언할 수 없는 평안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정말이지 호기심 많은 생명체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예요? 가본 적 있다면 말해줘요.
혹시 식료품 창고에도 가본 적 있나요? 선반마다 치즈가 가득하고 들보마다 햄이 매달려 있는 곳 말이에요.
거기선 기름 초 위에서 춤출 수도 있고, 홀쭉이로 들어갔다가 뚱뚱이가 되어서 나올 수도 있다던데요.”
“그런 곳은 몰라.” 전나무가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숲을 알아.
햇살이 쏟아지고 작은 새들이 노래하는 곳이지.”
전나무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작은 생쥐들은 난생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숨죽인 채 귀 기울여 듣고는 감탄했다.
“와! 정말 많은 걸 보면서 살았군요.
얼마나 행복했을까!”
“내가?” 전나무는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 그 시절은 제법 즐거웠지.”
전나무는 사탕과 양초로 장식되었던 크리스마스이브의 기억도 들려주었다.
“와, 운이 참 좋았군요, 늙은 전나무 아저씨.” 생쥐들이 감탄했다.
--- p.20 「전나무」 중에서
소피는 문득 두려워졌다.
무슨 끔찍한 마법에라도 걸려서 자신에게 체포 면역 세포 같은 게 생겨버린 건 아닐까? 휘황찬란한 극장 앞에 유유히 서 있던 경찰을 발견한 소피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공공질서 문란 행위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인도 위에서 소피는 주정뱅이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춤도 추고 악도 쓰며 하늘이 떠나가라 소란을 피웠다.
경찰관은 곤봉을 빙빙 돌리면서 소피에게 등을 돌리고는 한 행인에게 말했다.
“예일대 녀석들 중 하납니다.
오늘 경기에서 하트퍼드 대학에 완승을 거둔 게 신나서 다들 저 야단이지 뭡니까.
시끄럽지만 해 끼칠 건 없으니 오늘은 내버려두라는 지시입니다.”
낙담한 소피는 헛된 소란을 멈추었다.
정녕 그 어떤 경찰도 자신을 체포해 가지 않을 셈인가?
--- p.35 「경찰과 찬송가」 중에서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앞으로 몸을 숙이며 말을 시작했다.
목소리는 속삭이는 것보다는 약간 컸지만 여전히 낮고 조심스러웠다.
“이제 두 번은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를 괴롭히는 게 무엇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젯밤 저는 선생님을 다른 누군가로 착각했어요.
그게 제 마음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착각해서요?”
“아뇨, 그 누군가 때문에요.”
“그게 누구죠?”
“저도 모르겠습니다.”
“저를 닮았어요?”
“모르겠습니다.
얼굴은 보지 못했거든요.
왼팔로 얼굴을 가리고, 오른팔은 흔들고 있었어요.
아주 격렬하게요.
이렇게 말입니다.”
나는 그가 하는 동작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마치 절박하게 “피해요, 제발!”이라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몸짓 같았다.
--- p.51 「신호수」 중에서
당나귀는 구유의 왼쪽에, 소는 오른쪽에 서 있었다.
예수가 탄생할 때와 같은 위치였다.
소는 형식과 의례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이런 배치에 유난히 집착했다.
소와 당나귀는 마치 보이지 않는 화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기라도 하듯이 미동도 하지 않고 오랜 시간 다소곳이 그 자리를 지켰다.
아기는 다시 눈꺼풀이 감겼다.
졸려서 견딜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잠의 문턱 몇 걸음 너머에는 빛나는 천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기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려고, 아니 어쩌면 아기에게 무언가를 배우려고 기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사는 예수의 꿈에서 걸어 나와 마구간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향해 몸을 숙이고 아기의 머리 둘레에 투명한 후광을 그려주었다.
두 번째 후광은 마리아의 머리에, 세 번째 후광은 요셉의 머리에 그려졌다.
천사는 눈부신 깃털이 달린 날개를 휘날리며 다시 사라져 갔다.
그 날개는 빛나는 흰색이었는데 마치 바다의 파도에서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는 물거품처럼 시시각각 빛깔이 변했다.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소가 말했다.
“천사에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나나 당나귀나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니까.
게다가 우리가 무슨 공을 세웠다고 저런 후광을 받겠어?”
--- pp.71-72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중에서
어미 캥거루는 자신의 새끼 캥거루 하나를 예수에게 선물로 드리겠다고 우겼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선물이며, 집에는 다른 새끼들도 많기 때문에 받으셔도 괜찮다는 것이 어미 캥거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요셉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고 캥거루는 결국 새끼를 품에 안고 돌아갔다.
타조는 운이 좋았다.
사람들이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마구간 구석에 알을 하나 낳고는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당나귀가 그 ‘기념품’을 발견했다.
이처럼 크고 단단한 알은 처음 보았기 때문에 당나귀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었다.
요셉이 그 알로 오믈렛을 만들어 먹자 당나귀의 착각은 금세 풀렸다.
물살이들은 물 밖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사정 탓에 직접 오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갈매기에게 대리 방문을 부탁했다.
새는 노래를, 집비둘기는 사랑을, 원숭이는 장난기를, 고양이는 시선을, 산비둘기는 목젖의 부드러움을 각각 선물로 남기고 떠났다.
이 밖에도 그 자리에 함께하고 싶어 했던 동물들이 있었다.
아직 세상에 발견되지 않아 이름이 없는 이 동물들은 땅속 깊은 곳이나 바다의 심연, 별빛도 달빛도 심지어 계절의 변화도 닿지 않는 영원한 밤 속에서 이름 붙여지기를 기다리는 존재들이었다.
--- pp.89-90 「구유 옆의 소와 당나귀」 중에서
밤은 푸르스름했다.
달빛이 환했다.
하늘에 엷은 구름이 드문드문 떠다녔지만 얼음처럼 섬세한 달은 가리지 않았다.
마당 여기저기 달빛을 받은 눈더미에 쇳조각처럼 날카로운 반짝임이 일었고, 비둘기빛 서리가 앉은 나무들은 시커먼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별채의 방은 난방이 잘 되어 따뜻했다.
이반이 아담한 전나무를 심은 질그릇 화분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슬렙초프가 겨드랑이에 나무상자를 끼고 본채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뺨에는 잿빛 먼지가 묻어있었다.
이반은 마침 십자가 모양으로 다듬은 전나무 꼭대기에 양초를 달려는 참이었다.
슬렙초프는 전나무를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그게 뭔가?”
이반은 주인에게서 상자를 받아 들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아니야, 저리 치워버리게.” 슬렙초프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그날을 잊어버릴 수 있다니.
--- p.107 「죽음」 중에서
당시 조니는 고모와 함께 살았다.
나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연휴에 조니의 고모인 게디스 여사가 조카의 소책자 하나를 나에게 건넸다.
제목은 『크리스마스에 부자가 되는 법』이었다.
꽤 솔깃한 제목이었지만, 읽어보니 크리스마스에 부자가 되려면 크리스마스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조니의 첫 시도에 불과했다.
3년도 지나지 않아 조니는 ‘크리스마스폐지협회’를 설립했다.
그가 새로 쓴 책 『크리스마스를 폐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죽는다』는 공공도서관에서 대출이 끊이지 않았고, 나도 마침내 내 차례가 되어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제법 설득력이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덮을 무렵 그의 논리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언젠가 나는 헌책방에서 그 책을 6펜스에 다시 구했는데, 세월이 흘렀어도 크리스마스가 국가적 범죄라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놀라울 만큼 치밀해 보였다.
--- p.114 「낙엽 쓰는 사람」 중에서
밖으로 나오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늘 이런 식으로 사람들로부터 떠나왔다.
반쯤은 우습고 반쯤은 서글펐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자욱한 눈발 사이로 저녁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시는 마치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눈송이들이 부드럽게 소용돌이치며 사랑스럽게 흩날렸다.
한 송이가 입술에 닿으니 마치 입맞춤을 받은 기분이었다.
모자와 외투는 이내 새하얗게 변했고 거리도 집도 행인도 모두 눈으로 덮였다.
고요 속에 불빛들이 반짝였다.
그 순간 세상에는 오직 아늑한 집과 다정한 사람들, 즐거운 기운과 친절한 말, 형언할 수 없는 평안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 p.129 「한 편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중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11일
- 쪽수, 무게, 크기 : 144쪽 | 174g | 110*187*10mm
- ISBN13 : 9791198650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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