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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가 들뢰즈
비평가 들뢰즈
Description
책소개
“들뢰즈는 예술 자체 안에 숨겨진 혁명적 힘을 일깨워
클리셰의 무정란 속에서 잠든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파괴한다.”


철학적 ‘비판’에서 예술 ‘비평’으로
재현이 아닌 생성으로서의 예술을 사유하는 창조적 비평

“언젠가, 아마도, 이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다.”?미셸 푸코
“들뢰즈의 비평은 예술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적 생산과 맞닿아 있다.”?프레드릭 제임슨
“들뢰즈의 철학적 글쓰기는 개념을 창조하는 시적 행위와도 같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2025년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들뢰즈는 서양 철학의 전통적 사유 모델을 뒤집고 ‘차이’, ‘반복’, ‘생성’ 등의 독창적 개념을 창안함으로써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런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 비평이다.
들뢰즈의 저작 활동 전반에 걸쳐 문학, 회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이는 단순한 철학 개념의 예시나 부차적 활동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 비평은 그의 철학적 개념이 형성되고 구체화되는 실질적 토대이자 실험장이었다.
또한 그의 예술 비평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젖혔다.

들뢰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간 그의 철학을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비평의 영역에서 고찰해 온 연구자들이 모여 들뢰즈의 여러 면모 가운데 ‘예술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집중 조명하는 저작을 출간하며 동시에 강연을 통해(2025.10.25.
온라인)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고자 한다.

한국에서도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고, 철학의 전공 영역 밖에서는 특히 들뢰즈 철학의 예술적 면모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쏟아지는 들뢰즈 관련 도서 가운데 그의 사유가 가진 독창성이 예술을 어떻게 변혁적으로 읽어냈는지를 제대로 부각한 책은 없었다.
그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이 기획되었다.
‘비판’, ‘비평’을 뜻하는 ‘critique’은 니체론과 스피노자론을 관통하는 들뢰즈의 근본 개념이며, 이에 대한 그의 이해는 ‘파괴와 창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파괴하고 창조하는 자로서의 들뢰즈를 부각할 때, 우리는 비평가 들뢰즈, 그리고 예술로서의 비평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면은 사유가 촉발되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4인의 필자가 참여했다.
이 공동 집필은, 학계에서 통상 이루어지는 것처럼 다수의 필자에게 원고를 의뢰하고 이를 취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글에 관하여 필자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여 작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청탁과 취합만을 통해서는 한 권의 책이 가져야 하는 ‘통일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으며, 개개의 원고가 일방적으로 각 필자들의 관심사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공동 저작’이라 보기 어렵다.
이 같은 한계를 반성하며, 문체와 내용 양 측면 모두에서 일관된 통일적인 형태를 갖출 것을 이상으로 삼고 공동 저작을 쓰고자 했다.
집필 과정 내내 서로의 원고를 함께 읽어가면서 자유롭게 수정 사항을 제안하고 다듬는 방식으로 ‘협업’의 형태에 걸맞은 작업을 실천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또한 이 책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에게 마지막 한 장(章)을 할애함으로써 내년에 찾아올 푸코 탄생 100주년 역시 기념하고자 한다.
들뢰즈와 푸코의 사상은 한 살 터울의 이 두 친구가 한평생 그려온 우정의 궤적처럼 때로 만나고 때로 어긋나지만, 분명 함께 중첩해야 비로소 보이는 그림들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들뢰즈의 예술 비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도 분야별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먼저 들뢰즈가 ‘예술’과 ‘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고, 이후 프루스트, 카프카 등을 다룬 문학 비평, 세잔, 베이컨, 바로크 미술론 등에서 드러난 미술 비평, 리토르넬로 개념을 바탕으로 음악사를 구분한 음악 비평, 『시네마』에서 드러난 영화 비평까지 조명하면서 그의 예술론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코가 그의 평생의 작업에서 전개하며 변천시켜 온 예술론을 함께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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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일러두기
약어표

1 비평의 개념
비판에서 비평으로?예술 비평의 기원

2 문학 비평
징후학의 실천과 소수 문학의 힘?프루스트와 카프카

3 미술 비평
감각의 논리?추상을 넘어 형상으로

4 음악 비평
리토르넬로의 음악사?고전주의, 낭만주의, 현대 음악

5 영화 비평
마주침의 예술?실천으로서의 영화 비평

6 보론
미셸 푸코의 예술 비평?푸코 사유에서 예술과 비평의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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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책 속으로
‘가치’ 있다고 말하는 대상들은 모두 ‘해독해야 할 미지의 기호들’이다.
비판이 예술의 세계 속에 들어왔을 때 가지게 되는 이름인 ‘비평’은 기존의 법칙과 클리셰(Cliche), 즉 재인식의 대상을 뛰어넘어 이 기호들을 식별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호들의 해독은 이미 주어져 있는 진리가 아니라, 여태껏 없었던 진리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사유의 창조성을 드러낸다.
--- p.33

기호 안에 감싸여 있는 것은 바로 본질이다.
기호는 대상이 아니라 본질을 가리키고 있으며, 기호의 의미는 주관의 연상 속에 있지 않고, 주관적인 것과 상관없는 본질이다.
기호로부터 본질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구체적으로 본질이란 무엇인가? 들뢰즈가 프루스트에게서 가장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예술의 기호’를 보자.
예술작
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기호로서의 예술과 맞닥뜨려 예술작품 안에 내재하는 본질을 해독한다는 뜻이다.
그 본질이란 바로 ‘차이’와 ‘반복’이다.
--- p.47

카프카 문학의 어떤 측면은 바로 위와 같이 서술된 언어적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기능한다.
카프카 문학은 “전제적 시니피앙에 맞서는 혁명적 분열(schize revolutionnaire)”을 엿보게 해준다고 표현해도 좋겠다.
특히 카프카의 ‘동물 소설들’이 그렇다.
핵심적인 구절들을 읽어보자.
“카프카가 자기 방에 처박혀 하는 일은 동물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소설의 본질적 목적이기도 하다.” “그는 원숭이, 또는 곤충, 또는 개 또는 쥐가 되기 위해 인간이기를 그만둔다.
동물이 된다.
비인간이 된다.
진실로 목소리, 음향 때문에 동물이 되는 것이다.”
--- p.57

문학은 놀랄 만큼 자주 클리셰로 가려진다.
아둔하고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부족한 비평가가, 불행하게도 클리셰를 자신이 따라야 할 ‘이론’으로 편안하게 추종할 때 그렇다.
그리하여 독자와 작품 모두가 죽어버린다.
진정한 비평은 문학을 보이지 않게 하는 클리셰의 먼지 낀 유리창을 깨트려버리고, 우리 자신을 임의적으로 제한하는 개념들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작품을 창조하는 마지막 심급 또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심급은 바로 비평일 것이다.
비평이 예술을 완성하고 마감하는 마지막 말이다.

--- p.61

들뢰즈는 미술 비평이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비평은 그림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에 골몰함으로써 작품을 언어로 환원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문제는 그림이 쓸모없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비평은 작품에 형이상학을 적용함으로써 “회화 위에 덧씌워진 문학”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렇듯 작품의 존재 가치를 사라지게 하거나 작품의 의미를 과장되게 부풀리는 두 위험을 모두 경계하며, 들뢰즈는 베이컨에 대해 글을 쓰는 가운데 자신이 목표로 한 것은 “회화 안에서, 그리고 회화를 통해 조각된 개념을 추출하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 p.67

들뢰즈에 의하면 예술의 과제는 비가시적인 힘을 가시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들뢰즈는 예술의 본질을 모방(mimesis)으로 간주해 왔던 오래된 선입견으로부터 예술을 해방한다.
오래전 플라톤이 선분을 그으며 말했듯, 감각적 사물이 이데아를 모방하여 형성된 것이며 예술작품은 이들을 모사한 이차적 재현에 불과한 것이라면, 예술작품은 진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열등한 존재자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들뢰즈는 ‘어떤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선입관 자체를 무너뜨린다.
예술이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을 포착하여 그려내는 일이라면, 이제 예술의 본성은 모방이 아닌 생성으로, ‘창조’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낼 수 있는가? 들뢰즈가 베이컨의 작품으로부터 발견한 것은 이 문제에 관한 하나의 독창적인 응답이다.
“베이컨의 형상들은 회화의 역사에서 나온 다음의 질문에 대한 가장 경이로운 대답 가운데 하나이다.
--- p.74

‘그림이 글쓰기에 불을 붙인다’고 말함으로써 들뢰즈는 비평가들이 자랑했던 예지계의 시민권을 박탈한다.
비평의 과제는 더 이상 원형(原型)을, 곧 불멸하는 위대한 가치들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세계에서 감응하며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이 재현을 넘어선 감각을 현시함으로써 사유를 촉발한다면, 비평은 개념을 창조함으로써 그렇게 촉발된 사유가 흐를 수 있는 길을 형성한다.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던 것, 혹은 감히 이름 붙일 수 없었던 것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비평은 현시된 감각을 실재화하라는 예술의 요청에 응답한다.

--- p.116

들뢰즈는 모든 음악에 리토르넬로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위대한 음악가의 음악에서는 음악가 자신이 리토르넬로를 서로 맞물리게 놓는 것이 아니라, 리토르넬로가 서로 섞여 더욱 심오한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낸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어떻게 리토르넬로를 연결하고 변형하는가보다는 리토르넬로가 어떻게 또 다른 리토르넬로를 만들어내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들뢰즈는 음악을 ‘리토르넬로의 모험’(l’aventure d’une ritournelle)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리토르넬로가 어떻게 영토성으로부터 떠나게 되는가에 따라 고전주의(classicisme), 낭만주의(romantisme), 현대(moderne)라는 각 시대의 음악이 펼쳐진다.
--- p.121

비평은 창조물인 작품에 제한되는 해설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창조적인 작업이다.
이 창조적인 작업으로서의 비평과 징후학이 기존의 학문을 대체한다.
비평이 창조의 과업을 수행한다고 해서, 비평 자체가 사전(辭典)에 없는 새로운 말을 고안해 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이는 창조물인 작품이 새로운 말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같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이 글이 다룰 리토르넬로, 환경(milieu), 대지(terre), 코스모스(cosmos) 등등의 개념들도 그 외관은 이미 있어왔던 것일지라도 그 함의는 들뢰즈가 음악사를 새롭게 해석하기 위해 창조한 것이다.
--- p.22

들뢰즈는 리토르넬로의 개념을 통해 영토화하고 탈영토화하는 힘들을 그려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들을 수 없는 힘들을 들리게 만드는 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사유는 음악을 단순히 철학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음악적 창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 p.144

들뢰즈의 『시네마』(1983, 1985)는 철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시도한 바 없는, 영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서다.
영화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는 다른 예술에 비하여 많지 않기도 하지만, 들뢰즈 이전에는 영화사 전체를 아우르며 이토록 풍부한 논의를 펼친 적이 없었다.
--- p.153

들뢰즈는 영화와 다른 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의 실천으로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이미지와 기호에 대한 새로운 실천이며, 철학은 이에 대한 개념적 실천으로서의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 p.154

“영화에 정신적 이미지(image mentale)를 도입하고 다른 모든 이미지들을 완결하고 완성하는 것 또한 히치콕의 과업이었다.” 히치콕 영화의 모든 장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해석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들뢰즈는 이를 ‘정신적 이미지’라 부르고, 이 이미지는 지각-이미지, 변용-이미지, 행동-이미지를 해석 없이는 성립되지 않는 이미지로 만든다.
즉 해석이 침투함으로써 이미지들은 해석에 의해 변형되기 때문에, “관객을 영화(film) 속에 포함시키고 다시 그것을 정신적 이미지 속에 포함시킴으로써 히치콕은 시네마(cinema)를 완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p.182

우리는 시간-이미지에 이르러 영화의 진정한 역량을 발견한다.
시간-이미지의 영화는 유기적 단일성에 저항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참과 거짓, 선과 악 등 관습적인 판단 체계를 와해하는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가기 때문이다.
재인식의 체계 자체에 의문을 품고 그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바로 시간-이미지의 영화가 가진 역량이다.
들뢰즈에게 재인식은 국가적 가치, 종교적 가치, 관습적 가치들을 재발견하고 재승인하는 문제와 늘 연결되어 있다.
물음을 던지고 그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은 또 다른 가치를 고착화하고 전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창조를 통해 그 어떤 진리와 가치가 고정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예술로서 영화는 이러한 거짓의 역량으로서만 그 자신의 고유한 역량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 p.201-202

예술에 대한 푸코의 입장 변화는 푸코가 언제나 다른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수행한 비판 작업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을 이해해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예술은 각각 지식, 권력, 주체화와의 관계 속에서 사유되었고, 특징과 기능을 부여받았으며, 위상이 결정되었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푸코의 분석에 접근하려 할 때, 우리는 그것이 언제나 그의 비판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푸코의 예술 비평은 비판과 동시에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 p.208

더 이상 예술은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 속에서 다른 에피스테메를 가리켜 보이는 특권적이고 무거운 과제를 짊어지지 않는다.
비판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무로 제시되는 것들로부터 가능한 넘어섬의 형태를 발견함으로써 현재의 의무와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풀려나게 하는 것처럼, 예술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오늘날의 규범과 규준을 거부하고 축소하며, 그렇게 형성된 공간에서 현재와 다른 말하기, 다른 그리기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 p.248

출판사 리뷰
비평의 개념: 비판과 비평

들뢰즈를 예술과 연결해 주는 핵심적인 고리는 무엇보다도 ‘비평’이다.
단지 들뢰즈가 추상적인 차원에서 예술을 다루기보다 구체적인 예술 작품에 밀착해서 사유를 진전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그가 비평 개념의 근본에 자리 잡은 비판 개념을 일깨우며 비평의 힘을 시험해 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비평 개념을 그 기원에서부터 따져 들여다보는 1장은 칸트로부터 시작해 니체를 거쳐 들뢰즈 자신과 푸코까지에 이르는 비판 개념의 역사를 살펴본다.


“‘비판’과 ‘비평’은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 나온 같은 본성의 열매들로서, 둘 다 Kritik 또는 critique이라는 같은 단어로 일컬어진다.
‘예술 비평’은 철학이 오래도록 숙고해 온 ‘비판’의 동전 뒷면에 새겨진 근사한 초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도록 두터운 의미의 층들을 자신 안에 만들어온 저 비평 개념에서 들뢰즈가 길어 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어되지 못할 것임에도 자신을 유지하려 해온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문제에 부치고 폐기하는 행위로서의 비판이다.
비판이 곧 들뢰즈 예술 비평 자체의 얼굴이다.
들뢰즈의 비평은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의 예술 자체 안에 숨겨진 혁명적 힘을 일깨워 클리셰의 무정란 안으로 들어가 잠든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파괴한다.
이러한 파괴와 더불어, 저 혁명적 힘을 포착하기 위한 말들, 바로 비평의 언어가 창조된다.
클리셰를 피해 사유를 인도해 줄 언어를 찾아 나서는 일은 그야말로 ‘창조’이다.
이런 개념의 창조 자체를 들뢰즈는 철학과 동일시했다.”? 「서문」에서

들뢰즈의 비판은 칸트의 비판과는 다르다.
칸트의 비판이 유한한 이성의 자율적 복종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이성이 통용되는 가치들을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즉 들뢰즈의 주요 개념인 ‘재인식’에 해당할 뿐이다.
들뢰즈의 비판은 이 기존의 가치들 그 자체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다.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비판, 이 비판이 예술의 세계 속에 들어왔을 때 가지게 되는 이름인 ‘비평’은 기존의 법칙과 클리셰(Cliche), 즉 재인식의 대상을 뛰어넘어 해독해야 할 미지의 기호들을 식별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호들의 해독은 이미 주어져 있는 진리가 아니라, 여태껏 없었던 진리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사유의 창조성을 드러낸다.
‘예술적 비평의 핏줄에는 그 기원에서부터 길어 올린 철학적 비판이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삶 전체를 통해 이런 비평 개념을 간직했다.

문학 비평: 프루스트, 카프카 그리고 들뢰즈

“들뢰즈의 ‘문학 비평(critique)’은 프루스트와 카프카라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들을 중심에 두고 짜였다.
현대 문학의 핵심에 놓인 이 작가들에 대해 비평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들뢰즈는 현대 문학에서 비평이 가져야만 하는 위상에 대해 주장한다.
이 비평의 출발점은 이미 통용되는 법칙과 가치, 즉 클리셰를 다시 알아보는 일, 즉 재인식에 대한 ‘비판’(critique)이다.


예컨대 이런 의혹들과 더불어서 말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소통을 가치 있는 행위로 권장한다고 해서, 객관화할 수 있는 소통의 말에는 우리를 진실로 이끄는 의미가 자리 잡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객관주의 비판) 세상에 가족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욕망도 아버지·어머니라는 주형(鑄型)에 부어져 불가피한 정체(부성적 법에 의해 죄의식을 수반하는 욕망)를 얻었다고 믿어야 하는가?(오이디푸스 비판) ‘나’라고 말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있다고 해서, 발화의 기원이 되는 주체성이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주체 개념 비판) 한마디로, 겨우 우리를 클리셰 속에 잡아두기 위해서 또는 클리셰를 확인시키기 위해서, 문학은 우리 앞에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을 텐데도, 문학은 놀랄 만큼 자주 클리셰로 가려진다.
아둔하고 위험을 무릅쓸 용기가 부족한 비평가가, 불행하게도 클리셰를 자신이 따라야 할 ‘이론’으로 편안하게 추종할 때 그렇다.
그리하여 독자와 작품 모두가 죽어버린다.
진정한 비평은 문학을 보이지 않게 하는 클리셰의 먼지 낀 유리창을 깨트려버리고, 우리 자신을 임의적으로 제한하는 개념들을 제거한다.
그렇다면 작품을 창조하는 마지막 심급 또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창조하는 심급은 바로 비평일 것이다.
비평이 예술을 완성하고 마감하는 마지막 말이다.
물론 이 비평의 담지자는 독자와 구별되는 어떤 자나 어떤 기구가 아니라 독자 자신이어야 한다.
독자의 자유가 비평을 창조하고 작품을 완성한다.”

미술 비평: 몬드리안, 칸딘스키, 폴록, 바로크 회화와 베이컨 그리고 들뢰즈

들뢰즈의 미술 비평을 대표하는 저작은 1981년 출간된 『감각의 논리』로, 여기서 들뢰즈는 총 아흔일곱 점에 달하는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들 ‘더불어’ 말하고 있다.
비평가로서 들뢰즈가 가진 독특한 면모, 혹은 들뢰즈의 비평이 가진 독창성은 이처럼 들뢰즈가 작품에 ‘대해서’가 아니라 작품과 ‘더불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통상적인 예술 비평이 비평 주체와 그에 의해 해석되는 대상으로서의 작품이라는 이원화된 두 항?혹은 비평의 선험적 조건인 철학 이론과 그것의 사례인 예술작품?을 전제한다면, 이와 달리 들뢰즈의 비평은 기존 비평이 전제해 온 해석의 주체인 비평가와 객체로서의 작품?곧 철학과 예술?의 경계를 와해하는 가운데 시작된다.


들뢰즈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주어진 재현의 형식을 넘어 비가시적인 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예술의 과제로 규정한다.
예술의 본질을 모방(mimesis)으로 간주해 왔던 오래된 선입견으로부터 예술을 해방한다.
오래전 플라톤이 선분을 그으며 말했듯, 감각적 사물이 이데아를 모방하여 형성된 것이며 예술작품은 이들을 모사한 이차적 재현에 불과한 것이라면, 예술작품은 진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열등한 존재자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들뢰즈는 ‘어떤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재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선입관 자체를 무너뜨린다.
예술이 보이는 것의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을 포착하여 그려내는 일이라면, 이제 예술의 본성은 모방이 아닌 생성으로, ‘창조’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힘을 드러낼 수 있는가?

단순한 재현과 모방이 아닌 예술, 감각을 사유하는 회화를 향한, 즉 구상 회화를 벗어나려는 시도는 몬드리안과 칸딘스키로 대표되는 추상 회화와 폴록 등의 추상표현주의를 통해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들뢰즈에 의하면 이는 코드화와 무질서라는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감각을 사유하는 제3의 길은 마침내 베이컨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국면을 맞이한다.
베이컨의 회화는 구상과 추상 중 어느 쪽으로도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베이컨의 작품은 재현과 비재현의 경계를 비트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베이컨은 감각이 개념화되기 이전, 혹은 감각이 클리셰로 가라앉기 이전의 ‘발생하는 감각’의 장면을 우리 앞에 펼쳐 보인다.
클리셰를 와해함으로써 재현적 유사성을 파괴하면서도 감각의 직접성을 포착하는 이미지, 들뢰즈는 그것에 ‘형상’(Figure)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음악 비평: 모차르트, 바그너, 말러, 바레즈, 불레즈 그리고 들뢰즈

들뢰즈의 관심사는 모든 작가와 예술작품에 있어서 그 이전의 세대와 시대에는 없던 새로움이 어떻게 도래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 새로움에 대한 연구가 바로 가타리와 함께 했던 ‘리토르넬로’(ritournelle) 연구였다고 말한다.
음악은 『천 개의 고원』 이래로 『주름』, 『철학이란 무엇인가』 등에서 문학 및 회화와 함께 주요 예술로서 분석되고, 들뢰즈의 음악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리토르넬로는 그의 저작 곳곳에 등장하여 영토성(territorialit)과 영토화(territorialisation), 탈영토화 (d’territorialisation)라는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리토르넬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들뢰즈가 그려 보이는 ‘음악사’를 통해 음악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로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리토르넬로가 어떻게 영토성으로부터 떠나게 되는가에 따라 고전주의(classicisme), 낭만주의(romantisme), 현대(moderne)라는 각 시대의 음악이 펼쳐진다.
먼저 리토르넬로가 카오스의 힘을 간직한 채 형식의 지배 아래 들어갈 때는 고전주의 음악이 출현한다.
들뢰즈는 이를 ‘환경의 리토르넬로’라고 부른다.
또한 각각의 음들이 가진 힘들을 형식 아래 놓는 환경이 아니라, 그 힘들이 결집되는 중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 이는 환경과 구분하여 ‘대지’라고 불리는데, 이 대지의 힘이 드러날 때가 낭만주의 음악(‘대지의 리토르넬로’)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환경이나 대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탈영토화되는 방식으로 드러나는 리토르넬로가 있는데, 이것이 현대 음악을 이룬다.
현대 음악은 분자화된 음들을 형식 아래 두지 않고 대지로 돌려보내지 않으면서 하나의 면(plan)으로서의 코스모스(cosmos)에 풀어놓는다.
이때 이 코스모스는 음들을 하나의 질서로 통일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를 부여할 수 없는 음들이 가진 힘들을 그 자체로 함께 공존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회화가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듯이, 음악 역시 들리는 것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들리지 않는 힘을 들리게 하는 것이다.
들뢰즈는 리토르넬로의 개념을 통해 영토화하고 탈영토화하는 힘들을 그려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역시 들을 수 없는 힘들을 들리게 만드는 음악을 사유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사유는 음악을 단순히 철학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음악적 창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비평: 드레이어, 그리피스, 에이젠시테인, 부뉴엘, 히치콕 그리고 들뢰즈

들뢰즈의 『시네마』(Cinema, 1983, 1985)는 철학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시도한 바 없는, 영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서다.
영화에 대한 철학자들의 사유는 다른 예술에 비하여 많지 않기도 하지만, 들뢰즈 이전에는 영화사 전체를 아우르며 이토록 풍부한 논의를 펼친 적이 없었다.


들뢰즈는 이론이라는 것은 그것이 다루는 대상이 그런 것처럼 스스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예술에 대해 들뢰즈가 사유할 때 그 예술이 스스로 형성되는 것만큼이나 예술에 대한 이론 역시 스스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들뢰즈가 철학을 다루는 것도, 영화를 다루는 것도, 이미 있는 철학적 진리나 예술적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형성되어 가는 이론으로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들뢰즈는 영화와 다른 예술이 그러한 것처럼 하나의 실천으로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그 자체로 이미지와 기호에 대한 새로운 실천이며, 철학은 이에 대한 개념적 실천으로서의 이론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장에서는 들뢰즈가 어떻게 하나의 실천으로서 영화에 접근하고, 또 그에 대해 어떠한 특권도 가지지 않는 또 하나의 실천으로서 자신의 이론을 창조해 가는지 살펴본다.


『시네마』는 이미지론이기도 하다.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 이행하는 두 권의 『시네마』를 『차이와 반복』의 ‘시간의 종합’의 전개와 함께 읽는 관점도 시간과 영화에 대한 사유를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를 고찰하면서 들뢰즈는 프레임과 쇼투, 프레이밍과 탈프레이밍, 몽타주 등 영화의 실용적이고 이론적인 용어들을 다룬 뒤, 본격적으로 운동-이미지를 지각-이미지(image-perception), 변용-이미지(imageaffection), 충동-이미지(image-pulsion), 행동-이미지(image-action)로 구분해 살펴보고, 마침내 시간-이미지에 다다른다.


집단예술과 새로운 사유로서의 영화에 걸었던 모든 희망, 질적 도약을 통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다는 기대 같은 것들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무수한 폭력의 재현들 속에서 빛을 잃은 오래된 유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러나 들뢰즈는 그러한 기대가 시간-이미지의 영화들 속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 방식은 사유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라 사유의 무능한 역량, 무능한 사유의 역량이다.
“영화가 주장하는 것은 사유의 역량이 아니라 사유의 ‘무능’(impouvoir)이며, 사유는 결코 이와 다른 어떤 문제도 가지고 있지 않다.

푸코의 예술 비평: 디드로, 프루스트, 마네, 마그리트, 벨라스케스 그리고 푸코

푸코는 1960년대에는 지식을, 1970년대에는 권력을, 1980년대에는 주체화를 탐구하고, 예술과 비평의 위상은 푸코 사유의 전개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자기 변형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비판 작업을 지식, 권력, 주체화 가운데 어떤 영역에서 수행하느냐에 따라, 비평과 비판의 연결 양상은 달라지고 예술의 위상 역시 변화한다.
그러나 푸코가 예술의 위상을 항상 비판과의 관계 속에서 사고했다는 사실이 예술이 철학에 의해 일방적으로 해석된다거나 비평이 단순한 이론의 적용 사례로 전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들뢰즈에게서와 마찬가지로, 푸코는 작품과 동일한 층위에서 하나의 그물망을 형성하는 글쓰기로서의 비평을 제안한다.
작품이 자신의 고유한 공간에서 되풀이하는 것을 비평 속에서 다시금 되풀이하고자 할 때, 푸코는 작품과 연결되어 서로를 되풀이하면서 함께 새롭게 생성되어 가는 비평의 가능성을 사유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과 비평의 기능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동일한 견해를 공유한다.
들뢰즈는 기존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재인식이 아니라, 그것을 와해하는 니체적 비판을 수행했다.
들뢰즈는 기존의 인식이 와해된 자리에서 발견되는 징후들을 해석하기 위한 개념들을 창조했다.
기호, 표현, 소수 문학은 문학에 대해, 리토르넬로, 환경, 대지, 코스모스는 음악에 대해, 프레임과 쇼트 그리고 몽타주는 영화에 대해, 감각과 형상은 회화에 대해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푸코 역시 새로운 인식을 위한 개념들을 작품들로부터 끌어내고 제안한다.
『말과 사물』에서는 무차별적으로 사용되었던 유사(ressemblance)와 상사(similitude)에 대한 구분을 푸코는 마그리트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마그리트의 작품을 분석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는 개념의 창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대에 고유한 것으로 규정되는 ‘문학’과 ‘회화’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
비평은 작품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사유를 변형하는 실천이 된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9월 30일
- 판형 : 반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260쪽 | 140*210*20mm
- ISBN13 : 9788964453032
- ISBN10 : 896445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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