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duct_id":"141292","title":"행복의 약속","description":"\u003ccenter\u003e\u003cdiv style=\"text-align:center\"\u003e\u003cimg src=\"https:\/\/tmgdisk01.cafe24.com\/images\/vs\/4172\/sv\/WQtVOxUBtufCe2Khh5TJrn.png?v=1764957558\" style=\"max-width:100%;max-height:10px\"\u003e\u003c\/div\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u003e\n\u003cdiv style=\"text-align:center;font-size:30px;font-weight:bolder;line-height:1.6em\"\u003e행복의 약속\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border-bottom:1px;border-bottom-style:dotted;border-color:;padding-bottom:20px\"\u003e\u003ccenter\u003e\u003ctable align=\"center\" width=\"100%\"\u003e\u003ctbody style=\"border:0px\"\u003e\n\u003ctr\u003e\u003ctd align=\"center\" style=\"line-height:1.2em;text-align:center;font-size:18px;color:black;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n\u003ctr\u003e\u003ctd style=\"text-align:center\"\u003e\u003cimg src=\"https:\/\/image.yes24.com\/goods\/97388746\/XL\" style=\"max-width:100%;height:auto\"\u003e\u003c\/td\u003e\u003c\/tr\u003e\n\u003c\/tbody\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split_style6}padding-top:20px;padding-bottom:20px\"\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font-size:16px;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Description\u003c\/div\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word-break:break-all;font-size:14px;line-height:1.6em;\"\u003e\n\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책소개\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1990년대부터 대두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긍정심리학계의 행복학 연구에 따르면, 긍정심리학은 부정적인 느낌에만 초점을 맞춰 왔던 심리학의 기존 경향을 “바로잡는다”며 등장했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u003cbr\u003e칙센트미하이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u003cbr\u003e행복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u003cbr\u003e행복학 연구자들이 행복의 ‘비법’을 밝혀낸다며 갖가지 설문조사와 인터뷰, 통계기법 등을 동원해 도출해 낸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하고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행복하며, “긍정적일수록” 행복하고 “가족과 돈독”할수록 행복도가 높다.\u003cbr\u003e과연 이런 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말해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u003cbr\u003e\u003cbr\u003e퀴어 페미니스트 철학자 사라 아메드는 이와 같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며 ‘정서 이론’의 관점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행복’ 관념을 해부한다.\u003cbr\u003e이에 따르면, 행복 관념은 보통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의 형태를 띠며, 대개는 사회적으로 이미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재확언함으로써 그것을 추구하는 좋은 주체를 생산해 내는 역할을 한다.\u003cbr\u003e이런 메커니즘은 한편으로 그 대척점에 행복의 경로에서 이탈한 자들, 행복 대본을 따르지 않는 자들, 차이를 가진 자들을 위치시키고 이들을 불행의 원인으로 재현함으로써 힘을 얻는다.\u003cbr\u003e이 책은 페미니스트, 이주자, 퀴어와 같은 불행(불운)한 주체들을 ‘행복한 가족’, ‘행복한 국가’와 같은 ‘정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정서 이방인’으로 개념화하면서 이들의 불행과 우울에 정치적 힘을 부여하는 한편, 지배적인 행복 관념이 ‘다른’ 주체로 하여금 무엇을 포기하게 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정서를 통한 권력의 작동을 이야기한다.\u003cbr\u003e\n\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ul\u003e \u003cli\u003e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u003cbr\u003e\u003cspan\u003e미리보기\u003c\/span\u003e\n\u003c\/li\u003e \u003c\/ul\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목차\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서론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 \u003cbr\u003e\u003cbr\u003e1장 행복의 대상\u003cbr\u003e2장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u003cbr\u003e3장 불행한 퀴어\u003cbr\u003e4장 우울증적 이주자\u003cbr\u003e5장 행복한 미래\u003cbr\u003e결론 행복, 윤리, 가능성\u003cbr\u003e \u003cbr\u003e감사의 말\u003cbr\u003e옮긴이의 말 지금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을 하는가\u003cbr\u003e미주\u003cbr\u003e참고문헌 \u003cbr\u003e찾아보기 \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책 속으로\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행복이 당신이 어떤 종류의 존재이기 때문에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행복함은 분명 부르주아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u003cbr\u003e우리 시대의 행복 문화를 공포스럽다고 표현하는 태도에는 행복이 너무 쉽고, 어디서나 얻을 수 있고, 너무 빠르게 얻을 수 있다는 데 대한 계급적 공포가 어려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 p.31\u003cbr\u003e\u003cbr\u003e우리는 부적합하다고 생각되는 행복 형태들로 인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u003cbr\u003e내겐 전혀 재미있지 않은 장면에서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 절망적으로 의자 깊숙이 몸을 파묻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부당하게 호명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u003cbr\u003e하지만 불편함과 소외의 몸짓은 등록되지 않는다.\u003cbr\u003e정서적 방향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이방의 신체들은 그런 관점에선 그냥 사라져 버린다.\u003cbr\u003e\u003cbr\u003e--- p.82\u003cbr\u003e\u003cbr\u003e행복한 결말을 위해 딸은 부모의 행복에 대한 욕망에 자신의 욕망을 단순히 맞춰 주는 게 아니라, 기꺼이 맞춰 줘야 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 p.109\u003cbr\u003e\u003cbr\u003e행복은 문제에 휘말리는 불행을 환기함으로써 당신을 문제에서 떨어뜨려 놓는다.\u003cbr\u003e--- p.112\u003cbr\u003e\u003cbr\u003e페미니스트는 행복을 약속하는 대상들이 그렇게 장밋빛이 아님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를 깰 수 있다.\u003cbr\u003e페미니즘이라는 말은 그래서 불행으로 흠뻑 젖어 있다.\u003cbr\u003e페미니스트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바로 그 행동이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고 행복을 가져온다고 생각되는 그 어떤 것을 파괴한다고 미리부터 읽혀 버린다.\u003cbr\u003e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는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깬다.” ...\u003cbr\u003e어떻게 보면 페미니스트들은 진짜 분위기를 깬다.\u003cbr\u003e어떤 장소들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판타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u003cbr\u003e어떤 판타지를 망쳐 놓으면 어떤 느낌을 망칠 수 있다.\u003cbr\u003e이는 단순히 페미니스트가 행복을 유발하리라 간주되는 대상들에 대해 행복한 정서를 갖지 못한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행복하지 못함이 타인의 행복에 대한 방해 공작으로 읽힌다는 것이다.\u003cbr\u003e--- p.120\u003cbr\u003e\u003cbr\u003e행복에 대한 비판을 재활성화하려면 기꺼이 불행에 근접해 있어야 한다.\u003cbr\u003e페미니스트 의식에는 우리의 불행을 증가시킬 수도 있는, 혹은 최소한 그런 인상을 만들어 내는, 불행에 대한 의식이 포함돼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u003cbr\u003e행복은 부분적으로는 불행의 원인을 덮어 버림으로써 불행을 덮어 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u003cbr\u003e그래서 덮기를 거부하면 불행이 출현하게 된다.\u003cbr\u003e이런 의식화 과정은 단순히 불행을 의식하게 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행을 이해하는 더 나은 방법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성취하는 것이기도 하다.\u003cbr\u003e우리는 불행이 구조화돼 있음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음을 알 수 있다.\u003cbr\u003e우리는 우리 탓이라고 여겨져 온 불행의 원인이 우리가 아닐 뿐만 아니라 그렇게 불행의 원인으로 여겨져 온 결과물도 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 p.160\u003cbr\u003e\u003cbr\u003e퀴어 사랑은 그런 사랑도 사랑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때에만, 그럼으로써 그 사랑이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을 때에만 인정받을 수 있다.\u003cbr\u003e이 경우, 사랑하는 두 사람은 부모에게 자신들의 결혼을 축복해 달라고 하고 있다.\u003cbr\u003e퀴어 사랑의 이성애적 방식인 것이다.\u003cbr\u003e퀴어들이 인정받기 위해 유사한 행복의 기호들을 가져야 할 경우, 퀴어성의 기호들은 최소화돼야 한다.\u003cbr\u003e--- p.172\u003cbr\u003e\u003cbr\u003e이 “행복한 사람들”의 세상에서 퀴어로 살아간다는 게 아직도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를 나타내는 끈질긴 기호다.\u003cbr\u003e우리는 또한 우리의 희망을 단순히 행복한 퀴어 같은 대안적 형상에 걸기보다는, 불행한 퀴어들을 포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u003cbr\u003e불행한 퀴어는 퀴어들을 불행하다고 보는 세상과 불화한다.\u003cbr\u003e행복한 퀴어를 진작할 때 우리는 이 세계의 불행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u003cbr\u003e우린 이런 세상과 계속 불화해야 한다.\u003cbr\u003e--- p.191\u003cbr\u003e\u003cbr\u003e퀴어로서의 삶을 살기로 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인정이란 게 아슬아슬한 조건부이거나 ― 올바른 퀴어가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곳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인정받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걸 잘 알고 있다.\u003cbr\u003e보통 인정받지 못할 때에도 인정이 필요 없는 사람들은 눈치챌 수 없는 곳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미 인정을 해주었다는 착각이 유지된다(그래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편집증자가 된다).\u003cbr\u003e사실, 동성의 대상 선택이 인정받았고 그런대로 용인되고 있다는 착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차별과 불인정, 폭력의 현실을 은폐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손한 이성애적 기호들에 가까워지기를 요구한다.\u003cbr\u003e그러니 정말 우리는 이런 세상과 계속 불화해야 한다.\u003cbr\u003e--- p.193\u003cbr\u003e\u003cbr\u003e이주자들은 점점 더 내가 말하는 행복 의무에 종속되고 있다.\u003cbr\u003e19세기에는 원주민들이 제국의 신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더) 영국적이 되어야 했다면, 현 시대의 맥락에서 국가의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더) 영국적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은 이주자다.\u003cbr\u003e\u003cbr\u003e--- p.237 \u003cbr\u003e\u003cbr\u003e오멜라스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다.\u003cbr\u003e우리는 행복의 약속이 얼마나 고통의 국지화에 의존하는지 알 수 있다.\u003cbr\u003e특정한 “우리”가 좋은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u003cbr\u003e행복의 잘못은 그것이 분명 텅 비어 있는 행복의 기호에 몸담을 수 없는 사람들(그 형태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비참을 국지화하고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 p.352\u003cbr\u003e\u003cbr\u003e모든 정의의 정치학이 불행을 수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u003cbr\u003e그만큼 행복은 고통의 은폐와 자신의 행복을 타협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또 그것에 의해 약속된다.\u003cbr\u003e반란이 상처가 될 수 있는 건, 당신이 상처에 근접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불행의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불행을 야기하기 때문이다.\u003cbr\u003e당신 자신이 당신이 드러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u003cbr\u003e--- p.353\u003cbr\u003e\u003cbr\u003e윤리가 고통을 넘어 행복이나 즐거움을 향해 가는 것이 되면,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거나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부과하게 된다.\u003cbr\u003e긍정으로의 전회는, 나쁜 느낌은 후진적이고 보수적이며 좋은 느낌은 선진적이고 진보적이라는 구별을 만들어 낸다.\u003cbr\u003e나쁜 느낌은 과거를 향해 있다고, 주체가 미래를 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완고함이라고 간주된다.\u003cbr\u003e좋은 느낌은 계속 움직이면서 미래에 대한 약속을 창조한다고 간주된다.\u003cbr\u003e좋은 느낌은 열려 있고 나쁜 느낌은 닫혀 있다는 이런 가정은 불의의 역사들을 사라지게 한다.\u003cbr\u003e우리가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요구는 그런 역사들을 우울증의 형식으로(마치 이미 사멸한 것을 붙들고 있는 것처럼) 해석함으로써 그것들을 사라지게 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 p.389\u003cbr\u003e\u003cbr\u003e우리는 어떤 삶을 살다 그 삶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수 있다.\u003cbr\u003e이때 어떤 삶을 떠나는 행위는 그것이 불행을 야기한다 해도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u003cbr\u003e행복이 해답이라도 줄 것처럼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말고 말이다.\u003cbr\u003e행복을 우리가 옹호해야 할 대상으로 상정하지 않으면, 우리가 옹호하고 있는 그 행복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삶에 대해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다.\u003cbr\u003e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이 되기를 원하는지 물을 수 있다.\u003cbr\u003e\n\u003c\/div\u003e \u003cdiv\u003e--- p.391~392\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br\u003e\u003cdiv\u003e \u003ch5\u003e\u003cb\u003e출판사 리뷰\u003c\/b\u003e\u003c\/h5\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  - 특정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떤 타인이 고통받아야 하는 구조가 우리 사회의 행복 구조 아닌가 \u003cbr\u003e- 사랑과 결혼, 행복한 가정과 국가의 판타지 뒤에 숨은 불행한 주체들의 계보학 \u003cbr\u003e- ‘행복 이데올로기’에 맞서 페미니스트 철학자 아메드가 제시하는 ‘불행의 정치학’\u003cbr\u003e- 트러블 메이커, 분위기 깨는 자, 정서 이방인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u003cbr\u003e- 퀴어 페미니스트 문화비평과 행복에 대한 철학적 비판의 환상적 결합 \u003cbr\u003e\u003cbr\u003e1990년대부터 대두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는 긍정심리학계의 행복학 연구에 따르면, 긍정심리학은 부정적인 느낌에만 초점을 맞춰 왔던 심리학의 기존 경향을 “바로잡는다”며 등장했으며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u003cbr\u003e칙센트미하이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u003cbr\u003e\u003cbr\u003e 행복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u003cbr\u003e행복학 연구자들이 행복의 ‘비법’을 밝혀낸다며 갖가지 설문조사와 인터뷰, 통계기법 등을 동원해 도출해 낸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행복하고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행복하며, “긍정적일수록” 행복하고 “가족과 돈독”할수록 행복도가 높다.\u003cbr\u003e과연 이런 것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말해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u003cbr\u003e\u003cbr\u003e퀴어 페미니스트 철학자 사라 아메드는 이와 같은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며 ‘정서 이론’의 관점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행복’ 관념을 해부한다.\u003cbr\u003e이에 따르면, 행복 관념은 보통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의 형태를 띠며, 대개는 사회적으로 이미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재확언함으로써 그것을 추구하는 좋은 주체를 생산해 내는 역할을 한다.\u003cbr\u003e이런 메커니즘은 한편으로 그 대척점에 행복의 경로에서 이탈한 자들, 행복 대본을 따르지 않는 자들, 차이를 가진 자들을 위치시키고 이들을 불행의 원인으로 재현함으로써 힘을 얻는다.\u003cbr\u003e이 책은 페미니스트, 이주자, 퀴어와 같은 불행(불운)한 주체들을 ‘행복한 가족’, ‘행복한 국가’와 같은 ‘정서 공동체’로부터 소외된 ‘정서 이방인’으로 개념화하면서 이들의 불행과 우울에 정치적 힘을 부여하는 한편, 지배적인 행복 관념이 ‘다른’ 주체로 하여금 무엇을 포기하게 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정서를 통한 권력의 작동을 이야기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버지니아 울프, 조지 엘리엇, 울스턴크래프트, 보부아르, 토니 모리슨 등의 페미니즘 정전들과 『고독의 우물』, 『루비푸르트 정글』, 『캐롤』 등과 같은 퀴어 정전들뿐만 아니라 전설의 레즈비언 드라마 〈엘워드〉, 〈디 아워스〉 등의 대중문화 콘텐츠들을 넘나들며 아카데믹한 철학적 논의를 거침없이 전개해 나가는 솜씨는 이 책을 “행복에 대한 필적할 수 없는 철학서”로서뿐만 아니라 퀴어 페미니즘적 문화비평의 전범으로 자리매김케 했다.\u003cbr\u003e파키스탄 출신 아버지와 영국인 어머니를 둔 본인의 혼성적 배경과 동료 페미니스트들의 경험담들까지 자연스럽게 녹아든 서사에서 학문과 실천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립 연구자로 우뚝 선 저자의 현재 모습을 예견할 수도 있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 거부할 수 없는 좋은 느낌, ‘행복감’의 해부 \u003cbr\u003e##‘미래의 약속’으로서 작동하는 행복의 메커니즘이 밝혀 주는 지배의 기술\u003c\/b\u003e \u003cbr\u003e\u003cbr\u003e‘행복’은 사회적으로 가장 자연화되어 있는 관념이자 무조건적 선으로 여겨지는 관념이다.\u003cbr\u003e이는 학문적으로 반박의 대상이 되기는커녕 윤리학·철학에서 오히려 절대선으로 여겨졌다.\u003cbr\u003e하지만 아메드는 페미니즘과 반인종주의, 퀴어 연구에 기반해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공리주의에 이르는 기존의 행복에 대한 철학적 관점들을 폭넓게 비판하고 그 속에 숨겨진 불의를 드러낸다.\u003cbr\u003e아메드에 따르면 행복은 ‘약속’의 메커니즘을 통해 작동한다.\u003cbr\u003e사회적으로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면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미래에 대한 약속(미래의 지연)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u003cbr\u003e그래서 행복의 약속은 우리를 좋은 삶을 위해 필요하다고 간주되는 어떤 대상들로 인도하고, 좋은 삶을 어떤 대상들에 가까이 가면 얻게 되는 것으로 상상하게 만든다.\u003cbr\u003e하지만 여기서 ‘좋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u003cbr\u003e정서 이론의 관점에서 아메드는 가정이나 국가를 특정 대상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유지되는 정서 공동체로 개념화하면서 이런 감정적 공간에서 우리가 어떻게 이성애적straight 주체, 착한 시민이 되는지 다양한 텍스트들을 경유해 이야기한다.\u003cbr\u003e여기서 권력의 작동은 단지 ‘특정한 행복’ 추구, 이성애적 사랑과 좋은 시민을 이상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u003cbr\u003e다른 한편으로는 행복 대본에서 이탈하면 다다르게 될 상태에 대한 위협으로서 끊임없이 불행이 재생산된다.\u003cbr\u003e예를 들어, 〈베컴처럼 휘어 차기〉의 이민 1세대 아버지는 인종차별의 폭력을 잊지 않으면 불행해진다는 본보기로 서사화되는 반면, 가족의 관습을 거스르고 베컴처럼 되기를 바라는 딸은 착한 영국 시민으로 비춰진다.\u003cbr\u003e결국 행복 대본은 주체를 똑바르게straight, 이성애자로, 좋은 시민으로 만드는 장치다.\u003cbr\u003e\u003cbr\u003e또한 행복은 상호성의 언어로 강압을 실행하고 감추는 역할을 한다.\u003cbr\u003e“네가 행복하니 나도 행복해”라는 말이 “네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지”, “네가 그러면 나도 불행해”, “네 불행이 내 행복을 위협해”, “넌 날 위해 행복해야 해”가 되는 과정에 대한 아메드의 예리한 분석은,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는 사랑의 감정이 (그 타인의 생각대로) 행복해야 할 의무로 경험될 수 있음을 잘 보여 준다.\u003cbr\u003e예를 들어, 자녀의 커밍아웃을 맞닥뜨린 부모의 발화를 생각해 보자.\u003cbr\u003e“난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인데, 그건 너무 불행한 삶이 아니겠니”라고 하는 ‘사랑’의 표현 속에 숨겨진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불행은 과연 아이가 퀴어라서 생기는 것일까? 아메드는 불행은 정확히 이 발화의 순간부터 작동하고 발생하는 것이라 말한다.\u003cbr\u003e즉, 퀴어의 삶이 불행한 삶, 행복한 요소가 없는 삶, 남편과 자식이 없어 우울한 삶이라 간주되기 때문에 아이는 불행해지는 것이다.\u003cbr\u003e한편으로 행복 발화를 이용해 퀴어를 관용하거나 승인할 때도(“그렇게 너희 둘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사랑이지”) 퀴어 사랑은 그런 사랑 역시 (이성애적 사랑과 같은) 사랑이라고, 그것도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 때만 인정받는다.\u003cbr\u003e아메드는 “불행하지 않음을 보여 주려면 행복해야 한다”는 그 압력이 불행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불행에 대해 (간과하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 정서(정동)의 정치학\u003cbr\u003e## 느낌에 귀 기울일 때 들려오는 것들\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일반적으로 느낌이란 주체의 내부에서 생겨나는 순수하고 주관적인 무엇으로서 여겨져 왔다.\u003cbr\u003e하지만 정서 이론의 등장으로 이런 느낌(정서, 정동, 감정)이 실은 사회적 관념들로 물들어 있으며, 주체 내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 대상들을 매개로 움직이는 것으로 보는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u003cbr\u003e이들은 주로 무형의 분위기, 느낌 같은 것들에 응축돼 있는 ‘역사’나 지배와 억압 등을 읽어 내면서 감정을 사회를 분석하는 중요한 도구로 만든다.\u003cbr\u003e\u003cbr\u003e예를 들어, 아메드는 이런 정서 이론에 입각해 흑인 여성이 백인 여성들만 가득한 여성학회 자리에 나타났을 때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의 정체에 대해 분석한다.\u003cbr\u003e사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한 게 없고 그냥 나타나기만 했을 뿐인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그 흑인 여성이 유발한 것이라 생각한다.\u003cbr\u003e아메드는 이런 불편한 느낌, 지배적인 행복한 분위기를 깨는 부정적 느낌의 정체 속에서 인종차별의 역사, 검은 신체에 ‘불편한 느낌’을 배치하는 권력의 작동을 발견한다.\u003cbr\u003e그런 특정 신체에 ‘불편한 느낌의 원인’이라는 속성을 부여하고 그것을 장애물로 느끼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다.\u003cbr\u003e아메드는 책 전체에 걸쳐서 역사가(이 경우는 인종차별의 역사) “무형의 분위기” “걸림돌처럼 보이는 신체” “부르카나 터번 같은 대상”에 응축돼 있는 모습을 그려내면서 자연적이라 여겨지던 느낌 속에 폭력과 권력, 억압의 원인이 어떤 식으로 은폐돼 있는지를 해부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 퀴어한 문화비평을 통한 불행한 자들의 계보 잇기\u003cbr\u003e## 댈러웨이 부인에서 캐롤까지 \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이 책은 무엇보다 퀴어 페미니스트 문화비평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책이다.\u003cbr\u003e『고독의 우물』이나 『캐롤』, 『루비프루트 정글』 같은 퀴어 정전에서부터 『댈러웨이 부인』이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같은 초기 페미니스트 비평의 대상들, 그리고 〈이 벽들이 말할 수 있다면 2〉(이하 〈더 월 2〉), 〈길 잃은 천사들〉 같은 퀴어 영화들을 넘나들며 아메드는 정서 이론가의 관점에서 기존의 공식적인 해석들을 무너뜨리거나 뛰어넘는다.\u003cbr\u003e\u003cbr\u003e예를 들어, 댈러웨이 부인이 파티에 집착하는 모습을 실망스러워했던 보부아르나, 『댈러웨이 부인』을 울프가 자신의 불행을 정치적으로 전환시키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책으로 평가한 케이트 밀레트와 달리, 아메드는 소설 속 ‘정서의 흐름’을 포착해 냄으로써 파티를 불행이 생명을 얻게 되는 사건으로 새롭게 해석한다.\u003cbr\u003e파티를 통해 댈러웨이 부인은 셉티머스의 자살을 “스치게” 되기 때문이다.\u003cbr\u003e〈댈러웨이 부인〉에서 아메드가 특히 주목하는 바는, 고통이 자신의 고통에 대한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낯선 자의 고통이 분위기를 방해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댈러웨이 부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온다는 점이다.\u003cbr\u003e이는 불행이란 것이 낯선 방문객처럼 도착해 익숙함을 방해하고, 익숙함 속에 있는 불편한 요소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정치적 힘을 지닐 수 있음을 보여 준다.\u003cbr\u003e아메드는 댈러웨이 부인의 이런 인식을 “희망을 가득 채움으로써 미뤄 왔던” 슬픔을 이제는 기꺼이 경험하겠다는 공감의 제스처로 해석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또한 이런 과거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을 현대적 텍스트들과 연결함으로써 시대를 잇는 불행한 자들의 계보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비평에 그치지 않는다.\u003cbr\u003e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은 영화 〈디 아워스〉의 불행한 주부 로라와 연결되고, 20세기 초 소설 『고독의 우물』의 지독히 불행한 결말은 21세기 영화 〈길 잃은 천사들〉의 퀴어 소녀의 불행, 그리고 〈더 월 2〉의 연인을 잃고도 애도하지 못하는 퀴어 연인의 비탄과 연결됨으로써 “행복한 자들의 세상”에서 “불행한 주체”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일인지를 보여 주는 계보가 그려진다.\u003cbr\u003e불행한 퀴어뿐만 아니라 인종주의 속에서 고통받는 이주자, 분위기 깨는 존재로 문제를 일으키기도 전에 이미 문제라고 읽혀 버리는 페미니스트 등을 아우르는 그녀의 계보 그리기는 부정적 정서가 얽혀 있는 대상들, 불행한 역사로 젖어 있는 대상들을 살피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몸소 보여 준다.\u003cbr\u003e\u003cbr\u003e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간 세 명의 여성들의 계란을 깨는 제스처 속에서 여자들의 역사를 따라 흘러온 ‘유산’을 발견하고, 계란을 깨뜨려 넣는 그릇이 여성에게 가하는 기다림의 압력을 읽어 내면서 집안의 행복 대상들이 어떤 여자들에게는 얼마나 위협적이고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지는지를 포착해 낸 정서 이론가 특유의 섬세한 독해들 또한 흥미롭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 불행한 자들의 불행이 가진 정치적 힘 \u003cbr\u003e## 불행에 대한 직역주의에 저항하기\u003c\/b\u003e\u003cbr\u003e\u003cbr\u003e퀴어에게 행복한 결말을 안겨 주면 안 되던 시절 발표된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 〈스프링 파이어〉의 저자 빈 패커는 출판사와의 논의를 거쳐 두 주인공에게 불행한 결말을 선사한다.\u003cbr\u003e당시 퀴어 소설에서 퀴어인 등장인물은 행복해질 수 없었다.\u003cbr\u003e퀴어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결말은 퀴어를 ‘좋아’ 보이게 하고, 독자를 퀴어로 만들려는 시도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는 ‘행복’이 무언가를 좋아 보이게 하고 그렇게 만들려는 시도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u003cbr\u003e저자는 무엇보다 이런 행과 불행을 문자 그대로, 즉 윤리적 명령으로 읽는 직역주의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u003cbr\u003e행복과 불행이 좋은 삶과 나쁜 삶의 도덕적 구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u003cbr\u003e아메드에게, 행복한 것과 좋은 것의 필연적 일치, 나아가 좋은 것 자체의 도덕적 투명성은 그 무엇보다 의심해 봐야 할 대상이다.\u003cbr\u003e\u003cbr\u003e그런 맥락에서 아메드는 ‘행복한 퀴어’ 같은 형상에 희망을 거는 입장들을 비판한다.\u003cbr\u003e행복한 퀴어를 진작할 때 이 세계의 불행을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u003cbr\u003e아메드는 그보다 중요한 것은 불행한 퀴어들을 포괄하는 것이라 말한다.\u003cbr\u003e퀴어로 살기로 한 사람들에게 이 세계의 인정이란 아슬아슬한 조건부에 불과하다.\u003cbr\u003e즉, 스트레이트한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야 인정받고 올바른 퀴어가 될 수 있다.\u003cbr\u003e행복한 퀴어란 예의를 갖추고 식탁에 제대로 앉을 줄 아는 퀴어를 의미하는 것으로(〈더 월 2〉의 인공수정을 통해 가정을 일구려는 샤론 스톤 커플이 한 예다) 이런 구도에서 퀴어는 영원히 남의 집을 찾은 예의 바른 손님이 될 수밖에 없다.\u003cbr\u003e아메드는 행복한 이성애 형태들과 가까워지지 않으면서, 즉 퀴어에게는 “불의”에 해당하는 이성애적 행복과 계속 불화하면서 불행한 퀴어의 정치적 힘과 에너지를 무효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정서 이방인으로서의 혁명가가 이 세상에 대해 갖는 이질적 느낌과 긍정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감을 대조하는 대목 역시 이런 주장과 궤를 같이한다.\u003cbr\u003e혁명 의식은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u003cbr\u003e세상 전체와 싸우는 것 같고, 세상도 당신에게서 등을 돌린 것처럼 느껴진다.\u003cbr\u003e이는 긍정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감과는 정반대의 느낌, 스트레스를 받는 느낌, 긴장감과 저항감이다.\u003cbr\u003e혁명 의식은 스트레스를 감수하겠다는 의욕, 행복감의 거부다.\u003cbr\u003e그렇다고 불행한 혁명가 같은 영웅적 모델, 한 개인의 고통이 세상에 선물이 되는 그런 모델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u003cbr\u003e\u003cbr\u003e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가져와 아메드는 다수의 행복의 약속이 소수의 고통의 국지화에 의존하는 상황을 성찰한다.\u003cbr\u003e특정한 ‘우리’가 좋은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어떤 타인이 고통받아야 하는 구조가 지금 우리 사회의 행복 구조가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u003cbr\u003e아메드는 지금 우리의 행복이 고통의 은폐와 자신의 행복을 타협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눈길을 돌릴 자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에 의해 약속된다고 비판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아메드는 그런 불의에 해당하는 행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꺼이 불행 가까이에 있겠다는 의욕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이를 ‘불행할 자유’로 급진화한다.\u003cbr\u003e이는 우리 자신이 비참해지거나 슬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불행에 의해 변용될affected 자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할지 모르는 삶을 살아갈 자유, 행복을 종착점으로 보지 않고 행복의 길에서 이탈한 삶을 살아갈 자유를 말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좋은 느낌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로 보는 마수미나 브라이도티 등의 논의가 실은 행복학과 궤를 같이 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 역시 되새겨 봐야 할 지점이다.\u003cbr\u003e아메드는 윤리학이 행복이나 즐거움을 목표로 하면 그런 방식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부과할 수 있다고 말한다.\u003cbr\u003e좋은 느낌은 선진적이고 진보적이며 나쁜 느낌은 후진적이고 보수적이라는 구별은 불의의 역사들을 사라지게 한다.\u003cbr\u003e아메드는 나쁜 느낌(불만, 불행, 불편, 우울 등)은 단순히 반작용적이지 않으며 끝나지 않은(잊을 수 없는) 불의의 역사들에 대한 창조적 반응임을 강조한다.\u003cbr\u003e불행을 극복해야 할 느낌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고, 행복 역시 인생의 목표라기보다는 다른 모든 가능성들과 나란히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메드의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결론이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 장별 요약\u003c\/b\u003e \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서론 왜 하필 지금 행복을 이야기하는가 \u003c\/b\u003e\u003cbr\u003e행복에 대한 소망이 학계와 미디어, 공공정책과 국제적 행복지표 같은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행복으로의 전회”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이런 논의들이 입각하고 있는 논리와 전제들을 따져 본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1장 행복의 대상\u003c\/b\u003e\u003cbr\u003e행복이 지배의 기술로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철학적으로 분석한다.\u003cbr\u003e행복은 특정 대상들을 획득하기만 하면, 혹은 거기 근접하기만 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약속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끌어당긴다.\u003cbr\u003e행복에 닿을 수 있게 해준다고 간주되는 대상들은 사회적 재화로서 긍정적 가치를 축적해 순환하며 행복 대상이 되는데, 예를 들면, “행복한 가정주부” “행복한 흑인 노예” 이성애적 “행복한 가정” 같은 것들이 그렇다.\u003cbr\u003e아메드는 동일한 대상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정서 공동체’(가정이나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좋다고 여겨지는 대상들에게 ‘적합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을 ‘정서 이방인’으로 개념화해 행복 대본으로부터 벗어난 이들의 불행을 분석하는 2, 3, 4, 5장(가정에 행복감을 느끼며 안주할 수 없는 주부, 이성애적 가족의 식탁에 자리할 수 없는 퀴어, 자신의 문화를 포기하지 않는 한 불행한 주체가 되어 버리는 이주자, 현실에서 이질감을 느끼는 혁명가)의 기반이 되는 분석틀을 제시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2장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u003c\/b\u003e\u003cbr\u003e행복의 역사를 분위기 깨는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살펴본다.\u003cbr\u003e루소의 『에밀』이나 엘리엇의 『플로스강의 물방앗간』,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같은 초기 페미니즘의 비평 대상들을 새롭게 읽으며 페미니즘 내에서 ‘트러블 메이커’의 계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u003cbr\u003e또 식탁의 평화를 깨며 가족 내에서 늘 착한 딸일 수만은 없었던 자신의 경험담과 동료 페미니스트들의 기억을 결합하며 킬조이 페미니스트와 트러블 메이커 사이의 연결을 분명히 한다.\u003cbr\u003e아메드는 ‘트러블’을 일으키는 페미니즘의 역사가 여전히 페미니즘의 정치적 지평에서 중요한 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음을 강조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3장 불행한 퀴어\u003c\/b\u003e\u003cbr\u003e『고독의 우물』이나 『루비프루트 정글』, 『캐롤』 등의 레즈비언 정전들을 읽어 나가며 퀴어의 불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분석하고 “난 그저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란다”라는 진술이 타자에게 자유를 주는 듯하면서도 어떻게 행복의 원인으로 이미 합의돼 있는 것을 향해 가도록 지시하는지 이야기한다.\u003cbr\u003e『고독의 우물』에 관한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아메드의 독해는 이 책의 백미로 아메드는 “사랑의 실패”로 해석되었던 이 책의 결말을 반대로 해석해 낸다.\u003cbr\u003e또 이 책의 불행한 결말을 좀 더 최근의 영화 〈길 잃은 천사들〉과 함께 읽으며 시대를 달리하는 두 텍스트에서 타인의 행복을 위한 퀴어 주인공의 선택이 왜 여전히 불행을 야기하는 것인지 묻는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4장 우울증적 이주자\u003c\/b\u003e \u003cbr\u003e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논리를 제공했던 공리주의의 행복 논리가 현대 영국의 다문화주의에서도 지속되고 있음을 폭로하면서 제국의 역사를 행복하게 기억하지 않는 주체, 인종차별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주자는 우울증자로 해석되며 불행한 주체가 되는 메커니즘을 〈베컴처럼 휘어 차기〉와 〈동양은 동양〉의 이민 1세대 아버지에 대한 비교를 통해 분석한다.\u003cbr\u003e또 이민 2세대 딸들이 쓴 소설과 자서전을 바탕으로 ‘동화’의 양가성을 탐색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5장 행복한 미래\u003c\/b\u003e\u003cbr\u003e혁명가와 혁명의식을 정서 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u003cbr\u003e정서 이방인으로서 혁명가가 가질 수밖에 없는 세상과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긍정 심리학에서 말하는 행복감, 몰입감과 대조한다.\u003cbr\u003e또 어슐러 르 귄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가져와 다수의 행복의 약속이 소수의 고통의 국지화에 의존하는 메커니즘을 이야기하고, 그런 행복으로부터의 이탈을 ‘불행할 자유’로 급진화한다.\u003cbr\u003e이는 불행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행복을 종착점으로 간주하지 않고 행복의 길에서 이탈할 자유, 타인을 불행하게 하더라도 그 삶을 살아갈 자유를 말한다.\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r\u003e\u003cb\u003e결론 행복, 윤리, 가능성 \u003c\/b\u003e\u003cbr\u003e행복의 역사는 행복이 단순히 행운을 지시하는 데 그칠 수 있음에 대한 불안을 포함한다.\u003cbr\u003e행복은 운 좋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운을 스스로의 선과 덕, 지혜로 생각하게 만든다.\u003cbr\u003e결론에서 아메드는 행복과 윤리의 연관성을 해체하고, 행복과 행운의 밀접성을 강조하면서 필연성으로서의 행복과는 대조되는, 가능성으로서의 행복을 이야기한다.\u003cbr\u003e긍정적 감정들을 잠재성과 되기의 장소로 보는 마수미 같은 정동 이론가들과 브라이도티의 논의 역시 행복하거나 즐거울 수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부과하는 ‘행복으로의 전회’와 유사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u003cbr\u003e아메드는 우리가 불행을 느낄 대상이 얼마나 많은가에 대한 의식화가 혁명적 정치의식이라고 말한다.\u003cbr\u003e\n\u003c\/div\u003e \u003cdiv\u003e\u003c\/div\u003e \u003c\/div\u003e \u003c\/div\u003e\n\u003c\/div\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center\u003e\u003ctable\u003e\u003ctr\u003e\u003ctd style=\"height:10px\"\u003e\u003c\/td\u003e\u003c\/tr\u003e\u003c\/table\u003e\u003c\/center\u003e\n\u003cdiv style=\"width:95%;padding-top:20px;padding-bottom:20px\"\u003e\n\u003cdiv style=\"text-align:left;font-size:16px;font-weight:bold;padding-bottom:20px\"\u003eGOODS SPECIFICS\u003c\/div\u003e\n\u003c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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