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수이성비판 1
Description
책소개
인간은 무엇을,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치밀한 탐구 보고서이다.
그는 먼저 감성론에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의식의 형식을 밝히고, 분석편에서 범주와 윤곽(스키마)을 통해 데이터가 어떻게 가공되고 처리되는지 추적한다.
이 책의 절반 부분은 마치 현대 과학 같은 우리 의식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 실려 있다.
이어지는 변증편은 영혼, 세계, 신 같은 형이상학 주제를 다룬다.
영원에서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이성의 도약을 통찰력 있게 논하면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정한다.
순수이성비판은 형이상학 책이자 논리학 책이다.
형이상학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인류가 항상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논리학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논리학 지식을 얻을 뿐 아니라, 어떻게 치밀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얻는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것에 관해 말하기를, 인간의 머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마치 장님이 눈 수술을 받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고 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책이다.
서양 철학은 다양하고 깊고 풍성하다.
그래서 그 전체를 조망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칸트의 저작은 독자들이 서양 철학의 복잡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유용한 나침반이자 기준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새번역은 우리말이 지식을 전하는 데 얼마나 성공적인지 보여준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이 물음에 대한 가장 치밀한 탐구 보고서이다.
그는 먼저 감성론에서 공간과 시간이라는 의식의 형식을 밝히고, 분석편에서 범주와 윤곽(스키마)을 통해 데이터가 어떻게 가공되고 처리되는지 추적한다.
이 책의 절반 부분은 마치 현대 과학 같은 우리 의식에 대한 섬세한 분석이 실려 있다.
이어지는 변증편은 영혼, 세계, 신 같은 형이상학 주제를 다룬다.
영원에서부터 영원까지 이르는 이성의 도약을 통찰력 있게 논하면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정한다.
순수이성비판은 형이상학 책이자 논리학 책이다.
형이상학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인류가 항상 생각하게 되는 주제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논리학 책이라는 점에서, 독자는 논리학 지식을 얻을 뿐 아니라, 어떻게 치밀하게 생각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얻는다.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는 것에 관해 말하기를, 인간의 머리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마치 장님이 눈 수술을 받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고 했다.
쇼펜하우어의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책이다.
서양 철학은 다양하고 깊고 풍성하다.
그래서 그 전체를 조망하고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칸트의 저작은 독자들이 서양 철학의 복잡계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통찰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유용한 나침반이자 기준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새번역은 우리말이 지식을 전하는 데 얼마나 성공적인지 보여준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역자가 독자에게(13쪽)
순수이성비판(39쪽)
A판 머리말(56쪽)
B판 머리말(70쪽)
A판 서론(100쪽)
B판 서론(112쪽)
제1권 초월적 요소론(135쪽)
제1부 초월적 감성(144쪽)
제1장 공간에 대하여(149쪽)
제2장 시간에 대하여(160쪽)
제2부 초월적 논리(196쪽)
제1편 초월적 분석(212쪽)
제1장 개념의 분석(214쪽)
제1절 모든 순수 지식 개념 발견을 위한 길잡이에 대하여(215쪽)
제2절 순수 지식 개념의 연역에 대하여(250쪽)
제2장 원리의 분석(338쪽)
제1절 순수 지식 개념의 윤곽 기능에 대하여(346쪽)
제2절 순수 지식의 모든 원리의 체계(361쪽)
제3절 대상 일반을 현상물과 사유물로 구별하는 근거에 대하여(452쪽)
부록 지식의 경험적 사용과 초월적 사용의 혼동을 통해 생겨난 분별 개념의 모호함에 대하여(476쪽)
순수이성비판(39쪽)
A판 머리말(56쪽)
B판 머리말(70쪽)
A판 서론(100쪽)
B판 서론(112쪽)
제1권 초월적 요소론(135쪽)
제1부 초월적 감성(144쪽)
제1장 공간에 대하여(149쪽)
제2장 시간에 대하여(160쪽)
제2부 초월적 논리(196쪽)
제1편 초월적 분석(212쪽)
제1장 개념의 분석(214쪽)
제1절 모든 순수 지식 개념 발견을 위한 길잡이에 대하여(215쪽)
제2절 순수 지식 개념의 연역에 대하여(250쪽)
제2장 원리의 분석(338쪽)
제1절 순수 지식 개념의 윤곽 기능에 대하여(346쪽)
제2절 순수 지식의 모든 원리의 체계(361쪽)
제3절 대상 일반을 현상물과 사유물로 구별하는 근거에 대하여(452쪽)
부록 지식의 경험적 사용과 초월적 사용의 혼동을 통해 생겨난 분별 개념의 모호함에 대하여(476쪽)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형이상학은 대상들을 다루는 다른 모든 이성적인 학문에는 통하지 않는 예외적인 행운을 누린다(생각 일반의 형식만을 다룰 뿐인 논리학 덕분이다).
만약 형이상학이 이 비판에 의해 학문의 확실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이는 그것에 들어있는 모든 인식 영역을 완전히 망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모든 과업이 완수됨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자산으로서 후대를 위해 남겨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형이상학이 오직 원리만을, 그리고 원리를 사용하는 경우, 원리들 자체에 의해 정해지는 한계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초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이런 완벽함을 완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p.81
따라서 나는 신앙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식을 부정해야 했다.
--- p.86
이성의 힘을 증명하는 그런 것에 의해 매혹되어 인식을 확장하려는 우리 욕구는 끝이 없다.
공기를 헤치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흰 비둘기는 공기의 저항을 느낀다.
비둘기는 공기가 없는 공간에서 훨씬 더 잘 날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우리 지식에 그토록 좁은 한계를 놓았다면서 플라톤은 감각세계를 떠났다.
그는 이데아의 날개를 타고 피안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 순수 지식의 텅 빈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 p.118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아서 표상을 수용하는 우리 머리의 수용성에는 감수성이라는 이름을 주자.
반면 지식은 우리 스스로 표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며, 즉 우리 인식의 자발성이다.
우리의 본성에 의해, 직관은 감각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감수성은 우리가 대상에 의해 영향받는 방식만을 포함한다.
반면 지식은 감각 직관의 대상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런 특성 중 어떤 것도 다른 쪽보다 우월하지는 않다.
감수성이 없다면 어떤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요, 지식 없이는 어떤 대상도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생각은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 p.197
이 두 저명한 사람 중에서, 로크는 열광주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으니, 이성이 일단 그런 권한을 소유하게 되면, 모호한 절제의 권고로는 더 이상 이성을 제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흄은 회의주의에 완전 굴복했으니, 그는 자신이 이성으로 간주되었던 우리 인식 능력의 폭 넓은 기만을 밝혀냈다고 믿었다.
우리는 지금 이 두 가지 절벽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인간 이성을 안전하게 이끌지 못하는 것인지, 인간 이성에 한계를 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이성이 자기 사명에 맞는 활동을 펼쳐낼 영역을 열어놓을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
--- p.260
대상을 생각하기와 대상을 인식하기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인식은 두 개의 구성 요소를 포함하되, 첫째 개념(범주)이며, 이것을 통해 대상 일반이 생각되기 때문이요, 둘째 직관이며, 이것을 통해 대상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념에 대응하는 직관이 전혀 주어질 수 없다면, 개념은 형식상 생각될 수 있을지언정 어떤 대상도 없으니, 그 개념에 의해서는 그 어떤 인식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p.308
이제 한편으로는 범주와 같은 종류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과 같은 종류여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범주를 현상에 적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삼의 어떤 것이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이런 매개 역할을 하는 표상은 순수해야 하며(즉, 어떤 경험적인 것도 없이), 한편으로는 지적이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적이어야 한다.
그런 표상이 바로 초월적 윤곽이다.
--- p.347
이제 우리는 순수 지식의 영토 전역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모두 살펴보았을 뿐더러,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올바른 장소를 정해주면서 그것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나 이 땅은 하나의 섬으로 자연 자체에 의해 둘러싸여 변할 수 없는 한계 속에 있다.
--- p.452
만약 우리가 현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 대상들에 범주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그때 우리는 감각적이지 않은 어떤 다른 직관을 상정해야만 하고, 그러면 그 대상은 적극적 의미의 사유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직관은 지적인 직관이어서 절대적으로 우리 인식 능력의 바깥에 놓인다.
그리하여 마찬가지로 범주의 사용은 경험 대상이 들어있는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없다.
정말이지 의심할 나위 없이, 감각 존재에 대응하는 지식 존재가 있고, 또한 우리의 감각적인 직관 능력으로는 전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그런 지식 존재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의 감각 직관에 대한 한낱 생각의 형식인 우리의 지식 개념이 결코 그런 존재로는 확장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직 소극적인 의미의 그런 사유물을 뜻해야 한다.
--- p.468
그럼에도 모든 판단, 실로 모든 비교는 분별을 필요로 한다.
즉 그것들은 주어진 개념이 속하는 인식 능력의 구별을 필요로 한다.
내가 표상 일반의 비교를 그 비교가 만들어지는 인식 능력에 이르는 곳까지 갖고 가는 행위, 그리고 그 표상들이 순수 지식에 속해서 서로 비교되는 것인지, 아니면 감각 직관에 소속돼서 비교되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행위, 그 행위를 일컬어 나는 초월적 분별이라 칭한다.
머릿속 어떤 상태에서 개념들이 서로 속하는 그런 상호 관계는 동일성과 차이, 조화와 대립, 내적인 것과 외부의 것, 마지막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과 규정하는 것(내용과 형식)의 관계이다.
만약 형이상학이 이 비판에 의해 학문의 확실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이는 그것에 들어있는 모든 인식 영역을 완전히 망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리하여 모든 과업이 완수됨으로써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자산으로서 후대를 위해 남겨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형이상학이 오직 원리만을, 그리고 원리를 사용하는 경우, 원리들 자체에 의해 정해지는 한계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초 학문으로서 형이상학은 이런 완벽함을 완수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니,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 p.81
따라서 나는 신앙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식을 부정해야 했다.
--- p.86
이성의 힘을 증명하는 그런 것에 의해 매혹되어 인식을 확장하려는 우리 욕구는 끝이 없다.
공기를 헤치며 자유롭게 날아가는 흰 비둘기는 공기의 저항을 느낀다.
비둘기는 공기가 없는 공간에서 훨씬 더 잘 날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우리 지식에 그토록 좁은 한계를 놓았다면서 플라톤은 감각세계를 떠났다.
그는 이데아의 날개를 타고 피안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 순수 지식의 텅 빈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진전도 이뤄내지 못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 p.118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아서 표상을 수용하는 우리 머리의 수용성에는 감수성이라는 이름을 주자.
반면 지식은 우리 스스로 표상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며, 즉 우리 인식의 자발성이다.
우리의 본성에 의해, 직관은 감각적인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감수성은 우리가 대상에 의해 영향받는 방식만을 포함한다.
반면 지식은 감각 직관의 대상을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런 특성 중 어떤 것도 다른 쪽보다 우월하지는 않다.
감수성이 없다면 어떤 대상도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이요, 지식 없이는 어떤 대상도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내용 없는 생각은 공허하며,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 p.197
이 두 저명한 사람 중에서, 로크는 열광주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으니, 이성이 일단 그런 권한을 소유하게 되면, 모호한 절제의 권고로는 더 이상 이성을 제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흄은 회의주의에 완전 굴복했으니, 그는 자신이 이성으로 간주되었던 우리 인식 능력의 폭 넓은 기만을 밝혀냈다고 믿었다.
우리는 지금 이 두 가지 절벽 사이에서 우리가 과연 인간 이성을 안전하게 이끌지 못하는 것인지, 인간 이성에 한계를 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여전히 이성이 자기 사명에 맞는 활동을 펼쳐낼 영역을 열어놓을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애쓰고 있다.
--- p.260
대상을 생각하기와 대상을 인식하기는 같지 않다.
왜냐하면 인식은 두 개의 구성 요소를 포함하되, 첫째 개념(범주)이며, 이것을 통해 대상 일반이 생각되기 때문이요, 둘째 직관이며, 이것을 통해 대상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개념에 대응하는 직관이 전혀 주어질 수 없다면, 개념은 형식상 생각될 수 있을지언정 어떤 대상도 없으니, 그 개념에 의해서는 그 어떤 인식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p.308
이제 한편으로는 범주와 같은 종류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상과 같은 종류여야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범주를 현상에 적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삼의 어떤 것이 있어야 함이 분명하다.
이런 매개 역할을 하는 표상은 순수해야 하며(즉, 어떤 경험적인 것도 없이), 한편으로는 지적이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각적이어야 한다.
그런 표상이 바로 초월적 윤곽이다.
--- p.347
이제 우리는 순수 지식의 영토 전역을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모두 살펴보았을 뿐더러, 이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올바른 장소를 정해주면서 그것들을 철저히 조사했다.
그러나 이 땅은 하나의 섬으로 자연 자체에 의해 둘러싸여 변할 수 없는 한계 속에 있다.
--- p.452
만약 우리가 현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닌 대상들에 범주를 적용하고자 한다면, 그때 우리는 감각적이지 않은 어떤 다른 직관을 상정해야만 하고, 그러면 그 대상은 적극적 의미의 사유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직관은 지적인 직관이어서 절대적으로 우리 인식 능력의 바깥에 놓인다.
그리하여 마찬가지로 범주의 사용은 경험 대상이 들어있는 경계를 넘어 확장될 수 없다.
정말이지 의심할 나위 없이, 감각 존재에 대응하는 지식 존재가 있고, 또한 우리의 감각적인 직관 능력으로는 전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그런 지식 존재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의 감각 직관에 대한 한낱 생각의 형식인 우리의 지식 개념이 결코 그런 존재로는 확장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사유물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직 소극적인 의미의 그런 사유물을 뜻해야 한다.
--- p.468
그럼에도 모든 판단, 실로 모든 비교는 분별을 필요로 한다.
즉 그것들은 주어진 개념이 속하는 인식 능력의 구별을 필요로 한다.
내가 표상 일반의 비교를 그 비교가 만들어지는 인식 능력에 이르는 곳까지 갖고 가는 행위, 그리고 그 표상들이 순수 지식에 속해서 서로 비교되는 것인지, 아니면 감각 직관에 소속돼서 비교되는 것인지를 구별하는 행위, 그 행위를 일컬어 나는 초월적 분별이라 칭한다.
머릿속 어떤 상태에서 개념들이 서로 속하는 그런 상호 관계는 동일성과 차이, 조화와 대립, 내적인 것과 외부의 것, 마지막으로 규정될 수 있는 것과 규정하는 것(내용과 형식)의 관계이다.
--- p.476
출판사 리뷰
고전 중의 고전, 서양철학의 정수이자 현대 사상의 출입문인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21세기 평범한 우리말로 다시 번역되었다!
읽어도 모르는 칸트에서, 읽으면 이해되는 칸트로.
『순수이성비판』은 오랫동안 전공자의 안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졌다.
계몽주의자 칸트는 과감하게 스스로 생각하라 했지만, 칸트를 읽는 독자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이 새번역은 평범하고 정확한 우리말로 이 난국을 끝낸다.
우선 몇몇 번역어를 바로잡았다.
한국인이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가, 한국인이 평범하게 사용하는 한국식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보통 사람의 언어로도 칸트를 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음을 증거함으로써, 철학 지식의 민주화 모델과 생활 속 철학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일본식 신비주의 칸트가 아닌, 형이상학 면에서 그리고 논리학 면에서 선명하게 나타난 서양 사상가로서의 칸트 본연의 모습이다.
읽으면 이해되고, 오류에 빠지지도 않는다.
풍부한 주석과 예시가 독자를 돕는다.
독일어 - 영어 - 기존 번역 - 새번역 비교표를 반복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없다.
난해하게 보이는 대목에서는 다양한 그림과 표가 제시되어 있다.
정확하게 친절하다, 이것이 이 번역의 가치다.
이제 독서가라면 누구나 스스로 칸트를 읽고 누구나 스스로 칸트를 생각할 수 있다.
인류 스승의 저작을 통해 독자의 사고력과 논리력 향상을 기대해도 좋다.
철학이 평범한 우리말로 언어화될 때, 우리 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는지 체감하게 된다.
읽는 경험 역시 새롭다.
B5 대판, 본문 큰 글자, 넉넉한 여백, 180도 펼침 제본으로 메모하며 읽기 좋다.
실로 모든 것이 새롭다.
반갑고 즐거운 철학 번역이다.
읽어도 모르는 칸트에서, 읽으면 이해되는 칸트로.
『순수이성비판』은 오랫동안 전공자의 안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려운 책으로 여겨졌다.
계몽주의자 칸트는 과감하게 스스로 생각하라 했지만, 칸트를 읽는 독자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이 새번역은 평범하고 정확한 우리말로 이 난국을 끝낸다.
우선 몇몇 번역어를 바로잡았다.
한국인이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일본식 한자어가, 한국인이 평범하게 사용하는 한국식 한자어로 대체되었다.
보통 사람의 언어로도 칸트를 더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음을 증거함으로써, 철학 지식의 민주화 모델과 생활 속 철학의 본보기를 제시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일본식 신비주의 칸트가 아닌, 형이상학 면에서 그리고 논리학 면에서 선명하게 나타난 서양 사상가로서의 칸트 본연의 모습이다.
읽으면 이해되고, 오류에 빠지지도 않는다.
풍부한 주석과 예시가 독자를 돕는다.
독일어 - 영어 - 기존 번역 - 새번역 비교표를 반복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없다.
난해하게 보이는 대목에서는 다양한 그림과 표가 제시되어 있다.
정확하게 친절하다, 이것이 이 번역의 가치다.
이제 독서가라면 누구나 스스로 칸트를 읽고 누구나 스스로 칸트를 생각할 수 있다.
인류 스승의 저작을 통해 독자의 사고력과 논리력 향상을 기대해도 좋다.
철학이 평범한 우리말로 언어화될 때, 우리 생활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는지 체감하게 된다.
읽는 경험 역시 새롭다.
B5 대판, 본문 큰 글자, 넉넉한 여백, 180도 펼침 제본으로 메모하며 읽기 좋다.
실로 모든 것이 새롭다.
반갑고 즐거운 철학 번역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30일
- 판형 : 사철제본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512쪽 | 182*257*35mm
- ISBN13 : 9791190844659
- ISBN10 : 119084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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