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의 장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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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책소개
인문학자의 파리 산책기 『파리를 생각한다』 두 번째 이야기
거주자의 깊이로 들여다본 '파리의 장소들'
‘심미적 이성’을 작동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정수복 교수가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과 지금 여기 눈앞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떠나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상상력’을 결합시켜 도시 공간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15년 넘게 파리에 살고있는 저자는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열여섯 개의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소들이 담고 있는 여러 겹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파리의 장소들은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곳들이다.
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으로 대표되는 기능성만 갖춘 장소 아닌 장소인 ‘비(非)장소’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키며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건물, 다리, 골목길 등 진정한 ‘장소place’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도시 현실에 저자의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은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화려한 광장에서 소박한 골목길에 이르는 350여 개의 장소들과 시인, 화가, 혁명가, 사상가를 포함하는 3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은 파리의 장소들을 종횡무진 걸으며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켜켜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드러낸 저자의 작업은 우리에게 ‘장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대로 “삶은 기억을 남기고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거주자의 깊이로 들여다본 '파리의 장소들'
‘심미적 이성’을 작동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이는 정수복 교수가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과 지금 여기 눈앞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떠나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상상력’을 결합시켜 도시 공간의 미학을 이야기한다.
15년 넘게 파리에 살고있는 저자는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열여섯 개의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소들이 담고 있는 여러 겹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파리의 장소들은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곳들이다.
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으로 대표되는 기능성만 갖춘 장소 아닌 장소인 ‘비(非)장소’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키며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건물, 다리, 골목길 등 진정한 ‘장소place’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도시 현실에 저자의 장소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은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화려한 광장에서 소박한 골목길에 이르는 350여 개의 장소들과 시인, 화가, 혁명가, 사상가를 포함하는 3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은 파리의 장소들을 종횡무진 걸으며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켜켜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드러낸 저자의 작업은 우리에게 ‘장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대로 “삶은 기억을 남기고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책을 열며 : 걸으며 발견한 파리의 장소들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인가 |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 | 장소와 비장소 | 도시의 질과 삶의 질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파리진의 환기 작용 | 뉘앙스의 감각 | 새로운 글쓰기 방식의 모색 | 이 책을 흐르는 글길 | 좀머 씨와 나의 할아버지께
제1부 잘 알려진 ‘장소’ 다르게 보기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내가 마지막 본 에펠탑 | 에펠탑을 둘러싼 찬반 논쟁 | 들로네와 샤갈의 에펠탑 | 시와 이미지 속의 에펠탑 | 숫자로 본 에펠탑 | 르 코르뷔지에와 롤랑 바르트의 에펠탑 | 밤하늘에 빛나는 에펠탑 | 에펠탑을 바라보기에 이상적인 장소 | 에펠탑 위의 도시 기호학 | 에펠탑에서 펼치는 역사적 상상력 | 에펠탑과 사크레 쾨르 성당의 엇갈린 만남 | 에펠탑이 노트르담을 대신해 파리의 상징이 된 이유 | 순수한 시니피앙으로서의 에펠탑 | 야망과 광고의 장소 에펠탑 | 모험의 장소 에펠탑 | 어린이들이 그린 환상의 에펠탑 | 끝없이 늘어나는 에펠탑 기념품 | 쓸모없음의 위대함 | 에펠탑의 위험스러운 남용
센 강 위의 다리를 건너며
센 강을 바라보며 | 센 강변의 화가들 | 센 강 위의 인도교를 건널 때 | 퐁 데 자르에서 만난 사람들 | 솔페리노 다리를 허물고 다시 지은 이유 |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와 미테랑 국립도서관 | 드빌리 다리와 케브랑리 박물관 | 퐁뇌프 다리의 기억 | 도핀느 광장과 그 주변 | 고갱이 그린 이에나 다리 | 미라보 다리와 앙드레 시트로앵 공원
뒤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사원
장소에도 첫인상이 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 | 빅토르 위고와 노트르담의 신화 | 요한 23세 정원의 숨은 이야기들 | 200만 원짜리 풍경 | 그림 속의 노트르담 대성당 | 미적 체험과 역사적 상상력
몽마르트르 언덕의 다른 얼굴
어디로 올라갈 것인가? | 라마르크-콜랭쿠르 지하철역 앞 풍경 | 몽마르트르의 포도밭과 야생정원 | 몽마르트르의 화가들 | 순교자 생-드니와 몽마르트르의 문인들 | 몽마르트르 언덕의 다른 쪽 | 몽마르트르 언덕 북쪽의 마을 분위기 | 이민객의 거리를 지나며
제2부 피하고 싶은 ‘장소’ 일부러 찾아다니기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
파리의 달동네 | 폭동과 저항의 근거지 | 이민객의 행렬 | 언덕 위의 카페들 |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계단 | 개에게 물린 철학자들 |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실험실 | 파리에 남은 마르크스주의의 상징물 | 금속노조 문화회관의 역사 | 지역 문화회관으로 거듭나기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죽음을 기억하라 | 도시 안에 묘지가 있는 까닭 | 파리코뮌의 집합적 기억 |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연 | 몽파르나스 묘지에 들어서 |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기억 | 에밀 뒤르켐과 나의 대학원 시절 | ‘참여하는 관객’ 레몽 아롱 | 몽파르나스 묘지의 문학 기행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절규 | 다르게 들어가는 몽파르나스 묘지 | 갱스부르, 카스토리아디스 그리고 니키 드 생-팔 |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 | 브란쿠시의 ‘입맞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순례길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며
위선의 도시 | 아라고 거리의 추억 | 상테 감옥의 유래 | 미셸 푸코가 감옥을 보는 방식 | 상테 감옥 주변 | 파리에서 사라진 감옥들 | 공원으로 변모한 여성 전용 감옥 | 비판적 사회과학의 산실이 된 군대 감옥
파리코뮌의 격전지 뷔트 오 카이 언덕을 찾아서
언덕을 오르내리는 기분 |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 | 언덕을 올라 골목길로 들어서 | 파리코뮌의 기억 | 이름 없는 작은 광장 | 파리코뮌 광장 | 포스터와 벽화 | 언덕을 내려가며 | 함께 부르는 ‘벚꽃 필 무렵’ | 이탈리아 광장 주변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
제3부 ‘장소’에 숨은 뜻 자세히 찾아 읽기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
파리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세상 | 피카소가 연 몽파르나스 시대 | 1920년대 몽파르나스의 일본인 화가들 | 캉파뉴 프르미에르 길과 사귀기 | 이스트리아 호텔의 예술가들 | 정신분석학과 지옥으로 빠지는 길 | 무슈 르 모노크롬과 흥분한 어머니 | 아제의 아파트와 막다른 골목 | 동성애자를 위한 잡지 |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예술인 마을 | 레옹 베르트, 생텍쥐페리의 가장 친한 친구 | 인상파 화가 종캥과 찬 서점 | 캉파뉴 프르미에르 길의 변화
카르티에 재단의 풀꽃세상
유리로 지은 집 | 샤토브리앙이 심은 삼나무 | 오래된 담 옆의 야생화 정원 | 정원 안의 명상을 위한 공간 | 유목민의 밤 | 생태학적 정원 | 정신병동에서 풀꽃 정원으로
‘에스파스 알베르 칸’의 일본 정원
도시 안의 자연 | 반일 민족주의 정서의 원천 | 일본에 대한 ‘묘한’ 관심 | 파리에서 걷는 일뮺 정원들 | 알베르 칸의 일본 정원 | 연못과 다리 | 순환과 상생 | 나무를 찬양함 | 돌부처 상과 물소리 | 오솔길을 걸으며 | 알베르 칸의 삶과 사상 | 프랑스 정원사의 선(禪) 강의 | 국경 없는 정원 | 심미적 생태주의자
브라상스 공원 앞의 파리지앵들
국민 가수 브라상스의 소박한 꿈 | 브라상스 공원의 발견 | 브라상스 공원의 역사 | 공간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 | 자연친화적 설치미술 | 코즈모폴리턴 ‘벌집’ | 주말의 중고 책 시장 | 조르주 브라상스 음악제 | 카페테라스에 앉아 |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 계속 바라보다 | 개미의 출현 | 중심부와 변두리의 차이 | 추워지기 시작하다 | 이제 떠날 시간이다
제4부 한가로운 ‘장소’ 마음 가는 대로 걷기
생-루이 섬의 센 강변 산책
산책길에 만나는 서점들 | 콩파니 서점에서 | 벤야민의 파리 | 자유의 섬, 생-루이 섬 | 생-루이 섬의 발견 | 돌로 지은 거대한 배 | 오를레앙 강변로의 풍경화 | 랑베르 저택의 수난 | 생-루이 섬의 역사 | 카미유 클로델의 아틀리에 | 눈 내린 날 오후의 생-루이 섬
생-마르탱 운하 물길 따라 떠돌기
파리를 흐르는 또 하나의 물길 | 빌맹 공원 가로지르기 | 생-마르탱 운하의 흐름새 | 운하변의 오래된 카페 ‘앗모스페르’ | 둑길 위의 사람들 | ‘북호텔’ 이야기 | 생-마르탱 운하 주변의 변화 | 티옹빌 거리의 추억 | 라 빌레트 공원의 ‘광기’
사라진 비에브르 강의 흔적을 찾아서
지하철 6번선을 타고 | 프랑스 퀼튀르 방송의 ‘메트로폴리탱’ | 에티엔 출판 기술학교 | 혁명가 오귀스트 블랑키의 흔적 | 지금은 사라진 그때 그 사람 | 약수터와 수영장의 물 이야기 | 골목길과 동네 공원 | 파리에 부는 선(禪) 바람 | 에노크 광장 부근 | 광장의 모퉁이 카페에서 | 지금은 사라진 물레방앗간 | 13구를 떠나며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산책
내가 즐겨 찾는 파리의 공원들 | 겨울밤 튈르리 공원 가로지르기 | 튈르리 공원 밤 산책을 위한 준비 | 솔페리노 다리를 건너서 | 튈르리 공원의 역사 | 조각 공원으로서의 튈르리 공원 | 튈르리 공원의 조각 작품들 | 카페테라스에서 생-제르맹-데-프레로 | 튈르리 공원 동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책을 닫으며 : 파리 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파리 걷기 | 장르를 넘어서 | 분류 불가능한 책의 자리 | 손짓하는 파리 계속되는 실험
이 책에 나오는 장소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
이 책은 누구를 위한 책인가 |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 | 장소와 비장소 | 도시의 질과 삶의 질 |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 | 파리진의 환기 작용 | 뉘앙스의 감각 | 새로운 글쓰기 방식의 모색 | 이 책을 흐르는 글길 | 좀머 씨와 나의 할아버지께
제1부 잘 알려진 ‘장소’ 다르게 보기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내가 마지막 본 에펠탑 | 에펠탑을 둘러싼 찬반 논쟁 | 들로네와 샤갈의 에펠탑 | 시와 이미지 속의 에펠탑 | 숫자로 본 에펠탑 | 르 코르뷔지에와 롤랑 바르트의 에펠탑 | 밤하늘에 빛나는 에펠탑 | 에펠탑을 바라보기에 이상적인 장소 | 에펠탑 위의 도시 기호학 | 에펠탑에서 펼치는 역사적 상상력 | 에펠탑과 사크레 쾨르 성당의 엇갈린 만남 | 에펠탑이 노트르담을 대신해 파리의 상징이 된 이유 | 순수한 시니피앙으로서의 에펠탑 | 야망과 광고의 장소 에펠탑 | 모험의 장소 에펠탑 | 어린이들이 그린 환상의 에펠탑 | 끝없이 늘어나는 에펠탑 기념품 | 쓸모없음의 위대함 | 에펠탑의 위험스러운 남용
센 강 위의 다리를 건너며
센 강을 바라보며 | 센 강변의 화가들 | 센 강 위의 인도교를 건널 때 | 퐁 데 자르에서 만난 사람들 | 솔페리노 다리를 허물고 다시 지은 이유 |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와 미테랑 국립도서관 | 드빌리 다리와 케브랑리 박물관 | 퐁뇌프 다리의 기억 | 도핀느 광장과 그 주변 | 고갱이 그린 이에나 다리 | 미라보 다리와 앙드레 시트로앵 공원
뒤에서 바라본 노트르담 사원
장소에도 첫인상이 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 | 빅토르 위고와 노트르담의 신화 | 요한 23세 정원의 숨은 이야기들 | 200만 원짜리 풍경 | 그림 속의 노트르담 대성당 | 미적 체험과 역사적 상상력
몽마르트르 언덕의 다른 얼굴
어디로 올라갈 것인가? | 라마르크-콜랭쿠르 지하철역 앞 풍경 | 몽마르트르의 포도밭과 야생정원 | 몽마르트르의 화가들 | 순교자 생-드니와 몽마르트르의 문인들 | 몽마르트르 언덕의 다른 쪽 | 몽마르트르 언덕 북쪽의 마을 분위기 | 이민객의 거리를 지나며
제2부 피하고 싶은 ‘장소’ 일부러 찾아다니기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
파리의 달동네 | 폭동과 저항의 근거지 | 이민객의 행렬 | 언덕 위의 카페들 |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계단 | 개에게 물린 철학자들 | 사회주의라는 유토피아의 실험실 | 파리에 남은 마르크스주의의 상징물 | 금속노조 문화회관의 역사 | 지역 문화회관으로 거듭나기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죽음을 기억하라 | 도시 안에 묘지가 있는 까닭 | 파리코뮌의 집합적 기억 | 묘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연 | 몽파르나스 묘지에 들어서 |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기억 | 에밀 뒤르켐과 나의 대학원 시절 | ‘참여하는 관객’ 레몽 아롱 | 몽파르나스 묘지의 문학 기행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절규 | 다르게 들어가는 몽파르나스 묘지 | 갱스부르, 카스토리아디스 그리고 니키 드 생-팔 |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 | 브란쿠시의 ‘입맞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순례길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며
위선의 도시 | 아라고 거리의 추억 | 상테 감옥의 유래 | 미셸 푸코가 감옥을 보는 방식 | 상테 감옥 주변 | 파리에서 사라진 감옥들 | 공원으로 변모한 여성 전용 감옥 | 비판적 사회과학의 산실이 된 군대 감옥
파리코뮌의 격전지 뷔트 오 카이 언덕을 찾아서
언덕을 오르내리는 기분 | 지상으로 다니는 지하철 | 언덕을 올라 골목길로 들어서 | 파리코뮌의 기억 | 이름 없는 작은 광장 | 파리코뮌 광장 | 포스터와 벽화 | 언덕을 내려가며 | 함께 부르는 ‘벚꽃 필 무렵’ | 이탈리아 광장 주변의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
제3부 ‘장소’에 숨은 뜻 자세히 찾아 읽기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
파리의 카페에서 바라보는 세상 | 피카소가 연 몽파르나스 시대 | 1920년대 몽파르나스의 일본인 화가들 | 캉파뉴 프르미에르 길과 사귀기 | 이스트리아 호텔의 예술가들 | 정신분석학과 지옥으로 빠지는 길 | 무슈 르 모노크롬과 흥분한 어머니 | 아제의 아파트와 막다른 골목 | 동성애자를 위한 잡지 |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예술인 마을 | 레옹 베르트, 생텍쥐페리의 가장 친한 친구 | 인상파 화가 종캥과 찬 서점 | 캉파뉴 프르미에르 길의 변화
카르티에 재단의 풀꽃세상
유리로 지은 집 | 샤토브리앙이 심은 삼나무 | 오래된 담 옆의 야생화 정원 | 정원 안의 명상을 위한 공간 | 유목민의 밤 | 생태학적 정원 | 정신병동에서 풀꽃 정원으로
‘에스파스 알베르 칸’의 일본 정원
도시 안의 자연 | 반일 민족주의 정서의 원천 | 일본에 대한 ‘묘한’ 관심 | 파리에서 걷는 일뮺 정원들 | 알베르 칸의 일본 정원 | 연못과 다리 | 순환과 상생 | 나무를 찬양함 | 돌부처 상과 물소리 | 오솔길을 걸으며 | 알베르 칸의 삶과 사상 | 프랑스 정원사의 선(禪) 강의 | 국경 없는 정원 | 심미적 생태주의자
브라상스 공원 앞의 파리지앵들
국민 가수 브라상스의 소박한 꿈 | 브라상스 공원의 발견 | 브라상스 공원의 역사 | 공간에 남아 있는 과거의 흔적들 | 자연친화적 설치미술 | 코즈모폴리턴 ‘벌집’ | 주말의 중고 책 시장 | 조르주 브라상스 음악제 | 카페테라스에 앉아 |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 계속 바라보다 | 개미의 출현 | 중심부와 변두리의 차이 | 추워지기 시작하다 | 이제 떠날 시간이다
제4부 한가로운 ‘장소’ 마음 가는 대로 걷기
생-루이 섬의 센 강변 산책
산책길에 만나는 서점들 | 콩파니 서점에서 | 벤야민의 파리 | 자유의 섬, 생-루이 섬 | 생-루이 섬의 발견 | 돌로 지은 거대한 배 | 오를레앙 강변로의 풍경화 | 랑베르 저택의 수난 | 생-루이 섬의 역사 | 카미유 클로델의 아틀리에 | 눈 내린 날 오후의 생-루이 섬
생-마르탱 운하 물길 따라 떠돌기
파리를 흐르는 또 하나의 물길 | 빌맹 공원 가로지르기 | 생-마르탱 운하의 흐름새 | 운하변의 오래된 카페 ‘앗모스페르’ | 둑길 위의 사람들 | ‘북호텔’ 이야기 | 생-마르탱 운하 주변의 변화 | 티옹빌 거리의 추억 | 라 빌레트 공원의 ‘광기’
사라진 비에브르 강의 흔적을 찾아서
지하철 6번선을 타고 | 프랑스 퀼튀르 방송의 ‘메트로폴리탱’ | 에티엔 출판 기술학교 | 혁명가 오귀스트 블랑키의 흔적 | 지금은 사라진 그때 그 사람 | 약수터와 수영장의 물 이야기 | 골목길과 동네 공원 | 파리에 부는 선(禪) 바람 | 에노크 광장 부근 | 광장의 모퉁이 카페에서 | 지금은 사라진 물레방앗간 | 13구를 떠나며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산책
내가 즐겨 찾는 파리의 공원들 | 겨울밤 튈르리 공원 가로지르기 | 튈르리 공원 밤 산책을 위한 준비 | 솔페리노 다리를 건너서 | 튈르리 공원의 역사 | 조각 공원으로서의 튈르리 공원 | 튈르리 공원의 조각 작품들 | 카페테라스에서 생-제르맹-데-프레로 | 튈르리 공원 동문에서 콩코르드 광장까지
책을 닫으며 : 파리 걷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파리 걷기 | 장르를 넘어서 | 분류 불가능한 책의 자리 | 손짓하는 파리 계속되는 실험
이 책에 나오는 장소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이 책에 나오는 작품들
책 속으로
프랑스의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는 그런 의미와 고유한 느낌이 있는 도시의 공간들을 ‘장소’라고 정의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비(非)장소’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와 ‘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책을 열며」, 12~13
에펠탑은 바라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주체 또는 바라보는 장소가 된다.
에펠탑은 주체와 객체, 능동태와 수동태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는 기이한 물체다.
에펠탑은 노트르담 사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장소의 하나다.
그러나 다른 장소들과 달리 에펠탑은 비어 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퐁피두센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트르담 사원도 미술관은 아니지만 꽤 많은 볼거리를 담고 있다.
철로 만든 에펠탑은 그 안에 보여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49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는 에펠탑이 전통적인 미적 기준을 벗어나며 구체적인 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미적 기준으로 보아도 흉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조물을 단지 일회성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립한다는 것은 비이성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면 몰라도 쓸모없는 기념비적 탑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짓는 행위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실용주의적 합리성에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탑을 설계하고 시공한 구스타브 에펠까지도 반대파들의 주장에 맞서 탑의 유용성을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에펠탑이 풍력 저항 실험, 공기 역학 실험, 금속의 저항에 대한 연구,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인체 생리 현상의 변화 연구, 무선공학 연구, 정보 통신 연구, 기상 관측 등에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에펠탑은 실제로 그런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펠탑의 가치는 그런 합리적 용도로 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에펠탑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파리 사람, 프랑스 사람,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게 해준다는 데 있다.
에펠탑 꼭대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나 형의 목에 올라가 앉아서 평시 보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보았을 때 느끼던 경탄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에펠탑은 모든 사람에게 동심으로 돌아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수직 상승의 꿈을 꾸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쓸모없어 보이는 에펠탑의 엄청난 쓸모이다.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67~68
파리는 센 강 위에 떠 있는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지도를 펴보면 지도 한가운데 시테 섬이 보인다.
그러니까 거대한 Y자를 옆으로 뉘여 놓은 모습을 하고 있는 시테 섬의 서쪽 끝에 파리의 좌안과 우안을 이어주는 첫번째 다리가 세워졌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다리의 이름은 ‘퐁뇌프Pont Neuf’이다.
‘새로 지은 다리’라는 뜻이다.
그 이후 파리를 흐르는 센 강 위에 35개의 다리가 더 지어졌고 ‘새로 지은 다리’는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었다.
파리의 중심인 시테 섬에 세워진 퐁뇌프의 위치는 파리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18세기 혁명 전야에 파리를 샅샅이 누비며 걸어 다니며 파리의 풍속을 연구한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퐁뇌프는 인간의 신체 중 심장에 해당하며 모든 움직임과 순환의 중심지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퐁뇌프를 건너는 일은 파리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센 강 위의 다리를 건너며」, 87~88
메닐몽탕 거리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라는 점에서 벨빌 거리와 같다.
그러나 벨빌 거리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상점들이 계속 이어지는 데 비해서 메닐몽탕 거리는 문을 닫은 상점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자크 루소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에 메닐몽탕 언덕길을 즐겨 걸었다.
그 책의 두 번째 산책 편을 보면 1776년 10월 24일 목요일 루소는 벨빌과 메닐몽탕을 연결하는 오트-보른 부근을 걷고 있었다.
그날 루소는 엄청나게 큰 덴마크 개를 만나 봉면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그때 정신이 희미했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누군가가 내가 오트-보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아틀라스 산에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루소가 메닐몽탕 언덕길을 산책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몽테뉴도 메닐몽탕 언덕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두 사람 다 메닐몽탕 언덕길을 걷다가 개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했다.
이런 일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지역을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 154~55
죽음은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무한정 살 수 있다면 이런저런 삶을 다 살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백 년 미만으로 정해진 양의 시간을 오로지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도시는 유한한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포장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간 죽은 자들을 위한 묘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도시 외곽으로 빼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파리에서 죽은 자를 위한 묘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간에 함께 위치한다.
삶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의 공간인 파리의 묘지들은 삶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서양의 전통에서 학자들이 서재에서 두개골을 옆에 놓고 학문에 정진하는 것도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기 위한 경종이 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163~67
도시는 무한한 이동 가능성의 상징이다.
도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자유의 공간이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자유의 정반대인 구속을 상징하는 감옥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 그런데 파리 한가운데 감옥이 버젓이 떡 버티고 서 있다.
21세기에 남아 있는 19세기의 유산이다.
14구의 교통의 요지 당페르-로슈로 지하철역을 나와 아라고 거리로 들어서서 계속 걷다 보면 높이 20미터쯤 되는 높은 벽이 한참 동안 계속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멘트에 돌을 섞어 쌓아올린 이 벽은 고색창연한 느낌을 준다.
벽의 맨 위쪽에는 마치 단검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금속성 칼날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다.
벽 안쪽 건물의 마지막 층이 보이는데 작은 유리창에는 철창이 쳐 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감옥의 모습이다.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며」, 191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건물에서 라스파이 대로를 건너면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시작된다.
처음에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이름을 듣고서 나는 ‘첫번째 시골’이라는, 다소 낭만적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파리 길 이름 사전을 찾아보니까 ‘첫번째 전투’라는 다소 공격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캉파뉴는 ‘시골’과 ‘전투’라는 두 가지 뜻을 다 담고 있다).
이 골목은 그냥 지나가면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파리의 골목길이다.
〔……〕 나에게도 이 골목길은 그저 뤽상부르 공원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골목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주 이 길을 오가게 되면서 이 길과 친해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기호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기호들과 들리는 소리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보잘것없는 평범한 골목길이 수많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는 의미의 창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일은 숨은 기호를 찾아내 해석하는 기호학적 산책의 기회를 제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두터운 의미의 지층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 237~38
얼마 전에 죄드폼에서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전을 보고 나와 튈르리 공원으로 내려가려고 왼쪽으로 돌아섰는데 죄드폼 건물 벽에 안 보이던 석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새로 설치된 석판이었다.
거기에는 1940년에서 1944년 사이 나치 치하에서 로즈 발랑이라는 죄드폼의 미술품 보관 담당자의 행적이 적? 있었다.
당시 나치는 프랑스의 화상들이나 개인 수집가들에게서 탈취한 미술작품들을 죄드폼에 저장하고 분류해서 독일로 이송하였는데, 로즈 발랑은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매일 출근하여 독일로 가는 작품들의 소재를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그녀의 기록은 전후 독일로 반출된 작품 4~5천 점을 다시 프랑스로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산책」, 378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했다.
시인의 혼이 되어보기도 했고 소설가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
시가 어느 순간에 밀려오는 영감의 응축된 언어적 표현이라면, 이 책에는 파리의 특정 장소들에서 느낀 고양된 감정과 미적 체험의 순간들이 군데군데 숨을 쉬고 있다.
소설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쓴 파리 이야기들이 소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장소라고 다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주유소, 맥도날드, 24시간 편의점 등 획일적으로 디자인된 유용하지만 무의미한 공간을 ‘장소’가 아닌 장소를 뜻하는 ‘비(非)장소’라고 이름 붙였다.
장소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기억을 상기시키며 감정을 풍부하게 해주고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라면, 비장소는 우리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생존과 일상의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도시의 장소들은 감동, 기쁨, 안식, 평안을 제공한다.
장소에서는 공간과의 대화가 이루어지지만, 비장소에서 공간은 그저 상투성과 단절감만 느끼게 한다.
‘장소’는 없고 오로지 필요에 의해 생긴 기능적 ‘비장소’들만 즐비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지고 각박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느끼며 쫓기게 된다.
그러니까 어느 도시를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 속에는 ‘세렌디퍼티’와 ‘장소’의 화학적 결합이 쉽게 일어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시의 공적인 ‘장소’가 기억과 상상의 연금술을 통해 나만의 장소, 나의 삶에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책을 열며」, 12~13
에펠탑은 바라보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바라보는 주체 또는 바라보는 장소가 된다.
에펠탑은 주체와 객체, 능동태와 수동태 양쪽 모두가 될 수 있는 기이한 물체다.
에펠탑은 노트르담 사원,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장소의 하나다.
그러나 다른 장소들과 달리 에펠탑은 비어 있는 박물관이다.
루브르나 퐁피두센터에는 엄청나게 많은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다.
노트르담 사원도 미술관은 아니지만 꽤 많은 볼거리를 담고 있다.
철로 만든 에펠탑은 그 안에 보여줄 것이 거의 없으면서도, 다른 어떤 장소보다도 많은 것을 보여준다.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49
에펠탑 건립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주요 논리는 에펠탑이 전통적인 미적 기준을 벗어나며 구체적인 용도가 없다는 점이었다.
미적 기준으로 보아도 흉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구조물을 단지 일회성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들여 건립한다는 것은 비이성적 행위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면 몰라도 쓸모없는 기념비적 탑을 엄청난 돈을 들여 짓는 행위는 당시 부르주아들의 실용주의적 합리성에 부합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탑을 설계하고 시공한 구스타브 에펠까지도 반대파들의 주장에 맞서 탑의 유용성을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엔지니어답게 에펠탑이 풍력 저항 실험, 공기 역학 실험, 금속의 저항에 대한 연구,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인체 생리 현상의 변화 연구, 무선공학 연구, 정보 통신 연구, 기상 관측 등에 쓰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서 에펠탑은 실제로 그런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그러나 에펠탑의 가치는 그런 합리적 용도로 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에펠탑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파리 사람, 프랑스 사람, 온 세상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세파에 시달려 잃어버린 순수성을 되찾게 해준다는 데 있다.
에펠탑 꼭대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나 형의 목에 올라가 앉아서 평시 보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보았을 때 느끼던 경탄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에펠탑은 모든 사람에게 동심으로 돌아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수직 상승의 꿈을 꾸게 한다.
그것이야말로 쓸모없어 보이는 에펠탑의 엄청난 쓸모이다.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 67~68
파리는 센 강 위에 떠 있는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
파리 지도를 펴보면 지도 한가운데 시테 섬이 보인다.
그러니까 거대한 Y자를 옆으로 뉘여 놓은 모습을 하고 있는 시테 섬의 서쪽 끝에 파리의 좌안과 우안을 이어주는 첫번째 다리가 세워졌음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그 다리의 이름은 ‘퐁뇌프Pont Neuf’이다.
‘새로 지은 다리’라는 뜻이다.
그 이후 파리를 흐르는 센 강 위에 35개의 다리가 더 지어졌고 ‘새로 지은 다리’는 가장 오래된 다리가 되었다.
파리의 중심인 시테 섬에 세워진 퐁뇌프의 위치는 파리의 심장부에 해당한다.
18세기 혁명 전야에 파리를 샅샅이 누비며 걸어 다니며 파리의 풍속을 연구한 루이 세바스티앙 메르시에는 “퐁뇌프는 인간의 신체 중 심장에 해당하며 모든 움직임과 순환의 중심지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퐁뇌프를 건너는 일은 파리의 심장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센 강 위의 다리를 건너며」, 87~88
메닐몽탕 거리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이라는 점에서 벨빌 거리와 같다.
그러나 벨빌 거리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고 상점들이 계속 이어지는 데 비해서 메닐몽탕 거리는 문을 닫은 상점들도 여기저기 눈에 띄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그런지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쓴 장-자크 루소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20여 년 전에 메닐몽탕 언덕길을 즐겨 걸었다.
그 책의 두 번째 산책 편을 보면 1776년 10월 24일 목요일 루소는 벨빌과 메닐몽탕을 연결하는 오트-보른 부근을 걷고 있었다.
그날 루소는 엄청나게 큰 덴마크 개를 만나 봉면을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그때 정신이 희미했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순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보았다.
누군가가 내가 오트-보른에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나에게는 아틀라스 산에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루소가 메닐몽탕 언덕길을 산책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몽테뉴도 메닐몽탕 언덕길을 걸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두 사람 다 메닐몽탕 언덕길을 걷다가 개에게 물리는 봉변을 당했다.
이런 일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 지역을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시키는 데 기여했는지도 모른다.
---「파리 동북부의 ‘위험한’ 동네를 찾아서」, 154~55
죽음은 삶을 생각하게 한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무한정 살 수 있다면 이런저런 삶을 다 살아볼 수 있다.
그러나 백 년 미만으로 정해진 양의 시간을 오로지 한 번밖에 살 수 없기 때문에, 삶의 의미라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도시는 유한한 삶의 적나라한 모습을 포장한다.
그러기에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간 죽은 자들을 위한 묘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 도시 외곽으로 빼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파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파리에서 죽은 자를 위한 묘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공간에 함께 위치한다.
삶의 공간 속에 들어와 있는 죽음의 공간인 파리의 묘지들은 삶의 유한성을 일깨운다.
서양의 전통에서 학자들이 서재에서 두개골을 옆에 놓고 학문에 정진하는 것도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기 위한 경종이 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몽파르나스 묘지 순례」, 163~67
도시는 무한한 이동 가능성의 상징이다.
도시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자유의 공간이다.
“도시의 공기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래서 자유의 정반대인 구속을 상징하는 감옥은 일상의 생활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 그런데 파리 한가운데 감옥이 버젓이 떡 버티고 서 있다.
21세기에 남아 있는 19세기의 유산이다.
14구의 교통의 요지 당페르-로슈로 지하철역을 나와 아라고 거리로 들어서서 계속 걷다 보면 높이 20미터쯤 되는 높은 벽이 한참 동안 계속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시멘트에 돌을 섞어 쌓아올린 이 벽은 고색창연한 느낌을 준다.
벽의 맨 위쪽에는 마치 단검처럼 보이는 날카로운 금속성 칼날들이 빈틈없이 꽂혀 있다.
벽 안쪽 건물의 마지막 층이 보이는데 작은 유리창에는 철창이 쳐 있다.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감옥의 모습이다.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며」, 191
피카소의 아틀리에가 있던 건물에서 라스파이 대로를 건너면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가 시작된다.
처음에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이름을 듣고서 나는 ‘첫번째 시골’이라는, 다소 낭만적 방식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파리 길 이름 사전을 찾아보니까 ‘첫번째 전투’라는 다소 공격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캉파뉴는 ‘시골’과 ‘전투’라는 두 가지 뜻을 다 담고 있다).
이 골목은 그냥 지나가면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파리의 골목길이다.
〔……〕 나에게도 이 골목길은 그저 뤽상부르 공원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골목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자주 이 길을 오가게 되면서 이 길과 친해지게 되었고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기호들이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기호들과 들리는 소리들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보잘것없는 평범한 골목길이 수많은 기호들로 가득 차 있는 의미의 창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일은 숨은 기호를 찾아내 해석하는 기호학적 산책의 기회를 제공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새로울 것이 없는 평범해 보이는 거리가 두터운 의미의 지층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의 기호학」, 237~38
얼마 전에 죄드폼에서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전을 보고 나와 튈르리 공원으로 내려가려고 왼쪽으로 돌아섰는데 죄드폼 건물 벽에 안 보이던 석판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새로 설치된 석판이었다.
거기에는 1940년에서 1944년 사이 나치 치하에서 로즈 발랑이라는 죄드폼의 미술품 보관 담당자의 행적이 적? 있었다.
당시 나치는 프랑스의 화상들이나 개인 수집가들에게서 탈취한 미술작품들을 죄드폼에 저장하고 분류해서 독일로 이송하였는데, 로즈 발랑은 발각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매일 출근하여 독일로 가는 작품들의 소재를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그녀의 기록은 전후 독일로 반출된 작품 4~5천 점을 다시 프랑스로 가져오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되었다.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산책」, 378
이 책은 장소에 관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그 장소와 얽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시의 장소들에 어찌 사람 사는 이야기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의 파리 연작은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학자이지만 이 책에서 문학적 글쓰기를 모색했다.
시인의 혼이 되어보기도 했고 소설가의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다.
이 책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는 시적인 순간도 있고 소설적인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박혀 있다.
시가 어느 순간에 밀려오는 영감의 응축된 언어적 표현이라면, 이 책에는 파리의 특정 장소들에서 느낀 고양된 감정과 미적 체험의 순간들이 군데군데 숨을 쉬고 있다.
소설은 특정 시기, 특정 장소에서 사람들이 서로 얽혀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쓴 파리 이야기들이 소설은 아니지만 거기에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책을 닫으며」, 387
출판사 리뷰
책이나 사람이나 음악을 평가할 때 나에게 떠오르는 즉각적인 질문은
그들이 리듬을 만들며 걸을 줄 아느냐는 것이다._니체
『파리를 생각한다』의 저자 정수복의 ‘파리 연작’ 두번째 책!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깊이로 들여다본 ‘파리의 장소들’
2009년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으로 시작된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 연작’ 두번째 책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을 직접 두 발로 헤집고 걸어 다니며, 그 가운데 구체적 장소 열여섯 곳을 골라 저자의 ‘발길’을 책의 ‘글길’로 풀어쓴 『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이 바로 그것.
저자 정수복은 1980년대와 2000년대 두 번에 걸쳐 15년 넘게 파리에 살고 있다.
그는 5,000여 개가 넘는 파리의 모든 길을 샅샅이 걸어본 체험을 바탕으로 전작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학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인류학, 지리학, 도시계획 등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교양을 배경으로 19세기의 수도이자 근대성의 수도인 파리를 총체적으로 바라본 조감도를 제시했다.
그 뒤를 잇는 이번 책 『파리의 장소들』에서 저자는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열여섯 개의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소들이 담고 있는 여러 겹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찾아보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화려한 광장에서 소박한 골목길에 이르는 350여 개의 장소들과 시인, 화가, 혁명가, 사상가를 포함하는 3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으로 대표되는 기능성만 갖춘 장소 아닌 장소인 ‘비(非)장소’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키며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건물, 다리, 골목길 등 진정한 ‘장소place’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도시 현실을 고려할 때, 사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삶의 체험들이 녹아 있는 파리의 장소들을 종횡무진 걸으며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켜켜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드러낸 저자의 작업은 우리에게 ‘장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대로 “삶은 기억을 남기고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장소에서 온다.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다”
이렇듯 감수성과 합리성, 따뜻함과 냉철함, 진리와 아름다움 등, 때론 모순되어 보이는 삶의 두 차원을 보완적 관계로 파악하는 저자는 이 책 『파리의 장소들』에서 ‘심미적 이성’을 작동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과 지금 여기 눈앞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떠나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상상력’을 결합시켜 도시 공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적·감성적 작업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공간에 조성된 파리의 장소들이 물 흐르듯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글길은 크게 네 단계를 거쳐 흐른다.
제1부의 첫번째 글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에서 저자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 대해 30쪽 이상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이 글은 아마도 에펠탑에 대한 한글로 쓴 글 가운데 가장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글로 기억될 것이다.
저자는 에펠탑에 이어 ‘파리’ 하면 생각나는 센 강변과 노트르담 사원, 몽마르트르 언덕 등 잘 알려진 장소를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책의 제2부로 넘어가 저자는 벨빌, 메닐몽탕 등 파리 동북부의 달동네, 도심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와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고 난 다음, 파리 코뮌의 격전지 카이 언덕 등을 유유자적하며 걷는다.
제3부에서 저자는 그저 평범한 거리로 보이는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에 숨어 있는 기호들을 해석하고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풀꽃 세상을 한 바퀴 돈 다음, 에스파스 알베르 칸 일본 정원에 숨겨진 미학적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브라상스 공원 앞 카페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파리지앵들을 바라본다.
제4부에서는 생-루이 섬의 센 강변을 거닐고 생-마르탱 운하 주변을 맴돌고 난 다음, 지금은 사라진 비에브르 강의 흔적을 찾아다니다가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가로지르기로 파리 산책을 일시 마감한다.
이렇게 저자의 파리 산책길을 동행하다 보면 도시에 사는 우리들의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에 장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수복의 ‘파리 연작’은 멈춤 없이 세번째 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그들이 리듬을 만들며 걸을 줄 아느냐는 것이다._니체
『파리를 생각한다』의 저자 정수복의 ‘파리 연작’ 두번째 책!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의 깊이로 들여다본 ‘파리의 장소들’
2009년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으로 시작된 사회학자 정수복의 ‘파리 연작’ 두번째 책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을 직접 두 발로 헤집고 걸어 다니며, 그 가운데 구체적 장소 열여섯 곳을 골라 저자의 ‘발길’을 책의 ‘글길’로 풀어쓴 『파리의 장소들 - 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이 바로 그것.
저자 정수복은 1980년대와 2000년대 두 번에 걸쳐 15년 넘게 파리에 살고 있다.
그는 5,000여 개가 넘는 파리의 모든 길을 샅샅이 걸어본 체험을 바탕으로 전작 『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을 펴낸 바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전공인 사회학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문학, 예술, 철학, 역사학, 인류학, 지리학, 도시계획 등의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해박한 지식과 폭넓은 교양을 배경으로 19세기의 수도이자 근대성의 수도인 파리를 총체적으로 바라본 조감도를 제시했다.
그 뒤를 잇는 이번 책 『파리의 장소들』에서 저자는 파리의 수많은 장소들 가운데 열여섯 개의 장소에 초점을 맞추고 그 장소들이 담고 있는 여러 겹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독자들에게 제시한다(「찾아보기」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화려한 광장에서 소박한 골목길에 이르는 350여 개의 장소들과 시인, 화가, 혁명가, 사상가를 포함하는 35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24시간 편의점, 마트, 주유소, 스타벅스, 맥도날드 등으로 대표되는 기능성만 갖춘 장소 아닌 장소인 ‘비(非)장소’들이 늘어나는 반면, 오래된 기억을 상기시키며 장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건물, 다리, 골목길 등 진정한 ‘장소place’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오늘날의 도시 현실을 고려할 때, 사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삶의 체험들이 녹아 있는 파리의 장소들을 종횡무진 걸으며 사람들의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켜켜의 의미 층을 발굴하여 드러낸 저자의 작업은 우리에게 ‘장소의 의미’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까지도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의 말대로 “삶은 기억을 남기고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장소에서 온다.
장소는 기억이 사는 집이다”
이렇듯 감수성과 합리성, 따뜻함과 냉철함, 진리와 아름다움 등, 때론 모순되어 보이는 삶의 두 차원을 보완적 관계로 파악하는 저자는 이 책 『파리의 장소들』에서 ‘심미적 이성’을 작동시켜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파리의 장소들을 걷다 보면 떠오르는 지난날의 ‘기억’과 지금 여기 눈앞에서 전개되는 일상을 떠나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상상력’을 결합시켜 도시 공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지적·감성적 작업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공간에 조성된 파리의 장소들이 물 흐르듯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조화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글길은 크게 네 단계를 거쳐 흐른다.
제1부의 첫번째 글 「에펠탑 다르게 보고 오르기」에서 저자는 파리의 상징 에펠탑에 대해 30쪽 이상의 많은 지면을 할애하면서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는 역설을 이야기한다.
이 글은 아마도 에펠탑에 대한 한글로 쓴 글 가운데 가장 많은 생각을 담고 있는 글로 기억될 것이다.
저자는 에펠탑에 이어 ‘파리’ 하면 생각나는 센 강변과 노트르담 사원, 몽마르트르 언덕 등 잘 알려진 장소를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책의 제2부로 넘어가 저자는 벨빌, 메닐몽탕 등 파리 동북부의 달동네, 도심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와 상테 감옥 주변을 맴돌고 난 다음, 파리 코뮌의 격전지 카이 언덕 등을 유유자적하며 걷는다.
제3부에서 저자는 그저 평범한 거리로 보이는 캉파뉴 프르미에르 거리에 숨어 있는 기호들을 해석하고 카르티에 현대미술재단의 풀꽃 세상을 한 바퀴 돈 다음, 에스파스 알베르 칸 일본 정원에 숨겨진 미학적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브라상스 공원 앞 카페테라스에 앉아 지나가는 파리지앵들을 바라본다.
제4부에서는 생-루이 섬의 센 강변을 거닐고 생-마르탱 운하 주변을 맴돌고 난 다음, 지금은 사라진 비에브르 강의 흔적을 찾아다니다가 겨울밤의 튈르리 공원 가로지르기로 파리 산책을 일시 마감한다.
이렇게 저자의 파리 산책길을 동행하다 보면 도시에 사는 우리들의 개인적 삶과 공동체적 삶에 장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파리’라는 공간의 이야기이면서 그와 동시에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수복의 ‘파리 연작’은 멈춤 없이 세번째 책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10년 10월 11일
- 쪽수, 무게, 크기 : 416쪽 | 631g | 153*224*30mm
- ISBN13 : 9788932020792
- ISBN10 : 8932020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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