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 책
Description
책소개
큰따옴표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파문을 일으켜, 파동 간 무수한 간섭 속에서, 동심원들의 소유권을 무력화해 달라고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갈까.
대형 출판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독립 후 어떤 행보를 걸을까.
편집자 출신 코미디언 겸 소설가와 디자이너 출신 그림책 작가는 ‘책의 끝’을 어떻게 바라볼까.
자신의 첫 책이 절판될 뻔했던 작가는 어떤 자세로 시간을 견딜까.
한국 최초의 출판사 운영자의 후손은 어떤 책을 만들고 있을까.
작가와 함께, 또 독자와 함께 ‘빈자리’를 지켜 내려는 편집자의 분투는 어떤 양상일까.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끝을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의 생각은 어떠할까.
『끝, 책: 결국 사라지겠지만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찰나에 대하여』(이하 『끝, 책』)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끝, 책』은 단순히 폐업·창업·전업 혹은 절판·복간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각기 다른 경로로 책과 마주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견뎌 내는 출판 현장 사람들의 내밀한 사연들이 얽힌다.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가 더 중요한 인터뷰집’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일문일답, 인터뷰이 중심 인터뷰에서 벗어나, 인터뷰어의 시선·해석·감정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인터뷰이의 발화가 흐릿하거나 겹치는 디자인 혹은 아예 과감하게 먹칠하는 실험적 디자인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섭, 대화 이후의 여운 그 자체’를 노린 시도다.
『끝, 책』은 출판사 간 협업·연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출판공동체 편않과 출판사 핌의 공동 기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표지와 판권면에도 이 사실을 명기했다.
또한 그동안 ‘저널리즘’을 함께 공부하고 고민했던 세미나(저멀리즘 세미나) 동학들도 집필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로서의 출판 과정’을 구현하려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필자들이 각기 다른 문체와 관점을 가진 채 대화에 참여하고, 그 다성(多聲)적인 대화가 편집 디자인의 실험적 기법과 결합된다.
덕분에 이 책의 본문은 마치 ‘여러 파동이 부딪히며 생성되는 동심원’처럼 읽히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의 말에 교차로 간섭하거나, 어느 한쪽의 요구에 따라 문장이 지워지기도 하는 등, 우리의 관계 혹은 우리의 자리의 불투명하고도 불완전한 순간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결국 우리는 타자와의 사이 어드메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갈까.
대형 출판사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는 독립 후 어떤 행보를 걸을까.
편집자 출신 코미디언 겸 소설가와 디자이너 출신 그림책 작가는 ‘책의 끝’을 어떻게 바라볼까.
자신의 첫 책이 절판될 뻔했던 작가는 어떤 자세로 시간을 견딜까.
한국 최초의 출판사 운영자의 후손은 어떤 책을 만들고 있을까.
작가와 함께, 또 독자와 함께 ‘빈자리’를 지켜 내려는 편집자의 분투는 어떤 양상일까.
자신이 운영하는 출판사의 끝을 계속 고민하고 실천하는 이의 생각은 어떠할까.
『끝, 책: 결국 사라지겠지만 결코 사그라지지 않는 찰나에 대하여』(이하 『끝, 책』)는 이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끝, 책』은 단순히 폐업·창업·전업 혹은 절판·복간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각기 다른 경로로 책과 마주하고,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을 견뎌 내는 출판 현장 사람들의 내밀한 사연들이 얽힌다.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인터뷰이보다 인터뷰어가 더 중요한 인터뷰집’이라는 점이다.
기존의 일문일답, 인터뷰이 중심 인터뷰에서 벗어나, 인터뷰어의 시선·해석·감정이 전면으로 떠오른다.
인터뷰이의 발화가 흐릿하거나 겹치는 디자인 혹은 아예 과감하게 먹칠하는 실험적 디자인 역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섭, 대화 이후의 여운 그 자체’를 노린 시도다.
『끝, 책』은 출판사 간 협업·연대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출판공동체 편않과 출판사 핌의 공동 기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표지와 판권면에도 이 사실을 명기했다.
또한 그동안 ‘저널리즘’을 함께 공부하고 고민했던 세미나(저멀리즘 세미나) 동학들도 집필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로서의 출판 과정’을 구현하려고 했다.
이렇게 다양한 필자들이 각기 다른 문체와 관점을 가진 채 대화에 참여하고, 그 다성(多聲)적인 대화가 편집 디자인의 실험적 기법과 결합된다.
덕분에 이 책의 본문은 마치 ‘여러 파동이 부딪히며 생성되는 동심원’처럼 읽히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의 말에 교차로 간섭하거나, 어느 한쪽의 요구에 따라 문장이 지워지기도 하는 등, 우리의 관계 혹은 우리의 자리의 불투명하고도 불완전한 순간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결국 우리는 타자와의 사이 어드메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송현정, 끝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 오경철(전 저녁의책 발행인, 현 작가)
할 일이 있을 때는 끝을 생각하기 어렵다 × 함지은(전 열린책들 디자이너, 현 상록 대표)
임헌, 끝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⑴ × 원소윤(전 편집자, 현 스탠드업 코미디언·소설가)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⑵ × 단정화(전 디자이너, 현 그림책 작가)
맹현, 끝
서글픈 건 참아도 허접한 건 못 참지 × ●●●(●●●●, ●●●●●●●●●)
가드,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 × 고정순(그림책 작가)
서윤지, 끝
곁가지를 보살피는 순간들 × 유지희(테오리아 대표)
빈자리를 지켜 내는 마음 × 송지현(길벗어린이 편집자)
양동혁, 끝
내가 없을 집을 짓기 × 이한범(나선프레스 대표)
펺집 후, 기 | 지다율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 오경철(전 저녁의책 발행인, 현 작가)
할 일이 있을 때는 끝을 생각하기 어렵다 × 함지은(전 열린책들 디자이너, 현 상록 대표)
임헌, 끝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⑴ × 원소윤(전 편집자, 현 스탠드업 코미디언·소설가)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⑵ × 단정화(전 디자이너, 현 그림책 작가)
맹현, 끝
서글픈 건 참아도 허접한 건 못 참지 × ●●●(●●●●, ●●●●●●●●●)
가드,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 × 고정순(그림책 작가)
서윤지, 끝
곁가지를 보살피는 순간들 × 유지희(테오리아 대표)
빈자리를 지켜 내는 마음 × 송지현(길벗어린이 편집자)
양동혁, 끝
내가 없을 집을 짓기 × 이한범(나선프레스 대표)
펺집 후, 기 | 지다율
책 속으로
나는 다시 저녁의책이 이제는 사라진 별과 같다고 생각했다.
별은 가스 덩어리와 티끌 뭉치에서 탄생한다.
불분명한 요인의 합에서 시작된 별은 치열한 진화 과정을 마치면 삶을 마무리한다.
별이 죽으면 별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방출되는데 이 물질은 우주 공간으로 퍼져 새로운 별과 행성의 재료가 된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이 끝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인 것이다.
저녁의책이 망했다, 폐업했다, 문을 닫았다.
출판사의 끝을 의미하는 단어 중 어느 것도 탐탁지 않던 자리에 ‘돌아가다’라는 단어를 넣었다.
사라진 별이 우주 공간으로 돌아가듯, 저녁의책을 구성했던 모든 물질이 제자리로 돌아가 출판계를 이루고 있다.
--- 「송현정 -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중에서
현실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출판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출판 시장의 목적은 각자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에게 잘 소개하는 것일 뿐, 서로 이겨 먹으려고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라는 박정민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의 인터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했다.
(현실이 어떻든) 함지은의 답변은 아름답기만 해서, 이번 인터뷰로 내 눈에 쓰인 ‘출판계 콩깍지’가 한 꺼풀 더 단단해지겠구나 직감했다.
속세의 내가 기대한 악랄하고 냉정하며 서슴없는 끝을 함지은에게서 캐내지 못할 수 있겠다는 어슴푸레한 예감도 함께였다.
--- 「송현정 - 할 일이 있을 때는 끝을 생각하기 어렵다」 중에서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하는 동안 출판학교 시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출판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류 심사, 필기시험, 최종 면접까지 총 3번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
게다가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출판계지만 책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출판사가 신입을 잘 뽑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리며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다.
무엇보다 아직 책 만든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책에 얼마나 진심인지, 책 만드는 일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철학을 갖고 있는지 증명한다는 건 참 곤혹스러웠다.
편집자반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책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다.
좁은 공간에서 책을 좋아하는 24명의 사람이 만났으니 그럴 법도 했다.
세상에 똑같은 책이 없듯, 편집자가 되고자 하는(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24명이 전부 달랐을 것이다.
나는 출판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소윤의 첫 마음에 대해 들어 보고 싶었다.
왜 이곳에 발을 들였는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 「임헌 -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1)」 중에서
작가님은 『끝, 책』의 기획 의도를 듣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조금 주저하기도 했다.
단행본이 아닌 ‘교재’ 디자인을 했다는 이유였다.
작가님의 우려와 달리 나는 오히려 더 흥미롭고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출판계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단행본 출판이 중심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출판계의 또 다른 분야를 얕게나마 조명할 수 있을 듯했다.
안 그래도 좁은 출판계를 굳이 더 나누고 가를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 편집자로서 순수한 궁금증이 발동했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있는 책은 창작동화나 동시집, 그림책이 아닌 바로 학습 교재일 것이다.
교재를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만드는지 그곳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 「임헌 -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2)」 중에서
내가 시도했던 홍보·마케팅은 모두 실패였다.
얼마나 실패를 제대로 많이 했던지, 또 그건 어떻게들 알았는지, 올해에는 ‘마케팅 실패 사례 공유회’ 발표 요청을 세 번이나 받았다.
마지막에 갔던 기관의 센터장은 공유회 후, “이걸로 강의하면서 돈을 버세요.
그게 답이네요”라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전국 북토크, 지역문화재단 연계 작가 이벤트, ‘이야기 전당포’ 등 자체 행사, 저자 강연, 서점 매대 광고, 자체 서평단, 홍보사를 통한 서평단, 인플루언서를 통한 책 소개, 이벤트 굿즈, 도서 전문 마케팅사의 패키지 상품 이용, 일반 마케팅사의 패키지 상품 이용, SNS 유료 광고, 보도자료 릴리즈, 카피라이터 외주 등이 그간 내가 한 것들이다.
한 출판 마케팅 수업에서 책 제작 비용의 10~15%가 통상적인 마케팅 비용이라고 했는데, 나는 50%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 적도 있다.
--- 「맹현 - 서글픈 건 참아도 허접한 건 못 참지」 중에서
이 책의 인터뷰이로 고정순 작가가 정해졌을 때 많이 반가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문학을 꿈꾼 후로 꼬박 15년을 지망생으로 지냈다.
그때를 ‘명함이 없던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10년 이상 명함 없이 지낸다는 것은 꿈만 붙든 상태로 20대를 훌쩍 넘기고 30대를 꾹꾹 눌러 사회 속에서 ‘아무것’이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도 지금은 무엇인가가 되어 있는 사람의 시간을 돌이켜 13년, 15년을 바라볼 때 별것 아닌 것처럼(혹은 길지만은 않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아닌 채로 20·30대를 견딘다는 건, 자신을 향한 초라함이나 부끄러움, 모멸감까지 견뎌야 하는 것이니 평범하게 생각해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 「맹현 - 가드,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 중에서
그 말속에서, 다시 한번 출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출판이란 무엇일까? 출판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라질 것을 붙잡아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책장을 묶어 두는 일.
잊히고 소외되기 쉬운 것들을 붙들어 모으고 기록하는 일.
이미 절판된 『각주의 역사: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었는가』(앤서니 그래프턴, 김지혜 옮김, 2016)라는 책 또한 그러했다.
중고가 15만 원을 호가하는 책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가 모르는 책들이 있나 자료를 살피는 중 알게 되었고, 구하고 싶었으나 직접 손에 넣지는 못한 책.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 「서윤지 - 곁가지를 보살피는 순간들」 중에서
송지현 편집자의 시도는 독자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랜 인연을 맺은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도 그의 보람이었다.
함께한 작가와 다시 작업을 하는 경우들이 있나요? 그는 휴대폰을 꺼내며 한 작가의 인스타툰을 보여 주었다.
포푸라기 작가의 그림 속 광선검을 든 요다가 바로 자신이라며 웃어 보였다.
작가와 편집자의 편하고 가까운 관계를 볼 수 있었다.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를 만든 후 이직한 프랑스 출판사에서 포푸라기 작가를 처음 만났다.
포푸라기 작가는 작품 준비를 위해 치밀하게 공부했고,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다.
존경할 만한 깊이 있는 태도.
그의 책을 읽을 때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편집자는 이 무궁무진한 재능을 가진 작가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지금 3년에 걸쳐 청소년을 위한 『열하일기』를 작업하고 있다.
--- 「서윤지 - 빈자리를 지켜 내는 마음」 중에서
고심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읽기 문화의 부재였다.
나선이 만든 책을 읽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책은 겉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음악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독서를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텍스트의 공명이 이뤄져서 연주라 불러도 무방할 음향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어떤 책은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게 읽어야 비로소 읽히기 시작하고, ‘페이지터너(page-turner)’라 불리는 책은 한 자 한 자 꼭꼭 곱씹기보다는 휘리릭 빠르게 읽었을 때, 재미가 배가된다.
클래식 음악 같은 책은 정숙하게 텍스트를 음미했을 때,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재즈 같은 책이라면 좀 더 이완된 상태에서 텍스트가 펼쳐 보이는 자유분방한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했을 때, 비로소 ‘스윙’할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전문적으로 설계된 공연장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고, 재즈는 클럽 공연에서 비로소 발휘되는 진가가 있다.
공연장에서 듣기 문화가 조성된다.
아니 공연장이 듣기 문화를 조성한다.
이처럼 문화가 장소를 매개로 꽃핀다고 했을 때, 읽기 문화의 부재라는 진단은 읽기의 집을 짓는 처방으로 이어진다.
--- 「양동혁 - 내가 없을 집을 짓기」 중에서
이 책은 출판공동체 편않이 인터뷰이로 참여하기도 했던 『출판사의 첫 책』과의 어떤 연결 속에서, 그리고 출판사 핌과의 어떤 연대 속에서 출발했다.
기획 초반 단계에는 해당 책과 비슷한 구성으로, ‘출판사의 끝 책’에 대한 인터뷰집을 구상했다.
그러니까 폐업한 출판사가 마지막으로 낸 책이랄지, 이직·전직·퇴직한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어떤 구간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책이랄지, 혹은 끝내 구현되지 않은 기획이라거나 실재하지 않는 상상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생성보다는 소멸에, 삶보다는 죽음에 일생 신경을 기울여 왔던 탓일까.
나는 어떤 실패와 좌절, 슬픔 같은 걸 담아 보려고도 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상태 직전의 그 찰나에 대하여.
그러나,
별은 가스 덩어리와 티끌 뭉치에서 탄생한다.
불분명한 요인의 합에서 시작된 별은 치열한 진화 과정을 마치면 삶을 마무리한다.
별이 죽으면 별을 구성하고 있던 물질이 방출되는데 이 물질은 우주 공간으로 퍼져 새로운 별과 행성의 재료가 된다.
수명이 다하는 순간이 끝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인 것이다.
저녁의책이 망했다, 폐업했다, 문을 닫았다.
출판사의 끝을 의미하는 단어 중 어느 것도 탐탁지 않던 자리에 ‘돌아가다’라는 단어를 넣었다.
사라진 별이 우주 공간으로 돌아가듯, 저녁의책을 구성했던 모든 물질이 제자리로 돌아가 출판계를 이루고 있다.
--- 「송현정 - 사라진 출판사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중에서
현실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출판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출판 시장의 목적은 각자 좋은 책을 만들어 독자에게 잘 소개하는 것일 뿐, 서로 이겨 먹으려고 하지 않아 마음에 든다’라는 박정민 배우(이자 출판사 무제 대표)의 인터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했다.
(현실이 어떻든) 함지은의 답변은 아름답기만 해서, 이번 인터뷰로 내 눈에 쓰인 ‘출판계 콩깍지’가 한 꺼풀 더 단단해지겠구나 직감했다.
속세의 내가 기대한 악랄하고 냉정하며 서슴없는 끝을 함지은에게서 캐내지 못할 수 있겠다는 어슴푸레한 예감도 함께였다.
--- 「송현정 - 할 일이 있을 때는 끝을 생각하기 어렵다」 중에서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하는 동안 출판학교 시절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출판학교에 입학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서류 심사, 필기시험, 최종 면접까지 총 3번의 관문을 지나야 한다.
게다가 사양 산업으로 불리는 출판계지만 책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 출판사가 신입을 잘 뽑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리며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다.
무엇보다 아직 책 만든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책에 얼마나 진심인지, 책 만드는 일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철학을 갖고 있는지 증명한다는 건 참 곤혹스러웠다.
편집자반에서 만난 친구들은 모두 책에 대한 열의로 가득했다.
좁은 공간에서 책을 좋아하는 24명의 사람이 만났으니 그럴 법도 했다.
세상에 똑같은 책이 없듯, 편집자가 되고자 하는(될 수밖에 없는) 까닭도 24명이 전부 달랐을 것이다.
나는 출판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인 소윤의 첫 마음에 대해 들어 보고 싶었다.
왜 이곳에 발을 들였는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어땠는지 궁금했다.
--- 「임헌 -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1)」 중에서
작가님은 『끝, 책』의 기획 의도를 듣고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조금 주저하기도 했다.
단행본이 아닌 ‘교재’ 디자인을 했다는 이유였다.
작가님의 우려와 달리 나는 오히려 더 흥미롭고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출판계에 관한 책들은 많이 나왔지만 대부분 단행본 출판이 중심이었다.
이번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출판계의 또 다른 분야를 얕게나마 조명할 수 있을 듯했다.
안 그래도 좁은 출판계를 굳이 더 나누고 가를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어린이책 편집자로서 순수한 궁금증이 발동했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있는 책은 창작동화나 동시집, 그림책이 아닌 바로 학습 교재일 것이다.
교재를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만드는지 그곳의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 「임헌 - 우린 결국 책의 끝을 마주하지만 (2)」 중에서
내가 시도했던 홍보·마케팅은 모두 실패였다.
얼마나 실패를 제대로 많이 했던지, 또 그건 어떻게들 알았는지, 올해에는 ‘마케팅 실패 사례 공유회’ 발표 요청을 세 번이나 받았다.
마지막에 갔던 기관의 센터장은 공유회 후, “이걸로 강의하면서 돈을 버세요.
그게 답이네요”라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전국 북토크, 지역문화재단 연계 작가 이벤트, ‘이야기 전당포’ 등 자체 행사, 저자 강연, 서점 매대 광고, 자체 서평단, 홍보사를 통한 서평단, 인플루언서를 통한 책 소개, 이벤트 굿즈, 도서 전문 마케팅사의 패키지 상품 이용, 일반 마케팅사의 패키지 상품 이용, SNS 유료 광고, 보도자료 릴리즈, 카피라이터 외주 등이 그간 내가 한 것들이다.
한 출판 마케팅 수업에서 책 제작 비용의 10~15%가 통상적인 마케팅 비용이라고 했는데, 나는 50%에 달하는 마케팅 비용을 지출한 적도 있다.
--- 「맹현 - 서글픈 건 참아도 허접한 건 못 참지」 중에서
이 책의 인터뷰이로 고정순 작가가 정해졌을 때 많이 반가웠다.
고백하자면 나는 문학을 꿈꾼 후로 꼬박 15년을 지망생으로 지냈다.
그때를 ‘명함이 없던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10년 이상 명함 없이 지낸다는 것은 꿈만 붙든 상태로 20대를 훌쩍 넘기고 30대를 꾹꾹 눌러 사회 속에서 ‘아무것’이 아닌 상태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도 지금은 무엇인가가 되어 있는 사람의 시간을 돌이켜 13년, 15년을 바라볼 때 별것 아닌 것처럼(혹은 길지만은 않은 것처럼) 느낄 수도 있겠지만, ‘아무것’도 아닌 채로 20·30대를 견딘다는 건, 자신을 향한 초라함이나 부끄러움, 모멸감까지 견뎌야 하는 것이니 평범하게 생각해도 쉽지 않은 시간이다.
--- 「맹현 - 가드,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 중에서
그 말속에서, 다시 한번 출판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출판이란 무엇일까? 출판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라질 것을 붙잡아 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놓치지 않기 위해, 기록이라는 이름으로 책장을 묶어 두는 일.
잊히고 소외되기 쉬운 것들을 붙들어 모으고 기록하는 일.
이미 절판된 『각주의 역사: 각주는 어떻게 역사의 증인이 되었는가』(앤서니 그래프턴, 김지혜 옮김, 2016)라는 책 또한 그러했다.
중고가 15만 원을 호가하는 책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내가 모르는 책들이 있나 자료를 살피는 중 알게 되었고, 구하고 싶었으나 직접 손에 넣지는 못한 책.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 「서윤지 - 곁가지를 보살피는 순간들」 중에서
송지현 편집자의 시도는 독자에게만 머무르지 않았다.
오랜 인연을 맺은 작가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도 그의 보람이었다.
함께한 작가와 다시 작업을 하는 경우들이 있나요? 그는 휴대폰을 꺼내며 한 작가의 인스타툰을 보여 주었다.
포푸라기 작가의 그림 속 광선검을 든 요다가 바로 자신이라며 웃어 보였다.
작가와 편집자의 편하고 가까운 관계를 볼 수 있었다.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를 만든 후 이직한 프랑스 출판사에서 포푸라기 작가를 처음 만났다.
포푸라기 작가는 작품 준비를 위해 치밀하게 공부했고,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그리지 않았다.
존경할 만한 깊이 있는 태도.
그의 책을 읽을 때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편집자는 이 무궁무진한 재능을 가진 작가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작가는 지금 3년에 걸쳐 청소년을 위한 『열하일기』를 작업하고 있다.
--- 「서윤지 - 빈자리를 지켜 내는 마음」 중에서
고심 끝에 그가 도달한 결론은 읽기 문화의 부재였다.
나선이 만든 책을 읽는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책은 겉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음악적인 요소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다.
독서를 시작하면 머릿속에서 텍스트의 공명이 이뤄져서 연주라 불러도 무방할 음향적 효과를 발생시킨다.
어떤 책은 ‘라르고(Largo)’, 아주 느리게 읽어야 비로소 읽히기 시작하고, ‘페이지터너(page-turner)’라 불리는 책은 한 자 한 자 꼭꼭 곱씹기보다는 휘리릭 빠르게 읽었을 때, 재미가 배가된다.
클래식 음악 같은 책은 정숙하게 텍스트를 음미했을 때,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재즈 같은 책이라면 좀 더 이완된 상태에서 텍스트가 펼쳐 보이는 자유분방한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했을 때, 비로소 ‘스윙’할 수 있다.
그런데 클래식 음악은 전문적으로 설계된 공연장에서 최고의 소리를 내고, 재즈는 클럽 공연에서 비로소 발휘되는 진가가 있다.
공연장에서 듣기 문화가 조성된다.
아니 공연장이 듣기 문화를 조성한다.
이처럼 문화가 장소를 매개로 꽃핀다고 했을 때, 읽기 문화의 부재라는 진단은 읽기의 집을 짓는 처방으로 이어진다.
--- 「양동혁 - 내가 없을 집을 짓기」 중에서
이 책은 출판공동체 편않이 인터뷰이로 참여하기도 했던 『출판사의 첫 책』과의 어떤 연결 속에서, 그리고 출판사 핌과의 어떤 연대 속에서 출발했다.
기획 초반 단계에는 해당 책과 비슷한 구성으로, ‘출판사의 끝 책’에 대한 인터뷰집을 구상했다.
그러니까 폐업한 출판사가 마지막으로 낸 책이랄지, 이직·전직·퇴직한 편집자나 디자이너가 어떤 구간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책이랄지, 혹은 끝내 구현되지 않은 기획이라거나 실재하지 않는 상상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
생성보다는 소멸에, 삶보다는 죽음에 일생 신경을 기울여 왔던 탓일까.
나는 어떤 실패와 좌절, 슬픔 같은 걸 담아 보려고도 했던 것 같다.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 상태 직전의 그 찰나에 대하여.
그러나,
--- 「지다율 - 펺집 후, 기」 중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0월 01일
- 쪽수, 무게, 크기 : 160쪽 | 125*200*20mm
- ISBN13 : 9791198873378
- ISBN10 : 119887337X
You may also like
카테고리
한국어
한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