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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
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
Description
책소개
식민지 조선의 일상적 굴욕과 폭력에
함께 저항한 외국인들
광복 80주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그들의 삶과 신념


식민의 땅에서 자행되던 일상적 폭력과 모욕! 때로는 비폭력으로, 때로는 전략적인 투쟁으로 조선인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억압에 항거했다.
암울했던 30여 년의 일상을 버텨내며 싸운 끝에 마침내 독립을 이루었고,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부 독립운동가들에게만 주목해 왔다.
하지만, 조선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는가?

『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외국인 독립운동가 15인의 삶을 따라가며, 왜 그들에게도 조선의 독립이 중요한 과제였는지 깊이 있게 추적한다.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헌신을 조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식민지 한국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과 그들의 활동을 연결하여 독립운동사를 세 부분으로 조망한다.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위한 노력(1876~1910)에서부터 식민지 조선을 지키려는 용기(1902~1935),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정의로운 연대(1907~1945)의 움직임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외국인들이 조선 독립에 어떻게 참여하고 연대했는지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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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부.
주권 회복을 위한 헌신


올리버 R.
에이비슨 (어비신 魚丕信)
1.
조선의 자립 기반을 위해 의학교육 제도를 만든 의사
사건파일 의병 봉기

로버트 D.
스토리
2.
외교 주권 침탈을 폭로해 전 세계에 알린 기자
사건파일 ‘을사조약’

프레더릭 A.
매켄지
3.〈대한제국의 비극〉으로 주권 침해를 증언한 저널리스트
사건파일 의병전쟁

호머 B.
헐버트 (허흘법 許訖法)
4.
외교 주권 되찾으려 헤이그로 달려간 ‘자발적 외교관’
사건파일 만국평화회의 특사단

2부.
조선을 지키기 위한 용기


프랭크 W.
스코필드 (석호필 石虎弼)
5.
일본군의 탄압을 사진으로 기록해 조선을 지킨 수의사
사건파일 제암리 학살

황줴
6.
한·중·일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한 출판인
사건파일 신한청년당

로버트 G.
그리어슨 (구례선 具禮善)
7.
일제의 폭력으로 죽어가는 조선인을 구해낸 선교사
사건파일 ‘105인 사건’

루이 마랭
8.
유럽에서 진행된 독립운도을 지원한 정치인
사건파일 구미위원회

추푸청
9.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도운 혁명가
사건파일 김구 피난처

조지 S.
맥큔 (윤산온 尹山溫)
10.
신사참배 거부로 민족적 자존심 고수하게 한 교육자
사건파일 숭실학교 폐교

3부.
제국주의에 저항한 정의로운 연대


조지 L.

11.
체포와 구속, 외교 분쟁에도 굴하지 않고 임시정부 도운 사업가
사건파일 안동교통사무국

후세 다쓰지
12.
일본 법정에서 조선인과 함께 재판 투쟁을 펼친 변호사
사건파일 2.8 독립선언

가네코 후미코 (박문자 朴文子)
13.
식민과 인간 억압에 모두 맞선 아나키스트
사건파일 관동대지진

조지 A.
피치 (비오생 費吾生)
14.
아버지에 이어 조선인과 함께 고통을 감당한 목회가
사건파일 윤봉길 의거

두쥔훼이
15.
조선 독립과 여성의 권리를 함께 실천한 해방 운동가
사건파일 중한문화협회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책 속으로
바짓가랑이 속에 숨겨 전달된 편지
1월, 스토리는 일본 고베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트리뷴〉의 특파원 자격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이다.
〈트리뷴〉은 1906년 1월 15일, 런던에서 창간된 신문으로, 볼턴 지방 방직업자의 상속자이자 자유당 소속의 젊은 국회의원 프랭클린 토머슨(Franklin Thomasson)이 소유주였다.
이 신문은 고급지를 지향하며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1908년 2월 8일, 창간 2년 만에 폐간되고 만다.

대한제국에 온 스토리는 고종과 접촉할 수 있는 편지를 소지하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 마침내 고종과 연락이 닿았다.
스토리는, 당시 궁궐 안팎은 일본의 감시가 심했고 첩자가 득실거렸기 때문에 고종은 가까운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신하들조차 일본 병사들에게 대궐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고 회고했다.


스토리가 처음 고종 측으로부터 받은 교서(敎書)의 내용은, 일본의 위협 아래 고종 본인이 암살당하지 않도록 반드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이 교서를 접한 뒤, 스토리는 자신이 기존에 의존하던 정보 통로 대신, 오로지고종의 교서만을 믿기로 했다.
대한제국 상황을 누구보다 적나라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일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비밀리에 전달되는 고종의 편지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스토리는 밤마다 숙소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궁중에서 고종의 신임을 받는 인물들은, 바짓가랑이 속에 편지를 숨겨 몰래 전달하곤 했다.
이런 극도의 경계와 긴장감 속에서, 1월 어느 날 새벽 4시, 고종의 붉은 옥새가 찍힌 밀서가 스토리에게 전달되었다.


고종이 그를 어떻게 믿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스토리가 긴 여정 끝에 결국 고종과 직접 소통하는 경로를 확보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렇게 스토리는 직접 고종의 밀서를 받아, 일본의 감시망을 뚫고 대한제국의 실상을 세계에 알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고종 황제의 인장이 선명하게 찍힌 밀서는 총 6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을사조약’을 부정하는 고종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내용이었다.
밀서를 받은 밤, 스토리는 미국 총영사와 함께 무사히 서울을 탈출했다.
--- 「프레더릭 A.
매켄지_ 2.
〈대한제국의 비극〉으로 주권 침해를 증언한 저널리스트」 중에서

조소앙·김상옥과도 교류
황줴는 구국단 활동 이외에도 일본에서 조직했던 신아동맹당을 중국에서도 이어나갔다.
1920년 1월 신아동맹당을 개조하여 ‘대동당’(大同黨)을 조직했다.
대동당은 민족평등, 국가평등, 인류평등을 핵심으로 하는 삼평주의(三平主義)를 채택했다.
대동당에는 장멍주(張夢九)·쉬더헝(許德珩)·저우핑칭(周平卿) 등 중국인을 비롯하여 조선인, 인도인, 일본인, 러시아인 등 3,000여 명이 참여했다.

특히 박진순(朴鎭淳)을 매개로 한인사회당(상하이파)의 지도자인 이동휘, 김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김규식, 여운형, 윤현진, 김철 등 상하이의 조선인 유력자들도대동당에 참여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동당은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사업으로 여겼다.
이처럼 황줴는 꾸준히 동아시아 연대에 기반한 혁명운동을 지지하고 지원했다.

이처럼 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황줴의 관심과 지지는 꾸준했다.
특히 상하이서 열린 3·1운동 기념식에 자주 참석했다.
확인된 참석만도 1925년, 1928년, 1930년으로 세 번인데, 주로 한·중 연대와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또한 조소앙과도 친분이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소앙이 종로경찰서투탄의거를 거행한 의열단원 김상옥의 평전을 1925년 상하이에서 출판할 때, 황줴는 김상옥의 뜻을 기리는 중국인들의 조사(弔詞)와 만사(輓詞) 부분의 서문을 썼다.
김상옥의 의거 전에 조소앙이 김상옥을 황줴에게 소개해줬다고 한다.
이처럼 황줴는 다양한 계열의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 「황줴_ 6.
한·중 네트워크를 견고하게 구축한 항일운동가」 중에서

프랑스 한국친우회를 주도하다
프랑스 한국친우회는 1921년 6월 23일 파리 라 까즈(Las Cases)가(街) 5번지 사회박물관(Musee Social) 1층 강당에서 창립대회를 개최했다.
프랑스 한국친우회는 김규식 이후 파리에서의 외교활동을 책임진 황기환(黃玘煥)이 페리시앙 샬라예(Felicien Chalaye)와 중국계 사동발(謝東發, Scie Ton Fa)의 도움을받아 문학계, 예술계, 정계에 속한 유력자를 중심으로 조직했다.
루이 마랭은 프랑스 한국친우회의 대표적 인물로, 창립대회를 주도했다.

창립대회에는 쥐스탱 고다르(Justin Godart) 론(Rhone) 지역 하원의원, 베르통(Berthon) 파리 지역 하원의원, 문인 클로드 파레르(Claude Farrere) 등 6명의 여성을 포함한 33명이 참석했다.
참석하지 못한 인사들의 서한 낭독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창립 당시 프랑스 한국친우회의 규모는 참석자인 33명보다 조금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루이 마랭이 한국친우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지만, 한국친우회 조직을 위해 황기환을 적극적으로 도왔던 페리시앙 샬라예와 사동발도 기억해야 할 인물들이다.
페리시앙 샬라예는 1875년 11월 1일 리옹 출생으로 1897년 문학교수 자격시험(철학전공)에 합격했다.
임시정부 기록에는 파리대학 교수로 소개된 페리시앙 샬라예는 1917년 1919년 두 차례에 걸쳐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다.
그가 1919년에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을 때 3·1운동의 실상을 경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경험을 토대로 글을 쓰고 연설을 했는데, 1920년 1월 8일 파리지리연구회에서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을 직접 목격한 시찰담을 보고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계 프랑스인인 사동발은 중국외교관인 부친이 근무하던 파리에서 1880년 12월 5일에 태어났다.
파리대학에서 법학박사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나 개업하지 않았다.
1912년 프랑스 국적을 포기했으며, 한국친우회 사무국장을 맡고 자금을 조달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을 열성적으로 지원했다.

루이 마랭은 창립대회에서, 40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진 한국은 늘 비공격적이었는데 국제법을 무시한 일본에 의해 1910년 합병되자 한국인들은 항거하며 독립을 기다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프랑스가 언제나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보호와 애정을 가져왔다며, 한국인들에게 효율적인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프랑스 대중들에 대한 적극적인 선전활동을 시행하여 많은 가입자를 확보해야 한다고 한국친우회의 역할을 설명했다.
--- 「루이 마랭_ 8.
유럽에서 진행된 독립운동을 지원한 정치인」 중에서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재판투쟁을 벌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두 가지 특기할 만한 일이 있었다.
하나는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 있으면서 자서전을 집필한 것이다.
이 글은 가네코 후미코 사후인 1931년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何が私をかうさせたか)라는 제목으로 일본에서 출판되어 사람들이 그녀의 생애와 생각을 알 수 있게 했다.
다른 하나는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서 박열과 법적으로 결혼했다.
변호사인 후세 다쓰지를 통해 1925년 말에 혼인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수감 중에 혼인신청서를 제출한 것은 대역사건으로 사형을 받을 경우 가족으로 함께 하길 원했기 때문이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에 대한 대역사건 재판은 1926년 2월 26일에 첫 공판이 열렸다.
첫 공판에 참석한 가네코 후미코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받쳐 입고 쪽진 조선 머리로 등장했다.
박열은 사모관대(紗帽冠帶)에 조복(朝服)을 입고 검은 신발을 신었다.
이렇게 두 사람은 조선의 전통 복장을 하고 재판에 참석했으며, 이름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도 한국 이름으로 답했다.

가네코 후미코가 이처럼 한복과 한국 이름으로 재판에 참석한 것은 비록 일본인으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삶과 행동이 조선민족과 일치되었음을 보여주는 연대이자 저항의 행위였다.
자신들의 태도와 입장을 전혀 굽히지 않는 상태에서 재판의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2월 26일부터 3월 1일까지 4차례에 걸쳐 공판을 진행하고, 3월 25일 도쿄대심원은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판결을 듣고 ‘만세’를 외쳤다.
사형 판결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함을 직접 증명하고자 했던 가네코 후미코에게 사형 판결은 승리로 여겨졌을 것이다.
--- 「가네코 후미코_ 13.
식민과 인간 억압에 모두 맞선 아나키스트」 중에서

여성도 민족의 운명에 정치적 책임을 진다
하지만 그의 활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성운동가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았던 두쥔훼이는 1944년 충칭에서 월간지 〈직업부녀〉(職業婦女)를 창간하여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강조했다.
〈직업부녀〉는 단지 여성들의 직업윤리나 생활지침을 다룬 것이 아니라 전시 중국 사회에서 여성의 정치적 책임과 시민적 역할을 강조하는 잡지였다.
그녀는 지면을 통해, 여성도 민족과 인류의 운명 앞에 정치적으로 책임지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듬해에는 중국부녀연의회(中國婦女聯誼會) 상무이사로 선출되어 여성계 대표로 활약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조선은 식민지에서 해방되었다.
이 순간은 독립운동가들에게 더없이 감격스러운 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쥔훼이에게 그 기쁨은 이별과 불확실성의 시작이기도 했다.
1945년 12월, 김성숙은 임시정부 요인 제2진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두쥔훼이와 세 아들, 특히 병든 둘째 아들은 함께 떠날 수 없었다.
그녀는 복막염 치료가 시급했던 아들을 홀로 남겨둘 수가 없었고, 그렇게 중국에 남았다.
단지 몇 달 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두 사람은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짧을 것이라 여겼던 이별은, 결국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작별이 되고 말았다.

김성숙은 분단과 냉전, 정치적 혼란 속에서 서울에 남아 활동하다가 1969년 생을 마감했다.
두쥔훼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아래에서 교육계와 여성계의 요직을두루 거쳤으며, 1956년에는 중국공산당 제8차 전국대표대회에 대표로 참석하여 여성 대표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렇게 중국의 여성운동과 교육운동의 주체로 살아가던 그녀는, 1981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정부는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하며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것은 “나는 조선의 딸입니다”라고 외쳤던 그의 삶에 대한 늦은 응답이자, 국경과 국적, 언어와 역사를 넘어선 한 여인의 연대와 투쟁의 생애에 바치는 작은 인사였다.
--- 「두쥔훼이_ 15.
조선 독립과 여성의 권리 증진을 옹호한 실천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주목받지 못했던 기억’
우리가 몰랐던 독립운동의 또 다른 역사
100여 년 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우리를 밝혔다면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그들을 세상에 드러낸다!


광복 80주년을 맞았다.
우리는 그동안 해마다 ‘조선 독립의 의미’를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한 삶과 헌신 속에서 되새겨 왔다.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조국의 해방을 위해 열정을 불태운 그들의 일생은, 한 민족이 자유와 의지로 본연의 운명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이제 대중은 이전보다 더 다양한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활동, 그리고 독립운동 전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100여 년 전 어둠 속의 우리에게 빛이 되어주고도 주목받지 못한, 뜻밖의 인물들이 있다.
광복 80주년, 비로소 우리는『비록 내 나라는 아니오만』을 통해 그들을 세상에 드러내고자 한다.


왜 잘 몰랐었나?
His + story


우리는 왜 외국인 독립운동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근원을 따져보면 결국 ‘역사의 서사를 누가 독점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닿는다.
기록되는 역사는 언제나 권력이 선택하고 구성한 방식에 따라 서술된다.
이 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 식민지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존재들의 이야기는 늘 주류 서사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사를 다루는 시각 역시 이러한 서사 권력의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해 왔으며, 그 결과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설령 그들이 서양의 백인 남성이었을지라도 우리의 기억 한가운데로 들어오지 못하고, 역사의 외곽에 머물렀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다.
조선인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그 ‘당연함’에 가려, 진정한 ‘연대’의 서사를 놓쳐왔다.
광복 80주년을 맞은 오늘,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기억들을 능동적으로 복원해야 할 시점이다.
국적과 성별을 넘어, 낯선 땅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운 외국인 독립운동가들.
그들이 제국주의의 화염 속으로 스스로를 던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이방인의 투쟁’이 아니라, 개인의 용기이자 인류적 연대의 증거다.
우리는 지금, 그들이 왜 싸웠는가를 다시 묻고, 그 질문을 통해 연대의 의미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세계시민성의 개념과 마주하게 된다.
인류적 연대란 무엇인가? 그 의미는 곧 세계시민성과 깊이 맞닿아 있다.
국적도, 언어도, 문화도, 삶의 기반도 서로 달랐던 이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기꺼이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마음속에 국가라는 경계를 넘어선 연대의식, 즉 세계시민으로서의 윤리와 책임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 『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은 바로 그들이 남긴 용기와 연대의 흔적들을 다시 꺼내어, 오랫동안 귀 기울이지 못했던 그들의 목소리를 오늘 우리가 새롭게 말해야 할 이야기로 되살려 내고 있다.

왜 알아야 하나?
세계시민(성)


그렇다면 세계시민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나는 아테네시민이 아니라 세계시민이다”라는 선언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계시민성은 더 이상 철학적 사유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적 위기와 상호의존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체득해야 할 시민의식이 되었다.
세계시민성이란 특정 국가나 민족에 국한된 정체성을 넘어, 인류 공동의 책임과 연대를 인식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이는 정치적·지리적 경계를 넘어선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며, ‘나의 나라’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생각하는 삶의 자세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도 전쟁, 차별, 억압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곳곳에서는 학살이 벌어지고, 산업사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구조적 폭력과 배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80여 년 전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준 선택과 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들은 지난날 세계시민의 모습을 행동으로 말해왔다.
우리는 이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는 어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 대답을 위해 우리는 그들을 기억하고 조명해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운동은 결코 한반도라는 지리적 경계에 머물지 않았다.
해외 각지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의 이면에는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세계인의 연대와 참여가 있었다.
외국인 독립운동가들은 조선의 해방이 단지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서는 세계평화 운동의 일환임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낯선 땅의 독립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던졌고, 인류애에 기반한 세계시민의 자세를 직접 증명해 보였다.『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에서는 15인의 세계시민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은 누구인가?

올리버 R.
에이비슨 (어비신 魚丕信) / 로버트 D.
스토리 / 프레더릭 A.
매켄지 / 호머 B.
헐버트 (허흘법 許訖法)/프랭크 W.
스코필드 (석호필 石虎弼) / 황줴 / 로버트 G.
그리어슨 (구례선 具禮善) / 루이 마랭 / 추푸청 / 조지 S.
맥큔 (윤산온 尹山溫)조지 L.
쇼 / 후세 다쓰지 / 가네코 후미코 (박문자 朴文子) / 조지 A.
피치 (비오생 費吾生) / 두쥔훼이

『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은 한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한 외국인 15인을 통해, 국경과 언어, 문화의 경계를 넘어선 실천적 연대의 실존을 조명한다.
의사, 교육자, 언론인, 그리고 혁명가로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응답했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며 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선택은 ‘세계시민’이라는 개념이 단지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태도임을 증명한다.

그들이 보여준 연대는 일회성 동정이나 박애주의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 연대는 당시 국제 질서를 규정하던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도덕적 문제제기였으며, 한 사회의 고통을 인류 전체의 문제로 인식한 보편 윤리의 실천이었다.
그들은 타인의 해방을 위해 스스로의 특권을 내려놓고, 모국의 이익과 무관한 싸움에 기꺼이 자신을 던졌다.
그 결단은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불의에 맞서는 인간으로서’ 선택한 길이었다.

이들의 흔적은 과거의 기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이 남긴 태도와 가치관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전쟁, 차별, 혐오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이제, 조선을 도운 외국인으로서가 아니라 정의와 연대를 향한 인간 보편의 실천자로서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8월 15일
- 쪽수, 무게, 크기 : 300쪽 | 140*220*20mm
- ISBN13 : 9788920053658
- ISBN10 : 892005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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