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메라
Description
책소개
만주국, 일제가 급조한 괴뢰국이었는가
아니면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이 책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알 수 있는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했다.
아니면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이 책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알 수 있는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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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말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
1.
만주국의 그림자
2.
괴뢰국가 만주국
3.
이상국가 만주국
4.
키메라로서의 만주국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
─ 관동군의 만몽영유론
1.
만몽─ 고르디아스의 매듭
2.
만몽 영유 계획의 발진
3.
자급자족권 형성과 국가 개조
4.
조선 통치와 적화 차단
5.
대소 전략 거점
6.
일미전쟁과 세계 최종전론
7.
만몽 영유의 정당성 근거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
─ 신국가 건설공작과 건국이념의 모색
1.
독립국가 건설로의 전환
2.
성정부 독립공작과 이시하라의 전환
3.
위청한과 보경안민 비양병주의
4.
만주청년연맹과 민족협화
5.
다이유호카이와 흥아의 큰 파도
6.
다치바나 시라키와 자치의 왕도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
─ 도의입국의 기치와 만주국 정치의 형성
1.
건국 동기 만들기와 장의부조(仗義扶助)
2.
순천안민·오족협화의 왕도낙토
3.
용의 귀향─ 복벽을 꿈꾸며
4.
집정은 전 인민이 이를 추거한다
5.
정부 형태와 통치 실태의 괴리
6.
만주국 정치의 네 가지 주요 개념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
─ 왕도낙토의 차질과 일만일체화의 도정
1.
근화일조(槿花一朝)의 꿈─ 쫓기는 나날
2.
왕도주의의 퇴각─ 얼어붙은 건국이념
3.
형극의 길─ 만주국 승인과 정샤오쉬
4.
국화와 난초─ 제제 만주국과 천황제의 수입
5.
일만일체의 배리─ 통치를 둘러싼 대립
6.
메타모르포제─ 키메라의 변신
7.
사생존망, 손을 놓을 수 없어─ 일본주국(洲國)의 운명
종장: 키메라, 그 실상과 허상
1.
만주국의 양면성─ 민족의 협화와 반목
2.
안거낙업─ 눈은 칼과 같이
3.
왕도국가─ 국민 없는 병영국가
4.
키메라의 사멸
후기
보론: 만주와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증보판 후기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
1.
만주국의 그림자
2.
괴뢰국가 만주국
3.
이상국가 만주국
4.
키메라로서의 만주국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
─ 관동군의 만몽영유론
1.
만몽─ 고르디아스의 매듭
2.
만몽 영유 계획의 발진
3.
자급자족권 형성과 국가 개조
4.
조선 통치와 적화 차단
5.
대소 전략 거점
6.
일미전쟁과 세계 최종전론
7.
만몽 영유의 정당성 근거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
─ 신국가 건설공작과 건국이념의 모색
1.
독립국가 건설로의 전환
2.
성정부 독립공작과 이시하라의 전환
3.
위청한과 보경안민 비양병주의
4.
만주청년연맹과 민족협화
5.
다이유호카이와 흥아의 큰 파도
6.
다치바나 시라키와 자치의 왕도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
─ 도의입국의 기치와 만주국 정치의 형성
1.
건국 동기 만들기와 장의부조(仗義扶助)
2.
순천안민·오족협화의 왕도낙토
3.
용의 귀향─ 복벽을 꿈꾸며
4.
집정은 전 인민이 이를 추거한다
5.
정부 형태와 통치 실태의 괴리
6.
만주국 정치의 네 가지 주요 개념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
─ 왕도낙토의 차질과 일만일체화의 도정
1.
근화일조(槿花一朝)의 꿈─ 쫓기는 나날
2.
왕도주의의 퇴각─ 얼어붙은 건국이념
3.
형극의 길─ 만주국 승인과 정샤오쉬
4.
국화와 난초─ 제제 만주국과 천황제의 수입
5.
일만일체의 배리─ 통치를 둘러싼 대립
6.
메타모르포제─ 키메라의 변신
7.
사생존망, 손을 놓을 수 없어─ 일본주국(洲國)의 운명
종장: 키메라, 그 실상과 허상
1.
만주국의 양면성─ 민족의 협화와 반목
2.
안거낙업─ 눈은 칼과 같이
3.
왕도국가─ 국민 없는 병영국가
4.
키메라의 사멸
후기
보론: 만주와 만주국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증보판 후기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일찍이 만주국이라는 국가가 있었다.
1932년 3월 1일 중국 동북지방에 홀연히 나타나, 1945년 8월 18일 황제 푸이(溥儀)의 퇴위 선언과 함께 졸연히 모습을 감춘 국가, 만주국.
그 생명은 겨우 13년 5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기서 살았던 일본인에게는 오히려 국가의 종언이야말로 진정한 만주국 체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련군의 침공, 본국 귀환, 혹은 시베리아 억류* ─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처참함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개개인은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던가, 그 자신은 만주국에 어떻게 관계해 왔던가 하는 물음을 되물으며 다양한 만주국상을 그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만주국의 다종다양한 형상의 편린들은 수많은 수기와 회상록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지금도 우리들은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 p.15~16,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중에서
만몽이 일본의 생명선이라 불린 것은 그것이 식민지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소련과 중국에 대한 국방상의 최전선으로 간주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니까 만약 소련이나 중국이 만몽에서 압도적인 세력으로 일본을 구축(驅逐)하게 되면 일본의 조선통치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가 만몽에서 일본이 세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되었던 것이다.
1924년 5월 외무성 ·대장성 ·육군성 ·해군성의 협정으로 작성된 〈대지(對支)정책강령〉이 “만몽의 질서 유지는 해당 지역에 대한 중대한 이해관계, 특히 조선 통치상 제국에 아주 중요하고 이를 위해 항상 최선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규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타가키도 또한 “만약 러시아가 국경을 넘는다면 조선 영유는 시간문제”라고 하며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조선 방위를 위해서라도 만몽 영유가 불가결함을 역설했다.
--- p.49~50,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중에서
이시하라는 22일의 방침안에 대해 “9월 19일의 만몽 점령 의견을 중앙이 일고(一顧)도 하지 않고, 또한 다테카와 소장조차 전혀 동의하지 않아 도저히 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알고 만곡(萬斛)의 눈물을 삼키며 만몽 독립국안으로 후퇴하였다.
최후의 보루는, 호기가 다시 찾아오면 곧 만몽 영토론이 실현되는 날이 있음을 기약하는 것이었다”라는 의견을 기록하고 있다.
만곡의 눈물을 삼키며 후퇴하여, 기회가 되면 숙원인 만몽 영유 실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최후의 진지, 그것이 이시하라의 만몽 독립국안이었다.
1928년 이래 이시하라를 중심으로 관동군이 가다듬어 왔던 만몽영유론은 그것이 실시되기 직전에 육군 중앙의 거부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81,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중에서
이처럼 만주국 정치를 결정했던 것은, 괴뢰국가 ·보호국화라는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현지 중국인의 자주적 발의의 의해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관동군의 지도하에 일계 관리에 의해 일본의 통치 의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현하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일만 정위이건, 일만 비율이건, 총무청 중심주의건, 내면 지도건 모두 국법상의 권한과 사실상의 권한이라는 양면성을 표상하면서도 그 어긋남을 호도하기 위한 미봉책이며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표면과 내면의 괴리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주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국책에 순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 ·만 관계의 기조가 되었던 것이다.
--- p.203,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중에서
이 증언을 소개한 오쿠라는 그것이 결코 중국인 측에서 나온 일방적인 견해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재만 일본인의 증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국가에 대한 불평의 원인으로는 아편 전매관?헌병?경찰관의 횡포, 일계 관리의 전횡, 자위를 위한 총기의 몰수 등을 들면서 “만약 지금 군대가 물러난다면 일본인은 전부 살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있으며 또한 군부 고관도 “지금 만약 일러전쟁이 일어난다면 일본군 가운데 10개 사단 정도는 만주인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일본인의 증언은 아마도 현지에서 일상적으로 타민족과 접촉하고 있던 사람들의 거짓 없는 실감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증언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중국인 고관이 든 것 대부분을 관동군과 일계 관리가 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1932년 3월 1일 중국 동북지방에 홀연히 나타나, 1945년 8월 18일 황제 푸이(溥儀)의 퇴위 선언과 함께 졸연히 모습을 감춘 국가, 만주국.
그 생명은 겨우 13년 5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기서 살았던 일본인에게는 오히려 국가의 종언이야말로 진정한 만주국 체험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소련군의 침공, 본국 귀환, 혹은 시베리아 억류* ─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필설로는 다할 수 없는 처참함을 경험한 뒤에야 비로소 개개인은 만주국이란 무엇이었던가, 그 자신은 만주국에 어떻게 관계해 왔던가 하는 물음을 되물으며 다양한 만주국상을 그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만주국의 다종다양한 형상의 편린들은 수많은 수기와 회상록 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지금도 우리들은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 p.15~16, 「서장 만주국에 대한 시선」중에서
만몽이 일본의 생명선이라 불린 것은 그것이 식민지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소련과 중국에 대한 국방상의 최전선으로 간주된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러니까 만약 소련이나 중국이 만몽에서 압도적인 세력으로 일본을 구축(驅逐)하게 되면 일본의 조선통치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려가 만몽에서 일본이 세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되었던 것이다.
1924년 5월 외무성 ·대장성 ·육군성 ·해군성의 협정으로 작성된 〈대지(對支)정책강령〉이 “만몽의 질서 유지는 해당 지역에 대한 중대한 이해관계, 특히 조선 통치상 제국에 아주 중요하고 이를 위해 항상 최선의 주의를 기울”인다고 규정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타가키도 또한 “만약 러시아가 국경을 넘는다면 조선 영유는 시간문제”라고 하며 소련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조선 방위를 위해서라도 만몽 영유가 불가결함을 역설했다.
--- p.49~50, 「제1장 일본이 살아날 유일한 길」중에서
이시하라는 22일의 방침안에 대해 “9월 19일의 만몽 점령 의견을 중앙이 일고(一顧)도 하지 않고, 또한 다테카와 소장조차 전혀 동의하지 않아 도저히 이를 수행할 수 없음을 알고 만곡(萬斛)의 눈물을 삼키며 만몽 독립국안으로 후퇴하였다.
최후의 보루는, 호기가 다시 찾아오면 곧 만몽 영토론이 실현되는 날이 있음을 기약하는 것이었다”라는 의견을 기록하고 있다.
만곡의 눈물을 삼키며 후퇴하여, 기회가 되면 숙원인 만몽 영유 실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최후의 진지, 그것이 이시하라의 만몽 독립국안이었다.
1928년 이래 이시하라를 중심으로 관동군이 가다듬어 왔던 만몽영유론은 그것이 실시되기 직전에 육군 중앙의 거부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81, 「제2장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가 될지니」중에서
이처럼 만주국 정치를 결정했던 것은, 괴뢰국가 ·보호국화라는 국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현지 중국인의 자주적 발의의 의해 정치적 결정이 이루어지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관동군의 지도하에 일계 관리에 의해 일본의 통치 의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실현하는가 하는 요청이었다.
일만 정위이건, 일만 비율이건, 총무청 중심주의건, 내면 지도건 모두 국법상의 권한과 사실상의 권한이라는 양면성을 표상하면서도 그 어긋남을 호도하기 위한 미봉책이며 권모술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러한 표면과 내면의 괴리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서 만주국으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국책에 순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일 ·만 관계의 기조가 되었던 것이다.
--- p.203, 「제3장 세계정치의 모범이 되려 함」중에서
이 증언을 소개한 오쿠라는 그것이 결코 중국인 측에서 나온 일방적인 견해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재만 일본인의 증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신국가에 대한 불평의 원인으로는 아편 전매관?헌병?경찰관의 횡포, 일계 관리의 전횡, 자위를 위한 총기의 몰수 등을 들면서 “만약 지금 군대가 물러난다면 일본인은 전부 살해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 있으며 또한 군부 고관도 “지금 만약 일러전쟁이 일어난다면 일본군 가운데 10개 사단 정도는 만주인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 일본인의 증언은 아마도 현지에서 일상적으로 타민족과 접촉하고 있던 사람들의 거짓 없는 실감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들 증언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중국인 고관이 든 것 대부분을 관동군과 일계 관리가 사실로 인정하고 있었다.
--- p.264~265, 「제4장 경방의 장책은 항상 일본제국과 협력동심」중에서
출판사 리뷰
만주국, 일제가 급조한 괴뢰국이었는가
아니면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나는 만주국을 머리가 사자, 몸뚱이가 양, 꼬리가 용인 괴물 키메라로 상정해 보고자 한다.
사자는 관동군, 양은 천황제 국가, 용은 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에 각각 대비시키는데, 그 의미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가운데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제시한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만주국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기대와 이상을 품고 이 국가의 건설에 투신하였다.
관동군, 제국주의자들, 국민당 정부와 대립한 중국의 실력자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각자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곳이 바로 만주국이었다.
순천안민(順天安民),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가 실현될 이상국가, 그것이 바로 만주국의 건국이념이었다.
지은이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각자 다양한 기대를 품고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을 1~3장에 제시한 뒤 이러한 이상이 삽시간에 변질되고 바스러지는 과정을 4장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일본인 지식인의 표현으로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를 배제하고 아시아에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의 장”이었던 만주국은 일제의 ‘세계전쟁’ 야욕을 위한 병참기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갓난아이를 벌거벗겨 키울 수밖에 없는 참혹한 약탈과 착취의 땅으로 전락해갔다.
만주국은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를 비롯해, 대동학원 출신의 최규하, 겐고쿠대학 출신의 강영훈, 민기식 등 만주국에 참여했던 식민지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국가를 경영하는 주체가 되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만주국의 무엇이 이들을 매료시켰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만주국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주국의 멸망 후 겐고쿠대학의 조선인 학생은 일본인 조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한다.
“선생님, 조선이 일본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독립해서야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제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패망하여 후퇴해 가는 일제에게 뼈아픈 충고인 동시에 오늘날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책은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한 것이다.
다시 재현된 만주국의 초상을 통해 21세기 만주국의 초상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아니면 실패한 유토피아였는가
“나는 만주국을 머리가 사자, 몸뚱이가 양, 꼬리가 용인 괴물 키메라로 상정해 보고자 한다.
사자는 관동군, 양은 천황제 국가, 용은 중국 황제 및 근대 중국에 각각 대비시키는데, 그 의미는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가운데 명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1932년에 중국 동북지방에서 건국되었다가 1945년에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의 패망과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춘 나라 만주국.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은 만주국이 왜 건국되었고 그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운영과정은 어떠했고, 일본인과 중국인은 이 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등 만주국의 전체상을 개략적으로 알 수 있도록 제시한 입문서다.
일본의 인문학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이 만주국의 초상을 그리스의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 몸은 양, 꼬리는 용인 괴물 ‘키메라’에 빗대어 그려 나갔다.
만주국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만주국은 ‘일제가 세운 괴뢰국’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1932년 만주국이 건국될 당시에는 많은 이들이 각자의 기대와 이상을 품고 이 국가의 건설에 투신하였다.
관동군, 제국주의자들, 국민당 정부와 대립한 중국의 실력자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지식인들, 마지막 황제 푸이까지 각자의 유토피아가 실현될 곳이 바로 만주국이었다.
순천안민(順天安民),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왕도낙토(王道樂土)가 실현될 이상국가, 그것이 바로 만주국의 건국이념이었다.
지은이는 이처럼 많은 이들이 각자 다양한 기대를 품고 만주국 건설에 참여하는 과정을 1~3장에 제시한 뒤 이러한 이상이 삽시간에 변질되고 바스러지는 과정을 4장에서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일본인 지식인의 표현으로 “서구의 제국주의 지배를 배제하고 아시아에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의 장”이었던 만주국은 일제의 ‘세계전쟁’ 야욕을 위한 병참기지, 영하 30도의 날씨에도 갓난아이를 벌거벗겨 키울 수밖에 없는 참혹한 약탈과 착취의 땅으로 전락해갔다.
만주국은 우리의 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만주국의 육군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를 비롯해, 대동학원 출신의 최규하, 겐고쿠대학 출신의 강영훈, 민기식 등 만주국에 참여했던 식민지인들이 대한민국의 국민국가를 경영하는 주체가 되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만주국의 무엇이 이들을 매료시켰는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만주국의 역사는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방식에 대해서도 고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만주국의 멸망 후 겐고쿠대학의 조선인 학생은 일본인 조교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고 한다.
“선생님, 조선이 일본의 예속에서 해방되고 독립해서야 비로소 한국과 일본은 진정으로 제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패망하여 후퇴해 가는 일제에게 뼈아픈 충고인 동시에 오늘날 세계 시민의 입장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책은 2009년 나온 번역본에서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애매한 문장을 좀 더 명확하게 고쳐 새로이 출간한 것이다.
다시 재현된 만주국의 초상을 통해 21세기 만주국의 초상이 그려지길 기대한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4년 02월 08일
- 쪽수, 무게, 크기 : 480쪽 | 145*210*30mm
- ISBN13 : 9791192913605
- ISBN10 : 119291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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