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른손을 묶어라
Description
책소개
50여년 전에 스킬 트레이너가 있었다.
코치는 농구의 왼손 드리블을 가르치려고 제자의 오른팔을 묶게했다.
코치는 농구선수로 성공하려면 왼손 오른손을 다 써야한다고 말했다.
50여년 전에 전략가가 있었다.
1960년대 중반 농구선수가 185cm면 장신이었다.
원치않아도 센터를 봐야했다.
코치는 선수에게 외곽 플레이도 훈련시켰다.
하나의 포지션에 제자를 묶어두지 않았다.
50여년 전에 인격의 리더십이 있었다.
운동 선수는 맞는게 일상이던 시절, 그 코치는 구타를 엄금했다.
운동 선수는 공부를 포기하던 시절, 그 코치는 수업을 듣지않으면 농구를 시키지 않았다.
한국판 ‘코치 카터’가 50여년 전에 있었다.
유희형, 김동광, 강동희, 김승현 등 ‘스타 가드’들의 스승 전규삼.
농구학자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과 팩트스토리가 함께 전규삼 코치의 전기 『오른손을 묶어라 : 시대를 앞서갔던 농구코치 전규삼』을 펴냈다.
전규삼 코치의 삶을 꼼꼼하고 치밀한 취재로 재구성하여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동시 출간한다.
전 코치의 삶에는 농구만 담겨있지 않았다.
이 전기는 혁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원칙을 지키면서 성공하는 법에 대한 인생론이기도 하다.
전규삼의 농구와 삶을 손대범 편집장의 시선으로 돌아본다.
코치는 농구의 왼손 드리블을 가르치려고 제자의 오른팔을 묶게했다.
코치는 농구선수로 성공하려면 왼손 오른손을 다 써야한다고 말했다.
50여년 전에 전략가가 있었다.
1960년대 중반 농구선수가 185cm면 장신이었다.
원치않아도 센터를 봐야했다.
코치는 선수에게 외곽 플레이도 훈련시켰다.
하나의 포지션에 제자를 묶어두지 않았다.
50여년 전에 인격의 리더십이 있었다.
운동 선수는 맞는게 일상이던 시절, 그 코치는 구타를 엄금했다.
운동 선수는 공부를 포기하던 시절, 그 코치는 수업을 듣지않으면 농구를 시키지 않았다.
한국판 ‘코치 카터’가 50여년 전에 있었다.
유희형, 김동광, 강동희, 김승현 등 ‘스타 가드’들의 스승 전규삼.
농구학자 손대범 [점프볼] 편집장과 팩트스토리가 함께 전규삼 코치의 전기 『오른손을 묶어라 : 시대를 앞서갔던 농구코치 전규삼』을 펴냈다.
전규삼 코치의 삶을 꼼꼼하고 치밀한 취재로 재구성하여 전자책과 종이책으로 동시 출간한다.
전 코치의 삶에는 농구만 담겨있지 않았다.
이 전기는 혁신에 대한 이야기이자, 원칙을 지키면서 성공하는 법에 대한 인생론이기도 하다.
전규삼의 농구와 삶을 손대범 편집장의 시선으로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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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0.
프롤로그
1.
빠스껫볼, 한번 해 볼 텐가?
2.
송도고보 농구 구락부
3.
손-듸헨스
4.
해방
5.
새출발
6.
농구하려면 성적표를
7.
오른팔을 묶어라
8.
인천에서 미국 농구를
9.
패스는 드리블보다 빠르다
10.
김동광
11.
소풍가던 날
12.
동반자들
13.
보통 선수 이충희
14.
우리는 우리의 벽만 넘는다
15.
의리, 전설을 탄생시키다
16.
갈등
17.
원석, 버려지다
18.
전설의 시작
19.
호랑이를 잡으려면
20.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21.
할아버지를 위한 데모
22.
전규삼이 만든 세상
23.
몇십년 전의 스킬 캠프
24.
너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25.
마지막 춤
26.
마지막 전규삼 키드
27.
나와 친구 합시다!
28.
전규삼의 농구는 끝나지 않았다
29.
참스승
에필로그
프롤로그
1.
빠스껫볼, 한번 해 볼 텐가?
2.
송도고보 농구 구락부
3.
손-듸헨스
4.
해방
5.
새출발
6.
농구하려면 성적표를
7.
오른팔을 묶어라
8.
인천에서 미국 농구를
9.
패스는 드리블보다 빠르다
10.
김동광
11.
소풍가던 날
12.
동반자들
13.
보통 선수 이충희
14.
우리는 우리의 벽만 넘는다
15.
의리, 전설을 탄생시키다
16.
갈등
17.
원석, 버려지다
18.
전설의 시작
19.
호랑이를 잡으려면
20.
젊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21.
할아버지를 위한 데모
22.
전규삼이 만든 세상
23.
몇십년 전의 스킬 캠프
24.
너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25.
마지막 춤
26.
마지막 전규삼 키드
27.
나와 친구 합시다!
28.
전규삼의 농구는 끝나지 않았다
29.
참스승
에필로그
책 속으로
우리가 만난 이유는 최호 코치가 방금 말한 그 할아버지 때문이다.
그의 스승이고, 송도고등학교 농구의 ‘전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운동 좀 가르친다는 모든 학생 스포츠 코치들의 롤 모델로 불려왔던 전규삼이다.
코치 생활만 30년 넘게 했다.
80살이 되어서도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러다보니 그 무렵의 학생들은 전규삼을 ‘코치님’, ‘선생님’이 아니라 ‘할아버지’라 불렀다.
그의 지도이력과 제자들은 죄다 한국농구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들이다.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정덕화, 서동철, 강동희, 신기성, 그리고 김승현에 이르기까지….
국내대회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아시아대회에서도 명성을 떨친 제자들이 모두 전규삼으로부터 농구를 배웠다.
나는 문득 ‘그날’이 궁금해졌다.
내가 이곳으로까지 취재를 온 이유였다.
“그날도 그랬던 것이겠죠?”
“그날이요?” 최호가 되묻는다.
내가 궁금해 한 ‘그 때’는 1988년 7월 14일이다.
송도고등학교 이사회 결정에 학교 농구부, 아니 대한민국 농구가 흔들린 날.
당시 전규삼은 일흔이 넘었지만, 그때도 그 언덕을 걸어 올라왔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건만, 교장실에서 날아온 소식은 해고 통보였다.
나이가 들어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해고 통보가 있기 10일 전에도 송도고는 쌍용기(당시 24회) 대회에서 준결승한 터였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서울 안암동 고려대 체육관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체육관이 난리가 났다.
정봉섭, 박한 등 대학 농구부 감독들은 훈련을 중단시키고 송도 출신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할아버지를 지켜드려라.
송도출신들은 문제 해결되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이미 유희형과 김동광, 신종철 등 송도 출신들이 교장실에 쳐들어갔다.
“학교가 필요이상으로 간섭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후배들은 체육관에 모여 대자보를 만들고, 동문들에게 알렸다.
학부모들은 힘내라며 시위하는 졸업생들을 위해 다과를 준비했다.
저녁이 되자 중앙대 감독이던 정봉섭도 제자들과 시위대에 합류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등을 길러낸 ‘대부’ 정봉섭은 “옳지 않은 일이다”라며 학교측 결정을 비판했다.
〈동아일보〉같은 언론도 도와준다니 농구인들의 목소리도 더 커져갔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하고, 학교는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제자들과 농구계의 반발로 학교는 해고 의사를 철회했다.
기사가 난 지 4일만이었다.
제자들이 그를 구해낸 것이다.
할아버지 농구감독 전규삼.
도대체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길래 이처럼 동문부터 학부모, 그리고 언론사까지 들고 일어섰던 것일까.
--- p.8, 「프롤로그」 중에서
전규삼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지금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아침 7시까지 집합을 지시, 1교시가 시작되는 9시까지 훈련을 시켰다.
수업을 듣고서 7교시가 끝나는 3시에는 다들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저녁 7시까지 팀 훈련이 이어졌다.
팀 훈련이 끝나면 9시까지 개인 훈련이었다.
내일모레 대회가 열려도 훈련시간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꼭 들어야 할 학교 수업을 다 듣기 전에는 소집하지 않았다.
대회가 오전에 끝나면 오후 수업을 들여보냈다.
수업 시간에 조는 일도 용납하지 않았다.
땡땡이도 못 쳤다.
그에겐 비밀 출석부가 있었다.
제 시간에 등교를 하는지, 수업시간에 졸지는 않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교사들을 통해서 꼼꼼하게 체크했다.
전규삼에게는 상대팀 전력을 분석하는 비밀 노트보다도 중요했다.
실제로 선수 중 한 명이 오전 수업을 며칠 째 등한시 했다는 이유로 농구부 근처에 발도 못 붙이게 했던 사건이었다.
“네놈이 여기서 농구 잘 한다고 크게 잘 되고 그런 거 아니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를 해야지.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학생이 무릎을 꿇고 빌자, 전규삼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술, 담배, 여자! 나중에 커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뤄두라고! 너희는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야.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걸 잊어선 안 돼!”
전규삼은 매달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표를 걷어 조사했고, 영어와 한자를 외우게 해 불시에 쪽지시험도 봤다.
이처럼 학업에 대한 코치의 열정이 진심이며, 굉장히 진지하다는 것을 깨달은 선수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예 맨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졸거나 지나칠 것을 걱정해서였다.
학교 수업이 없는 일요일만이 유일하게 ‘하루 종일 농구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규삼은 결코 농구 때문에 기합을 주거나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해도 허허.
연습 중 동작을 틀려도 허허.
슛을 못 넣는다 해도 허허.
그렇지만 ‘기본’을 우습게 여길 때만큼은 호랑이가 됐다.
전규삼이 강조한 ‘기본’은 단순히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기본을 지키길 바랐다.
당시만 해도 운동부는 ‘패는 일’이 일상이었다.
코치는 학생을, 선배는 후배를, 구타와 폭언의 대물림이 이어졌다.
그 시절 선수로 뛰었던 10명 중 7명은 “하도 매질을 당해 허벅지가 터져서 나중에는 바지도 제대로 못 입을 정도였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을 정도.
맞을 때는 ‘난 커서 저런 선배는 되지 않을 거야’라고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정작 본인이 선배가 되고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후배를 길들이는 군대식 문화가 체육계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송도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규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얼차려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규삼은 팀을 맡은 뒤부터 그런 선배들을 보고 넘기지 않았다.
지시하지 않은 기합이나 폭언이 발각될 때면 즉시 체육관에서 나가야 했다.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선생님이랑 함께 한 내내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어요.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죠.” 유희형의 말이다.
그의 스승이고, 송도고등학교 농구의 ‘전설’, 더 나아가 한국에서 운동 좀 가르친다는 모든 학생 스포츠 코치들의 롤 모델로 불려왔던 전규삼이다.
코치 생활만 30년 넘게 했다.
80살이 되어서도 선수들을 지도했다.
그러다보니 그 무렵의 학생들은 전규삼을 ‘코치님’, ‘선생님’이 아니라 ‘할아버지’라 불렀다.
그의 지도이력과 제자들은 죄다 한국농구의 역사를 관통하는 이들이다.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정덕화, 서동철, 강동희, 신기성, 그리고 김승현에 이르기까지….
국내대회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아시아대회에서도 명성을 떨친 제자들이 모두 전규삼으로부터 농구를 배웠다.
나는 문득 ‘그날’이 궁금해졌다.
내가 이곳으로까지 취재를 온 이유였다.
“그날도 그랬던 것이겠죠?”
“그날이요?” 최호가 되묻는다.
내가 궁금해 한 ‘그 때’는 1988년 7월 14일이다.
송도고등학교 이사회 결정에 학교 농구부, 아니 대한민국 농구가 흔들린 날.
당시 전규삼은 일흔이 넘었지만, 그때도 그 언덕을 걸어 올라왔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왔건만, 교장실에서 날아온 소식은 해고 통보였다.
나이가 들어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해고 통보가 있기 10일 전에도 송도고는 쌍용기(당시 24회) 대회에서 준결승한 터였기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가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서울 안암동 고려대 체육관과 서울 흑석동 중앙대 체육관이 난리가 났다.
정봉섭, 박한 등 대학 농구부 감독들은 훈련을 중단시키고 송도 출신 제자들을 불러 모았다.
“할아버지를 지켜드려라.
송도출신들은 문제 해결되기 전까지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마!”
이미 유희형과 김동광, 신종철 등 송도 출신들이 교장실에 쳐들어갔다.
“학교가 필요이상으로 간섭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후배들은 체육관에 모여 대자보를 만들고, 동문들에게 알렸다.
학부모들은 힘내라며 시위하는 졸업생들을 위해 다과를 준비했다.
저녁이 되자 중앙대 감독이던 정봉섭도 제자들과 시위대에 합류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등을 길러낸 ‘대부’ 정봉섭은 “옳지 않은 일이다”라며 학교측 결정을 비판했다.
〈동아일보〉같은 언론도 도와준다니 농구인들의 목소리도 더 커져갔다.
사태는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하고, 학교는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제자들과 농구계의 반발로 학교는 해고 의사를 철회했다.
기사가 난 지 4일만이었다.
제자들이 그를 구해낸 것이다.
할아버지 농구감독 전규삼.
도대체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과연 어떤 영향을 주었길래 이처럼 동문부터 학부모, 그리고 언론사까지 들고 일어섰던 것일까.
--- p.8, 「프롤로그」 중에서
전규삼은 선수들에게 “너희는 지금 배운 지식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선수들에게 아침 7시까지 집합을 지시, 1교시가 시작되는 9시까지 훈련을 시켰다.
수업을 듣고서 7교시가 끝나는 3시에는 다들 체육관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저녁 7시까지 팀 훈련이 이어졌다.
팀 훈련이 끝나면 9시까지 개인 훈련이었다.
내일모레 대회가 열려도 훈련시간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꼭 들어야 할 학교 수업을 다 듣기 전에는 소집하지 않았다.
대회가 오전에 끝나면 오후 수업을 들여보냈다.
수업 시간에 조는 일도 용납하지 않았다.
땡땡이도 못 쳤다.
그에겐 비밀 출석부가 있었다.
제 시간에 등교를 하는지, 수업시간에 졸지는 않는지, 시험은 잘 봤는지 교사들을 통해서 꼼꼼하게 체크했다.
전규삼에게는 상대팀 전력을 분석하는 비밀 노트보다도 중요했다.
실제로 선수 중 한 명이 오전 수업을 며칠 째 등한시 했다는 이유로 농구부 근처에 발도 못 붙이게 했던 사건이었다.
“네놈이 여기서 농구 잘 한다고 크게 잘 되고 그런 거 아니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를 해야지.
지금 네가 하는 일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나!” “죄송합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학생이 무릎을 꿇고 빌자, 전규삼은 한 번 더 힘주어 말했다.
“술, 담배, 여자! 나중에 커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은 나중으로 미뤄두라고! 너희는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야.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걸 잊어선 안 돼!”
전규삼은 매달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표를 걷어 조사했고, 영어와 한자를 외우게 해 불시에 쪽지시험도 봤다.
이처럼 학업에 대한 코치의 열정이 진심이며, 굉장히 진지하다는 것을 깨달은 선수들은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예 맨 앞자리에 앉아버렸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졸거나 지나칠 것을 걱정해서였다.
학교 수업이 없는 일요일만이 유일하게 ‘하루 종일 농구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규삼은 결코 농구 때문에 기합을 주거나 회초리를 들지 않았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해도 허허.
연습 중 동작을 틀려도 허허.
슛을 못 넣는다 해도 허허.
그렇지만 ‘기본’을 우습게 여길 때만큼은 호랑이가 됐다.
전규삼이 강조한 ‘기본’은 단순히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대할 때도 기본을 지키길 바랐다.
당시만 해도 운동부는 ‘패는 일’이 일상이었다.
코치는 학생을, 선배는 후배를, 구타와 폭언의 대물림이 이어졌다.
그 시절 선수로 뛰었던 10명 중 7명은 “하도 매질을 당해 허벅지가 터져서 나중에는 바지도 제대로 못 입을 정도였다”는 기억을 갖고 있었을 정도.
맞을 때는 ‘난 커서 저런 선배는 되지 않을 거야’라고 속으로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정작 본인이 선배가 되고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후배를 길들이는 군대식 문화가 체육계 전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송도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규삼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얼차려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전규삼은 팀을 맡은 뒤부터 그런 선배들을 보고 넘기지 않았다.
지시하지 않은 기합이나 폭언이 발각될 때면 즉시 체육관에서 나가야 했다.
불같이 화를 냈다.
“나는 선생님이랑 함께 한 내내 한 번도 맞은 적이 없어요.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고마운 일이었죠.” 유희형의 말이다.
--- p.75, 「농구하려면 성적표를」 중에서
출판사 리뷰
넷플릭스 농구 다큐 〈라스트 댄스〉를 본 농구팬이라면, 이제 여러분이 봐야할 스토리
"가끔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제1호 스킬 트레이너는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고요" (김현중)
"제가 농구를 한 번 그만둔다고 했었는데 그때 당시에 저를 사춘기 시절에 다잡아 주셨던 정말 지금의 제가 있게 만든 분이죠.
전규삼 할아버지가 개인기와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쳐준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항상 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실 거에요.
저를 있게 해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승현)
『오른손을 묶어라』는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김승현, 신기성, 김현중 등 한국 농구사에 내로라 하는 슈퍼 가드들을 키워낸 고(故) 전규삼 농구 코치의 삶과 활동을 담은 전기논픽션입니다.
운동이 전쟁이던 시절, ‘이기는’ 농구가 아닌 ‘즐기는 농구’를 가르치며 창의적인 가드들을 양성했던 그의 리더십을 돌아봅니다.
‘송도 농구의 상징’으로 불리는 전규삼 코치는 기본기와 동시에 창의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지도 방식은 2010년 이후에야 한국에 불어닥친 스킬 트레이닝의 시초가 아닐까요? 『오른손을 묶어라』는 눈앞의 성적보다 기본기와 창의성 강화에 힘썼던 전규삼 코치의 농구 철학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농구는 잘 몰라도 혁신가의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읽어야할 스토리
“체벌을 가하면 당장은 고친다.
그렇지만 일주일 있으면 또 못 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또 때리면 면역력이 생겨 1대가 10대가 된다.
스스로 느끼면 창조적인 플레이가 나온다.
시간이 걸리지만, 자기 것이 되면 영원히 이어진다” (전규삼)
“좋은 학벌과 해박한 지식, 높은 철학, 성실하신 자세 등을 지니셨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적인 영광의 길을 추구하셨더라면 더 화려한 위치에 서실 수도 있었던 선생님.
그러나 때로는 무보수로, 때로는 임시직으로의 척박한 가시밭길을 걸으시면서도 오로지 농구 지도자로 만족하셨던 고마우신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가장 위대하게 보입니다.” - 故전규삼 추모사 중
창의적인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한국 문화.
스포츠에 한정된 이야기일까요?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는 지나간 과거일까요? 빙상계 가혹행위 사건이 드러난 것이 불과 얼마 전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승패보다는 기본기를, 당장의 전술 암기보다 창의적 플레이를 강조했던 ‘진짜 리더’ 전규삼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한국에 필요한 스포츠맨십을 되새겨 봅니다.
어쩌면 그는 한국판 '코치카터'일지 모릅니다.
농구만큼 흑인 학생들의 인성과 학습, 미래를 우선시했던 미국의 농구코치 코치카터 말입니다.
“나는 이 선수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고 싶습니다.”(영화 〈코치 카터〉 중에서)
70년대 미국 리치몬드 고교 농구팀 감독 켄 카터가 랭킹 최하위 농구팀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소재 영화 〈코치 카터〉의 대사입니다.
카터 코치는 기본 성적이 미달한 선수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인성도 중요시했습니다.
스포츠 지도자의 철학과 시스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오른손을 묶어라』는 '한국판 코치 카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은 가능하다’는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가끔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대한민국 제1호 스킬 트레이너는 할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고요" (김현중)
"제가 농구를 한 번 그만둔다고 했었는데 그때 당시에 저를 사춘기 시절에 다잡아 주셨던 정말 지금의 제가 있게 만든 분이죠.
전규삼 할아버지가 개인기와 기본기를 충실히 가르쳐준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항상 제 옆에서 지켜보고 계실 거에요.
저를 있게 해 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승현)
『오른손을 묶어라』는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김승현, 신기성, 김현중 등 한국 농구사에 내로라 하는 슈퍼 가드들을 키워낸 고(故) 전규삼 농구 코치의 삶과 활동을 담은 전기논픽션입니다.
운동이 전쟁이던 시절, ‘이기는’ 농구가 아닌 ‘즐기는 농구’를 가르치며 창의적인 가드들을 양성했던 그의 리더십을 돌아봅니다.
‘송도 농구의 상징’으로 불리는 전규삼 코치는 기본기와 동시에 창의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지도 방식은 2010년 이후에야 한국에 불어닥친 스킬 트레이닝의 시초가 아닐까요? 『오른손을 묶어라』는 눈앞의 성적보다 기본기와 창의성 강화에 힘썼던 전규삼 코치의 농구 철학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농구는 잘 몰라도 혁신가의 노하우가 궁금하다면 읽어야할 스토리
“체벌을 가하면 당장은 고친다.
그렇지만 일주일 있으면 또 못 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또 때리면 면역력이 생겨 1대가 10대가 된다.
스스로 느끼면 창조적인 플레이가 나온다.
시간이 걸리지만, 자기 것이 되면 영원히 이어진다” (전규삼)
“좋은 학벌과 해박한 지식, 높은 철학, 성실하신 자세 등을 지니셨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세상적인 영광의 길을 추구하셨더라면 더 화려한 위치에 서실 수도 있었던 선생님.
그러나 때로는 무보수로, 때로는 임시직으로의 척박한 가시밭길을 걸으시면서도 오로지 농구 지도자로 만족하셨던 고마우신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가장 위대하게 보입니다.” - 故전규삼 추모사 중
창의적인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하는 한국 문화.
스포츠에 한정된 이야기일까요? 개인의 창의성을 억누르는 한국의 권위주의 문화는 지나간 과거일까요? 빙상계 가혹행위 사건이 드러난 것이 불과 얼마 전입니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속에서 승패보다는 기본기를, 당장의 전술 암기보다 창의적 플레이를 강조했던 ‘진짜 리더’ 전규삼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한국에 필요한 스포츠맨십을 되새겨 봅니다.
어쩌면 그는 한국판 '코치카터'일지 모릅니다.
농구만큼 흑인 학생들의 인성과 학습, 미래를 우선시했던 미국의 농구코치 코치카터 말입니다.
“나는 이 선수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고 싶습니다.”(영화 〈코치 카터〉 중에서)
70년대 미국 리치몬드 고교 농구팀 감독 켄 카터가 랭킹 최하위 농구팀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실화소재 영화 〈코치 카터〉의 대사입니다.
카터 코치는 기본 성적이 미달한 선수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인성도 중요시했습니다.
스포츠 지도자의 철학과 시스템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오른손을 묶어라』는 '한국판 코치 카터'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은 가능하다’는 묵직한 울림을 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1년 04월 24일
- 쪽수, 무게, 크기 : 쪽수확인중 | 크기확인중
- ISBN13 : 9791191564013
- ISBN10 : 119156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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