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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Description
책소개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의 예술 기행.
30여년 전 것부터 최근 것까지, 유럽과 인도, 아프리카 여행 후 틈틈히 써두었던 글을 한권으로 묶었다.
아름다운 성(城)과 그 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학작품 속 주인공을 따라 떠나는 여행.
오래되고 따뜻한 벽돌 하나 하나가 불러일으키는 시적 정감이 '인생'과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물과 공기처럼 녹아 있다.

유럽의 고성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시간과 지상의 삶,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과 문학 사이의 비밀을 경이롭게 터뜨린다.
예술기행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젊은 날의 열정에서부터 현재의 사유세계까지를 총망라하고 있는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은 김화영 문학의 행로를 따라가는 눈부신 비밀의 열쇠가 될 것이다.

목차
0.
돌과 꽃

1.
예술의 성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
목가 의 고향 - 라 바스티 뒤르페 성관(城館)
침묵의 문 - 라마르틴느의 성, 생 푸엥
어떤 사랑의 폐허 - 디안느 드 푸아티에 부인의 아네 성
고전주의의 쓸쓸한 꽃 -멩트농 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프루스트의 콩브레
고독하고 위대한 풍경 - 샤토브리앙의 콩부르 성
어머니의 편지 - 세비녜 부인의 레 로셰 성
요한 묵시록 - 앙제 성
거인이 태어난 작은 집 - 프랑수아 라블레의 라 드비니에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 위세 성
인식의 참담한 모험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클로 뤼세 성
골짜기의 백합 - 발자크의 사셰 성
사랑의 폭풍으로 지은 성 - 조르주 상드의 노앙 성
삶의 마지막 성채 - 페르 라셰즈 묘지

2.
보바리를 찾아서
현실과 허구 사이로 난 오솔길
파리라는 이름의 사막
보바리, 들로네, 들라마르
노르망디의 여행자

3.
파리기행
허망한 것 가운데 새겨놓은 영원 -파리의 개선문
달빛 속의 대사원 - 노트르담
왕의 궁, 왕비와 시인의 감옥 - 콩시에르즈리
800년의 꿈으로 지은 예술의 성 - 예술이 정복한 왕궁, 루브르

4.
인도기행
신과 촉감의 에로티시즘
무능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릭샤'를 타면 인도가 보인다
옛이야기 속으로 가는 먼길
화려한 궁궐, 비찬, 중생, 덧없음
시간도 공간도 없는 달밤의 꿈

5.
아프리카의 찬란한 아침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기억을 찾아

6.
길이 끝나는 곳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

책 속으로
1974년 4월 하순 어느 날, 나는 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의 이미지」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홀가분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 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마을 루르마렝을 찾아갔다.
카뮈가 시골집을 마련하여 살던 곳으로, 그 한 녘에 그의 무덤이 있다고 들었었다.


마을 어귀에서 한 아름다운 소년을 만났다.
수선화 꽃을 한아름 꺾어 안고 있는 모습이 불빛을 더욱 환하게 하고 있었다.
어디서 꺾었느냐고 묻자 저쪽 물가에 많이 피어있다고 대답하면서 원하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내 생애에서 흔치 않은 그 선물을 받고 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나는 카뮈의 무덤을 찾아가 묘석 앞에 놓인 빈 항아리에 꽃을 꽂았다.


그는 오랑의 바닷가에서 말했다.
"여기 수선화처럼 다사로운 작은 돌이 있다.
이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놓여 있다."
모든 것의 시작에 놓여 있는 그 꽃다발을 내게 주었던 소년은 이제 장년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꽃과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있다.

"지금은 정오.
대낮 자체도 균형에 이른다.
의식을 다 치르고 나면 나그네는 해방이라는 상을 받는다.
그가 벼랑에서 주워드는 수선화처럼 보송보송하고 따뜻한 작은 조약돌 하나가 그것이다." - 알베르 카뮈, 「아리아드네의 돌」에서
---pp.
14~17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 pp.
255~257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그리고 얼마 전부터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카지모도는 포도 위 두 길 높이의 밧줄 끝에서, 그 불쌍한 소녀가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밧줄은 여러 번 뱅글뱅글 돌았다.
카지모도는 집시 아가씨의 몸뚱어리를 따라 무서운 경련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이제 막 에스메랄다는 밧줄에 매인 채 숨이 끊어진 것이었다.
분노한 카지모도는 악마의 웃음을 웃고 밑만 내려다보는 부주교의 등 뒤로 달려들어 사납게 그를 떠밀어버렸다.
프롤로의 몸은 "떨어져나가는 기왓장처럼 지붕 위를 빨리 미끄러져서 포석 위에 떨어졌다." 카지모도는 이제 막 추락하여 깨어져버린 두 목숨을 그 가물거리는 종탑에서 내려다보며 소리친다.
"오! 저 모든 것을 나는 사랑했었는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허공으로 추락하여 으스러져버린다.
사랑도 욕망도 번뇌도.
그 깨어져버리는 사랑스럽고 연약하고 덧없는 생명을 위하여 인간은 수세기 걸쳐 대사원을 짓는 것이리라.
우리의 사랑도, 우리의 고통도,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다 쓸어가 버리는 세월의 저 불가항력적인 파도를 막아보려는 듯 인간은 방파제처럼 돌로 성벽과 탑을 쌓는 것이리라.
길이 127미터, 정면 너비 40미터, 궁륭 높이 33미터, 종탑 높이 69미터의 육중한 탑, 인간의 운명을 향하여 수수께끼같은 미소를 던지는 저 스핑크스를 사람들은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샤르트르에도 부르쥬에도, 렝스에도, '노트르담 사원'은 있지만 오직 파리의 대사원만은 구태여 '파리의'라는 소유격 수식어를 생락하고 그냥 '노트르담 사원'이라 부른다.
(...)

프랑스의 모든 국도에 서 있는 이정표들에는 해당 지점으로부터 파리까지의 거리가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그 거리는 언제나 노트르담 사원까지의 거리를 뜻한다.
파리를 찾아드는 모든 사람은 그 대사원 앞에 당도해야 비로소 파리에 도착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당신이 그곳에 이르거든 빅토르 위고처럼 탑 속의 캄캄한 벽 어딘가를 가만히 더듬어보라.
"오랜 세월로 새카맣게 때묻어 돌 속에 깊이 새겨진 희랍어의 글자, 마치 그것을 쓴 것이 중세시대 어떤 이의 손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듯, 그 모양과 생김새에서 풍기고 있는 고딕체 특유의 표정이 느껴지는 글자 " 'AN'AKAH(宿命)'가 손끝에 만져질 때까지.
그 세월의 숙명적 감동이 가슴속으로 아프게 아프게 닿아올 때까지.
--- pp.
255~257

출판사 리뷰
산문집『바람을 담는 집』을 필두로 시작된 문학동네 '김화영 문학선집'의 네 번째 권으로 예술기행문을 담은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이 출간되었다.
김화영 문학의 심층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작품에서, 저자는 유럽의 고성에서 아프리카의 광활한 초원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시간과 지상의 삶,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과 문학 사이의 비밀을 경이롭게 터뜨린다.
예술기행문이라는 형식을 빌려 젊은 날의 열정에서부터 현재의 사유세계까지를 총망라하고 있는 『시간의 파도로 지은 城』은 김화영 문학의 행로를 따라가는 눈부신 비밀의 열쇠가 될 것이다.


여기에 묶은 글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한때 출판되었다가 사라지고 없는 작은 책 『예술의 성』 속의 어떤 글처럼, 30여 년 전에 쓴 것도 있고 최근에 쓴 책도 있다.
더러는 조금씩 손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그대로 두었다.
글 속의 장소들은 거의 대부분 두 번 혹은 그 이상 찾아가보았던 곳들이다.
그 장소의 소개나 감상도 기록했지만 무엇보다 거기에는 그 당시 내 삶의 순간들이 부유하고 있다.
가령 프랑스 북쪽 브르타뉴에 있는 샤토브리앙의 콩부르 성이나 발자크의 사셰 성 같은 곳.
나는 그 근처를 지날 때면 우회를 해서라도 기어이 다시 찾아갔다.
그리고 여행 일정을 연장하거나 변경하면서까지 그 마을이나 숲속을 그냥 어슬렁거리기를 좋아했다.
무슨 특별한 느낌을 스스로에게 강요한지는 않고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육중한 성채나 유물이나 거목 못지않게 작은 풀꽃, 소똥, 시든 잎새, 수상한 저녁의 빛, 그리고 소리도 나지 않는 휘파람을 불려고 애쓰며 담장 밑을 호젓이 지나가는 동네 아이, 그 모든 것이 돌연 중요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나의 현재와 그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 본문에서

여행, 그 흐르는 삶

0.
돌과 꽃 : 작가의 예술기행은 1974년 4월 하순의 어느 날, 프로방스 대학에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의 이미지」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찾아간 카뮈의 무덤가에서 시작된다.
이국의 낯선 소년이 건네준 수선화 한 다발을 무덤에 바치며 "꽃과 돌은 모든 것의 시작에 있다"라고 말하는 젊은 예술가.
그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는 황혼의 시간, 홀로 길 위에 서 있는 순례자가 지평을 향하여 멀리 던지는 시선의 끝에는 항상 성이 서 있음을, 너무 밝은 대낮의 빛, 너무 합리적인 이성의 빛을 받으면 간데없이 사라지는 '예술의 성'이 서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여정은 이제, '저마다의 시간의 파도로 짓는 성'을 찾아 떠나게 된다.


Ⅰ.
예술의 성 : 오노레 뒤르페로 하여금 "그대들은 사랑이 과연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스스로의 속에 죽어서 타인의 속에 사는 것이다"라고 말하게 한 『아스트레』의 요람 바스티 뒤르페, 프랑스 고전주의의 엄격한 풍토 속에 호수와 안개 낀 골짜기와 몽롱한 감정의 주어(主語) 없는 목소리를 도입한 낭만주의의 대시인 라마르틴느의 생 푸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첫 권 「스완네 집 쪽으로」의 막을 여는 프루스트의 콩브레, 샤토브리앙으로 하여금 후일 낭만주의를 대표하게 될 소설 『아탈라』『르네』를 쓰게 한 "마치 고딕식 왕관 위에 놓인 보닛 모자 같은" 지붕의 샤토브리앙, 『골짜기의 백합』을 낳은 발자크의 사셰 성…… 그리고 마침내 삶의 마지막 성채인 페르 라셰즈 묘지에 바치는 한 다발의 꽃.
'돌과 꽃'에서 시작된 성의 순례는 또다시 '돌과 꽃'에서 끝을 맺는다.


Ⅱ.
보바리를 찾아서 : 현실과 허구 사이로 난 오솔길.
다시 예술기행을 시작하며 작가는『마담 보바리』를 탄생시킨 플로베르를 생각한다.
소설의 인물들을 탄생시킨 실제 인물들과 그 시대를 반추하고, 작품의 배경이 된 리Ry 마을, 그곳에 서 있는 르 보바리 식당, 플로베르 창작의 산실인 크루아세와 루앙, 그리고 부이예, 뒤상과 함께 플로베르가 누운 모뉘망탈 공동묘지를 만난다.


Ⅲ.
파기 기행 : 파리로 돌아온 작가를 맞이하는 것은 개선문.
레마르크의 소설 제목이면서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머물렀던 곳이며 일차대전 후 파리에 입성하는 연합군을 맞은 문이기도 했던 개선문을 바라보며 그는 문득 "허망한 것 가운데 새겨놓은 영원"에 대하여 생각한다.
노트르담 사원은 예외없이 떠돌이 시인 그렝그와르, 15세의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 꼽추 카지모도, 육욕의 불과 신앙의 의무 사이에서 번민하는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의 영혼을 기억하게 한다.
"왕의 궁, 왕비와 시인의 감옥"이었던 콩시레르즈리, 그리고 루브르를 비추고 있는 달빛이 처연하다.


'무능이 죄가 되지 않는 나라' 인도(Ⅳ)와 광대한 침묵 속에 '찬란한 아침'을 선사한 아프리카(Ⅴ)를 지나온 작가의 예술기행의 끝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마침내 길을 끝뮳는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삶은 이별의 연습이다.
세상에서 마지막 보게 될 얼굴, 다시는 만날 수 없을 한 떨기 빛.
여행은 우리의 삶이 그리움인 것을 가르쳐준다.
영원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쉬 지나가는 것을 사랑하라고 여행자는 가르쳐준다.
생명은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리고 모든 것은 이별이기에…… 생명이라는 것을."

참다운 성을 만나려면 항상 눈을 감은 채 찾아가야 한다.
성은 떠도는 사람, 찾아헤매는 사람, 떠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집이다.
성은 한쪽 발을 공간 속에, 다른 한쪽 발을 시간 속에 딛고 서 있다.
허물어진 벽의 이쪽은 과거요 저쪽은 미래다.
너무나도 오래되어 완전히 소진되고 만 기억의 먼지, 그 먼지가 마침내 빛 밝은 허공 속으로 떠오를 때 그것을 우리는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내가 여기에 기록하고자 했던 것은, 내가 찾아갔었으나 눈으로 보지 못한 또하나의 성 이야기이다.
굳게 잠긴 방의 이야기, 허물어진 성벽의 이야기, 마음속에, 꿈속에 지은 성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것도 아직은 아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찾아가는 성, 저마다의 시간으로 짓는 성, 그곳에 이르기 전에 성 밖 마을에 잠시 들렀던 이야기를 조금 했을 뿐이다.
이제부터 떠나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본문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02년 04월 25일
- 쪽수, 무게, 크기 : 397쪽 | 752g | 158*223*30mm
- ISBN13 : 9788982815058
- ISBN10 : 898281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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