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븐 바투타 여행기 1
Description
책소개
마르코폴로 견문록에 비견하는, 14세기 아랍문명 답사기
이슬람세력이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던 14세기 초.
모로코 탕헤르(퇀자)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21세의 모험심 강한 젊은이가 메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길을 떠난다.
그로부터 30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장장 10만여 km를 종횡무진 체험하며 쏟아낸 박물지가 바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1,2이다.
철두철미 이슬람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본 14세기 이슬람 동방세계의 이모저모가 그의 촘촘한 눈썰미를 거쳐 맛깔스럽게 펼쳐져 있다.
이슬람의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은 물론, 각 지방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동식물과 농작물 등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문화인류학적 사료로서도 손색이 없다.
600여쪽에 달하는 인문지리학 보고서를 보며 각주 보는 즐거움이 생겼다면, 이 책의 단단함을 조금이라도 설명하는 것이 될런지.
모로코 탕헤르(퇀자)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21세의 모험심 강한 젊은이가 메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길을 떠난다.
그로부터 30년.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장장 10만여 km를 종횡무진 체험하며 쏟아낸 박물지가 바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 1,2이다.
철두철미 이슬람적 사고방식으로 바라본 14세기 이슬람 동방세계의 이모저모가 그의 촘촘한 눈썰미를 거쳐 맛깔스럽게 펼쳐져 있다.
이슬람의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은 물론, 각 지방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동식물과 농작물 등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문화인류학적 사료로서도 손색이 없다.
600여쪽에 달하는 인문지리학 보고서를 보며 각주 보는 즐거움이 생겼다면, 이 책의 단단함을 조금이라도 설명하는 것이 될런지.
목차
제1장 이집트
1.퇀자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2.알렉산드리아시
3.알렉산드리아에서 마할라툴 카비라까지
4.마할라툴 카비라에서 카이로까지
5.카이로시
6.카이로의 명사들
7.카이로에서 아쓰유트까지
8.아쓰유트에서 홍해 그리고 삼까지
제2장 샴
1.가자에서 꾸드쓰와 아쓰깔란까지
2.아쓰깔란에서 할라브까지
3.할라브시
4.할라브에서 자발라까지
5.라지끼야에서 다마스쿠스까지
6.다마스쿠스시와 우마야 사원
7.다마스쿠스시와 그 교외
8.다마스쿠스시의 종교기금과 이븐 바투타의 경탄
제3장 히자즈
1.다마스쿠스에서 성 메디나까지
2.성 메디나와 성소
3.성 메디나와 그 근교의 명사들
4.성 메디나에서 성 메카까지
5.성 메카와 성소
6.성 메카와 그 명사들
7.성 메카와 그 주민들의 관행
8.성 메카에서 성스러운 나자프까지
제4장 이라크와 페르시아
1.성스러운 나자프
2.나자프에서 바스라까지
3.바스라에서 아스파한까지
4.아스파한과 쉬라즈로의 출발
5.쉬라즈시
6.쉬라즈에서 바그다드까지
7.바그다드시
8.타브리즈와 마우쉴 및 마르딘으로의 여행
제5장 홍해 연안과 인도양 및 페르시아만
1.쿠파에서 짓다까지
2.쑤단해안
3.예멘
4.연안지방
5.좌파르시
6.오만
7.호르무즈에서 바레인까지
8.바레인에서 짓다 그리고 라지끼야까지
제6장 소아시아
1.라지끼야에서 아크리두르까지
2.꿀 히솨르에서 밀라쓰까지
3.꾸니야에서 아르줄 룸까지
4.비르키시와 쑬퇀
5.티라에서 바르가마까지
6.바르가마에서 카이누크까지
7.카이누크에서 부를루까지
8.까스톼무니야시와 솨누브시
제7장 우즈베크 지방과 동유럽
1.솨누브에서 까람까지
2.까람에서 우즈베크 쑬퇀의 거성까지
3.쑬퇀 무함마드 우즈베크와 그의 가족
4.북방땅과 줄마지방
5.우즈베크의 명절행사
6.핫즈 타르한시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7.콘스탄티노플시
8.콘스탄티노플에서 하와리즘까지
제8장 중앙아시아
1.하와리즘시
2.하와리즘에서 나흐샤브까지
3.쑬퇀 톼르마쉬린
4.싸마르깐드시
5.싸마르깐드에서 하라까지
6.하라시와 그 쑬퇀
7.잠에서 바쓰?까지
8.후라싼에서 인도까지
-인명 찾아보기
-지명 찾아보기
-사항 찾아보기
1.퇀자에서 알렉산드리아까지
2.알렉산드리아시
3.알렉산드리아에서 마할라툴 카비라까지
4.마할라툴 카비라에서 카이로까지
5.카이로시
6.카이로의 명사들
7.카이로에서 아쓰유트까지
8.아쓰유트에서 홍해 그리고 삼까지
제2장 샴
1.가자에서 꾸드쓰와 아쓰깔란까지
2.아쓰깔란에서 할라브까지
3.할라브시
4.할라브에서 자발라까지
5.라지끼야에서 다마스쿠스까지
6.다마스쿠스시와 우마야 사원
7.다마스쿠스시와 그 교외
8.다마스쿠스시의 종교기금과 이븐 바투타의 경탄
제3장 히자즈
1.다마스쿠스에서 성 메디나까지
2.성 메디나와 성소
3.성 메디나와 그 근교의 명사들
4.성 메디나에서 성 메카까지
5.성 메카와 성소
6.성 메카와 그 명사들
7.성 메카와 그 주민들의 관행
8.성 메카에서 성스러운 나자프까지
제4장 이라크와 페르시아
1.성스러운 나자프
2.나자프에서 바스라까지
3.바스라에서 아스파한까지
4.아스파한과 쉬라즈로의 출발
5.쉬라즈시
6.쉬라즈에서 바그다드까지
7.바그다드시
8.타브리즈와 마우쉴 및 마르딘으로의 여행
제5장 홍해 연안과 인도양 및 페르시아만
1.쿠파에서 짓다까지
2.쑤단해안
3.예멘
4.연안지방
5.좌파르시
6.오만
7.호르무즈에서 바레인까지
8.바레인에서 짓다 그리고 라지끼야까지
제6장 소아시아
1.라지끼야에서 아크리두르까지
2.꿀 히솨르에서 밀라쓰까지
3.꾸니야에서 아르줄 룸까지
4.비르키시와 쑬퇀
5.티라에서 바르가마까지
6.바르가마에서 카이누크까지
7.카이누크에서 부를루까지
8.까스톼무니야시와 솨누브시
제7장 우즈베크 지방과 동유럽
1.솨누브에서 까람까지
2.까람에서 우즈베크 쑬퇀의 거성까지
3.쑬퇀 무함마드 우즈베크와 그의 가족
4.북방땅과 줄마지방
5.우즈베크의 명절행사
6.핫즈 타르한시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7.콘스탄티노플시
8.콘스탄티노플에서 하와리즘까지
제8장 중앙아시아
1.하와리즘시
2.하와리즘에서 나흐샤브까지
3.쑬퇀 톼르마쉬린
4.싸마르깐드시
5.싸마르깐드에서 하라까지
6.하라시와 그 쑬퇀
7.잠에서 바쓰?까지
8.후라싼에서 인도까지
-인명 찾아보기
-지명 찾아보기
-사항 찾아보기
책 속으로
항구 쪽에서 파루스 등대로 가보았더니 등대의 한쪽 벽은 이미 무너져버렸다.
등대는 하늘 높이 솟은 방형건물로서 문은 지상에 나 있다.
문 앞에는 문높이의 건물 한 채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나무판을 가로질러놓아 문으로 통하게 하였다.
나무판만 치우면 속수무책이다.
문 안에는 등대지기가 앉을 자리가 하나 잇고 등대 내부에는 방이 꽤 많다.
등대 내 통로의 너비는 9쉬브르이고, 벽 두께는 10쉬브르이며, 등대 네 변의 너비는 각각 140쉬브르에 달한다.
등대는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시내까지의 거리는 1파르싸흐다.
등대는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인 길쭉한 육지에 세워져 있고, 바다는 성벽에 잇닿아 있다.
그래서 육지에 있는 이 등대로가려면 시내 쪽에서 가야 한다.
등대와 연결된 지대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시의 전속 묘역이다.
750년(1349)에 내가 마그리브로 돌아가는 길에 이 등대에 다시 한번 들렀더니, 등대는 이미 폐허가 되어 들어갈 수도, 문까지 오를 수도 없었다.
나쉬르왕이 그 맞은편에 같은 모양의 등대를 세우려고 기공을 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완공은 못했다.
이 도시의 기물괴상(奇物怪狀)의 하나가 시외에 있는 싸와리(al-sawari) 석주라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다.
이 석주는 대추야자수가 우거진 숲 한가운데 있는데, 나무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석주는 정교하게 다듬은 통돌로서 굉장히 큰 방형석 평대 위에 놓여 이다.
도대체 그러한 석주가 어떻게 그곳에 세워졌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고, 또 누가 세웠는지도 확인되 바가 없다.
(역주 53 : 싸와리 석주는 이집트 남부 아쓰완에서 채취한 자색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돌기둥으로서 높이 28.85m, 최대 직경이 2.628m, 무게가 약 550.492t이나 된다.
그리스어 명문이 새겨진 공적비로서 후기 로마시대에 쎄라피스(Serapis)신전 곁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역주 54 : 알렉산드리아의 싸와리 석주에 관해 이븐 주자이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몇몇 샤이흐는 나에게 이야기 하기를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한 궁수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이 석주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붙박인 듯 앉아 있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 꾀임수 내막을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무언가에 불안한 자가 아니면, 무엇인가 추구하는 자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렇게 괴상한 짓을 한 것 같다.
그럼, 어떤 묘수를 써서 그 높은 데로 올라갔을가? 그는 한 끝이 단단한 끈과 연결된 긴 실을 화살에 매어 석주 꼭대기 너머로 쏘아 맞은편에 떨어지도록 하였다.
실이 석주 꼭대기에 걸치자 그 실을 당겨서 실에 연결된 끈이 바로 석주 꼭대기 한가운데 놓이도록 하고는 그 한끝을 한쪽 땅에 동여매었다.
그런 후 다른 쪽에서 줄을 타고 올라가서 꼭대기에 딱 틀고 앉았다.
그리고 나서는 끈을 치워버려 누구도 따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깜짝수를 알 리가 없고, 모두들 신기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등대는 하늘 높이 솟은 방형건물로서 문은 지상에 나 있다.
문 앞에는 문높이의 건물 한 채가 있는데, 그 사이에는 나무판을 가로질러놓아 문으로 통하게 하였다.
나무판만 치우면 속수무책이다.
문 안에는 등대지기가 앉을 자리가 하나 잇고 등대 내부에는 방이 꽤 많다.
등대 내 통로의 너비는 9쉬브르이고, 벽 두께는 10쉬브르이며, 등대 네 변의 너비는 각각 140쉬브르에 달한다.
등대는 높은 언덕 위에 서 있는데, 시내까지의 거리는 1파르싸흐다.
등대는 삼면이 바다로 에워싸인 길쭉한 육지에 세워져 있고, 바다는 성벽에 잇닿아 있다.
그래서 육지에 있는 이 등대로가려면 시내 쪽에서 가야 한다.
등대와 연결된 지대가 바로 알렉산드리아시의 전속 묘역이다.
750년(1349)에 내가 마그리브로 돌아가는 길에 이 등대에 다시 한번 들렀더니, 등대는 이미 폐허가 되어 들어갈 수도, 문까지 오를 수도 없었다.
나쉬르왕이 그 맞은편에 같은 모양의 등대를 세우려고 기공을 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완공은 못했다.
이 도시의 기물괴상(奇物怪狀)의 하나가 시외에 있는 싸와리(al-sawari) 석주라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다.
이 석주는 대추야자수가 우거진 숲 한가운데 있는데, 나무들 사이에 우뚝 솟아 있다.
석주는 정교하게 다듬은 통돌로서 굉장히 큰 방형석 평대 위에 놓여 이다.
도대체 그러한 석주가 어떻게 그곳에 세워졌는지 도무지 알길이 없고, 또 누가 세웠는지도 확인되 바가 없다.
(역주 53 : 싸와리 석주는 이집트 남부 아쓰완에서 채취한 자색화강암을 다듬어 만든 돌기둥으로서 높이 28.85m, 최대 직경이 2.628m, 무게가 약 550.492t이나 된다.
그리스어 명문이 새겨진 공적비로서 후기 로마시대에 쎄라피스(Serapis)신전 곁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역주 54 : 알렉산드리아의 싸와리 석주에 관해 이븐 주자이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몇몇 샤이흐는 나에게 이야기 하기를 알렉산드리아에 사는 한 궁수가 활과 화살을 가지고 이 석주의 꼭대기에 올라가서 붙박인 듯 앉아 있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려고 몰려들었다.
모두들 의아해했지만 그 꾀임수 내막을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가 무언가에 불안한 자가 아니면, 무엇인가 추구하는 자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렇게 괴상한 짓을 한 것 같다.
그럼, 어떤 묘수를 써서 그 높은 데로 올라갔을가? 그는 한 끝이 단단한 끈과 연결된 긴 실을 화살에 매어 석주 꼭대기 너머로 쏘아 맞은편에 떨어지도록 하였다.
실이 석주 꼭대기에 걸치자 그 실을 당겨서 실에 연결된 끈이 바로 석주 꼭대기 한가운데 놓이도록 하고는 그 한끝을 한쪽 땅에 동여매었다.
그런 후 다른 쪽에서 줄을 타고 올라가서 꼭대기에 딱 틀고 앉았다.
그리고 나서는 끈을 치워버려 누구도 따라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깜짝수를 알 리가 없고, 모두들 신기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 pp 41~42
이븐 바투타가 미증유의 대탐험을 성공리에 단행할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은 세계에 관한 선배 아랍-무슬림들의 축적된 지식이다.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에 많은 아랍-무슬림 학자와 여행가, 상인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현지 견문기 등 귀중한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이븐 바투타가 미증유의 대탐험을 성공리에 단행할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은 세계에 관한 선배 아랍-무슬림들의 축적된 지식이다.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에 많은 아랍-무슬림 학자와 여행가, 상인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현지 견문기 등 귀중한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에 많은 아랍-무슬림 학자와 여행가, 상인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현지 견문기 등 귀중한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이븐 바투타가 미증유의 대탐험을 성공리에 단행할 수 있었던 또다른 요인은 세계에 관한 선배 아랍-무슬림들의 축적된 지식이다.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 문명의 전성기에 많은 아랍-무슬림 학자와 여행가, 상인들은 세계 방방곡곡을 누비면서 현지 견문기 등 귀중한 기록들을 많이 남겨놓았다.
--- p.7
이 도시에서 나는 꾸드쓰로 향발하였다.
도중에 유니쓰(Yunis)-그에게 평화를- 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거기에는 큰 건물과 사원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예수 - 그에게 평화를 - 의 탄생지인 베들레헴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야자수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 있고 건물도 많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최대한 숭앙하며 내객도 반가히 맞이한다.
(역주 13 : 유니쓰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니누위(Ninuwi)에 있을 때, 동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알라를 믿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기에 그들과 헤어져서는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그만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침 고래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는 고래의 뱃속에서 알라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헛됨을 자성하고 알라께 구원을 기구하였다.
그러자 고래는 그를 뱃속에서 토해내 해안가에 내려놓았다.
그가 자기 부족에게로 돌아왔을 때 부족민들은 이미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어 있었다.)
(역주 7 : 이슬람에서는 예수('Iisa)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마르얌의 아들('Iisa Ibn Maryam)'으로 보는데, 알라가 동정녀 마르얌에게 정령을 불어넣어 잉태 탄생케 하였다고 인정한다.
『꾸란』에서는 예수를 선지자(al-Nbi'), 사자(使者), 메시아(al-Masih), 알라의 노복('Abdu'l Lah) 등으로 칭한다.
특히 예수를 포함한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는 유태인들이 그 자신을 직접 십자가에 매달아죽인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을 대사(代死)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알라가 선지자인 그를 곁으로 불러올렸다고 믿는다.
이 도시에서 나는 꾸드쓰로 향발하였다.
도중에 유니쓰(Yunis)-그에게 평화를- 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거기에는 큰 건물과 사원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예수 - 그에게 평화를 - 의 탄생지인 베들레헴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야자수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 있고 건물도 많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최대한 숭앙하며 내객도 반가히 맞이한다.
(역주 13 : 유니쓰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니누위(Ninuwi)에 있을 때, 동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알라를 믿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기에 그들과 헤어져서는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그만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침 고래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는 고래의 뱃속에서 알라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헛됨을 자성하고 알라께 구원을 기구하였다.
그러자 고래는 그를 뱃속에서 토해내 해안가에 내려놓았다.
그가 자기 부족에게로 돌아왔을 때 부족민들은 이미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어 있었다.)
(역주 7 : 이슬람에서는 예수('Iisa)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마르얌의 아들('Iisa Ibn Maryam)'으로 보는데, 알라가 동정녀 마르얌에게 정령을 불어넣어 잉태 탄생케 하였다고 인정한다.
『꾸란』에서는 예수를 선지자(al-Nbi'), 사자(使者), 메시아(al-Masih), 알라의 노복('Abdu'l Lah) 등으로 칭한다.
특히 예수를 포함한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는 유태인들이 그 자신을 직접 십자가에 매달아죽인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을 대사(代死)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알라가 선지자인 그를 곁으로 불러올렸다고 믿는다.
도중에 유니쓰(Yunis)-그에게 평화를- 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거기에는 큰 건물과 사원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예수 - 그에게 평화를 - 의 탄생지인 베들레헴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야자수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 있고 건물도 많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최대한 숭앙하며 내객도 반가히 맞이한다.
(역주 13 : 유니쓰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니누위(Ninuwi)에 있을 때, 동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알라를 믿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기에 그들과 헤어져서는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그만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침 고래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는 고래의 뱃속에서 알라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헛됨을 자성하고 알라께 구원을 기구하였다.
그러자 고래는 그를 뱃속에서 토해내 해안가에 내려놓았다.
그가 자기 부족에게로 돌아왔을 때 부족민들은 이미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어 있었다.)
(역주 7 : 이슬람에서는 예수('Iisa)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마르얌의 아들('Iisa Ibn Maryam)'으로 보는데, 알라가 동정녀 마르얌에게 정령을 불어넣어 잉태 탄생케 하였다고 인정한다.
『꾸란』에서는 예수를 선지자(al-Nbi'), 사자(使者), 메시아(al-Masih), 알라의 노복('Abdu'l Lah) 등으로 칭한다.
특히 예수를 포함한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는 유태인들이 그 자신을 직접 십자가에 매달아죽인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을 대사(代死)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알라가 선지자인 그를 곁으로 불러올렸다고 믿는다.
이 도시에서 나는 꾸드쓰로 향발하였다.
도중에 유니쓰(Yunis)-그에게 평화를- 의 묘소를 참배했는데, 거기에는 큰 건물과 사원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예수 - 그에게 평화를 - 의 탄생지인 베들레헴도 방문하였다.
여기에는 야자수 그루터기가 아직 남아 있고 건물도 많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을 최대한 숭앙하며 내객도 반가히 맞이한다.
(역주 13 : 유니쓰에 관해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가 니누위(Ninuwi)에 있을 때, 동족들에게 우상숭배를 버리고 알라를 믿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기에 그들과 헤어져서는 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그만 바다에 뛰어들었다.
마침 고래가 그를 삼켜버렸다.
그는 고래의 뱃속에서 알라의 영감을 받아 자신의 헛됨을 자성하고 알라께 구원을 기구하였다.
그러자 고래는 그를 뱃속에서 토해내 해안가에 내려놓았다.
그가 자기 부족에게로 돌아왔을 때 부족민들은 이미 이슬람교의 신자가 되어 있었다.)
(역주 7 : 이슬람에서는 예수('Iisa)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마르얌의 아들('Iisa Ibn Maryam)'으로 보는데, 알라가 동정녀 마르얌에게 정령을 불어넣어 잉태 탄생케 하였다고 인정한다.
『꾸란』에서는 예수를 선지자(al-Nbi'), 사자(使者), 메시아(al-Masih), 알라의 노복('Abdu'l Lah) 등으로 칭한다.
특히 예수를 포함한 선지자들에 대한 믿음을 하나의 신조로 규정하고 있다.
예수의 죽음에 관해서는 유태인들이 그 자신을 직접 십자가에 매달아죽인 것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람을 대사(代死)시켰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알라가 선지자인 그를 곁으로 불러올렸다고 믿는다.
--- pp 101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 가운데는 법관이며 언어학자인 아마둣 딘 알 칸디가 있다.
그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난 터번(이마마)을 쓰고 있다.
나는 동서양 어디서도 그렇게 큰 터번을 본 적이 없다.
하루는 미흐라브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는데, 그가 쓴 터번이 어찌나 크던지 미흐라브를 거의 다 꽉 채우고 있었다.
(주석 60 : 터번은 아랍어로 '이마마(imamah)'라고 하는데, 아랍인들이 착용하는 일종의 머릿수건이다.
보통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감아서 땀을 닦는 역할을 한다.
감는 모양은 여러가지며, 흔히 종파나 가문, 왕조나 직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예컨대, 압바쓰조 때는 검정색, 파튀미야조 때는 흰색, 교조 무함마드의 후손들은 붉은 색 이마마를 착용했다.
이마마를 두른 사람을 '무암맘(mu'mmam)이라고 하는데, 근자에는 전통보수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역주 61 : 미흐라브(mihrab)란 이슬람 사원의 예배실에서 메카를 향한 벽에 뚫은 벽감(壁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치형이며 자재와 단장에 신경을 쓴다.
예배 때 이맘이 바로 그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한다.
초기에는 메카 방향표시로 나무판을 세워놓고 예배를 하다가 8세기초 메디나 아미르 오마르 이븐 압둘 아지즈가 성사(聖寺, 즉 교조 무함마드사) 내 예배실 벽을 뚫어 방향표시를 한 때부터 벽감 형식을 취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 가운데는 법관이며 언어학자인 아마둣 딘 알 칸디가 있다.
그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난 터번(이마마)을 쓰고 있다.
나는 동서양 어디서도 그렇게 큰 터번을 본 적이 없다.
하루는 미흐라브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는데, 그가 쓴 터번이 어찌나 크던지 미흐라브를 거의 다 꽉 채우고 있었다.
(주석 60 : 터번은 아랍어로 '이마마(imamah)'라고 하는데, 아랍인들이 착용하는 일종의 머릿수건이다.
보통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감아서 땀을 닦는 역할을 한다.
감는 모양은 여러가지며, 흔히 종파나 가문, 왕조나 직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예컨대, 압바쓰조 때는 검정색, 파튀미야조 때는 흰색, 교조 무함마드의 후손들은 붉은 색 이마마를 착용했다.
이마마를 두른 사람을 '무암맘(mu'mmam)이라고 하는데, 근자에는 전통보수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역주 61 : 미흐라브(mihrab)란 이슬람 사원의 예배실에서 메카를 향한 벽에 뚫은 벽감(壁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치형이며 자재와 단장에 신경을 쓴다.
예배 때 이맘이 바로 그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한다.
초기에는 메카 방향표시로 나무판을 세워놓고 예배를 하다가 8세기초 메디나 아미르 오마르 이븐 압둘 아지즈가 성사(聖寺, 즉 교조 무함마드사) 내 예배실 벽을 뚫어 방향표시를 한 때부터 벽감 형식을 취했다.)
그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난 터번(이마마)을 쓰고 있다.
나는 동서양 어디서도 그렇게 큰 터번을 본 적이 없다.
하루는 미흐라브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는데, 그가 쓴 터번이 어찌나 크던지 미흐라브를 거의 다 꽉 채우고 있었다.
(주석 60 : 터번은 아랍어로 '이마마(imamah)'라고 하는데, 아랍인들이 착용하는 일종의 머릿수건이다.
보통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감아서 땀을 닦는 역할을 한다.
감는 모양은 여러가지며, 흔히 종파나 가문, 왕조나 직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예컨대, 압바쓰조 때는 검정색, 파튀미야조 때는 흰색, 교조 무함마드의 후손들은 붉은 색 이마마를 착용했다.
이마마를 두른 사람을 '무암맘(mu'mmam)이라고 하는데, 근자에는 전통보수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역주 61 : 미흐라브(mihrab)란 이슬람 사원의 예배실에서 메카를 향한 벽에 뚫은 벽감(壁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치형이며 자재와 단장에 신경을 쓴다.
예배 때 이맘이 바로 그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한다.
초기에는 메카 방향표시로 나무판을 세워놓고 예배를 하다가 8세기초 메디나 아미르 오마르 이븐 압둘 아지즈가 성사(聖寺, 즉 교조 무함마드사) 내 예배실 벽을 뚫어 방향표시를 한 때부터 벽감 형식을 취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 가운데는 법관이며 언어학자인 아마둣 딘 알 칸디가 있다.
그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유별난 터번(이마마)을 쓰고 있다.
나는 동서양 어디서도 그렇게 큰 터번을 본 적이 없다.
하루는 미흐라브 앞에 앉아 있는 그를 보았는데, 그가 쓴 터번이 어찌나 크던지 미흐라브를 거의 다 꽉 채우고 있었다.
(주석 60 : 터번은 아랍어로 '이마마(imamah)'라고 하는데, 아랍인들이 착용하는 일종의 머릿수건이다.
보통은 모자를 쓰고 그 위에 감아서 땀을 닦는 역할을 한다.
감는 모양은 여러가지며, 흔히 종파나 가문, 왕조나 직능에 따라 색깔이 달라진다.
예컨대, 압바쓰조 때는 검정색, 파튀미야조 때는 흰색, 교조 무함마드의 후손들은 붉은 색 이마마를 착용했다.
이마마를 두른 사람을 '무암맘(mu'mmam)이라고 하는데, 근자에는 전통보수의 상징처럼 되고 있다.)
(역주 61 : 미흐라브(mihrab)란 이슬람 사원의 예배실에서 메카를 향한 벽에 뚫은 벽감(壁龕)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치형이며 자재와 단장에 신경을 쓴다.
예배 때 이맘이 바로 그 앞에 서서 예배를 인도한다.
초기에는 메카 방향표시로 나무판을 세워놓고 예배를 하다가 8세기초 메디나 아미르 오마르 이븐 압둘 아지즈가 성사(聖寺, 즉 교조 무함마드사) 내 예배실 벽을 뚫어 방향표시를 한 때부터 벽감 형식을 취했다.)
--- pp 46
다마스쿠스의 종교기금은 그 종류와 지출이 너무 번다하여 도대체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는 세민(細民)들이 걸어서 성지순례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기금,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담할 수 없는 신부의 출가비 보조기금, 포로 속금(贖金) 보조기금, 여행자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의 의식비와 여비의 보조기금, 심지어 양켠에 인도가 있고 그 사이를 거마(車馬)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시내의 좁은 길 보수기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자선기금이 있다.
어느날 나는 다마스쿠스의 한 골목에서 한 머슴애를 만났다.
그는 들고 있던 솨한(sahan)이라고 부르는 자기접시를 그만 손에서 떨구어 깨뜨려버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어린이에게 "깨진 조각을 주워모아서 그릇 보조기금 관리인에게 가지고 가라"라고 타일렀다.
그리곤 그애와 함께 관리인에게 가서 접시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별 군말 없이 그만한 접시를 살 수 있는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참,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선행이 아닐 수 없다.
머슴애가 접시르 깨뜨렸으니 주인은 필히 그애를 때리거나 호되게 꾸짖을 것은 뻔하다.
그러면 애는 또 애대로 상심하거나 변심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보조 기금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하나의 양약이다.
다마스쿠스의 종교기금은 그 종류와 지출이 너무 번다하여 도대체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는 세민(細民)들이 걸어서 성지순례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기금,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담할 수 없는 신부의 출가비 보조기금, 포로 속금(贖金) 보조기금, 여행자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의 의식비와 여비의 보조기금, 심지어 양켠에 인도가 있고 그 사이를 거마(車馬)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시내의 좁은 길 보수기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자선기금이 있다.
어느날 나는 다마스쿠스의 한 골목에서 한 머슴애를 만났다.
그는 들고 있던 솨한(sahan)이라고 부르는 자기접시를 그만 손에서 떨구어 깨뜨려버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어린이에게 "깨진 조각을 주워모아서 그릇 보조기금 관리인에게 가지고 가라"라고 타일렀다.
그리곤 그애와 함께 관리인에게 가서 접시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별 군말 없이 그만한 접시를 살 수 있는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참,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선행이 아닐 수 없다.
머슴애가 접시르 깨뜨렸으니 주인은 필히 그애를 때리거나 호되게 꾸짖을 것은 뻔하다.
그러면 애는 또 애대로 상심하거나 변심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보조 기금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하나의 양약이다.
그중에는 세민(細民)들이 걸어서 성지순례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기금,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담할 수 없는 신부의 출가비 보조기금, 포로 속금(贖金) 보조기금, 여행자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의 의식비와 여비의 보조기금, 심지어 양켠에 인도가 있고 그 사이를 거마(車馬)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시내의 좁은 길 보수기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자선기금이 있다.
어느날 나는 다마스쿠스의 한 골목에서 한 머슴애를 만났다.
그는 들고 있던 솨한(sahan)이라고 부르는 자기접시를 그만 손에서 떨구어 깨뜨려버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어린이에게 "깨진 조각을 주워모아서 그릇 보조기금 관리인에게 가지고 가라"라고 타일렀다.
그리곤 그애와 함께 관리인에게 가서 접시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별 군말 없이 그만한 접시를 살 수 있는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참,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선행이 아닐 수 없다.
머슴애가 접시르 깨뜨렸으니 주인은 필히 그애를 때리거나 호되게 꾸짖을 것은 뻔하다.
그러면 애는 또 애대로 상심하거나 변심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보조 기금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하나의 양약이다.
다마스쿠스의 종교기금은 그 종류와 지출이 너무 번다하여 도대체 얼마인지 헤아릴 수가 없다.
그중에는 세민(細民)들이 걸어서 성지순례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기금,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담할 수 없는 신부의 출가비 보조기금, 포로 속금(贖金) 보조기금, 여행자들이 고향에 돌아갈 때까지의 의식비와 여비의 보조기금, 심지어 양켠에 인도가 있고 그 사이를 거마(車馬)가 지나가도록 되어 있는 시내의 좁은 길 보수기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외에도 여러가지 자선기금이 있다.
어느날 나는 다마스쿠스의 한 골목에서 한 머슴애를 만났다.
그는 들고 있던 솨한(sahan)이라고 부르는 자기접시를 그만 손에서 떨구어 깨뜨려버렸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이 어린이에게 "깨진 조각을 주워모아서 그릇 보조기금 관리인에게 가지고 가라"라고 타일렀다.
그리곤 그애와 함께 관리인에게 가서 접시 조각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별 군말 없이 그만한 접시를 살 수 있는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참,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선행이 아닐 수 없다.
머슴애가 접시르 깨뜨렸으니 주인은 필히 그애를 때리거나 호되게 꾸짖을 것은 뻔하다.
그러면 애는 또 애대로 상심하거나 변심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러한 보조 기금은 아픈 마음을 달래주는 하나의 양약이다.
--- pp 160
출판사 리뷰
철두철미하게 이슬람적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한 여행문학의 영원한 고전
이븐 바투타가 세계를 탐험하던 14세기 전반은 1258년 압바쓰조 이슬람 통일제국의 멸망 후 세계 각지에서 지역중심세력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시기이다.
3대륙을 아우르는 이슬람세계는 여전히 세계 지배세력의 하나였으나 동쪽의 일한국, 서쪽의 맘루크조, 이베리아반도의 나스르조를 중심으로 이전의 통일 이슬람세계는 다극화하고 있었다.
각지에 파고든 이슬람문명은 토착화되는 한편으로 지역적 특성이 가미되어 독특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추세는 이븐 바투타의 탐구욕과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켰고,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문명 전성기에 세계로 뻗어나간 무슬림 학자와 상인, 여행가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그의 여행의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의 대장정은 당대 이슬람 마리니야조의 쑬퇀(군주) 아부 아난에 의해 진가를 인정받고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븐 바투타는 27년간의 아시아와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창 아프리카 내륙을 여행하던 중 아부 아난의 특명을 받고 귀향해 여행기 집필을 시작한다.
이후 아부 아난의 지시로 이 여행기 원본을 요약하고 다듬은 당대의 대문장가 이븐 주자이 알 칼비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여행기의 저본(底本)이다.
여행기 앞뒤에 붙은 이븐 주자이의 서문과 발문은 아랍문장 특유의 화려한 만연체 수사법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흔히 접하기 힘든 아랍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철두철미 이슬람적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문물을 접한 바투타의 개성과 함께 사실적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서술은 이 여행기를 주저없이 여행문학의 고전으로 꼽게 한다.
3대륙을 아우르는 이슬람세계는 여전히 세계 지배세력의 하나였으나 동쪽의 일한국, 서쪽의 맘루크조, 이베리아반도의 나스르조를 중심으로 이전의 통일 이슬람세계는 다극화하고 있었다.
각지에 파고든 이슬람문명은 토착화되는 한편으로 지역적 특성이 가미되어 독특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변화추세는 이븐 바투타의 탐구욕과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켰고, 10세기를 전후한 이슬람문명 전성기에 세계로 뻗어나간 무슬림 학자와 상인, 여행가들의 축적된 경험과 지식은 그의 여행의 충실한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그의 대장정은 당대 이슬람 마리니야조의 쑬퇀(군주) 아부 아난에 의해 진가를 인정받고 기록으로 남게 된다.
이븐 바투타는 27년간의 아시아와 유럽 여행을 마치고 한창 아프리카 내륙을 여행하던 중 아부 아난의 특명을 받고 귀향해 여행기 집필을 시작한다.
이후 아부 아난의 지시로 이 여행기 원본을 요약하고 다듬은 당대의 대문장가 이븐 주자이 알 칼비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것이 지금 우리가 보는 이 여행기의 저본(底本)이다.
여행기 앞뒤에 붙은 이븐 주자이의 서문과 발문은 아랍문장 특유의 화려한 만연체 수사법을 유감없이 보여줌으로써 흔히 접하기 힘든 아랍문학의 진수를 맛보게 한다.
철두철미 이슬람적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문물을 접한 바투타의 개성과 함께 사실적 내용과 생동감 넘치는 서술은 이 여행기를 주저없이 여행문학의 고전으로 꼽게 한다.
14세기 동서양의 낯설고 진기한 생활상을 풍부하게 담고 있는 인문지리학의 보고(寶庫)
여기 담긴 내용은 문자 그대로 삼라만상이다.
이슬람의 성소와 명소, 각계 명사들,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이 상세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다.
각지의 의식주 관습, 고유의 동식물과 농작물, 매매와 상거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등이 정치·경제·사회생활 전반과 함께 서술되어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더없는 문화인류학적 사료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알렉산드리아의 파루스 등대를 접할 수 있고 잔혹하리만큼 엄격한 쑬퇀들의 통치행태를 통해 낯설고 진기한 이슬람문명의 일면을 대한다.
또한 황당하리만큼 희한한 각 지방의 고사와 전설, 기적과 영험(靈驗)의 이야기들은 여행기의 흥미를 더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과 사고방식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다양한 생활상을 동서남북으로 두루 엮어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 가치에서도 이 여행기는 더없이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다.
중세 인문지리학 자료의 보고(寶庫)로서 동·서양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담은 저작은 아직까지 없으며, 특히 아프리카 내륙에 관한 여행기록과 인도 투글루끄조 관련 기술은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여기 담긴 내용은 문자 그대로 삼라만상이다.
이슬람의 성소와 명소, 각계 명사들,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이 상세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다.
각지의 의식주 관습, 고유의 동식물과 농작물, 매매와 상거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등이 정치·경제·사회생활 전반과 함께 서술되어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더없는 문화인류학적 사료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알렉산드리아의 파루스 등대를 접할 수 있고 잔혹하리만큼 엄격한 쑬퇀들의 통치행태를 통해 낯설고 진기한 이슬람문명의 일면을 대한다.
또한 황당하리만큼 희한한 각 지방의 고사와 전설, 기적과 영험(靈驗)의 이야기들은 여행기의 흥미를 더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과 사고방식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다양한 생활상을 동서남북으로 두루 엮어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 가치에서도 이 여행기는 더없이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다.
중세 인문지리학 자료의 보고(寶庫)로서 동·서양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담은 저작은 아직까지 없으며, 특히 아프리카 내륙에 관한 여행기록과 인도 투글루끄조 관련 기술은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이슬람의 성소와 명소, 각계 명사들,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이 상세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다.
각지의 의식주 관습, 고유의 동식물과 농작물, 매매와 상거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등이 정치·경제·사회생활 전반과 함께 서술되어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더없는 문화인류학적 사료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알렉산드리아의 파루스 등대를 접할 수 있고 잔혹하리만큼 엄격한 쑬퇀들의 통치행태를 통해 낯설고 진기한 이슬람문명의 일면을 대한다.
또한 황당하리만큼 희한한 각 지방의 고사와 전설, 기적과 영험(靈驗)의 이야기들은 여행기의 흥미를 더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과 사고방식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다양한 생활상을 동서남북으로 두루 엮어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 가치에서도 이 여행기는 더없이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다.
중세 인문지리학 자료의 보고(寶庫)로서 동·서양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담은 저작은 아직까지 없으며, 특히 아프리카 내륙에 관한 여행기록과 인도 투글루끄조 관련 기술은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여기 담긴 내용은 문자 그대로 삼라만상이다.
이슬람의 성소와 명소, 각계 명사들, 종교의식과 행사, 세계 유명도시의 사원 건축양식과 운영방식, 무슬림과 이교도의 관계 등 이슬람문명 전반이 상세히 담겨 있는 것은 물론이다.
각지의 의식주 관습, 고유의 동식물과 농작물, 매매와 상거래, 관혼상제 풍습, 민간요법 등이 정치·경제·사회생활 전반과 함께 서술되어 당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더없는 문화인류학적 사료이기도 하다.
여기서 우리는 말로만 듣던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 알렉산드리아의 파루스 등대를 접할 수 있고 잔혹하리만큼 엄격한 쑬퇀들의 통치행태를 통해 낯설고 진기한 이슬람문명의 일면을 대한다.
또한 황당하리만큼 희한한 각 지방의 고사와 전설, 기적과 영험(靈驗)의 이야기들은 여행기의 흥미를 더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종교관과 사고방식을 짐작케 한다.
이렇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다양한 생활상을 동서남북으로 두루 엮어냈다는 점에서뿐 아니라, 학문적 가치에서도 이 여행기는 더없이 귀중한 인류의 유산이다.
중세 인문지리학 자료의 보고(寶庫)로서 동·서양의 자연지리적 환경을 포괄적으로 담은 저작은 아직까지 없으며, 특히 아프리카 내륙에 관한 여행기록과 인도 투글루끄조 관련 기술은 역사상 최초의 것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01년 09월 30일
- 쪽수, 무게, 크기 : 596쪽 | 968g | 153*224*35mm
- ISBN13 : 9788936470661
- ISBN10 : 8936470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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