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신 닻 리더십
Description
책소개
“닻(Anchor)은 바다에서 먼저 내려 배를 해저에 고정한다.
리더 역시 위기의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닻과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 닻 리더십』이라고 하니, 독자들은 ‘닻(Anchor)’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통상 선박에서 운용하는 닻은 정박(碇泊)이 필요한 해역에서 배를 해저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크고 무거운 기구물이다.
배의 선수(船首, 이물) 또는 선미(船尾, 고물)에서 조출된 닻은 해저(sea beds)에 파고들어 배를 빨리 고정함으로써 바람과 조수, 해류에 의한 배의 표류(漂流)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앵커는 “Seamanship의 표상(表象)”으로, 바다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도구이지만, 종종 어떤 일에 맨 먼저 뛰어드는 리더를 상징한다(Leader leads like an Anchor).
또 ‘방송사의 뉴스 진행자’를 ‘앵커’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정보를 가장 먼저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뽀빠이(Popeye) 팔뚝의 앵커 문양[?]은 남성미 넘치는 바다 사나이, 마도로스들의 문신(紋身, Tatoo)으로 크게 애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CI 도안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리더 역시 위기의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닻과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 닻 리더십』이라고 하니, 독자들은 ‘닻(Anchor)’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통상 선박에서 운용하는 닻은 정박(碇泊)이 필요한 해역에서 배를 해저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크고 무거운 기구물이다.
배의 선수(船首, 이물) 또는 선미(船尾, 고물)에서 조출된 닻은 해저(sea beds)에 파고들어 배를 빨리 고정함으로써 바람과 조수, 해류에 의한 배의 표류(漂流)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앵커는 “Seamanship의 표상(表象)”으로, 바다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도구이지만, 종종 어떤 일에 맨 먼저 뛰어드는 리더를 상징한다(Leader leads like an Anchor).
또 ‘방송사의 뉴스 진행자’를 ‘앵커’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정보를 가장 먼저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뽀빠이(Popeye) 팔뚝의 앵커 문양[?]은 남성미 넘치는 바다 사나이, 마도로스들의 문신(紋身, Tatoo)으로 크게 애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CI 도안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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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목차
프롤로그 심연에 잠든 닻을 끌어올리자 10
감수의 글 박재훈(충무무공훈장 수상자, 초대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장) 20
환영사 김진형(전 해군 소장, 피지 등 남태평양 6개국 특명전권대사) 24
격려사 1 손 욱(세종국가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농심 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28
격려사 2 최병순(전 국방대 리더십 전공교수, 전 동국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31
추천사 1 박현모(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34
추천사 2 김오현(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전 국방대 및 성신여대 교수) 36
추천사 3 류효상(전 해군 소장, 전 해군 2함대사령관, 국방부 첨단전력기획관) 40
제1부 임진왜란
[칼럼 01] 이순신이 지킨 ‘당초의 약속’ 46
[칼럼 02]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경상도 출전 준비 53
[칼럼 03] 이순신의 첫 싸움 ‘옥포해전’ 승리 비결 65
[칼럼 04] 제2차 출전에서 적의 흉탄에 맞은 이순신 76
[칼럼 05] 한산대첩의 비밀 (1) 88
[칼럼 06] 한산대첩의 비밀 (2) 96
[칼럼 07] 적들이 기겁한 안골포해전 104
[칼럼 08] 심리전의 승리, 부산포해전 113
[칼럼 09] 계사년 이순신의 선택, 한산도 이진 123
[칼럼 10]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1) 132
[칼럼 11]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2) 142
[칼럼 12] 류성룡과 이원익의 무한신뢰 149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1) : 왜란 이전의 이순신 157
▶ 별지 1.
〈전수기의〉를 통해 본 이순신의 전쟁술 183
▶ 별지 2.
참고문헌 215
제2부 정유재란
[칼럼 13] 정유년 이순신의 파직과 투옥, 백의종군 219
[칼럼 14] 칠천량해전의 복몰과 이순신의 수습 227
[칼럼 15] 이순신이 전선 12척을 말한 진짜 이유 235
[칼럼 16] 절망의 순간, 조선 수군을 일으켜 세운 이순신의 말 242
[칼럼 17] 전의를 상실한 배설의 탈영 249
[칼럼 18]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의 몰입 258
[칼럼 19]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1) 265
[칼럼 20]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2) 277
[칼럼 21] 사랑하는 아들 면(?)의 죽음 289
[칼럼 22] 명량해전 이후 역경을 뚫고 수군 재건 295
[칼럼 23] ‘독송사’를 일기에 적은 이순신의 심경 303
[칼럼 24] 무술년 새해 첫 업무, 판옥선 진수식 309
[칼럼 25] 무안현감을 곤장 친 이순신 317
[칼럼 26] 8개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은 이순신 325
[칼럼 27] 진린이 본 동방의 대장별 335
[칼럼 28] 결사전,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죽음 340
[칼럼 29] 이순신의 후계자 352
[칼럼 30] 이순신 닻 리더십 357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2) : 이순신의 예하 장수 391
▶ 별지 3.
이순신의 해전에 대한 현대적 해석 404
에필로그 - “당신의 바다에 가장 먼저 닻을 던져라” 418
서평 423
참고자료 - 소서(素書) 434
참고문헌 457
미주 462
감수의 글 박재훈(충무무공훈장 수상자, 초대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장) 20
환영사 김진형(전 해군 소장, 피지 등 남태평양 6개국 특명전권대사) 24
격려사 1 손 욱(세종국가경영연구원 이사장, 전 농심 회장,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28
격려사 2 최병순(전 국방대 리더십 전공교수, 전 동국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31
추천사 1 박현모(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 34
추천사 2 김오현(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 전 국방대 및 성신여대 교수) 36
추천사 3 류효상(전 해군 소장, 전 해군 2함대사령관, 국방부 첨단전력기획관) 40
제1부 임진왜란
[칼럼 01] 이순신이 지킨 ‘당초의 약속’ 46
[칼럼 02]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경상도 출전 준비 53
[칼럼 03] 이순신의 첫 싸움 ‘옥포해전’ 승리 비결 65
[칼럼 04] 제2차 출전에서 적의 흉탄에 맞은 이순신 76
[칼럼 05] 한산대첩의 비밀 (1) 88
[칼럼 06] 한산대첩의 비밀 (2) 96
[칼럼 07] 적들이 기겁한 안골포해전 104
[칼럼 08] 심리전의 승리, 부산포해전 113
[칼럼 09] 계사년 이순신의 선택, 한산도 이진 123
[칼럼 10]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1) 132
[칼럼 11] 〈난중일기〉로 본 이순신의 진중생활 (2) 142
[칼럼 12] 류성룡과 이원익의 무한신뢰 149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1) : 왜란 이전의 이순신 157
▶ 별지 1.
〈전수기의〉를 통해 본 이순신의 전쟁술 183
▶ 별지 2.
참고문헌 215
제2부 정유재란
[칼럼 13] 정유년 이순신의 파직과 투옥, 백의종군 219
[칼럼 14] 칠천량해전의 복몰과 이순신의 수습 227
[칼럼 15] 이순신이 전선 12척을 말한 진짜 이유 235
[칼럼 16] 절망의 순간, 조선 수군을 일으켜 세운 이순신의 말 242
[칼럼 17] 전의를 상실한 배설의 탈영 249
[칼럼 18]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이순신의 몰입 258
[칼럼 19]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1) 265
[칼럼 20] 명량해전, 그 숨 가쁜 순간들 (2) 277
[칼럼 21] 사랑하는 아들 면(?)의 죽음 289
[칼럼 22] 명량해전 이후 역경을 뚫고 수군 재건 295
[칼럼 23] ‘독송사’를 일기에 적은 이순신의 심경 303
[칼럼 24] 무술년 새해 첫 업무, 판옥선 진수식 309
[칼럼 25] 무안현감을 곤장 친 이순신 317
[칼럼 26] 8개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은 이순신 325
[칼럼 27] 진린이 본 동방의 대장별 335
[칼럼 28] 결사전, 노량해전과 이순신의 죽음 340
[칼럼 29] 이순신의 후계자 352
[칼럼 30] 이순신 닻 리더십 357
▶ 이순신 리더십 에피소드(2) : 이순신의 예하 장수 391
▶ 별지 3.
이순신의 해전에 대한 현대적 해석 404
에필로그 - “당신의 바다에 가장 먼저 닻을 던져라” 418
서평 423
참고자료 - 소서(素書) 434
참고문헌 457
미주 462
책 속으로
이순신 유사를 쓰는 좌의정 이항복의 붓끝이 떨린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은 임진왜란이 끝난 2년 후선조 33년(1600년)에 삼남 지방을 돌며 이순신의 행적을 모아 ‘고 통제사 이공 유사’를 작성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이 유사에는 당시 임금 선조에게도 치명적인 실책일 수밖에 없는 이순신의 파직과 백의종군에 대한 부분도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파직(罷職)은 조정의 결정이었으며, 다만 선조가 이순 신을 용서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케 하고, 이순신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盡力)하게 했다고 이항복은 돌려 말했다.
리더인 임금의 잘못이 아니라 팔로워인 우리들(조정)의 잘못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현직 좌의정 이항복의 깊은 고민이 숨겨져 있다.
정유년(1597년) 정월에는 적추 가등청정(加?淸正, 가토 기요마사)이 재차 바다를 건너왔는데, 조정에서 공(이순신)이 그를 맞아 공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 하고, 원균을 대신 상장(上將, 여기서는 삼도수군통제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공이 서울로 압송되는 길에 남녀노유(男女老幼)가 모두 길을 가로막고 부르짖어 통곡하였다.
공이 조사를 받음에 미쳐서는 상(선조)이 공을 용서하고 백의(白 衣)로 강등시켜 도원수(都元帥, 권율)의 진중(陣中)으로 보내서 공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의 투옥과 정탁의 신구차
정유년(1597년) 2월 6일, 선조는 왜 이순신을 투옥하라고 명령하였는가? 단지 부산 왜영 방화사건에 대한 그릇된 보고와 이순신이 요시라(要時羅)의 간계(奸計)를 믿지 않고,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또 정보가 불충분한 조정의 지시를 어기게 된 사건이 과연 전쟁 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무장(武將)을 교체할 정도로 큰 죄였던가? 아니면 이순신을 모함((謀陷)하고 중상(中傷)하던 자들의 이간질에 선조가 솔깃하여 넘어간 것인가? 역사를 되돌리고 싶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어찌 옛말은 틀리지 않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힘써 애쓰고 따라도 감히 노고를 말하지 못하노라.
죄도 없고 허물도 없건만 참소하는 입은 떠들썩하구나” 67) 이런 때가 되면 위로는 참으로 추하고 그 아래 백성들은 참으로 슬픈 일이 된다.
이순신은 홀로 바른 도리를 지키면서 조정의 굽어진 판단에도 굴하지 않고 제 위치에서 힘써 왕사(王事, 나랏일)를 제 일처럼 고수하며 적들의 흉계를 대적하였는데, 도리어 조정에서는 증오와 모독과 참소가 생겨났다니, 한양으로 끌려가는 이순신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이순신은 정유년(1597년) 2월 26일에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3월 4일 한양의 옥에 갇혔다.
그리고 이어서 위관(委官)에 의한 한 차례의 고문(拷問)을 당했다.
당시 이순신의 죄상은 선조 임금이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만큼 무거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순신의 목숨은 경각(頃刻, 극히 짧은 시간)에 달려있었다.
특히 윤근수와 김응남을 중심으로 한 류성룡 반대파들은 이순신 죽이기에 열심이었고, 현풍현감 박성은 이순신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상소(上疏)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순신의 구명운동(救命運動)을 벌인 인물들도 많았다.
체찰사 이원익을 비롯한 많은 동인 계열의 조정 신료들과 정경달 등 한때 이순신의 막하 인물들까지 이순신의 구명(救命)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이순신의 천거자이자 후견인인 류성룡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나설 경우, 동인 계열의 자신 추종 세력들과 이순신이 함께 큰 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 1556~1618)은 임진왜란이 끝난 2년 후선조 33년(1600년)에 삼남 지방을 돌며 이순신의 행적을 모아 ‘고 통제사 이공 유사’를 작성하여 선조에게 올렸다.
이 유사에는 당시 임금 선조에게도 치명적인 실책일 수밖에 없는 이순신의 파직과 백의종군에 대한 부분도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순신의 파직(罷職)은 조정의 결정이었으며, 다만 선조가 이순 신을 용서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케 하고, 이순신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盡力)하게 했다고 이항복은 돌려 말했다.
리더인 임금의 잘못이 아니라 팔로워인 우리들(조정)의 잘못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현직 좌의정 이항복의 깊은 고민이 숨겨져 있다.
정유년(1597년) 정월에는 적추 가등청정(加?淸正, 가토 기요마사)이 재차 바다를 건너왔는데, 조정에서 공(이순신)이 그를 맞아 공격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게 하고, 원균을 대신 상장(上將, 여기서는 삼도수군통제사)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공이 서울로 압송되는 길에 남녀노유(男女老幼)가 모두 길을 가로막고 부르짖어 통곡하였다.
공이 조사를 받음에 미쳐서는 상(선조)이 공을 용서하고 백의(白 衣)로 강등시켜 도원수(都元帥, 권율)의 진중(陣中)으로 보내서 공이 죄를 반성하고 스스로 진력하도록 하였다.
이순신의 투옥과 정탁의 신구차
정유년(1597년) 2월 6일, 선조는 왜 이순신을 투옥하라고 명령하였는가? 단지 부산 왜영 방화사건에 대한 그릇된 보고와 이순신이 요시라(要時羅)의 간계(奸計)를 믿지 않고,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인가? 또 정보가 불충분한 조정의 지시를 어기게 된 사건이 과연 전쟁 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무장(武將)을 교체할 정도로 큰 죄였던가? 아니면 이순신을 모함((謀陷)하고 중상(中傷)하던 자들의 이간질에 선조가 솔깃하여 넘어간 것인가? 역사를 되돌리고 싶은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어찌 옛말은 틀리지 않는가! 〈시경〉에 이르기를, “힘써 애쓰고 따라도 감히 노고를 말하지 못하노라.
죄도 없고 허물도 없건만 참소하는 입은 떠들썩하구나” 67) 이런 때가 되면 위로는 참으로 추하고 그 아래 백성들은 참으로 슬픈 일이 된다.
이순신은 홀로 바른 도리를 지키면서 조정의 굽어진 판단에도 굴하지 않고 제 위치에서 힘써 왕사(王事, 나랏일)를 제 일처럼 고수하며 적들의 흉계를 대적하였는데, 도리어 조정에서는 증오와 모독과 참소가 생겨났다니, 한양으로 끌려가는 이순신의 한탄이 흘러나온다.
이순신은 정유년(1597년) 2월 26일에 한산도에서 압송되어 3월 4일 한양의 옥에 갇혔다.
그리고 이어서 위관(委官)에 의한 한 차례의 고문(拷問)을 당했다.
당시 이순신의 죄상은 선조 임금이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할 만큼 무거운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이순신의 목숨은 경각(頃刻, 극히 짧은 시간)에 달려있었다.
특히 윤근수와 김응남을 중심으로 한 류성룡 반대파들은 이순신 죽이기에 열심이었고, 현풍현감 박성은 이순신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상소(上疏)를 올리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이순신의 구명운동(救命運動)을 벌인 인물들도 많았다.
체찰사 이원익을 비롯한 많은 동인 계열의 조정 신료들과 정경달 등 한때 이순신의 막하 인물들까지 이순신의 구명(救命)에 발 벗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이순신의 천거자이자 후견인인 류성룡은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나설 경우, 동인 계열의 자신 추종 세력들과 이순신이 함께 큰 해를 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심연에 잠든 닻을 끌어올리자
[갑오일기] 1594년 5월 9일, 비가 계속 내렸다.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혼미하기가 꿈에 취한 듯하니,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았다.
[갑오일기] 1594년 5월 10일, 비가 계속 내렸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니, 배들이 온 바다를 가득히 채웠다.
적이 비록 침범해 온다 해도 능히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늦게 전라우수영 우후 이정충과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立夫 李純 信, 동명이인)이 와서 둘이서 수박희(手搏戱, 맨손으로 승부를 겨루는 무예)를 겨루었다.
도원수 권율 장군의 군관 변응각도 함께 점심을 먹었다.
보성군수 안흥국이 저물녘에 왔다.
비가 종일 걷히지 않았다.
큰아들 회(?)가 바다에 나간 것이 걱정이다.
소비포 권관 이영남이 약을 보내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필자가 뽑은 가장 극명한 감정의 차이를 보이는 “극한대비”, 두 이어진 날짜의 일기이다.
비가 계속 내린 첫날은 온갖 감정이 일어나서 주체할 수 없는 혼란함을 보여주다가 둘째 날도 비가 계속 내리지만, 어느새 이순신은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함선이 가득한 바다를 내다보며 전투에서의 자신감이 뿜뿜 일어나면서, 장수들의 수박희를 보고, 상급부대 참모와 함께 식사하는 등 하루의 일과들이 부담 없이 지나가고, 바다에 나간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이순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짧은 간극(間隙) 속에는 한 인간이자 장수로서의 이순신,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두려 움과 결심을 동시에 품은 리더 이순신이 있다.
갑오년(1594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제독도 우리와 같은 감정의 기복이 있는 한 사람이었고, 바다에 빼곡한 함선을 보며 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전투력이 생기는 참 군인이며, 바다에 나간 자식을 걱정하는 한 아버지였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여느 전장의 평범한 리더의 모습이다.
그래서 ‘성웅’이라는 호칭 뒤에 가려진 한 인간 이순신을 마주한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결심하는 리더의 실루엣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순신의 저 평범한 실루엣 속에서 모든 해전에서 승리한 그의 비범함을 찾아내야 한다.
과연 이순신의 리더십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인가? 필자는 해군의 시각으로 이를 밝혀보고자 한다.
필자는 해군 복무 중에 2006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가 새로이 만들어질 당시에 창설 멤버로서, 해군본부에서 선발되어 3급 함장 보직을 뒤로 미루고 전방함대에서 진해로 내려갔다.
간첩선을 때려잡은 실전 영웅 박재훈 센터장님과 센터 내부의 최두환, 제장명 교수님, 외부(해사교)의 이민웅 교수님의 충무공 말씀을 새겨듣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일생을 통해 리더십 차원에서 공부, 연구, 강의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이런 질문(質問)이 커졌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연구한 결과를 전달하고 있는가? 해군 항해과 장교의 눈, 즉 Seaman’s Eye로 바라본 해상전투지휘관 이순 신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필자의 고민과 문제의식은 오랜 시간이 흘러 임관 30주년을 맞는 2022년이 되어서야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이라는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의 권유로 현재의 세종국가경영연구원(전.
한국형리더십개발원)에서 발행하는 [세종 칼럼]에 ‘이순신의 리더십 이야기’를 게재할 행운을 얻었고, 세종칼럼 필진 5명과 이순신칼럼 필진 1명이 릴레이로 칼럼을 기고하였다.
이때 필자는 이순신의 어린 시절과 임진왜란 이전 상황은 제외하고, 해상전투지휘관 이순신이 치른 임진왜란 주요 해전과 정유재란 주요 해전 및 변고를 3년간 기고하였다.
다행히 세종칼럼 독자들의 호평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필자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닻처럼 가라앉아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해군 항해과 장교의 Seaman’s Eye를 통해 임진왜란과 각종 해전을 살펴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그 닻을 끌어올려 책을 쓰려고 한다.
게다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닻(Anchor)’ 에 견주어 풀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 “『이순신 닻 리더십』 - 부제 : Seaman’s Eye로 통찰하다.”의 전체 목차를 설정하고, 기고 순서대로 편집하면서 몇 개의 칼럼은 제목을 바꾸고, 병법서의 내용을 현장 리더 이순신의 행동과 견주어 보고, 또 논리적인 순서 전개를 위해 끝에 몇 개 칼럼은 추가 작성하였다.
“닻(Anchor)은 바다에서 먼저 내려 배를 해저에 고정한다.
리더 역시 위기의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닻과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 닻 리더십』이라고 하니, 독자들은 ‘닻(Anchor)’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통상 선박에서 운용하는 닻은 정박(碇泊)이 필요한 해역에서 배를 해저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크고 무거운 기구물이다.
배의 선수(船首, 이물) 또는 선미(船尾, 고물)에서 조출된 닻은 해저(sea beds)에 파고들어 배를 빨리 고정함으로써 바람과 조수, 해류에 의한 배의 표류(漂流)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앵커는 “Seamanship의 표상(表象)”으로, 바다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도구이지만, 종종 어떤 일에 맨 먼저 뛰어드는 리더를 상징한다(Leader leads like an Anchor).
또 ‘방송사의 뉴스 진행자’를 ‘앵커’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정보를 가장 먼저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뽀빠이(Popeye) 팔뚝의 앵커 문양[?]은 남성미 넘치는 바다 사나이, 마도로스들의 문신(紋身, Tatoo)으로 크게 애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CI 도안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심연(深淵)에 잠든 닻을 끌어올리자.” 이 책 “『이순신 닻 리더십』 - 부제 : Seaman’s Eye로 통찰하다.”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화약이 타들어 가듯이 최근에 갑작스럽게 불꽃처럼 일어났다.
해군 장교의 Seamanship과 Seaman’s Eye(함정의 조종과 항해술을 이해하여 가지는 판단력)를 통해 이순신의 리더십을 다시 정리하자는 생각이 드디어 내부 폭발한 것이다.
병법에 능한 지략가이자 해상전투지휘관으로서의 이순신을 현장감 있게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을 그간 계속 되새김질하였으며, 잘 안 풀릴 때는 생각을 미루어두었다가 몇 달 후 다시 꺼내어 또 헤아렸다.
그렇게 같은 생각을 거듭하며 장기간의 몰입(沒入)이 있었고, 아이디어가 확장되는 결정적인 경발(警發)과 통찰(洞察)은 우연히도 재미있는 MLB 야구 중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유레카!” 이날은 마침내 좋은 꿀을 찾은 꿀벌처럼 빙빙 제자리를 돌면서 날갯짓하며 즐거워했다.
“자 이제, 닻을 감아올리고 출항이다.”
그리하여 『이순신 닻 리더십(Admiral Yi’s Anchor Leadership)』 은 “리더는 앵커처럼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라는 이끎의 생각(Thought of Leading)과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맨 먼저 앵커를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앵커의 기능(Function of Anchor)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앵커 부품의 구성은 가장 기본적인 앵커인 ‘Fisherman’s Anchor(어부의 닻)’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성웅 위인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New Paradigm Shift)’을 의미한다.
『이순신 닻 리더십』은 10개의 리더십 핵심요인(10 Leadership Key Factor)으로 구성된다.
① 기욕(嗜慾), ② 충의(忠義), ③ 담략(膽略), ④ 인내(忍耐), ⑤ 성실(誠實), ⑥ 진심(眞心), ⑦ 소통(疏通),
⑧ 창의(創意), ⑨ 몰입(沒入), ⑩ 통찰(洞察)이 그것이다.
이 10개의 리더십 핵심요인은 필자가 30년 넘게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리더십과 그 인생의 우여곡절을 반추(反芻)한 결과이며, 우리 바다에서, 전투함 위에서, 그리고 육지에서 교육훈련을 통해 해군 항해과 장교로서 검증해 온 것들이다.
또 필자의 책,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의 이순신 리더십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하였다.
독자들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이 남긴 『고 통제사 이공 유사』, 『선묘증흥지』 등을 통해 우리 역사 속의 지략가이자 해상전투지휘관 이순신에게 다가갈 것이며, 그 안에서 ① 기욕이 넘치는 이순신, ② 충의로운 이순신, ③ 담략 있는 이순신, ④ 인내에 찬 이순신, ⑤ 성실맨 이순신, ⑥ 진심 어린 이순신, ⑦ 소통 케미 이순신, ⑧ 창의 경발 이순신, ⑨ 몰입 젖은 이순신, ⑩ 통찰 장원 이순신을 감각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리더십의 영역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연결된다.
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는가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다.
그 인생의 길에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 긍정의 화신, 이순신”을 좋은 친구삼아 함께 가는 것은 어떠한가? 그리고 독자 여러분도 상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
필자가 Seaman’s Eye로 이순신을 통찰하듯이 자신의 관점과 패러다임으로 이순신을 바라보고, 그의 리더십을 한번 재단해보라.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 맥락과 비교해보고, 자신의 리더십 요인과 강점이 이순신의 리더십과 일치 하는 부분에 주목하라.
이 책은 이순신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리더십의 닻’을 점검하고 리더십 핵심요인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旅程, Journey)이 될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는 인생의 바다에서도 당당히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길 바란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늘 필자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과연 신사(紳士)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진다.
영화 “젠틀맨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신사란 점잖고 예의 바른 선비(士)나 젠틀맨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세종실록』을 읽다가 ‘신사의 어원(語源)’을 찾게 되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옮긴다.
세종 18년(1436년) 3월 26일,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사직상소(辭職上疏)를 올리니 세종이 윤허하지 않고 비답(批答, 상소에 대한 임금의 대답)을 내려주었는데, 세종의 비답 중에 허조는 “진신(縉紳)의 모범(模範)”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신의 모범”이란 어전(御前, 임금의 앞)에 나아갈 신하들의 모범이라는 말이다.
신(紳)은 옛날 관리들이 예복을 입고 허리를 묶는 큰 띠이며, 진신(縉紳) 은이 큰 띠에 홀(笏)을 꽂은 관리라는 뜻이다.
곧 어전에 나아갈 수준의 지성을 겸비한 관리를 ‘진신지사(縉紳之士)’라 하는데, ‘신사(紳 士)’라는 말은 ‘진신지사’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신사는 한 나라의 리더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리(文理, 사물이 이치를 깨달아 아는 힘)를 갖춘 선비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나중에 이 나라의 공무원이 되라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장차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고, 또 ‘이순신 닻 리더십’을 갖추고, 한반도를 포함한 글로벌 이슈를 토론하고, 부지런히 역동적인 생각과 행동을 펼치는 지행모범(知行 模範)의 진신지사이자 국제신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UN에서 연설하는 BTS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희망적인 미래 말이다.
필자 또한 해군 복무 시절, “해군 장교는 국제신사여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또 해군창설기념일은 ‘선비 사(士)’ 두 개를 풀어 쓴 11월 11일이다.
그만큼 해군 장교들은 신사의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고로 위의 진신지사의 생각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International Gentleman 해군 장교를 함께 감안한다면, 참으로 해군 장교는 세계 어느 나라의 리더 그룹과도 같이 토론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떳떳하고 당당한 선비(士, 文)이자 장교(官, 武)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순신 닻 리더십의 10개 핵심요인을 장착한 리더로서 말이다.
끝으로, 이 책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해군 제대 후 10년 넘게 다녔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주) PGM연구소 책임연구원 생활을 마감하고, (사)세종국가경영연구원 교육팀장으로 새 인생을 출발하는 기로(岐路)에 있다.
바야흐로 제3의 인생 항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장도의 길에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신 주변의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책의 출간을 지원 해주신 (사)세종국가경영연구원 손욱 이사장님과 박현모 원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흔쾌히 책의 감수를 해주신 나의 영웅 박재훈 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장님, 그리고 최근 피지공화국 대사 직책을 마치고 귀국하시어 기꺼이 환영사를 해주신 필자의 해상 전투지휘관 김진형 제독님과 추천사를 써준 필자의 동기생인 국방부 첨단전력기획관 류효상 제독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국방대학교 리더십학과 은사님이신 최병순 교수님과 김오현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옛 시절 두 분의 리더십 지도와 격려가 있었기에 지금의 필자가 있을 수 있었다.
[갑오일기] 1594년 5월 9일, 비가 계속 내렸다.
종일 홀로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혼미하기가 꿈에 취한 듯하니,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도 같았다.
[갑오일기] 1594년 5월 10일, 비가 계속 내렸다.
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니, 배들이 온 바다를 가득히 채웠다.
적이 비록 침범해 온다 해도 능히 섬멸할 수 있을 것이다.
늦게 전라우수영 우후 이정충과 충청수사 입부 이순신(立夫 李純 信, 동명이인)이 와서 둘이서 수박희(手搏戱, 맨손으로 승부를 겨루는 무예)를 겨루었다.
도원수 권율 장군의 군관 변응각도 함께 점심을 먹었다.
보성군수 안흥국이 저물녘에 왔다.
비가 종일 걷히지 않았다.
큰아들 회(?)가 바다에 나간 것이 걱정이다.
소비포 권관 이영남이 약을 보내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필자가 뽑은 가장 극명한 감정의 차이를 보이는 “극한대비”, 두 이어진 날짜의 일기이다.
비가 계속 내린 첫날은 온갖 감정이 일어나서 주체할 수 없는 혼란함을 보여주다가 둘째 날도 비가 계속 내리지만, 어느새 이순신은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함선이 가득한 바다를 내다보며 전투에서의 자신감이 뿜뿜 일어나면서, 장수들의 수박희를 보고, 상급부대 참모와 함께 식사하는 등 하루의 일과들이 부담 없이 지나가고, 바다에 나간 아들을 걱정하는 아버지 이순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짧은 간극(間隙) 속에는 한 인간이자 장수로서의 이순신,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두려 움과 결심을 동시에 품은 리더 이순신이 있다.
갑오년(1594년)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순신 제독도 우리와 같은 감정의 기복이 있는 한 사람이었고, 바다에 빼곡한 함선을 보며 적을 섬멸하고자 하는 전투력이 생기는 참 군인이며, 바다에 나간 자식을 걱정하는 한 아버지였다.
우리가 범접할 수 없는 성웅 이순신이 아닌 여느 전장의 평범한 리더의 모습이다.
그래서 ‘성웅’이라는 호칭 뒤에 가려진 한 인간 이순신을 마주한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결심하는 리더의 실루엣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이순신의 저 평범한 실루엣 속에서 모든 해전에서 승리한 그의 비범함을 찾아내야 한다.
과연 이순신의 리더십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있는 것인가? 필자는 해군의 시각으로 이를 밝혀보고자 한다.
필자는 해군 복무 중에 2006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가 새로이 만들어질 당시에 창설 멤버로서, 해군본부에서 선발되어 3급 함장 보직을 뒤로 미루고 전방함대에서 진해로 내려갔다.
간첩선을 때려잡은 실전 영웅 박재훈 센터장님과 센터 내부의 최두환, 제장명 교수님, 외부(해사교)의 이민웅 교수님의 충무공 말씀을 새겨듣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일생을 통해 리더십 차원에서 공부, 연구, 강의할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 이런 질문(質問)이 커졌다.
“왜 나는 다른 사람이 연구한 결과를 전달하고 있는가? 해군 항해과 장교의 눈, 즉 Seaman’s Eye로 바라본 해상전투지휘관 이순 신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필자의 고민과 문제의식은 오랜 시간이 흘러 임관 30주년을 맞는 2022년이 되어서야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이라는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해 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의 권유로 현재의 세종국가경영연구원(전.
한국형리더십개발원)에서 발행하는 [세종 칼럼]에 ‘이순신의 리더십 이야기’를 게재할 행운을 얻었고, 세종칼럼 필진 5명과 이순신칼럼 필진 1명이 릴레이로 칼럼을 기고하였다.
이때 필자는 이순신의 어린 시절과 임진왜란 이전 상황은 제외하고, 해상전투지휘관 이순신이 치른 임진왜란 주요 해전과 정유재란 주요 해전 및 변고를 3년간 기고하였다.
다행히 세종칼럼 독자들의 호평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책으로 엮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필자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닻처럼 가라앉아있던 질문을 다시 꺼냈다.
‘해군 항해과 장교의 Seaman’s Eye를 통해 임진왜란과 각종 해전을 살펴야 한다’라는 생각이었다.
이제 그 닻을 끌어올려 책을 쓰려고 한다.
게다가 이순신의 리더십을 ‘닻(Anchor)’ 에 견주어 풀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책, “『이순신 닻 리더십』 - 부제 : Seaman’s Eye로 통찰하다.”의 전체 목차를 설정하고, 기고 순서대로 편집하면서 몇 개의 칼럼은 제목을 바꾸고, 병법서의 내용을 현장 리더 이순신의 행동과 견주어 보고, 또 논리적인 순서 전개를 위해 끝에 몇 개 칼럼은 추가 작성하였다.
“닻(Anchor)은 바다에서 먼저 내려 배를 해저에 고정한다.
리더 역시 위기의 바다에 가장 먼저 뛰어드는 닻과 같은 존재이다.”
『이순신 닻 리더십』이라고 하니, 독자들은 ‘닻(Anchor)’에 대해 생소할 것이다.
통상 선박에서 운용하는 닻은 정박(碇泊)이 필요한 해역에서 배를 해저에 고정하도록 설계된 크고 무거운 기구물이다.
배의 선수(船首, 이물) 또는 선미(船尾, 고물)에서 조출된 닻은 해저(sea beds)에 파고들어 배를 빨리 고정함으로써 바람과 조수, 해류에 의한 배의 표류(漂流)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앵커는 “Seamanship의 표상(表象)”으로, 바다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도구이지만, 종종 어떤 일에 맨 먼저 뛰어드는 리더를 상징한다(Leader leads like an Anchor).
또 ‘방송사의 뉴스 진행자’를 ‘앵커’라고 부르는데, 새로운 정보를 가장 먼저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뽀빠이(Popeye) 팔뚝의 앵커 문양[?]은 남성미 넘치는 바다 사나이, 마도로스들의 문신(紋身, Tatoo)으로 크게 애용되고 있으며, 세계적인 해운 회사들의 CI 도안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다.
“심연(深淵)에 잠든 닻을 끌어올리자.” 이 책 “『이순신 닻 리더십』 - 부제 : Seaman’s Eye로 통찰하다.”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화약이 타들어 가듯이 최근에 갑작스럽게 불꽃처럼 일어났다.
해군 장교의 Seamanship과 Seaman’s Eye(함정의 조종과 항해술을 이해하여 가지는 판단력)를 통해 이순신의 리더십을 다시 정리하자는 생각이 드디어 내부 폭발한 것이다.
병법에 능한 지략가이자 해상전투지휘관으로서의 이순신을 현장감 있게 드러내야겠다는 생각을 그간 계속 되새김질하였으며, 잘 안 풀릴 때는 생각을 미루어두었다가 몇 달 후 다시 꺼내어 또 헤아렸다.
그렇게 같은 생각을 거듭하며 장기간의 몰입(沒入)이 있었고, 아이디어가 확장되는 결정적인 경발(警發)과 통찰(洞察)은 우연히도 재미있는 MLB 야구 중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유레카!” 이날은 마침내 좋은 꿀을 찾은 꿀벌처럼 빙빙 제자리를 돌면서 날갯짓하며 즐거워했다.
“자 이제, 닻을 감아올리고 출항이다.”
그리하여 『이순신 닻 리더십(Admiral Yi’s Anchor Leadership)』 은 “리더는 앵커처럼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라는 이끎의 생각(Thought of Leading)과 “항해자가 새로운 정박지에 도착했을 때맨 먼저 앵커를 내려 배를 묘박(錨泊)”하는 앵커의 기능(Function of Anchor)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앵커 부품의 구성은 가장 기본적인 앵커인 ‘Fisherman’s Anchor(어부의 닻)’에서 가져왔다.
이것은 ‘성웅 위인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New Paradigm Shift)’을 의미한다.
『이순신 닻 리더십』은 10개의 리더십 핵심요인(10 Leadership Key Factor)으로 구성된다.
① 기욕(嗜慾), ② 충의(忠義), ③ 담략(膽略), ④ 인내(忍耐), ⑤ 성실(誠實), ⑥ 진심(眞心), ⑦ 소통(疏通),
⑧ 창의(創意), ⑨ 몰입(沒入), ⑩ 통찰(洞察)이 그것이다.
이 10개의 리더십 핵심요인은 필자가 30년 넘게 충무공 이순신 제독의 리더십과 그 인생의 우여곡절을 반추(反芻)한 결과이며, 우리 바다에서, 전투함 위에서, 그리고 육지에서 교육훈련을 통해 해군 항해과 장교로서 검증해 온 것들이다.
또 필자의 책, 『세종과 이순신, K 리더십』의 이순신 리더십 DNA 분석 결과를 토대로 재구성하였다.
독자들은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장계』,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이 남긴 『고 통제사 이공 유사』, 『선묘증흥지』 등을 통해 우리 역사 속의 지략가이자 해상전투지휘관 이순신에게 다가갈 것이며, 그 안에서 ① 기욕이 넘치는 이순신, ② 충의로운 이순신, ③ 담략 있는 이순신, ④ 인내에 찬 이순신, ⑤ 성실맨 이순신, ⑥ 진심 어린 이순신, ⑦ 소통 케미 이순신, ⑧ 창의 경발 이순신, ⑨ 몰입 젖은 이순신, ⑩ 통찰 장원 이순신을 감각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리더십의 영역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연결된다.
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가는가에 따라 좌지우지되기 마련이다.
그 인생의 길에 “작은 가능성도 놓치지 않는 긍정의 화신, 이순신”을 좋은 친구삼아 함께 가는 것은 어떠한가? 그리고 독자 여러분도 상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
필자가 Seaman’s Eye로 이순신을 통찰하듯이 자신의 관점과 패러다임으로 이순신을 바라보고, 그의 리더십을 한번 재단해보라.
그리고 자신의 리더십 맥락과 비교해보고, 자신의 리더십 요인과 강점이 이순신의 리더십과 일치 하는 부분에 주목하라.
이 책은 이순신을 통해 독자 여러분의 ‘리더십의 닻’을 점검하고 리더십 핵심요인을 찾아가는 의미 있는 여정(旅程, Journey)이 될 것이다.
그래서 흔들리는 인생의 바다에서도 당당히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길 바란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늘 필자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필자는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과연 신사(紳士)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진다.
영화 “젠틀맨 시리즈”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신사란 점잖고 예의 바른 선비(士)나 젠틀맨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필자는 『세종실록』을 읽다가 ‘신사의 어원(語源)’을 찾게 되었는데, 기쁜 마음으로 여기에 옮긴다.
세종 18년(1436년) 3월 26일,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사직상소(辭職上疏)를 올리니 세종이 윤허하지 않고 비답(批答, 상소에 대한 임금의 대답)을 내려주었는데, 세종의 비답 중에 허조는 “진신(縉紳)의 모범(模範)”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신의 모범”이란 어전(御前, 임금의 앞)에 나아갈 신하들의 모범이라는 말이다.
신(紳)은 옛날 관리들이 예복을 입고 허리를 묶는 큰 띠이며, 진신(縉紳) 은이 큰 띠에 홀(笏)을 꽂은 관리라는 뜻이다.
곧 어전에 나아갈 수준의 지성을 겸비한 관리를 ‘진신지사(縉紳之士)’라 하는데, ‘신사(紳 士)’라는 말은 ‘진신지사’에서 나온 것이다.
결국, 신사는 한 나라의 리더 앞에서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리(文理, 사물이 이치를 깨달아 아는 힘)를 갖춘 선비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에게 나중에 이 나라의 공무원이 되라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장차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고, 또 ‘이순신 닻 리더십’을 갖추고, 한반도를 포함한 글로벌 이슈를 토론하고, 부지런히 역동적인 생각과 행동을 펼치는 지행모범(知行 模範)의 진신지사이자 국제신사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UN에서 연설하는 BTS처럼 우리 젊은이들이 떳떳하고 당당한 신사가 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희망적인 미래 말이다.
필자 또한 해군 복무 시절, “해군 장교는 국제신사여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또 해군창설기념일은 ‘선비 사(士)’ 두 개를 풀어 쓴 11월 11일이다.
그만큼 해군 장교들은 신사의 품격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고로 위의 진신지사의 생각과 국제적 감각을 갖춘 International Gentleman 해군 장교를 함께 감안한다면, 참으로 해군 장교는 세계 어느 나라의 리더 그룹과도 같이 토론할 수준의 지적 능력을 갖춘 떳떳하고 당당한 선비(士, 文)이자 장교(官, 武)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순신 닻 리더십의 10개 핵심요인을 장착한 리더로서 말이다.
끝으로, 이 책을 준비하면서 필자는 해군 제대 후 10년 넘게 다녔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주) PGM연구소 책임연구원 생활을 마감하고, (사)세종국가경영연구원 교육팀장으로 새 인생을 출발하는 기로(岐路)에 있다.
바야흐로 제3의 인생 항해가 시작되었다.
새로운 장도의 길에 용기를 내도록 도와주신 주변의 지인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책의 출간을 지원 해주신 (사)세종국가경영연구원 손욱 이사장님과 박현모 원장님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또한, 흔쾌히 책의 감수를 해주신 나의 영웅 박재훈 전.
해군충무공리더십센터장님, 그리고 최근 피지공화국 대사 직책을 마치고 귀국하시어 기꺼이 환영사를 해주신 필자의 해상 전투지휘관 김진형 제독님과 추천사를 써준 필자의 동기생인 국방부 첨단전력기획관 류효상 제독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국방대학교 리더십학과 은사님이신 최병순 교수님과 김오현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옛 시절 두 분의 리더십 지도와 격려가 있었기에 지금의 필자가 있을 수 있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11일
- 쪽수, 무게, 크기 : 472쪽 | 692g | 152*223*30mm
- ISBN13 : 9791156346586
- ISBN10 : 1156346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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