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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교리
매일 교리
Description
책소개
조엘 비키, 칼 트루먼, 앨버트 몰러, 케빈 벤후저, 마이클 호튼, 박바울(합신대), 박재은(총신대), 서창희(한사람교회), 신호섭(고신대), 이정규(시광교회), 이정현(청암교회) 강력 추천!

교리는 신학자나 목회자만의 영역이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삶은 매일 교리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하루에, 당신의 책장에 건강한 교리를 소장하고 있는가?

복음주의, 개혁주의 진영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받는 젊은 신학자이자 목회자, 케빈 드영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알아야 할’ 개념을 명료하고 간결하게 정리해 1년 묵상집으로 출간했다.
고급 패브릭 양장 커버가 소장하는 기쁨, 펼쳐보는 기쁨, 선물하는 기쁨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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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사
들어가며

프롤레고메나: 미리 생각해 볼 것과 성경론

WEEK 1
DAY 1 신학
DAY 2 조직 신학
DAY 3 신학의 구분
DAY 4 종교
DAY 5 과학
WEEK 2
DAY 6 사변적인가 아니면 실천적인가?
DAY 7 아드 폰테스
DAY 8 프린시피아
DAY 9 믿음과 이성
DAY 10 성령의 내적 증언
WEEK 3
DAY 11 기본 항목들
DAY 12 하나님을 아는 지식
DAY 13 자연법과 자연 신학
DAY 14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DAY 15 영감
WEEK 4
DAY 16 공동 작업
DAY 17 성경의 완전성
DAY 18 성경의 무오성
DAY 19 정경 문제
DAY 20 어떤 책이 성경에 적합한가?

신론: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사역

WEEK 5
DAY 21 하나님의 존재
DAY 22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DAY 23 하나님께 사용되는 단어들
DAY 24 하나님의 일체성
DAY 25 영이신 하나님
WEEK 6
DAY 26 하나님의 이름
DAY 27 하나님의 속성
DAY 28 비공유적 속성과 공유적 속성
DAY 29 실체와 우연성
DAY 30 기독교 신학과 그리스-로마 철학
WEEK 7
DAY 31 하나님의 단순성
DAY 32 하나님의 자존성
DAY 33 하나님의 무한성
DAY 34 하나님의 불변성
DAY 35 하나님의 무감동성
WEEK 8
DAY 36 신 고난설과 성부 수난설
DAY 37 지성적 속성
DAY 38 의지적 속성
DAY 39 능력의 속성
DAY 40 초월성과 내재성
WEEK 9
DAY 41 삼위일체 하나님
DAY 42 성경과 삼위일체
DAY 43 삼위일체 용어
DAY 44 하나이자 셋
DAY 45 영원한 출생
WEEK 10
DAY 46 필리오케 조항
DAY 47 페리코레시스
DAY 48 탁시스
DAY 49 나뉠 수 없는 활동
DAY 50 우리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
WEEK 11
DAY 51 하나님의 작정
DAY 52 하나님의 뜻
DAY 53 의지의 자유
DAY 54 하나님의 허용
DAY 55 선택과 유기
WEEK 12
DAY 56 예정은 공정한가?
DAY 57 작정의 순서
DAY 58 아미라우트주의
DAY 59 중간 지식
DAY 60 복음 전파와 하나님의 주권
WEEK 13
DAY 61 우리의 창조자 하나님
DAY 62 무로부터 창조
DAY 63 창조의 날들
DAY 64 역사적 아담
DAY 65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목적
WEEK 14
DAY 66 천사
DAY 67 귀신
DAY 68 섭리
DAY 69 기적
DAY 70 기도

인간론: 창조되고 타락한 인간

WEEK 15
DAY 71 창조된 존재와 최고봉
DAY 72 사람, 몸과 혼
DAY 73 우리의 영혼은 어디서 오는가?
DAY 74 능력 심리학
DAY 75 남자와 여자
WEEK 16
DAY 76 결혼
DAY 77 트랜스젠더리즘
DAY 78 하나님의 형상
DAY 79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DAY 80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WEEK 17
DAY 81 죄의 본질
DAY 82 죄의 기원
DAY 83 죄의 전이
DAY 84 전적 무능
DAY 85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WEEK 18
DAY 86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든 죄는 같은가?
DAY 87 더 가증스러운 죄
DAY 88 정욕
DAY 89 유혹
DAY 90 죄의 교리는 어떤 차이를 만드는가?

언약 신학: 하나님은 그분의 피조물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WEEK 19
DAY 91 언약이 중심이다
DAY 92 언약의 정의
DAY 93 베리트와 디아데케
DAY 94 언약 갱신으로서의 예배
DAY 95 구속 언약
WEEK 20
DAY 96 행위 언약
DAY 97 은혜 언약
DAY 98 노아 언약
DAY 99 아브라함 언약
DAY 100 모세 언약
WEEK 21
DAY 101 재공표
DAY 102 다윗 언약
DAY 103 새 언약
DAY 104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DAY 105 새 언약의 새로움
WEEK 22
DAY 106 율법과 그리스도인
DAY 107 삼중적 율법 구분
DAY 108 세대주의
DAY 109 침례교 언약 신학
DAY 110 하나님의 이스라엘

기독론 1: 그리스도의 위격

WEEK 23
DAY 111 로고스
DAY 112 동정녀 탄생
DAY 113 메시아 예언
DAY 114 예수님의 이름과 칭호
DAY 115 예수님의 자기 증언
WEEK 24
DAY 116 아우토데오스
DAY 117 그리스도의 신성
DAY 118 그리스도의 인성
DAY 119 영원한 아들 되심
DAY 120 성육신
WEEK 25
DAY 121 위격적 연합
DAY 122 코뮤니카티오 이디오마툼
DAY 123 두 본성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DAY 124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
DAY 125 기독론 이단들
WEEK 26
DAY 126 아리우스주의
DAY 127 가현설
DAY 128 네스토리우스주의
DAY 129 유티케스주의
DAY 130 칼케돈 신조
WEEK 27
DAY 131 “무엇이든 취하지 않으신 것은 치유될 수 없다”
DAY 132 그리스도의 신적 자의식
DAY 133 케노시스
DAY 134 성령 기독론
DAY 135 범죄불가능성

기독론 2: 그리스도의 사역

WEEK 28
DAY 136 두 상태
DAY 137 성육신과 고난
DAY 138 버림받음의 외침
DAY 139 죽음과 장사
DAY 140 지옥 강하
WEEK 29
DAY 141 부활
DAY 142 승천
DAY 143 좌정
DAY 144 재림
DAY 145 선지자
WEEK 30
DAY 146 제사장
DAY 147 왕
DAY 148 그리스도의 나라
DAY 149 속죄란 무엇인가?
DAY 150 속죄의 필요성
WEEK 31
DAY 151 속죄의 완전성
DAY 152 속죄론 1
DAY 153 속죄론 2
DAY 154 순종과 정복
DAY 155 화해와 구속
WEEK 32
DAY 156 제물과 만족
DAY 157 보속과 화목제
DAY 158 제한 속죄
DAY 159 도르트와 확정적 속죄
DAY 160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으셨다

구원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

WEEK 33
DAY 161 오르도 살루티스
DAY 162 성령의 사역 1
DAY 163 성령의 사역 2
DAY 164 그리스도와의 연합
DAY 165 일반적 부르심
WEEK 34
DAY 166 유효한 부르심
DAY 167 저항할 수 없는 은혜
DAY 168 거듭남
DAY 169 단독설
DAY 170 회심
WEEK 35
DAY 171 회개
DAY 172 믿음
DAY 173 믿음의 행위
DAY 174 믿음과 확신
DAY 175 칭의
WEEK 36
DAY 176 전가
DAY 177 솔라 피데
DAY 178 야고보와 바울은 모순되는가?
DAY 179 바울에 관한 ‘새 관점’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DAY 180 시간과 부가적 요소들
WEEK 37
DAY 181 입양
DAY 182 성화는 칭의와 어떻게 다른가?
DAY 183 율법의 세 가지 용도
DAY 184 신뢰와 노력
DAY 185 선한 행위와 구원
WEEK 38
DAY 186 선한 행위와 신자
DAY 187 선한 행위와 공로
DAY 188 견인
DAY 189 경고 구절
DAY 190 영화

교회론: 교회의 본질, 사명, 질서

WEEK 39
DAY 191 교회
DAY 192 교회의 본질
DAY 193 일체성
DAY 194 거룩성
DAY 195 보편성
WEEK 40
DAY 196 사도성
DAY 197 교회의 표지
DAY 198 설교
DAY 199 교회 구성원
DAY 200 교회와 국가
WEEK 41
DAY 201 교회 권한의 본질과 범위
DAY 202 국가 교회와 자유 교회 원리
DAY 203 양심의 자유
DAY 204 규정적 원리
DAY 205 교회의 선교
WEEK 42
DAY 206 본질적 통치와 중보적 통치
DAY 207 교회의 영적 본질
DAY 208 신경과 신앙고백
DAY 209 성령의 은사
DAY 210 기적의 은사
WEEK 43
DAY 211 성령 세례
DAY 212 성령 충만
DAY 213 부르심
DAY 214 은혜의 수단
DAY 215 셈페르 레포르만다
WEEK 44
DAY 216 성례
DAY 217 성례는 몇 가지인가?
DAY 218 세례
DAY 219 누가 세례를 받는가?
DAY 220 세례 방식
WEEK 45
DAY 221 세례는 무엇을 인치는가?
DAY 222 누가 세례를 줄 수 있는가?
DAY 223 세례를 몇 번 받아야 하는가?
DAY 224 주의 만찬
DAY 225 실재적 임재
WEEK 46
DAY 226 식탁인가 제단인가?
DAY 227 누가 주의 만찬을 받아야 하는가?
DAY 228 교회 구성원
DAY 229 교회의 권징
DAY 230 신약 교회의 직분
WEEK 47
DAY 231 봉사
DAY 232 교회의 직분은 몇인가?
DAY 233 장로
DAY 234 집사
DAY 235 하나님이 특정 형태의 교회 정치를 명하시는가?
WEEK 48
DAY 236 교황이 교회를 다스리는가?
DAY 237 감독들이 교회를 다스리는가?
DAY 238 회중이 교회를 다스리는가?
DAY 239 장로들이 교회를 다스리는가?
DAY 240 품위 있고 질서 있게

종말론: 마지막 것들

WEEK 49
DAY 241 죽음과 지옥
DAY 242 지옥, 하나님의 형벌
DAY 243 보편 구원론
DAY 244 멸절설
DAY 245 포용주의
WEEK 50
DAY 246 신자들은 죽으면 천국에 가는가?
DAY 247 중간 상태
DAY 248 행위에 따른 심판
DAY 249 천국 상급
DAY 250 천국은 무엇과 같은가?
WEEK 51
DAY 251 부분적 과거론
DAY 252 대환난
DAY 253 144,000
DAY 254 666
DAY 255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WEEK 52
DAY 256 천년왕국
DAY 257 천년왕국은 언제 이루어지는가?
DAY 258 사탄이 천년 동안 결박된다는 게 무슨 뜻인가?
DAY 259 첫째 부활이 무슨 뜻인가?
DAY 260 영화로운 나타나심

부록: 자주 인용된 자료들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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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하는 교리가 있다면, 삼위일체 교리가 바로 그 교리일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On the Trinity)에서 “이에 관한 오류보다 위험한 게 없고, 이에 관한 연구보다 수고스러운 게 없으며, 이에 관한 탐구보다 많은 열매를 맺는 게 없다”고 했다.
최근에, 싱클레어 퍼거슨(Sinclair Ferguson)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주 이런 분명한 생각을 하고는 한다.
제자들이 세상이 곧 무너질 것 같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우리 주님은 다락방에서 오랜 시간 그들에게 삼위일체의 신비를 말씀하셨다.
실천적 기독교에 있어 삼위일체론이 필수적인지 보여 주는 예가 있다면, 바로 이 장면이 분명하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이해력이 빈약하며 표현력은 더 빈약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는 면은 가장 빈약하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인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헌신과 기쁨에 깊이를 더하기 위한 것이다.

--- 「신론 / DAY 41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 3.
하나님의 형상을 정확히 이해하면, 온전히 인간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깊은 정체성을 자기표현이나 성적 성취를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분께 순종하고 그분을 사랑함으로써 살아낸다.
아담과 하와에게 금단의 열매를 먹는 날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했던 뱀의 말은 거짓말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이미 하나님처럼 되어 있었다.

4.
하나님의 형상 교리는 세상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일깨운다.
고대 세계 정복 왕들은 영토 곳곳에 자신의 형상을 세워 그곳이 자신의 소유라고 분명히 했다.
마찬가지로, 고대 세계 이교도 신전마다 그곳에 거한다는 신의 형상이 있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자로서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는 곧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증거다.
모든 것을 지으신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 거하지 않으신다(행 17:24).
우리는 땅에 두루 퍼진 하나님의 “신상”이다(26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시 24:1).
--- 「인간론 / DAY 80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는가?」 중에서

…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을 수백 번도 더 들었다.
최후의 만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고 주의 만찬에 참여할 때마다 듣는다.
그러나 우리는 구속사와 교회에서 아주 중요한 이 말씀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하나’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다.
존티 로즈(Jonty Rhodes)가 지적했듯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선언에서 ‘언약’(covenant)이란 단어를 가려도 이 구절의 의미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는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언약 신학의 관점에서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셨으나 우리는 이 사실을 놓친다.
어느 조직 신학에서든, 언약이 중심 주제여야 한다.
언약이란 단어는 성경에서 300회 이상 사용된다.
성탄절 이야기에서 사용되고(눅 1:7, ‘맹세’), 그리스도의 수난 이야기에서도 사용된다(눅 22:20).
성경의 첫 장들에서 사용되고(창 6:18; 9:17; 참조.
호 6:7), 성경의 뒷부분에 배치된 책에서도 사용되는데, 거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을 배운다(히 8:6).
유대인을 “언약의 자손”이라 부른 것은 놀랍지 않다(행 3:25).
우리는 “집에서 ‘언약들’에 관해 대화했던 훌륭한 조상들을” 생각하며 향수에 젖었던 스펄전(Charles Spurgeon)을 본받아야 한다.

네덜란드 신학자 헤르만 비치우스(Hermann Witsius)가 쓴 고전적 저작 『언약의 경륜』(Economy of the Covenants)의 서문에서, 제임스 패커는 언약 신학은 해석학이며, 성경 전체를 읽는 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곧 성경의 구속은 삼위일체 세 위격 간의 언약 관계에서 시작한다.
성경의 교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언약 관계와 관련이 있다.
성경의 윤리는 우리와 타인의 언약 관계와 관련이 있다.
이들을 언약의 틀에서 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이나 하나님의 실재를 이해하지 못한다.
--- 「언약 신학 / DAY 91 언약이 중심이다」 중에서

… 오직 하나님의 아들만이 성육신하실 수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버지는 성육신하실 수 없었다.
아버지는 순서상 먼저이고, 그 누구에 의해서도 보냄을 받을 수 없고, 아들이나 성령에게 중보자가 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인간적 의미에서 아들이 되지 않고는 사람의 육신을 입고 동정녀에게서 나실 수 없는데, 아버지가 아들이 되면 그분의 신적 부성(divine Fatherhood)이 훼손될 터였다.
마찬가지로, 성령께서도 이를테면 둘째 아들이 되지 않고는 보내심을 받아 사람으로 나실 수 없었다.
신성(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적 본질)이 성육신하지 않았다는 것도 강조해야 한다.
아퀴나스가 말하듯이, “신적 본성이 인간 본성을 취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신적 위격이 인간 본성을 취했다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하다.” …
성육신에서, 신적 본성은 그 어떤 본질적 변화도 겪지 않았다.
신적 본성은 무감동성과 전지성과 불변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성육신은 위격적 행위였고, 이를 통해 아들의 위격이 성육신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신적 본성이 인간의 육신을 취했다고 말하는 것보다 낫다.
‘사람이 되실’ 때, 삼위일체의 둘째 위격은 하나님이길 그치지 않으셨다.
삼위일체의 둘째 위격은 ‘자신이었던 것’(what he was)이길 그치지 않은 채 ‘자신이 아니었던 것’(what he was not)이 되셨다.
새로운 무언가로 전환되신 게 아니라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는 게 바로 이런 뜻이다.
다소 평이하게 말하자면, 인간 본성이 아닌 신적 본성을 ‘기반’(base) 본성으로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이 신이 된 게 아니라 신적 위격이 인간 본성을 취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이 된 인성(하나님이 된 사람)이 아니라 인성을 취한 신성(사람이 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위격에서 인성이 아니라 신성이 지배한다.
--- 「기독론 1 / DAY 120 성육신」 중에서

…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의 부재와 하나님이 쏟으시는 진노의 무게를 경험하셨다.
그분의 인간 의식으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는다는 게 실제로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셨다.
십자가 죽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으셨음을 상징한다(신 21:23; 갈 3:13).
그러나 이 판결의 무게 아래서도,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히 절망하지 않으셨는데, 곧 성경을 성취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으셨기 때문이다(시 22:1).
십자가에서 터져 나온 그리스도의 외침에 담긴 아픔과 수난을 절대 축소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신학 문제로 여겨서도 안 된다.
아 브라켈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 버림받으신 게 아니며,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연합은 끊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께 버림받으신 것도 아니며, 그분은 성령으로 한없이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그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고통이 최고조에 이르렀고 빛과 사랑과 도움과 위로가 가장 절실히 필요했던 특정 순간에 모든 빛과 사랑과 도움과 위로가 철회되는 것을” 경험하셨다고 이해해야 한다.
차이가 없는 구분처럼 보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 브라켈은 삼위일체 간의 갈등이라는 개념을 피하려 한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아들이시며, 그렇기에 하나님은 아들에게 진노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향해 진노하셨고, 의로운 재판장으로서 공의를 시행할 때 죄를 짊어지신 그분이 이 진노를 느끼게 하셨다.

--- 「기독론 2 / DAY 138 버림받음의 외침」 중에서

… 성경 해석을 토대로 제한 속죄를 거부할 때 가장 강력한 반론은 ‘세상’(kosmos)이라는 단어에 집중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말하고(요 3:16) 예수님이 온 세상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시라고 말하는데(요일 2:2), 이러한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세상은 범위가 아니라 ‘타락한 상태’를 가리킨다.
세상이 범위를 가리킬 때는 ‘예외 없이 모두’라는 뜻이 아니라, ‘구별 없이 모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요한일서 2장 2절이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holou tou kosmou)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라고 말할 때 온 세상은 온 인류가 아닌 모든 지역이나 모든 민족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어구는 땅 위의 모든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신자에게 세상의 모든 개개인이 그들의 믿음을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롬 1:8), 누가는 황제의 칙령이 로마 제국에만 해당되었는데도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눅 2:1).
세상은 모든 지역의 사람이나 모든 부류의 사람을 의미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한 속죄 교리는 복음의 핵심과 연결되기 때문에 정의를 내리고 변호할 가치가 있다.
속죄가 특별히(특정적으로) 양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다음에서 둘 중 하나를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는 보편 구원론(universalism;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해 죽으셨고 따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이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대속에 미치지 못하는 그 무언가이다.

--- 「기독론 2 / DAY 158 제한 속죄」 중에서

… 회개를 믿음보다 앞서 다룰 때의 위험이 있다.
먼저 자기 죄에 충분한 슬픔을 느껴야만 사람이 구원을 얻고자 그리스도께 달려갈 거라 잘못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복음은 법적 회개가 아니라 복음적 회개를 요구한다.
회개는 죄를 슬퍼함과 죄를 버림을 수반하지만(고후 7:10-11), 인색한 하나님 앞에서 굽실거리는 것이 아니며, 우리를 용서하도록 하나님을 설득하는 덕행도 아니다.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구원하는 은혜이며, 이 은혜로 죄인은 자기 죄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도 깨닫는다(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7).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회개는 두 측면이 있다.
구원하는 믿음의 한 행위로 그리스도께로 돌아서는 회개와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삶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회개다.
우리는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마르틴 루터는 95개조 반박문을 시작하면서 신자의 삶 전체가 회개의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개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필요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데도 필요하다.

이 한 쌍을 주목하라.
회개하고 믿으라.
신약성경에서 이 둘은 사실상 동의어이다.
두 단어가 같은 의미여서가 아니라, 똑같이 성령의 역사로 되는 일이며, 똑같은 종말론적 유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엄격히 말해 복음을 향한 적절한 반응은 믿음과 회개 둘 다를 포함한다(마 21:32; 행 20:21).
둘 중 하나만 언급된다면(신약성경에서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나머지 하나는 당연히 전제됨을 알아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진정 믿는 게 아니고, 믿지 않으면 진정 회개한 게 아니다.
회개를 말하지 않는 복음은 진짜가 아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때때로 회개하라는 직접 요청으로 제시된다.
때때로 용서가 단 한 번의 회개 행위와 연결된다(행 5:31; 롬 2:4; 고후 7:10).
사도들이 전한 좋은 소식의 메시지는 회개가 생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행 11:18).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행 3:19).

--- 「구원론 / DAY 171 회개」 중에서

…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
이 중요한 구분은 분리된 두 교회를 가리키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교회에 속하기로 선택했다고 해서 보이는 교회에 속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다.

대신에 이 구분은 우리의 주의를 ‘지금 그대로의 교회’(보이는 교회)와 ‘그렇게 되어야 하는 교회’(보이지 않는 교회)로 이끈다.
이 구분은 또한 그리스도와 표면적이고 외적인 관계에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와 내적이고 영적인 관계에 있는 교회를 서로 대비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이 구분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택하신 자로 구성된 볼 수 없는 교회와는 대조적으로 땅에서 볼 수 있고 고백하는 교회를 설명하는 데 때때로 사용된다.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주일에 구체적 시간과 장소에서 만나는 교회가 모이는 교회다.
그러나 교회는 주일 마지막 예배 후에 사라졌다가 그다음 주일에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니다.
교회는 각자의 가정과 일터와 지역 사회에 널리 흩어져 있는 신자로 존재한다.
교회의 숱한 실수는 지금까지 살펴본 각 쌍의 한쪽을 희생시켜 나머지 한쪽을 부각시킨 결과다.
우리는 양쪽 모두가 필요하다.
양쪽 모두 있어야 교회의 방향성에 있어 비현실적이 되거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교회에 대해 회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
교회는 우리가 자리한 물리적 위치보다 크지만,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교회에 속해야 한다.
교회는 기관 그 이상이지만, 그 이하일 수 없다.
교회는 지지대와 덩굴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일이 모두 주일에 또는 교회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전체 모임은 덕을 세우고 언약을 갱신하며 하늘의 영광을 생각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는 현실주의를 위해, 생명력을 잃지 않는 구조를 위해, 큰 그림과 작은 장소를 기뻐하기 위해, 우리는 ‘양쪽 모두’의 광휘를 갖춘 교회가 필요하다.

--- 「교회론 / DAY 192 교회의 본질」 중에서

… 지옥을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선택한 어떤 정체성으로 묘사하는 게 일반화되었다.
지옥은 하나님이 악인을 보내시는 곳이 아니라 악인이 스스로 선택하거나 만들어 내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C.
S. 루이스가 『천국과 지옥의 이혼』(The Great Divorce)에서 지지한 것으로 유명한 견해다.
루이스에게 지옥은 우리 스스로 선택한 자기 몰입과 우상 숭배가 영원히 고삐 풀린 곳이다.
지옥문은 영원히 잠겨 있을 테지만 안에서 잠긴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지옥에서는 아무도 진정으로 뉘우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지은 몇몇 죄 때문에 사람을 영원히 벌하지는 않으시며, 진정한 믿음과 회개로 마음을 쏟아놓는 사람을 영원히 가두지도 않으신다.
지옥에 있는 자는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처럼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진정으로 회개하지는 않는다.
루이스의 지옥 묘사는 또한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우리의 죄악된 욕망에 넘겨 주신다는 것을 잘 일깨워 준다.
우리가 받는 벌의 한 부분은 하나님이 “그래, 네 죄악된 길을 좇아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이런 제한적 의미에서, 지옥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지옥을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분리됨이나 그리스도 없는 영원으로 묘사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지옥은 둘 모두다.
그러나 이러한 완곡 어법이 하나님의 심판은 단지 그 무엇이 없거나 그 누가 없는 상태 이상이라는 사실을, 곧 지옥은 경건하지 못한 자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저주라는 개념을 삼켜 버려서는 안 된다.
성경의 어느 구절은 심판을 “주의 얼굴 … 을 떠나” 있음으로 묘사하면서 뒤이어 이런 자는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고 말한다(살후 1:9).
우리가 늘 영원한 형벌을 ‘그리스도 없는 영원’이나 ‘하나님에게서 분리됨’이나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지옥’이라 말한다면 성경의 언어에 충실하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강력하고 위협적으로 전하시려는 타격을 우리가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진노는 단지 결과가 아니다.
진노는 보응이다.
--- 「종말론 / DAY 242 지옥, 하나님의 형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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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1주에 5일, 알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는 매일 묵상집으로

연말연초가 되면 한 해 동안 하루의 중심을 잡아 줄 묵상집을 찾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대부분이 성경 본문을 근거로 하지만, 주로 저자의 사적인 묵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묵상집에 감흥을 잃지는 않았는가? 무언가 새로운 묵상집을 찾는가?

그렇다면 교리를 묵상해 보라.
교리를 알면 교리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
교리를 통해 내가 사랑하는 분을 더욱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는 교리는 알아서 더 감미롭고, 모르는 교리는 새로워서 더 눈부시다.
교리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신자라면, 「매일 교리」를 절대 외면하지 못할 것이다.

조직 신학의 얼개과 개념을 학습하는 참고서로

신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옳은 개념을 머릿속에 주입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그분을 더 온전히 ‘기뻐하며’, 그분께 순종하며 그분과 ‘동행하기’ 위해서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이 우리의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언덕을 보는 데서 하나님의 영광의 산을 보는 데로 옮겨 가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배우며, 이런 이유로 교리가 필요하다.「매일 교리」는 프롤레고메나(성경론), 신론, 인간론, 언약 신학,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까지 조직 신학의 전통적인 주요 주제로 구성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의 산으로 이제 막 출발한 그리스도인에게 믿고 의지할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평신도도 쉽게 접근 가능한 신학 입문서로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다가도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모태신앙이지만 기독교가 무엇인지 말하라면 어렵다.
신앙고백은 있는데 예배도 찬양도 기도도 말씀 생활도 이렇게 하면 되는 건지 헷갈린다.

하나님을 더 알고 바른 신앙을 소유하고 싶지만, 교리도 신학도 평신도인 내게는 너무 거창하고 어렵게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벌코프, 그루뎀… 유명한 이름이 많은데, 시작하기도 전에 압도되어 불씨가 사그라든다.

하루 2장 정도를 공부하도록 구성된 「매일 교리」는 우리 영혼에 적절한 도전을 주는 적당히 단단한 열매다.
5일의 훈련과 이틀의 쉼, 그 사이에서 우리의 믿음은 천천히 성숙해지고, 혼란했던 예배가 진정한 자유를 얻을 것이다.

▶ 추천합니다!

1.
조직 신학의 내용이 익숙한 목회자, 신학자: 매일 교리를 묵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2.
신학 공부를 시작한 신학생: 조직 신학의 기본 얼개와 개념을 학습할 수 있다.
3.
하나님을 더욱 알기 원하는 진지한 평신도: 접근하기 쉬운 조직 신학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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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21일
- 쪽수, 무게, 크기 : 696쪽 | 1,010g | 150*225*40mm
- ISBN13 : 9788904021079
- ISBN10 : 8904021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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