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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번째 클래식 수업
나의 첫 번째 클래식 수업
Description
책소개
교과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19인의 음악가
그들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다


《나의 첫 번째 클래식 수업》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악가 19인의 삶과 예술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클래식은 지루하고 어렵다는 선입견을 깨고 K-팝만큼이나 재미있고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자동차가 후진할 때 나오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나 세탁기 동작이 끝나면 들리는 슈베르트의 「송어」처럼 우리 생활 속에 녹아 있는 클래식의 존재를 일깨운다.

저자 류인하는 팟캐스트 차트 1위를 기록한 「이지 클래식」의 운영자로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책에서도 어려운 용어나 어휘를 최대한 사용하지 않았으며, 쉽고 친절한 말투를 유지해 청소년은 물론 성인까지 클래식에 입문하고 싶은 모든 이에게 다가간다.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를 거쳐 낭만주의·민족주의·인상주의로 이동하며 시대별 대표 작곡가와 작품을 소개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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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K-팝만큼이나 재미있는 클래식 음악

1부 바로크 시대 | 서양 고전음악의 시작
· 비발디: 가톨릭 사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다
· 헨델: 자유를 추구한 최초의 프리랜서 뮤지션
· 바흐: ‘음악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음악가?

2부 고전주의 시대 | 질서와 균형을 갖춘 형식의 아름다움
· 하이든: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하다
· 모차르트: 5세에 즉흥곡을 연주한 천재
· 베토벤: 박수 소리조차 듣지 못한 귀머거리 작곡가

3부 낭만주의 시대의 시작과 전성기 | 형식에서 벗어나 서정적이고 화려하게
· 슈베르트: 안정적 직업을 가지라는 잔소리를 거부한 젊은이
· 멘델스존: 재능·외모·인기·집안을 다 가진 삶
· 슈만: 문학 하는 음악가, 음악 하는 문학가
· 쇼팽: 나의 심장을 폴란드의 흙에 묻어주시오
· 리스트: 진정한 1세대 아이돌이 된 악마의 피아니스트
· 브람스: 베토벤의 후계자로 불리다

4부 후기 낭만주의 및 민족주의 | 예술계에 불어온 민족운동의 바람
· 바그너: 독일 오페라의 왕, 혁명 속에서 수배자가 되다
· 차이콥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물
· 드보르작: 슬라브 민족의 색채를 찾아서
· 푸치니: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거장
· 라흐마니노프: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잊지 못한 조국

5부 인상주의 | 모네의 그림처럼 주관적 감상을 표현하라
· 드뷔시: 소리로 빛깔과 분위기를 표현하다
· 라벨: 프랑스 음악이라는 보석의 정교한 세공인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책 속으로
헨델이 오페라로 성공을 거두기 전부터, 귀족이나 왕족 중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에게 후원을 제안해 온 적이 있었습니다.
제안 중에는 몇 년간의 이탈리아 유학 자금을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도 있었죠.
하지만 헨델은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앞선 음악을 접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고, 가난한 생활도 싫었지만, 후원을 받아들이는 것은 돈 많은 고용주에게 재능을 팔아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다시 말해 헨델은 역사상 최초로 ‘프리랜서’를 추구한 음악가였습니다.
--- p.23, 본문「헨델: 자유를 추구한 최초의 프리랜서 뮤지션」중에서

시간이 지나고 하이든의 사춘기가 찾아오고 변성기가 되자, 성가대와 학교 측에서는 하이든을 졸업시켜버렸습니다.
부모님은 성직자가 되어 성당에 남으라고 권했지만, 17세의 하이든은 그 뜻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고향인 로라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3벌의 낡은 내의와 1벌의 낡은 코트가 담긴 짐을 들고 빈에서 홀로 살아남기로 말이죠.
돈 한 푼도 없이 거리로 내몰렸지만, 하이든은 함께 어울리던 거리의 친구들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살고 있는 다락방 한구석을 내어주기도 했죠.
--- p.51, 본문「하이든: 고전주의 양식을 완성하다」중에서

모차르트 부자는 로마에 도착하여 바티칸의 시스티나 대성당을 방문했습니다.
교황청 소속 작곡가 알레그리가 작곡한 『미제레레』중에서가 부활절 주간에만 연주되고 있었거든요.
교황의 특별 명령에 의해, 외부로 『미제레레』중에서의 악보 유출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부활절 주간에 시스티나 성당을 방문하는 게 곡을 들어볼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이때 14세의 소년 모차르트는 곡을 단 1번 듣고 모두 암기해서 숙소에 돌아와서 거의 완벽하게 악보에 옮겼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성당에 방문해 음악을 들은 후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을 수정해 악보를 완성했습니다.
--- p.69, 본문「모차르트: 5세에 즉흥곡을 연주한 천재」중에서

1824년, 빈의 케른트너토르 극장에서 교향곡 『합창』중에서이 공개되었을 때 베토벤은 이미 귀가 멀어버린 상태라, 자신이 만든 교향곡 연주에서 역할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날 베토벤은 지휘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악보를 보면서 연주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중요한 부분에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청중은 기립하여 베토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청력을 상실한 베토벤은 객석의 환호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합창에 참여했던 알토 가수가 그의 소맷단을 잡아끌어 그의 몸을 돌려세웠고, 그제야 베토벤은 청중의 열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p.89~90, 본문「베토벤: 박수 소리조차 듣지 못한 귀머거리 작곡가」중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평탄하게 살기를 바랐기에 사범학교를 추천했습니다.
슈베르트는 교사 자격증을 얻기 위해 1년간 사범학교에 입학해서 교사 양성 과정을 이수했고, 이후 21세가 되는 해까지 4년간 아버지의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일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괴로워했죠.
대신 학교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작곡에 몰두하며 많은 곡을 완성했습니다.
--- p.101~102, 본문「슈베르트: 안정적 직업을 가지라는 잔소리를 거부한 젊은이」중에서

리스트가 주최했던 살롱 모임에서, 쇼팽은 여류 소설가였던 조르주 상드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상드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장을 즐겨 하고, 파이프 담배도 피우기도 하는 등 당시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이었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첫인상과 달리 상드의 지적인 모습과 감수성 풍부한 모습을 보며 쇼팽도 그녀에게 끌렸습니다.
특히 상드의 헌신적인 모습에 그러했죠.
그녀는 6살이나 연상이었는데, 쇼팽과 동거 생활을 하면서 결핵에 걸린 그를 데리고 따뜻한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으로 가서 요양도 시키며 극진히 보살폈습니다.
--- p.150~151, 본문「쇼팽: 나의 심장을 폴란드의 흙에 묻어주시오」중에서

차이콥스키의 우울증과 신경쇠약 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차이콥스키의 신작 「교향곡 6번 ‘비창’」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의 쌍둥이 동생 중 하나인 모데스트가 첫 공연 후 ‘비창’이라는 부제를 달자고 할 정도로 무겁고 어두운 곡이었습니다.
첫 연주회가 끝난 후 관객들은 야유를 보내지도, 호응을 하지도 않으며 무관심과 무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차이콥스키의 활동에 제약이 걸렸습니다.
--- p.215, 본문「차이콥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물」중에서

드보르작이 국립극장 오케스트라 비올라 연주자로 일하게 된 지 4년째가 되던 해, 당시 체코의 대표 작곡가인 스메타나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해왔습니다.
스메타나는 체코 국민악파의 창시자로, 훗날 드보르작이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었습니다.
스메타나는 체코의 역사, 전설, 풍경 같은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곡가였는데, 이런 선배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게 되면서 드보르작 또한 체코 민족을 위한 음악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되었죠.
--- p.221~222, 본문「드보르작: 슬라브 민족의 색채를 찾아서」중에서

푸치니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후,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생전 푸치니와 끈끈한 유대를 유지했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이날 토스카니니는 푸치니가 작곡했던 마지막 3막 1장, 칼라프 왕자의 하녀 류가 죽는 장면을 연주한 후, “푸치니 선생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지휘봉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첫 공연 이후 「투란도트」는 푸치니의 친구이자 제자인 알파노가 푸치니가 남긴 스케치를 기초로 하여 나머지 남은 두 장면을 완성했고, 현재는 알파노가 완성한 버전으로 무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
--- p.239~240, 본문「푸치니: 이탈리아 베리스모 오페라의 거장」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형 기획사 캐스팅 거부하고 인디로 남은 ‘헨델’
팬덤이 마차 타고 쫓아다닌 1세대 아이돌 ‘리스트’

새로운 시각으로 클래식을 즐기다


1세대 아이돌이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HOT나 지오디? 아니면 댄스 그룹의 조상님으로 불리는 소방차? 진정한 최초의 아이돌은 따로 있다.
바로 19세기 유럽 최고의 인기 뮤지션이었던 리스트다.
그의 팬덤이 벌인 행동을 살펴보자.

리스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가였습니다.
곡예에 가까운 연주에 빠진 많은 귀부인이 그의 팬이었죠.
연주회 중에 리스트가 피우던 시가 꽁초나 끊어진 줄, 연주 도중 벗어 던진 장갑 같은 잡동사니를 차지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했고, 연주가 끝나고 귀가하는 리스트의 마차 뒤로 수백 대의 귀부인 마차가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 리스트 신드롬을 ‘리스토마니아(Lisztomania)’라고 하는데, 오늘날 광적인 애호가를 이르는 단어 ‘마니아(Mania)’의 기원이기도 합니다.
_163~164쪽 「리스트: 진정한 1세대 아이돌이 된 악마의 피아니스트」

그런가 하면 ‘인디 정신’으로 무장한 헨델도 있다.
그의 음악에 빠진 수많은 왕족과 귀족이 후원자로 나섰지만 그는 “고용주에게 재능을 팔아버리고 싶지 않다.”며 프리랜서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가난은 싫지만 자본에 묶이기는 더욱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영국 귀족 내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누렸으며, 헨델의 팬덤과 안티가 편을 나누어 싸우다가 정치적으로까지 대립한 일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레전드라고 할 만하다.

클래식으로 후크송을 만든 작곡가도 있다.
드라마나 영화 삽입곡으로 익숙한 음악인 라벨의 「볼레로」는 하나의 짧은 멜로디가 수없이 반복되는 구조로, 기승전결도 없고 감정의 변화도 없는 실험적 음악이다.
이 곡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했을 때 한 노인이 “쓰레기! 졸작!”이라고 외쳤다고 한다.
마치 무의미한 가사를 되풀이하는 후크송을 들으며 “이게 무슨 노래야?”라고 말하는 기성세대가 떠오르는 장면이다.

이처럼 클래식 음악의 이면에는 흥미로운 사건이 숨어 있다.
갑자기 대중의 주목을 받은 행운아도 있지만, 스캔들로 추락한 스타도 있으며, 가난이나 루머, 질병에 시달려 평생을 고통받은 아티스트도 있다.
마치 지금의 연예계나 예술계가 그렇듯이 말이다.
이제 편견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클래식 음악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의 첫 번째 클래식 수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최애’ 클래식을 만나게 될 것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30일
- 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397g | 148*210*18mm
- ISBN13 : 9791164162628
- ISBN10 : 116416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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