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무르 승전기
Description
책소개
몽골제국은 13~14세기에 ‘팍스 몽골리카’를 구가했지만, 14세기 중반이 되자 급속히 붕괴했다.
1368년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몽골초원에서는 100년 넘게 내전이 지속됐다.
그사이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여러 세력이 등장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 ‘몽골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있었으니,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티무르제국(1370~1507)이다.
티무르는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유목 집단을 통합하고 서차가타이울루스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서 사망할 때까지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정복했다.
이 책 『티무르 승전기』는 ‘천궁의 합의 군주’이자 ‘세계정복자’인 티무르가 일으킨 정복 전쟁 및 영토 확장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며 동서의 세계가 다시 한번 연결되는 장면을 드러낸다.
이 책 『티무르 승전기』는 15세기의 페르시아 학자 야즈디가 티무르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서 『승전기』(?afar-n?ma)를 비이슬람권 최초로 완역한 이주연의 박사학위 논문 「티무르朝 史書, 야즈디 撰 『勝戰記』(?afar-n?ma)의 譯註」를, 다시 역사 교양서 형태로 축약·편집한 것이다.
단지 번역에 그치지 않고 장마다 당시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패권을 그린 지도를 넣고, 티무르의 가계도와 연대표,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및 충실한 해제를 추가하여 교양서로서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1368년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간 뒤 몽골초원에서는 100년 넘게 내전이 지속됐다.
그사이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여러 세력이 등장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 ‘몽골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있었으니,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티무르제국(1370~1507)이다.
티무르는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의 여러 유목 집단을 통합하고 서차가타이울루스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서 사망할 때까지 세계를 누비며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정복했다.
이 책 『티무르 승전기』는 ‘천궁의 합의 군주’이자 ‘세계정복자’인 티무르가 일으킨 정복 전쟁 및 영토 확장 과정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며 동서의 세계가 다시 한번 연결되는 장면을 드러낸다.
이 책 『티무르 승전기』는 15세기의 페르시아 학자 야즈디가 티무르의 일대기를 기록한 사서 『승전기』(?afar-n?ma)를 비이슬람권 최초로 완역한 이주연의 박사학위 논문 「티무르朝 史書, 야즈디 撰 『勝戰記』(?afar-n?ma)의 譯註」를, 다시 역사 교양서 형태로 축약·편집한 것이다.
단지 번역에 그치지 않고 장마다 당시 중앙유라시아 지역의 패권을 그린 지도를 넣고, 티무르의 가계도와 연대표, 주요 등장인물 소개 및 충실한 해제를 추가하여 교양서로서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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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기
목차
서문 4
프롤로그.
아미르 티무르의 탄생 15
사힙키란의 축복받은 탄생 16
이 책의 특수성, 그리고 몇 가지 이점 20
1장.
혼란의 중앙아시아, 티무르의 등장
중앙아시아의 당시 상황 27
모굴칸국 투글룩 티무르 칸의 공격과 티무르의 대응 32
카라우나스부 아미르 후세인과의 동맹, 유랑 생활 36
꼭두각시 칸 카불 샤 오글란의 등극, 모굴칸국과의 진흙탕 전투 42
아미르 후세인과의 분열과 갈등 46
후라산으로 피신한 아미르 티무르와 그의 반격 51
아미르 후세인과의 화해와 바닥샨 원정 56
아미르 후세인에 대한 최종 승리와 마와라안나흐르 장악 61
2장.
중앙아시아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티무르의 등극과 쿠릴타이 69
아무다리야강 남쪽과 모굴칸국 공격 72
호라즘 공격과 화해, 아들 자항기르와 호라즘 왈리의 딸 칸자다의 혼인 74
모굴칸국의 아미르 카마르 앗딘 공격 78
주치울루스 톡타미쉬에 대한 후원 83
후라산 서부 공격과 헤라트 점령 88
마잔다란과 시스탄, 아프간 공격 93
이란 서부로의 첫걸음 102
3장.
아제르바이잔을 놓고 패권 경쟁을 시작한 3년 원정
아제르바이잔으로의 출정과 조지아 원정 111
카라 무함마드·무자파르조 원정과 사마르칸트 귀환 116
호라즘과 자타 공격 122
킵차크 원정의 시작 127
군대의 열병과 톡타미쉬 칸 추적 131
톡타미쉬군과의 결전과 승리, 그리고 귀환 135
4장.
이란 남서부와 이라크, 캅카스를 넘은 5년 원정
5년 원정의 시작과 마잔다란 점령 143
시라즈로의 진격과 무자파르왕국의 멸망 148
이라크 바그다드로의 진격과 산악 유목민 원정 153
디야르바크르 원정과 아미르자다 우마르 셰이흐의 사망 159
아나톨리아 동부 원정과 아미르자다 울룩벡의 탄생 164
조지아 원정과 이브라힘 술탄의 탄생 167
톡타미쉬 칸 원정과 러시아 공격 172
호르무즈 원정과 사마르칸트로의 귀환 176
정원과 성의 보수 및 모굴칸국과의 혼담 182
5장.
인더스강을 넘어 델리와 갠지스강까지, 인도 원정
티무르가 인도를 원정한 이유와 아프간으로의 진격 191
델리로 향하는 길에서 이교도와의 전쟁 196
델리술탄국의 수도로 201
델리를 넘어 갠지스강 유역 원정 206
티무르의 귀환 결정과 카슈미르로의 진격 209
티무르의 귀환과 사마르칸트 건설 계획 214
6장.
이슬람권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결전, 7년 원정
티무르가 이란 7년 원정을 시작한 이유 225
티무르의 조지아 원정과 자니 벡 그루지의 항복 230
티무르의 룸 원정 233
티무르의 시리아 원정 238
디야르바크르를 거쳐 이라크의 바그다드 원정 244
동영지인 아제르바이잔 카라바그에서 겨울나기 248
오스만 술탄 바야지드와의 일전 253
티무르가 오스만 술탄 바야지드를 포로로 잡다 257
룸의 유럽 세력 공격과 후계자 술탄 무함마드의 죽음 264
룸에서 귀환하여 조지아로 진격 269
이란의 각 지역에 대한 조사와 바일라칸 건설 274
7년 원정의 끝과 사마르칸트 귀환 279
에필로그.
중국 정벌의 꿈과 사후의 혼란 284
키타이 원정을 계획한 이유와 티무르의 출정 284
티무르의 사망과 지배층의 이해관계 289
티무르의 관과 부인들은 사마르칸트로, 왕자들과 아미르들은 부하라로 293
아미르자다 할릴 술탄의 사마르칸트 입성과 자손들의 동향 297
사힙키란의 가계 300
티무르왕조 계보도 304
연대표 305
해제
쿠레겐과 사힙키란, 티무르의 두 칭호 314
야즈디가 그린 사힙키란 티무르 335
야즈디 『승전기』의 사료적 가치 재고 371
번역에 이용한 사본과 기왕의 연구 399
『승전기』의 주요 등장인물 418
지명 찾아보기 424
프롤로그.
아미르 티무르의 탄생 15
사힙키란의 축복받은 탄생 16
이 책의 특수성, 그리고 몇 가지 이점 20
1장.
혼란의 중앙아시아, 티무르의 등장
중앙아시아의 당시 상황 27
모굴칸국 투글룩 티무르 칸의 공격과 티무르의 대응 32
카라우나스부 아미르 후세인과의 동맹, 유랑 생활 36
꼭두각시 칸 카불 샤 오글란의 등극, 모굴칸국과의 진흙탕 전투 42
아미르 후세인과의 분열과 갈등 46
후라산으로 피신한 아미르 티무르와 그의 반격 51
아미르 후세인과의 화해와 바닥샨 원정 56
아미르 후세인에 대한 최종 승리와 마와라안나흐르 장악 61
2장.
중앙아시아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티무르의 등극과 쿠릴타이 69
아무다리야강 남쪽과 모굴칸국 공격 72
호라즘 공격과 화해, 아들 자항기르와 호라즘 왈리의 딸 칸자다의 혼인 74
모굴칸국의 아미르 카마르 앗딘 공격 78
주치울루스 톡타미쉬에 대한 후원 83
후라산 서부 공격과 헤라트 점령 88
마잔다란과 시스탄, 아프간 공격 93
이란 서부로의 첫걸음 102
3장.
아제르바이잔을 놓고 패권 경쟁을 시작한 3년 원정
아제르바이잔으로의 출정과 조지아 원정 111
카라 무함마드·무자파르조 원정과 사마르칸트 귀환 116
호라즘과 자타 공격 122
킵차크 원정의 시작 127
군대의 열병과 톡타미쉬 칸 추적 131
톡타미쉬군과의 결전과 승리, 그리고 귀환 135
4장.
이란 남서부와 이라크, 캅카스를 넘은 5년 원정
5년 원정의 시작과 마잔다란 점령 143
시라즈로의 진격과 무자파르왕국의 멸망 148
이라크 바그다드로의 진격과 산악 유목민 원정 153
디야르바크르 원정과 아미르자다 우마르 셰이흐의 사망 159
아나톨리아 동부 원정과 아미르자다 울룩벡의 탄생 164
조지아 원정과 이브라힘 술탄의 탄생 167
톡타미쉬 칸 원정과 러시아 공격 172
호르무즈 원정과 사마르칸트로의 귀환 176
정원과 성의 보수 및 모굴칸국과의 혼담 182
5장.
인더스강을 넘어 델리와 갠지스강까지, 인도 원정
티무르가 인도를 원정한 이유와 아프간으로의 진격 191
델리로 향하는 길에서 이교도와의 전쟁 196
델리술탄국의 수도로 201
델리를 넘어 갠지스강 유역 원정 206
티무르의 귀환 결정과 카슈미르로의 진격 209
티무르의 귀환과 사마르칸트 건설 계획 214
6장.
이슬람권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결전, 7년 원정
티무르가 이란 7년 원정을 시작한 이유 225
티무르의 조지아 원정과 자니 벡 그루지의 항복 230
티무르의 룸 원정 233
티무르의 시리아 원정 238
디야르바크르를 거쳐 이라크의 바그다드 원정 244
동영지인 아제르바이잔 카라바그에서 겨울나기 248
오스만 술탄 바야지드와의 일전 253
티무르가 오스만 술탄 바야지드를 포로로 잡다 257
룸의 유럽 세력 공격과 후계자 술탄 무함마드의 죽음 264
룸에서 귀환하여 조지아로 진격 269
이란의 각 지역에 대한 조사와 바일라칸 건설 274
7년 원정의 끝과 사마르칸트 귀환 279
에필로그.
중국 정벌의 꿈과 사후의 혼란 284
키타이 원정을 계획한 이유와 티무르의 출정 284
티무르의 사망과 지배층의 이해관계 289
티무르의 관과 부인들은 사마르칸트로, 왕자들과 아미르들은 부하라로 293
아미르자다 할릴 술탄의 사마르칸트 입성과 자손들의 동향 297
사힙키란의 가계 300
티무르왕조 계보도 304
연대표 305
해제
쿠레겐과 사힙키란, 티무르의 두 칭호 314
야즈디가 그린 사힙키란 티무르 335
야즈디 『승전기』의 사료적 가치 재고 371
번역에 이용한 사본과 기왕의 연구 399
『승전기』의 주요 등장인물 418
지명 찾아보기 424
책 속으로
연구를 진행할수록 『승전기』 속에서 다른 점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사서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서의 내용이 그만큼 흡인력이 있음을 방증한다.
어릴 때부터 세상만사에 의심이 앞서는 성향을 타고났고, 거기에 직업적 습관까지 더해져 어떠한 매체를 보아도 의구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내가 『승전기』를 읽으면서 티무르의 영웅적 면모에 한 번도 의심의 촉을 세우지 않았다니, 정말 훌륭한 역사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책 속의 여러 내용이 새삼 신기하고 놀랍게 여겨졌다.
이 역사서에는 한때 내가 천문학자를 꿈꿨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천문학과 역법 지식이 너무나 당연하게 녹아 있었다.
--- 「서문」 중에서
마와라안나흐르와 투르키스탄의 여러 왕국이 자타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을 때, 대아미르와 노얀 등의 귀족들, 대부족의 지도자들은 모두 타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력이 통합되지 않고 무질서해지자 아미르 후세인과 사힙키란은 차가타이 칸의 후손 중에 한 사람을 칸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1364년에 아미르와 노얀 무리들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고 통치의 방책과 왕국의 주요 업무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당시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다르비시의 옷을 입고 성채에 들어와 있던 두아 칸의 아들 엘지기데이의 아들 도르지의 아들 카불 샤 오글란을 왕좌에 앉히기로 했다.
튀르크 군주들의 관례에 따라 그에게 컵을 주었고, 모든 이가 일제히 아홉 번 무릎을 꿇었다.
--- 「1장.
혼란의 중앙아시아, 티무르의 등장」 중에서
(1385년 소해) 그 겨울에 톡타미쉬 칸이 주치 가문의 열두 오글란과 9투만의 군대를 데르벤드 길을 통해 타브리즈로 파견했다.
그들이 시르반을 통과하여 아제르바이잔으로 와서 타브리즈 영역을 장악하였을 때, 그곳을 지킬 하킴이 없었으므로 주민들은 아미르 왈리, 마흐무드 칼칼리와 연합하여 저항했다.
그러나 칸의 군대가 도시를 점령했고, 도시를 약탈한 후 포로와 함께 겨울에 본거지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사힙키란은 이제 분열된 이란의 모든 도시를 지배하고 무슬림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여겼다.
--- 「2장.
중앙아시아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중에서
1397년 가을에 사힙키란은 명령을 내려, 캉굴초원 옆에 정원을 세우게 했다.
온 왕국의 기술자들과 건축가들이 상서로운 때에 지시를 받들어 정원의 기초를 세웠다.
건물은 각 변이 1500가즈-샤리아였는데, 네 기둥 사이에 대문을 만들고 아치를 지붕에 고정했으며 타일로 장식했다.
또한 정원 바닥은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과실수와 꽃과 나무로 장식했다.
이곳을 딜구샤 정원이라 불렀으며, 사힙키란은 그곳에 히즈르 호자 오글란의 딸 투칼 하눔의 이름을 붙였다.
--- 「4장.
이란 남서부와 이라크, 캅카스를 넘은 5년 원정」 중에서
물탄에서 전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힙키란은 우상 숭배자를 제거하기 위한 키타이 원정을 결정하고 군대를 소집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먼저 힌두스탄의 이교도들을 상대로 성전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범해인 1398년 라잡월(3~4월)에 사힙키란은 힌두스탄으로 출발하면서 아미르자다 미란샤의 아들 아미르자다 우마르를 사마르칸트에 남겨두었다.
사힙키란은 티르미드에 도착하여 아무다리야강을 건넜고, 쿨름을 거쳐 가즈닉과 사만칸 길을 통해 바글란과 여러 산맥을 지나, 안다라브에 병영을 세웠다.
--- 「5장.
인더스강을 넘어 델리와 갠지스강까지, 인도 원정」 중에서
사힙키란은 타브리즈로 향하며 도중에 사냥을 했다.
니시빈(누사이빈) 요새에서 항복을 받았고, 모술에서는 티그리스강에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
이때 바그다드에서 파라즈의 상황에 관한 보고가 있었으므로, 사힙키란은 유수진으로 하여금 타브리즈로 가게 하고, 자신은 알툰 쿠프라크 길을 통해 바그다드로 갔다.
그곳에 도달한 사힙키란은 티그리스강 하류의 ‘까리야 알 우캅’ 대문 맞은편에 자리했으며, 야를릭을 반포하여 나큽치들에게 성벽을 파게 했다.
파라즈는 사힙키란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계속 저항했다.
사힙키란은 유수진을 소환했고, 수많은 군대가 도착하여 바그다드를 반지 가운데에 놓인 보석처럼 에워쌌다.
사힙키란의 군대가 굴을 파서 불꽃을 놓고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면, 적은 즉시 그 구멍을 구운 벽돌과 석회로 메우는 식으로 약 40일간 공방이 지속되었다.
--- 「6장.
이슬람권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결전, 7년 원정」 중에서
사힙키란은 그간 여러 왕과 하킴의 갈등과 반목, 노상강도와 악당들의 선동으로 인해 혼돈에 빠진 이 세계를 바꾸고 치료하기 위해 여러 왕국을 정복했다.
이에 세계가 평안과 안정의 상태에 접어들어 동서간의 왕래가 편안하고 안전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해를 입고 흩어졌다.
이에 그는 이교도의 땅인 중국으로 가서 불교 사찰과 조로아스터교 성전을 모스크로 대체하면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성전을 알리는 야를릭이 반포되어 타바치들이 군사의 수를 천호별로 조사하고, 병력이 확장된 곳은 문서에 기록했다.
이후 모든 울루스의 아미르와 하킴에게 군대의 정비와 병사의 징집을 명령했다.
--- 「에필로그.
중국 정벌의 꿈과 사후의 혼란」 중에서
나는 이 책에서 『승전기』를 구성하는 336개 이야기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및 여섯 장으로 분류했다.
이는 원문에는 없는 편의적 구분이다.
프롤로그로 분류한 부분은 본격적으로 역사적 사실이 전개되기 전, 야즈디 본인이 구상하였던 세 개 장(Maq?la)에 대한 설명과 티무르의 탄생, 『승전기』의 특징 등에 대한 개괄로, 전반부 네 개의 이야기를 여기에 배치했다.
이 부분의 특징은 페르시아 장편시의 서론에 해당하는 두 항목, 즉 무틀라(Mu?la‘)와 타슈빕(Tashb?b) 형식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의 영웅서사시는 장편시 형태로 기록되었으므로, 이 부분 역시 『승전기』를 하나의 영웅서사시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다.
사서에 매몰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서의 내용이 그만큼 흡인력이 있음을 방증한다.
어릴 때부터 세상만사에 의심이 앞서는 성향을 타고났고, 거기에 직업적 습관까지 더해져 어떠한 매체를 보아도 의구심의 잣대를 들이대는 내가 『승전기』를 읽으면서 티무르의 영웅적 면모에 한 번도 의심의 촉을 세우지 않았다니, 정말 훌륭한 역사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니 책 속의 여러 내용이 새삼 신기하고 놀랍게 여겨졌다.
이 역사서에는 한때 내가 천문학자를 꿈꿨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천문학과 역법 지식이 너무나 당연하게 녹아 있었다.
--- 「서문」 중에서
마와라안나흐르와 투르키스탄의 여러 왕국이 자타의 지배에서 해방되었을 때, 대아미르와 노얀 등의 귀족들, 대부족의 지도자들은 모두 타인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세력이 통합되지 않고 무질서해지자 아미르 후세인과 사힙키란은 차가타이 칸의 후손 중에 한 사람을 칸으로 세우기로 했다.
이 결정을 이행하기 위해 1364년에 아미르와 노얀 무리들을 모아 쿠릴타이를 열고 통치의 방책과 왕국의 주요 업무에 관해 이야기했으며, 당시의 전쟁에서 피해를 입을까 두려워 다르비시의 옷을 입고 성채에 들어와 있던 두아 칸의 아들 엘지기데이의 아들 도르지의 아들 카불 샤 오글란을 왕좌에 앉히기로 했다.
튀르크 군주들의 관례에 따라 그에게 컵을 주었고, 모든 이가 일제히 아홉 번 무릎을 꿇었다.
--- 「1장.
혼란의 중앙아시아, 티무르의 등장」 중에서
(1385년 소해) 그 겨울에 톡타미쉬 칸이 주치 가문의 열두 오글란과 9투만의 군대를 데르벤드 길을 통해 타브리즈로 파견했다.
그들이 시르반을 통과하여 아제르바이잔으로 와서 타브리즈 영역을 장악하였을 때, 그곳을 지킬 하킴이 없었으므로 주민들은 아미르 왈리, 마흐무드 칼칼리와 연합하여 저항했다.
그러나 칸의 군대가 도시를 점령했고, 도시를 약탈한 후 포로와 함께 겨울에 본거지로 돌아갔다.
이 소식을 들은 사힙키란은 이제 분열된 이란의 모든 도시를 지배하고 무슬림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 여겼다.
--- 「2장.
중앙아시아를 넘어 주변 지역으로」 중에서
1397년 가을에 사힙키란은 명령을 내려, 캉굴초원 옆에 정원을 세우게 했다.
온 왕국의 기술자들과 건축가들이 상서로운 때에 지시를 받들어 정원의 기초를 세웠다.
건물은 각 변이 1500가즈-샤리아였는데, 네 기둥 사이에 대문을 만들고 아치를 지붕에 고정했으며 타일로 장식했다.
또한 정원 바닥은 기하학적으로 분할하고, 과실수와 꽃과 나무로 장식했다.
이곳을 딜구샤 정원이라 불렀으며, 사힙키란은 그곳에 히즈르 호자 오글란의 딸 투칼 하눔의 이름을 붙였다.
--- 「4장.
이란 남서부와 이라크, 캅카스를 넘은 5년 원정」 중에서
물탄에서 전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힙키란은 우상 숭배자를 제거하기 위한 키타이 원정을 결정하고 군대를 소집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먼저 힌두스탄의 이교도들을 상대로 성전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범해인 1398년 라잡월(3~4월)에 사힙키란은 힌두스탄으로 출발하면서 아미르자다 미란샤의 아들 아미르자다 우마르를 사마르칸트에 남겨두었다.
사힙키란은 티르미드에 도착하여 아무다리야강을 건넜고, 쿨름을 거쳐 가즈닉과 사만칸 길을 통해 바글란과 여러 산맥을 지나, 안다라브에 병영을 세웠다.
--- 「5장.
인더스강을 넘어 델리와 갠지스강까지, 인도 원정」 중에서
사힙키란은 타브리즈로 향하며 도중에 사냥을 했다.
니시빈(누사이빈) 요새에서 항복을 받았고, 모술에서는 티그리스강에 다리를 만들어 건넜다.
이때 바그다드에서 파라즈의 상황에 관한 보고가 있었으므로, 사힙키란은 유수진으로 하여금 타브리즈로 가게 하고, 자신은 알툰 쿠프라크 길을 통해 바그다드로 갔다.
그곳에 도달한 사힙키란은 티그리스강 하류의 ‘까리야 알 우캅’ 대문 맞은편에 자리했으며, 야를릭을 반포하여 나큽치들에게 성벽을 파게 했다.
파라즈는 사힙키란이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도 계속 저항했다.
사힙키란은 유수진을 소환했고, 수많은 군대가 도착하여 바그다드를 반지 가운데에 놓인 보석처럼 에워쌌다.
사힙키란의 군대가 굴을 파서 불꽃을 놓고 성벽 일부를 무너뜨리면, 적은 즉시 그 구멍을 구운 벽돌과 석회로 메우는 식으로 약 40일간 공방이 지속되었다.
--- 「6장.
이슬람권의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결전, 7년 원정」 중에서
사힙키란은 그간 여러 왕과 하킴의 갈등과 반목, 노상강도와 악당들의 선동으로 인해 혼돈에 빠진 이 세계를 바꾸고 치료하기 위해 여러 왕국을 정복했다.
이에 세계가 평안과 안정의 상태에 접어들어 동서간의 왕래가 편안하고 안전해졌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해를 입고 흩어졌다.
이에 그는 이교도의 땅인 중국으로 가서 불교 사찰과 조로아스터교 성전을 모스크로 대체하면 죄악을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판단했다.
성전을 알리는 야를릭이 반포되어 타바치들이 군사의 수를 천호별로 조사하고, 병력이 확장된 곳은 문서에 기록했다.
이후 모든 울루스의 아미르와 하킴에게 군대의 정비와 병사의 징집을 명령했다.
--- 「에필로그.
중국 정벌의 꿈과 사후의 혼란」 중에서
나는 이 책에서 『승전기』를 구성하는 336개 이야기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및 여섯 장으로 분류했다.
이는 원문에는 없는 편의적 구분이다.
프롤로그로 분류한 부분은 본격적으로 역사적 사실이 전개되기 전, 야즈디 본인이 구상하였던 세 개 장(Maq?la)에 대한 설명과 티무르의 탄생, 『승전기』의 특징 등에 대한 개괄로, 전반부 네 개의 이야기를 여기에 배치했다.
이 부분의 특징은 페르시아 장편시의 서론에 해당하는 두 항목, 즉 무틀라(Mu?la‘)와 타슈빕(Tashb?b) 형식이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의 영웅서사시는 장편시 형태로 기록되었으므로, 이 부분 역시 『승전기』를 하나의 영웅서사시처럼 보이게 만드는 장치라 할 수 있다.
--- 「해제」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그는 36년 만에 몽골제국의 땅을 모두 정복하고 칭기스 칸이 얻지 못한 곳까지 함락시켰다”
티무르가 이룩한 승리의 대서사시
13세기 후반 4대 울루스 체제로 재편된 몽골제국은 이어진 100년간 ‘팍스 몽골리아’를 구가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이 되자 제국 동부와 서부의 정세가 급변하며 순식간에 붕괴했다.
제국의 동쪽에서는 카안울루스(원)가 1368년 주원장의 군대에게 대도와 상도를 빼앗긴 뒤 100년 넘게 몽골초원의 지배권을 놓고 몽골족의 내전이 지속됐다.
서부에서는 1335년 훌레구울루스의 붕괴를 시작으로 차가타이울루스와 주치울루스가 차례로 무너졌다.
거대한 세계제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수많은 세력이 등장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 ‘몽골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있었으니,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티무르제국(1370~1507)이다.
바를라스 부족 출신의 티무르는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마와라안나흐르)의 여러 유목 집단을 통합하고 서차가타이울루스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서 사망할 때까지 몽골제국의 옛 영역을 누비며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정복했다.
그가 정복한 땅은 동쪽으로는 중국 신장의 카라호자와 이르티시강 유역,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 서단의 이즈미르, 북쪽으로는 모스크바와 키예프, 남쪽으로는 북인도 델리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이 드넓은 땅을 불과 36년 만에 전부 차지했다는 점이다.
세력을 넓힌 티무르는 곧바로 여러 지식인에게 명을 내려 자신의 공적을 담은 역사서를 짓게 했다.
그의 후손들도 새롭게 떠오른 세계제국의 시조인 티무르의 승전을 담은 사서 저술을 후원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가 쓴 『승전기』(?afar n?ma)이다.
잔인무도한 살육자이자 문명의 파괴자인가, 칭기스 칸의 후예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재림인가?
사힙키란이라는 새로운 정통성으로 이슬람의 등불이 되다
우리에게 티무르는 소위 ‘절름발이 파괴자’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의 머리를 베어서 첨탑을 쌓았다는 일화(이것은 사실이다)와 그의 관 뚜껑에 적혀 있었다는 세상에 대한 저주(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등의 악명으로 그를 기억한다.
여기에 1402년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바야지드를 단번에 사로잡은 무용담이 더해지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에서 티무르의 이름은 ‘티무르 르네상스’로 더욱 유명하다.
그가 세운 제국에서 발전한 문화와 예술, 학문과 지식이 이후 ‘이슬람 문화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티무르의 원정로를 따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 아라비아와 아나톨리아, 킵차크초원과 타림분지, 호르무즈와 인도로 향했던 수많은 이주자들이 이 신생 제국의 종교와 문화, 학문과 예술을 세계 각지로 전파했다.
칭기스 칸의 후예(황금씨족)가 아닌 티무르는 칸(Kh?n)을 칭하지 못하고 부마(구레겐guregen) 지위에 만족해야 했으나, 동시에 무슬림의 지도자를 뜻하는 아미르(Am?r)로 불리며 사실상 군주로 군림했다.
동시에 그는 역사서 편찬을 통하여 자신은 신으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선전했다.
티무르가 군주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거꾸로 그에게는 이전 군주들이 내세운 정통성의 근거가 희박했음을 반증한다.
그리하여 티무르에게 새로 부여된 정통성이 바로 천궁의 합으로 선택된 군주, 사힙키란(???ib Qir?n)이다.
사힙키란은 본래 페르시아 문학에서 ‘세계정복자’를 부르던 말로, 성스러운 목성과 토성이 같은 성좌에 자리 잡은 합일 현상이 일어난 날 태어나 용기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이슬람을 널리 확산시키며 모든 이에게 정의를 실천한다는 영웅 전설에서 나왔다.
야즈디는 『승전기』에서 티무르의 승리와 정복 과정을 사힙키란이라는 특수한 정통성과 결합시켜서, ‘티무르가 바로 신의 가호를 받는 세계정복자’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를 위해 그가 『승전기』에 동원한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① 『승전기』의 주요 내용인 티무르의 광대한 영토 정복 그 자체
② 천문-점성술, 수비학과 문자학, 메시아니즘 등 신비주의 과학의 메시지
③ ‘정의로운 군주상’에 부합하는 티무르의 정의로움과 공정함
여기에 깔려 있는 다양한 학문과 사상은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의 유서 깊은 전통으로, 티무르제국 당대에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다.
따라서 『승전기』는 역사서인 동시에 당대 페르시아 지역의 학문과 예술, 사상의 정수가 담긴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 책 대신 역사서를 들고
사료 번역 연구라는 학문의 길을 걷다
야즈디의 『승전기』는 수백 년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에서 널리 읽혔다.
그런 만큼 현전하는 사본도 무척 많다(전 세계 약 200여 권).
이 사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총 네 번 페르시아어 출판물이 간행되었다.
그중 하나는 사본을 그대로 촬영하여 출판한 것이며, 나머지 세 권은 여러 사본을 조합한 편집·교감본이다.
이처럼 현존 사본이 많고 도서 출판도 비교적 활발했음에도, 번역본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 가운데 튀르크어(차가타이어) 번역이 가장 빨리 이루어졌으며(1510년, 1550년, 1822~1823년), 비이슬람권의 첫 번째 번역서는 1722년에 프랑수아 P.
드 라 크루아의 프랑스어판이다.
이듬해에는 존 다르비가 프랑스어판을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 왕자 프레더릭에게 헌상했다.
그 밖에 위구르어판(2007년), 러시아어판(2008년) 등이 출간되었으나, 기존의 번역서는 대부분 전역(全譯)이 아니었다.
2020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이주연은 비이슬람권 언어로는 최초로 『승전기』 전문을 완역(完譯)하고 3160개의 각주를 단 연구(「티무르朝 史書야즈디 撰 『勝戰記』(?afar-n?ma)의 譯註」)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본래 물리학도였던 그를 페르시아어로 된 사서 연구의 길로 돌린 인물은 바로 “몽골제국사 연구의 대칸”으로 유명한 김호동 교수였다.
학부 재학 중 전공을 변경한 그는 중국 신장의 이슬람 칸국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15년부터 『승전기』 번역을 시작했다.
『라시드 앗딘의 집사』(전 5권)를 완역한 김호동 교수의 학문 노정이 마지막 제자에게 이어진 것이다.
『티무르 승전기』는 이주연의 박사논문을 역사 교양서 형태로 다시 축약·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야즈디의 『승전기』를 구성하는 336개 이야기를 사건의 순서와 티무르제국의 발전 과정에 따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및 여섯 개의 장으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장을 설정했을 때 티무르의 활약과 제국의 발전상을 더욱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마다 티무르의 원정로와 제국의 세력 확장 지도를 추가하여 이야기의 중심 무대인 아라비아-페르시아-마와라안나흐르(트란스옥시아나)-모굴초원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생생한 지리 정보를 제공한다.
책 말미에 [티무르왕조 계보도] [연대표] [『승전기』의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붙이고, 『승전기』 사료 번역 연구의 또 다른 결과물인 「해제」까지 포함시킨 이 책의 출간으로 티무르제국과 『승전기』 연구 및 이해에서 한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한 발 앞설 수 있게 되었다.
티무르가 이룩한 승리의 대서사시
13세기 후반 4대 울루스 체제로 재편된 몽골제국은 이어진 100년간 ‘팍스 몽골리아’를 구가했다.
그러나 14세기 중반이 되자 제국 동부와 서부의 정세가 급변하며 순식간에 붕괴했다.
제국의 동쪽에서는 카안울루스(원)가 1368년 주원장의 군대에게 대도와 상도를 빼앗긴 뒤 100년 넘게 몽골초원의 지배권을 놓고 몽골족의 내전이 지속됐다.
서부에서는 1335년 훌레구울루스의 붕괴를 시작으로 차가타이울루스와 주치울루스가 차례로 무너졌다.
거대한 세계제국이 사라진 자리에서 수많은 세력이 등장하여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중 ‘몽골제국의 계승’을 표방한 나라들이 있었으니,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티무르제국(1370~1507)이다.
바를라스 부족 출신의 티무르는 1369년 트란스옥시아나(마와라안나흐르)의 여러 유목 집단을 통합하고 서차가타이울루스의 패권을 장악했다.
이후 1405년 명나라 원정길에서 사망할 때까지 몽골제국의 옛 영역을 누비며 수많은 나라와 민족과 지역을 정복했다.
그가 정복한 땅은 동쪽으로는 중국 신장의 카라호자와 이르티시강 유역, 서쪽으로는 아나톨리아 서단의 이즈미르, 북쪽으로는 모스크바와 키예프, 남쪽으로는 북인도 델리에 이르렀다.
놀라운 것은 이 드넓은 땅을 불과 36년 만에 전부 차지했다는 점이다.
세력을 넓힌 티무르는 곧바로 여러 지식인에게 명을 내려 자신의 공적을 담은 역사서를 짓게 했다.
그의 후손들도 새롭게 떠오른 세계제국의 시조인 티무르의 승전을 담은 사서 저술을 후원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책이 바로 샤라프 앗딘 알리 야즈디가 쓴 『승전기』(?afar n?ma)이다.
잔인무도한 살육자이자 문명의 파괴자인가, 칭기스 칸의 후예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재림인가?
사힙키란이라는 새로운 정통성으로 이슬람의 등불이 되다
우리에게 티무르는 소위 ‘절름발이 파괴자’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전투에서 사로잡은 포로들의 머리를 베어서 첨탑을 쌓았다는 일화(이것은 사실이다)와 그의 관 뚜껑에 적혀 있었다는 세상에 대한 저주(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등의 악명으로 그를 기억한다.
여기에 1402년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오스만제국의 술탄 바야지드를 단번에 사로잡은 무용담이 더해지곤 했다.
그러나 오늘날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에서 티무르의 이름은 ‘티무르 르네상스’로 더욱 유명하다.
그가 세운 제국에서 발전한 문화와 예술, 학문과 지식이 이후 ‘이슬람 문화 부흥’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티무르의 원정로를 따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 아라비아와 아나톨리아, 킵차크초원과 타림분지, 호르무즈와 인도로 향했던 수많은 이주자들이 이 신생 제국의 종교와 문화, 학문과 예술을 세계 각지로 전파했다.
칭기스 칸의 후예(황금씨족)가 아닌 티무르는 칸(Kh?n)을 칭하지 못하고 부마(구레겐guregen) 지위에 만족해야 했으나, 동시에 무슬림의 지도자를 뜻하는 아미르(Am?r)로 불리며 사실상 군주로 군림했다.
동시에 그는 역사서 편찬을 통하여 자신은 신으로부터 세계를 정복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선전했다.
티무르가 군주로서의 정통성을 내세우려 노력했다는 사실은, 거꾸로 그에게는 이전 군주들이 내세운 정통성의 근거가 희박했음을 반증한다.
그리하여 티무르에게 새로 부여된 정통성이 바로 천궁의 합으로 선택된 군주, 사힙키란(???ib Qir?n)이다.
사힙키란은 본래 페르시아 문학에서 ‘세계정복자’를 부르던 말로, 성스러운 목성과 토성이 같은 성좌에 자리 잡은 합일 현상이 일어난 날 태어나 용기와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이슬람을 널리 확산시키며 모든 이에게 정의를 실천한다는 영웅 전설에서 나왔다.
야즈디는 『승전기』에서 티무르의 승리와 정복 과정을 사힙키란이라는 특수한 정통성과 결합시켜서, ‘티무르가 바로 신의 가호를 받는 세계정복자’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를 위해 그가 『승전기』에 동원한 증거들은 다음과 같다.
① 『승전기』의 주요 내용인 티무르의 광대한 영토 정복 그 자체
② 천문-점성술, 수비학과 문자학, 메시아니즘 등 신비주의 과학의 메시지
③ ‘정의로운 군주상’에 부합하는 티무르의 정의로움과 공정함
여기에 깔려 있는 다양한 학문과 사상은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의 유서 깊은 전통으로, 티무르제국 당대에 더욱 큰 발전을 이루었다.
따라서 『승전기』는 역사서인 동시에 당대 페르시아 지역의 학문과 예술, 사상의 정수가 담긴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물리학 책 대신 역사서를 들고
사료 번역 연구라는 학문의 길을 걷다
야즈디의 『승전기』는 수백 년간 페르시아 이슬람 문화권에서 널리 읽혔다.
그런 만큼 현전하는 사본도 무척 많다(전 세계 약 200여 권).
이 사본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총 네 번 페르시아어 출판물이 간행되었다.
그중 하나는 사본을 그대로 촬영하여 출판한 것이며, 나머지 세 권은 여러 사본을 조합한 편집·교감본이다.
이처럼 현존 사본이 많고 도서 출판도 비교적 활발했음에도, 번역본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 가운데 튀르크어(차가타이어) 번역이 가장 빨리 이루어졌으며(1510년, 1550년, 1822~1823년), 비이슬람권의 첫 번째 번역서는 1722년에 프랑수아 P.
드 라 크루아의 프랑스어판이다.
이듬해에는 존 다르비가 프랑스어판을 영어로 번역하여 영국 왕자 프레더릭에게 헌상했다.
그 밖에 위구르어판(2007년), 러시아어판(2008년) 등이 출간되었으나, 기존의 번역서는 대부분 전역(全譯)이 아니었다.
2020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이주연은 비이슬람권 언어로는 최초로 『승전기』 전문을 완역(完譯)하고 3160개의 각주를 단 연구(「티무르朝 史書야즈디 撰 『勝戰記』(?afar-n?ma)의 譯註」)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본래 물리학도였던 그를 페르시아어로 된 사서 연구의 길로 돌린 인물은 바로 “몽골제국사 연구의 대칸”으로 유명한 김호동 교수였다.
학부 재학 중 전공을 변경한 그는 중국 신장의 이슬람 칸국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뒤, 2015년부터 『승전기』 번역을 시작했다.
『라시드 앗딘의 집사』(전 5권)를 완역한 김호동 교수의 학문 노정이 마지막 제자에게 이어진 것이다.
『티무르 승전기』는 이주연의 박사논문을 역사 교양서 형태로 다시 축약·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야즈디의 『승전기』를 구성하는 336개 이야기를 사건의 순서와 티무르제국의 발전 과정에 따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및 여섯 개의 장으로 재구성했다.
이처럼 장을 설정했을 때 티무르의 활약과 제국의 발전상을 더욱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장마다 티무르의 원정로와 제국의 세력 확장 지도를 추가하여 이야기의 중심 무대인 아라비아-페르시아-마와라안나흐르(트란스옥시아나)-모굴초원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생생한 지리 정보를 제공한다.
책 말미에 [티무르왕조 계보도] [연대표] [『승전기』의 주요 등장인물] 소개를 붙이고, 『승전기』 사료 번역 연구의 또 다른 결과물인 「해제」까지 포함시킨 이 책의 출간으로 티무르제국과 『승전기』 연구 및 이해에서 한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을 한 발 앞설 수 있게 되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2월 05일
- 쪽수, 무게, 크기 : 424쪽 | 152*225*30mm
- ISBN13 : 9791169814010
- ISBN10 : 116981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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