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정보로 건너뛰기
조선을 읽는 법 단壇
조선을 읽는 법, 단壇
Description
책소개
국가 비전에서 통치 이념, 규범적 젠더상까지
6개 단壇으로 꿰뚫어 본 조선의 ‘질서’

단壇의 성립사로 본 ‘예치禮治’의 이상과 현실

우리는 흔히 조선을 예의의 나라로 규정한다.
수도의 안팎에 설치된 여러 제사처, 《국조오례의》와 같은 예서로 정연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의례는 조선이 사대事大를 성실히 실천하는 제후국이자 음사淫祠를 철저히 타파한 유교의 나라였다는 점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러한 의례에 대한 몰두는 ‘이념의 과잉’이라는 조선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단壇의 성립사를 통해 조선의 예치가 지향한 이상과 그것을 낳고 제약한 현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탐색한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책머리에
서설

1 예의 나라로 가는 길 ― 그 길목의 세 장면
· 첫 번째 장면: 1369년(공민왕 18) 고려와 명의 첫 통교
· 두 번째 장면: 1385년(우왕 11) 어렵게 성사된 우왕의 책봉
· 세 번째 장면: 1412년(태종 12) 조선의 번국 의주 요청

[I부 하늘]

2 풍운뢰우산천성황단 ― 왕조 교체기 위기의 전유
· 근본적인 모순을 지닌 단
· 제각각 제사 드린 고려의 전통
· 홍무제의 천하일통 선언
· 산천 제사에 대한 고려의 거부와 경계
· 기록되지 않은 조선 건국 후의 산천 제사
· 정도전의 풍운뢰우단은 무엇이었을까
· 제천인가 산천인가 ― 풍운뢰우와 산천
· 중사단의 기준이 되다
· ‘시왕지제’의 유용성
· 끝내 제천의 장소가 되다

3 우사단 ― 태종이 찾아낸 제천의 대체물
· 제천이라는 딜레마
· 1414년(태종 14) 한여름에 서리가 내리던 해
· 특이한 단의 제도, 동교라는 위치
· 우사단의 그 후, 제천의 그림자

[II부 땅]

4 적전 선농단 ― 땅에서 농경으로, 화풍에서 전통으로
· 정월, 하늘과 땅의 의례가 여는 새해
· 고려의 친경 ― 화풍華風인가 유교례인가
· 고려 말, 화풍에서 전통으로
· 조선, 적전에서 선농으로
·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단
· 단제가 보여주는 예치禮治의 이상과 현실

5 사직단 ― 만들어낸 ‘제후’의 의례와 일원화의 이상
· 단壇, 유?, 주원周垣, 외장外墻
· 사직단의 기원, 그 형식의 변천
· 조선, 단의 크기를 반으로 줄이다
· 태종, 유와 주원, 외장을 건설하다
· 세종 대 박연과 정초가 지적한 모순
· 집현전 조사의 허점과 개축 방향
· 행례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는가
· 조선이 만들어낸‘ 제후’의 사직단
·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새로운 고리
· 지방은 얼마나 일원화되었는가

[III부 젠더]

6 악해독단 ― 공간과 젠더의 이항대조
· 별기은別祈恩이라는 산천 제사
· 산천 봉작의 폐지, 새로운 제사체계
· 제사 대상의 확대, 혁파되지 않은 신상神像
· 전통의 수호를 자임한 왕실 여성
· 옛 수도 개성의 관성

7 친잠과 선잠단 ― 국가가 제시하는 규범적 젠더상
· 남자는 농사짓고 여자는 길쌈하고
· 조선의 성종, 친경과 친잠을 시행하다
·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작게 건설된 단

· 결어

· 주
· 참고문헌
· 수록 그림 및 도표
· 찾아보기

책 속으로
단은 천지에 속하는 자연이나 인격성이 거의 탈각된 신격을 대상으로 제사를 드리는 장소다.
흙을 북돋아 일정한 크기로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신위와 제사상을 베풀어 제사를 지내는 정도로 건축 구성도 아주 단출하다.…이 단들은 도성의 안팎에 포진하며, 이 수도의 규범적 성격을 표상하였다.
도성 안에 위치한 사직단, 도성 밖 동쪽의 선농단, 북쪽의 여제단과 선잠단, 남쪽의 풍운뢰우산천성황단과 우사단 등, 수많은 단은…의례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 국가적 지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곳이었다.
--- p.8

고려·조선이 자처한 ‘제후국’ 레토릭의 역사적 의미, 그것을 규범화한 이유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상만이 아니라 현실을 더욱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국가의례는 단순히 관념적 산물이 아니라 이러한 치열한 정치와 외교의 현장 속에서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나온 현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p.24

공민왕 대 (명과의) 첫 통교는 조선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건국 후 국호를 ‘조선’으로 요청하며 기자를 언급한 것, 책봉 시 관복과 악기 등도 함께 요청한 것 등은 새 왕조에서 처음 나온 결정이 아니라, 이미 20여 년의 유래를 지닌 전략이었다.
--- p.39

시왕의 제도’는 조선인 이 맹종한 권위나 준거가 아니라, 조선이 필요로 하는 논리를 제공해주는 수단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제古制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며 세종 대에는 《홍무예제》보다는 고제를 준거로 예제를 정비했다’는 오래된 관점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 p.112

우사만을 위한 단을 설치한 것, 제사 대상으로 상공의 급에 해당하는 6위의 신격을 창조한 것, 그것을 동교에 설치한 것, 단의 크기를 결정한 것 모두 전례가 없거나 이미 잊힌 전통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의 우사단은 사실상 만들어낸 전통이다.
--- p.136

조선의 군주는…절박한 상황에서 백성을 위해 기도를 대리하는 군주의 상을 만들어야 하기도 했다.
호천상제라는 최고의 존재를 포기한 순간, 그럼에도 백성을 위한 기원을 실천하는 군주가 되기 위해 태종은 새로운 ‘올바른 의례’의 장소를 창안하였고, 성종은 그곳을 개수하고 위치를 옮겼다.
--- p.142

원제元制의 개혁이라는 목표 아래 유교 의례는 더 이상 고유문화와 다른, 이질적 문화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향해야 할 ‘전통’으로 제시됐다.
그 속에서 유교 의례의 독점적 성립은 사회의 이념적 전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적전 선농단 제도는 땅에 대한 유교 의례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받았다.
--- p.164

전례서의 정연함과 현실이 보여주는 간극은 예치에 대한 조선의 국가적 실천력의 정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바로미터일 것이다.
--- p.182

《조선경국전》에 있었을 법한 태조 대 제도는 남아 있지 않으나, 태종 대 〈제사 의식〉은 세종
대를 거쳐 성종 대 《국조오례의》까지 유지됐다.
조선의 길례는 태종 대에 형성됐다.
--- p.224

결과적으로 조선의 사직단은 그 자체로 매우 독특한 단이 되었다.
중국 역대 어느 왕조에도, 우리나 주변국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는 형태의 단이다.
제후국의 사직단은 반감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중국의 지방 사직단과는 다른, 외번 제후국의 중앙 사직단은 이렇게 정도와 권도의 조율 속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탄생하였다.
--- p.231

성종 대 이후 왕실 여성들은 조종 법제라는 전통을 기억하고 수호하는 임무를 자임했다.
유교 사전들이 문서화된 기록에 기반했다면, 비유교적인 의례는 구술의 기억과 관습에 기반했다.
폐단에 대한 비판에는 가족애라는 인정人情과 공사公私 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대응했다.…이들은 유교적인 남녀 성 역할론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조선 왕실의 여성이 해야 할 역할과 공간을 만들었다.
--- p.288

산천 제사가 성별로 이원화되며 별기은을 왕실 여성들이 주도하게 되자, 유교적 가부장제 구조에서 이는 손쉽게 여성 혐오와 결합됐다.
상보적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주도하는 무격 신앙에서 암묵적으로 심리적 안도감을 얻던 남성 유자들은 이러한 신앙 행위가 문제가 된다 싶을 때면, 이를 여성 주체 몇몇에게 모조리 책임지우는 것으로 그 사회적 책임과 여파를 축소했다.
--- p.299

1477년(성종 8), 성종은 최초로 친잠례를 행하게 했다.
여기에서 ‘최초’란 조선의 최초일 뿐만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의 최초를 의미한다.
고려에서도 행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친잠례의 고향이라 할 중원 대륙에서도 남송 대 이후로는 단절된 의례였다.
동시대 중국의 명에서 친잠례를 설행하기까지는 아직 50여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성종 대의 친잠례는 중원 대륙을 시야에 넣더라도 2세기 이상 단절된 전통의 재발견이자 재창출이었다.
--- p.305

조선에서는 규범적인 성 역할을 의례를 통해 적극적으로 환기하기 위해 친잠례를 마련했다.
조선 사회에서는 성을 남녀로 엄격하게 이원화하고 각 젠더에 고유의 역할과 일이 있다고 규정했는데, 친경례와 친잠례는 바로 그 성별 분업의 모범을 표상했다.
--- p.313

조선 초 신유학과 고제에 대한 이해는 점진적 혹은 단계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세종 대 사직단에 대한 논쟁에서 볼 수 있듯이, 논쟁 참여자 모두 《홍무예제》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서 이미 숙지하고 있었다.
태조 대 예제를 만들 때부터 참여한 대신들이 고제를 몰랐던 것도 아니며, 충분히 고제를 고려하였으나 어쩔 수 없는 부분에서 《홍무예제》를 우회의 수단으로 사용한 것뿐이었다.
--- p.330

여기에서 이를 선포한 권력이나 차등적 질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정당함의 모델을 제시하고, 많은 이들이 이 모델을 구축하는 데 함께했다는 점이다.
이는 의례에 참여하는 이들이 더욱 자연스럽게 그 모델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그 질서의 정당함을 강화했다.…현실에서 한계가 있더라도 규범을 합의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한 정치문화를 만든 것이다.
--- p.335

출판사 리뷰
하늘, 땅, 젠더라는 독특한 범주로 살펴본 여섯 단

단은 하늘, 땅, 산천, 농경의 신처럼 신격에 대해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사직단, 선농단 같은 장소들이 대표적으로, 조선에서는 이들 단을 대?중?소사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제사를 드렸다.
지은이는 이 중 풍운뢰우산천성황단, 우사단, 적전 선농단, 사직단, 악해독단, 선잠단 등 여섯 개의 단을 선택하여, 하늘, 땅, 젠더라는 세 범주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늘의 범주로 설명한 풍운뢰우산천성황단과 우사단, 땅의 범주로 설명한 선농단, 사직단은 하늘에 대한 제사처인 원구단을 포기하며 일어난 연쇄적 반응과 문제들을 보여준다.
가장 독특한 범주인 젠더에서는 선잠단과 악해독단을 중심으로, 조선에서 여성이 어떻게 새로운 성별 분업의 질서 안에 편입되고, 때로는 협력하였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한다.


조선이 치열하게 고안한 ‘질서’의 흔적

조선은 왜 하늘에 올리는 제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제후국의 체제에 맞는 예제를 만들고자 했을까? 제후국의 예제는 존재하는 것이었는가? 조선은 명나라의 예제나 어느 한 나라의 예제를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고제古制의 실현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며 사실상 기존에는 존재한 적도 없고 고민된 바도 없는, 새로운 제후국의 의례를 창조했다.


이 글에서는 조선의 유교화가 단순히 ‘사상’의 수입이 아니라, 국제 질서의 대격변이라는 외교적 현실과 정당한 권력의 모범 제시, 그리고 사회 규범의 수립이라는 절박한 과제를 풀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었다고 설명한다.
1장의 외교사로 시작하여, 거듭되는 기후재난에 당혹해하는 군주, 무속적인 음사에 대한 당대의 인기, 성별 분업상의 구축 등을 다룬 이 책은 ‘유교 국가’로 나아간 조선이 치열하게 고안한 질서의 흔적을 단이라는 공간에서 읽어낸다.

세종 대 예제 논쟁을 둘러싼 통념에 대한 도전

세종 대 사직단의 제도에 대한 논쟁을 분석하며, 지은이는 조선 초 고제 및 성리학에 대한 이해가 점진적?단계적으로 발전, 심화됐다고 보는 통념에 도전한다.
길례는 이미 태종 대 완성이 됐으며, 세종 대 박연이나 집현전 등이 제기한 논점들은 이미 그 이전 세대가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왕지제’, ‘고제’ 등에 대한 당대 관료들의 언급을 맥락 속에서 섬세히 읽어내며, 이것이 당대인들이 무작정 추종했던 대상도 아니었다고 본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지은이는 조선 초의 고제나 성리학에 대한 이해는 발전이나 심화의 구도보다는 적용 대상의 확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치의 실상, 현장의 역설

이 글에서 보여주는 단의 실제 모습은 일견 당혹스럽기만 하다.
의례에 몰두한 조선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 어느 단도 《국조오례의》의 규정대로 설립되지 못했다.
심지어 지방의 사직단은 규정 자체가 마련되지 않은 채 제각각의 크기와 형태를 지녔으며, 지방 관리는 물론 중앙의 최고위 관료 출신도 정확히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숙지하지 못했다.
또한 조정에서 반복적으로 밝힌 음사 타파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성행하게 된 각종 무속적인 사당들은 과연 조선의 유교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지은이는 그러면서도 이러한 측면만을 가지고 조선의 의례가 무의미했다든가 허상이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의례의 개조를 중시한 조선은 권력의 물리적 힘보다 논리성과 정당성을 중시하며, 규범을 합의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는 압력이 강한 정치문화를 만들었다고 본다.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적 글쓰기

왕조 교체기 정치외교사로 시작하여 CAD 도면을 활용하고, 마지막에는 젠더로 마무리하며 여성사까지.
지은이는 의례라는 창을 통해 특정 분야에 국한하지 않고 유연하게 시대를 읽어낸다.
또한 단, 유, 주원, 환장 등의 주요 건축 구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와 《문헌통고》, 《예기》 등의 출전에 대한 꼼꼼한 고찰을 통해 기존 연구에서 빚어진 오해들을 교정하고, 그것이 당대에 어떠한 의미와 위상을 지녔는지를 짚어낸다.


조선이라는 이름 아래 단순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복잡하고 입체적인 사회를 그려내는 이 책은 과거를 읽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며, 우리가 지금-여기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힘을 건넨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3월 30일
- 쪽수, 무게, 크기 : 416쪽 | 596g | 152*224*21mm
- ISBN13 : 9791156122913
- ISBN10 : 1156122910

You may also like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