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룩에 꽂힌 디자이너의 발효 탐방기
Description
책소개
일본 열도의 끝에서 끝까지,
미생물과 인간, 자연과 문화가 길러낸
로컬 발효문화의 깊은 맛을 찾아서!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흙과 물속 생명체가 숨을 죽이는 계절, 변두리 양조장에서 ‘푸, 푸’ 하고 앙증맞은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통 안에서 미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리다”.
누룩의 움직임을 이토록 섬세하게 묘사한 이는 바로, 올해로 마흔이 된 디자이너 오구라 히라쿠다.
그는 자신을 ‘발효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어쩌다 그는 발효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 걸까?
“건강이 좋지 않아 발효식품을 먹기 시작했죠”.
누구나 겪어봄 직한 일을 계기로 발효에 눈뜨기 시작한 그는, 소멸 위기에 몰린 지역 문화를 살릴 방안을 고심하던 중 ‘발효’에서 해법을 찾았다.
그리고 열도 곳곳의 숨은 양조장을 찾아 특색있는 발효음식을 발굴하고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발효 전도사’가 된 것이다.
지금 그는 ‘로컬리티는 발효문화에도 있다’라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며 발효 전문 샵과 브랜드를 론칭하고 강연과 집필에 나서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8년 여름 끝자락부터 약 8개월간 떠난 발효 기행을 담고 있다.
도카이(東海), 긴키(近畿), 세토우치(瀨戶內) 일대, 호쿠리쿠(北陸) 및 도호쿠(東北)와 홋카이도에 이르는 북쪽 지방, 간토(關東), 큐슈(九州), 오키나와 등 남부 지방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이며 특징적인 일본의 발효음식이 9장에 걸쳐 소개돼 있다.
된장, 간장, 식초, 술(니혼슈) 등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지역 특산물은 물론, 그 지역 사람조차 모르는 로컬 음식도 더러 등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맛을 묘사하고,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룩이 보내는 신호와 양조 장인과 미생물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곁에서 묵묵히 써 내려간다.
양조장 한 켠에서 여행의 의미와, 인간과 미생물의 존재를 사유한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무엇보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발효문화의 앞날을 고심한다.
발효 디자이너다운 생각이다.
그는 더 나아가 로컬리티의 핵심 코드로 발효를 꼽는다.
책에 담긴 재료도, 만드는 법도, 신비스러운 로컬 발효식품에 깃든 지역민들의 생활양식과 자연환경에 관한 이야기는 발효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목을 제시한다.
발효 디자이너 이전 ‘정보 설계 디자인’을 했던 저자의 이력은 군데군데 실린 칼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발효 덕후’ 그 이상의 애정을 담아 한땀 한땀 써 내려간 발효음식에 관한 모든 지식이 여기 담겨 있다.
발효의 원리와 그 쓰임새, 지역별 발효음식의 차이점, 발효와 연관된 경관(景觀)과 신앙까지, 잘 정리된 발효 지식은 간결하고 짜임새 있다.
특히 일본 해운의 중흥기를 이끈 범선, 기타마에부네(北前船) 이야기를 통해 발효음식 발달사의 궤적을 살피는 시도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미생물과 인간, 자연과 문화가 길러낸
로컬 발효문화의 깊은 맛을 찾아서!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흙과 물속 생명체가 숨을 죽이는 계절, 변두리 양조장에서 ‘푸, 푸’ 하고 앙증맞은 소리가 들려온다.
나무통 안에서 미생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소리다”.
누룩의 움직임을 이토록 섬세하게 묘사한 이는 바로, 올해로 마흔이 된 디자이너 오구라 히라쿠다.
그는 자신을 ‘발효 디자이너’라고 소개한다.
어쩌다 그는 발효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 걸까?
“건강이 좋지 않아 발효식품을 먹기 시작했죠”.
누구나 겪어봄 직한 일을 계기로 발효에 눈뜨기 시작한 그는, 소멸 위기에 몰린 지역 문화를 살릴 방안을 고심하던 중 ‘발효’에서 해법을 찾았다.
그리고 열도 곳곳의 숨은 양조장을 찾아 특색있는 발효음식을 발굴하고 알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발효 전도사’가 된 것이다.
지금 그는 ‘로컬리티는 발효문화에도 있다’라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하며 발효 전문 샵과 브랜드를 론칭하고 강연과 집필에 나서는 등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18년 여름 끝자락부터 약 8개월간 떠난 발효 기행을 담고 있다.
도카이(東海), 긴키(近畿), 세토우치(瀨戶內) 일대, 호쿠리쿠(北陸) 및 도호쿠(東北)와 홋카이도에 이르는 북쪽 지방, 간토(關東), 큐슈(九州), 오키나와 등 남부 지방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이며 특징적인 일본의 발효음식이 9장에 걸쳐 소개돼 있다.
된장, 간장, 식초, 술(니혼슈) 등 우리에게 비교적 친숙한 지역 특산물은 물론, 그 지역 사람조차 모르는 로컬 음식도 더러 등장한다.
여기서 저자는 맛을 묘사하고, 레시피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누룩이 보내는 신호와 양조 장인과 미생물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고, 곁에서 묵묵히 써 내려간다.
양조장 한 켠에서 여행의 의미와, 인간과 미생물의 존재를 사유한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무엇보다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 발효문화의 앞날을 고심한다.
발효 디자이너다운 생각이다.
그는 더 나아가 로컬리티의 핵심 코드로 발효를 꼽는다.
책에 담긴 재료도, 만드는 법도, 신비스러운 로컬 발효식품에 깃든 지역민들의 생활양식과 자연환경에 관한 이야기는 발효를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목을 제시한다.
발효 디자이너 이전 ‘정보 설계 디자인’을 했던 저자의 이력은 군데군데 실린 칼럼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발효 덕후’ 그 이상의 애정을 담아 한땀 한땀 써 내려간 발효음식에 관한 모든 지식이 여기 담겨 있다.
발효의 원리와 그 쓰임새, 지역별 발효음식의 차이점, 발효와 연관된 경관(景觀)과 신앙까지, 잘 정리된 발효 지식은 간결하고 짜임새 있다.
특히 일본 해운의 중흥기를 이끈 범선, 기타마에부네(北前船) 이야기를 통해 발효음식 발달사의 궤적을 살피는 시도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들어가며 … 6
제1장 뿌리 깊은 미각의 원조―도카이東海 지방 18
Column 1 다채로운 발효기술과 그 쓰임새
제2장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에어포켓―긴키近畿 지방 42
Column 2 바다, 산, 거리(도시), 섬의 발효문화
제3장 물고기와 식초가 지나가는 길―세토우치 일대 66
Column 3 스시의 진화사
제4장 미생물이 유혹하는 소리―도쿄도 외딴 섬 94
Column 4 일본인, 그들은 무엇을 먹어 왔나?
제5장 북국으로 향하는 은빛 여정―호쿠리쿠, 도호쿠에서 북쪽으로 112
Column 5 기타마에부네, 재패니즈 드림의 무대
제6장 지역의 명물이 된 발효 간식―간토關東 지방 152
Column 6 발효가 멋진 경관을 만든다
제7장 발효가 산업화를 이끌다―일본 근대화 여행 166
Column 7 발효하는 곳에 신앙이 있다
제8장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큐슈 지방 210
제9장 기억의 방주 240
특별 에피소드 두 편 252
꽁꽁 숨겨둔 발효음식 261
옮긴이의 말 266
발효식품 업체 홈페이지 270
제1장 뿌리 깊은 미각의 원조―도카이東海 지방 18
Column 1 다채로운 발효기술과 그 쓰임새
제2장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에어포켓―긴키近畿 지방 42
Column 2 바다, 산, 거리(도시), 섬의 발효문화
제3장 물고기와 식초가 지나가는 길―세토우치 일대 66
Column 3 스시의 진화사
제4장 미생물이 유혹하는 소리―도쿄도 외딴 섬 94
Column 4 일본인, 그들은 무엇을 먹어 왔나?
제5장 북국으로 향하는 은빛 여정―호쿠리쿠, 도호쿠에서 북쪽으로 112
Column 5 기타마에부네, 재패니즈 드림의 무대
제6장 지역의 명물이 된 발효 간식―간토關東 지방 152
Column 6 발효가 멋진 경관을 만든다
제7장 발효가 산업화를 이끌다―일본 근대화 여행 166
Column 7 발효하는 곳에 신앙이 있다
제8장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큐슈 지방 210
제9장 기억의 방주 240
특별 에피소드 두 편 252
꽁꽁 숨겨둔 발효음식 261
옮긴이의 말 266
발효식품 업체 홈페이지 270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술, 된장과 간장 만드는 식품회사라니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니 그때까지 익숙해 있던 일과는 동떨어진 딴 세상이었다.
양조장과 공장에서 매일 ‘미생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와 악전고투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생물들에게 나를 맡김으로 깊은 맛을 지닌 음식물을 만들어간다.
…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
인간은 미생물들이 일하는 환경을 갖추어 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들어가며」중에서
여름 끝자락 무렵부터 그 웅성거림이 속삭임으로 바뀌고, 숙성된 미생물들이 뭔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 숙성의 시기에, 그때까지 각기 멋대로 주장하던 맛과 향이 대화를 시작하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기운 넘치던 각각의 것들이 힘을 모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 존재’로 바뀌어 간다.
발효는 생성이다.
숙성은 조화다.
이 두 과정을 거쳐 비로소 깊이 있는 맛이 생겨난다.
---「1장 뿌리 깊은 미각의 원조―도카이東海 지방」중에서
양조장은 시간과 공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현장에서 듣는 에피소드 또한 시공을 일그러뜨리는 스케일을 지닌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양조장에 가득한 미생물 대부분은 인류가 태어나기 전, 말하자면 포유류보다 아득히 오랜 옛날에 태어난, 무시무시할 정도로 오랜 타임 스케일로 존재하는 것이다.
---「2장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에어포켓―긴키近畿 지방」중에서
여행을 계속하면서, 스시를 쥐는 가쓰코 아주머니 손이 간간이 떠올랐다.
반 세기 넘게 줄곧 뜰의 감잎을 따서 밥알을 싸 온 동그스름한 손.
말수가 적은 아주머니의 입 대신 그 손은 나에게 그 고장의 기억을 웅변하듯 말해 주었다.
이 손으로 싼 스시는 고장의 기억을 전해주는 ‘언어 아닌 언어’인 것이다.
아주머니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다 보니 새삼 울컥해진다.
---「3장 물고기와 식초가 지나가는 길―세토우치 일대」중에서
외딴 섬의 많은 곳은 식재료를 자유롭게 조달할 수 없다.
물을 얻기 어렵고, 만든 것을 상품으로 내다 팔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정된 지역적인 소재를 철저히 활용하게 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발효기술이 생겨난다.
‘왜 그렇게 된 걸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발상의 전환,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의 엄청난 수고, 지속성을 갖추기 위한 온갖 궁리.
외딴 섬에는 일찍이 일본 열도 대부분 지방에서 서민이 생존을 위해 쌓아갔을 지혜의 결정체가 있다.
---「4장 미생물이 유혹하는 소리―도쿄도 외딴 섬」중에서
유키사라시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수확한 뒤 소금물에 살짝 절여 부드럽게 한, 손바닥만 한 큼직한 고추를 눈 덮인 밭이랑에 툭 툭 던져서 깔듯이 한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눈 덮인 이랑에서 흑백의 푹신한 옷을 껴입은 여자들이 파란 바구니 속 빨간 고추를 훠이 훠이 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온 세상이 하양, 검정, 파랑, 빨강만 존재하는 것 같다.
동화의 나라에서 소인들이 행하는 의식처럼 경건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5장 북국으로 향하는 은빛 여정―호쿠리쿠, 도호쿠에서 북쪽으로」중에서
과자에는 그 고장 사람들의 숨결과 일상의 기쁨이 듬뿍 묻어있다.
소박한 ‘즐거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생필품은 아니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하며 생기가 나지 않는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게 아닐까.
… 가공기술도 발효에서 비롯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구운 만주나 쿠즈모치처럼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레시피로 승화해 간다.
‘살아가는 방책’에서 ‘즐기는 방책’이 되고, 즐거움을 찾아 모여드는 커뮤니티가 문화의 모체가 된다.
---「6장 지역의 명물이 된 발효 간식―간토關東 지방」중에서
역사의 축적이 깊은 만큼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고장의 지역성을 잘 살리는 온고지신 문화로서 발효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 개성은 로컬인 만큼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로컬과 이어져, 서로 깊이 이해되며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각지에서 발효를 둘러싼 새로운 흐름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과 이어져 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삼켜져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채로 점점 커지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마치 미생물처럼.
---「7장 발효가 산업화를 이끌다―일본 근대화 여행」중에서
배낭 메고 세계 각지를 여행할 때, 여행이란 ‘자신의 세계를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 ‘미지의 것에 대한 초조함’은 여행이 일의 일부가 된 수년 전부터 점점 빛이 바래져 갔다.
그 대신 ‘자신의 세계가 닫히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기억의 어두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전에는 자신에게 가까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왠지 섬뜩하게 풍화되어 버린 세계.
여행은 미지의 문을 열고 마음의 빛을 비추는 것만은 아니다.
내내 닫힌 채로 있던 녹슨 문을 어둠 속에서 찾아내는 여행도 있다.
---「8장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큐슈 지방」중에서
삶 속 어둠을 응시하자.
과거부터 목숨을 이어온, 잊힌 존재의 잊힌 작은 소리, 작은 빛이 깜박인다.
귀 기울이며 생각해 내자.
과거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과거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길이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종류가 달라지면 희망도 달라진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역사이며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말해주는 미래다.
기억의 방주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주다.
양조장과 공장에서 매일 ‘미생물’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와 악전고투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미생물들에게 나를 맡김으로 깊은 맛을 지닌 음식물을 만들어간다.
… 만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미생물이다.
인간은 미생물들이 일하는 환경을 갖추어 주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들어가며」중에서
여름 끝자락 무렵부터 그 웅성거림이 속삭임으로 바뀌고, 숙성된 미생물들이 뭔가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이 숙성의 시기에, 그때까지 각기 멋대로 주장하던 맛과 향이 대화를 시작하여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기운 넘치던 각각의 것들이 힘을 모아가는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 존재’로 바뀌어 간다.
발효는 생성이다.
숙성은 조화다.
이 두 과정을 거쳐 비로소 깊이 있는 맛이 생겨난다.
---「1장 뿌리 깊은 미각의 원조―도카이東海 지방」중에서
양조장은 시간과 공간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이색적인 곳이다.
현장에서 듣는 에피소드 또한 시공을 일그러뜨리는 스케일을 지닌다.
…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양조장에 가득한 미생물 대부분은 인류가 태어나기 전, 말하자면 포유류보다 아득히 오랜 옛날에 태어난, 무시무시할 정도로 오랜 타임 스케일로 존재하는 것이다.
---「2장 시·공간을 벗어난 듯한 에어포켓―긴키近畿 지방」중에서
여행을 계속하면서, 스시를 쥐는 가쓰코 아주머니 손이 간간이 떠올랐다.
반 세기 넘게 줄곧 뜰의 감잎을 따서 밥알을 싸 온 동그스름한 손.
말수가 적은 아주머니의 입 대신 그 손은 나에게 그 고장의 기억을 웅변하듯 말해 주었다.
이 손으로 싼 스시는 고장의 기억을 전해주는 ‘언어 아닌 언어’인 것이다.
아주머니의 이야기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하다 보니 새삼 울컥해진다.
---「3장 물고기와 식초가 지나가는 길―세토우치 일대」중에서
외딴 섬의 많은 곳은 식재료를 자유롭게 조달할 수 없다.
물을 얻기 어렵고, 만든 것을 상품으로 내다 팔기도 어렵다.
그래서 한정된 지역적인 소재를 철저히 활용하게 된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신비스러운 발효기술이 생겨난다.
‘왜 그렇게 된 걸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된 발상의 전환,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의 엄청난 수고, 지속성을 갖추기 위한 온갖 궁리.
외딴 섬에는 일찍이 일본 열도 대부분 지방에서 서민이 생존을 위해 쌓아갔을 지혜의 결정체가 있다.
---「4장 미생물이 유혹하는 소리―도쿄도 외딴 섬」중에서
유키사라시는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수확한 뒤 소금물에 살짝 절여 부드럽게 한, 손바닥만 한 큼직한 고추를 눈 덮인 밭이랑에 툭 툭 던져서 깔듯이 한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눈 덮인 이랑에서 흑백의 푹신한 옷을 껴입은 여자들이 파란 바구니 속 빨간 고추를 훠이 훠이 뿌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온 세상이 하양, 검정, 파랑, 빨강만 존재하는 것 같다.
동화의 나라에서 소인들이 행하는 의식처럼 경건하고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5장 북국으로 향하는 은빛 여정―호쿠리쿠, 도호쿠에서 북쪽으로」중에서
과자에는 그 고장 사람들의 숨결과 일상의 기쁨이 듬뿍 묻어있다.
소박한 ‘즐거움’이 아로새겨져 있다.
생필품은 아니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하며 생기가 나지 않는 것을 ‘문화’라고 하는 게 아닐까.
… 가공기술도 발효에서 비롯했다.
이것이 발전하여 구운 만주나 쿠즈모치처럼 일상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레시피로 승화해 간다.
‘살아가는 방책’에서 ‘즐기는 방책’이 되고, 즐거움을 찾아 모여드는 커뮤니티가 문화의 모체가 된다.
---「6장 지역의 명물이 된 발효 간식―간토關東 지방」중에서
역사의 축적이 깊은 만큼 다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고장의 지역성을 잘 살리는 온고지신 문화로서 발효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리고 그 개성은 로컬인 만큼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의 로컬과 이어져, 서로 깊이 이해되며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각지에서 발효를 둘러싼 새로운 흐름이 일기 시작하는데,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는 움직임과 이어져 있다.
작은 것은 큰 것에 삼켜져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작은 채로 점점 커지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마치 미생물처럼.
---「7장 발효가 산업화를 이끌다―일본 근대화 여행」중에서
배낭 메고 세계 각지를 여행할 때, 여행이란 ‘자신의 세계를 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런 ‘미지의 것에 대한 초조함’은 여행이 일의 일부가 된 수년 전부터 점점 빛이 바래져 갔다.
그 대신 ‘자신의 세계가 닫히는 순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기억의 어두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전에는 자신에게 가까이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왠지 섬뜩하게 풍화되어 버린 세계.
여행은 미지의 문을 열고 마음의 빛을 비추는 것만은 아니다.
내내 닫힌 채로 있던 녹슨 문을 어둠 속에서 찾아내는 여행도 있다.
---「8장 바닷가 사람들의 지혜―큐슈 지방」중에서
삶 속 어둠을 응시하자.
과거부터 목숨을 이어온, 잊힌 존재의 잊힌 작은 소리, 작은 빛이 깜박인다.
귀 기울이며 생각해 내자.
과거와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았다.
과거와 이어져 있다는 것은 미래를 향한 길이 있다는 것이다.
위기의 종류가 달라지면 희망도 달라진다.
이것은 일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역사이며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갈까를 말해주는 미래다.
기억의 방주이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방주다.
---「9장 기억의 방주」중에서
출판사 리뷰
발효는 생존 의지가 낳은 창조의 산물
지혜가 즐거움이 되면 문화로 남는다
척박한 환경, 제한된 세계를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저자가 찾아간 많은 곳이 환경적으로 ‘닫혀 있는 장소’인 바, 그는 어떤 것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창조성을 낳았다.
‘없는 상태’가 ‘있게 한다’는 의지를 낳으며, 이 의지의 표출이 삶에 이른 것이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면 미생물이 곧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몸속에 흐르는 ‘인간 이외의 시간’, 미생물이 만들어가는 시간의 참모습이야말로 발효 여정을 따라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그는 일본 문화 형성의 핵심 요소를 발효 탐방을 통해 파악한다.
“지금껏 체험하며 눈여겨본 것은 어떤 상황도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와 회복 탄력성 및 다양성”이라는 그의 말은 이 점을 집약한 것이다.
결국, 발효의 역사는 ‘지혜’가 더 잘 살기 위한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가 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소멸 위기의 지역 문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은 잠시 빌려본다.
“전통의 본질은 ‘양식’이 아니라 ‘발상’이고 ‘스타일’이 아니라 ‘콘셉트’이며, 그것이 새 시대를 이루어갈 문화의 핵심이다.” 즉 로컬 문화의 미래를 좌우하는 게 ‘개인의 창조성’이며, 전통문화는 다가올 시대에 맞춰 새로이 콘셉트를 짜면 되면 그만이라는 말일까.
저자는 세상이 달라지면서 ‘없는 상태를 있게 하는 의지’야말로 살아있는 디자인의 원천이며 문화는 위기에 의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위기이므로 살아남는 것’이라 한다.
발효문화를 다각도로 심도 있게 바라보며 써 내려간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깊숙이 일본」 시리즈를 내면서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유독 두드러진 한국과 일본.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두 나라를 오가는가 하면, 거대 담론에서 소소한 일상의 단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안이 숙제로 남아 있고, 해묵은 현안들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세인들의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깊숙이 일본」은 지금껏 알려져 있거나 잘 모르는 일본의 이모저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며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심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한 인문·예술 시리즈입니다.
번역서와 국내 필자의 저작물을 망라하며, 균형 잡힌 시각과 접근을 토대로 가교(架橋)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지혜가 즐거움이 되면 문화로 남는다
척박한 환경, 제한된 세계를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저자가 찾아간 많은 곳이 환경적으로 ‘닫혀 있는 장소’인 바, 그는 어떤 것도 자유로이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창조성을 낳았다.
‘없는 상태’가 ‘있게 한다’는 의지를 낳으며, 이 의지의 표출이 삶에 이른 것이다.
그의 여정을 따라가면 미생물이 곧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몸속에 흐르는 ‘인간 이외의 시간’, 미생물이 만들어가는 시간의 참모습이야말로 발효 여정을 따라가며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다.
그는 일본 문화 형성의 핵심 요소를 발효 탐방을 통해 파악한다.
“지금껏 체험하며 눈여겨본 것은 어떤 상황도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강인한 의지와 회복 탄력성 및 다양성”이라는 그의 말은 이 점을 집약한 것이다.
결국, 발효의 역사는 ‘지혜’가 더 잘 살기 위한 ‘즐거움’이 되고 그 즐거움을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가 되어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소멸 위기의 지역 문화의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의 말은 잠시 빌려본다.
“전통의 본질은 ‘양식’이 아니라 ‘발상’이고 ‘스타일’이 아니라 ‘콘셉트’이며, 그것이 새 시대를 이루어갈 문화의 핵심이다.” 즉 로컬 문화의 미래를 좌우하는 게 ‘개인의 창조성’이며, 전통문화는 다가올 시대에 맞춰 새로이 콘셉트를 짜면 되면 그만이라는 말일까.
저자는 세상이 달라지면서 ‘없는 상태를 있게 하는 의지’야말로 살아있는 디자인의 원천이며 문화는 위기에 의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위기이므로 살아남는 것’이라 한다.
발효문화를 다각도로 심도 있게 바라보며 써 내려간 그의 통찰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깊숙이 일본」 시리즈를 내면서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유독 두드러진 한국과 일본.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동안 주춤하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두 나라를 오가는가 하면, 거대 담론에서 소소한 일상의 단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많은 사안이 숙제로 남아 있고, 해묵은 현안들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세인들의 관심과 논란을 불러일으킵니다.
「깊숙이 일본」은 지금껏 알려져 있거나 잘 모르는 일본의 이모저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며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심화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획한 인문·예술 시리즈입니다.
번역서와 국내 필자의 저작물을 망라하며, 균형 잡힌 시각과 접근을 토대로 가교(架橋)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3년 10월 30일
- 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128*188*17mm
- ISBN13 : 9788958722168
- ISBN10 : 8958722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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