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Description
책소개
풍요와 무등(無等)이 공존하는 삶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광주정신’ 사용설명서
속 깊은 도시여행자를 위한 광주 인문여행 안내서.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심리적 무게감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심스러운 텍스트가 광주광역시다.
이 도시에 오래 살면서 도시의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광주를 의향(義鄕), 예향(藝鄕), 미향(味鄕)의 ‘삼향(三鄕)’이라는, 고전적이지만 최적인 정체성으로 읽어낸다.
광주에는 임진란과 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를 목숨 바쳐 구한 호남의병이 있었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광주학생운동이 있었고 1980년의 광주정신이 있었다.
한국화를 대표하는 남종화, 민족혼이 담긴 남도소리 등 남도의 문화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중심에 광주가 있고, 음식 역시 풍요로운 남도의 맛이 한 상에 모여 아무 식당이나 문 열고 들어가도 실망하지 않는 곳이 광주다.
맛과 멋 너머로 펼쳐지는 무등(無等)의 삶이 궁금하다면 이제 이 사용설명서를 들고 그 땅을 걸어볼 때다.
맛과 멋을 찾아 떠나는 ‘광주정신’ 사용설명서
속 깊은 도시여행자를 위한 광주 인문여행 안내서.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심리적 무게감 때문에 어떻게 읽어야 할지 조심스러운 텍스트가 광주광역시다.
이 도시에 오래 살면서 도시의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저자는 광주를 의향(義鄕), 예향(藝鄕), 미향(味鄕)의 ‘삼향(三鄕)’이라는, 고전적이지만 최적인 정체성으로 읽어낸다.
광주에는 임진란과 한말 위기에 처한 나라를 목숨 바쳐 구한 호남의병이 있었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불씨를 살린 광주학생운동이 있었고 1980년의 광주정신이 있었다.
한국화를 대표하는 남종화, 민족혼이 담긴 남도소리 등 남도의 문화가 소비되고 유통되는 중심에 광주가 있고, 음식 역시 풍요로운 남도의 맛이 한 상에 모여 아무 식당이나 문 열고 들어가도 실망하지 않는 곳이 광주다.
맛과 멋 너머로 펼쳐지는 무등(無等)의 삶이 궁금하다면 이제 이 사용설명서를 들고 그 땅을 걸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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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광주 인문 지도
제1부
도도히 흐르는 광주정신
1.
한국 민주주의의 촛불, 5·18민주화운동
2.
산자여 따르라, 망월묘지
3.
‘학생의 날’이 11월 3일인 이유
4.
독립운동의 시작, 호남 의병
5.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운주사와 조광조
6.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 소쇄원의 유훈
7.
광주공동체의 뿌리, 광주향약와 양과동동약
8.
광주정신의 상징, 김대중컨벤션센터
제2부
도시의 역사, 역사의 도시
1.
광주인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영산강과 광주천
2.
남도의 중심이 되다, 도시 광주의 성장사
3.
길 위의 인문학, 조선시대 누정
4.
광주의 관문이 된 철길의 역사
5.
광주 근대의 요람, 양림동
6.
사라진 역사와 공간, 경양방죽과 광주읍성
7.
광주 최초의 도시공원, 광주공원
8.
옛 광주의 나들목, 서창마을
제3부
도시 산책
1.
광주 사람들의 등대, 무등을 걷다
2.
구도심의 중심, 충장로
3.
광주송정역과 역사를 같이 한, 송정역시장
4.
뜨거운 삶의 현장, 전통시장
5.
민주화운동의 성지, 전남대학교
6.
도심 재생의 원조, 푸른길공원
7.
광주의 경리단길, 동명동
8.
청년과 주민의 만남, 청춘발산마을
9.
도시공동체를 꿈꾼다, 문산마을
10.
전국 유일 단관극장, 광주극장
제4부
남도의 맛과 풍류
1.
남도 음식의 집합, 한정식
2.
광주 맛의 진수, 김치
3.
‘광주 오미’에 도전하는, 상추튀김
4.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송정떡갈비
5.
광주에서 꼭 먹어야 할 고기, 생고기
6.
‘오매’ 광주, ‘거시기’한 전라도말
7.
판소리계 아이돌, 쑥대머리 임방울
8.
〈바윗돌〉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육자배기토리
9.
마을굿의 진화, 칠석동 고싸움
제5부
기억해야 할 인물
1.
조선 왕의 멘토, 기대승
2.
의로운 집안, 김덕령 家
3.
한센인과 결핵 환자의 아버지, 최흥종
4.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 허백련
5.
한국 YWCA 설립자, 김필례
6.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7.
나 두 야 간다, 용아의 꿈
8.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들불열사
부록
‘걸어서 광주 인문여행’ 추천 코스
#1 민주와 인권을 찾아가는 길
#2 전남대 교정 산책, 민주길
#3 광주 근대를 찾다, 양림역사문화마을
#4 도심에서 만나는 숲길, 푸른길
#5 가사문학을 찾아가는 길
#6 무등산을 걷다
#7 안전하고 아름다운 광주천 자전거길
#8 자전거로 달리는 화려광산길
#9 광주의 둘레길, 빛고을산들길
찾아보기_키워드로 읽는 광주
광주 인문 지도
제1부
도도히 흐르는 광주정신
1.
한국 민주주의의 촛불, 5·18민주화운동
2.
산자여 따르라, 망월묘지
3.
‘학생의 날’이 11월 3일인 이유
4.
독립운동의 시작, 호남 의병
5.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운주사와 조광조
6.
한 사람의 소유가 되지 않도록 하라, 소쇄원의 유훈
7.
광주공동체의 뿌리, 광주향약와 양과동동약
8.
광주정신의 상징, 김대중컨벤션센터
제2부
도시의 역사, 역사의 도시
1.
광주인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영산강과 광주천
2.
남도의 중심이 되다, 도시 광주의 성장사
3.
길 위의 인문학, 조선시대 누정
4.
광주의 관문이 된 철길의 역사
5.
광주 근대의 요람, 양림동
6.
사라진 역사와 공간, 경양방죽과 광주읍성
7.
광주 최초의 도시공원, 광주공원
8.
옛 광주의 나들목, 서창마을
제3부
도시 산책
1.
광주 사람들의 등대, 무등을 걷다
2.
구도심의 중심, 충장로
3.
광주송정역과 역사를 같이 한, 송정역시장
4.
뜨거운 삶의 현장, 전통시장
5.
민주화운동의 성지, 전남대학교
6.
도심 재생의 원조, 푸른길공원
7.
광주의 경리단길, 동명동
8.
청년과 주민의 만남, 청춘발산마을
9.
도시공동체를 꿈꾼다, 문산마을
10.
전국 유일 단관극장, 광주극장
제4부
남도의 맛과 풍류
1.
남도 음식의 집합, 한정식
2.
광주 맛의 진수, 김치
3.
‘광주 오미’에 도전하는, 상추튀김
4.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송정떡갈비
5.
광주에서 꼭 먹어야 할 고기, 생고기
6.
‘오매’ 광주, ‘거시기’한 전라도말
7.
판소리계 아이돌, 쑥대머리 임방울
8.
〈바윗돌〉부터 〈임을 위한 행진곡〉까지, 육자배기토리
9.
마을굿의 진화, 칠석동 고싸움
제5부
기억해야 할 인물
1.
조선 왕의 멘토, 기대승
2.
의로운 집안, 김덕령 家
3.
한센인과 결핵 환자의 아버지, 최흥종
4.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 허백련
5.
한국 YWCA 설립자, 김필례
6.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7.
나 두 야 간다, 용아의 꿈
8.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들불열사
부록
‘걸어서 광주 인문여행’ 추천 코스
#1 민주와 인권을 찾아가는 길
#2 전남대 교정 산책, 민주길
#3 광주 근대를 찾다, 양림역사문화마을
#4 도심에서 만나는 숲길, 푸른길
#5 가사문학을 찾아가는 길
#6 무등산을 걷다
#7 안전하고 아름다운 광주천 자전거길
#8 자전거로 달리는 화려광산길
#9 광주의 둘레길, 빛고을산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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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무등산과 영산강이 없었다면 광주라는 도시가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을 일이다.
광주에 머물렀던 선사인들의 흔적은 영산강변에 있다.
씨를 뿌려 농사를 짓고 도구를 만들고 옷과 집을 지어서 살았다.
… 새로 들어선 상무지구나 수완지구, 첨단지구 역시 영산강 상류에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무등산 안으로도 도시는 확대되었다.
호환을 두려워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 p.12
광주에서 가장 넓은 도로였던 8차선 금남로.
145만여 명이 거주하는 광역시의 그 길은 지금 넓지 않다.
은행과 증권회사, 백화점과 언론사, 극장들이 모여 있던 그곳을 지금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라 부른다.
그 정점은 ‘5·18민주광장’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모여 대성회를 했던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이다.
--- p.20
1929년 11월 3일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일인 명치절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광주역에서의 충돌은 경찰과 교사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가두시위가 이어졌다.
일본 순사들은 칼을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며 위협했다.
독서회 지도부는 흥학관에 모여 학생들의 시위를 단순한 패싸움이 아니라 ‘독립투쟁, 반일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의했다.
--- p.34
광주의 중심 상권인 충장로는 한말 의병대장 김덕령의 호에서 가져온 도로 이름이다.
충장로뿐만 아니라 제봉로, 죽봉로도 의병장의 호를 딴 도로명이다.
광주에 왜 이렇게 의병장의 이름으로 명명된 도로가 많을까.
조선시대 임진란과 한말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37
1980년 이후 광주 청년들은 희망을 찾아 너릿재를 넘어 운주사와 조광조를 자주 찾았다.
필자가 처음 운주사를 찾았을 때도 19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이었다.
논 가운데 있는 탑과 불상들, 개울과 산기슭에 누워 있는 불상들을 보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불상과 석탑과 설화는 정형화된 틀과 제도 등 기존 질서를 넘어서려는 민중의 염원으로 해석되어 한국사회 근현대 민중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 p.43
선사시대 광주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광주읍성이 있는 충장로에서 살았을까, 무진고성이 있었다는 무등산에 살았을까.
그 열쇠는 선사인들의 생활상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삶의 방식이 바뀌려면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의 광주에서 이런 생활에 가장 적절한 곳은 어딜까.
1992년 국도 1호선 확장 공사를 하던 중 신창동에서 그 열쇠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창동은 영산강이 흐르는 하천변 저습지다.
--- p.62
일제강점기 개항과 함께 급성장했던 목포부가 있었지만 1940년대 초반 나주에서 광주로 행정 중심을 옮기고 확장된 광주부의 부세가 더 커졌다.
해방 후 1949년 광주시, 1986년 직할시가 되었고, 1988년에는 전라남도에 속하던 광산군이 광주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광역시로 바뀌면서 전라남도와 행정이 분리되어 오늘의 광주가 완성되었다.
--- p.79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인문공간이 있었다.
바로 ‘누정’이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의 준말이다.
광주와 전남의 누정은 어림잡아도 600개가 넘는다.
사라진 것까지 셈하면 2500여 곳이라고 하니 그 숫자에 놀랄 뿐이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면 누정 하나쯤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 p.83
유진벨과 오웬 등 선교사들의 묘비가 있는 양림산은 아카시나무, 흑호도나무, 왕버즘나무, 팽나무, 참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이 심은 나무다.
선교사 사택의 차고지를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아트폴리건’ 앞 호랑가시나무는 수령 400년의 고목으로 둘레 1.2미터, 높이 6미터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p.95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역사를 밟고 공원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 10여 기가 세워져 있다.
광주 시내에 산재되어 있던 비를 모아 1965년 지금 자리로 옮긴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를 지휘했던 도원수 권율 장군을 기리는 비다.
--- p.107
서창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농사를 짓는 문촌 일대 농지를 서창들이라고 했다.
지금의 광주공항 자리가 그곳이다.
부자들은 마을과 가까운 땅에 물길을 만들어 쌀농사를 지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삼각주 우각호 등 모래밭에 농사를 지었다.
늘 홍수를 걱정하고 하늘을 보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 p.111
무등산은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호남정맥의 중심이다.
해발 1187미터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석대?입석대?광석대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장관이다.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무등(無等)의 산이다.
--- p.116
충장로에 활기가 넘치던 시절은 1970~80년대였다.
당시 ‘시내에 간다’는 말은 곧 충장로에 간다는 말이었다.
광주의 다른 지역은 시내라고 하지 않았다.
시내에 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많은 이유는 약속이다.
속칭 ‘우다방’으로 통하는 충장로 1가 광주우체국 앞이 약속 장소였다.
--- p.125
송정역시장은 1913년 송정리역 개통과 함께 ‘매일송정역전시장’으로 출발했다.
기차 승객을 대상으로 국밥 등을 팔면서 장사했다.
대형마트의 등장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던 시장은 2015년 KTX 개통을 계기로 변신을 시도, 2016년 4월 ‘1913송정역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개장했다.
… 103년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에 처음 생긴 연도를 넣은 것이다.
--- p.130
양동시장의 대표 품목은 수산시장의 홍어전이다.
홍어 때문에 수산시장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영광에서 생선 장사를 했던 장모님도 홍어만큼은 가까운 남광주시장을 두고 꼭 양동시장으로 달려갔다.
반 마리씩 팔던 것을 소포장, 썰어 팔기, 택배 등으로 변화시킨 곳이 양동시장의 유명한 홍어전문집 해풍상사였다.
--- p.134
전남대학교 교정에는 ‘민주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있다.
교내 민주화운동의 정신?인물?장소 등 11개의 기념 공간을 3개 동선으로 연결하여 ‘정의의 길’(1.7킬로미터), ‘인권의 길’(1.8킬로미터), ‘평화의 길’(1.5킬로미터)로 만든 둘레길 같은 코스다.
--- p.142
광주 한정식은 여수부터 목포와 영광까지 남도의 물산이 광주로 모이면서 만들어진 전라도 밥상의 집합이다.
여수 장어, 고흥 유자, 벌교 꼬막이 전라선을 타고 목포 흑산홍어, 무안 세발낙지, 함평 한우가 호남선을 타고 광주로 온다.
… 곡식, 해산물, 농산물, 임산물 등 싱싱한 식재료를 한 시간 이내 거리에서 직접 구할 수 있다.
그 재료가 한데 모여 남도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되는 곳이 광주다.
--- p.168
광주의 별미 음식으로 상추튀김을 꼽는다.
이름처럼 상추를 튀겨내는 것은 아니고, 잘게 자른 오징어 튀김을 양파와 매운 고추가 들어간 간장과 함께 상추에 싸서 먹는다.
상추가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 튀김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쯤 유행하기 시작해 지금은 광주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 p.177
떡갈비에 ‘송정’이라는 지명이 붙을 만큼 송정리 떡갈비가 유명하다.
왜 송정리 떡갈비가 유명해졌을까.
그 실마리는 역시 우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호남선뿐만 아니라 영광과 남평, 나주로 가는 신작로가 뚫리면서 송정리는 교통 요지가 되었다.
지금도 열리고 있는 송정 오일장(3·8일) 주차장 자리에 1910년 우시장이 문을 열었다.
--- p.180
광주관광안내지도는 ‘오매 광주’로 시작한다.
‘오매 광주’는 광주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여기서 오매는 감탄사다.
오매 반갑다, 오매 맛있다, 오매 잘했다 등 어떤 말과도 잘 어울린다.
오매를 가장 잘 표현한 글이 시문학파 김영랑의 ‘오매 단풍들것네’이다.
--- p.187
요즘 뜨고 있는 소리꾼 이날치 멤버들은 서울 출신이다.
그런데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나온 거라 말하는 부분이 다 전라도 사투리다.
그래서 전라도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
전라도 말은 빠른 랩에도 잘 어울린다.
이날치의 대표곡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를 랩에 가깝게 빠르게 부른 노래다.
판소리를 공부하려는 경상도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 p.190
그의 소리는 천구성과 수리성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노력을 통해서 얻는 수리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경지였다.
25살 때 조선명창대회에 입상하며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그때 부른 노래가 〈쑥대머리〉였다.
다음날 레코드사에서 녹음을 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음반 20만 장이 팔려 나갔다.
--- p.193
최흥종의 호 오방(五放)은 ‘가사에 방만, 사회에 방일, 정치에 방기, 경제에 방종, 종교에 방랑’ 등 5가지 해방을 뜻한다고 한다.
그는 호에 담은 신조를 평생 지키며 살았고, 죽음이 임박해오자 90여 일의 금식 끝에 1966년 5월 14일 86세로 눈을 감았다.
그의 묘비명은 ‘영원한 자유인’이다.
--- p.230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김영랑, 정지용 등과 교유하면서부터다.
김영랑은 용아의 감수성을 알아보고 문학을 적극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용아는 1930년대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등 10권을 간행했다.
… 용아가 마음껏 잡지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친의 경제력이 있었다.
영랑의 첫 시집도 용아가 내주었다.
광주에 머물렀던 선사인들의 흔적은 영산강변에 있다.
씨를 뿌려 농사를 짓고 도구를 만들고 옷과 집을 지어서 살았다.
… 새로 들어선 상무지구나 수완지구, 첨단지구 역시 영산강 상류에 만들어진 도시들이다.
무등산 안으로도 도시는 확대되었다.
호환을 두려워했던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 p.12
광주에서 가장 넓은 도로였던 8차선 금남로.
145만여 명이 거주하는 광역시의 그 길은 지금 넓지 않다.
은행과 증권회사, 백화점과 언론사, 극장들이 모여 있던 그곳을 지금은 ‘유네스코 민주인권로’라 부른다.
그 정점은 ‘5·18민주광장’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이 모여 대성회를 했던 도청 앞 분수대 광장이다.
--- p.20
1929년 11월 3일은 일왕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념일인 명치절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광주역에서의 충돌은 경찰과 교사에 의해 중단되었지만 가두시위가 이어졌다.
일본 순사들은 칼을 들고 시위대를 진압하며 위협했다.
독서회 지도부는 흥학관에 모여 학생들의 시위를 단순한 패싸움이 아니라 ‘독립투쟁, 반일운동’으로 전환할 것을 결의했다.
--- p.34
광주의 중심 상권인 충장로는 한말 의병대장 김덕령의 호에서 가져온 도로 이름이다.
충장로뿐만 아니라 제봉로, 죽봉로도 의병장의 호를 딴 도로명이다.
광주에 왜 이렇게 의병장의 이름으로 명명된 도로가 많을까.
조선시대 임진란과 한말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37
1980년 이후 광주 청년들은 희망을 찾아 너릿재를 넘어 운주사와 조광조를 자주 찾았다.
필자가 처음 운주사를 찾았을 때도 1980년대 초반 대학생 시절이었다.
논 가운데 있는 탑과 불상들, 개울과 산기슭에 누워 있는 불상들을 보면서 기존의 생각들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불상과 석탑과 설화는 정형화된 틀과 제도 등 기존 질서를 넘어서려는 민중의 염원으로 해석되어 한국사회 근현대 민중운동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 p.43
선사시대 광주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았을까.
광주읍성이 있는 충장로에서 살았을까, 무진고성이 있었다는 무등산에 살았을까.
그 열쇠는 선사인들의 생활상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유목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 삶의 방식이 바뀌려면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이어야 한다.
지금의 광주에서 이런 생활에 가장 적절한 곳은 어딜까.
1992년 국도 1호선 확장 공사를 하던 중 신창동에서 그 열쇠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창동은 영산강이 흐르는 하천변 저습지다.
--- p.62
일제강점기 개항과 함께 급성장했던 목포부가 있었지만 1940년대 초반 나주에서 광주로 행정 중심을 옮기고 확장된 광주부의 부세가 더 커졌다.
해방 후 1949년 광주시, 1986년 직할시가 되었고, 1988년에는 전라남도에 속하던 광산군이 광주직할시에 편입되었다.
1995년 광역시로 바뀌면서 전라남도와 행정이 분리되어 오늘의 광주가 완성되었다.
--- p.79
조선시대에도 유사한 인문공간이 있었다.
바로 ‘누정’이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의 준말이다.
광주와 전남의 누정은 어림잡아도 600개가 넘는다.
사라진 것까지 셈하면 2500여 곳이라고 하니 그 숫자에 놀랄 뿐이다.
조선시대 문인이라면 누정 하나쯤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 p.83
유진벨과 오웬 등 선교사들의 묘비가 있는 양림산은 아카시나무, 흑호도나무, 왕버즘나무, 팽나무, 참나무 등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일제강점기 선교사들이 심은 나무다.
선교사 사택의 차고지를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한 ‘아트폴리건’ 앞 호랑가시나무는 수령 400년의 고목으로 둘레 1.2미터, 높이 6미터에 이르는 위풍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 p.95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일제 식민통치 잔재물인 광주신사 계단입니다’라는 글이 붙어 있다.
역사를 밟고 공원에 오르면 오른쪽으로 비석 10여 기가 세워져 있다.
광주 시내에 산재되어 있던 비를 모아 1965년 지금 자리로 옮긴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를 지휘했던 도원수 권율 장군을 기리는 비다.
--- p.107
서창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농사를 짓는 문촌 일대 농지를 서창들이라고 했다.
지금의 광주공항 자리가 그곳이다.
부자들은 마을과 가까운 땅에 물길을 만들어 쌀농사를 지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삼각주 우각호 등 모래밭에 농사를 지었다.
늘 홍수를 걱정하고 하늘을 보며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 p.111
무등산은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진산이자 호남정맥의 중심이다.
해발 1187미터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석대?입석대?광석대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석책을 두른 듯 장관이다.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고귀한 무등(無等)의 산이다.
--- p.116
충장로에 활기가 넘치던 시절은 1970~80년대였다.
당시 ‘시내에 간다’는 말은 곧 충장로에 간다는 말이었다.
광주의 다른 지역은 시내라고 하지 않았다.
시내에 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많은 이유는 약속이다.
속칭 ‘우다방’으로 통하는 충장로 1가 광주우체국 앞이 약속 장소였다.
--- p.125
송정역시장은 1913년 송정리역 개통과 함께 ‘매일송정역전시장’으로 출발했다.
기차 승객을 대상으로 국밥 등을 팔면서 장사했다.
대형마트의 등장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던 시장은 2015년 KTX 개통을 계기로 변신을 시도, 2016년 4월 ‘1913송정역시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개장했다.
… 103년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에 처음 생긴 연도를 넣은 것이다.
--- p.130
양동시장의 대표 품목은 수산시장의 홍어전이다.
홍어 때문에 수산시장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영광에서 생선 장사를 했던 장모님도 홍어만큼은 가까운 남광주시장을 두고 꼭 양동시장으로 달려갔다.
반 마리씩 팔던 것을 소포장, 썰어 팔기, 택배 등으로 변화시킨 곳이 양동시장의 유명한 홍어전문집 해풍상사였다.
--- p.134
전남대학교 교정에는 ‘민주길’이라는 이름의 산책로가 있다.
교내 민주화운동의 정신?인물?장소 등 11개의 기념 공간을 3개 동선으로 연결하여 ‘정의의 길’(1.7킬로미터), ‘인권의 길’(1.8킬로미터), ‘평화의 길’(1.5킬로미터)로 만든 둘레길 같은 코스다.
--- p.142
광주 한정식은 여수부터 목포와 영광까지 남도의 물산이 광주로 모이면서 만들어진 전라도 밥상의 집합이다.
여수 장어, 고흥 유자, 벌교 꼬막이 전라선을 타고 목포 흑산홍어, 무안 세발낙지, 함평 한우가 호남선을 타고 광주로 온다.
… 곡식, 해산물, 농산물, 임산물 등 싱싱한 식재료를 한 시간 이내 거리에서 직접 구할 수 있다.
그 재료가 한데 모여 남도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재창조되는 곳이 광주다.
--- p.168
광주의 별미 음식으로 상추튀김을 꼽는다.
이름처럼 상추를 튀겨내는 것은 아니고, 잘게 자른 오징어 튀김을 양파와 매운 고추가 들어간 간장과 함께 상추에 싸서 먹는다.
상추가 기름의 느끼함을 잡아 튀김을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1970년대 중반쯤 유행하기 시작해 지금은 광주의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 p.177
떡갈비에 ‘송정’이라는 지명이 붙을 만큼 송정리 떡갈비가 유명하다.
왜 송정리 떡갈비가 유명해졌을까.
그 실마리는 역시 우시장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호남선뿐만 아니라 영광과 남평, 나주로 가는 신작로가 뚫리면서 송정리는 교통 요지가 되었다.
지금도 열리고 있는 송정 오일장(3·8일) 주차장 자리에 1910년 우시장이 문을 열었다.
--- p.180
광주관광안내지도는 ‘오매 광주’로 시작한다.
‘오매 광주’는 광주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여기서 오매는 감탄사다.
오매 반갑다, 오매 맛있다, 오매 잘했다 등 어떤 말과도 잘 어울린다.
오매를 가장 잘 표현한 글이 시문학파 김영랑의 ‘오매 단풍들것네’이다.
--- p.187
요즘 뜨고 있는 소리꾼 이날치 멤버들은 서울 출신이다.
그런데 “판소리가 전라도에서 나온 거라 말하는 부분이 다 전라도 사투리다.
그래서 전라도 사투리를 배웠다”고 한다.
전라도 말은 빠른 랩에도 잘 어울린다.
이날치의 대표곡 〈범 내려온다〉는 판소리를 랩에 가깝게 빠르게 부른 노래다.
판소리를 공부하려는 경상도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이 대목이다.
--- p.190
그의 소리는 천구성과 수리성을 모두 갖추었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노력을 통해서 얻는 수리성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경지였다.
25살 때 조선명창대회에 입상하며 인기스타로 떠올랐다.
그때 부른 노래가 〈쑥대머리〉였다.
다음날 레코드사에서 녹음을 해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음반 20만 장이 팔려 나갔다.
--- p.193
최흥종의 호 오방(五放)은 ‘가사에 방만, 사회에 방일, 정치에 방기, 경제에 방종, 종교에 방랑’ 등 5가지 해방을 뜻한다고 한다.
그는 호에 담은 신조를 평생 지키며 살았고, 죽음이 임박해오자 90여 일의 금식 끝에 1966년 5월 14일 86세로 눈을 감았다.
그의 묘비명은 ‘영원한 자유인’이다.
--- p.230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김영랑, 정지용 등과 교유하면서부터다.
김영랑은 용아의 감수성을 알아보고 문학을 적극 권유했고, 이를 계기로 용아는 1930년대 사재를 털어 문예잡지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등 10권을 간행했다.
… 용아가 마음껏 잡지를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부친의 경제력이 있었다.
영랑의 첫 시집도 용아가 내주었다.
--- p.249
출판사 리뷰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도도한 의향(義鄕)
도시 곳곳에서 예(藝)와 미(味)의 풍요를 즐기다
일반 수박의 끝물인 늦여름에 출하되는 거대한 크기의 무등산수박,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BTS 멤버 제이홉의 고향.
광주광역시를 기억하는 세대별 아이콘을 이 세 가지로 압축해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관통하고 있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비옥한 토지와 풍족한 물산으로 완성해내는 맛(味), 무등(無等)을 지향하는 공동체의식으로 실천하는 올바름(義), 육자배기토리의 깊은 멋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藝)이 바로 그것이다.
광주 음식은 남도의 물산이 모여 만든 전라도 밥상의 집합이다.
여수 장어, 고흥 유자, 벌교 꼬막이 전라선을 타고 목포 흑산홍어, 무안 세발낙지, 함평 한우가 호남선을 타고 광주로 온다.
남해 바다와 지리산의 산물이 섬진강을 타고 올라오고 섬과 갯벌의 바다 맛이 영산강을 따라 올라온다.
날씨가 따뜻해 겨울철에도 밭에는 배추와 파가 푸릇푸릇하고, 바다와 갯벌에서는 김과 미역, 파래, 감태가 자란다.
그 재료를 모아 야무진 손맛으로 재창조한 송정떡갈비, 오리탕, 한정식, 보리밥, 김치가 전통적인 ‘광주 오미’다.
여기서 김치를 빼고 주먹밥, 육전, 상추튀김을 넣으면 현대적인 ‘광주 7미’가 된다.
남도 사람들은 이런 광주 음식을 ‘게미가 있다’고 표현한다.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다’는 뜻이다.
광주와 전라도의 맛은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시, 그림에도 있다.
전라도의 맛은 잘 숙성된 삭힘의 맛이다.
육자배기토리로 부르는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 독특한 시김새로 부르는 임방울의 판소리가 설움과 탄식이라는 삭힘의 맛을 보여준다.
운치 있는 산수로 조선 화단에 큰 획을 그은 남종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 시문학파를 결성해 순수문학을 주도한 시인 용아 박용철과 김영랑 등도 숙성된 예술세계를 펼친 광주의 예인들이다.
광주에는 충장로, 제봉로, 죽봉로 등 의병장의 호를 딴 도로명이 많다.
임진란과 한말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의병은 고향을 지키는 향보의병 성격이 강한 데 비해 호남 의병은 근왕의병 성격이 강했다.
1929년 11월 3일, 일본 국경일인 명치절에 조선 학생들이 시작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히며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제정하게 했다.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은 20여 년 동안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어 동시대에 국가폭력의 아픔을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도 희망이 되어주었다.
오늘날 광주정신은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책은 광주의 흔들림 없이 도도한 정체성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안내하는 도시 인문학서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건 부담스럽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훑어보고 싶지도 않은 여행자에게 광주를 깊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義)의 도시에서 예(藝)와 미(味)의 풍요를 즐길 수 있는 곳곳을 소개하고, 저자와 그 가족이 선대부터 체험해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끼워 넣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광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읽는 것과 같다.
제1부 ‘도도히 흐르는 광주정신’에서는 호남 의병과 광주학생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의 구체적인 내용 및 그 의미를 소개하고 역사 속 선조들의 유훈에서 광주정신의 뿌리를 찾아본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당대를 이상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정암 조광조, 소쇄원이라는 멋진 누정을 지역과 문중과 학파를 초월한 소통공간으로 삼은 양산보를 건너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무등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제2부 ‘도시의 역사, 역사의 도시’에서는 영산강과 광주천에 기대어 살아온 옛 광주인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조선 팔도 시절 작은 고을이던 광주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광주의 관문이 된 철길은 어떤 변천사를 달려 왔는지를 살펴보고, 광주인의 정신을 살찌운 인문공간 누정과 지금은 사라진 역사공간 경양방죽과 광주읍성도 소개한다.
광주 근대화의 요람인 양림동, 광주 최초의 도시공원인 광주공원, 옛 광주의 나들목이던 서창마을도 역사 속 광주 모습이다.
제3부 ‘도시 산책’에서는 오늘의 광주를 만날 수 있다.
광주 사람들의 등대와 같은 무등산, ‘광주의 명동’이라 불리는 충장로, 1913송정역시장과 전통시장들, 민주화운동의 성지이면서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전남대학교, 도심재생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푸른길공원, 광주의 경리단길로 통하는 동명동, 청년과 주민이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청춘발산마을, 도시공동체를 꿈꾸는 문산마을,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인 광주극장 등이 소개된다.
제4부 ‘남도의 맛과 풍류’와 제5부 ‘기억해야 할 인물’에는 예(藝)와 미(味)가 채워져 있다.
남도 음식의 집합체인 한정식, 광주 맛의 진수인 김치, ‘광주 오미’에 도전하는 상추튀김, 떡을 치대듯 만들어내는 송정떡갈비, 육회보다 싱싱한 생고기 등이 미각 기행을 부추긴다.
이어 〈쑥대머리〉를 부른 임방울, 조선 왕의 멘토였던 기대승, 한센인과 결핵 환자의 아버지라 불린 최흥종,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 허백련, 한국 YWCA 설립자 김필례, 〈나두야 간다〉 노랫말로 유명한 시인 박용철 등을 통해 학(學)과 예(藝)가 어우러진 광주의 풍류를 자랑한다.
도시 곳곳에서 예(藝)와 미(味)의 풍요를 즐기다
일반 수박의 끝물인 늦여름에 출하되는 거대한 크기의 무등산수박,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인 한강의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BTS 멤버 제이홉의 고향.
광주광역시를 기억하는 세대별 아이콘을 이 세 가지로 압축해보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관통하고 있는 이 도시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비옥한 토지와 풍족한 물산으로 완성해내는 맛(味), 무등(無等)을 지향하는 공동체의식으로 실천하는 올바름(義), 육자배기토리의 깊은 멋을 바탕으로 하는 예술(藝)이 바로 그것이다.
광주 음식은 남도의 물산이 모여 만든 전라도 밥상의 집합이다.
여수 장어, 고흥 유자, 벌교 꼬막이 전라선을 타고 목포 흑산홍어, 무안 세발낙지, 함평 한우가 호남선을 타고 광주로 온다.
남해 바다와 지리산의 산물이 섬진강을 타고 올라오고 섬과 갯벌의 바다 맛이 영산강을 따라 올라온다.
날씨가 따뜻해 겨울철에도 밭에는 배추와 파가 푸릇푸릇하고, 바다와 갯벌에서는 김과 미역, 파래, 감태가 자란다.
그 재료를 모아 야무진 손맛으로 재창조한 송정떡갈비, 오리탕, 한정식, 보리밥, 김치가 전통적인 ‘광주 오미’다.
여기서 김치를 빼고 주먹밥, 육전, 상추튀김을 넣으면 현대적인 ‘광주 7미’가 된다.
남도 사람들은 이런 광주 음식을 ‘게미가 있다’고 표현한다.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다’는 뜻이다.
광주와 전라도의 맛은 음식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시, 그림에도 있다.
전라도의 맛은 잘 숙성된 삭힘의 맛이다.
육자배기토리로 부르는 진도아리랑과 강강술래, 독특한 시김새로 부르는 임방울의 판소리가 설움과 탄식이라는 삭힘의 맛을 보여준다.
운치 있는 산수로 조선 화단에 큰 획을 그은 남종화의 거목 의재 허백련, 시문학파를 결성해 순수문학을 주도한 시인 용아 박용철과 김영랑 등도 숙성된 예술세계를 펼친 광주의 예인들이다.
광주에는 충장로, 제봉로, 죽봉로 등 의병장의 호를 딴 도로명이 많다.
임진란과 한말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선 의병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 의병은 고향을 지키는 향보의병 성격이 강한 데 비해 호남 의병은 근왕의병 성격이 강했다.
1929년 11월 3일, 일본 국경일인 명치절에 조선 학생들이 시작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0만세운동’과 함께 일제강점기 3대 독립운동으로 꼽히며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제정하게 했다.
1980년의 5·18민주화운동은 20여 년 동안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어 동시대에 국가폭력의 아픔을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도 희망이 되어주었다.
오늘날 광주정신은 민주주의와 인권 투쟁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이 책은 광주의 흔들림 없이 도도한 정체성을 현대적인 스타일로 안내하는 도시 인문학서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건 부담스럽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훑어보고 싶지도 않은 여행자에게 광주를 깊고 친근하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義)의 도시에서 예(藝)와 미(味)의 풍요를 즐길 수 있는 곳곳을 소개하고, 저자와 그 가족이 선대부터 체험해온 다양한 이야기들을 곳곳에 끼워 넣어 생동감을 더한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광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읽는 것과 같다.
제1부 ‘도도히 흐르는 광주정신’에서는 호남 의병과 광주학생독립운동, 5·18민주화운동의 구체적인 내용 및 그 의미를 소개하고 역사 속 선조들의 유훈에서 광주정신의 뿌리를 찾아본다.
성리학을 기반으로 당대를 이상사회로 만들고자 했던 정암 조광조, 소쇄원이라는 멋진 누정을 지역과 문중과 학파를 초월한 소통공간으로 삼은 양산보를 건너 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무등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제2부 ‘도시의 역사, 역사의 도시’에서는 영산강과 광주천에 기대어 살아온 옛 광주인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조선 팔도 시절 작은 고을이던 광주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광주의 관문이 된 철길은 어떤 변천사를 달려 왔는지를 살펴보고, 광주인의 정신을 살찌운 인문공간 누정과 지금은 사라진 역사공간 경양방죽과 광주읍성도 소개한다.
광주 근대화의 요람인 양림동, 광주 최초의 도시공원인 광주공원, 옛 광주의 나들목이던 서창마을도 역사 속 광주 모습이다.
제3부 ‘도시 산책’에서는 오늘의 광주를 만날 수 있다.
광주 사람들의 등대와 같은 무등산, ‘광주의 명동’이라 불리는 충장로, 1913송정역시장과 전통시장들, 민주화운동의 성지이면서 캠퍼스가 아름답기로 이름난 전남대학교, 도심재생의 모범답안과도 같은 푸른길공원, 광주의 경리단길로 통하는 동명동, 청년과 주민이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청춘발산마을, 도시공동체를 꿈꾸는 문산마을, 전국 유일의 단관극장인 광주극장 등이 소개된다.
제4부 ‘남도의 맛과 풍류’와 제5부 ‘기억해야 할 인물’에는 예(藝)와 미(味)가 채워져 있다.
남도 음식의 집합체인 한정식, 광주 맛의 진수인 김치, ‘광주 오미’에 도전하는 상추튀김, 떡을 치대듯 만들어내는 송정떡갈비, 육회보다 싱싱한 생고기 등이 미각 기행을 부추긴다.
이어 〈쑥대머리〉를 부른 임방울, 조선 왕의 멘토였던 기대승, 한센인과 결핵 환자의 아버지라 불린 최흥종, 남종화의 마지막 거목 허백련, 한국 YWCA 설립자 김필례, 〈나두야 간다〉 노랫말로 유명한 시인 박용철 등을 통해 학(學)과 예(藝)가 어우러진 광주의 풍류를 자랑한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2년 03월 25일
- 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310g | 128*188*18mm
- ISBN13 : 9791186440759
- ISBN10 : 118644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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