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프 시티
Description
책소개
- MD 한마디
- 손보미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양극화가 극심해진 근 미래.
사람들은 ‘세이프 시티‘로 신/구시가지를 구분해 안전을 지켜나간다.
가장 문제가 되는 곳은 다름 아닌 X 구역.
그곳에서 연쇄 파괴 사건이 발생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기억 교정술을 도입하고자 한다.
기술과 권력이 어떻게 진실을 조작하는지 보여주는 사회파 미스터리.
2025.07.29. 소설/시 PD 김유리
“내가 기억하는 방식이 바로 나예요.”
기억을 조작하는 ‘기억 교정술’을 둘러싼 가장 매혹적인 질문
손보미 소설이 도달한 새로운 경지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며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손보미가 신작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로 돌아왔다.
예리한 통찰력과 정교한 서사 구성으로 소설세계를 확장해온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그간 축적해온 문학적 깊이와 장르적 긴장감을 더욱 세련되게 벼리며 손보미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세이프 시티』는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트라우마 치료와 범죄 예방이라는 선의로 포장된 ‘기억 교정술’이 국가 권력과 결합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이 작품은 과학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추적하며, 조작된 여론과 왜곡된 진실에 둘러싸인 한 여성의 고군분투를 통해 진실과 윤리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치밀한 플롯과 섬세한 내면 묘사로 미스터리 장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서늘하게 비춘다.
특히 기술 만능주의 시대의 젠더화된 폭력, SNS를 통한 여론 조작과 진실의 취약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동시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기억을 조작하는 ‘기억 교정술’을 둘러싼 가장 매혹적인 질문
손보미 소설이 도달한 새로운 경지
이상문학상, 대산문학상, 이효석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국내 주요 문학상을 석권하며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소설가 손보미가 신작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로 돌아왔다.
예리한 통찰력과 정교한 서사 구성으로 소설세계를 확장해온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그간 축적해온 문학적 깊이와 장르적 긴장감을 더욱 세련되게 벼리며 손보미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세이프 시티』는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다.
트라우마 치료와 범죄 예방이라는 선의로 포장된 ‘기억 교정술’이 국가 권력과 결합할 때,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
이 작품은 과학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와 권력의 작동 방식을 추적하며, 조작된 여론과 왜곡된 진실에 둘러싸인 한 여성의 고군분투를 통해 진실과 윤리의 관계를 깊이 있게 탐구한다.
치밀한 플롯과 섬세한 내면 묘사로 미스터리 장르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서늘하게 비춘다.
특히 기술 만능주의 시대의 젠더화된 폭력, SNS를 통한 여론 조작과 진실의 취약성을 예리하게 포착하며 동시대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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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 2부 / 3부 / 4부
작가 노트
작가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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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너무 위험하잖아.
그러다가 그 사람의 뇌 기능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 그 대상이 누구라도, 그게 심지어 악질 범죄자라도 다른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게다가 인간의 기억을 그런 식으로 조작한다는 게 말이 돼?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거라고.
기억이라는 건 그 사람 자체야.
그게 어떤 기억이든 그 사람 자체라고.”
--- p.41
“그건 다르다고요? 왜 다르죠?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는 방식이, 십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년 전 기억했던 것들과 현재 기억하는 것이 같다고 말할 수 있냐고요.
인간의 기억은 변합니다.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사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을 잊은 줄도 모른 채 잊어버리죠.
인간은 고유하지 않아요.
한 인간이 고유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죠.”
--- p.42
“호수의 파문을 생각해봐.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호수에 던져진 돌이 아니야.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지금 이 순간 일렁거리는 물결의 패턴이야.
그건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어.”
--- p.50
저 멀리 내동댕이쳐진 해머드릴과 남자의 모자, 그녀의 플리플롭, 사람들의 발소리, 몸속의 무언가가 뜨겁게 팽창하는 듯한 기분.
그녀는 자신의 몸 전체가 너무 축축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피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 p.89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들.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건물들, 거기에 길게 드리워진 현수막, 우리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를 고쳐주세요.
혹은 정반대의 내용, 여기를 가만히 내버려둬라! 여기에는 여기의 삶이 있다!
--- p.102
기사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그날 밤의 분위기 - 포악한 남자 범죄자와 겁에 질린 여자들 - 가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 밤, 겁에 질린 건 그 남자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린 게 아니라 화가 나 있었다.
사실인 척하면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빼돌리기.
세세한 항목까지 밝히는 것인 양 위장하면서 중요한 사실은 미묘하게 누락하는 서술.
--- p.121
“진실은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거예요.
게다가 아주 연약한 물건이죠.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구요.
거기에 그냥 둬서도, 다른 누군가가 뺏어가게 놔둬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줄 알아요?”
--- pp.139-140
그 기억이 어떤 식으로 그 남자의 머릿속에서 변질되고 오염되고 흐르고, 결국 어디서 고정될지 궁금했다.
결국 모든 기억은 변한다고, 똑같은 일을 기억하는 일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임윤성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바로 핵심이라고 느꼈다.
기억이 흐르는 방식이야말로 한 인간이 존재하는 특정한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p.193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
딴 세상의 일이지.
하지만 악행은 달라.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쓰고 싶은 욕구를 이겨낸 사람은 그런 욕구에 지고 만 사람의 행동을 잊지 않지.
그런 욕구에 진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런 표현은 이상하지만, 행복감을 느끼겠지.”
--- p.209
“왜…… 그런 걸 원하는 건데요?”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이봐요, 이건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건 삶이고, 싸움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요.
우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그 사람의 뇌 기능 전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 그 대상이 누구라도, 그게 심지어 악질 범죄자라도 다른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어.
게다가 인간의 기억을 그런 식으로 조작한다는 게 말이 돼? 윤리적인 문제들이 발생할 거라고.
기억이라는 건 그 사람 자체야.
그게 어떤 기억이든 그 사람 자체라고.”
--- p.41
“그건 다르다고요? 왜 다르죠?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는 방식이, 십년 전과 현재가 똑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일년 전 기억했던 것들과 현재 기억하는 것이 같다고 말할 수 있냐고요.
인간의 기억은 변합니다.
한때는 아주 중요했던 사실,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을 잊은 줄도 모른 채 잊어버리죠.
인간은 고유하지 않아요.
한 인간이 고유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죠.”
--- p.42
“호수의 파문을 생각해봐.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호수에 던져진 돌이 아니야.
우리가 찾아야 하는 건, 지금 이 순간 일렁거리는 물결의 패턴이야.
그건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어.”
--- p.50
저 멀리 내동댕이쳐진 해머드릴과 남자의 모자, 그녀의 플리플롭, 사람들의 발소리, 몸속의 무언가가 뜨겁게 팽창하는 듯한 기분.
그녀는 자신의 몸 전체가 너무 축축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피 때문인지 땀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 p.89
저 멀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시의 소음들.
낡아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건물들, 거기에 길게 드리워진 현수막, 우리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를 고쳐주세요.
혹은 정반대의 내용, 여기를 가만히 내버려둬라! 여기에는 여기의 삶이 있다!
--- p.102
기사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그날 밤의 분위기 - 포악한 남자 범죄자와 겁에 질린 여자들 - 가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날 밤, 겁에 질린 건 그 남자였다.
여자들은 겁에 질린 게 아니라 화가 나 있었다.
사실인 척하면서 실제로 일어난 일들을 빼돌리기.
세세한 항목까지 밝히는 것인 양 위장하면서 중요한 사실은 미묘하게 누락하는 서술.
--- p.121
“진실은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거예요.
게다가 아주 연약한 물건이죠.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구요.
거기에 그냥 둬서도, 다른 누군가가 뺏어가게 놔둬도 안 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 줄 알아요?”
--- pp.139-140
그 기억이 어떤 식으로 그 남자의 머릿속에서 변질되고 오염되고 흐르고, 결국 어디서 고정될지 궁금했다.
결국 모든 기억은 변한다고, 똑같은 일을 기억하는 일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임윤성은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게 바로 핵심이라고 느꼈다.
기억이 흐르는 방식이야말로 한 인간이 존재하는 특정한 방식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 p.193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잘 안 하거든.
딴 세상의 일이지.
하지만 악행은 달라.
그렇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쓰고 싶은 욕구를 이겨낸 사람은 그런 욕구에 지고 만 사람의 행동을 잊지 않지.
그런 욕구에 진 사람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런 표현은 이상하지만, 행복감을 느끼겠지.”
--- p.209
“왜…… 그런 걸 원하는 건데요?”
“갈등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
이봐요, 이건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게 아니에요.
이건 삶이고, 싸움이에요.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싸움이요.
우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예요.”
--- p.230
출판사 리뷰
조작되는 진실 바깥에서 소비되는 인간
존엄성을 둘러싼 윤리, 여론, 권력의 삼각 구도
여아 납치 사건 수사 중 엉뚱한 용의자의 거짓 자백을 받아낸 여성 경찰 ‘그녀’.
그사이 진범은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한다.
자신을 질책하는 수사반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휴직계를 낸 작품 속 화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남편은 그녀의 곁을 성실하게 지키지만 두 사람의 일상에는 서서히 균열이 자리한다.
한편, 남편의 대학 동창인 신경과학자 임윤성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조절하는 ‘기억 교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어요?”라는 그의 유혹적인 질문에 그녀는 “기억이라는 건 그 사람 자체”라고 답하며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간과 기억의 고유함을 환상이라 주장하는 기술주의자 임윤성과 상반되는 화자의 신념이 팽팽히 맞서지만, 그들의 논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어느 날 새벽, 불면의 밤을 견디다 못한 화자는 충동적으로 구도심으로 향하고 폐건물에서 우연히 화장실 파괴범과 여성 노숙자들의 대치 상황을 목격한다.
경찰의 본능으로 사건에 개입한 그녀는 범인이 휘두르는 해머드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입원한다.
시장은 검거된 화장실 파괴범을 ‘기억 교정술’의 첫 공식 시험 대상으로 삼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여론전을 시작한다.
임윤성은 공청회에서 기술을 지지하는 거짓 증언을 하라며 그녀를 압박한다.
임윤성과 그의 아내인 최진유에게 이 기술의 도입은 과학적 성과를 넘어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 작품은 SNS 시대 진실이 어떻게 조작되고 유통되는지 그 과정 또한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실은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거예요.
게다가 아주 연약한 물건이죠.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구요”라는 문장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섬뜩한 현실감을 전하는 동시에,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그저 선점되고 가공된 정보의 배열이라는 냉혹한 통찰을 담고 있다.
‘세이프 시티’라는 아이러니
소설의 무대는 극명하게 분열된 도시다.
안전한 구역을 각각의 등급으로 표시하는 ‘세이프 시티’라는 앱까지 상용화된 마당이다.
정부의 통제 아래 재개발이 완료된 신시가지와 정부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엑스 구역’이라 불리며 각종 범죄와 혐오가 집중된 구시가지.
설상가상 ‘엑스 구역’에서 여성 화장실만을 표적으로 삼는 기괴한 연쇄 파괴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시민들의 불안과 혐오를 증폭시킨다.
구도심에 걸린 현수막 문구인 “우리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를 고쳐주세요”와 “여기를 가만히 내버려둬라! 여기에는 여기의 삶이 있다!”라는 상반된 구호는 도시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도시는 거주지일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형성하는 권력과 여론의 실험실로서 기능한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위계를 통해 권력 구조와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그 안에 놓인 인물들이 겪는 윤리적 혼란과 심리적 균열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특히 ‘세이프 시티’라는 명명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 즉 안전을 추구할수록 위험해지는 도시의 양상이 품은 역설은 기술과 통제가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스터리를 넘어선 철학적 탐구
『세이프 시티』는 장르소설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지적인 스릴과 윤리적 긴장을 동시에 제공한다.
미스터리와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은 철저히 현실을 향하고 있다.
불완전하고 상처받은 기억조차도 우리 존재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실존적 각성, 기술 발전이 제기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젠더화된 폭력의 문제까지,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여성 화장실만을 파괴하는 연쇄 범죄, ‘유산 후 휴직한 여성 경찰’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신뢰성의 위기, 구도심에서 더욱 취약해지는 여성 노숙자들의 존재.
작가는 기억과 권력의 문제가 젠더와 교차하는 지점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단순한 사회 고발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탐구한다.
이러한 묵직한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서사의 추진력을 잃지 않는 『세이프 시티』는 손보미 문학이 도달한 새로운 경지이자 사회파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억 조작이 가능한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기술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가장 첨예한 문제작을 이제 마주할 시간이다.
작가 노트(부분)
엑스 자 모양의 차단기 앞에 쓰인 멈춤,이라는 글자.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득 고개를 들자 저 너머 용산역 앞에서 공사 중인 사십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위쪽에서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붉은 불빛.
그즈음 공사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태였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코끝이 시렸다.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었지만 어쩐지 내게서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내가 지나온 마을과는 더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다른 식의 삶.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만불손.
저기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그 삶의 질을 평가할 근거가 내게는 없었다.
아니다, 그런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우리가 용산에서 사는 내내 기찻길 주변을 재개발하느니 마느니 용산업무지구에 대한 개발이 시작되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우리는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었고 개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궁금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 구역이 개발된다면, 저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기찻길 부근에서 옛날식 통닭을 팔던 호프집 주인은 어디로 가야 하지? 철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부동산 주인은? 오래된 마네킹이 쇼윈도 안에 서 있는 옷가게 주인은?
또다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중략)
구분 짓고 싶어하는 마음,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안전하다는 (혹은 완전히 안전해지고 싶다는) 감각이 딛고 있는 그 교묘하고 견고한 허위의식을 인정해야 했다.
『세이프 시티』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그런 참혹한 인정(의 정점) 속에서 쓴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나 자신이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소설을 아예 못 썼을지도 모른다고.
2025년 여름
손보미
존엄성을 둘러싼 윤리, 여론, 권력의 삼각 구도
여아 납치 사건 수사 중 엉뚱한 용의자의 거짓 자백을 받아낸 여성 경찰 ‘그녀’.
그사이 진범은 가족을 살해한 뒤 자살한다.
자신을 질책하는 수사반장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휴직계를 낸 작품 속 화자는 불면증에 시달린다.
남편은 그녀의 곁을 성실하게 지키지만 두 사람의 일상에는 서서히 균열이 자리한다.
한편, 남편의 대학 동창인 신경과학자 임윤성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통해 인간의 기억을 선택적으로 삭제하거나 조절하는 ‘기억 교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어요?”라는 그의 유혹적인 질문에 그녀는 “기억이라는 건 그 사람 자체”라고 답하며 본능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간과 기억의 고유함을 환상이라 주장하는 기술주의자 임윤성과 상반되는 화자의 신념이 팽팽히 맞서지만, 그들의 논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어느 날 새벽, 불면의 밤을 견디다 못한 화자는 충동적으로 구도심으로 향하고 폐건물에서 우연히 화장실 파괴범과 여성 노숙자들의 대치 상황을 목격한다.
경찰의 본능으로 사건에 개입한 그녀는 범인이 휘두르는 해머드릴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입원한다.
시장은 검거된 화장실 파괴범을 ‘기억 교정술’의 첫 공식 시험 대상으로 삼겠다고 발표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대대적인 여론전을 시작한다.
임윤성은 공청회에서 기술을 지지하는 거짓 증언을 하라며 그녀를 압박한다.
임윤성과 그의 아내인 최진유에게 이 기술의 도입은 과학적 성과를 넘어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 작품은 SNS 시대 진실이 어떻게 조작되고 유통되는지 그 과정 또한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실은 선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물건과도 같은 거예요.
게다가 아주 연약한 물건이죠.
다루기가 아주 까다롭다구요”라는 문장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섬뜩한 현실감을 전하는 동시에, 진실은 사실이 아니라 그저 선점되고 가공된 정보의 배열이라는 냉혹한 통찰을 담고 있다.
‘세이프 시티’라는 아이러니
소설의 무대는 극명하게 분열된 도시다.
안전한 구역을 각각의 등급으로 표시하는 ‘세이프 시티’라는 앱까지 상용화된 마당이다.
정부의 통제 아래 재개발이 완료된 신시가지와 정부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엑스 구역’이라 불리며 각종 범죄와 혐오가 집중된 구시가지.
설상가상 ‘엑스 구역’에서 여성 화장실만을 표적으로 삼는 기괴한 연쇄 파괴 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시민들의 불안과 혐오를 증폭시킨다.
구도심에 걸린 현수막 문구인 “우리는 위험에 처했습니다.
우리를 고쳐주세요”와 “여기를 가만히 내버려둬라! 여기에는 여기의 삶이 있다!”라는 상반된 구호는 도시의 분열상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도시는 거주지일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형성하는 권력과 여론의 실험실로서 기능한다.
작가는 이러한 공간의 위계를 통해 권력 구조와 여론 형성의 메커니즘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그 안에 놓인 인물들이 겪는 윤리적 혼란과 심리적 균열을 특유의 감각적인 문장으로 그려낸다.
특히 ‘세이프 시티’라는 명명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 즉 안전을 추구할수록 위험해지는 도시의 양상이 품은 역설은 기술과 통제가 만들어내는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스터리를 넘어선 철학적 탐구
『세이프 시티』는 장르소설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에게 지적인 스릴과 윤리적 긴장을 동시에 제공한다.
미스터리와 SF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들은 철저히 현실을 향하고 있다.
불완전하고 상처받은 기억조차도 우리 존재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실존적 각성, 기술 발전이 제기하는 윤리적 딜레마와 젠더화된 폭력의 문제까지,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이다.
여성 화장실만을 파괴하는 연쇄 범죄, ‘유산 후 휴직한 여성 경찰’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신뢰성의 위기, 구도심에서 더욱 취약해지는 여성 노숙자들의 존재.
작가는 기억과 권력의 문제가 젠더와 교차하는 지점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단순한 사회 고발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을 탐구한다.
이러한 묵직한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면서도 서사의 추진력을 잃지 않는 『세이프 시티』는 손보미 문학이 도달한 새로운 경지이자 사회파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기억 조작이 가능한 시대,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기술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시급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가장 첨예한 문제작을 이제 마주할 시간이다.
작가 노트(부분)
엑스 자 모양의 차단기 앞에 쓰인 멈춤,이라는 글자.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득 고개를 들자 저 너머 용산역 앞에서 공사 중인 사십층짜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위쪽에서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붉은 불빛.
그즈음 공사는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태였다.
차가운 바람 때문에 코끝이 시렸다.
1킬로미터 남짓 떨어진 곳이었지만 어쩐지 내게서 너무나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내가 지나온 마을과는 더더욱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다른 식의 삶.
하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만불손.
저기도,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그 삶의 질을 평가할 근거가 내게는 없었다.
아니다, 그런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었다.
우리가 용산에서 사는 내내 기찻길 주변을 재개발하느니 마느니 용산업무지구에 대한 개발이 시작되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우리는 어차피 떠날 사람들이었고 개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하지만 가끔은 궁금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 구역이 개발된다면, 저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 기찻길 부근에서 옛날식 통닭을 팔던 호프집 주인은 어디로 가야 하지? 철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부동산 주인은? 오래된 마네킹이 쇼윈도 안에 서 있는 옷가게 주인은?
또다시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
(중략)
구분 짓고 싶어하는 마음,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이 나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안전하다는 (혹은 완전히 안전해지고 싶다는) 감각이 딛고 있는 그 교묘하고 견고한 허위의식을 인정해야 했다.
『세이프 시티』는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그런 참혹한 인정(의 정점) 속에서 쓴 소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만약 나 자신이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면 나는 소설을 아예 못 썼을지도 모른다고.
2025년 여름
손보미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7월 25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350g | 122*188*18mm
- ISBN13 : 9788936439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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