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Description
책소개
- MD 한마디
- "어차피 멸망할 세상, 우리 함께 살자!"젊은 소설가의 단단한 첫 단편집.
비정한 세상 속에서도 "마음껏,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보호받지 못한 이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 우리가 잊어버린 서로를 껴안는 마음까지.
종말을 앞둔 이 세계마저 사랑하는 이들을 묵묵히 그려냈다.
어차피 망할 세상, 이 소설 한번 읽어 봅시다.
2025.07.15. 소설/시 PD 김유리
“같이 떠내려가는 것.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헤엄치는지 모르는 채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미더운 마음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으로 일궈낸 이야기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공현진의 첫 소설집!
멸망에 가까워지는 세상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말하는 작가, 공현진의 첫번째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당시 “이 시대의 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모순과 아픔을 극복할 방법을 성찰케 하려”하는 “쉽게 보기 힘든 문제작”(심사위원 오정희·성석제)이란 호평을 받은 공현진은 그 믿음에 보답하듯 데뷔 이후 우리가 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공현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의 기대와 이웃의 냉대 그리고 사회의 몰이해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남겨진 사람들’로 더 인간다운 삶, 이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한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이제 더는 소속 집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까지.
공현진은 자신의 첫 소설집에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정확한 문장과 촘촘한 서술 방식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대상을 향한 가없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담아냈다.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동아일보 등단작 「녹」은 결혼이주여성 ‘녹’과 대학 시간강사인 화자를 병치시켜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과 아이를 맡겨야만 했던 엄마의 죄책감을 각각의 층위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고유한 주제 의식은 “누군가를 현실에서 지우는 소설을 쓰지 말자”(『동아일보』 당선소감)는 다짐을 줄곧 지켜온 공현진의 굳센 소신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면서도 내가 아닌 타인의 안위를 빌어주는 인물들의 미더움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쟁, 재난, 기후 위기,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남은 한 줄기 희망은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있는 힘껏,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공현진의 소설은 보여준다.
그의 첫 작품은 독자들이 문학작품에 기대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과 위로를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선사해줄 것이다.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갈망 없이도,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p.
54)에서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이자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 이의 죽음을 목격한 ‘희주’와 ‘주호’가 수영 강습 초급반에서 만나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구 멸망에 대해 말하면서도 더 건강하고 이롭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자아내며 한국 문단에 공현진이라는 작가의 등장을 각인시켰다.
야간작업에서 만난 카샤가 사출성형기에 끼어 죽은 이후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p.
45)라고 되묻는 주호의 독백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무력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주호가 난생처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p.
54)리게 된 것 역시 자신이 아닌 동료의 삶과 꿈에 대해 돌아본 이후라는 점에서, 소설은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결코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소의 말을 빌려오자면 “공현진의 소설은 이 세계에 냉소와 포기만 남을 거라고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이곳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질감과 온기를 부여”한다.
타인을 향한 선한 관심과 온정으로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이 말은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살자고, 하는 말과도 같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공현진의 소설은 무기력한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같이 잠기고 같이 사라지는 것.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헤엄치는지 모르는 채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미더운 마음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으로 일궈낸 이야기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 작가 공현진의 첫 소설집!
멸망에 가까워지는 세상 속에서 내일의 희망을 말하는 작가, 공현진의 첫번째 소설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당시 “이 시대의 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모순과 아픔을 극복할 방법을 성찰케 하려”하는 “쉽게 보기 힘든 문제작”(심사위원 오정희·성석제)이란 호평을 받은 공현진은 그 믿음에 보답하듯 데뷔 이후 우리가 사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공현진의 소설 속 인물들은 가족의 기대와 이웃의 냉대 그리고 사회의 몰이해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남겨진 사람들’로 더 인간다운 삶, 이치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한다.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부터 이제 더는 소속 집단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린 이들까지.
공현진은 자신의 첫 소설집에 우리 삶의 다양한 모습을 정확한 문장과 촘촘한 서술 방식 그리고 살아 있는 모든 대상을 향한 가없는 사랑으로 따뜻하게 담아냈다.
평단과 독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동아일보 등단작 「녹」은 결혼이주여성 ‘녹’과 대학 시간강사인 화자를 병치시켜 아이를 잃은 엄마의 고통과 아이를 맡겨야만 했던 엄마의 죄책감을 각각의 층위에서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타인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고유한 주제 의식은 “누군가를 현실에서 지우는 소설을 쓰지 말자”(『동아일보』 당선소감)는 다짐을 줄곧 지켜온 공현진의 굳센 소신이다.
그의 작품은 어디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모르면서도 내가 아닌 타인의 안위를 빌어주는 인물들의 미더움 마음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쟁, 재난, 기후 위기,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와 같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남은 한 줄기 희망은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있는 힘껏,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공현진의 소설은 보여준다.
그의 첫 작품은 독자들이 문학작품에 기대하는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쁨과 위로를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선사해줄 것이다.
주호는 살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밀려오는 자신이 이상했다.
그런 충동은 죽음에 대한 충동이 있어야 짝을 이루는 것 아닌가.
삶이, 살아 있음이 자연스럽다면 살고 싶다는 충동 자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호는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충동이나 갈망 없이도,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렸다.
살고 싶다.
더욱 살고 싶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p.
54)에서
문학과지성사 ‘이 계절의 소설’ 선정작이자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인 표제작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다른 이의 죽음을 목격한 ‘희주’와 ‘주호’가 수영 강습 초급반에서 만나 타인에게 마음을 열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구 멸망에 대해 말하면서도 더 건강하고 이롭게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을 말하고 있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공감을 자아내며 한국 문단에 공현진이라는 작가의 등장을 각인시켰다.
야간작업에서 만난 카샤가 사출성형기에 끼어 죽은 이후 “나는 얼마나 책임이 있을까”(p.
45)라고 되묻는 주호의 독백에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 이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무력한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는 주호가 난생처음 “살고 싶다는 충동에 절실하게 시달”(p.
54)리게 된 것 역시 자신이 아닌 동료의 삶과 꿈에 대해 돌아본 이후라는 점에서, 소설은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결코 개인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이소의 말을 빌려오자면 “공현진의 소설은 이 세계에 냉소와 포기만 남을 거라고 섣불리 짐작하는 대신 이곳을 지탱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질감과 온기를 부여”한다.
타인을 향한 선한 관심과 온정으로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이 말은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살자고, 하는 말과도 같다”(‘작가의 말’)라고 말하는 공현진의 소설은 무기력한 세상에서 우리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는 용기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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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녹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돌아가는 마음
이름을 짓기 직전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
권능
우리는 숲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
해설│어차피의 세계에서 - 이소
작가의 말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돌아가는 마음
이름을 짓기 직전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
권능
우리는 숲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
해설│어차피의 세계에서 - 이소
작가의 말
책 속으로
- 노 교수는 왜 내 아이를 오지 못하게 했습니까?
그러다 나는 흠칫 놀랐다.
정확한 문장.
하지만 거짓이었다.
계속 날아오는 메일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내는지도 알 수 없었고, 섣불리 대응하는 것이 더 화를 키울 수 있었다.
처음으로 답신을 클릭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 정정합니다.
나는 제목을 적었다.
--- 「녹」 중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중요하지 않은 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떠올리더라도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그 자리에서 흩어지고 휘발되어버리는 말들.
그런 말들이 오가다 보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
그럴 때면 너무 깊은 이야기를 불쑥하게 된다.
그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고 희주는 생각했다.
우울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우중충한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으니까.
희주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할까 봐 조심했다.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중에서
부모님은 충격을 받았다.
마음대로 그런 걸 결정했다고 언니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특히 동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언니를 못 견뎌 했다.
“그런 일 하려고 그 좋은 대학을 때려치운 거야?”
“그런 일이 뭔데? 엄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넌 꼭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
너만 잘났지.
너만 똑똑하지.”
--- 「돌아가는 마음」 중에서
언젠가 나는 석주에게 넌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석주가 내게 왜 일을 하냐고 되물었다.
일을 해야지 그럼 안 해? 나는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석주는 내게 왜 그 일을 하고 있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그게 중요하냐고 물었다.
석주는 중요하다고 했다.
--- 「이름을 짓기 직전」 중에서
선자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아는 생각했다.
선자 씨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진아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기원할 만한 상황인가, 그런 처지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격이 없나, 자격이 없는 건가? 스스로에게 외치듯 되물었다.
그리고 마음껏, 진심으로 선자 씨의 안녕을 생각했다.
선자 씨에게 평온이 있길.
씩씩한 선자 씨의 용기가 계속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 중에서
새벽마다 기도하러 가는 엄마와 이모를 보며 나는 그 뒷모습이 애처롭다가도 나도 모르게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떠나지 않았다는 기분보다 남겨진 기분에 시달렸다.
돌보지 않아 시든 화분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물을 잔뜩 줘서 죽어버리고야 마는 식물들이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가령 솔이의 안전에 눈이 먼 이모의 몽매한 사랑 같은 것이.
나는 때로 부러웠다.
--- 「권능」 중에서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미영과 나는 열 손가락 끝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원한다면 손가락을 접을 수 있었다.
원한다면 손가락을 접어 우리의 숲을 거둘 수도 있었다.
숲은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에 있어.
있어도 돼.
그래서 우리는 있었다.
우리는 숲에서 다치기도 했지만 숲은 우리의 집이었다.
숲은 우리를 망칠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든 숲.
우리가 쌓은 숲.
숲은 곧 우리였다.
--- 「우리는 숲」 중에서
인류는 이제 자신들의 마지막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름답기 위해서.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지성의 발로였다.
인류가 이끌어온 역사의 클라이맥스에서 막을 향해 내려가는 것 역시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미적 실천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무대에서 내려오기로 결의했다.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을 위한 대표 회의가 열렸고, 전문가들이 소집되었다.
그러다 나는 흠칫 놀랐다.
정확한 문장.
하지만 거짓이었다.
계속 날아오는 메일에 대해 나는 한 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누가 보내는지도 알 수 없었고, 섣불리 대응하는 것이 더 화를 키울 수 있었다.
처음으로 답신을 클릭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 정정합니다.
나는 제목을 적었다.
--- 「녹」 중에서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중요하지 않은 말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떠올리더라도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말들.
그 자리에서 흩어지고 휘발되어버리는 말들.
그런 말들이 오가다 보면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
그럴 때면 너무 깊은 이야기를 불쑥하게 된다.
그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고 희주는 생각했다.
우울한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하니까, 우중충한 사람은 매력적이지 않으니까.
희주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할까 봐 조심했다.
---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중에서
부모님은 충격을 받았다.
마음대로 그런 걸 결정했다고 언니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특히 동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언니를 못 견뎌 했다.
“그런 일 하려고 그 좋은 대학을 때려치운 거야?”
“그런 일이 뭔데? 엄마,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넌 꼭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
너만 잘났지.
너만 똑똑하지.”
--- 「돌아가는 마음」 중에서
언젠가 나는 석주에게 넌 왜 일을 안 하느냐고 물었다.
석주가 내게 왜 일을 하냐고 되물었다.
일을 해야지 그럼 안 해? 나는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석주는 내게 왜 그 일을 하고 있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그게 중요하냐고 물었다.
석주는 중요하다고 했다.
--- 「이름을 짓기 직전」 중에서
선자 씨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진아는 생각했다.
선자 씨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 들었을 때 진아는 당황스러웠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기원할 만한 상황인가, 그런 처지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자격이 없나, 자격이 없는 건가? 스스로에게 외치듯 되물었다.
그리고 마음껏, 진심으로 선자 씨의 안녕을 생각했다.
선자 씨에게 평온이 있길.
씩씩한 선자 씨의 용기가 계속되길.
바라고 또 바랐다.
---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 중에서
새벽마다 기도하러 가는 엄마와 이모를 보며 나는 그 뒷모습이 애처롭다가도 나도 모르게 울컥 화가 났다.
나는 떠나기를 바라면서도 결국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떠나지 않았다는 기분보다 남겨진 기분에 시달렸다.
돌보지 않아 시든 화분 같은 기분.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물을 잔뜩 줘서 죽어버리고야 마는 식물들이 질투가 날 만큼 부러웠다.
가령 솔이의 안전에 눈이 먼 이모의 몽매한 사랑 같은 것이.
나는 때로 부러웠다.
--- 「권능」 중에서
우린 잘못되지 않았어.
미영과 나는 열 손가락 끝에 매달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원한다면 손가락을 접을 수 있었다.
원한다면 손가락을 접어 우리의 숲을 거둘 수도 있었다.
숲은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에 있어.
있어도 돼.
그래서 우리는 있었다.
우리는 숲에서 다치기도 했지만 숲은 우리의 집이었다.
숲은 우리를 망칠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든 숲.
우리가 쌓은 숲.
숲은 곧 우리였다.
--- 「우리는 숲」 중에서
인류는 이제 자신들의 마지막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아름답기 위해서.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지성의 발로였다.
인류가 이끌어온 역사의 클라이맥스에서 막을 향해 내려가는 것 역시 인간만이 행할 수 있는 미적 실천이었다.
그래서 인류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무대에서 내려오기로 결의했다.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필요가 있었다.
인류의 마지막을 위한 대표 회의가 열렸고, 전문가들이 소집되었다.
---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 - 3인칭의 세계」 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는 또다시 서로를 잘 안다고 오해하고
작은 오해만으로도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
공현진의 소설에서 원가족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닌 개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서로 믿음이나 신뢰를 쌓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오직 종교로써 결속되기를 꾀하는 가족공동체는 개인을 소외시키고 집요하고 잔인하게 옭아맨다.
집을 나간 지 5년 만에 돌아온 언니가 대뜸 결혼을 선언하자 엄마가 가장 먼저 “믿는 사람이지?”(「돌아가는 마음」, p.
78)라고 묻거나 딸을 잃은 초희 이모가 조카인 ‘나’의 모든 것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신앙생활에 집착하는(「권능」) 모습은 매일 신께 기도하지만 서로 소통은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가족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언니와 이모가 처음부터 가족으로부터 구제 불능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언니’는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와 형제들의 자랑이었고, ‘초희 이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화자를 악몽에서 꺼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각각의 화자는 한 몸과도 같았던 혈육이 원가족 안으로 안착하길 바라면서도 그들이 결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불안해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우리는 숲」에서 가족 서사의 큰 줄기는 앞서 두 작품과 연결되지만 원가족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부모의 자살로 단둘만 남게 된 자매에게는 이들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
이웃들은 부모의 죽음을 쉬쉬하고 해남에서부터 자매를 찾아오는 이모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춘다.
동생 ‘미영’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말라가고 자매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물들에게 시달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어린 자매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오래도록 염원하던 만두 가게를 열게 된다.
이로써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훔쳤던 폴리 포켓도, 쓸데없는 감상에 젖게 만들던 알전구도 그리고 죽은 부모의 흔적도 모두 으깨어져 따뜻하고 부드럽게 빚어져 과거로 남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혈연으로 이뤄진 자매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어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묻는 공현진의 소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헛된 믿음이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로 끌어내리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에서 진정 중요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더 있는 힘껏 믿고, 의지하고 또 응원할 수 있는 마음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던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는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미더운 응원으로 다시 치유되기도 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에서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취직도 하지 않고, 남자답지 않고, 군대도 미루고, 채식을 해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도무지 없어서”(p.
100) 폭력을 일삼는다.
석주와 달리 고기를 먹고 여행사의 비정규직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나’는 스스로 만든 아마추어 밴드에서마저도 잘린 석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화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석주뿐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모든 업무가 멈춘 회사 앞에 서서 핑크색 조끼를 입고 시위를 하는 과장님이나 대학 기업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삭발 시위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화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p.
131)라는 석주의 무구한 물음에 석주의 모든 행보에 더는 이유를 덧붙일 필요 없이 온전히 응원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름을 짓기 직전」의 화자가 이해할 수 없는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응원했다면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은 잘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난 ‘선자 씨’와 ‘진아’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들이지만 함께 공부하고 생활을 나누며 서로를 순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돕는다.
각각 아버지와 남편을 부양해야 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을 살뜰하게 살피며 각자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친구가 된다.
한밤중 ‘진아’의 집에서 수도계량기가 동파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도 선자 씨이고, 선자 씨 혼자만 보호사 자격증에 붙었을 때도 ‘진아’는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기원할 만한 상황인가, 그런 처지인가” 하고 되물으면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선자 씨의 안녕”(p.
171)을 바라고 또 응원하며 더 밝은 내일로 나아간다.
마지막 수록작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는 인류의 마지막 순간과 유일하게 남은 ‘하나’라는 인물을 통해 인류의 멸망에 대해 그리면서도 인간 삶의 찬란하리만치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인류에 대해 그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끝을 알고도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세계의 멸망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이의 소멸에 무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달라진 세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소, 해설 「어차피의 세계에서」, p.
291)을 건네는 공현진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 자신 1인칭의 세계가 아닌 더 넓은 범주에서의 3인칭의 세계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거울 밖 세상에 자리하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공현진의 소설은 아직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물속에 깊이 가라앉는 순간까지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과 용기를 전하려 하는 신인 작가의 행보가 더욱 미덥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작가의 말
내가 쓴 소설의 인물들처럼, 나도 수영 초급반 맨 뒷줄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장 뒤에 선 채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문장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수영장의 소음 속에서.
그런 문장이 불쑥 튀어 오른 후에 이상하게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무서움과 겁이 (조금) 사라지고, 용기가 (약간) 생겨났다.
고백하자면 어릴 적 나는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애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면 뒤에 있는 것에 안심하는 어른으로 자라고 말았다.
뒤쪽도 괜찮았다.
친구들도 사귀었다.
‘우리’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는 것을 경계하고 미워하던 때가 있다.
당신과 내가 어떻게 우리인가, 왜 우리인가, 함부로 우리인가.
덥석 나의 손을 잡은 누군가를 향해 그런 모난 마음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서, 나는 우리라는 말을 건네고야 만다.
손쉬운 말이어도 별수 없다 여기며.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내가 살아가고 있음이 시리게 선득하고 다행이어서 무서운 순간이 있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그런 마음을 건네며, 우리라고 부르고 싶다.
오만할 수도 있다는, 내가 두른 겹겹의 장벽을 내려놓고.
그냥, 허물어진 경계로 누군가의 손을 붙들고 싶다.
붙든 손으로 말하고 싶다.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이 말은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살자고, 하는 말과도 같다.
첫 소설집을 묶는다.
내내 즐겁게 쓴 소설도, 아프게 쓴 소설도 있다.
소설을 묶으며 이것들을 한데 묶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가까운 마음을 지나간 소설들이다.
소설들을 내보일 수 있어 기쁘다.
불안과 두려움도 크지만, 힘껏 기쁜 마음을 내세워보려 한다.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
다정하고 세밀한 눈으로 소설을 다듬어준 윤소진 편집자님께, 멋진 해설을 써주신 이소 평론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가능한 만큼, 나는 뒤쪽에서 헤엄칠 작정이다.
갈 수 있는 만큼 가다가, 우리가 만났으면 좋겠다.
읽어주어서 감사하다.
2025년 여름
공현진
작은 오해만으로도 관계는 허물어지고 만다
공현진의 소설에서 원가족은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아닌 개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기폭제로 작용한다.
서로 믿음이나 신뢰를 쌓으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오직 종교로써 결속되기를 꾀하는 가족공동체는 개인을 소외시키고 집요하고 잔인하게 옭아맨다.
집을 나간 지 5년 만에 돌아온 언니가 대뜸 결혼을 선언하자 엄마가 가장 먼저 “믿는 사람이지?”(「돌아가는 마음」, p.
78)라고 묻거나 딸을 잃은 초희 이모가 조카인 ‘나’의 모든 것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신앙생활에 집착하는(「권능」) 모습은 매일 신께 기도하지만 서로 소통은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가족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언니와 이모가 처음부터 가족으로부터 구제 불능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언니’는 집을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부모와 형제들의 자랑이었고, ‘초희 이모’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화자를 악몽에서 꺼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각각의 화자는 한 몸과도 같았던 혈육이 원가족 안으로 안착하길 바라면서도 그들이 결코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고 불안해하며 소설은 끝맺는다.
「우리는 숲」에서 가족 서사의 큰 줄기는 앞서 두 작품과 연결되지만 원가족이 붕괴되고 새로운 가족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부모의 자살로 단둘만 남게 된 자매에게는 이들을 보호할 어른이 없다.
이웃들은 부모의 죽음을 쉬쉬하고 해남에서부터 자매를 찾아오는 이모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자취를 감춘다.
동생 ‘미영’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말라가고 자매는 끊임없이 말을 거는 사물들에게 시달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 못한 어린 자매는 쓰레기로 가득 찬 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 오래도록 염원하던 만두 가게를 열게 된다.
이로써 어린 시절 친구에게서 훔쳤던 폴리 포켓도, 쓸데없는 감상에 젖게 만들던 알전구도 그리고 죽은 부모의 흔적도 모두 으깨어져 따뜻하고 부드럽게 빚어져 과거로 남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혈연으로 이뤄진 자매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되어 단단한 결속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가족의 형태와 의미에 대해 묻는 공현진의 소설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헛된 믿음이 한 개인을 어떻게 파멸로 끌어내리는지에 대해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에서 진정 중요한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묻는다.
당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에
더 있는 힘껏 믿고, 의지하고 또 응원할 수 있는 마음
서로를 잘 안다고 믿었던 가족들에게 받은 상처는 타인을 향한 조건 없는 미더운 응원으로 다시 치유되기도 한다.
「이름을 짓기 직전」에서 석주의 아버지는 석주가 “취직도 하지 않고, 남자답지 않고, 군대도 미루고, 채식을 해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도무지 없어서”(p.
100) 폭력을 일삼는다.
석주와 달리 고기를 먹고 여행사의 비정규직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나’는 스스로 만든 아마추어 밴드에서마저도 잘린 석주를 이해하지 못한다.
화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석주뿐만이 아니다.
팬데믹 이후 모든 업무가 멈춘 회사 앞에 서서 핑크색 조끼를 입고 시위를 하는 과장님이나 대학 기업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삭발 시위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화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심도 자격이 있어야 가질 수 있어?”(p.
131)라는 석주의 무구한 물음에 석주의 모든 행보에 더는 이유를 덧붙일 필요 없이 온전히 응원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름을 짓기 직전」의 화자가 이해할 수 없는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응원했다면 「선자 씨의 기적의 공부법」은 잘 모르는 타인일지라도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양 보호사 자격증 준비반에서 만난 ‘선자 씨’와 ‘진아’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들이지만 함께 공부하고 생활을 나누며 서로를 순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돕는다.
각각 아버지와 남편을 부양해야 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일상을 살뜰하게 살피며 각자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친구가 된다.
한밤중 ‘진아’의 집에서 수도계량기가 동파되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도 선자 씨이고, 선자 씨 혼자만 보호사 자격증에 붙었을 때도 ‘진아’는 자신이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기원할 만한 상황인가, 그런 처지인가” 하고 되물으면서도 “마음껏, 진심으로 선자 씨의 안녕”(p.
171)을 바라고 또 응원하며 더 밝은 내일로 나아간다.
마지막 수록작 「모두가 사라진 이후에─3인칭의 세계」는 인류의 마지막 순간과 유일하게 남은 ‘하나’라는 인물을 통해 인류의 멸망에 대해 그리면서도 인간 삶의 찬란하리만치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준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인류에 대해 그리면서도 “어떻게 하면 끝을 알고도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지, 어떻게 세계의 멸망을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이의 소멸에 무심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달라진 세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냉소하지 않을 수 있는지와 같은 질문들”(이소, 해설 「어차피의 세계에서」, p.
291)을 건네는 공현진의 이야기는 우리가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 자신 1인칭의 세계가 아닌 더 넓은 범주에서의 3인칭의 세계를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은 거울 밖 세상에 자리하고 우리는 무수히 많은 타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에 공현진의 소설은 아직 우리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도 많다.
물속에 깊이 가라앉는 순간까지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과 용기를 전하려 하는 신인 작가의 행보가 더욱 미덥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작가의 말
내가 쓴 소설의 인물들처럼, 나도 수영 초급반 맨 뒷줄에서 수영을 배웠다.
수영장 뒤에 선 채로,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라는 문장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수영장의 소음 속에서.
그런 문장이 불쑥 튀어 오른 후에 이상하게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무서움과 겁이 (조금) 사라지고, 용기가 (약간) 생겨났다.
고백하자면 어릴 적 나는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는 애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능하면 뒤에 있는 것에 안심하는 어른으로 자라고 말았다.
뒤쪽도 괜찮았다.
친구들도 사귀었다.
‘우리’라는 말을 섣불리 내뱉는 것을 경계하고 미워하던 때가 있다.
당신과 내가 어떻게 우리인가, 왜 우리인가, 함부로 우리인가.
덥석 나의 손을 잡은 누군가를 향해 그런 모난 마음을 숨기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서, 나는 우리라는 말을 건네고야 만다.
손쉬운 말이어도 별수 없다 여기며.
다른 말을 찾지 못한 채.
내가 살아가고 있음이 시리게 선득하고 다행이어서 무서운 순간이 있다.
나 아닌 누군가에게도 그런 마음을 건네며, 우리라고 부르고 싶다.
오만할 수도 있다는, 내가 두른 겹겹의 장벽을 내려놓고.
그냥, 허물어진 경계로 누군가의 손을 붙들고 싶다.
붙든 손으로 말하고 싶다.
어차피 멸망할 세계라면, 우리 함께 멸망하자고.
이 말은 내게 함께 살아가자고, 살자고, 하는 말과도 같다.
첫 소설집을 묶는다.
내내 즐겁게 쓴 소설도, 아프게 쓴 소설도 있다.
소설을 묶으며 이것들을 한데 묶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물음으로 스스로를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나’와 가까운 마음을 지나간 소설들이다.
소설들을 내보일 수 있어 기쁘다.
불안과 두려움도 크지만, 힘껏 기쁜 마음을 내세워보려 한다.
감사한 사람들이 많다.
다정하고 세밀한 눈으로 소설을 다듬어준 윤소진 편집자님께, 멋진 해설을 써주신 이소 평론가님께 깊은 감사를 전한다.
가능한 만큼, 나는 뒤쪽에서 헤엄칠 작정이다.
갈 수 있는 만큼 가다가, 우리가 만났으면 좋겠다.
읽어주어서 감사하다.
2025년 여름
공현진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6월 24일
- 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124*188*20mm
- ISBN13 : 9788932044071
- ISBN10 : 8932044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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