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시간
Description
책소개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세라 블래퍼 허디의 최신작.
영장류 수컷의 새끼 살해 행동이 군집 밀도의 증가에 따른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기존 해석을 뒤집고 암컷의 생식 전략임을 밝혀내 진화생물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가 자신의 지적 여정을 정리하며 주목한 주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다.
그동안 진화생물학에서 ‘사냥꾼 남성’이라는 빈약하고 편향된 패러다임에 갇혀 방치되다시피 한 아버지 역할의 의미 그리고 남성의 양육과 돌봄이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허디는 ‘독성 남성성’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가부장적 문화와 보수주의가 결합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남성성’의 정의이며, 돌봄 가치의 재발견이라고 주장한다.
영장류 수컷의 새끼 살해 행동이 군집 밀도의 증가에 따른 스트레스 반응이라는 기존 해석을 뒤집고 암컷의 생식 전략임을 밝혀내 진화생물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가 자신의 지적 여정을 정리하며 주목한 주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다.
그동안 진화생물학에서 ‘사냥꾼 남성’이라는 빈약하고 편향된 패러다임에 갇혀 방치되다시피 한 아버지 역할의 의미 그리고 남성의 양육과 돌봄이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집중적으로 탐구한다.
허디는 ‘독성 남성성’이 독버섯처럼 솟아나고 가부장적 문화와 보수주의가 결합하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남성성’의 정의이며, 돌봄 가치의 재발견이라고 주장한다.
목차
들어가는 말 008
1.
그때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 017
2.
남자의 불행한 본능 042
3.
물꼬를 트다 077
4.
아빠의 뇌 089
5.
다윈, 그리고 알을 품는 수탉 114
6.
아기가 가진 신비한 힘 150
7.
영장류 수컷의 돌봄 179
8.
플라이스토세에 일어난 놀라운 진화 221
9.
정신의 변화 262
10.
아버지 역할의 문화적 구성 295
11.
변화하는 인식 344
12.
남성과 아기의 21세기적 만남 382
나가는 말 413
감사의 글 420
감수자 해제 423
미주 436
참고문헌 477
찾아보기 535
1.
그때의 아버지와 지금의 아버지 017
2.
남자의 불행한 본능 042
3.
물꼬를 트다 077
4.
아빠의 뇌 089
5.
다윈, 그리고 알을 품는 수탉 114
6.
아기가 가진 신비한 힘 150
7.
영장류 수컷의 돌봄 179
8.
플라이스토세에 일어난 놀라운 진화 221
9.
정신의 변화 262
10.
아버지 역할의 문화적 구성 295
11.
변화하는 인식 344
12.
남성과 아기의 21세기적 만남 382
나가는 말 413
감사의 글 420
감수자 해제 423
미주 436
참고문헌 477
찾아보기 535
책 속으로
2018년, 미국심리학회가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발표했을 때, 큰 논란이 일었다.
사람들은 학회가 만든 새로운 정의가 남성성을 악마처럼 묘사하고, 남자를 ‘여성화’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저자는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해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는 “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같다고 믿는 척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남성성이 문제라고 믿는 척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소년이 남자답게 자라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세상은 강한 남성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없다면 누가 ‘마을’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 주장은 ‘남자라면 집단을 방어하는 전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진화론자의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마거릿 미드조차 이런 의견에 동조했다.
미드는 “서구 사회의 남성이 어머니처럼 육아를 즐기게 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버지가 아이를 보는 데 매진하느라 창의력을 잃거나 혁신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pp.39~40
20세기 중반에 인류학자가 실제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70퍼센트 이상의 문화가 부계 거주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부계 거주 패턴의 보편성은 가부장적 체제가 인간에게 자연스럽다는 확신을 강화했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서는 아들이 가족 가까이에 머물고 딸이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교과서적 가치가 확립되었다.
하지만 물론, 그것이 항상 또는 어디서나 사실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부장적 사회 체제는 ‘자연스러운’ 그리고 인간의 종 특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p.337
같은 해에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전통적 남성성의 강요를 비판했는데, 이는 남성이 “여성 그리고 자신의 모성적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킴멜과 자블론카의 분석을 떠올리게 했다.
라마는 강하고 주도적인 남성상이 어떻게 자신과 같은 남성들을 ‘남성으로서의 자격’을 잃거나,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가두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갱들이 활개를 치는 캘리포니아 콤프턴의 위험한 거리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남성들이 약함을 감추고 감정을 억누르도록 강요받는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러한 억압이 결국 남성을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가며, “자아의 위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평균 기대수명까지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개탄한다.
라마는 무릎이 까져도 눈물을 보이지 못했던 소년 시절에 대한 슬픔을 토로한다.
왜냐하면 거친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아버지가 그에게 “약해지지 마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절규를 들으며 공감했다.
켄드릭 라마는 섬세해지는 법을 배우고, 공감하고, 타인을 돌보는 법을 익혀야 했던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가 돌보는 대상에는 자신의 연인과 자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랩 제목은 ‘아버지의 시간(Father Time)’이었다.
--- p.365
이제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남성도 돌봄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과 자아상이 필요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려면, 마침맞는 시기에 별이 정렬되는 것처럼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렇게 조건이 갖추어져도 너무 취약해 자칫하면 깨지기 십상이다.
지금 무르익은 이 상황을 놓친다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돌봄 반응이 어머니만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다.
모든 남성 안에는 오래전 수컷들에게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성들은 생계를 책임지거나 가부장이 되기 이전에 돌보는 사람이었고, 돌보는 사람이 되기 이전에 보호하는 존재였다.
남성들은 아기들이 발산하는 변화의 힘에 반응할 수 있는 몸과 뇌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학회가 만든 새로운 정의가 남성성을 악마처럼 묘사하고, 남자를 ‘여성화’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저자는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그해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에서 세 아들의 어머니는 “왜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같다고 믿는 척해야 하는가? 그리고 왜 남성성이 문제라고 믿는 척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소년이 남자답게 자라는 것이 필수적이라면서 “세상은 강한 남성을 필요로 한다.
그들이 없다면 누가 ‘마을’을 적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의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 주장은 ‘남자라면 집단을 방어하는 전사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진화론자의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었다.
마거릿 미드조차 이런 의견에 동조했다.
미드는 “서구 사회의 남성이 어머니처럼 육아를 즐기게 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버지가 아이를 보는 데 매진하느라 창의력을 잃거나 혁신적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pp.39~40
20세기 중반에 인류학자가 실제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70퍼센트 이상의 문화가 부계 거주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부계 거주 패턴의 보편성은 가부장적 체제가 인간에게 자연스럽다는 확신을 강화했다.
따라서 “전통 사회에서는 아들이 가족 가까이에 머물고 딸이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교과서적 가치가 확립되었다.
하지만 물론, 그것이 항상 또는 어디서나 사실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가부장적 사회 체제는 ‘자연스러운’ 그리고 인간의 종 특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 p.337
같은 해에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는 전통적 남성성의 강요를 비판했는데, 이는 남성이 “여성 그리고 자신의 모성적 감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킴멜과 자블론카의 분석을 떠올리게 했다.
라마는 강하고 주도적인 남성상이 어떻게 자신과 같은 남성들을 ‘남성으로서의 자격’을 잃거나, 아버지께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가두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갱들이 활개를 치는 캘리포니아 콤프턴의 위험한 거리에서 성장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남성들이 약함을 감추고 감정을 억누르도록 강요받는 현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러한 억압이 결국 남성을 “불안정한” 상태로 몰아가며, “자아의 위축”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평균 기대수명까지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개탄한다.
라마는 무릎이 까져도 눈물을 보이지 못했던 소년 시절에 대한 슬픔을 토로한다.
왜냐하면 거친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아버지가 그에게 “약해지지 마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의 절규를 들으며 공감했다.
켄드릭 라마는 섬세해지는 법을 배우고, 공감하고, 타인을 돌보는 법을 익혀야 했던 과정을 이야기했다.
그가 돌보는 대상에는 자신의 연인과 자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랩 제목은 ‘아버지의 시간(Father Time)’이었다.
--- p.365
이제 ‘모유를 먹이는 어머니’뿐만 아니라 남성도 돌봄의 가치를 우선에 두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갖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사회적 규범과 자아상이 필요한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려면, 마침맞는 시기에 별이 정렬되는 것처럼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이렇게 조건이 갖추어져도 너무 취약해 자칫하면 깨지기 십상이다.
지금 무르익은 이 상황을 놓친다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돌봄 반응이 어머니만의 전유물이라는 잘못된 관념을 이제 내려놓아야 할 때다.
모든 남성 안에는 오래전 수컷들에게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남성들은 생계를 책임지거나 가부장이 되기 이전에 돌보는 사람이었고, 돌보는 사람이 되기 이전에 보호하는 존재였다.
남성들은 아기들이 발산하는 변화의 힘에 반응할 수 있는 몸과 뇌를 가지고 있었다.
--- pp.418~419
출판사 리뷰
“이번에는 아버지 차례입니다.”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의 최신작
· 《뉴스테이츠먼》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 〈텔레그래프〉 선정 2024년 ‘올 여름 꼭 읽어야 할 책’
· 〈데일리익스프레스〉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 2025년 ‘PEN/E.O.
Wilson 과학저술상’ 후보작
· 2024년 PROSE Award 수상작
“생물학자들은 왜 그토록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소홀히 했을까?”〈텔레그래프〉는 허디의 책 서평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냥꾼 남성’이라는 빈약하고 편향된 패러다임에 갇혀 방치되다시피 한 진화생물학의 남성과 아버지 역할 논의에 던지는 도전적 메시지인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해서 고기와 음식을 제공하고 부양하는 사냥꾼 남성과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이른바 진화론의 성 선택의 기본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들이 소홀했던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서 오래 인류 진화사로의 여정을 떠난다.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가 일생의 지적 여정을 정리하면서 주목한 주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다.
잃어버린 남성의 ‘양육 본능’을 재발견하다.
허디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남성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양육 본능’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와 함께 자신이 자라온 성장환경, 연구자로서의 삶, 이후 임신과 출산 등 자전적 이야기를 함께 서술한다.
학문과 삶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이분법이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1950~70년대 백인 중산층의 삶에서, 또 다윈주의 생물학에서는 ‘육아는 어머니의 일’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또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 중심의 육아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20쪽) 거의 모든 포유류가 어미가 자식을 양육한다는 점에서, 또 여성은 체내 수정,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를 고스란히 짊어진 ‘포유류’라는 점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가정은 당연한 듯했다.
지은이도 지적하듯이 어미의 뇌와 몸은 이미 자식 양육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떨까? 영장류 수컷에서 보듯 아이를 돌보기보다는 살해하고 위협을 가하는 존재에 가까운 것일까?(연구에 따르면 수컷 중 5퍼센트만이 새끼를 돌본다고 한다.)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양육하는 남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두드러진 남성 양육은 단순히 문화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는 것을 허디는 양육하는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등) 호르몬 변화, 아이를 돌볼 때의 양육 반응 등 신경과학적 내분비학적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류학적 증거를 통해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남성의 몸과 마음 안에는 이미 양육 본성이 내재해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아이 양육은 어머니만의 몫이 아니며, 현대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서 협력 양육은 필수적이었고, 수컷(남성)의 돌봄과 양육은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신경학적 내분비학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진화한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지위와 짝을 놓고 싸우고 경쟁하는 남성? 여성은 타고난 양육자?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의 자식은 양육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며, 이유(離乳)가 빠르고, 뇌가 엄청나게 크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등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이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허디는 플라이스토세에 주목한다.
플라이스토세의 급격한 기후 변동은 호모속 유인원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다.
“우리 조상은 한때 번식 가능한 성체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라한 호모 에렉투스 개체군에서 나왔다.”(225쪽) 혹독한 환경 변화로 위기에 처한 인류는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 양육을 하고, 음식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고, 명성과 평판을 중시하는 남성이 그리고 사회적 처벌이 진화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상호 의존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허디에 따르면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의 성 선택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 중요한 자연선택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기나긴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면서 인간 남성은 친척이 아닌 사람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을 지원하고 부양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육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하게 되었다.”(360쪽)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과 진화는 ‘협력 양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남성이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은 ‘부성 확실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다윈의 성 선택은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과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자원과 부양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계약에 의해 자연선택이 원리가 작동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남성의 존재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인데, 여성이 ‘부성 확실성’을 보장함으로써 남성의 부양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디는 여성(암컷)이 생존과 생식 전략으로 부성 확실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다양한 사례가 영장류에서도 또 인간 사회에서도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여성이 자손을 번식하고 양육하려는 본능은 제2, 제3의 아버지를 복수로 마련해두고 양육을 보장받으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다양한 민족지적 증거(모계사회, 부성 공유 문화 등)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남성에게도 ‘친자 확실성’이 양육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한다.
유전적 친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양육하는 동성애자 커플이나 마을사람들 모두가 아이 돌봄을 하는 다양한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허디는 결국 유전적 친자 여부보다는 남성의 양육 본성 그리고 ‘아기와 얼마나 친밀하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느냐’가 양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착해 농경을 하면서 인류의 거의 보편적 패턴으로 자리잡은 가부장적 문화와(20세기 중반에 나온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70퍼센트에 달한다), 산업화 이후의 핵가족의 신화를 깨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가족은 유전적 관계로 맺어진 특정 유형뿐만 나이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보살핌이다.
아이에게는 함께 살며 보살핌을 제공하기만 하면 모두 ‘가족’이다.”(361쪽)
지금은 ‘더 독한 남성성’이 아니라 남성의 ‘돌봄 본능’을 일깨워야 할 때이다.
오늘날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임신과 피임, 수유 등 새로운 생식 기법의 발달, 여성의 생식 자율성, 여성 운동의 확산 등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문화는 이에 반발하는 가부장적 남성성, 보수주의, ‘더 독한 남성성’을 부르짖는 백래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보수주의와 가부장적 이념과 극우적 세계관이 결합한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본 적 없고, 애를 키우는 것은 아내의 일이며, 나는 충분한 ‘돈을 대준다’고 으스대면서 … 우리는 인간이고 ‘남자는 가장 사나운 동물’로서, ‘끝없는 전투 속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35쪽) 다시 한번 이분법적 성역할 관념이 득세하고 남성과 아기의 전례없는 만남이라고 지은이가 말하는 21세기적 상황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허디는 책에서 단순히 양육하는 남성의 생물학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오늘날의 육아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함께 전 지구적인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단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며, 거기서 발견하는 ‘돌봄’의 가치이다.
추천의 글
“생물학자들은 왜 그토록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소홀히 했을까? 여기서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허디의 심도 깊은 연구가 시작된다.
허디는 유려하고 권위 있는 필치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낡은 통념을 무너뜨리고, 사회 변화가 어떻게 남성의 아이 돌봄 욕망을 해방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아름다운 글은 그 어느 때보다 놀라움과 교훈을 준다.” 〈텔레그래프〉
“허디의 글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이 책은 아이를 돌보는 남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귀한 독서가 될 것이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글쓰기는 호소력이 짙을 뿐만 아니라 수컷 돌봄의 호르몬 및 신경생물학적 측면에 대한 최신 연구를 망라해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네이처》
“진화인류학자 허디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아기를 돌보고 유아를 양육하는 데 더 적합하다는 여전히 널리 퍼진 통념을 깬다.
저자는 포유류 진화에 대한 문화적, 과학적 논증을 통해 아기를 돌보는 남성의 생물학적 반응이 여성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
“허디는 보다 평등주의적인 부모 역할 규범이 사회를 바꿀 뿐만 아니라 남성의 생화학적 구성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뉴요커》
“허디는 오랫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우리 인간 종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이해하려면 희미한 역사 이전의 시기에 아기, 어머니, 그리고 옆에서 양육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성선택의 관점에서 남성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일반적인 다윈주의적 시선을 넘어 진화의 지렛대를 찾는 과정에서 허디는 ‘자연’이 무엇이고, 우리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다.” 《타임스 문예부록》
“자신의 분야에 대한 해박한 통찰과 따뜻하고 읽기 편한 산문을 결합한 보기 드문 과학 작가.” 〈선데이타임스〉
“호모 사피엔스 수컷도 암컷만큼 양육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사이콜로지 투데이》
“문화적 규범과 진화론 모두 아기를 돌보는 것은 주로 여성의 역할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허디는 연구를 통해 아이를 돌보는 남성의 심오한 생물학적?사회적 함의를 발견한다.” 《뉴스테이츠맨》
“부성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탁월한 고찰.” 《퍼블리셔스 위클리》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 매혹적인 책이다.” 〈데일리메일〉
“풍부한 과학적 정보와 전문가의 통찰 그리고 빛나는 서사로 가득한 놀라운 책.” 《하버드 매거진》
“모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허디만큼 부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남성도 여성만큼 아기를 세심하게 잘 돌볼 수 있으며, 아이를 돌봄으로써 남성의 뇌는 어머니의 뇌와 비슷하게 변화한다.
허디는 가족 내에서 성 역할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결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프란스 드 발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의 최신작
· 《뉴스테이츠먼》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 〈텔레그래프〉 선정 2024년 ‘올 여름 꼭 읽어야 할 책’
· 〈데일리익스프레스〉 선정 2024년 ‘올해 최고의 책’
· 2025년 ‘PEN/E.O.
Wilson 과학저술상’ 후보작
· 2024년 PROSE Award 수상작
“생물학자들은 왜 그토록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소홀히 했을까?”〈텔레그래프〉는 허디의 책 서평을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냥꾼 남성’이라는 빈약하고 편향된 패러다임에 갇혀 방치되다시피 한 진화생물학의 남성과 아버지 역할 논의에 던지는 도전적 메시지인 것이다.
집 밖으로 나가 사냥을 해서 고기와 음식을 제공하고 부양하는 사냥꾼 남성과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 사이에 일종의 ‘계약’이 이른바 진화론의 성 선택의 기본 가정이었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들이 소홀했던 아버지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서 오래 인류 진화사로의 여정을 떠난다.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손꼽히는 모성 연구의 대가 허디가 일생의 지적 여정을 정리하면서 주목한 주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다.
잃어버린 남성의 ‘양육 본능’을 재발견하다.
허디는 인류가 진화하는 동안 남성의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진 ‘양육 본능’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과학적 연구결과와 함께 자신이 자라온 성장환경, 연구자로서의 삶, 이후 임신과 출산 등 자전적 이야기를 함께 서술한다.
학문과 삶에서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 이분법이 얼마나 강고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1950~70년대 백인 중산층의 삶에서, 또 다윈주의 생물학에서는 ‘육아는 어머니의 일’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과학을 공부하면서 또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 중심의 육아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의심하게 만든 것은 없었다.”(20쪽) 거의 모든 포유류가 어미가 자식을 양육한다는 점에서, 또 여성은 체내 수정, 임신과 출산, 모유수유를 고스란히 짊어진 ‘포유류’라는 점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여성의 몫’이라는 진화생물학의 가정은 당연한 듯했다.
지은이도 지적하듯이 어미의 뇌와 몸은 이미 자식 양육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떨까? 영장류 수컷에서 보듯 아이를 돌보기보다는 살해하고 위협을 가하는 존재에 가까운 것일까?(연구에 따르면 수컷 중 5퍼센트만이 새끼를 돌본다고 한다.)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양육하는 남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1세기에 두드러진 남성 양육은 단순히 문화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차원으로 깊숙하게 들어간다는 것을 허디는 양육하는 남성에게서 발견되는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등) 호르몬 변화, 아이를 돌볼 때의 양육 반응 등 신경과학적 내분비학적 연구결과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류학적 증거를 통해 보여준다.
간단히 말하면, 남성의 몸과 마음 안에는 이미 양육 본성이 내재해 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는 아이 양육은 어머니만의 몫이 아니며, 현대 인류의 기원인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에서 협력 양육은 필수적이었고, 수컷(남성)의 돌봄과 양육은 문화적 차원을 넘어서 신경학적 내분비학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진화한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지위와 짝을 놓고 싸우고 경쟁하는 남성? 여성은 타고난 양육자?
다른 영장류와 달리 호모 사피엔스의 자식은 양육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며, 이유(離乳)가 빠르고, 뇌가 엄청나게 크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행동하는 등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이 호모 사피엔스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허디는 플라이스토세에 주목한다.
플라이스토세의 급격한 기후 변동은 호모속 유인원을 멸종 위기로 내몰았다.
“우리 조상은 한때 번식 가능한 성체가 2만 명도 채 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초라한 호모 에렉투스 개체군에서 나왔다.”(225쪽) 혹독한 환경 변화로 위기에 처한 인류는 서로 협력하면서 공동 양육을 하고, 음식을 나누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고, 명성과 평판을 중시하는 남성이 그리고 사회적 처벌이 진화했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상호 의존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었다.
허디에 따르면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의 성 선택뿐만 아니라 사회적 선택이 중요한 자연선택의 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기나긴 플라이스토세를 거치면서 인간 남성은 친척이 아닌 사람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집단 구성원을 지원하고 부양하기 시작했고, 아이는 부모뿐만 아니라 다양한 양육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면서 성장하게 되었다.”(360쪽)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과 진화는 ‘협력 양육’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다.
남성이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은 ‘부성 확실성’이 보장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다윈의 성 선택은 짝과 지위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 남성과 자녀 양육에 들어가는 자원과 부양을 필요로 하는 여성의 계약에 의해 자연선택이 원리가 작동한다.
비용이 많이 드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서 남성의 존재가 아이의 생존에 필수적인데, 여성이 ‘부성 확실성’을 보장함으로써 남성의 부양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허디는 여성(암컷)이 생존과 생식 전략으로 부성 확실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다양한 사례가 영장류에서도 또 인간 사회에서도 수없이 많이 발견된다고 말한다.
여성이 자손을 번식하고 양육하려는 본능은 제2, 제3의 아버지를 복수로 마련해두고 양육을 보장받으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연구결과와 함께 다양한 민족지적 증거(모계사회, 부성 공유 문화 등)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남성에게도 ‘친자 확실성’이 양육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한다.
유전적 친자 여부와는 상관없이 양육하는 동성애자 커플이나 마을사람들 모두가 아이 돌봄을 하는 다양한 민족지적 사례를 통해 이를 뒷받침한다.
허디는 결국 유전적 친자 여부보다는 남성의 양육 본성 그리고 ‘아기와 얼마나 친밀하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느냐’가 양육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정착해 농경을 하면서 인류의 거의 보편적 패턴으로 자리잡은 가부장적 문화와(20세기 중반에 나온 인류학적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70퍼센트에 달한다), 산업화 이후의 핵가족의 신화를 깨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다.
가족은 유전적 관계로 맺어진 특정 유형뿐만 나이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 보살핌이다.
아이에게는 함께 살며 보살핌을 제공하기만 하면 모두 ‘가족’이다.”(361쪽)
지금은 ‘더 독한 남성성’이 아니라 남성의 ‘돌봄 본능’을 일깨워야 할 때이다.
오늘날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임신과 피임, 수유 등 새로운 생식 기법의 발달, 여성의 생식 자율성, 여성 운동의 확산 등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문화는 이에 반발하는 가부장적 남성성, 보수주의, ‘더 독한 남성성’을 부르짖는 백래시를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보수주의와 가부장적 이념과 극우적 세계관이 결합한다.
한편에서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한 번도 갈아본 적 없고, 애를 키우는 것은 아내의 일이며, 나는 충분한 ‘돈을 대준다’고 으스대면서 … 우리는 인간이고 ‘남자는 가장 사나운 동물’로서, ‘끝없는 전투 속에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존재’라고 말하는 사람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35쪽) 다시 한번 이분법적 성역할 관념이 득세하고 남성과 아기의 전례없는 만남이라고 지은이가 말하는 21세기적 상황에 먹구름이 드리운다.
허디는 책에서 단순히 양육하는 남성의 생물학적 의미를 재발견하고 오늘날의 육아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남성성’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함께 전 지구적인 위기를 헤쳐 나갈 방법을 모색한다.
단서는 바로 남성의 양육 본능이며, 거기서 발견하는 ‘돌봄’의 가치이다.
추천의 글
“생물학자들은 왜 그토록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소홀히 했을까? 여기서 다윈 이후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허디의 심도 깊은 연구가 시작된다.
허디는 유려하고 권위 있는 필치로 남성과 여성 사이에 본질적 차이가 있다는 낡은 통념을 무너뜨리고, 사회 변화가 어떻게 남성의 아이 돌봄 욕망을 해방시키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아름다운 글은 그 어느 때보다 놀라움과 교훈을 준다.” 〈텔레그래프〉
“허디의 글은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 이 책은 아이를 돌보는 남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귀한 독서가 될 것이다.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글쓰기는 호소력이 짙을 뿐만 아니라 수컷 돌봄의 호르몬 및 신경생물학적 측면에 대한 최신 연구를 망라해 동료 과학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네이처》
“진화인류학자 허디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아기를 돌보고 유아를 양육하는 데 더 적합하다는 여전히 널리 퍼진 통념을 깬다.
저자는 포유류 진화에 대한 문화적, 과학적 논증을 통해 아기를 돌보는 남성의 생물학적 반응이 여성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파이낸셜타임스〉
“허디는 보다 평등주의적인 부모 역할 규범이 사회를 바꿀 뿐만 아니라 남성의 생화학적 구성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뉴요커》
“허디는 오랫동안 많은 연구를 통해 우리 인간 종이 어떻게 출현했는지 이해하려면 희미한 역사 이전의 시기에 아기, 어머니, 그리고 옆에서 양육을 도와주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성선택의 관점에서 남성의 경쟁에 초점을 맞춘 일반적인 다윈주의적 시선을 넘어 진화의 지렛대를 찾는 과정에서 허디는 ‘자연’이 무엇이고, 우리 인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내놓는다.” 《타임스 문예부록》
“자신의 분야에 대한 해박한 통찰과 따뜻하고 읽기 편한 산문을 결합한 보기 드문 과학 작가.” 〈선데이타임스〉
“호모 사피엔스 수컷도 암컷만큼 양육을 잘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사이콜로지 투데이》
“문화적 규범과 진화론 모두 아기를 돌보는 것은 주로 여성의 역할이라고 오랫동안 주장해왔다.
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허디는 연구를 통해 아이를 돌보는 남성의 심오한 생물학적?사회적 함의를 발견한다.” 《뉴스테이츠맨》
“부성의 역사와 과학에 대한 탁월한 고찰.” 《퍼블리셔스 위클리》
“생각을 자극하는 질문들로 가득하다.
… 매혹적인 책이다.” 〈데일리메일〉
“풍부한 과학적 정보와 전문가의 통찰 그리고 빛나는 서사로 가득한 놀라운 책.” 《하버드 매거진》
“모성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허디만큼 부성에 대해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남성도 여성만큼 아기를 세심하게 잘 돌볼 수 있으며, 아이를 돌봄으로써 남성의 뇌는 어머니의 뇌와 비슷하게 변화한다.
허디는 가족 내에서 성 역할의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결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프란스 드 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4월 25일
- 판형 : 반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542쪽 | 135*217*35mm
- ISBN13 : 9791185415789
- ISBN10 : 1185415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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