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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 네이처
세컨 네이처
Description
책소개
환경운동가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얻어 온 마이클 폴란이 7년 동안 직접 땅을 일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연 에세이다.
저자는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역사 정치 미학 윤리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펼쳐낸다.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상충하고 대립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폴란은 자연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자연과 인간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해주는 공간으로, 정원을 제시한다.
하루 평균 두 시간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맨해튼의 아파트에 살던 시절, 어릴 적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던 정원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그는 콘월 후사토닉 계곡 동쪽 가장자리의 버려진 낙농장을 사서, 정원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곳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을 고스란히 이 책에 담았다.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의 허구성을 여지 없이 깨뜨리는 이 책은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양극단에서 고민하는 이 세대에 환경과 먹을거리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과 희망적인 대안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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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할아버지 댁을 방문해서도 수확할 것이 남아 있을 때가 좋았다.
나는 할아버지가 바구니를 건네주기도 전에 밭으로 달려나갔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나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해댔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혼자서 밭으로 갔다.
잘 자란 채소들이 나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수확하지 않은 채소밭은 가능성으로 가득했다.
암록색이 사라지며 붉은 빛깔로 익어가는 토마토를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하트 모양 잎새 아래쪽에 길쭉한 꼬투리를 키우고 있는 강낭콩을 봤을 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햇살에 따스해진 캔털루프 멜론을 둥글게 감싸 껴안아보는 일,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노란 잡초 싹을 뽑아버리는 일은 참으로 즐거웠다.
--- p.34, 〈제1장 두 개의 정원〉 중에서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시동이 걸린 기계를 몰아 잔디를 깎기 시작했다.
헌데 예초기는 일직선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왼쪽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그는 S자 모양의 곡선을 그리며 웃자란 잔디를 깎아나갔다.
그는 다시 M자를 만든 뒤 마지막으로는 P를 만들었다.
세 글자는 아버지의 이니셜이었는데 그 글자를 새겨놓고는 시동을 꺼버렸다.
그러고는 예초기를 차고에 처박은 뒤 다시는 시동을 걸지 않았다.
--- p.39, 〈제1장 두 개의 정원〉 중에서


나무로 불길이 번져 일이 커지자, 놀란 나는 정원의 골칫거리를 베트남전 방식으로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
정원 나뭇잎들을 죄다 태워버리거나 지하수를 오염시켜버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드척에 대한 분노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우리가 자연에 대해 크게 노여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하게 해주었다.
비타협적인 자연의 방식은 가끔씩 우리를 미치게 만든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독약을 뿌릴 만큼 집요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배추벌레나 진딧물을 고성능 농약으로 단번에 제거하고 나면,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화공법으로부터 내가 얻은 교훈은 녀석을 이기려드는 것보다 봉쇄하는 편이 더 낫다는 점이었다.
--- p.68, 〈제2장 자연은 정원을 싫어해〉 중에서

내가 정원 가꾸기에 골몰하면 할수록 잔디에 대한 회의는 커져만 갔다.
그것은 아버지가 겪었던 것처럼 이웃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회의였다.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잔디가 민주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자연과의 관계에서 보면 지극히 독재주의적인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초기의 무자비하고도 무차별적인 위력 앞에 자연의 풍경은 사라져버리고, 잔디는 사람의 힘에 철저하게 복속된다.
정원에서 잔디밭을 가꾸는 것은 마치 마룻바닥에 왁스를 먹이거나 도로를 포장하는 것처럼 매몰차게 느껴졌다.
정원을 가꾸는 것은 자연과 문화의 중간 지대에서 자연과 무언가를 주고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잔디밭은 철저히 짓밟히는 자연에 불과했다.
--- p.93, 〈제3장 왜 잔디를 깎는가?〉 중에서

형이상학적 의미에서 퇴비는 정원사의 독립을 회복시킨다.
적어도 정원용품 센터와 농약 회사로부터는 그렇다.
작물을 생산할 때 정원에서 자연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종묘 판매상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한 퇴비는 땅을 더욱 기름지게 만들 것이므로, 퇴비를 만들어 토양을 개량함으로써 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우리의 오랜 믿음 역시 보다 확고해질 수 있다.
--- p.106, 〈제4장 두엄의 형이상학〉 중에서

여름
그 꽃이 나를 유혹하는 것은, 그것이 여인의 모습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뒝벌은“흥분한 요정의 넓적다리”라는 은유를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만들었거나 선택한 것이니까.
그렇다면 이것은 가공의 것일까? 단지 상상에 불과한? (하지만 뒝벌은? 녀석의 수분활동은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실제 현실이지 않은가.) 우리가 교배한(문화) 장미(자연)에 대해 말하고 그 꽃(자연)이 우리로 하여금 여성(자연)을 상상하게(문화) 한다면, 우리는 지금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것일까? 어쩌면 이런 종류의 혼란이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 pp.145~146, 〈제5장 장미 정원에서〉 중에서

마침내 나는 잡초 때문에 질식할 듯한 상태로 정원을 가꾸는 행위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원의 식물들은 나를 믿고 운명을 맡겼는데, 나는 그들을 잡초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원을 다시 파헤쳐 새로운 방식으로 가꿔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잔디밭에 정사각의 밭을 일구고, 18인치씩 일정하게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뿌렸다.
싹이 올?오면서부터 나는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괭이를 들고, 이랑 사이에 솟아오른 풀들을 열심히 뽑아주었다.
나는 이것저것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p.173, 〈제6장 우리가 바로 잡초다〉 중에서

당근 하나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주제에 재능이 있다는 상찬을 들을 자격이 있을까? 당근 재배에 실패하자 나는 당혹스러웠고, 원예에 대한 신념에 위기가 닥쳐왔다.
나는 다부진 마음으로 당근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깊고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당근의 입장에서 생각을 가다듬어보기도 했다.
당근이 좋아하지 않는 상황은 어떤 것일까? (…) 함께 키우는 다른 작물이 문제일까? (…) 당근은 무엇에 신경을 쓰는 걸까?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이 아니다.
--- p.177, 〈제7장 원예의 재능〉 중에서

가을
무엇으로부터 이렇게 커다란 덩어리가 만들어지는 걸까? 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맞는 말이 아니다.
흙은 지난 5월, 내가 여기에 호박을 심을 때보다 양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만한 덩어리의 물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와 비슷한 양의 다른 물질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푹 꺼진 구덩이에 들어앉은 시블리 호박과 만났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게 그것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 p.213, 〈제8장 가을걷이〉 중에서

마치 쇠붙이가 자석에 달라붙듯이 우리의 온갖 생각과 은유는 나무에게로 달려간다.
나무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도 아닐 뿐더러, 우리가 그들에 대해 부여하는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게 존재한다.
하지만 나무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은유와 오래 전부터 결혼한 사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독자적인 존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나무에 부여한 은유(신이 존재하는 곳, 하나의 상품, 초월적 자연의 한 부분, 또는 숲 생태계를 이루는 한 요소 따위의)가 나무들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현대적 상황에 알맞은 새로운 은유는 어떤 것일까? 나무의 은유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대체적으로 나무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 p.253, 〈제9장 한 그루 나무 심기〉 중에서

야생의 윤리관은‘전부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판단하길 요구한다.
미국의 풍경은 그런 획일적인 판단을 충실하게 따른 결과다.
미국인들은 야생자연보호 구역과 같은 신성한 지역 주위로는 철저하게 경계선을 긋고, 그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개발을 허용하는 극단적인 행태를 취했다.
어느 지역의 풍경이 한 번‘처녀성’을 상실하면 그곳은 이제 타락한 장소, 이전의 자연적인 상태로는 회복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관념은 미국의 또 다른 신성불가침의 윤리관인 ‘자유방임주의 경제관념’으로 이양되었다.
--- p.279, 〈제10장 미완의 정원: 또 다른 정원의 개념〉 중에서

겨울
허드슨이 옳다.
나는 식물 세계의 주인이 아니라 그들의 하인이다.
종과 종 사이에 DNA 전이가 이루어지도록 동인을 제공함으로써, 시공을 초월하는 다양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꿈꾸기조차 어려운 최종 진화의 매개자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그동안 나는 카탈로그를 열심히 탐독하고, 우편으로 씨앗을 퍼뜨리고, 전혀 색다른 품종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따위의 일들이 내 즐거움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여러분은 나를 뒝벌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 p.334, 〈제11장 사색의 겨울정원〉 중에서

정원에 직선 형태를 만드는 일은 뜻밖에도 논란을 불러왔다.
일년초 화단을 가꾸면서 내가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한 편의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환경운동가와 정원설계사 양측 모두로부터 강력한 항의 편지를 받았다.
매사추세츠의 어느 정원설계사는 사각 형태 또는 열을 맞춰 작물을 심는 방식은‘기존의 심미적인 전통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며, 내가‘무책임하게’행동하고 있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또 그러한 방식으로는 비료와 제초제와 농약에 지나치게 의존해 환경을 훼손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p.357, 〈제12장 정원 여행〉 중에서

출판사 리뷰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 마이클 폴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현실의 파라다이스를 창조하다!


일찍이 야생을 옹호했던 한 자연주의자가 시험 삼아 콩밭을 일구다 말고 괭이를 내던졌다.
세상을 등지고 호숫가에 3년 동안 은신했던 그는, 훗날 위대한 책으로 추앙받게 될 자신의 저서에 당시 경험에 대해 적어두었다.
“이 콩들이 우드척을 위해서 자란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 그렇다면 우리의 콩 농사가 실패했다고 해서 그리 낙담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풍성한 잡초가 새들에게는 보다 풍부한 먹잇감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닌가?”라고.
아시다시피『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야기다.

이로부터 약 150년 후.
미국 코네티컷에서 자신의 채소 모종을 지키기 위해 우드척과 치열하게 대치 중인 한 남자는 이렇게 비웃었다.
“아무렴 즐겁지, 헨리.
그리고 굶어죽는 거야.”

소로와 작별한 어느 정원사의 모험
마이클 폴란.
소로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한 베스트셀러 목록을 거느렸고,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저술가로 명성을 얻은 이다.
그 역시 처음에는 소로의 충실한 제자였다.
하지만 바위투성이 언덕에 힘들여 가꿔둔 자신의 정원에 사슴, 너구리, 우드척, 온갖 곤충과 잡초들이 총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 낭만적 정체성을 유지하기란 지극히 어려웠다.
그는 자연의 관찰자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행동해야 하는 ‘정원사’였으니까.
〈워싱턴 포스트〉가 ‘자서전이자 정원서이며, 지적인 대서사시’라고 상찬했던 『세컨 네이처』는 저자 마이클 폴란이 7년 동안 직접 땅을 일군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폴란은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장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역사 정치 미학 윤리에 이르는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펼쳐낸다.
자연과 제대로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린 현대인에게 자연과 인간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근거를 제시해주는 공간으로, 폴란은 정원을 찾아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양극단에서 고민하던 우리에게 세계를 정원으로 인식하는 그의 아이디어는 21세기 최대 이슈인 환경과 먹을거리 문제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과 희망적인 대안을 선사한다.

맨해튼을 떠나 농장으로
어린시절 그는 두 개의 극단적인 정원을 경험했다.
강박에 가까울 만큼 기하학적 규칙을 사랑했던 외할아버지의 정원과 말끔한 잔디의 물결로 일렁이던 교외지역 풍경을 사정없이 망가뜨린 아버지의 방치된 정원.
할아버지는 땅을 ‘교환가치가 큰 상품’ 정도로 여겼던 게 분명했지만, 그는 할아버지의 정원을 사랑했다.
깨끗한 밭이랑에서 멜론이나 토마토를 수확하는 일은 언제나 그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 빈 땅을 일궈 딸기 수박 오이 가지 등의 채소를 길렀다.
그에게 정원에 대한 인상과 개념을 심어준 것이 외할아버지였다면, 정원을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건 아버지였다.
마구 자라게 놔둔 잔디를 깎으라는 이웃들의 소리 없는 압력을 시종일관 무시하던 아버지는, 옆집 아저씨가 칙사로 찾아왔던 날 예초기에 시동을 걸고 마당 한가운데에 자기 이니셜을 새겨버렸다.
(아는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마이클 폴란의 아버지는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상사를 해고하라Fire Your Boss』등의 유명한 저서를 남긴 스티븐 폴란Stephen Pollan이다.)
하루 평균 두 시간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맨해튼의 아파트에 살던 시절, 희미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두 정원의 추억들이 그에게 자꾸만 손을 흔들었다.
그는 콘월 후사토닉 계곡 동쪽 가장자리의 버려진 낙농장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드디어, 정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봄: 자연은 정원을 싫어해
콘월에 짐을 푼 마이클 폴란은 꿈에 부풀었다.
다년초 화단은 잡초와 함께 자라도록 이랑을 만들지 말아야지, 정원에서 내 몫만 고집하는 건 우아하지 못한 짓이야.
하지만 야생과 조화를 이루는 정원을 가꾸겠다던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계획은 채소 모종을 심은 바로 다음날부터 좌초하기 시작했다.
우드척이란 녀석이 나타나, 공들여 일군 밭이 자신을 위해 차려진 밥상인 양 당당히 모종들을 먹어치워 버렸으니까.
그는 굴에 돌멩이를 밀어넣기도 하고, 우드척 소굴에 휘발유를 부어 베트남전을 방불케 하는 화공 작전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불길만 엉뚱한 곳으로 번졌을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우드척만이 아니었다.
정원 식물들과 사이좋게 자라길 바랐던 잡초는 야금야금 세력을 넓혀 다년초들을 질식시켜버릴 태세였다.
진딧물과 온갖 벌레와 땅 속 박테리아의 공격 역시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자연은 그야말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정원에 침입해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적의 공세를 막아낼 준비는커녕 자연 속에서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마저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름: 받아들일 것인가, 군림할 것인가?
자연을 관찰하기만 했던 도시인의 순진한 인식으로, 자연의 야생성을 존중한답시고 이들의 침략을 묵인하는 건 턱없이 무책임한 짓이었다.
새벽부터 우드척의 공격을 받은 어린 새싹들, 척박한 토양에서 자란 못생긴 당근, 잡초에 숨이 막혀 기를 못 펴는 화초들, 꽃이 제대로 피지 않는 으아리꽃,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열매를 성숙시키지 못하는 토마토…….
사람이 적절히 개입해 자연의 거센 공격을 막아주지 않으면 정원 식물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그렇다고 DDT니 말라티온이니 하는 독한 살충제를 써서 정원을 통제하겠다는 발상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비료와 살충제는 대량 생산의 단꿈을 실현시키며 한동안 개가를 올렸지만, 채 반 세기도 지나기 전에 땅은 황폐해지고 작물들은 약에 찌든 중독자처럼 형편없이 허약해지지 않았는가? 인간의 오만함은 25억 년 동안 진화하며 자연이 이룩해낸 공생 관계 역시 무차별적으로 망가뜨렸다.
자연을 객체로 전락시키는 ‘과잉경작’과 인간의 손길이 지나치게 제한된 ‘과소경작’의 실패를 차례로 경험하며, 폴란은 인간과 자연 어느 쪽도 압승을 거두거나 완패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훌륭한 정원사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관절염 걸린 손가락마냥 울퉁불퉁하고 작은 자신의 당근을 떠올렸다.
‘낭만적’으로 ‘방치’된 못생긴 당근.
부랴부랴 거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퇴비를 섞어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더니, 그해 여름 당근은 오동통한 담황색 어깨를 밀어올렸다.
당근 뿌리 하나를 셔츠에 문질러 닦아 한 입 베어 먹었다.
흙내음과 함께 신선하고 달콤한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당근다운’ 당근이다.
그는 슬그머니 웃으며 생각해봤다.
‘어쩌면 나는 진짜 재능이 있는지도 몰라.’

가을: 지구라는 정원
1989년 가을 내내, 콘월은 토네이도가 무참하게 지워버린 ‘캐시드럴 잣나무숲’ 이야기로 뒤숭숭했다.
하루아침에 망가져버린 숲을 두고 사람들은 잔해를 치우고 나무를 심어야 한다, 말아야 한다, 공방을 벌였다.
한편에는 자연에 대한 어떤 개입도 비자연적이라고 생각하는 순수주의 환경론자들이, 반대쪽에는 현실적 이해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논란이 뜨거워질수록 폴란은 의기소침해졌다.
이 다툼은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드러내는 또 다른 고전적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청교도들은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무자비하게 파헤쳐지는 자연에 몸서리치며 소로가 숲으로 들어가버린 이후, 사람들은 오랫동안 청교도와 소로의 견해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왔다.
둘은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인간(문화)과 자연(야생)을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은 무척 닮았을 뿐 아니라 역사라는 틀 속에서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자연이 일정한 규칙대로 변화한다는 ‘숲의 천이’ 이론에 손을 들어주며, 인간이 시도하는 모든 변화를 비자연적인 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자연의 세계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건 사실 우연적 요소다.
다람쥐가 숨겨둔 도토리, 갑자기 나타나 소나무 순을 먹어치운 사슴, 가로수에서 날려온 씨앗 꼬투리, 산성비, 사람이 무심코 버린 담뱃불만으로도 숲의 미래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연의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데 어째서 숲의 미래에 우리의 희망과 염원을 투영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게다가 야생을 보존하고 거기에 모든 걸 맡겨버리는 소극적인 방식을 견지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양심, 윤리적인 선택, 기억, 분별력처럼 지극히 인간적이고 생태 친화적이지 않은 소양이야말로 오히려 지구에 마지막 희망을 주는 건 아닐까? 이제 그 능력을 자연 세계에서 제대로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겨울: 정원의 가능성
정원 식물들이 모두 휴식에 들어간 겨울이면, 폴란은 종묘사에서 보내온 카탈로그를 뒤적이며 다음 해의 정원을 구상했다.
이번에 그의 마음을 끈 것은 ‘정원에 나타난 무정부주의자’ 허드슨의 카탈로그였다.
“우리는 화석 연료의 도움으로 세계를 신속하게 여행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며 철새가 씨앗을 옮기듯이 인간이 종과 종 사이의 DNA 전이, 즉 진화에 기여하고 종자를 보존해야 한다는 허드슨의 주장은 그럴 듯했다.
곧 폴란의 상상 속에서 다문화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정원이 싹텄다.
인디언의 시블리 호박과 프랑스 말메종에서 육종한 마담 하디 장미 그리고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에서 도요타 자동차와 보잉747 항공기를 타고 도착한 접시꽃이 함께 자라는 정원! 냉장고 속에는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해충을 잡아줄 무당벌레와 풀잠자리 유충이 보관돼 있고, 곧 UPS나 페덱스 같은 택배 회사가 종자들을 속속 배달해줄 것이다.
7년 간 땅과 부대끼는 동안, 폴란은 어설픈 낭만을 걷어내고 프로 정원사로 변신해 있었다.
너무 인위적이라며 꺼렸던 기하학적 형태의 화단을 과감히 정원에 들이는 한편, 자신의 시도를 번번이 좌절시켰던 습지는 그대로 놓아둘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무질서한 습지와 구획을 나눈 채소밭의 팽팽한 긴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초기를 부지런히 밀어 목초지에 길을 낸다 해도, 이내 자연이 다가와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탐하며 정원사의 흔적을 지워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리어 그 순간을 기다렸다.
이곳에서 자연과 인간이 ‘화해하고 조화할 수 있다는 기대’보다 짜릿한 게 어디 있을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현실의 파라다이스
마이클 폴란은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의 허구성을 여지 없이 깨뜨린 이 책 『세컨 네이처』로, 그해 QPB(Quality Paperback Book Club)가 선정한 ‘새로운 관점상’을 수상했다.
출간된 지 20년이 넘도록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건 아직도 그의 이야기가 ‘새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회색 아파트에 견고하게 발을 붙인 채, 언젠가 도피할 공간으로써 막연히 자연을 꿈꾸는 지금 이곳의 우리.

뉴욕의 아파트를 탈출해 몸소 땀 흘려 정원을 가꿔온 한 남자의 이야기『세컨 네이처』는 그런 우리에게 무수한 질문을 던진다.
때론 농담처럼, 때론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 걸어오는 폴란의 질문에 답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우울한 현실에서 빠져나와 보다 긍정적인 미래를 모색하는 정신적 고양감에 휩싸일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독자들의 미학적·윤리적 토양이 점점 윤기 있게 변해가고, 그 위로 우리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싹이 돋아나는 경험!
폴란이 꿈꾸는 정말 위대한 정원사로서의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리라.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09년 09월 15일
- 쪽수, 무게, 크기 : 384쪽 | 525g | 153*224*30mm
- ISBN13 : 9788991508606
- ISBN10 : 899150860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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