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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에 읽는 자본론
오십에 읽는 자본론
Description
책소개
“얼마나 가져야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까?”
부유해도 행복할 줄 모르는 나라의 국민에게 가장 절실한 고전,
마르크스 『자본론』과의 가장 유쾌한 재회


너무나 의아한 조합이 만난다.
자수성가한 자본가와 자발적으로 궤도에서 내려와 30년째 마르크스주의자로 사는 한 작가다.
그들이 때로 악을 쓰고 또 흠뻑 취해가며 이야기하는 주제는 다름 아닌 『자본론』. BBC에서 선정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철학자’ 마르크스가 집필한 세상을 불붙이고 세계의 국경을 다시 그린 고전 중 고전이다.
그러나 이 책이 부르주아를 몰아내고 모두가 함께 가난하자고 말한 적은 없다.
이 책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해도 당신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등의 저작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해온 임승수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치열한 생계 앞에서 한때의 이상과 멀어진 이들을 호명한다.
내 한 몸, 내 가족 지키려 평생을 정신없이 분투해왔다.
최선을 다했으나 사회가 매기는 나의 경제적 가치는 서서히 낮아져만 간다.
도태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사업을 벌일 기회를 기웃거리거나 투자를 알아보지만 이것은 내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안다.
살아볼수록 『자본론』이 보이기 시작하는 이유다.
끊임없는 성장과 효율의 쳇바퀴 위에서 이제 그만 내려오고 싶은 그 순간 마르크스를 읽는다면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어떻게 달라질까? 『오십에 읽는 자본론』을 펼칠 때 지금의 세상을 지배하는 체제를 가장 탁월하게 통찰한 고전의 혜안으로 내 삶과 격변하는 미래를 읽어낼 기회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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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작가의 말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시작하며

1장 그래서, 당신은 제대로 살고 있는가

소득 격차는 능력 격차 아닌가?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이유가 있다
나는 땅 파서 장사하나요?
세상에는 좋은 경영자도 많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야심 차고 따뜻한 생각
자율 연구 노트 1.
당연한 것들의 뿌리

2장 사람의 본성에 어긋나는 일

그 가정은 잘못됐습니다
이타성이라는 본성
‘문제’는 원래 함께 푸는 것이다
인간은 사는 대로 생각한다
자본주의라는 롤플레잉게임
돈의 진정한 의미
좋은 심성을 기를 수 있는 체제
자율 연구 노트 2.
무엇이 우리를 작동시키나: 진화 심리학 vs 마르크스주의

3장 일단 먹고살아야 할 것 아니냐

마르크스주의자가 사장을 돕는 이유
자본주의자가 돈만 믿는 이유
자유롭게 똑같은 삶을 추구하다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한다는 비극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26만 시간의 무게
자율 연구 노트 3.
그래도 물어야 하는 질문

4장 우리 밖을 내다보는 힘

역사는 궤에서 벗어났을 때 움직인다
물질이 마음을 지배한다
새로운 생산력, 새로운 모순, 새로운 시대
역사의 궁극적 목적지
공산주의자들과 기본소득
물러날 수 없는 세계, 피해갈 수 없는 변화
자율 연구 노트 4.
학교라는 상부구조

5장 진정 나를 위해 살아가는 법

마르크스주의에 빠진 자식을 설득할 묘수
사회주의자의 셈법
관점을 바꾸면 풍경이 달라진다
인생의 절반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방학이 없어진 삶과 맞닥뜨리며
행복을 미루면 행복이 오지 않는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
행복 함수와 변수의 가중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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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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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시간을 빼앗는 자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시간을 빼앗기는 자는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 거대한 착취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순간, 영화 〈매트릭스〉 중에서에서 네오가 빨간약을 삼켰을 때처럼 세상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론』은 단지 경제학의 고전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불평등한 세계와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과 무력감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낱낱이 드러내는 사회 해부학서입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인공지능과 로봇은 바로 오늘날의 새로운 생산력입니다.
산업혁명 시기 등장한 기계가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했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제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으며 단순히 일자리의 변화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상황으로 우리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야 합니다.

--- 「다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중에서

원래 고전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제목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그렇다 보니 내용에 대한 오해가 많지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제목에도 나오듯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이에요.
누군가 사회주의가 싫어서 『자본론』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면, 마치 부처가 싫어서 성경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나 다름이 없는 겁니다.
--- 「소득 격차는 능력 격차 아닌가?」 중에서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의 규칙들, 이런 건 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처음부터 이런 세상이지는 않았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전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그걸 그냥 ‘원래 그런 거지’ 하며 받아들이니까 어느 순간 우리 머릿속이 그 틀에 갇혀버리게 됩니다.
자본주의 논리라는 지적 감옥에 말이죠.
자본주의가 우리한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지니까, 그 바깥을 상상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는 겁니다.
예전에도 노예제나 봉건제를 다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마찬가지로, 언젠가 후손들도 지금의 자본주의를 불공정한 사회였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진짜 자유롭게 사고하고 싶다면, 이 지적 감옥에서 한 번쯤은 빠져나올 용기와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나는 땅 파서 장사하나요」 중에서

한 개인이 뛰어난 지식과 역량으로 놀라운 혁신을 낳는 사례도 있지요.
하지만 그 대단한 개인이 보유한 지식은 대부분 과거에 수많은 사람이 쌓아 올린 지식의 탑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내 머릿속 지식 중에서 과거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 헌신이 없어도 알 수 있을 만한 게 과연 얼마나 되겠어요.
당장 저만 해도 지금 강의하는 내용은 죄다 마르크스한테 빚진 내용이에요.
그러면 마르크스는 혼자서 이론을 다 세웠을까요? 아닙니다.
선배 학자인 애덤 스미스나 데이비드 리카도가 없었다면 마르크스도 없었지요.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가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그들이 가진 지식 대부분은 과거 사람들의 업적에 기대고 있을 뿐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의 거대한 탑에서 그들은 그저 벽돌 하나 정도 더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이 엄청난 부자가 된 건 놀라운 혁신을 이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자본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아 이윤으로 바꿀 수 있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겁니다.
--- 「세상에는 좋은 경영자도 많잖아요」 중에서

제가 극복하려는 것은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하는 시스템 그 자체이지 특정한 자본가 개인이 아니에요.
현재의 잣대로 과거의 인물을 멋대로 재단할 수 없듯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 그러니까 사회주의의 잣대로 애먼 자본가 개인을 비난할 수는 없지요.
다만 이 점만은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좋은 왕이 다스리면 태평성대가 이어질 수 있지 않느냐며 다시 과거의 신분제 사회로 돌아가자고 한다면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겠어요.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본가가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 의식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면 자본주의가 건전하게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번지수가 완전히 잘못된 얘기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본가의 심성이 선하냐 악하냐와는 별개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입니다.

--- 「세상에는 좋은 경영자도 많잖아요」 중에서

마르크스가 부정한 것은 소유권 일반이 아니에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권을 비판한 거죠.
요컨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가 노동자들을 착취해 부를 축적하고 그 이윤을 독점하는 구조를 비판했지, 개인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집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은 건 아닙니다.
우리가 노예제 사회를 비판할 때 노예 주인이 이런저런 귀중품을 소유하고 있다고 뭐라 하지는 않잖아요.
노예를 물건처럼 소유해 착취하는 ‘노예 소유권’을 비판하는 것이니까요.
--- 「세상에서 가장 야심 차고 따뜻한 생각」 중에서

서구 인류학자가 아메리카 선주민을 대상으로 지능 테스트를 했습니다.
부족원에게 각각 테스트 용지를 나눠주며 혼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말해주었어요.
아마도 그 부족의 평균 지능이 알고 싶었을 테죠.
그런데 부족원들은 함께 모여 토론하며 문제를 풀었다고 해요.
인류학자가 그들에게 다가가 문제는 각자 따로 풀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는데요.
원주민들이 대답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자꾸 각자 따로 풀라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전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건 다 같이 소주 마시는 세상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와인과 취미생활을 즐기는 세상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이 문화생활을 더욱 적극적으로 즐길 수 있으려면 소수에게 과도한 부가 집중되지 않도록 분배가 공평해야 하고 노동 시간을 단축해 여가를 늘려야 하잖아요.
알다시피 이것은 대체로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사회상입니다.
--- 「‘문제’는 원래 함께 푸는 것이다」 중에서

물론 자본주의 사회는 분명 과거 인류가 지나온 사회들보다 장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여기가 인류의 종착역은 아니에요.
지금의 모순을 해결해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죠.
자신의 노동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노동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서로 존중하며 어우러져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입니다.
그런 사회야말로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공동체적 본성에 잘 들어맞지 않을까요? 조선 시대에 어떤 노비가 ‘양반도 없고 상놈도 없는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면 몽상가라고 불렸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노비의 말이 현실이 되었어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좋은 심성을 기를 수 있는 체제」 중에서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는 자유롭다는 지독한 착각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본주의에서는 자신이 보유한 화폐의 크기만큼 자유를 행사할 수 있을 뿐이에요.

---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 중에서

스무 살이면 약 17만 시간, 서른 살만 되어도 26만 시간을 훌쩍 넘게 산 거거든요.
가령 제가 30대 청년과 마주 앉아서 두 시간 정도 『자본론』을 강의하면서 상대의 생각을 180도로 바꿀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사실 그보다 오만한 생각은 없어요.
상대방이 살아온 26만 시간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 「26만 시간의 무게」 중에서

미래에 인공지능과 로봇이 완전히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면, 과연 인류는 어떻게 해야 멸종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을까요? 인공지능과 로봇이라는 생산수단을 특정 자본가가 이윤 추구를 위해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자본주의 방식이 이제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아실 겁니다.
새로운 생산수단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대다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소득이 사라질 텐데, 자본가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아무리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한들 누가 구매하겠어요.
기업도 존립 기반을 잃고 붕괴하게 됩니다.
결국 공공재, 즉 사회적 소유로 전환해야 합니다.
국민건강보험이나 국공립 학교가 그렇듯 인공지능과 로봇은 공익을 위해 운영되겠지요.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인공지능과 로봇이 생산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복지와 기본권 차원에서 차별 없이 공평하게 제공하는 겁니다.
--- 「새로운 생산력, 새로운 모순, 새로운 시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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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세상을 뒤흔들었던 고전에게
인생 가야 할 길을 다시 묻다


2024년 KDI의 연구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국민 중 76퍼센트가 그들이 실제보다 가난하다고 믿는다.
어느 때보다 모든 재화가 넘치는 오늘의 한국이지만 정작 오늘의 한국인들이 느끼는 지배적인 감정은 박탈감과 불안감이다.
20년 이상 세계 1위를 달성하고 있는 자살률도, 세계 최저의 출산율도 한국인들의 정신적 피로를 드러내는 단적인 지표다.
우리의 성공은 우리의 불행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만족하고 평안하다면 스스로 갈아 넣으며 자기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무언가를 소비해 채워야 할 헛헛함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불안을 동력으로 살아가는 삶은 인간을 갉아먹는다.
그 무게를 견뎌내기 위해 자잘한 쾌락에 몰두하기도 하고, 철학이며 마음챙김, 정신과 진료에 기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견디게 할 위로가 아니라 지금과 다른 세상을 상상할 힘 아닐까? 지금이 『자본론』을 만날 적기인 이유다.

한때의 불온서적이자 몰락한 체제의 사상서를 왜 읽어야 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십 년째 마르크스주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해온 임승수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는 『자본론』은 철 지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불평등한 세계와 그로부터 비롯된 불안과 무력감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 낱낱이 드러내는 사회 해부학서이자 지금 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원리에 대한 독보적이고도 유효한 통찰을 담은 단 한 권의 책이다.
임승수 작가는 이십 년의 공력을 모아 아무리 세상에 냉소하는 사람이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지극히 유쾌하고 쉽게 『자본론』의 핵심적 통찰들을 한 권의 소설로 펼쳐놓는다.
한때 세상을 뒤흔들고 불붙였던 한 권의 책을 통해 이제 내 삶과 나아가야 할 길을 읽는다.


“내 딸이 맑시스트라니! 당신 책임져!”
이토록 유쾌한 소설 『자본론』


그러나 이처럼 중요한 책이라도 그 생각을 접해본 독자들은 많지 않다.
『자본론』 특유의 극악하다고 할 정도로 높은 난도 때문이다.
이에 임승수 작가는 이야기라는 그릇에 『자본론』을 비롯한 마르크스의 핵심적 생각들을 담아 우리 삶에 가장 가깝고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완성했다.
이따금 강의를 통해 고등학생들을 만나다보면 마르크스의 생각에 깊이 빠져드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공부부터 열심히 하라고, 천천히 다가가라고 임승수 작가가 불을 꺼야 할 정도로 말이다.
그럴 때면 작가의 마음을 스치는 불안이 있었다.

‘의대를 지망할 정도로 빼어나던 학생들이 갑자기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어 진로라도 바꾸려고 한다면 그 부모들이 당장 내 멱살을 잡으러 오지 않을까?’
이 책의 발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는 의대를 지망할 만큼 공부를 잘하던 딸이 사회학과로 진로를 바꾸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하늘이 무너진 한 자본가와 저자를 매우 닮은 한 작가를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산전수전 겪으며 자수성가했고 그래서 세상을 너무 잘 안다고 확신하는 자본가와 사람의 본성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 작가의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옥신각신 주고받는 대화를 관전하다 보면 때로는 자본가에게서, 때로는 작가에게서 자신의 목소리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살아가던 이 세계의 속살이 낱낱이 파헤쳐지고, 우리를 짓누르던 삶의 전제를 되물을 여지가 열린다.


살다 보니 마르크스가 틀렸더라
더 살다 보니 마르크스가 옳았더라


지금의 오십 대는 청년 시절 변화를 꿈꿨던 사람들이다.
세상이 좀 더 풍요롭고도 평등하고 평화로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선배들의 권유에 마르크스를 한두 장 펼쳐보기도 하고 진지하게 운동에 참여하지는 않아도 그 이상에 내심 공감의 한 표를 던지곤 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오자마자 IMF를 겪은 그들의 삶은 미처 청년기가 접어들기도 전에 생존에 대한 것이 되었다.
가족을 부양하고 안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길 이십여 년.
어떤 이들은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아는 것이 있다면 이 삶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안전해지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는 지금, 살만큼 살고 겪어볼 만큼 겪어본 지금 그들이 젊은 시절에 덮었던 책장을 다시 펼쳐본다면 어떻게 읽힐까? 그것은 철없는 이상이었을까 아니면 세상이 가야할 길이었을까?

그러나 청년 시절의 이상에 대한 향수나 현실 도피로 『자본론』을 만나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임승수 작가는 오히려 인공지능과 로봇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지금이야말로 마르크스의 혜안이 절실한 시기라 말한다.
마르크스의 가장 천재적인 통찰 중 하나는 새로운 생산력이 등장할 때마다 낡은 사회 질서가 무너지고 역사가 전진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세 봉건제가 해체되고 근대 자본주의가 자리 잡은 것도 기계제 대공업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에 더 깊이 엮이고 있는 인공지능과 로봇은 바로 오늘날의 새로운 생산력이다.
산업혁명 시기 등장한 기계가 인간의 팔과 다리를 대신했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은 이제 인간 그 자체를 대체한다.
단순노동뿐 아니라 회계, 법률, 글쓰기, 그림 그리기와 같은 전문적·창의적 영역까지 파고들고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생산력은 자본주의 사회 질서를 뿌리부터 흔들고 있으며 단순히 일자리의 변화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의미를 묻는 상황으로 우리를 끌어가고 있다.
이 거대한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고 싶다면, 우리는 다시 마르크스로 돌아가야 한다.

임승수 작가는 독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수십만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 인간이 책 한 권으로 마음을 바꿀 만큼 간단한 존재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유쾌하게 웃으며 읽다보면 자본주의의 지적 감옥에서 벗어나 조금은 새로운 생각을 고려할 여지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틈에서 성취와 효율, 성장의 쳇바퀴 속에서 벗어나 마침내 다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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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9월 22일
- 쪽수, 무게, 크기 : 328쪽 | 140*205*30mm
- ISBN13 : 9791130670966
- ISBN10 : 1130670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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