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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Description
책소개
철학 연구자이자 『카르마 폴리스』와 『지하 정원』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홍준성이 첫 인문서로 돌아왔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질문과 고민들을 철학의 언어로, 하지만 어렵지 않고 친근하고 흥미롭게 풀어내며 사유의 장으로 초대한다.
그가 전하는 철학이 어렵지 않은 까닭은 일상의 감정과 경험을 토대로 하며, 우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더해 적절한 인용과 특유의 해석은 철학의 깊이를 유지하면서도 부담 없이 다가온다.
한마디로 이 책은 그러한 철학적 접근을 고스란히 담아내어, 독자들이 철학의 새로움과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체험하도록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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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말
프롤로그: 철학을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Agora.
사회


ㆍ사회: 비사회성에 기반한 사회성 읽기
ㆍ인민: 아무개를 위한 정치철학 강의
ㆍ헌정: 헌법적 환상과 문명화된 검투장

Agora.
예술


ㆍ퇴폐: 몰락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ㆍ이미지: 보기보다는 보여지는 존재
ㆍ낭만: 잊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Agora.
종교


ㆍ신: 독실한 데카르트에 대한 고찰
ㆍ무신론: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
ㆍ종말: 정치적인 종말론 독법

Agora.
철학


ㆍ철학: 열린 태도부터 생산적 무능력까지
ㆍ진리: 진리의 두 얼굴

에필로그: 주의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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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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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철학을 배우고자 이 책을 펼쳤을 이에게 제일 먼저 드리고픈 말씀은, 철학은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부분이니 반복해서 말하겠습니다―철학 자체는 전달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축복인지 유감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제 몫이 아닌 까닭입니다.

이 때문에 벌어지는 가장 적나라한 현상이 뭐냐? 이제는 전국 대학교에 몇 남지도 않은 철학과에 진학해서 1학년 전공기초 과목을 들을 때 겪는 가장 당혹스러운 경험은, 철학엔 전공기초 교재나 공인된 교과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신 철학의 역사를 배웁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그리하여―반복컨대―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회를 모른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만을 모른다는 뜻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숨 쉬고 살아가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개인성의 반발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 「Agora.사회, 사회」 중에서

이 환상의 최대 문제는 사람들이 수동적인 존재로 격하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국민이란 누군가에게 국민으로 지목되어 무엇이 국민다운 것인지 학습하고 체득할 권리만을 갖는다는 거죠.
이때 국민은 사실상 가축인 셈입니다.
반대로 최초로 국가를 구성해낸 창설자는 인간-가축들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존재가 됩니다.
천재이거나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식이죠.
그래서 사회적 부조리에 대해 인간-가축은 어떠한 발언권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18세기에 인민주권 개념이 정립됐고, 남은 19~20세기는 빈민, 여성, 유색인종 등 이 인민에 포함되는 이들을 끊임없이 늘려 나간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퇴보하거나 정지한 것처럼 보여도, 긴 시계열에서 보자면 이는 결국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포풀루스 전통에 충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반복컨대 이 개념은 무시되고 짓뭉개진 이들이 자신의 몫을 요구해온 유구한 전통을 갖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 아닌 사람이 사람이 되어온 과정입니다.
물론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 「Agora.사회, 인민」 중에서

그래서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어떤 공동 목적이 구체적으로 존재할 것이라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적 낙관은 오히려 지옥의 문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만약 그러한 고차원적인 공동체적 진리가 정말로 있다고 진지하게 믿어버리면, 자칫 그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와는 대화할 수도, 양립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 「Agora.사회, 헌정」 중에서

삶은 본디 보수적인 것입니다.
삶이란 끊임없이 유지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혀 있기에, 일정한 질서를 가진 정상성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
그렇기에 정상 너머에 있는 새로운 것을 향한 감성적인 지향?이것을 ‘예술’이라고 거칠게 규정한다면, 많은 예술가가 퇴폐적인 것에 끌렸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세기말 퇴폐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는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었죠.
--- 「Agora.
예술, 퇴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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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미지는 바로 이러한 불가해함의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사회라는 ‘보임’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 구사하는 생존의 방식인 거죠.
여기서 중요한 점은, 실제로 불가해한 내용을 내면에 품는 것이 아니라, 외견상 ‘불가해함’이 연출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용은 텅 비어 있어도 무방합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를 단순히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지 못하게 만드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숨겨진 메시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해석할 수 없는 외형을 갖춤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외형은 ‘불가해함을 위한 불가해함’입니다.
동시에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기제이기도 하죠.
이런 점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완전히 파악되었다고 느꼈을 때 극심한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불안이 삶을 포기할 정도로 치닫기도 하죠.
--- 「Agora.
예술, 이미지」 중에서

현실을 생각함에 있어 가장 아이러니한 대목은, 우리 모두 분명 현실 속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어느 누구도 현실 속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현실을 입에 담는 이의 현실은 우리의 믿는 것만큼 현실적인 게 아닐 수 있다는 말이죠.
--- 「Agora.
예술, 낭만」 중에서

끝으로 뒤통수를 치자면, 이 얘기는 무엇보다 보편 수리학 본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세계가 필연적인 법칙으로 이뤄져 있다면, 비단 자연과학을 넘어서 이 세계에 속하는 인간 사회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에 따르자면 정치, 예술, 심리, 경제 등 많은 분야에 작용하는 어떤 법칙이 있다고 상정됩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종교라면?
--- 「Agora.
종교, 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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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진정한 무신론이란 무엇일까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모든 인간은 한낱 인간일 뿐입니다.
무신론이 스스로에게 진지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를 뼛속 깊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기 안에 종교를 향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그것이 동기화되지 않도록 하는 삶의 조건들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것입니다.
--- 「Agora.
종교, 무신론」 중에서

그러나 동시에 철학은 열려 있기 위해 열려 있는 학문은 아닙니다.
독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열림을 지향하는 것일 뿐, 열림 자체가 최종 목적일 수는 없죠.

이것이 바로 철학적 무능력이 가진 기묘한 지점입니다.
반복컨대 철학은 본질을 강력히 욕망하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이를 테제로써 정립하고야 맙니다(그렇기에 정립은 발견이라기보다는 발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이죠.
이 구도에서 세계는 진리가 추론되어야 할 무대가 아니라, 반대로 구현되어야 할 무대입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철학은 유사 종교인가? 안정감을 도모하기 위한 논리적 심신안정제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앞서 살폈듯 이러한 성향이 완전히 없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완전히 그렇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으로 철학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초월적인 요인을 상정하진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본인이 근본 원리나 본질이라고 내세우는 것에 대한 근거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존재입니다.
--- 「Agora.
철학, 철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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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컨대 카오스 자체는 인간이 버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던 니체의 선언은 옳습니다―이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신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일 따름입니다.
--- 「Agora.
철학, 진리」 중에서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이전에는 떠올리지 않았던 생각들을 떠올리게 됐다는 건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다만 이때 ‘떠올리지 않았던 생각들’을 ‘떠올리지 못했던 생각들’로 오해해선 안 됩니다.
얼핏 보기에 비슷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 두 표현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합니다.
떠올리지 않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떠올리지 않은 것에 불과합니다.


삶 자체에 대한 전문가는 없습니다.
전문성이란 말 그대로 특정 영역에 대한 것인데 반해, 삶이란 실로 다채롭고도 역동적인 엮임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삶의 전문가를 자처하는 건 사기꾼뿐입니다.
이 책의 서두를 철학 자체를 가르치는 것의 불가능함을 선언하면서 시작했다는 걸 절대로, 절대로 잊으시면 안 됩니다.
결국엔 당신의 삶은 당신이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또한 스스로 사고하며 규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힘닿는 데까지 가는 것 이상은 없습니다.
전달에 관한 한 오로지 철학함만이 간신히 유효합니다.
철학은 전달의 영역이 아닙니다.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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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하나의 유령이 온 시대를 배회하고 있다.
우리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유령이.
시대가 변해도 도무지 정량화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철학도 그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오래된 것에 영이 깃든다고 믿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온 시대에 깃든 이 철학이라는 유령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까? 우리가 철학이라고 부르는 끝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애써 무시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언제나 철학을 욕구한다.
그러므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철학은 무시하기에도, 무시하지 않기에도 곤란한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칸트는 이렇게 말했다.
철학을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홍준성은 이렇게 말했다.
아직 철학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건 언제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그래서 작가 홍준성은 이렇게 말했다.
“철학을 배우고자 이 책을 펼쳤을 이에게 제일 먼저 드리고픈 말씀은, 철학은 배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본 책이 여러분 각자가 가진 철학적 기량을 시험하고 단련하는 데엔 꽤나 쓰임새가 있으리라 감히 믿고자 합니다.”

홍준성 작가의 믿음처럼, 이 책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그 안에 깃든 철학을 선명화하는 작업인 동시에 철학 입문자를 위한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이다.
『우리는 철학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일종의 철학적인 개념 사전으로 기획되었다.
낭만, 무신론, 사회, 퇴폐, 종말, 철학, 진리 등 작가가 지금 이 세계를 살아가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개념들, 그러니까 우리가 막연하게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조금이나마 막역하게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철학에 대해, 세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어느 정도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사람에게 어느 정도 자신 있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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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9월 26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135*200*30mm
- ISBN13 : 9791197601385
- ISBN10 : 119760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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