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암기
Description
책소개
“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나는 오늘의 『투암기』를 기록해야 한다.
한 단어씩, 한 줄씩 천천히 작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제 물을 마실 수 없고, 출발할 시간이다.
폴더를 닫고 문을 열어야겠다.
작가를 사랑한 독자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가만히 앉아서 소설만 쓰고 싶었습니다”
너무 일찍 떠난 작가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영원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2025년 2월 8일 토요일 느지막한 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학찬 작가의 아내인데, 남편이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나면서 출판사에 꼭 돈(계약금)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장례 치르고 약속 지키겠습니다.” 울음 섞인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전화를 끊었고, 출판사에서는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께서 산문집을 내고 싶어하셨습니다.
한 달 전 대화에서는 소설집을 내고 싶어하셨고요.
이제 아내분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차차 판단해주세요.
그간의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부의금으로 생각하고 계약금은 돌려받지 않겠습니다.”
김학찬.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작가.
향년 42세.
2025년 2월에 세상을 떠난 김학찬 작가의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이 그의 생일에 맞춰 교유서가에서 나란히 출간되었다.
김학찬 작가가 원고를 쓰면 항상 가장 먼저 읽고 의견을 나눴던 문우인 아내 최수경 선생이 남편의 작품을 모았고, 이은선, 서유미 등 동료작가들의 마음을 모아 출간하였다.
작가를 사랑한 독자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이자, 김학찬이라는 이름이 우리 곁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어, 삶의 마지막까지 ‘끝까지 쓰는 작가’로 남기를 바랐던 김학찬 작가의 소망이, 이제 두 권의 책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다.
이번에 펴낸 김학찬 유고집 두 권 중 소설집 『구름기』는 미발표작을 포함해 청년 시절에 썼지만 책으로 묶지 않았던 작품과 2023년에 펴낸 『사소한 취향』 이후 썼던 최근작들을 모았고,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써내려간 산문이다.
(산문집 『투암기』는 차례만 펼쳐도 1부와 2부가 마치 이별하듯 갈라져 있다.
병세가 급격히 깊어지며 글은 끝내 멈추었고, 남은 문장은 미완의 숨결로 우리 앞에 머물렀다.)
김학찬 작가는 1983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2년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로 제6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상큼하진 않지만』(문학동네) 『굿 이브닝, 펭귄』(다산책방), 그리고 소설집 『사소한 취향』(교유서가) 등 현실의 미묘한 결을 포착하는 작품들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전태일문학상, 최명희청년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슬픔을 남겼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은, 김학찬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글은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단단하게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모든 사건의 진짜 확률은 언제나 반반입니다.
(…) 사람은 다 먹고살게 되어 있다고”(「끗」) 한 그의 소설 속 문장처럼,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시선이 곳곳에 배어 있다.
김학찬 작가의 유고집은 작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이 계속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세상을 떠난 작가가 남긴 지상에서의 마지막 글들은, 한 번뿐인 순간의 유한성과 그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작가와의 이별을 다시 한번 경험하면서도, 그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책 출간을 넘어, 작가의 삶과 문학을 함께 축복하고, 그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환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울고 있었다”
나는 오늘의 『투암기』를 기록해야 한다.
한 단어씩, 한 줄씩 천천히 작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이제 물을 마실 수 없고, 출발할 시간이다.
폴더를 닫고 문을 열어야겠다.
작가를 사랑한 독자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
“가만히 앉아서 소설만 쓰고 싶었습니다”
너무 일찍 떠난 작가로만 기억되지 않기를,
영원한 작가로 기억되기를……
2025년 2월 8일 토요일 느지막한 오후에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학찬 작가의 아내인데, 남편이 조금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나면서 출판사에 꼭 돈(계약금)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장례 치르고 약속 지키겠습니다.” 울음 섞인 혼란스러운 목소리에 전화를 끊었고, 출판사에서는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선생님께서 산문집을 내고 싶어하셨습니다.
한 달 전 대화에서는 소설집을 내고 싶어하셨고요.
이제 아내분에게 선택권이 있으니 차차 판단해주세요.
그간의 글들을 모아서 책을 내면 좋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부의금으로 생각하고 계약금은 돌려받지 않겠습니다.”
김학찬.
너무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작가.
향년 42세.
2025년 2월에 세상을 떠난 김학찬 작가의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이 그의 생일에 맞춰 교유서가에서 나란히 출간되었다.
김학찬 작가가 원고를 쓰면 항상 가장 먼저 읽고 의견을 나눴던 문우인 아내 최수경 선생이 남편의 작품을 모았고, 이은선, 서유미 등 동료작가들의 마음을 모아 출간하였다.
작가를 사랑한 독자와, 그를 기억하는 모든 이에게 보내는 작은 위로이자, 김학찬이라는 이름이 우리 곁에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되어, 삶의 마지막까지 ‘끝까지 쓰는 작가’로 남기를 바랐던 김학찬 작가의 소망이, 이제 두 권의 책으로 우리 곁에 머물게 되었다.
이번에 펴낸 김학찬 유고집 두 권 중 소설집 『구름기』는 미발표작을 포함해 청년 시절에 썼지만 책으로 묶지 않았던 작품과 2023년에 펴낸 『사소한 취향』 이후 썼던 최근작들을 모았고,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써내려간 산문이다.
(산문집 『투암기』는 차례만 펼쳐도 1부와 2부가 마치 이별하듯 갈라져 있다.
병세가 급격히 깊어지며 글은 끝내 멈추었고, 남은 문장은 미완의 숨결로 우리 앞에 머물렀다.)
김학찬 작가는 1983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2012년 장편소설 『풀빵이 어때서?』로 제6회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상큼하진 않지만』(문학동네) 『굿 이브닝, 펭귄』(다산책방), 그리고 소설집 『사소한 취향』(교유서가) 등 현실의 미묘한 결을 포착하는 작품들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전태일문학상, 최명희청년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시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문단과 독자들에게 큰 슬픔을 남겼지만, 그가 남긴 문장들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유고 소설집과 산문집은, 김학찬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의 글은 때로는 조용히, 때로는 단단하게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모든 사건의 진짜 확률은 언제나 반반입니다.
(…) 사람은 다 먹고살게 되어 있다고”(「끗」) 한 그의 소설 속 문장처럼, 삶의 불확실함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시선이 곳곳에 배어 있다.
김학찬 작가의 유고집은 작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장이 계속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세상을 떠난 작가가 남긴 지상에서의 마지막 글들은, 한 번뿐인 순간의 유한성과 그 소중함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작가와의 이별을 다시 한번 경험하면서도, 그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는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책 출간을 넘어, 작가의 삶과 문학을 함께 축복하고, 그의 존재를 다시 한번 환기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목차
1부_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1.
탄생 / 2.
납득 / 3.
복용 / 4.
발견 / 5.
생로병사의 비밀 / 6.
책 / 7.
부작용 / 8.
광고 / 9.
노벨상 / 10.
외래 / 11.
기념 / 12.
업무 / 13.
오해 / 14.
걷기 / 15.
생일 / 16.
여행 / 17.
독서 / 18.
새 옷 / 19. CT와 MRI / 20.
결과 / 21.
무지 / 22.
표명 / 23.
수다 / 24.
아침 / 25.
금주 / 26.
화장실 / 27.
독서 / 28.
중간고사 / 29.
손톱 / 30.
운전 / 31.
샤워 / 32.
통증 / 33.
빨래 / 34.
일기 / 35.
여행 / 36.
무제 / 37.
의식 / 38.
영화 / 39.
작업 / 40.
문득 / 41.
요리 42.
오타 / 43.
1일 / 44.
2일 / 45.
문학사 / 46.
산 / 47.
연락 / 48.
추위 / 49.
체중 / 50.
꿈 / 51.
검사 / 52.
야구 / 53.
추위 / 54.
검진
2부_작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소설가가 되었으니- 조금 더, 글을 쓰다 떠나겠다
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_최수경(김학찬 작가 아내, 국어 교사)
안녕, 우리의 풀빵아! _이은선(소설가)
하지만 울고 있었다.
1.
탄생 / 2.
납득 / 3.
복용 / 4.
발견 / 5.
생로병사의 비밀 / 6.
책 / 7.
부작용 / 8.
광고 / 9.
노벨상 / 10.
외래 / 11.
기념 / 12.
업무 / 13.
오해 / 14.
걷기 / 15.
생일 / 16.
여행 / 17.
독서 / 18.
새 옷 / 19. CT와 MRI / 20.
결과 / 21.
무지 / 22.
표명 / 23.
수다 / 24.
아침 / 25.
금주 / 26.
화장실 / 27.
독서 / 28.
중간고사 / 29.
손톱 / 30.
운전 / 31.
샤워 / 32.
통증 / 33.
빨래 / 34.
일기 / 35.
여행 / 36.
무제 / 37.
의식 / 38.
영화 / 39.
작업 / 40.
문득 / 41.
요리 42.
오타 / 43.
1일 / 44.
2일 / 45.
문학사 / 46.
산 / 47.
연락 / 48.
추위 / 49.
체중 / 50.
꿈 / 51.
검사 / 52.
야구 / 53.
추위 / 54.
검진
2부_작가로 태어나지는 않았으나- 소설가가 되었으니- 조금 더, 글을 쓰다 떠나겠다
의연해야지 하지만 울고 있었다 _최수경(김학찬 작가 아내, 국어 교사)
안녕, 우리의 풀빵아! _이은선(소설가)
책 속으로
이미 선고를 받았고, 잠깐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를 머리로는 안다.
하지만 언제 기습적으로 구속당할지 모른다는 말은 남은 시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 p.42
다른 것은 들리지 않았다.
수업을 해도 된다는 말도, 여행 이야기도 상관없었다.
남은 시간을 보내라는 것, 몇 년이 남았다는 것, 달 단위의 시한부는 아니라는 것.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 p.55
어떤 오해가 생기더라도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오해 또한 렉라자맨이 감당해야 할 무게니까.
의사 말대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길을 걷는 법을 배우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 p.65
더이상 책을 읽어서 뭐 하냐는, 무의미의 덫에 걸리기도 했다.
비싼 밥 먹어서 뭐 하나, 아는 사람 만나서 뭐 하나, 또 술 마셔서 뭐 하나.
이 마수에 따르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무의미의 덫이 무서운 이유는, “뭐 하나”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뭐 하나”를 부정하기 어렵다.
렉라자맨에게는 평생 싸워야 할 질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 질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떨치기 힘든 물음이다.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뭐 하나”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25
세차장에 가면 제일 먼저 좋아하는 라디오를 찾는다.
나머지는 대충대충 한다.
시작할 때 넘치던 의욕은 늘 이십 분쯤이면 바닥나기 때문에, 뒷일은 적당히 하다 마무리할 것을 알고 있다.
기실 세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힘을 낸다거나, 마지막에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한다거나 하는 건 잘 되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그 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늘 어렵다.
언제나 시작은 힘차게, 중간은 적당하게, 마지막은 대충대충.
--- p.173
모든 부작용은 그냥 오고 문득 사라진다.
이유는 간명하다.
원래 그렇다.
“원래”라는 말 앞에서는 어떤 의문도 무효하다.
원론적인 질문을 계속 잇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인 뒤 부작용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 p.183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삶의 즐거움 하나를 잃고, 효과라도 좋았으면 커피의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니 짜증도 난다.
고작해야 커피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기쁨 중 하나를 줄여가는 게 렉라자맨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살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즐거움을 줄여가다보면, 고작 살아가는 것 말고는 남는 게 없다.
하나씩 소거하고 나면 살아가는 이유가 빈곤해진다.
즐거움의 총량이라고 해야 할까, 총량의 절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다시 채우지 않으면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괜히 소소한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 p.187
아내가 계속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두 해 슬퍼하는 것으로도 길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므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사랑이다.
나는 『투암기』에서 아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투암기』를 쓸 수가 없다.
--- p.219
누나에게만, 고충을 털어놓는다.
미안하지만 한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 p.222
겨울에는 귤이 싸니까 구내염에 도움이 될까.
사실 이미 귤을 한 박스 먹어치웠다.
노지 감귤이 저렴하게 나왔길래 잽싸게 샀다.
다행히 귤은 괜찮았다.
한 박스씩 산 귤이 맛없다는 건, 그 귤을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서러운 것이다.
--- p.226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 p.243
병원에 가는 날은 마음을 자리에 앉혀두기가 어렵다.
단어 서너 개를 골랐다가 방을 한 바퀴 돈다.
『투암기』는 따뜻할 수 없는 글이다.
암에 걸렸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꿋꿋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겠다는 글은 쓸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하나씩, 블랙 유머가 되더라도 웃음은 넣고자 했다.
--- pp.248-249
하루가 지났다.
하루만큼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몇 년 동안 이어졌지만 매일 슬펐던 것은 아니다.
나를 잃는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마음이 나아진다.
의욕이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원래도 의욕 같은 단어는 좋아하지 않았다) 마냥 침묵하는 것도 지겹다.
아침 일찍 아내와 같이 성북동에 있는 빵집에 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빵으로 식사를 했다(다음에는 역시 먹던 빵을 사야겠다).
하지만 언제 기습적으로 구속당할지 모른다는 말은 남은 시간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 p.42
다른 것은 들리지 않았다.
수업을 해도 된다는 말도, 여행 이야기도 상관없었다.
남은 시간을 보내라는 것, 몇 년이 남았다는 것, 달 단위의 시한부는 아니라는 것.
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 p.55
어떤 오해가 생기더라도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오해 또한 렉라자맨이 감당해야 할 무게니까.
의사 말대로,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건 불가능하다.
다른 길을 걷는 법을 배우고 적응할 수밖에 없다.
--- p.65
더이상 책을 읽어서 뭐 하냐는, 무의미의 덫에 걸리기도 했다.
비싼 밥 먹어서 뭐 하나, 아는 사람 만나서 뭐 하나, 또 술 마셔서 뭐 하나.
이 마수에 따르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무의미의 덫이 무서운 이유는, “뭐 하나”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뭐 하나”를 부정하기 어렵다.
렉라자맨에게는 평생 싸워야 할 질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나는 질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떨치기 힘든 물음이다.
부정할 수 없으면서도 “뭐 하나”에서 벗어나야 한다.
--- p.125
세차장에 가면 제일 먼저 좋아하는 라디오를 찾는다.
나머지는 대충대충 한다.
시작할 때 넘치던 의욕은 늘 이십 분쯤이면 바닥나기 때문에, 뒷일은 적당히 하다 마무리할 것을 알고 있다.
기실 세차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그랬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결같은 힘을 낸다거나, 마지막에 더 큰 에너지를 발휘한다거나 하는 건 잘 되지 않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지만 그 관성을 유지하는 일이 늘 어렵다.
언제나 시작은 힘차게, 중간은 적당하게, 마지막은 대충대충.
--- p.173
모든 부작용은 그냥 오고 문득 사라진다.
이유는 간명하다.
원래 그렇다.
“원래”라는 말 앞에서는 어떤 의문도 무효하다.
원론적인 질문을 계속 잇는 것보다 고개를 끄덕인 뒤 부작용에 대처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 p.183
아침에 커피를 안 마시면 삶의 즐거움 하나를 잃고, 효과라도 좋았으면 커피의 즐거움을 과감히 포기할 수 있겠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니 짜증도 난다.
고작해야 커피라고 말하면 곤란하다.
기쁨 중 하나를 줄여가는 게 렉라자맨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살 수 있으니까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하나씩 즐거움을 줄여가다보면, 고작 살아가는 것 말고는 남는 게 없다.
하나씩 소거하고 나면 살아가는 이유가 빈곤해진다.
즐거움의 총량이라고 해야 할까, 총량의 절반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다시 채우지 않으면 우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괜히 소소한 것을 권하는 게 아니다.
--- p.187
아내가 계속 나를 기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한두 해 슬퍼하는 것으로도 길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므로 지나치게 슬퍼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아내에 대한 나의 최소한의 사랑이다.
나는 『투암기』에서 아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아내를 생각하면 『투암기』를 쓸 수가 없다.
--- p.219
누나에게만, 고충을 털어놓는다.
미안하지만 한두 사람에게는 말할 수밖에 없다.
정말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버틸 수는 없는 것이다.
--- p.222
겨울에는 귤이 싸니까 구내염에 도움이 될까.
사실 이미 귤을 한 박스 먹어치웠다.
노지 감귤이 저렴하게 나왔길래 잽싸게 샀다.
다행히 귤은 괜찮았다.
한 박스씩 산 귤이 맛없다는 건, 그 귤을 모두 먹어치울 때까지 서러운 것이다.
--- p.226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 p.243
병원에 가는 날은 마음을 자리에 앉혀두기가 어렵다.
단어 서너 개를 골랐다가 방을 한 바퀴 돈다.
『투암기』는 따뜻할 수 없는 글이다.
암에 걸렸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꿋꿋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겨내겠다는 글은 쓸 생각이 없었다.
다만 하나씩, 블랙 유머가 되더라도 웃음은 넣고자 했다.
--- pp.248-249
하루가 지났다.
하루만큼 마음이 조금 나아졌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몇 년 동안 이어졌지만 매일 슬펐던 것은 아니다.
나를 잃는 슬픔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몇 시간 정도는 마음이 나아진다.
의욕이나 희망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원래도 의욕 같은 단어는 좋아하지 않았다) 마냥 침묵하는 것도 지겹다.
아침 일찍 아내와 같이 성북동에 있는 빵집에 갔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빵으로 식사를 했다(다음에는 역시 먹던 빵을 사야겠다).
--- pp.267-268
출판사 리뷰
무엇을 해도 된다는 말은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故 김학찬 작가의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써내려간 글들이다.
폐암 제3세대 표적치료제의 임상실험에 참여하며 ‘렉라자맨’이 된 날부터,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겨울까지의 날들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미리 ‘투암기’라는 제목을 정해두고 틈틈이 써내려간 산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글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미완의 산문집으로 남았다.
1부와 2부의 형식 차이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덤덤한 적극성”(창비장편소설상 심사평)은 이 유고 산문집에서도 두드러져,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가만가만 그려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나지 않기 위해, 무의미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신중히 반 캔의 맥주를 고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면서, “운명의 시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요리와 빨래와 세차와 운전과 여행 같은 일상이 모조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몸과 마음이 지속된다는 행운을 끝없이 상기해야만 하는 것”(남궁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죽음을 선고받는다는 건 남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말일 것이다.
김학찬 작가는 그 방식으로 기록을 택”(한지혜)했고, 견디는 글, 살아가는 언어, 사라지기 전에 남기는 따뜻한 블랙 유머가, 이제는 작가를 대신해 독자들 곁에서 오래오래 숨쉴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_(투암기, 243쪽)에서
무엇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내 일을 해야 한다.
故 김학찬 작가의 산문집 『투암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기침으로 병원에 들렀다가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써내려간 글들이다.
폐암 제3세대 표적치료제의 임상실험에 참여하며 ‘렉라자맨’이 된 날부터, 세상을 떠나던 마지막 겨울까지의 날들이 일기처럼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은 자신에게 남은 삶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미리 ‘투암기’라는 제목을 정해두고 틈틈이 써내려간 산문들을 모은 것이다.
그러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글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미완의 산문집으로 남았다.
1부와 2부의 형식 차이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를 낙관도 비관도 하지 않는 덤덤한 적극성”(창비장편소설상 심사평)은 이 유고 산문집에서도 두드러져, 작가가 마지막까지 붙들었던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랑,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의 의미를 가만가만 그려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떠나지 않기 위해, 무의미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가는 신중히 반 캔의 맥주를 고르고,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을 고르고, 단어를 고르면서, “운명의 시일이 다가온다는 것은, 요리와 빨래와 세차와 운전과 여행 같은 일상이 모조리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되고, 몸과 마음이 지속된다는 행운을 끝없이 상기해야만 하는 것”(남궁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죽음을 선고받는다는 건 남은 시간을 견디는 방식을 선택하라는 말일 것이다.
김학찬 작가는 그 방식으로 기록을 택”(한지혜)했고, 견디는 글, 살아가는 언어, 사라지기 전에 남기는 따뜻한 블랙 유머가, 이제는 작가를 대신해 독자들 곁에서 오래오래 숨쉴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치료만 받다가 떠나는 것은, 의미를 잃는 일이다.
고통받으면서도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
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고 싶은 일에는 늘 대가가 따른다.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고 참아야 되는 일도 있고 뭔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_(투암기, 243쪽)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8월 10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504g | 130*200*23mm
- ISBN13 : 9791194523574
- ISBN10 : 1194523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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