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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울프
라스트 울프
Description
책소개
“용암의 흐름처럼 느린 내러티브, 광대한 검은 활자의 강”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중편집

묵시록의 시인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홀로 우뚝 선 채로
우리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_《이코노미스트》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섬세하게 빛나는 보석 같은 이야기들,
독특하고 기발한 작가가 파고든 인간에 대한 실존적 탐구_《퍼블리셔스 위클리》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운 작가”
신작 《헤르쉬트 07769》로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위원회는 “파멸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다시 일깨우는 강렬하고 비전적인 작품”을 수상 이유로 밝히며, 그가 현대 문학이 잃어버린 ‘예언적 언어’의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파멸과 구원 사이, 언어의 경계 위를 걷는 문학의 예언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85년 데뷔작 《사탄탱고》를 통해 문단에 등장한 이후 인간 존재의 불안과 세계의 붕괴를 압도적인 문장으로 형상화해온 작가다.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과 강렬한 서사적 긴장으로, ‘읽는 수행’이라 불릴 만큼 독보적인 문체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알마출판사는 작가의 대표작 여섯 권, 《사탄탱고》 《저항의 멜랑콜리》 《라스트 울프》 《세계는 계속된다》 《서왕모의 강림》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을 국내에 소개해왔으며, 2026년 1월에는 신작 《헤르쉬트 07769》(Herscht 07769)를 출간할 예정이다.

《헤르쉬트 07769》은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남자 ‘헤르쉬트’가 문명 붕괴 이후의 세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언어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숫자와 기호로만 소통하는 사회에서, 그는 더 이상 이름을 부를 수 없는 인간들의 세계를 마주한다.이 작품은 작가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존재의 불안’과 ‘언어의 종말 이후 인간의 가능성’을 가장 밀도 높게 구현한 후기작으로 평가받는다.

전 세계로 확장되는 그의 문학 작품은 오랫동안 조용한 반향 속에서도 깊은 독자층을 형성해왔다.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인간과 예술의 근원을 향한 그의 끝없는 탐구가 다시 한 번 세계의 언어로 되살아난 순간으로, 독자들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읽기》(가제) 및 벨라 타르 영화 상영회 추진

알마출판사는 이번 수상을 기념하여,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읽어야 할 문학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더 가까이 전하기 위한 소책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읽기》(가제)를 선보일 예정이다.필진으로는 한경민 교수, 조원규 시인, 정성일 영화평론가, 장은수 문학평론가, 금정연 평론가, 김유태 시인 등이 참여해 각자의 시선으로 작가의 세계를 해석할 예정이다.

또한 작가의 문학 세계를 영상으로 확장해 조명하기 위해, 또 한 명의 세계적인 거장 타르 벨라 감독의 영화 《사탄탱고》와 《저항의 멜랑콜리》를 원작으로 한 《베이크마이스터 하모니즈》(Werckmeister Harmonies) 상영회를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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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라스트 울프

헤르먼
- 사냥터 관리인(첫 번째 판)
- 기교의 죽음(두 번째 판)

책 속으로
그저 웃음이 났다, 거리낌 없이 튀어나온 웃음이었지만, 그러다 한편으로는 허무함과 다른 한편으로 멸시감 사이에 어떤 차이라도 있는가, 또한 그 모든 게 대체 무슨 상관인가 하는 데 온통 정신이 팔리고 말았다, 왜냐면 이게 늘 제 곁에 따라붙어, 돌이킬 수 없이 세상만사 모든 것에 상관이 있고, 세상만사, 모든 곳에 있는 모든 것에서 번져 나가니까, 게다가, 실로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라면, 그게 무엇을 향하는지,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일어난 것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이니, 어쨌거나 속 시원한 껄껄 웃음은 아니리라, 왜냐면 허무함과 멸시감이 몇 날 며칠 그를 압박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개뿔도 하지 않고, 정처 없이 그저 떠밀려 다니고, 슈파쉬바인에 앉아 그의 첫 번째 슈턴부르크 잔을 옆에 두고 몇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한편으로 그의 주변에 모든 것이 참말로 허무함이 뚝뚝 떨어져 내렸으니, 멸시감은 더 말해 뭐할까,
--- pp.9-10

왜냐면 엑스트레마두라라는 모든 곳이 세상 밖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엑스트레는 바깥을, 저기 멀리 벗어난 바깥을 의미하니까, 아시겠지요? 그런 이유로 그 땅이나 그 사람들이나 다 그렇게 놀랍도록 멋진 것이다, 아무도 불쑥 다가드는 세상의 위협적인 근접성이 야기하는 위험을 진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엑스트레마두라 사람들은 끔찍한 위험 속에 산다, 그는 바텐더에게 설명했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곤경에 처할지, 만약 고속도로와 쇼핑센터들이 그들의 밭, 가난이 끔찍했던 그 밭에 대혼란을 일으키면, 어떤 영적 변화가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왜냐면 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사진들을 보아서 그는 잘 안다, 끔찍했다, 무서우리만치 징글징글했다, 누군가는 정말 이에 종지부를 찍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계속 이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오직 하나 끔찍이도 통탄스러운 점은 그들이 이런 일을 하는 데 한 가지 길밖에 없다, 세상을 안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빌어먹을 생지옥을 인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비록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엑스트레마두라에 있는 모든 것, 땅, 사람, 모든 것이 다, 저주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식이 부족하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앞날에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그, 그는 이를 통렬히 느꼈다,
--- pp.39-40

그 기억이란 - 호세 미구엘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전체 이야기가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충격에 싸여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방문객의 눈을 깊이 마주 보았다 - 젊은 암컷 늑대가 마치 방금 전의 일인 양 눈에 선하게 보인다, 내장은 쏟아지고, 그 안에 죽은 새끼째로 으깨진 배, 지금도 선하게 보이고, 나중에도 눈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늑대는 치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암컷이 다만, 임신했다는 오직 그 이유로, 배가 너무 불러 길을 재빨리 달려 지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부딪혔다, 그 때문에 무작위로 적용되는 확률의 사고에서 도망가지를 못했고 그리고 아마도 그 앞으로 살인자처럼 내달려오는 차를 모면하지 못했다고, 이런 생각이 떠올라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어 가만히 섰다, 도로 한가운데 죽은 동물 옆에 서 있으니, 지나는 차들은 그를 향해 경적을 빵빵대며 그를 피해 가는데, 하지만 그 소리가 마치 아득히 먼 곳에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 못 박히듯 옴짝 못하고 서 있었다, 만약 그의 동료, 나이 많은 사냥터 관리인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 역시 치여 늑대 옆에 나란히 있었을 것이다, 나이 많은 동료가 이런 상태의 그를 길가로 홱 잡아당겼다, 그런 다음 늑대를 끌어내는데, 그는 거의 한참을 움직일 수가 없어서, 동료 혼자서 다 처리해야 했다, 그런 다음에도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도 거의 모른 채, 그는 하라는 대로만 따라하여 도왔다, 결국에 그들은 같이 늑대를 길가 도랑으로 끌어다 놓았고 즉시 늑대를 땅에 묻었다, 바로 거기 묻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그는 묻힌 자리가 어디인지 지목할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다시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지프를 출발시키면서 그가 말했다, 물론 뼈밖에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뭐라도 건지려고 한다면 말이지만, 그 문제는 그만 접어두자, 하고 그는 목을 가다듬고 가속 페달을 지그시 눌렀다,
--- pp.72-73

그리고 진짜 겨울이 닥치고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는 마침내 그의 삶을, 아주 깊디깊은 무지 속에 푹 잠겨, 쥐락펴락 남들 휘두르는 대로 마냥 복종하고, 살아왔구나, 신성한 섭리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고, 그렇게 세상이 해로운 세상과 유익한 세상으로 나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구나, 알아차렸다.
하지만 실제 양쪽 카테고리가 다 똑같이 극악무도하고 무자비한 참학慘虐에서 기원한 것을, 둘 다 깊은 곳에 지옥의 빛이 도사린 것을, 꼭 그처럼 얼마지 않아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부서지기 쉬운 평화도 아니고, ‘심장이 내리는 진정한 분부’도 아님을 저릿하게 깨달았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그저 저 아래 온통 꿈틀대는 ‘핏빛 혼돈에 뒤엉킨 대중’을 가리는 투명한 막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떨어진 사람에게 확 피어오르는 연민이 휩쓸고 지났다.
똑같이 이 연민에 이제껏 자신을 법의 폭압에 족쇄처럼 채우던 충의에 대해 반발심이 일었다.
그는 이제 인간의 계산을 넘는 더 높은 법칙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마 그가 영원히 혼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경계를 넘어서 버렸다.
--- p.95

특히나 마지막에 놓은 덫에… 무언가 자신 속에서 부서진 것 같아서, 마치… 갑자기 거의 힘이, 그의 정의감을 먹여 살리며 부지시키던 힘이 모조리 빠져나가 버린 것 같아서였다.
덫에 벌써 몇 명이나 아이들이 걸렸다는 말을 듣자, 그는 ‘잘못된 냄새를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자신의 두 손으로 ‘어둠 속에서 눈이 멀어 휘두르듯’ 살육을 벌이도록 내몰리고 있었다니, 자신은 ‘지금까지 그들에게 현혹된 것에 대한 대가를 되갚아주려는’ 사람이라는 믿음에서, 그 응보의 행동으로 해오던 일인데.
하지만 이제 - 사흘째 곱씹어보니 - 더 이상 외면하며 뒤로 미룰 수 없이, 그는 그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주해야만 했다.
‘누락된 질서’를 복구하는 대신에 아마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나무좀처럼 내부에서부터 먹혀 들어가며, 최종적으로 와해되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날카로운 통증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찔렀고 그가 앉은 곳의 어둠이 갑자기 무시무시해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이 달음질하는 생각들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도 이미 감지되었다.
--- p.102

그리고 우리 기술들은 - 우리의 한심한 경험들 뒤에, 우리는 단순히 사고하는 정신의 얼간이 희생자들이지 대업을 탐구하는 영웅들이 아님을 이해하고서 - 도착적 실현 성취, 분방한 쾌락의 추구, 원시적 상상력을 잃어버린 에덴의 쉼 없는 복원에 기초하여 세워져, 법의 위반에 위안을 얻는 반면에, 고의적으로 고른 ‘헤르먼’의 초라한 수단들은 기만적인 자존감으로 소생하였고, 나약함의 불가항력을 믿는 오만으로 선보였다.
우리가 일들을 잔혹하게(다시 오직 구스타브만이 맞는 단어를 찾았다) 축생 취급하고, 바로 완벽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연약한 온전함을 범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고대의 뿌리 깊은 충동들에 사로잡힌 이 ‘헤르먼’은 용케도 파괴성을 기리며 드높이 세우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았다.
이런 사고 이후로, 호텔 매니저가, 우리에게 덫놓이를 체포할 목적으로 몇몇 소위 공공 조직과 자위대가 마을에 조직되었다고 알려주며 우리 역시 이런 상황을 보아 넘길 수 없으리라 짐작하므로, 우리도 추적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하던 은근한 초대를 왜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것이다.
--- p.125

출판사 리뷰
인간과 자연, 사냥꾼과 사냥감의 경계의 허무함에 대한 슬프도록 아름다운 철학적 탐구
23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발표된 두 편의 이야기, 그의 문학적 정수를 온전히 맛볼 수 있는 책
헝거리의 위대한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경이로울 만큼 본능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

《사탄탱고》(2018년)와 《저항의 멜랑콜리》(2019년)로 문학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헝거리의 문제적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이번에는 중편집 《라스트 울프》로 돌아왔다.
표제작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 두 작품으로 구성된 이 중편집은 현지 출간 당시(2015년) 평단으로부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적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라는 평을 받았던 작품집이어서 더욱 반갑다.


특히 이 중편집에 수록된 두 작품은 23년이라는 시간의 강을 건너 발표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초기작과 완숙기의 작품을 두루 맛볼 수 있는 작품집으로 평가된다.
표제작 「라스트 울프」는 2009년에 헝거리에서 처음 발표된 작품이다.
이에 반해 두 가지 시선으로 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헤르먼」은 1986년에 출간된 그의 첫 번째 단편집인 《우아한 관계(Kegyelmi viszonyok; Relations of Grace)》에 수록된 작품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해리 컨즈루(Hari Kunzru)의 다음과 같은 서평은 《라스트 울프》의 이러한 특징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들에 깃든 즐거움을 충분히 맛볼 기회를 준다.
여기에 보태 그의 문학이 가진 초기과 후기 스타일을 비교할 기회를 준다.
… 중편집 《라스트 울프》에 실린 두 작품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현재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고 가장 기이한 인물의 하나임을 확인시키는 영적인 질문들을 제기한다.”

절망감에 빠진 철학자가 뜻밖의 기회에 다녀온 스페인 여행에서 ‘마지막 늑대’의 이야기를 추적하게 된 사연을 선술집 바텐더에서 들려주는 「라스트 울프」와 은퇴 직전 레메테 숲의 야생 포식자를 퇴치하던 덫놓이 장인 헤르먼의 슬픈 이야기를 두 가지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는 「헤르먼」 사이에는 23년이라는 긴 시간의 강이 놓여 있으나, 평론가 클레어 코다 헤즐턴의 서평처럼 “두 편의 중편 모두에서, 잊을 수 없을 만큼 본능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엄청난 작가적 역량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서로 다른 두 작품은 테마의 유사성을 공유한다.
즉 두 작품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은 그들이 쫓는 동물들을 닮아간다.
인간과 자연, 사냥꾼과 사냥감의 경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탐문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덫이 놓인 숲속과 자취를 쫓는 이들의 황폐해진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렇게 「라스트 울프」와 「헤르먼」은 인간의 실존을 탐구하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오래된 문학적 지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탐구는 ‘자연으로 돌아가 완전히 자연에 굴복하는 사람들’, ‘잃어버린 에덴을 되찾으려는 사람들’, 그리고 ‘닿을 수 없는 것을 찾는 우리 모두’를 슬프고도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허탈함과 좌절 그 숨막힘을 표현한 문학적 장치, 쉼표 없는 단 한 문장으로 된 작품 「라스트 울프」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에 대한 철학적 탐구 「헤르먼」


《라스트 울프》의 표제작 「라스트 울프」의 화자는 한때 교수님으로 불리던 철학자이다.
이 작품은 허무함과 멸시감으로 스스로를 비웃는 화자를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다니는 베를린의 한 싸구려 술집 슈파쉬바인에 아침부터 들리는 화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헝거리인 바텐더에게 길고 긴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스페인의 모재단으로부터 ‘엑스트레마두라’로 초청을 받고 그곳에 다녀온 이야기의 전모를 들려준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엑스트레마두라’의 개화기에 대한 이야기를 써주기만 한다면 스페인의 체류와 두둑한 원고료를 주겠다는 제안에 망설이다 받아들인 뒤,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결국 스페인의 마지막 늑대에 관한 기록을 추적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온 그 허망한 전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긴 이야기를 작가는 문장도, 단락도 구분하지 않고 쉼표로만 이루어진 단 하나의 문장으로 전개하고 있다.
헝거리 출신 영국 시인 조지 시르테스(George Szirtes)가 “용암의 흐름처럼 느린 네러티브, 광대한 검은 활자의 강”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 작품은 70여 쪽을 이어가는 단 하나의 문장이 삶의 공허와 의미를 도도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끝없는 이어지는 문장의 흐름은 재즈 같은 즉흥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멈추지 않는 이야기는 엉뚱한 의미의 확산을 허용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는 독자는 숨쉴 겨를도 없이 작가가 펼치는 혼란과 절망 그리고 무력감에 빠져들고 만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 또 다른 중편 「헤르먼」은 이와 다른 문학적 시도를 하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전혀 다른 두 관점에서 이야기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대비시키고 있다.
첫 번째 판 “사냥터 관리인”은 작중 주인공 헤르먼의 입장에서 사건의 전개를 그려냄으로써, 인간과 동물, 사냥꾼과 사냥감의 경계를 허물면서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비극적 이야기를 섬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그에 비해 두 번째 판 “기교의 죽음”에서는 자유분방한 귀족 화자의 입장에서 헤르먼이 고뇌에 찬 반란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러한 두 이야기는 ‘헤르먼의 반란’을 인간의 자만심에 대한 공포를 반추하는 의미에서 고귀한 인간적 가치로 그려내면서도, 자유방임적인 귀족 화자의 자세만큼이나 ‘상상의 완전한 해방’을 향한 작가의 헛된 바람을 되새기게끔 한다.

크러스터호르커이 라슬로가 두 작품에서 취한 두 가지 문학적 장치는 강력한 반추의 충동을 지녔다는 점에서 큰 성취를 이루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이 “섬뜩한 거울의 특성”을 지녔다는 크리스틴 스몰우드(Christine Smallwood)의 지적은 명쾌하다.
그의 작품들이 늘 그렇듯 중편집 《라스트 울프》에 함께 실린 두 작품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읽은 뒤에 내용을 곱씹을수록, 사유에 사유를 거듭할수록 새로이 깨닫는 게 되는 그만의 매력을 가진 수작들이다.
단연 스스로가 ‘지옥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독자들을 위한 작가’라고 표현했던 작가의 깊이 있는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반가운 작품집이다.


시리즈 소개

알마 인코그니타(Alma Incognita) 시리즈
문학을 매개로 미지의 세계를 향해 특별한 모험을 떠납니다.


오카다 도시키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오카다 도시키 지음, 이상홍 옮김, 2016년 8월)
《비교적 낙관적인 케이스》 (오카다 도시키 지음, 이홍이 옮김, 2017년 7월)

에르베 기베르
《유령 이미지》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2017년 3월)
《빨간 모자를 쓴 남자》 (에르베 기베르 지음, 안보옥 옮김, 2018년 6월)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에르베 기베018년 11월)
《연민의 기록》 (에르베 기베르 지음, 신유진 옮김, 2022년 3월)

마티외 랭동
《에르베리노》 (마티외 랭동 지음, 신유진 옮김, 2022년 12월)

우밍이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2018년 3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조원규 옮김, 2018년 5월)
《저항의 멜랑콜리》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2019년 5월)
《라스트 울프》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구소영 옮김, 2021년 10월)
《서왕모의 강림》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2022년 7월)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박현주 옮김, 2023년 1월)
《벵크하임 남작의 귀환》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노승영 옮김, 2024년 12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오블리비언》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신지영 옮김, 2019년 10월)
《끈이론》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2019년 11월)
《에 우니부스 플루람 : 텔레비전과 미국 소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 2022년 2월)

올리비아 로젠탈
《적대적 상황에서의 생존 메커니즘》 (올리비아 로젠탈 지음, 한국화 옮김, 2020년 1월)

김사과
《바깥은 불타는 늪/정신병원에 갇힘》 (김사과 지음, 2020년 11월)

로리 프랭클
《클로드와 포피》 (로리 프랭클 지음, 김희정 옮김, 2023년 5월)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펄프헤드》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2023년 8월)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지음, 고영범 옮김, 2023년 11월)

기욤 로랑
《내 몸이 사라졌다》 (기욤 로랑 지음, 김도연 옮김, 2024년 3월)

뤼도빅 에스캉드
《밤의 몽상가들》 (뤼도빅 에스캉드 지음, 김남주 옮김, 2025년 1월)

* 계속 출간됩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1년 10월 29일
- 쪽수, 무게, 크기 : 132쪽 | 236g | 135*220*12mm
- ISBN13 : 9791159923500
- ISBN10 : 115992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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