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 자본론
Description
책소개
자본주의의 거울 앞에 선 인류학자의 시선 - 녹색 자본론
『녹색 자본론』은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21세기 들어 더욱 파괴적인 양상을 띠는 문명 세계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마주하여 인류학적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총 4편의 글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무엇을 억압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말한다.
특히 표제작 〈녹색 자본론〉은 지은이가 2001년 9.11 테러 사건을 접하고 거대한 빌딩이 붕괴되는 그 자리에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무자비하게 비춘” 거울이 서는 것을 “똑똑히” 보았던 사건으로 해석하며, 이슬람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을 넘어 공생의 윤리를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본론』에 담겨 있는 일신교적 원리를 분석하여 기독교 세계에서 발전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윤에 매몰되지 않는 ‘수크’식 시장에서 대안을 찾는다.
루소의 사회계약,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 프로이트의 쾌락원칙, 하이데거의 존재론 등을 인용하여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이 느끼는 불안에 구체적인 형체를 부여하고, 슈토크하우젠 사건, 미야자와 겐지의 우화, 일본의 여러 신화를 통해 압도적 비대칭 세계의 너머를 상상한다.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와 마주하고 생명 사이의 관계 맺기를 성찰하는 책이다.
『녹색 자본론』은 일본의 저명한 인류학자 나카자와 신이치가 21세기 들어 더욱 파괴적인 양상을 띠는 문명 세계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마주하여 인류학적 관점에서 대안을 모색한 책이다.
이 책에 실린 총 4편의 글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무엇을 억압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말한다.
특히 표제작 〈녹색 자본론〉은 지은이가 2001년 9.11 테러 사건을 접하고 거대한 빌딩이 붕괴되는 그 자리에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무자비하게 비춘” 거울이 서는 것을 “똑똑히” 보았던 사건으로 해석하며, 이슬람에 대한 단편적인 해석을 넘어 공생의 윤리를 찾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나카자와 신이치는 『자본론』에 담겨 있는 일신교적 원리를 분석하여 기독교 세계에서 발전한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고, 이윤에 매몰되지 않는 ‘수크’식 시장에서 대안을 찾는다.
루소의 사회계약,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 프로이트의 쾌락원칙, 하이데거의 존재론 등을 인용하여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이 느끼는 불안에 구체적인 형체를 부여하고, 슈토크하우젠 사건, 미야자와 겐지의 우화, 일본의 여러 신화를 통해 압도적 비대칭 세계의 너머를 상상한다.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와 마주하고 생명 사이의 관계 맺기를 성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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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고판 서문
서문
압도적 비대칭 - 테러와 광우병에 대하여
녹색 자본론 - 이슬람을 위하여
1.
일신교를 둘러싼 인식론 수업
2.
이자(이윤)를 부정하는 이슬람
3.
타우히드 화폐론
4.
성령은 증식한다
5.
마르크스의 ‘성령’
에필로그-수크에서
슈토크하우젠 사건 - 안전영역에 포섭된 예술의 시련
부록 모노와의 동맹 - 증식, 생명, 자본주의
1.
모노에 대하여
2.
빛에 대항하는 모노
3.
모노와의 동맹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서문
압도적 비대칭 - 테러와 광우병에 대하여
녹색 자본론 - 이슬람을 위하여
1.
일신교를 둘러싼 인식론 수업
2.
이자(이윤)를 부정하는 이슬람
3.
타우히드 화폐론
4.
성령은 증식한다
5.
마르크스의 ‘성령’
에필로그-수크에서
슈토크하우젠 사건 - 안전영역에 포섭된 예술의 시련
부록 모노와의 동맹 - 증식, 생명, 자본주의
1.
모노에 대하여
2.
빛에 대항하는 모노
3.
모노와의 동맹
옮긴이 후기 / 찾아보기
책 속으로
광우병과 테러는 오늘날 문명이라는 동일한 병인(病因)에서 생겨난, 유사한 구조의 병리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정부는 광우병에 걸린 무수한 소를 일괄 처분하거나,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인물이나 단체를 말살하는 방안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방안의 유효기한은 극히 짧다.
머잖아 같은 병인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광우병이 발생할 것이고, 말살에 대한 보복 테러가 이전보다 훨씬 비참한 형태로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테러는 글로벌 문명이라는 심각한 병인에서 발생한다.
철저한 소탕전으로 테러를 근절한 세계는 점점 가축 세계에 근접할 것이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가축의 방법으로 테러가 가능하다는 것을, 광우병 발생이 암시한다.
압도적인 비대칭 세계의 내부에서 실효성을 동반한 정치적 사고가 계속되는 한, 이와 같은 사태는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 「압도적 비대칭」 중에서
마르크스가 분석한 ‘아마포 20야드=웃옷 한 벌’에서는, 매혹적 상품인 웃옷이 ‘등가형태’로서 ‘상대적 가치형태’인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자본주의의 맹아를 낳는 최소단위 세포였다.
이슬람의 원리는 이 세포에 개입해 잉여가치 발생의 프로세스를 최소한으로 제어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아마포와 웃옷이 일체의 ‘마술적 불어남’을 배제한 상태에서 완전히 대등하게 만나야 할 것이다.
즉 욕망과 상품이 대등하게 만나는 상황이 시장의 최소단위인 손님과 상인의 만남의 장에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와 다른 이슬람 경제의 실재라는 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고 말 것이다.
--- 「녹색 자본론」 중에서
이슬람의 생활윤리는 자기증식에 대한 일신교적 비판 원리라는 이슬람 세계 공통의 사고가 지탱하고 있다.
그 사고의 소립자 차원에 이르기까지의 일관성을 명명하는 것이 타우히드이며 알라에 대한 신앙인 것이다.
거기서는 인간의 자연적 지성이 만들어 내고야 만 세계에 대해 하나의 투철한 비판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이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경제학 비판’인 것이다.
원리로서의 이슬람은 거대한 한 권의 살아 있는 ‘녹색 자본론’이다.
자본주의의 ‘타자’는 이 지구상에만 실재한다.
이슬람은 우리의 세계에 있어 잃어서는 안 되는 거울이다.
--- 「녹색 자본론」 중에서
슈토크하우젠 씨는 예술가답게 모든 것을 양의적으로 파악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 사고방식에 따르면 ‘빛’은 양의적이다.
사물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것을 빛으로 끌어내기, 이것은 ‘진리’를 드러내는 사고의 행위인 동시에 그렇게 빛으로 끌린 것을 계량하고 계산하여 에너지나 유용한 운동으로 변환하는, 기술 행위의 본질을 표현하는 일이다.
빛의 대천사가 미카엘과 루시퍼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야훼의 것이자 알라의 것인, 진리와 정의를 구하는 계몽의 빛 또한 자신의 내부에서 무자비한 파괴력을 갖고 존재를 출현시킨다.
……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20세기 유럽의 수많은 격동을 체험했던 73세 예술가는 이러한 양의적 인식에서 “그것은 최고의 예술작품입니다”라는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이전 사회에서는 예술가와 사상가가 하는 이러한 양의적 사고를 허용하고 지성이 흘러넘치는 발언을 상찬해 왔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풍요로움과 위태로움을 품은 양의적 사고는, 특히 저널리즘에서 가장 적당한 먹잇감이자 적이 되었다.
--- 「슈토크하우젠 사건」 중에서
모노와의 동맹이 필요하다.
La Nouvelle Alliance(새로운 동맹).
일리야 프리고진과 이사벨 스텐저스가 이 말을 쓴 지 20년도 더 지났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예감하게 하는 이 말은 아직 낡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새로운 동맹은 모노와의 동맹이어야 한다.
비인격적 역능, 얼기 직전의 해수와도 같은 물체성의 모노, 옛사람들이 영력이라고도 성령이라고도 부르던 비감각적 내포력 등이 혼성계를 이루면서 복잡한 전체 운동을 하고 있는 그러한 모노와의 사이에 인간은 진실의 동맹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때 정부는 광우병에 걸린 무수한 소를 일괄 처분하거나,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인물이나 단체를 말살하는 방안를 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방안의 유효기한은 극히 짧다.
머잖아 같은 병인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광우병이 발생할 것이고, 말살에 대한 보복 테러가 이전보다 훨씬 비참한 형태로 일어날 것이 틀림없다.
테러는 글로벌 문명이라는 심각한 병인에서 발생한다.
철저한 소탕전으로 테러를 근절한 세계는 점점 가축 세계에 근접할 것이다.
하지만 가축에게는 가축의 방법으로 테러가 가능하다는 것을, 광우병 발생이 암시한다.
압도적인 비대칭 세계의 내부에서 실효성을 동반한 정치적 사고가 계속되는 한, 이와 같은 사태는 언제까지나 반복될 것이다.
--- 「압도적 비대칭」 중에서
마르크스가 분석한 ‘아마포 20야드=웃옷 한 벌’에서는, 매혹적 상품인 웃옷이 ‘등가형태’로서 ‘상대적 가치형태’인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자본주의의 맹아를 낳는 최소단위 세포였다.
이슬람의 원리는 이 세포에 개입해 잉여가치 발생의 프로세스를 최소한으로 제어하고자 한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아마포와 웃옷이 일체의 ‘마술적 불어남’을 배제한 상태에서 완전히 대등하게 만나야 할 것이다.
즉 욕망과 상품이 대등하게 만나는 상황이 시장의 최소단위인 손님과 상인의 만남의 장에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와 다른 이슬람 경제의 실재라는 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고 말 것이다.
--- 「녹색 자본론」 중에서
이슬람의 생활윤리는 자기증식에 대한 일신교적 비판 원리라는 이슬람 세계 공통의 사고가 지탱하고 있다.
그 사고의 소립자 차원에 이르기까지의 일관성을 명명하는 것이 타우히드이며 알라에 대한 신앙인 것이다.
거기서는 인간의 자연적 지성이 만들어 내고야 만 세계에 대해 하나의 투철한 비판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이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경제학 비판’인 것이다.
원리로서의 이슬람은 거대한 한 권의 살아 있는 ‘녹색 자본론’이다.
자본주의의 ‘타자’는 이 지구상에만 실재한다.
이슬람은 우리의 세계에 있어 잃어서는 안 되는 거울이다.
--- 「녹색 자본론」 중에서
슈토크하우젠 씨는 예술가답게 모든 것을 양의적으로 파악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 사고방식에 따르면 ‘빛’은 양의적이다.
사물의 내부에 숨겨져 있는 것을 빛으로 끌어내기, 이것은 ‘진리’를 드러내는 사고의 행위인 동시에 그렇게 빛으로 끌린 것을 계량하고 계산하여 에너지나 유용한 운동으로 변환하는, 기술 행위의 본질을 표현하는 일이다.
빛의 대천사가 미카엘과 루시퍼로 분열되어 있는 것처럼, 야훼의 것이자 알라의 것인, 진리와 정의를 구하는 계몽의 빛 또한 자신의 내부에서 무자비한 파괴력을 갖고 존재를 출현시킨다.
…… 실험 정신으로 가득한, 20세기 유럽의 수많은 격동을 체험했던 73세 예술가는 이러한 양의적 인식에서 “그것은 최고의 예술작품입니다”라는 발언을 내뱉은 것이다.
이전 사회에서는 예술가와 사상가가 하는 이러한 양의적 사고를 허용하고 지성이 흘러넘치는 발언을 상찬해 왔다.
하지만 이제 사회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풍요로움과 위태로움을 품은 양의적 사고는, 특히 저널리즘에서 가장 적당한 먹잇감이자 적이 되었다.
--- 「슈토크하우젠 사건」 중에서
모노와의 동맹이 필요하다.
La Nouvelle Alliance(새로운 동맹).
일리야 프리고진과 이사벨 스텐저스가 이 말을 쓴 지 20년도 더 지났다.
그러나 약속의 땅을 예감하게 하는 이 말은 아직 낡지 않았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새로운 동맹은 모노와의 동맹이어야 한다.
비인격적 역능, 얼기 직전의 해수와도 같은 물체성의 모노, 옛사람들이 영력이라고도 성령이라고도 부르던 비감각적 내포력 등이 혼성계를 이루면서 복잡한 전체 운동을 하고 있는 그러한 모노와의 사이에 인간은 진실의 동맹관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 「모노와의 동맹」 중에서
출판사 리뷰
▶ 지은이의 말
이 책은, 물론 경제학책은 아니지만, 타우히드 이론을 따라 다시 쓰는 가치형태론이라는 의미로 『자본론』의 ‘녹색’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다시 쓰기 작업을 더욱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수행하여 실험을 거의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9/11 직후 번뜩였던 직감(사실은 ‘하늘의 계시’라고 쓰고 싶지만)의 생생함을 보존하고 있는 이 텍스트들에 지금도 깊은 애착을 품고 있으며, 더 이상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서구형 자본주의의 보편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자본론』 전체가 기대고 있는 가치형태론을 상대화하다 보니, 현대세계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경제학적 사고 전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책이므로 생각만큼 야심 찬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이 나의 탐구 방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 옮긴이의 말
지금 나는 21세기, 남한, 서울이라는,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입고 먹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질병의 위험도 적다.
기대수명도 길고, 정치적으로도(비록 예기치 못한 변수로 요동칠 때가 있지만) 다소 안정적인 사회다.
하지만 이 안정과 풍요로움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것은 아닐까.
뉴스 피드에 매번 올라오는 기후위기, 전쟁, 전 지구적으로 자본화된 경제가 불러온 대규모의 희생은 잠깐 화제가 되었다가 이내 잊히고 나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
왜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연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삶의 방식은 똑같은 방향을 향할까? 왜 우리는 우리의 안정과 풍요를 의심하지 않는 걸까? 이 질문과 더불어 번역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화두는 ‘타자’였다.
이 책은, 물론 경제학책은 아니지만, 타우히드 이론을 따라 다시 쓰는 가치형태론이라는 의미로 『자본론』의 ‘녹색’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다시 쓰기 작업을 더욱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수행하여 실험을 거의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9/11 직후 번뜩였던 직감(사실은 ‘하늘의 계시’라고 쓰고 싶지만)의 생생함을 보존하고 있는 이 텍스트들에 지금도 깊은 애착을 품고 있으며, 더 이상 손을 대고 싶지 않을 정도이다.……
이 책을 쓰면서 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서구형 자본주의의 보편성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자본론』 전체가 기대고 있는 가치형태론을 상대화하다 보니, 현대세계에서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경제학적 사고 전부에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책이므로 생각만큼 야심 찬 작업을 진행할 수는 없었지만, 이 책이 나의 탐구 방향에 큰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
▶ 옮긴이의 말
지금 나는 21세기, 남한, 서울이라는,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입고 먹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질병의 위험도 적다.
기대수명도 길고, 정치적으로도(비록 예기치 못한 변수로 요동칠 때가 있지만) 다소 안정적인 사회다.
하지만 이 안정과 풍요로움이야말로 진짜 위험한 것은 아닐까.
뉴스 피드에 매번 올라오는 기후위기, 전쟁, 전 지구적으로 자본화된 경제가 불러온 대규모의 희생은 잠깐 화제가 되었다가 이내 잊히고 나는 여전히 이전과 같은 삶을 산다.
왜 더 많이 알고 더 빠르게 연결되는 시대를 살면서도 삶의 방식은 똑같은 방향을 향할까? 왜 우리는 우리의 안정과 풍요를 의심하지 않는 걸까? 이 질문과 더불어 번역하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화두는 ‘타자’였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8월 01일
- 쪽수, 무게, 크기 : 240쪽 | 248g | 130*200*17mm
- ISBN13 : 9791192128610
- ISBN10 : 1192128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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