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가사지론 강의 (상)
Description
책소개
불법을 배우고 닦고 지키는 데에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높고 깊은 것이다
바른 가르침을 듣고 사유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유가사지론』은 유식학의 대론으로 총 100권의 논서다.
대소승의 각종 수행법과 수행 단계, 삼매를 얻고 원만 자재함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경전에서 수집하고 분류해서 집대성한 책이다.
이 강의는 수행의 이치를 밝힌 『유가사지론』 경문을 해석해 가면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바른 수행의 길로 이끈다.
경문을 지도로 삼아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길에서 만나는 각종 난관을 스스로 대처하게끔 하고, 수행자가 서 있는 자리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분발시킨다.
책에는 저자의 수행 경험, 주변의 사례, 각 종파의 예를 폭넓고 생동감 있게 들어가며 참된 수행의 이치를 드러낸다.
수행자는 어떤 곳에 살고 얼마나 먹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기질과 인연이 있어야 수행하는지 각종 조건부터 수행에 문제를 일으키는 그릇된 생각을 알아채고 벗어나는 법까지 하나하나 살펴준다.
이를 통해 수행해도 왜 정(定)을 이루지 못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정을 닦아야 하는지, 왜 정을 닦아야 혜를 얻을 수 있는지, 마음을 얽어매는 장애는 무엇이고 어떻게 벗어나는지, 교리는 수행과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선명해진다.
호흡, 염불, 화두 참선, 관상 등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 강조하는 바는 하나다.
끊임없는 가행으로 이치에 맞게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기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높고 깊은 것이다
바른 가르침을 듣고 사유하고 부지런히 수행하라
『유가사지론』은 유식학의 대론으로 총 100권의 논서다.
대소승의 각종 수행법과 수행 단계, 삼매를 얻고 원만 자재함에 이르는 과정을 여러 경전에서 수집하고 분류해서 집대성한 책이다.
이 강의는 수행의 이치를 밝힌 『유가사지론』 경문을 해석해 가면서 출가자와 재가자를 바른 수행의 길로 이끈다.
경문을 지도로 삼아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 길에서 만나는 각종 난관을 스스로 대처하게끔 하고, 수행자가 서 있는 자리를 알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분발시킨다.
책에는 저자의 수행 경험, 주변의 사례, 각 종파의 예를 폭넓고 생동감 있게 들어가며 참된 수행의 이치를 드러낸다.
수행자는 어떤 곳에 살고 얼마나 먹고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기질과 인연이 있어야 수행하는지 각종 조건부터 수행에 문제를 일으키는 그릇된 생각을 알아채고 벗어나는 법까지 하나하나 살펴준다.
이를 통해 수행해도 왜 정(定)을 이루지 못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정을 닦아야 하는지, 왜 정을 닦아야 혜를 얻을 수 있는지, 마음을 얽어매는 장애는 무엇이고 어떻게 벗어나는지, 교리는 수행과 어떻게 연관되는지가 선명해진다.
호흡, 염불, 화두 참선, 관상 등 여러 수행법이 있지만 강조하는 바는 하나다.
끊임없는 가행으로 이치에 맞게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
이것이 기본이다.
목차
옮긴이 말|출판 설명|『유가사지론』 구성과 내용
제1강
『유가사지론』에 관하여|유가사와 오승도|[제20권 本地分中修所成地第十二] 수행해도 왜 정을 이루지 못하는가|도반이 없고 밝은 스승이 없고 마음이 부족한 잘못|듣기만 하고 공경을 바라고 족함을 모르는 잘못|쓸데없는 일에 바쁘고 나태한 잘못|트집 잡고 성질 부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잘못|함부로 먹고 많이 자고 육근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지관 수행의 방법을 몰라 일으키는 잘못|방법을 모르고 가행이 느슨하거나 잘못되어서이다|악업이 무거우면 정을 이루지 못한다|[제21권 本地分中聲聞地第十三初瑜伽處種性地品第一] 무엇을 성문지라고 하는가|무엇이 종성인가
제2강
수행의 좋은 인연과 좋지 않은 인연|당신의 몸은 선하게 얻은 것입니까|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출가인가|음식은 큰 문제이다|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마음이 청명한 경계|[제22권 本地分中聲聞地第十三初瑜伽處出離地品第一] 왜 계를 받고 지키고 닦아야 하는가|참된 수행자는 이런 잘못이 없어야 한다|당신이 출가한 동기는 무엇인가|[제11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一] 네 가지 정려, 여덟 가지 해탈|정혜등지
제3강
성인의 정의 경계|입정에 잘 이끌어 들이는 등인지|초정려를 이루어 다섯 가지 심리에서 벗어나다|선정 수행의 기쁨이 일으키는 마장|기쁨 때문에 근심 때문에 짓는 악업|청정한 환희, 안락한 경안을 얻어야 진정한 출가인|소연을 자세하고 바르게 사유하라|선정을 먼저 닦는가 공성을 먼저 관하는가
제4강
정을 닦을 때 마음의 다섯 가지 장애|자기 마음의 탐욕을 점검하라|여러분도 성깔이 대단하십니까|누가 번뇌하지 않고 혼침하지 않는가|마음이 흐리멍덩하고 어둡고 어리석으며|마음이 흔들리고 돌이켜 후회하고
제5강
마음에 의혹이 많아 망설이고 의심하고 재고|탐욕은 바르지 않은 사유를 먹고 자란다|아름답고 훌륭한 태도에 마음이 일어나다|어떻게 탐욕을 없애는가|왜 수행의 첫걸음이 작의인가|일곱 가지 근본 작의와 나머지 사십 가지 작의|의식이 하나의 경계를 만들어 내는 비발사나 수행법|왜 백골을 관하지 못하는가|일념을 비워 공의 경계에 머무는 사마타 수행법|지 위주의 수행, 관 위주의 수행
제6강
영상작의를 수습하는 관건|여러분은 경안을 얻었습니까|덮이고 묶인 마음이 청정을 따라 해탈에 이른다|반주삼매 수행, 괴로움을 스승으로 삼다|성문중의 여러 가지 작의|독각승과 보살승의 작의|사십 가지 작의를 사유하여 귀납하다|수행에도 자본이 필요하다|정 수행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제7강
심신의 안팎이 더러워졌다|색신에 의지하여 작의하다|작의는 색신에 영향을 준다|세상의 사유 습성을 버리고 자기 심리를 점검하라|일체 번뇌가 뒤따르고 얽어매고 있으니|정방편상 사방편상 광명상 관찰상에 대하여|모든 탐욕상을 다스릴 수 있는 현선정|정에 들어가고 정에 머무르고 정에서 나오다|정을 닦는 삼십이상을 귀납하면 소연상 하나
제8강
[제12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二] 바른 수행의 길은 모두 작의이며 정사유|정을 이루는 네 가지 힘, 인력 방편력 설력 교수력|선정 수행을 좋아하나 출리의 방편을 모르는 수행자|외도의 지견으로 선정을 닦는 수행자|교만하고 의심에 기대어 선정에 들어가는 수행자|선정 수행의 근기가 다르다|어떻게 무루과의 정의 경계를 수행하는가|수련에는 진퇴가 있고 방법에는 결택이 있다
제9강
심성의 청정이 원만해지고 다시 정을 닦다|정려를 훈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정에 들어가고 자재해도 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해탈해도 업의 과보는 남아 있다|약간의 애와 욕이라도 떠나지 않으면|해탈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팔해탈의 첫 번째, 욕계의 욕은 떠났으나 색계의 욕은 남아 있다|욕계의 빛과 색을 이용해 욕을 떠나는 수행|팔해탈의 둘에서 여덟까지|수련이 경계에 도달했을 때의 능력|무엇이 공성을 증도하는 것인가
제10강
심력이 전화하기만 하면 완성된다|역시 부동심이다|망념이 없고 상에 집착이 없는 수행법|무상정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무상 평정에 이를 때까지 채찍질하고 면려한다|과위를 증득하였음을 알다|공, 무상, 무원, 심사를 다시 말하다|유심유사, 무심유사, 무심무사의 삼마지|[제13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三] 비구 성문도의 필수 과목, 삼매 지관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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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유가사지론』에 관하여|유가사와 오승도|[제20권 本地分中修所成地第十二] 수행해도 왜 정을 이루지 못하는가|도반이 없고 밝은 스승이 없고 마음이 부족한 잘못|듣기만 하고 공경을 바라고 족함을 모르는 잘못|쓸데없는 일에 바쁘고 나태한 잘못|트집 잡고 성질 부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잘못|함부로 먹고 많이 자고 육근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지관 수행의 방법을 몰라 일으키는 잘못|방법을 모르고 가행이 느슨하거나 잘못되어서이다|악업이 무거우면 정을 이루지 못한다|[제21권 本地分中聲聞地第十三初瑜伽處種性地品第一] 무엇을 성문지라고 하는가|무엇이 종성인가
제2강
수행의 좋은 인연과 좋지 않은 인연|당신의 몸은 선하게 얻은 것입니까|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출가인가|음식은 큰 문제이다|깨어 있거나 잠들어 있거나 마음이 청명한 경계|[제22권 本地分中聲聞地第十三初瑜伽處出離地品第一] 왜 계를 받고 지키고 닦아야 하는가|참된 수행자는 이런 잘못이 없어야 한다|당신이 출가한 동기는 무엇인가|[제11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一] 네 가지 정려, 여덟 가지 해탈|정혜등지
제3강
성인의 정의 경계|입정에 잘 이끌어 들이는 등인지|초정려를 이루어 다섯 가지 심리에서 벗어나다|선정 수행의 기쁨이 일으키는 마장|기쁨 때문에 근심 때문에 짓는 악업|청정한 환희, 안락한 경안을 얻어야 진정한 출가인|소연을 자세하고 바르게 사유하라|선정을 먼저 닦는가 공성을 먼저 관하는가
제4강
정을 닦을 때 마음의 다섯 가지 장애|자기 마음의 탐욕을 점검하라|여러분도 성깔이 대단하십니까|누가 번뇌하지 않고 혼침하지 않는가|마음이 흐리멍덩하고 어둡고 어리석으며|마음이 흔들리고 돌이켜 후회하고
제5강
마음에 의혹이 많아 망설이고 의심하고 재고|탐욕은 바르지 않은 사유를 먹고 자란다|아름답고 훌륭한 태도에 마음이 일어나다|어떻게 탐욕을 없애는가|왜 수행의 첫걸음이 작의인가|일곱 가지 근본 작의와 나머지 사십 가지 작의|의식이 하나의 경계를 만들어 내는 비발사나 수행법|왜 백골을 관하지 못하는가|일념을 비워 공의 경계에 머무는 사마타 수행법|지 위주의 수행, 관 위주의 수행
제6강
영상작의를 수습하는 관건|여러분은 경안을 얻었습니까|덮이고 묶인 마음이 청정을 따라 해탈에 이른다|반주삼매 수행, 괴로움을 스승으로 삼다|성문중의 여러 가지 작의|독각승과 보살승의 작의|사십 가지 작의를 사유하여 귀납하다|수행에도 자본이 필요하다|정 수행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제7강
심신의 안팎이 더러워졌다|색신에 의지하여 작의하다|작의는 색신에 영향을 준다|세상의 사유 습성을 버리고 자기 심리를 점검하라|일체 번뇌가 뒤따르고 얽어매고 있으니|정방편상 사방편상 광명상 관찰상에 대하여|모든 탐욕상을 다스릴 수 있는 현선정|정에 들어가고 정에 머무르고 정에서 나오다|정을 닦는 삼십이상을 귀납하면 소연상 하나
제8강
[제12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二] 바른 수행의 길은 모두 작의이며 정사유|정을 이루는 네 가지 힘, 인력 방편력 설력 교수력|선정 수행을 좋아하나 출리의 방편을 모르는 수행자|외도의 지견으로 선정을 닦는 수행자|교만하고 의심에 기대어 선정에 들어가는 수행자|선정 수행의 근기가 다르다|어떻게 무루과의 정의 경계를 수행하는가|수련에는 진퇴가 있고 방법에는 결택이 있다
제9강
심성의 청정이 원만해지고 다시 정을 닦다|정려를 훈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정에 들어가고 자재해도 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해탈해도 업의 과보는 남아 있다|약간의 애와 욕이라도 떠나지 않으면|해탈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팔해탈의 첫 번째, 욕계의 욕은 떠났으나 색계의 욕은 남아 있다|욕계의 빛과 색을 이용해 욕을 떠나는 수행|팔해탈의 둘에서 여덟까지|수련이 경계에 도달했을 때의 능력|무엇이 공성을 증도하는 것인가
제10강
심력이 전화하기만 하면 완성된다|역시 부동심이다|망념이 없고 상에 집착이 없는 수행법|무상정에 들어가는 두 가지 방법|무상 평정에 이를 때까지 채찍질하고 면려한다|과위를 증득하였음을 알다|공, 무상, 무원, 심사를 다시 말하다|유심유사, 무심유사, 무심무사의 삼마지|[제13권 本地分中三摩?多地第六之三] 비구 성문도의 필수 과목, 삼매 지관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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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무엇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허약한 것인가.
도를 구하고 싶은 욕망심이 없는 것입니다.
출가해서 수행을 하든 집에서 부처님을 배우든 항상 사흘은 물고기를 잡고 이틀은 그물을 말리는 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불경을 강독한다는 말을 들으면 꼭 가지만 그때마다 반드시 괴로워합니다.
때로는 듣기는 들었지만 그 마음이 허약하고 부족하며 해낼 수 있는 힘이 없어서, 한평생 불경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p.38
마음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듣고는 바로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이 “망념하는 과실”이니,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머리는 부모가 준것이고 본래부터 그리 좋지 않다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쓰려고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이 말을 자세히 연구해 보십시오.
총명한 사람은 한 번 들으면 기억합니다.
저는 둔해서 백 번 더 읽고 성공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함은 서투름을 채울 수 있다는 “근능보졸”이 네 글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 p.48
도를 깨달으면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가.
도를 깨달은 이후가 수도하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 까닭에 선종의 오조는 육조에게, “본성을 보지 못하면 불법을 닦아도 무익하다”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불법을 닦아도 무익하다고 했을까요? 예를 들어 부처님께 절하고 불경을 외우는 것은 모두 수행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그저 가행위를 수행하는 초보에 불과합니다.
바른 수행은 계로부터 정에 이르고 혜에 이르는 것으로, 정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마지가 정혜의 중심입니다.
--- p.128
무엇이 정의 경계인가, 정의 경계는 어떻게 세우는가.
지금 일반인들은 타좌를 하면서 배꼽을 지키거나 눈으로 빛을 마주하거나 호흡에 주의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회계가 되어 하나 둘 셋 호흡을 세는데, 마치 회계가 돈을 세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헤아리고는 또 흘려버리고 또다시 붙잡아 오면서 이것을 수식관이라고 합니다.
혹은 신체의 기맥을 닦거나 진언을 외웁니다! 도무지 정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 심념조차 청정하지 못하면서 그러고도 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 p.131
불법에 대한 이해만으로 해탈할 수 있겠는가.
이론상으로 청정을 알았다면 그것은 이론이니 단지 지견 상의 해탈일 뿐 수련으로서 해탈은 아닙니다.
정을 이루지 못했다면 참된 청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학불자들은 출가든 재가든 할 것 없이 말끝마다 공을 들먹이지만 걸음마다 유를 걸어갑니다.
하나같이 공(空)을 말하지만 성질이 나면 심념이 바로 흔들립니다.
이것이 무슨 공입니까? 경계를 만나더라도 해탈하지도 못하고 또 비우지도 못합니다.
왜 이 모양일까요? 정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에는 이런 갖가지 방편이 있지만 중요한 점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정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 p.160~161
듣기는 하나 스스로 참구하지 않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여러분 같은 경우는 여기에서 배우면서 날마다 저를 둘러싸고 스승님이 잘하시네, 스승님이 어떠시네 하지만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어도 다들 입으로는 “네”라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오늘 와서 묻는 것도 이 문제이고 내일 와서 묻는 것도 이 문제입니다.
떠나고 삼사 년 후에 다시 와서 묻는 것도 역시 이 문제이니, 지혜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 p.206
무엇이 눈 귀 코 혀 몸 뜻을 함부로 하는 것인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타좌를 하더라도 곧 혼미해집니다.
눈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도 타좌를 하면 혼침해지는데, 귀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기공 수련을 하는데 너무 많이 수련해도 혼침해지기 쉽습니다.
호흡하느라 너무 힘을 쓰고 그것이 오래되면 기가 부족해서 혼침해지기 쉬운데, 코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비구가 타좌를 하기만 하면 곧 혼침에 빠지자 세존께 가서 물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산중에 풀(담배)이 있으니 그것으로 고단함을 풀 수 있다 했습니다.
--- p.184
인과와 윤회를 진정으로 믿는가.
부처님을 배우고 부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자신은 삼세인과와 육도윤회를 믿습니까? 믿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입을 벌려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말한다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
삼장십이부 대소승의 불법, 각 종파의 수지, 일체 방편과 성인 경계의 기초가 바로 삼세인과 육도윤회 위에 세워졌습니다.
--- p.208
제대로 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업력이 너무 무겁기 때문인데 그것이 삼세의 인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대로 관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반야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여러분의 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관할 수만 있다면 바로 성취합니다.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교리를 이야기하는 데는 막힘없이 능숙합니다.
하지만 진짜 수행을 이야기하면 조금의 능력도 없습니다.
--- p.219~221
부정관 백골관을 수행해도 왜 효과가 나지 않는가.
여러분이 부패한 시체를 많이 봤더라도, 대략 사흘 정도는 밥도 못 먹고 남녀 간의 애정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다시 사흘이 더 지나면 여러분 눈에는 예쁜 것은 여전히 예쁘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탐욕은 없애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직 소승법일 뿐인데, 소승법의 수행도 성취하지 못하면서 대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 p.224
정에 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도 오변행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정(定)에 들어가고 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러면 나무토막이나 진흙덩이와 똑같은데 어떻게 “불이란 깨어 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p.228~229
정을 이루었다면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선은 본래 사유수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정의 경계를 이루고 나서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정의 경계에서 불경 삼장십이부를 모두 익히고 조금 조금씩 연구합니다.
참선의 참(參)이 바로 사유이니, 전일하게 사유하고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참해야 합니다.
참해서 통했다면, 아! 원래가 이런 것이구나, 합니다.
이것이 크게 깨달은 것입니다.
--- p.247
영상을 붙잡아 둔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가 하나의 장면을 구상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환상이지만 화가는 이 영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은 대질의 작용을 지니고 있어서 심념이 멈추고 나면 서서히 제육의식이 멈추게 됩니다.
육식이 멈춘 후에는 의식이 청명해지는 단계에 도달하여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룹니다.
백골을 관하고 불상을 관하고 자륜을 관하는 것이 다 이러합니다.”
--- p.258
왜 지관쌍수가 중요한가.
정을 수행하고 지관을 쌍운한 후에는 오개의 탐진치만의라는 심리의 나쁜 문제들이 모두 가벼워지고 옅어집니다.
저는 늘 여러분을 관찰하는데 여러분의 현재 행위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오개가 갈수록 덮이고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목화솜을 덮었는데 그 위에 다시 석회 덮개를 더하는 격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수련을 해서 이 시기에 도달하면, 이 오개는 모두 자신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에 있어서 그릇된 견해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개의 문제가 없어지면 마음은 바로 해탈에 이릅니다.
--- p.268
마음이 원만하고 청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행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며 그저 타좌나 하고 학리 사상이나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세간을 초월하여“등지”에 증입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이 목적에 이르고자 하면 먼저 사선팔정의 크고 작은 경계에서 반드시 원만 청정한 백정업에 도달해야 합니다.(...) 심성의 청정한 측면이 모두 원만해지면 그것이 바로 백업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곳에 조금의 잡염이나 악념도 없이 오직 지선만 있습니다.
--- p.392
무엇이 범부정인가.
수많은 사람이 타좌를 해도 정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혼란의 경계에 있으면서 스스로는 정을 닦고 있다고 하니, 저는 그저 웃고 맙니다.
하지만 이 또한 범부정의 일종으로 무기과를 얻게 되니, 기억력이 갈수록 나빠지고 지혜 또한 나빠지며 배도 뚱뚱해집니다.
그러니 절대로 주의하십시오.
정은 “이 곳과 이 때와 이 형편”으로, 어떤 종류의 정에 들어가려고 하면 바로 그 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p.399
왜 광명정을 닦고 각종 관행을 닦아야 하는가.
수행하고 청정하게 닦아서 자신의 심행을 바로잡아 고치고, 자신의 번뇌 망상을 다스려 자신의 업력을 되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정을 수행함으로써 업력을 전변시킬 수 있으니, 정을 닦는 “관행”이 자신의 업력을 고치고 자신의 번뇌를 끊을 수 있습니다.
도를 구하고 싶은 욕망심이 없는 것입니다.
출가해서 수행을 하든 집에서 부처님을 배우든 항상 사흘은 물고기를 잡고 이틀은 그물을 말리는 식입니다.
어떤 사람이 불경을 강독한다는 말을 들으면 꼭 가지만 그때마다 반드시 괴로워합니다.
때로는 듣기는 들었지만 그 마음이 허약하고 부족하며 해낼 수 있는 힘이 없어서, 한평생 불경을 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 p.38
마음을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듣고는 바로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이 “망념하는 과실”이니, 있다면 고쳐야 합니다.
머리는 부모가 준것이고 본래부터 그리 좋지 않다고 여러분은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머리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쓰려고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이 말을 자세히 연구해 보십시오.
총명한 사람은 한 번 들으면 기억합니다.
저는 둔해서 백 번 더 읽고 성공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함은 서투름을 채울 수 있다는 “근능보졸”이 네 글자를 기억해야 합니다.
--- p.48
도를 깨달으면 더 이상 수행하지 않아도 되는가.
도를 깨달은 이후가 수도하기에 딱 좋습니다.
그런 까닭에 선종의 오조는 육조에게, “본성을 보지 못하면 불법을 닦아도 무익하다”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불법을 닦아도 무익하다고 했을까요? 예를 들어 부처님께 절하고 불경을 외우는 것은 모두 수행입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그저 가행위를 수행하는 초보에 불과합니다.
바른 수행은 계로부터 정에 이르고 혜에 이르는 것으로, 정 중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마지가 정혜의 중심입니다.
--- p.128
무엇이 정의 경계인가, 정의 경계는 어떻게 세우는가.
지금 일반인들은 타좌를 하면서 배꼽을 지키거나 눈으로 빛을 마주하거나 호흡에 주의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회계가 되어 하나 둘 셋 호흡을 세는데, 마치 회계가 돈을 세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나절을 헤아리고는 또 흘려버리고 또다시 붙잡아 오면서 이것을 수식관이라고 합니다.
혹은 신체의 기맥을 닦거나 진언을 외웁니다! 도무지 정이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 심념조차 청정하지 못하면서 그러고도 정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 p.131
불법에 대한 이해만으로 해탈할 수 있겠는가.
이론상으로 청정을 알았다면 그것은 이론이니 단지 지견 상의 해탈일 뿐 수련으로서 해탈은 아닙니다.
정을 이루지 못했다면 참된 청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학불자들은 출가든 재가든 할 것 없이 말끝마다 공을 들먹이지만 걸음마다 유를 걸어갑니다.
하나같이 공(空)을 말하지만 성질이 나면 심념이 바로 흔들립니다.
이것이 무슨 공입니까? 경계를 만나더라도 해탈하지도 못하고 또 비우지도 못합니다.
왜 이 모양일까요? 정의 경계가 없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설법에는 이런 갖가지 방편이 있지만 중요한 점은 여전히 여러분에게 정을 닦으라는 것입니다.
--- p.160~161
듣기는 하나 스스로 참구하지 않는 것은 어떤 모습인가.
여러분 같은 경우는 여기에서 배우면서 날마다 저를 둘러싸고 스승님이 잘하시네, 스승님이 어떠시네 하지만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여러분에게 말해 주어도 다들 입으로는 “네”라고 하지만 실상은 하나도 제대로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오늘 와서 묻는 것도 이 문제이고 내일 와서 묻는 것도 이 문제입니다.
떠나고 삼사 년 후에 다시 와서 묻는 것도 역시 이 문제이니, 지혜라고는 조금도 없습니다.
--- p.206
무엇이 눈 귀 코 혀 몸 뜻을 함부로 하는 것인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타좌를 하더라도 곧 혼미해집니다.
눈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도 타좌를 하면 혼침해지는데, 귀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기공 수련을 하는데 너무 많이 수련해도 혼침해지기 쉽습니다.
호흡하느라 너무 힘을 쓰고 그것이 오래되면 기가 부족해서 혼침해지기 쉬운데, 코의 근문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비구가 타좌를 하기만 하면 곧 혼침에 빠지자 세존께 가서 물었습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산중에 풀(담배)이 있으니 그것으로 고단함을 풀 수 있다 했습니다.
--- p.184
인과와 윤회를 진정으로 믿는가.
부처님을 배우고 부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다면 자신은 삼세인과와 육도윤회를 믿습니까? 믿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입을 벌려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믿는다고 말한다면, 맹목적으로 믿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부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다면, 부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일입니다.
삼장십이부 대소승의 불법, 각 종파의 수지, 일체 방편과 성인 경계의 기초가 바로 삼세인과 육도윤회 위에 세워졌습니다.
--- p.208
제대로 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분의 업력이 너무 무겁기 때문인데 그것이 삼세의 인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대로 관하지 못하는 것은 여러분의 반야가 부족하기 때문이고 여러분의 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관할 수만 있다면 바로 성취합니다.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교리를 이야기하는 데는 막힘없이 능숙합니다.
하지만 진짜 수행을 이야기하면 조금의 능력도 없습니다.
--- p.219~221
부정관 백골관을 수행해도 왜 효과가 나지 않는가.
여러분이 부패한 시체를 많이 봤더라도, 대략 사흘 정도는 밥도 못 먹고 남녀 간의 애정도 그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다시 사흘이 더 지나면 여러분 눈에는 예쁜 것은 여전히 예쁘게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탐욕은 없애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아직 소승법일 뿐인데, 소승법의 수행도 성취하지 못하면서 대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 p.224
정에 들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도 오변행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정(定)에 들어가고 나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여기겠지만 그것은 틀렸습니다.
그러면 나무토막이나 진흙덩이와 똑같은데 어떻게 “불이란 깨어 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p.228~229
정을 이루었다면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하는가.
선은 본래 사유수입니다.
다만 여러분은 정의 경계를 이루고 나서 생각하지 않으면서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이 정의 경계에서 불경 삼장십이부를 모두 익히고 조금 조금씩 연구합니다.
참선의 참(參)이 바로 사유이니, 전일하게 사유하고 하나의 문제를 제대로 참해야 합니다.
참해서 통했다면, 아! 원래가 이런 것이구나, 합니다.
이것이 크게 깨달은 것입니다.
--- p.247
영상을 붙잡아 둔다는 것은 무엇인가.
화가가 하나의 장면을 구상하는 것과 같은데, 그것은 근본적으로 환상이지만 화가는 이 영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 영상은 대질의 작용을 지니고 있어서 심념이 멈추고 나면 서서히 제육의식이 멈추게 됩니다.
육식이 멈춘 후에는 의식이 청명해지는 단계에 도달하여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룹니다.
백골을 관하고 불상을 관하고 자륜을 관하는 것이 다 이러합니다.”
--- p.258
왜 지관쌍수가 중요한가.
정을 수행하고 지관을 쌍운한 후에는 오개의 탐진치만의라는 심리의 나쁜 문제들이 모두 가벼워지고 옅어집니다.
저는 늘 여러분을 관찰하는데 여러분의 현재 행위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오개가 갈수록 덮이고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목화솜을 덮었는데 그 위에 다시 석회 덮개를 더하는 격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수련을 해서 이 시기에 도달하면, 이 오개는 모두 자신을 검증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임에 있어서 그릇된 견해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오개의 문제가 없어지면 마음은 바로 해탈에 이릅니다.
--- p.268
마음이 원만하고 청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수행은 말로만 하는 신앙이 아니며 그저 타좌나 하고 학리 사상이나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세간을 초월하여“등지”에 증입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이 목적에 이르고자 하면 먼저 사선팔정의 크고 작은 경계에서 반드시 원만 청정한 백정업에 도달해야 합니다.(...) 심성의 청정한 측면이 모두 원만해지면 그것이 바로 백업이니,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곳에 조금의 잡염이나 악념도 없이 오직 지선만 있습니다.
--- p.392
무엇이 범부정인가.
수많은 사람이 타좌를 해도 정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가 혼란의 경계에 있으면서 스스로는 정을 닦고 있다고 하니, 저는 그저 웃고 맙니다.
하지만 이 또한 범부정의 일종으로 무기과를 얻게 되니, 기억력이 갈수록 나빠지고 지혜 또한 나빠지며 배도 뚱뚱해집니다.
그러니 절대로 주의하십시오.
정은 “이 곳과 이 때와 이 형편”으로, 어떤 종류의 정에 들어가려고 하면 바로 그 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 p.399
왜 광명정을 닦고 각종 관행을 닦아야 하는가.
수행하고 청정하게 닦아서 자신의 심행을 바로잡아 고치고, 자신의 번뇌 망상을 다스려 자신의 업력을 되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정을 수행함으로써 업력을 전변시킬 수 있으니, 정을 닦는 “관행”이 자신의 업력을 고치고 자신의 번뇌를 끊을 수 있습니다.
--- p.418
출판사 리뷰
유가사지론은
유식학의 대표적 논서다
『유가사지론』은 대승 후기 불학에 속하는 유식법상 계통의 대표적 논서다.
전기 불학에 속하는 용수보살의 반야중관 계통과 함께 대승의 두 축이다.
4세기 인도에서 저술되고 7세기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 유학 후 귀국길에 가져와 20여 명의 학승과 함께 1년여를 한역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 논서는 부파불교와 대승경전에 설해진 여러 교의를 수집 분류 종합하여 대승의 교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편찬된 것이라 평가한다.
『유가사지론』은 요가 수행으로 성취를 이룬 유가사瑜伽師의 실천 범위地를 17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 강의는 그중 가장 중요한 성문지와 삼마희다지에 집중했다.
‘성문지’에서는 소승 성문의 조건과 수행의 전 과정이 펼쳐진다.
성문이 무엇인지, 바른 출가란 어떤 것인지, 어떤 인연과 자질이 있어야 하는지, 수행의 조건은 무엇이고 수행자의 위의는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사마타와 비발사나는 어떻게 닦는지, 사선팔정은 어떤 경계이고 번뇌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 등 출가자나 재가자의 수행에 필요한 갖가지 개념이 논리 정연하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삼마지’에서는 삼매(삼마지, 定)를 닦을 때 일어나는 각종 마음의 장애부터 지관 수행의 원리와 방법을 하나하나 드러낸다.
경문을 해석하는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내면에 깃들어 있는 욕망을 보게 되고, 자기 마음이 왜 불안한지, 어리석고 믿지 못하는 마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일을 하든 수행을 하든 왜 이틀은 물고기 잡고 사흘은 그물을 말리는 상황이 되풀이되는지 저절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유가사지론은
수행과 증득을 위한 교리다
저자는 이 대론이 “사람의 생명에서부터 물리세계 및 물질세계와 온 우주까지” 심층적으로 언급하고, 또 한 사람이 “어떻게 심신을 수지하여 무상(無上)의 도를 증득하는지를” 논증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소승과 대승의 수지 방법을 나누었으며, 성불에 이르기까지 총 백 권으로 된 논서”라고 『유가사지론』의 의의를 밝혔다.
“한 권을 손에 넣으면 한평생의 수지가 충분”하다고 하며 『유가사지론』을 모른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으니 수행은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교리도 보기 귀찮아하고 오로지 타좌만 하려고 하면서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백 권의 경전을 분명하게 연구하면 전체 불법의 체계와 이론과 수지, 현교와 밀교의 수행법까지 모두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저자가 『유가사지론』을 강의한 이유이겠다.
교리와 수행은 별개가 아니다.
수행해도
왜 삼매를 이루지 못하는가
이 강의는 “왜 여러분은 수행하고 타좌를 해도 정(삼매)을 이루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무 가지 잘못이 없어야 한다.
‘도반이 없고 밝은 스승이 없고 마음이 부족한 잘못, 듣기만 하고 공경해 주기를 바라고 족함을 모르는 잘못, 쓸데없는 일에 바쁘고 나태한 잘못, 트집 잡고 성질부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잘못, 함부로 먹고 많이 자고 눈 귀 코 혀 몸 뜻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 지관 수행의 방법을 몰라 일으키는 잘못’ 등이다.
이 중 하나는 고사하고 거의 모든 게 문제다.
더욱이 이 스무 가지를 다 갖추었어도 정을 이룬 것이 아니다.
“이 정의 경계는 초선정의 전주(前奏)”일 뿐이니 그래서 “정을 수행해서 성취하고자 하면 초선정이 그처럼 어렵다”고 한 것이다.
저자는 어느 종파를 불문하고 “진정으로 초선정을 이룬 사람은 수십 년 이래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도 한다.
강의 청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출가승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반어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두렵지요? 이 길을 걸어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깨달음이 지나치게 대중화된 시절, 동서양 할 것 없이 각종 명상이 상업화된 오늘날,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한 참된 지식을 『유가사지론 강의』로 만나게 될 것이다.
작의, 영상소연,
지관 수행이 핵심이다
이번 강의에서 공들여서 기본부터 설명한 개념이 작의와 영상소연, 이를 통한 지관 수행이다.
‘작의作意’는 의식 집중, 주의력과 같은 의미다.
‘영상소연’은 영상影像이 있는 인식 대상이고, ‘지관止觀’은 알려진 대로 사마타와 위파사나 수행이다.
모든 수행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시작이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도록 오롯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이치에 맞는[如理]’ 작의여야 한다는 것.
무엇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빛을 대상으로 진언을 대상으로 불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화두나 십이연기 같은 법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염불, 관상, 호흡, 화두, 선정 수행 등이 모두 이치에 맞는 작의이고 이것이 모든 수행법의 원리다.
여기서 대상으로 하는 영상의 분별 유무에 따라 지와 관 수행법으로 나뉜다.
지와 관을 함께 닦아야 정과 혜에 이를 수 있다.
저자는 “수행의 첫걸음은 먼저 작의”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불가에 귀의한 사람은 왜 계율을 받아야 합니까? 일개 범부가 계율의 약속을 받지 않으면 마음속에 계(戒)가 없기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계를 받으면 의식으로 하여금 계의 종성을 심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작의”라는 것이다.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 한마디를 외우는 것 혹은 진언 하나를 외우는 것이” 모두 작의이고, “수식관(數息觀)을 수행하는 것 역시 작의이며, 팔만사천법문의 수행법이 모두 작의로부터 시작”된다.
“작의심을 세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먼저 작의하고 거기다가 작의라는 이 일념이 견고해야” 수행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치도 참구하지 않고 경전도 읽지 않고 망상 속에 있기 때문에 수행이 힘을 얻지 못한다.
수행으로
대승의 이치를 드러낸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작의로 만든 영상과 정신병적 환상이나 약물에 의한 환각은 무엇이 다를까.
“당연히 같지 않습니다.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영문도 모르게 찾아와서 자신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의문도 일어난다.
자신의 의식에서 만들어 낸 영상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유분별영상을 사용하는 관법(觀法)은 아주 많습니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면 약사여래 혹은 백의관음보살을 관하면 됩니다.
어떤 고지식한 사람들은 제가 아무리 말해도 관음의 영상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제육의식에 있는 분별영상의 관음, 의식의 경계로 떠오른 관음의 영상을 관하는 것입니다.
버들가지를 든 관음이 정수(淨水)를 여러분의 정수리에 뿌리는 것을 관하면 낫지 않는 병이 없습니다.”
이처럼 의식을 바꿈으로써 일어나는 변화가 구두선처럼 여겼던 이치와 부합하게 된다.
“여러분이 ‘이것은 저의 작의인데 관음보살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자타불이(自他不二)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관음보살이고 관음보살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그러한 관음보살이나 약사여래를 작의해서 관(觀)하기만 하면, 물을 뿌리기만[灌] 하면 불보살의 힘이 여러분을 가피(加被)해서 낫지 못할 병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단하다고 아무리 말해 주지만 여러분의 신심(信心)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알아두십시오.
그것에 공(空)하라고 하면 공이 되고 유(有)하라고 하면 유가 되어야 연기성공(緣起性空) 성공연기(性空緣起)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법사일 뿐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문의 수행이 “연기의 본성은 공이고 공의 본성은 연기”라는 대승의 이치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저자의 이번 강의는 출가나 재가 수행자에게는 ‘바른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지침을, 불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수행의 실제 모습’을 기초부터 성불의 과정까지 경험과 논리와 증거로 펼쳐진다.
유식학의 대표적 논서다
『유가사지론』은 대승 후기 불학에 속하는 유식법상 계통의 대표적 논서다.
전기 불학에 속하는 용수보살의 반야중관 계통과 함께 대승의 두 축이다.
4세기 인도에서 저술되고 7세기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 유학 후 귀국길에 가져와 20여 명의 학승과 함께 1년여를 한역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 논서는 부파불교와 대승경전에 설해진 여러 교의를 수집 분류 종합하여 대승의 교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편찬된 것이라 평가한다.
『유가사지론』은 요가 수행으로 성취를 이룬 유가사瑜伽師의 실천 범위地를 17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이 강의는 그중 가장 중요한 성문지와 삼마희다지에 집중했다.
‘성문지’에서는 소승 성문의 조건과 수행의 전 과정이 펼쳐진다.
성문이 무엇인지, 바른 출가란 어떤 것인지, 어떤 인연과 자질이 있어야 하는지, 수행의 조건은 무엇이고 수행자의 위의는 어떠해야 하는지부터 사마타와 비발사나는 어떻게 닦는지, 사선팔정은 어떤 경계이고 번뇌에서 어떻게 벗어나는지 등 출가자나 재가자의 수행에 필요한 갖가지 개념이 논리 정연하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삼마지’에서는 삼매(삼마지, 定)를 닦을 때 일어나는 각종 마음의 장애부터 지관 수행의 원리와 방법을 하나하나 드러낸다.
경문을 해석하는 강의를 따라가다 보면 내면에 깃들어 있는 욕망을 보게 되고, 자기 마음이 왜 불안한지, 어리석고 믿지 못하는 마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일을 하든 수행을 하든 왜 이틀은 물고기 잡고 사흘은 그물을 말리는 상황이 되풀이되는지 저절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유가사지론은
수행과 증득을 위한 교리다
저자는 이 대론이 “사람의 생명에서부터 물리세계 및 물질세계와 온 우주까지” 심층적으로 언급하고, 또 한 사람이 “어떻게 심신을 수지하여 무상(無上)의 도를 증득하는지를” 논증한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소승과 대승의 수지 방법을 나누었으며, 성불에 이르기까지 총 백 권으로 된 논서”라고 『유가사지론』의 의의를 밝혔다.
“한 권을 손에 넣으면 한평생의 수지가 충분”하다고 하며 『유가사지론』을 모른다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으니 수행은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교리도 보기 귀찮아하고 오로지 타좌만 하려고 하면서 그것이 바로 수행이라고 여기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백 권의 경전을 분명하게 연구하면 전체 불법의 체계와 이론과 수지, 현교와 밀교의 수행법까지 모두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저자가 『유가사지론』을 강의한 이유이겠다.
교리와 수행은 별개가 아니다.
수행해도
왜 삼매를 이루지 못하는가
이 강의는 “왜 여러분은 수행하고 타좌를 해도 정(삼매)을 이루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무 가지 잘못이 없어야 한다.
‘도반이 없고 밝은 스승이 없고 마음이 부족한 잘못, 듣기만 하고 공경해 주기를 바라고 족함을 모르는 잘못, 쓸데없는 일에 바쁘고 나태한 잘못, 트집 잡고 성질부리고 마음을 쓰지 않는 잘못, 함부로 먹고 많이 자고 눈 귀 코 혀 몸 뜻을 지키지 못하는 잘못, 지관 수행의 방법을 몰라 일으키는 잘못’ 등이다.
이 중 하나는 고사하고 거의 모든 게 문제다.
더욱이 이 스무 가지를 다 갖추었어도 정을 이룬 것이 아니다.
“이 정의 경계는 초선정의 전주(前奏)”일 뿐이니 그래서 “정을 수행해서 성취하고자 하면 초선정이 그처럼 어렵다”고 한 것이다.
저자는 어느 종파를 불문하고 “진정으로 초선정을 이룬 사람은 수십 년 이래 아직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고도 한다.
강의 청중의 다수를 차지하는 젊은 출가승들을 분발시키기 위한 반어법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을 수행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두렵지요? 이 길을 걸어가기란 너무도 어렵습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깨달음이 지나치게 대중화된 시절, 동서양 할 것 없이 각종 명상이 상업화된 오늘날, 수행이 무엇인지에 대한 참된 지식을 『유가사지론 강의』로 만나게 될 것이다.
작의, 영상소연,
지관 수행이 핵심이다
이번 강의에서 공들여서 기본부터 설명한 개념이 작의와 영상소연, 이를 통한 지관 수행이다.
‘작의作意’는 의식 집중, 주의력과 같은 의미다.
‘영상소연’은 영상影像이 있는 인식 대상이고, ‘지관止觀’은 알려진 대로 사마타와 위파사나 수행이다.
모든 수행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시작이고, 마음이 어지럽지 않도록 오롯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이 ‘이치에 맞는[如理]’ 작의여야 한다는 것.
무엇이 이치에 맞는 것인가.
빛을 대상으로 진언을 대상으로 불상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화두나 십이연기 같은 법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염불, 관상, 호흡, 화두, 선정 수행 등이 모두 이치에 맞는 작의이고 이것이 모든 수행법의 원리다.
여기서 대상으로 하는 영상의 분별 유무에 따라 지와 관 수행법으로 나뉜다.
지와 관을 함께 닦아야 정과 혜에 이를 수 있다.
저자는 “수행의 첫걸음은 먼저 작의”에서 시작한다고 했다.
“불가에 귀의한 사람은 왜 계율을 받아야 합니까? 일개 범부가 계율의 약속을 받지 않으면 마음속에 계(戒)가 없기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스스로 알지 못합니다.
계를 받으면 의식으로 하여금 계의 종성을 심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작의”라는 것이다.
“염불을 하면 아미타불 한마디를 외우는 것 혹은 진언 하나를 외우는 것이” 모두 작의이고, “수식관(數息觀)을 수행하는 것 역시 작의이며, 팔만사천법문의 수행법이 모두 작의로부터 시작”된다.
“작의심을 세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먼저 작의하고 거기다가 작의라는 이 일념이 견고해야” 수행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치도 참구하지 않고 경전도 읽지 않고 망상 속에 있기 때문에 수행이 힘을 얻지 못한다.
수행으로
대승의 이치를 드러낸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작의로 만든 영상과 정신병적 환상이나 약물에 의한 환각은 무엇이 다를까.
“당연히 같지 않습니다.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하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영문도 모르게 찾아와서 자신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의문도 일어난다.
자신의 의식에서 만들어 낸 영상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유분별영상을 사용하는 관법(觀法)은 아주 많습니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면 약사여래 혹은 백의관음보살을 관하면 됩니다.
어떤 고지식한 사람들은 제가 아무리 말해도 관음의 영상조차 없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제육의식에 있는 분별영상의 관음, 의식의 경계로 떠오른 관음의 영상을 관하는 것입니다.
버들가지를 든 관음이 정수(淨水)를 여러분의 정수리에 뿌리는 것을 관하면 낫지 않는 병이 없습니다.”
이처럼 의식을 바꿈으로써 일어나는 변화가 구두선처럼 여겼던 이치와 부합하게 된다.
“여러분이 ‘이것은 저의 작의인데 관음보살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자타불이(自他不二)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관음보살이고 관음보살이 바로 여러분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그러한 관음보살이나 약사여래를 작의해서 관(觀)하기만 하면, 물을 뿌리기만[灌] 하면 불보살의 힘이 여러분을 가피(加被)해서 낫지 못할 병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단하다고 아무리 말해 주지만 여러분의 신심(信心)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알아두십시오.
그것에 공(空)하라고 하면 공이 되고 유(有)하라고 하면 유가 되어야 연기성공(緣起性空) 성공연기(性空緣起)라고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분은 그저 입으로만 떠드는 법사일 뿐 쓸모가 없습니다.”
이것이 성문의 수행이 “연기의 본성은 공이고 공의 본성은 연기”라는 대승의 이치로 드러나는 과정이다.
저자의 이번 강의는 출가나 재가 수행자에게는 ‘바른 수행의 길’로 나아가는 지침을, 불법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는 ‘수행의 실제 모습’을 기초부터 성불의 과정까지 경험과 논리와 증거로 펼쳐진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1년 11월 25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488쪽 | 774g | 147*219*30mm
- ISBN13 : 9788960518964
- ISBN10 : 8960518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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