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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강의│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Description
책소개
“언어의 영구 혁명이 발하는 광휘 속에서
권력-바깥의 말을 들을 수 있게 하는 이 이로운 속임수,
말하자면 슬쩍 따돌리는 동작, 그 멋진 술책을 저는 제 방식대로
문학이라 부릅니다.”


프랑스 기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롤랑 바르트의 콜레주드프랑스 취임 연설 「강의」, 그리고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자크 데리다가 발표한 애도의 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을 묶은 책 『강의?롤랑 바르트의 죽음들』(김예령 옮김)이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하나는 바르트의 시작을, 다른 하나는 바르트의 끝을 계기로 쓰인 두 텍스트는 바르트의 사유가 이동해온 궤적을 짚어본다는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닌다.

바르트는 지적 활동 초기엔 구조주의에 전념했으나, 텍스트 분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과도기를 거쳐 후기에 이르러서는 환원적 체계에 대항하며 기호들의 유희에 뛰어드는 사상적 전환을 이룬다.
이 같은 이동 작업은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에서 그의 책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인용하는 데리다에 의해 조명되기도 한다.
간결하고도 깊이 있는 두 텍스트 속에서 이러한 교차점을 읽어내는 일은 바르트와 데리다가 나눈 학문적 우정을 가늠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바르트와 데리다를 서로 다른 각도로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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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강의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옮긴이 해제: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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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1

책 속으로
무릇 언어 수행으로서 언어체는 반동적인 것도, 진보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만 파시스트적일 뿐입니다.
알다시피 파시즘이란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도록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의」 중에서

존재하는 욕망들의 수만큼 많은 언어들을.
이는 여태까지 어떤 사회도 다수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인 제안입니다.
한 언어가, 그것이 무엇이 됐든 다른 언어를 억압하지 않고, 장차 도래할 주체가 아무런 자책감이나 억압 없이 언어의 두 심급을 마음대로 즐길 줄 알며 법이 아니라 배덕에 의해 이 언어 또는 저 언어를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32

텍스트로의 끊임없는 귀환은, 또 기호 작용의 실천 중 가장 복합적인(이미 다 만들어진 기호들로부터 출발해 작동하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글쓰기로의 규칙적인 투신은 기호학으로 하여금 차이들에 대해 탐구하도록 만듭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호학이 교조화하고 ‘장악’하지 않도록, 그것이 실제와 달리 스스로를 보편 담론으로 여기지 않도록 막아줍니다.
역으로, 텍스트에 실리는 기호학의 시선은 문학을 에워싸고 압박하는 저 뇌동하는 말로부터 문학을 구제하기 위해 우리가 흔히 기대는 신화, 곧 순수한 창조성이라는 신화를 거부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듭니다.
결국 기호란 기대에 더 잘 어긋나기 위해서 생각되는 것, 마땅히 그러기 위해서 다시 생각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p.43

옛 가치들은 더 이상 전수되지도, 유통되지도, 자극을 주지도 못합니다.
문학은 신성함을 박탈당했고, 제도들은 이제 문학을 보호하거나 문학을 인간의 암묵적 본보기라 강요하기에는 무력합니다.
하지만 글쎄요, 문학은 파괴된 게 아닙니다.
더 이상 감호되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문학을 향해 가야 할 순간입니다.
아마도 문학기호학은 상속자 부재로 인해 자유로워진 풍경 속으로 상륙하도록 허용하는, 바로 그런 여행이 될 것입니다.
거기엔 이제 막아서는 천사도, 용도 없겠지요.
그리하여 시선은 여전히 배덕함을 지닌 채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기의의 유효기간이 지나 추상화되고 만 사물들로 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몰락인 동시에 예언적 순간, 부드러운 종말론의 순간, 가장 거대한 즐김의 역사적 순간이 될 테지요.

--- p.49

우리가 저 스스로 아는 것을 가르치는 나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다른 시절이 찾아오니, 그 시기에 우리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이를 일컬어 탐구한다고 하지요.
아마도 지금은 또 다른 경험의 시기가 온 듯합니다.
바로 익힌 것을 잊는 나이, 그동안 우리가 거쳐온 지식과 교양과 신념의 침전물에 망각이 가하는 예측 불허의 재편성을 그대로 작동하도록 놓아두는 시기가 그것입니다.
생각건대 이 경험에는 너무나 유명하고도 시대에 뒤처진 이름이 있군요.
이제 저는 바로 그 어원의 기로에 서서, 감히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이름을 채택하고자 합니다.
지혜, 다시 말해 전혀 없는 권력, 약간의 지식, 약간의 현명함, 가능한 한 최대치의 맛이라는 뜻이지요.

--- p.54~55

그의 기법.
스투디움/푼크툼 쌍을 드러내고 작동시키고 해석 하는 동시에, 자신이 행하는 바를 우리에게 들려주며 노트들을 전달하는 그의 방식.
그것에서 이내 우리는 음악을 듣게 되리라.
이 같은 기법은 정녕 그의 방식이다.
스투디움/푼크툼의 대립, 빗금으로 표시되는 외견상의 대비.
[...] 이 (스투디움/푼크툼이라는) 외견상의 대립은 두 개념 사이에 일어나는 모종의 구성을 금지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하니 말이다.
이 ‘구성’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의미하며, 더구나 그 둘 역시 다시 타협한다.
우선 1) 넘나들 수 없는 경계로 분리된 두 개념이 상호 중재를 건네고 하나가 다른 하나와 더불어 타협하니, 우리는 거기서 이내 환유적 조작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중에서

두 개의 배반, 불가능한 선택.
한편에는 오로지 자기에게만,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만 귀착되는 것은 일절 말하지 않는 방식이 있다.
[...] 그 반대편에는, 롤랑 바르트에게 건네는 바 혹은 그에 대해 하는 말이 정말로 그의 상대방, 즉 살아 있는 친구로부터 오게끔 일체의 인용과 동일시, 하다못해 비교마저 전적으로 피하는 방식이 있다.
그 경우에도 우리가 그를 사라지게 할 위험은 마찬가지다.
이 모든 건 죽음에 죽음을 더해 무례하게 죽음을 복수화하는 일이랄까.
남는 길은 결국 그 둘을 동시에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이다.
즉 한쪽의 배신을 다른 한쪽의 배신으로 교정하는 일.
한쪽의 죽음으로부터 다른 한쪽의 죽음으로.
바로 거기서 오는 불안이 내게 하나의 복수형으로 글을 시작하도록 명령한 것일까?
--- p.85~86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이 복수형의 다소 무례한 난폭함 때문에 내가 유일한 이에게 대항을 시도했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으리라.
내가 그의 죽음을 피하려, 부정하려, 지우려 들었다고.
또 보호나 항의의 표시로, 그의 죽음을 원망하며 그것을 다름 아닌 스투디움적 환유의 과정에 내주고 말았다고.
어쩌면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유일한 것을 복수화하지 않고서, 그가 지닌 가장 대체 불가한 것, 즉 그 자신의 죽음까지도 일반화하지 않고서, 어떻게?
--- p.118~19

그가 불가능하다고 한 ‘나는 죽었다’라는 언표 행위는 혹시 그가 다른 대목에서 유토피아적이라 부르며 불러오려 한 체제에 속하는 것 아닐까? 또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유토피아는 하나의 환유가 이미 나를 스스로와의 관계 속에 작동시키는 바로 그 장소에 놓이는 것 아닐까, 나가 다른 무엇도 아닌, 오로지 지금 여기에 현전하여 말하는 자만을 지시할 때의 바로 그 장소에.
--- p.135

출판사 리뷰
「강의」: 언어의 유토피아들을 향해

따라서 이동한다는 것은 다음의 사실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 가는 일, 혹은 한층 더 급진적으로 표현하자면, 부화뇌동하는 권력이 자신이 전에 쓴 것을 이용하고 예속시키는 경우 그것을 공식적으로 버리는 일.
(p.
34)

「강의」는 1977년 1월 7일 롤랑 바르트가 콜레주드프랑스의 문학기호학 교수직에 부임해 첫 개강을 맞아 발표한 강연문이다.
바르트의 콜레주드프랑스 부임은 학자와 학생, 일반 청중과 기자 들로 첫날 강의실을 가득 채울 만큼 큰 관심을 모았으며, 그 열기는 바르트가 1980년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진행한 세 강의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중성’ ‘소설의 준비’로도 이어졌다.
자신의 학문적 여정을 요약·정리하고 콜레주드프랑스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 된 이 강연문에서 그는 언어가 말하도록 강제하고 의미를 고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파시스트적”(p.
20)이라는 논쟁적 발언을 던진다.
그만큼 20세기 프랑스 지식 사회의 주요 쟁점이었던 언어와 권력 간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우리의 진짜 투쟁”은 권력‘들’에 대항하는 데 있다고 역설하며, 언어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만큼 언어를 속이는 술책으로서 문학을 상정한다.

1530년 설립되어 창립 초기부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교육을 지향해온 콜레주드프랑스는 권력 바깥에 놓이는 특권적 장소로 여겨진다.
이곳의 강단에 서기 위해서는 한림원과 콜레주드프랑스 소속 교수의 추천을 받아야 하며, 바르트는 1970년부터 콜레주드프랑스에 재직 중이던 미셸 푸코의 추천을 받았다.
그런데 이는 당시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었다.
결핵으로 인해 “공식 학위를 갖”지 못했던 데다, 고전문학과 수사학을 비롯해 언어학, 기호학 등 동시대의 여러 이론을 횡단하며 전통적 제도 바깥에서 글쓰기를 실천했던 바르트의 스타일은 제도 비평계와 대학 강단의 의구심을 불러왔다.
이 같은 긴장 속에서 제출된 「강의」는 ‘에세이만 쓰는 이,’ 모호한 자, 어느 장소나 체계에서든 미묘하게 흔들리는 주체로서 바르트가 조성하는 물음표의 작고 부드러운 저항력을 담고 있다.

이 글에서 바르트는 언어의 해방 공간, 유토피아를 어떻게 창안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인간이 언어 바깥으로 완전히 나갈 수 없다면, 반대로 욕망의 개별성과 다수성에 따라 무수히 뻗어나가고 움직이는 말들의 공간, 언어의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언어체의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언어체로 회수”(p.
32)된다는 바르트의 지적처럼, 권력에 대항하는 시도는 곧 권력에 의해 포섭되기 마련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들에게는 고집스럽게 스스로를 이동시키는 일, 자신의 시도가 권력에 이용당한다면 그것을 버리는 일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권력과 제도 바깥에 놓이는 콜레주드프랑스에서조차 예외가 아니며, 따라서 바르트는 말한다.
“저는 이 같은 강의를 시작할 때는 늘 기꺼이 환상에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진실되게 믿고 있습니다.”(p.
52) 1977년에서 1980년까지 콜레주드프랑스에서 바르트의 ‘강의’를 수강한 청중은 이처럼 유토피아로 부단히 이동하는 현장에 가담한 셈이다.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 세상을 떠난 친구와 나누는
무한한 대화의 약속, 애도


이 책의 두번째 텍스트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은 롤랑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81년 자크 데리다가 『포에티크』지에 발표한 애도의 글이다.
바르트를 향한 애도의 글을 시작으로 데리다는 20여 년간 미셸 푸코, 에마뉘엘 레비나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모리스 블랑쇼 등 학문적으로 교류한 친구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다양한 형식으로 작별 인사를 쓰게 된다.
이 애도의 글들은 우정과 애도, 타자성이라는 데리다 철학의 테마를 보여주는데, 이 글들을 한데 묶은 책의 프랑스어판 제목 ‘매번 유일한, 세계의 끝’이 나타내듯 데리다에게 친구의 죽음은 한 명 한 명이 전적으로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한 타자들이라는 점에서 매번 세계 전체가 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애도가 점진적 작업을 통해 천천히 고통을 지운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지금도 믿지 못한다”라는 『밝은 방』의 인용문과 공명하듯, 데리다는 이 글에서 주체의 기억을 통해 타자의 타자성을 제거하는 보통의 애도 작업을 문제 삼는다.
애도 작업에서 산 자들은 죽은 자를 배신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는 산 자들 각자의 일방적인 기억으로 정리되면서 한 번 더 죽는다.
이 같은 통상적 애도 작업에 데리다는 저항하면서도, 침묵을 지키기보다는 바르트에 대해 쓰는 편을 택한다.
“달리 어떻게 말하겠는가, 그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
유일한 것을 복수화하지 않고서, 그가 지닌 가장 대체 불가한 것, 즉 그 자신의 죽음까지도 일반화하지 않고서.”(p.
119)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친구가 육성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말할 수 있도록, 데리다는 대신 바르트의 책들을 펼쳐 든다.


이렇듯 바르트의 육체를 바르트의 책으로 전환하고 확산할 수 있게 하는 힘으로서 환유에 주목하는 데리다의 시선은, 우리에게 타자 중심적 애도의 가능성을 탐색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롤랑 바르트의 죽음들」에서 데리다는 죽은 자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산 자의 전횡을 저지하며, 친구의 말에 고유의 발언권을 돌려주려는 충실한 독서를 수행한다.
그로써 미처 알아채지 못한 바르트 사유의 세부 연관 원리를 분간하고, 바르트의 미묘한 음정들을 식별할 수 있다.
바르트의 말이 데리다의 사유에 실려 돌아올 때, 남은 자의 생각과 죽은 자의 인용이 대화처럼 교차할 때, 그 독법은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는 우정이 둘의 사유를 하나의 선으로 잇고 나누는 광경을 그려낸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8월 29일
- 쪽수, 무게, 크기 : 169쪽 | 194g | 129*187*9mm
- ISBN13 : 9788932044361
- ISBN10 : 8932044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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