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과 산업사회
Description
책소개
전통은 근대의 걸림돌이 아니라, 원동력이었다!
조선의 철학이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과정을 구조적으로 밝혀낸 책
우리는 유교를 낡은 전통이자 근대화의 걸림돌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유학과 산업사회』는 그런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조선의 유학이 한국형 산업화의 정신적 토대였다는 점을 사상적이고 역사적인 두 개의 층위에서 논증한다.
조선의 국시(國是)였던 성리학은 도덕 규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재조직하는 생활 철학이었다는 것이다.
근면, 절제, 책임, 협동과 같은 가치와 규범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되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반과 다르지 않았다.
서구사회가 칼뱅주의적 노동윤리를 바탕으로 그들 방식의 근대를 세웠다면, 한국은 유교적 사회 윤리를 기반으로 산업사회로 전환되었다는 설명이다.
과연 유학의 핵심 명제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아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철학은 산업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을 길러내지 않았던가.
저자가 강조하듯 한국인의 성실성과 공동체 중심적 문화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유교적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유학과 산업사회』는 전통과 근대를 단절적이고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을 넘어섰다.
이 책은 유학이 근대 서구의 문명과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하이브리드)한 역사적 사실을 파헤친다.
알고 보면 조선의 성리학과 전통사상이 한국형 산업사회를 낳은 원동력이라는 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점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조선의 철학이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과정을 구조적으로 밝혀낸 책
우리는 유교를 낡은 전통이자 근대화의 걸림돌로만 여겨왔다.
그러나 『유학과 산업사회』는 그런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조선의 유학이 한국형 산업화의 정신적 토대였다는 점을 사상적이고 역사적인 두 개의 층위에서 논증한다.
조선의 국시(國是)였던 성리학은 도덕 규범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를 재조직하는 생활 철학이었다는 것이다.
근면, 절제, 책임, 협동과 같은 가치와 규범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게 되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윤리적 기반과 다르지 않았다.
서구사회가 칼뱅주의적 노동윤리를 바탕으로 그들 방식의 근대를 세웠다면, 한국은 유교적 사회 윤리를 기반으로 산업사회로 전환되었다는 설명이다.
과연 유학의 핵심 명제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아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철학은 산업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을 길러내지 않았던가.
저자가 강조하듯 한국인의 성실성과 공동체 중심적 문화는 아직도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유교적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유학과 산업사회』는 전통과 근대를 단절적이고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이분법을 넘어섰다.
이 책은 유학이 근대 서구의 문명과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하이브리드)한 역사적 사실을 파헤친다.
알고 보면 조선의 성리학과 전통사상이 한국형 산업사회를 낳은 원동력이라는 점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점에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머리말
1장 개신교와 근대 산업사회
칼뱅의 개혁주의에서 싹튼 근대 산업사회
개신교의 토대 위에 꽃핀 미국의 민주주의와 산업화
2장 유학의 나라 조선의 특징
유학의 지향
정치 사회적 특징
‘실록’이라는 특별한 통치 도구
유학의 사회적 영향
3장 조선의 사회 경제적 문제
경제력과 국력의 관계 - 생각의 차이
농업사회의 한계 - 생산성 문제
상공업의 부가가치에 관한 이해 부족
취약한 국방력
4장 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
다종교 사회의 축복
한글,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문화 발전의 소프트웨어
징병제 - 근대 시민 훈련
새마을운동
유학, 한류의 비밀 코드
5장 유교적 산업사회
재벌사회와 그 미래
경자유전 - 중산층의 미래
현대의 선비 - 지식인의 미래
꼭 유학이어야 하는가 - 법고창신
1장 개신교와 근대 산업사회
칼뱅의 개혁주의에서 싹튼 근대 산업사회
개신교의 토대 위에 꽃핀 미국의 민주주의와 산업화
2장 유학의 나라 조선의 특징
유학의 지향
정치 사회적 특징
‘실록’이라는 특별한 통치 도구
유학의 사회적 영향
3장 조선의 사회 경제적 문제
경제력과 국력의 관계 - 생각의 차이
농업사회의 한계 - 생산성 문제
상공업의 부가가치에 관한 이해 부족
취약한 국방력
4장 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
다종교 사회의 축복
한글, 한국인의 정체성이자 문화 발전의 소프트웨어
징병제 - 근대 시민 훈련
새마을운동
유학, 한류의 비밀 코드
5장 유교적 산업사회
재벌사회와 그 미래
경자유전 - 중산층의 미래
현대의 선비 - 지식인의 미래
꼭 유학이어야 하는가 - 법고창신
책 속으로
수십 년 동안 쏟아진 반론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윤리가 바로 자본주의 정신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아직 살아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베버의 개신교 윤리설이 “허약한 이론”이라고 비판했지만, 자신이 베버의 주장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 p.32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 산업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후반에는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이 그러한 역사적 변화를 주도하였다.
그 결과,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전성기가 끝나고 쇠망의 기운이 날로 짙어간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융성에 관하여도 여러 학설이 있음은 사실이나, 그 저변에 개신교(Protestant)의 덕목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 p.19
16세기에 개신교 윤리를 힘주어 강조한 이가 칼뱅이었다.
그는 줄곧 근면과 절약의 미덕을 강조했다.
신자들에게 타이르기를, 저마다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여 얻은 수익금을 절대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아울러 직업을 통해 얻은 수입을 최대한 절약하여 나날이 재산을 증식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칼뱅의 가르침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제고에 직결된다.
--- p.37
1830년대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 활동이 활발했다.
바로 그때 “프론티어 개인주의”가 꽃을 피웠다.
개인주의란 본래 자기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데, 그 당시 미국의 개인주의는 경제적 성취에 쏠려 있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고, 나아가 무한한 사회 경제적 기회를 잡으려는 욕망이 폭발한 상태였다.
가히 팽창의 시대 정신이라 일컬어도 좋을 정도였다.
--- p.64
16세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시기 조선에서는 유학이 국시(國是, 국가 이념)였다.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500년 넘게 유학을 국가 운영의 근본으로 삼았다.
특히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유교적 문명화를 목표로 세우고, 여러 분야에 창의적인 정책을 세워 큰 효과를 얻었다.
후대의 왕들도 세종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조선은 시일이 흐를수록 더욱더 유학적으로 되었다.
“유학”을 떠나 조선 사회의 성격이라든가 본질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92
유학이 소망하는 이상향이 대동(大同)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대동 세상에는 강도나 좀도둑, 반역자가 한 명도 없어 밤이든 낮이든 문단속이 필요하지 않다.
지극히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바로 대동사회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세상을 현실에서 이룩하고자 했다.
--- p.106
유학을 존숭한 국가답게 조선왕조는 기록을 중시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성찰할 수 없으므로, 개인이든 국가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까지도 정성껏 기록하고 성실하게 보관하였다.
그리고 참고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그런 기록을 꺼내 읽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여러 기록물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조선왕조실록』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조선은 유학의 가르침대로 사관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그리고 정성껏 편찬한 실록을 국가 운영의 지침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에는 감히 누구도 실록과 같이 귀중한 역사 기록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차단했다.
--- pp.132-133
사익을 버리고 공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유교의 관점이었다.
윤리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확신한 것이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요, 패륜이었다.
--- p.178
유교 국가 조선은 국제무역에 비교적 소홀했고, 수도 서울을 제외하면 대도시라고 일컬을 만한 것도 없어 시장경제 발달 속도가 매우 더뎠다.
혹자는 조선 후기에 눈부신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아주 먼 주장이다.
역사의 진실은 달랐다.
상공업과 교역이 활발하지 못해서 조선의 국력이 취약했던 것이요, 그래서 외부의 침략에 굴복해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 p.184
조선 후기에는 유학 내부에서 혁신 운동이 일어나기는 했다.
실학자들이 그러했는데, 특히 북학파는 더더욱 진취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층은 일체의 혁신을 거부하고 기성체제를 유지하는 데만 주력했다.
그들은 서학에 대한 무자비하고 전면적인 탄압을 벌였으며, 이후에는 새로운 혁신 운동의 주역인 동학과도 무력투쟁으로 맞섰다.
그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학이야말로 조선 500년 동안 과학기술의 성장을 방해하고 서구 문명의 수용에 결사 항거한 역사적 죄인이요, 극단적 반동세력이라고 비판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 pp.242-243
현대 한국의 성공은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용어는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요소를 융합한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은 전통과 현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했다.
바로 거기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훌륭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 p.248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낸 것은 전통문화의 저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며 저마다의 역할을 했다.
예컨대 유학은 이 사회의 기본 가치를 제공했고, 불교는 사회적 안정과 조화에 이바지했으며, 기독교는 서구의 근대적 가치를 이식하는 데 앞장섰다.
--- p.260
한글은 창제된 지 수백 년 뒤에 본연의 목적을 달성했다.
조선을 유교 문명국가로 만들기 위해 세종은 한글을 창제했던 것인데, 마침내 그 뜻이 이뤄졌다.
바로 그 문자 덕분에 한국인은 서구의 근대문명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문명의 전환에 끼친 한글의 역할은 아무리 호평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만약에 한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만큼 잘살 수도 없었고, 이만큼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 p.267
유학의 정신이 깃든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시민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의 시민들도 공감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학의 가치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은은히 스민 한국의 예술과 생활문화는 세계인의 호응을 받고 있다.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은 베버의 개신교 윤리설이 “허약한 이론”이라고 비판했지만, 자신이 베버의 주장을 완전히 제압하지는 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 p.32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 산업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19세기 후반에는 대서양 건너편의 미국이 그러한 역사적 변화를 주도하였다.
그 결과,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의 전성기가 끝나고 쇠망의 기운이 날로 짙어간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미국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 외교,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융성에 관하여도 여러 학설이 있음은 사실이나, 그 저변에 개신교(Protestant)의 덕목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 p.19
16세기에 개신교 윤리를 힘주어 강조한 이가 칼뱅이었다.
그는 줄곧 근면과 절약의 미덕을 강조했다.
신자들에게 타이르기를, 저마다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렇게 하여 얻은 수익금을 절대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아울러 직업을 통해 얻은 수입을 최대한 절약하여 나날이 재산을 증식하라고 권고했다.
이러한 칼뱅의 가르침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인 생산성 향상과 효율성 제고에 직결된다.
--- p.37
1830년대 미국에서는 ‘서부 개척’ 활동이 활발했다.
바로 그때 “프론티어 개인주의”가 꽃을 피웠다.
개인주의란 본래 자기실현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데, 그 당시 미국의 개인주의는 경제적 성취에 쏠려 있었다.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고, 나아가 무한한 사회 경제적 기회를 잡으려는 욕망이 폭발한 상태였다.
가히 팽창의 시대 정신이라 일컬어도 좋을 정도였다.
--- p.64
16세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개신교가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 시기 조선에서는 유학이 국시(國是, 국가 이념)였다.
알다시피 조선왕조는 500년 넘게 유학을 국가 운영의 근본으로 삼았다.
특히 제4대 임금인 세종은 유교적 문명화를 목표로 세우고, 여러 분야에 창의적인 정책을 세워 큰 효과를 얻었다.
후대의 왕들도 세종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다.
조선은 시일이 흐를수록 더욱더 유학적으로 되었다.
“유학”을 떠나 조선 사회의 성격이라든가 본질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p.92
유학이 소망하는 이상향이 대동(大同)에 있다는 점은 누구나 안다.
대동 세상에는 강도나 좀도둑, 반역자가 한 명도 없어 밤이든 낮이든 문단속이 필요하지 않다.
지극히 평화롭고 복된 세상이 바로 대동사회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런 세상을 현실에서 이룩하고자 했다.
--- p.106
유학을 존숭한 국가답게 조선왕조는 기록을 중시했다.
기록하지 않으면 성찰할 수 없으므로, 개인이든 국가든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까지도 정성껏 기록하고 성실하게 보관하였다.
그리고 참고할 필요가 생길 때마다 그런 기록을 꺼내 읽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여러 기록물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조선왕조실록』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걸작이다.
조선은 유학의 가르침대로 사관의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했다.
그리고 정성껏 편찬한 실록을 국가 운영의 지침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에는 감히 누구도 실록과 같이 귀중한 역사 기록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제도적으로 차단했다.
--- pp.132-133
사익을 버리고 공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것이 올바른 경제활동이라는 것이 유교의 관점이었다.
윤리와 경제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확신한 것이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요, 패륜이었다.
--- p.178
유교 국가 조선은 국제무역에 비교적 소홀했고, 수도 서울을 제외하면 대도시라고 일컬을 만한 것도 없어 시장경제 발달 속도가 매우 더뎠다.
혹자는 조선 후기에 눈부신 경제 발전이 일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아주 먼 주장이다.
역사의 진실은 달랐다.
상공업과 교역이 활발하지 못해서 조선의 국력이 취약했던 것이요, 그래서 외부의 침략에 굴복해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 p.184
조선 후기에는 유학 내부에서 혁신 운동이 일어나기는 했다.
실학자들이 그러했는데, 특히 북학파는 더더욱 진취적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기득권층은 일체의 혁신을 거부하고 기성체제를 유지하는 데만 주력했다.
그들은 서학에 대한 무자비하고 전면적인 탄압을 벌였으며, 이후에는 새로운 혁신 운동의 주역인 동학과도 무력투쟁으로 맞섰다.
그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학이야말로 조선 500년 동안 과학기술의 성장을 방해하고 서구 문명의 수용에 결사 항거한 역사적 죄인이요, 극단적 반동세력이라고 비판한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일리가 없지 않다.
--- pp.242-243
현대 한국의 성공은 “하이브리드”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 용어는 특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개 이상의 요소를 융합한다는 의미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은 전통과 현대 문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융합했다.
바로 거기에서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훌륭한 결과가 도출되었다.
--- p.248
지난 100년 동안 여러 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낸 것은 전통문화의 저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며 저마다의 역할을 했다.
예컨대 유학은 이 사회의 기본 가치를 제공했고, 불교는 사회적 안정과 조화에 이바지했으며, 기독교는 서구의 근대적 가치를 이식하는 데 앞장섰다.
--- p.260
한글은 창제된 지 수백 년 뒤에 본연의 목적을 달성했다.
조선을 유교 문명국가로 만들기 위해 세종은 한글을 창제했던 것인데, 마침내 그 뜻이 이뤄졌다.
바로 그 문자 덕분에 한국인은 서구의 근대문명을 빠르고 정확하게 수용할 수 있었다.
문명의 전환에 끼친 한글의 역할은 아무리 호평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만약에 한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는 이만큼 잘살 수도 없었고, 이만큼의 정치적 자유를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 p.267
유학의 정신이 깃든 한국의 전통문화에 대해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시민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아프리카의 시민들도 공감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유학의 가치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치관이 은은히 스민 한국의 예술과 생활문화는 세계인의 호응을 받고 있다.
--- p.295
출판사 리뷰
“자고 나니 선진국민!”
해방 이후 한국의 급속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80년 전 피폐한 식민지에서 출발한 한국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정치·경제·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 79달러에서 2024년 약 3만5천 달러로 400배도 넘게 성장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고, 민주주의 체제를 제대로 갖춘 국가라는 점에서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아울러 K-팝, 영화, 웹툰 등 한류 콘텐츠가 190여 개 나라에서 환영받아 한국은 굴지의 ‘문화 강국’이 되었다.
“자고 나니 선진국민!”이라더니, 우리 스스로가 믿지 못할 정도로 급발전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이론이 분분해, 어떤 이는 강력한 정부 주도 사업을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본다.
다른 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종속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또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유행을 틈타 고도성장에 성공한 결과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역사가 백승종의 설명은 다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형 산업화에는 “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우리는 유교라면 낡은 전통으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가로막은 부정적인 유산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조선의 철학은 정말 근대화의 걸림돌이었는가? 아니면 산업사회의 정신적 밑거름이었는가?” 『유학과 산업사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답변이다.
서구의 근대화를 이끈 칼뱅주의 VS 한국적 산업화를 만들어낸 유교
요즘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으나, 서구의 근대는 칼뱅주의적 직업윤리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그와 같은 역사철학적 맥락에서 한국의 산업화 역시 유교적 사회 윤리를 토대로 삼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유학은 역사적 지체를 초래한 부정적 유산이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꽃피운 기름진 토양이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인간관계에 윤리성을 부여한 조선의 유교적 전통이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서구 산업사회와 개신교의 관계를 매우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개신교가 서구의 근대화·산업화와 다층적으로 얽혀 있음을 확인한다.
특히 칼뱅의 개혁주의가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설명한 점이 압권이다.
이어서 유학이 조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층적으로 설명한다.
조선의 유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했으므로 모두가 어울려 조화롭게 사는 ‘대동사회’라는 이상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런 철학적 배경 위에서 조선의 왕과 신하들은 ‘공치(함께 다스림)’의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전문성 있는 관료를 배출하고, 누구도 권력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막았다.
유학의 나라였으므로 교육을 중시해 조선은 지식혁명과 표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명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이것이야말로 훗날 한국이 산업사회로 전환할 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유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란 이념이 산업사회에 유익한 인간형을 낳았다고도 주장한다.
‘자신을 닦아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명제는 근대적 전문성과 윤리의식의 추구 및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시민 정신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널리 경탄하는 한국인의 성실성, 공동체적 연대, 권위와 질서의 존중, 교육과 전문적 지식의 추구, 가족 중심의 안정된 사회질서 등은 유학적 가치를 이어받은 결과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선사회의 관습과 도덕이 산업사회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융합하여 “유교적 산업사회”라는 독특한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해석이다.
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가 이룬 놀라운 성과
저자는 유학이 우리 사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유학자들은 농업만을 중시한 채 상공업을 함부로 무시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꿈꾸었던 나머지 생산력의 증대나 국제무역을 통한 국부의 증가를 꾀하지 않았다.
농업 이외의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했다.
이러한 유교적 경제 관념은 상공업 육성이나 근대적 경제 관념의 등장조차 가로막았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일제강점기라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겪은 뒤 한국은 비로소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은 세계 6번째 강대국으로 손꼽힌다(출처: 포브스).
이토록 놀라운 성장의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문명의 “하이브리드(융합)”에서 그 답을 찾는다.
유학을 토대로 한 한국의 전통문화가 서구 근대 문명과 융합하는 과정에 저자는 크게 주목한다.
한국 사회의 주된 문화적 특성이라 할 유교적 윤리관과 사회적 관습이 어떻게 서구의 합리성과 산업주의 및 민주주의와 결합했는지를 저자는 하나씩 해부한다.
기독교까지 아우른 다종교 사회의 윤리라든가, 세종이 유교화를 위해 창제한 한글이 근대적 교육 및 국민의식의 확립과 정체성 형성에 이바지한 점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아울러 장단점을 동시에 내포한 징병제와 새마을운동이 전통문화유산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도 분석한다.
저자는 한류, 즉 K-컬처의 성장 배경에도 유학의 내면적 가치가 자리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때는 근대화의 “걸림돌”이기도 했던 유학이,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의 산업사회는 “빨리빨리”만의 결과도 아니고, 서구 문명을 모방한 결과만도 아니라, 조선의 철학적 사유와 역사적 경험이 서구 문명과 융합한 아름다운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유학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장차 미래의 문명을 어디로 이끌어가게 될지도 검토한다.
유교는 구성원 간의 신뢰와 조화를 중시하므로 경영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유학자들이 지향한 대동사회라는 이상향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대안적 가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유교 문명의 주체였던 선비 정신이 아직 살아 있고, 그것이 미래사회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해본다.
저자는 유교 문명만이 아니라 이슬람이나 불교 문화권에서도 전통문화가 적절하게 융합할 때 독자적인 산업사회를 창출할 잠재력이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는 초유의 문화적 충격과 변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약점을 깊이 인식하고 한국 사회의 뿌리를 다시 캐묻는다.
“현대 한국을 가능하게 한 정신은 무엇인가?”
이 책은 과거의 사상과 역사적 경험이 현재의 사회적 현실로 이어진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한 지적 탐구서다.
조선의 심오한 유학 사상이 근대 산업사회를 낳았다는 점을 역사의 거울에 비춤으로써 한국 문명이 개척한 독자적인 역사적 행로를 조망한다.
그러고 보면 유학을 다시 읽는 것은 현대 한국 사회의 근본을 살피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한국의 급속한 성장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80년 전 피폐한 식민지에서 출발한 한국은 이제 세계가 주목하는 정치·경제·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60년 79달러에서 2024년 약 3만5천 달러로 400배도 넘게 성장했다.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고, 민주주의 체제를 제대로 갖춘 국가라는 점에서도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는다.
아울러 K-팝, 영화, 웹툰 등 한류 콘텐츠가 190여 개 나라에서 환영받아 한국은 굴지의 ‘문화 강국’이 되었다.
“자고 나니 선진국민!”이라더니, 우리 스스로가 믿지 못할 정도로 급발전한 것이다.
이처럼 놀라운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여러 이론이 분분해, 어떤 이는 강력한 정부 주도 사업을 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본다.
다른 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종속의 틈새’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또는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의 유행을 틈타 고도성장에 성공한 결과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역사가 백승종의 설명은 다르다.
이 책에서 그는 한국형 산업화에는 “유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우리는 유교라면 낡은 전통으로, 산업화와 근대화를 가로막은 부정적인 유산으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통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조선의 철학은 정말 근대화의 걸림돌이었는가? 아니면 산업사회의 정신적 밑거름이었는가?” 『유학과 산업사회』는 이 질문에 대한 다면적이고 심층적인 답변이다.
서구의 근대화를 이끈 칼뱅주의 VS 한국적 산업화를 만들어낸 유교
요즘에는 반론도 만만치 않으나, 서구의 근대는 칼뱅주의적 직업윤리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그와 같은 역사철학적 맥락에서 한국의 산업화 역시 유교적 사회 윤리를 토대로 삼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유학은 역사적 지체를 초래한 부정적 유산이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꽃피운 기름진 토양이었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인간관계에 윤리성을 부여한 조선의 유교적 전통이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서두에서 서구 산업사회와 개신교의 관계를 매우 꼼꼼하게 검토한다.
그리하여 개신교가 서구의 근대화·산업화와 다층적으로 얽혀 있음을 확인한다.
특히 칼뱅의 개혁주의가 유럽과 미국의 산업화에 실질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상세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설명한 점이 압권이다.
이어서 유학이 조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다층적으로 설명한다.
조선의 유학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했으므로 모두가 어울려 조화롭게 사는 ‘대동사회’라는 이상을 추구했다고 한다.
그런 철학적 배경 위에서 조선의 왕과 신하들은 ‘공치(함께 다스림)’의 철학을 발전시켰으며, 전문성 있는 관료를 배출하고, 누구도 권력을 사유화하지 못하게 막았다.
유학의 나라였으므로 교육을 중시해 조선은 지식혁명과 표준화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명국가로 발돋움하였다.
이것이야말로 훗날 한국이 산업사회로 전환할 때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유학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란 이념이 산업사회에 유익한 인간형을 낳았다고도 주장한다.
‘자신을 닦아 세상을 다스린다’라는 명제는 근대적 전문성과 윤리의식의 추구 및 공공성을 우선시하는 시민 정신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널리 경탄하는 한국인의 성실성, 공동체적 연대, 권위와 질서의 존중, 교육과 전문적 지식의 추구, 가족 중심의 안정된 사회질서 등은 유학적 가치를 이어받은 결과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조선사회의 관습과 도덕이 산업사회의 근간이 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융합하여 “유교적 산업사회”라는 독특한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해석이다.
전통과 현대의 하이브리드가 이룬 놀라운 성과
저자는 유학이 우리 사회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유학자들은 농업만을 중시한 채 상공업을 함부로 무시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꿈꾸었던 나머지 생산력의 증대나 국제무역을 통한 국부의 증가를 꾀하지 않았다.
농업 이외의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것 자체를 죄악시했다.
이러한 유교적 경제 관념은 상공업 육성이나 근대적 경제 관념의 등장조차 가로막았다.
결과적으로 조선은 일제강점기라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고통과 한국전쟁의 참담한 비극을 겪은 뒤 한국은 비로소 산업화의 길에 들어선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은 세계 6번째 강대국으로 손꼽힌다(출처: 포브스).
이토록 놀라운 성장의 힘은 무엇일까.
저자는 문명의 “하이브리드(융합)”에서 그 답을 찾는다.
유학을 토대로 한 한국의 전통문화가 서구 근대 문명과 융합하는 과정에 저자는 크게 주목한다.
한국 사회의 주된 문화적 특성이라 할 유교적 윤리관과 사회적 관습이 어떻게 서구의 합리성과 산업주의 및 민주주의와 결합했는지를 저자는 하나씩 해부한다.
기독교까지 아우른 다종교 사회의 윤리라든가, 세종이 유교화를 위해 창제한 한글이 근대적 교육 및 국민의식의 확립과 정체성 형성에 이바지한 점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아울러 장단점을 동시에 내포한 징병제와 새마을운동이 전통문화유산과 어떻게 융합되었는지도 분석한다.
저자는 한류, 즉 K-컬처의 성장 배경에도 유학의 내면적 가치가 자리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한때는 근대화의 “걸림돌”이기도 했던 유학이, 산업사회로의 “전환”을 이끄는 “발판”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요컨대 한국의 산업사회는 “빨리빨리”만의 결과도 아니고, 서구 문명을 모방한 결과만도 아니라, 조선의 철학적 사유와 역사적 경험이 서구 문명과 융합한 아름다운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유학이 남긴 문화적 유산이 장차 미래의 문명을 어디로 이끌어가게 될지도 검토한다.
유교는 구성원 간의 신뢰와 조화를 중시하므로 경영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유학자들이 지향한 대동사회라는 이상향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대안적 가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아울러, 유교 문명의 주체였던 선비 정신이 아직 살아 있고, 그것이 미래사회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해본다.
저자는 유교 문명만이 아니라 이슬람이나 불교 문화권에서도 전통문화가 적절하게 융합할 때 독자적인 산업사회를 창출할 잠재력이 있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는 초유의 문화적 충격과 변화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현대 사회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약점을 깊이 인식하고 한국 사회의 뿌리를 다시 캐묻는다.
“현대 한국을 가능하게 한 정신은 무엇인가?”
이 책은 과거의 사상과 역사적 경험이 현재의 사회적 현실로 이어진 방식을 집요하게 추적한 지적 탐구서다.
조선의 심오한 유학 사상이 근대 산업사회를 낳았다는 점을 역사의 거울에 비춤으로써 한국 문명이 개척한 독자적인 역사적 행로를 조망한다.
그러고 보면 유학을 다시 읽는 것은 현대 한국 사회의 근본을 살피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2월 05일
- 쪽수, 무게, 크기 : 368쪽 | 152*225*30mm
- ISBN13 : 9791194126102
- ISBN10 : 119412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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