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를 그리다
Description
책소개
‘나라는 사람은 누구인가?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시대와 사회는 무엇인가?’
이 책은 제주4.3의 곁에 서서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을 맞추어보며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한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의 기획으로 발간되었다.
시간은 공간 속에 쌓입니다.
지나간 역사(서사)는 공간마다 켜켜이 쌓여 그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우리는 퇴적층처럼 쌓인 세월의 무게를 화석으로만 여길 뿐 그것이 간직한 기억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떤 역사적 ‘기억’을 걸어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공간’ 체험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것이 ‘다크투어(Dark Tour)’의 목적이자 가치다.
이번 원광대 통일교육사업단의 ‘평화여행’은 단순한 장소 방문이 아니라, 기억과 평화를 향한 여정이었다.
‘제주4.3’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평화란 단순히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대면하고,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제주4.3의 곁에 서서 같은 곳을 향해 시선을 맞추어보며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한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의 기획으로 발간되었다.
시간은 공간 속에 쌓입니다.
지나간 역사(서사)는 공간마다 켜켜이 쌓여 그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우리는 퇴적층처럼 쌓인 세월의 무게를 화석으로만 여길 뿐 그것이 간직한 기억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어떤 역사적 ‘기억’을 걸어 본다는 것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는 ‘공간’ 체험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것이 ‘다크투어(Dark Tour)’의 목적이자 가치다.
이번 원광대 통일교육사업단의 ‘평화여행’은 단순한 장소 방문이 아니라, 기억과 평화를 향한 여정이었다.
‘제주4.3’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평화란 단순히 갈등의 부재가 아니라, 과거의 아픔을 대면하고, 이러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목차
005 공감共感의 글
010 Prologue 전철후 _ 애도·기억·사유: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의 대화
030 Story 01 강세창 _ 비非에서 비悲로
038 Story 02 곽근영 _ 제주4.3, 그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047 Story 03 김민지 _ 아픔을 넘어 평화의 제주
056 Story 04 김세연 _ 제주도, 새로움의 연속
064 Story 05 김수민 _ 나를 위한 여행
079 Story 06 김채연 _ 고요한 약속
092 Story 07 문건우 _ 그들이 있었으므로
104 Story 08 백신영 _ 평화를 묻는다
112 Story 09 신예륜 _ 시간을 넘어, 제주를 듣다
126 Story 10 오가영 _ 아름다운 섬에서의 비극
139 Story 11 윤유비 _ 파도
149 Story 12 이진영 _ 제주4.3과 평화
163 Story 13 전지혜 _ 제주4.3의 평화를 그리다
173 Story 14 정다원 _ 제주4.3을 마주하다
183 Story 15 조수영 _ 숨 쉬었을 뿐인데
191 Story 16 최재혁 _ 아무렇지 않은 섬, 제주
205 Story 17 하서윤 _ 봉합된 손가락의 의미
212 Epilogue 이미종 _ 통일은 이해이다
010 Prologue 전철후 _ 애도·기억·사유: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의 대화
030 Story 01 강세창 _ 비非에서 비悲로
038 Story 02 곽근영 _ 제주4.3, 그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해
047 Story 03 김민지 _ 아픔을 넘어 평화의 제주
056 Story 04 김세연 _ 제주도, 새로움의 연속
064 Story 05 김수민 _ 나를 위한 여행
079 Story 06 김채연 _ 고요한 약속
092 Story 07 문건우 _ 그들이 있었으므로
104 Story 08 백신영 _ 평화를 묻는다
112 Story 09 신예륜 _ 시간을 넘어, 제주를 듣다
126 Story 10 오가영 _ 아름다운 섬에서의 비극
139 Story 11 윤유비 _ 파도
149 Story 12 이진영 _ 제주4.3과 평화
163 Story 13 전지혜 _ 제주4.3의 평화를 그리다
173 Story 14 정다원 _ 제주4.3을 마주하다
183 Story 15 조수영 _ 숨 쉬었을 뿐인데
191 Story 16 최재혁 _ 아무렇지 않은 섬, 제주
205 Story 17 하서윤 _ 봉합된 손가락의 의미
212 Epilogue 이미종 _ 통일은 이해이다
책 속으로
원광대 통일교육사업단 학생들이 다녀온 제주 곳 곳에는 평화를 위해 희생된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삶이 단지 슬픔으로 머물지 않고, 평화를 이 어가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평 화를 찾고, 몸으로 실천하는 기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p.7
학생들은 환상적인 유채꽃밭 대신 아픈 북촌대학살 현장이며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지금도 평화운동의 깃발이 높이 솟아있는 강정해군항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칼바람보다 더 독한 4.3 경험을 여기 토로합니다.
학생들의 시선은 때론 시니컬하기도 하지만 미래세대답게 우리 모두의 아픔을 넘어 평화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여기 함께 그 길을 나서봅시다.
--- p.9
자아의 근저에는 타자가 있으며, 타자의 삶이 있기에 ‘나’의 삶이 있는 것이다.
아렌트Arendt는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 한다.
애도와 공감을 통해 제주4.3을 ‘겪은 자’의 입장에서 현재 ‘겪지 않은 자’가 사는 이 세계를 바라보았다.
--- p.15
『순이 삼촌』의 모티브는 주민을 소개疏開한다고 유인하여 수백 명을 학살했던 조천읍 북촌리의 사건이다.
국가는 인간의 선익善益을 위한 방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국가는 인간의 선익을 위한 도구이며, 인간이 결코 국가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국가 내지는 특정 권력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매 순간 인간적인 선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인간주의적 양심을 일깨우고 확충해 가는 일이다.
니버Neibur는 “도덕을 정치적인 지평에 올려놓지 않고 개인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 혹은 사회 전반의 정신과 문화의 문제로 간주하는 이런 식의 진단과 처방은 모두 개인적 도덕성과 사회적 부도덕성은 공존하며 강렬한 이해 앞에서 도덕주의적 훈계는 무력화된다.”고 한다.
이는 도덕을 정치적 지평 위에 올려놓고, 사회적 부도덕성은 정치적 책임과 책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1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이루어내는 공감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한다는 착각은 결국 상대를 내 기준과 내 경험에 동화시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잣대를 강요하는 일이 될 뿐이다.
내가 비인으로써 제주도에서 써 내려간 문장은 마음이 없는 비문일 뿐이었다.
마음을 가지고 슬픔의 문장을 작성하기 위해 제 주도에 다시 한번 가보려고 한다.
--- p.37
제주4.3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더 그 상처가 어떻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었지만, 그 아픔이 제 주도 사람들, 그리고 그 상처를 이어받은 후손들에게 얼마나 깊이 남아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4.3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그 아픔이 지금의 우리와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 p.43~45
애기무덤을 지나니 아름다운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는 제주4.3사건 북촌리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비석이 있었다.
비석의 뒤로 돌아서자 당시 북촌리에서 희생되었던 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천천히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조리며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학살당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이름을 알 수 없어서 ‘누구누구 처’, ‘자’, ‘모’ 등으로 기록된 이들도 있었다.
--- p.51
제주 해군기지가 세월호 참사에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 적재된 철근 중 일부가 제주 해군기지에 사용될 자 재였다는 것이었다.
세월호가 상습적으로 철근을 과적해 실었으며, 선원들이 철근 등 화물을 선수에 적재하지 말라고 문제를 제기했으며, 세월호가 기울어지자, 청해진해운이 화물 적재 상태부터 확인했다는 점 등이 선원의 진술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웠다.
--- p.59
그곳에는 ‘순이 삼촌’이 있었다.
죽은 사람만이 피해자가 아니다.
죽음을 목도하고, 그럼에도 침묵 당한 살아남 은 사람도 피해자이다.
순이 삼촌은 당시 북촌리 학살 현장의 생존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던 그녀는 결국 옴팡 밭에서 자살한다.
순이 삼촌의 비석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역사를 공부하고 책을 읽어도 직접 눈으로 보는 죽음의 흔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p.70
양개왓은 4.3사건 당시 숲속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학살당한 장소로, 지금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했지만, 그 속에 스며 있는 비통함이 느껴졌다.
그날 들렸을 비명과 울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리는 듯했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손을 모아 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p.84
일행을 따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곤을동이었다.
곤을동은 최근에 나온 『곤을동이 있어요.』라는 동화책의 표지로 알았던 장소였다.
곤을동은 해안가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럼에 도 제주4.3 당시 군경의 폭력으로 폐허로 남았다.
왜 그런 것일까.
당시 송요찬 9연대장의 포고문에 따라, 해안에서 5km의 지역만 남기고, 남은 중산간 지역과 산간 지역을 초토화하는 작전이 이루어졌다.
곤을동은 해안에 바로 붙은, 제주항이 바로 내다보이는 장소였다.
그러나 1949년 1월 5일 군경은 마을에 들이닥쳐 젊은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의 마을임에도 화마를 피하지 못해 폐허로 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 p.98
제주4.3사건은 북촌 사람들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죄 없이 목숨을 잃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제주도민들은 단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총격 난사, 무차별적인 학살, 그리고 긴 침묵이었다.
--- p.108
단순히 잔인한 일이 벌어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너무 슬픈 일이라서 과거사가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차별, 혐오, 국가권력의 억압이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으니 기억되어야 한다.
여전히 국가는 강 정마을 해군기지, 제2공항 건설과 같은 갈등이 생겨날 때 강자의 논리로 제주도민을 억압하려 하고 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빨갱이’라는 단어는 상대를 비난할 때 자주 소환된다.
예컨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빨갱이라 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희생된 노동자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해도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한다.
--- p.136
제주의 바다는 이제 평화의 섬이 되었지만, 과거 이곳에 서 일어난 사건들은 평화의 섬 제주의 아이러니한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7년간의 무력 충돌과 대량 학살을 포함한 참혹한 사건이었다.
당시 많은 제주도민의 목숨과 삶이 무참히 빼앗겼다.
--- p.141
제주4.3기념관에 가면 이름 없는 비석인 ‘백비’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사건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사건, 누군가는 봉기, 누군가는 사태, 누군가는 학살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4.3사 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백비에 이름을 새겨 넣어 억울하게 죽 임당한 혼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p.156
이번 제주 평화여행을 통해 나는 ‘평화’라는 단어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평화로운 삶과 사회란 결코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아픔을 기억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제주4.3사건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그들의 아픔과 슬픔은 단순히 역사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정신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그 기억을 이어받아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169
나는 그저 여행을 즐겼고, 내일 시작될 다크투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의 자연을 감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을까? 어떻게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람들이 무참히 희생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p.176
당시의 사람들은 국가가 주는 공포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곤을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그들을 두 번 죽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죽은 자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했다.
--- p.190
너븐숭이4.3기념관 앞에는 너븐숭이4.3유적지가 있다.
그곳에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는 애기무덤들이 남아 있다.
아기들이 무엇을 알기에 또 무얼 했기에 죽어야 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결정했던 지휘부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은 아기들이 죽어야 할 이유를 알았을까? 난 그들 역시 모른다고 본다.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아기들은 제 꿈도 맘껏 펼쳐보지도, 마음껏 놀아보지도 못한 채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너븐숭이에 여전히 남아 있다.
--- p.196
제주 평화여행은 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것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란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역사를 되짚고 그 고통 속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공감과 책임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단 순한 감정적 연민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 p.208
북촌리 참사가 일어난 것은 1949년 1월 17일이다.1 그날 새벽 너븐숭이 고갯길을 지나가던 군인 차가 무장대의 습격 을 받아 군인 2명이 희생되자 그 보복으로 대참사가 시작되 었다.
그리고 17~18일 이틀간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총살되었단다.
노형리와 가시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마을이다.
이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제주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제주도에 도착한 토벌대에서는 북촌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예컨대 북촌리 참사가 일 어나기 2년 전(1947년 8월 13일), 북촌리에는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다가 경찰을 폭행한 사건이라든가, 그다음 해(1948년 6월 16일), 포구에 피항한 배를 조사하던 마을 청년들이 우도 지서 경찰 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북촌리 마을 청년들은 토벌대의 눈을 피해 마을을 떠나거나 한라산 자락에 숨어 지냈단다.
물론 무장대에 합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12월 16일, 북촌리에서 첫 주민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민보단을 조직해서 마을을 지키고 토벌대에 협조하던 주민 22명이 군토벌대에 끌려가 총살을 당한 것이다
그분들의 안타까운 삶이 단지 슬픔으로 머물지 않고, 평화를 이 어가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책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평 화를 찾고, 몸으로 실천하는 기록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p.7
학생들은 환상적인 유채꽃밭 대신 아픈 북촌대학살 현장이며 곤을동 잃어버린 마을, 지금도 평화운동의 깃발이 높이 솟아있는 강정해군항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칼바람보다 더 독한 4.3 경험을 여기 토로합니다.
학생들의 시선은 때론 시니컬하기도 하지만 미래세대답게 우리 모두의 아픔을 넘어 평화의 미래를 이야기합니다.
여기 함께 그 길을 나서봅시다.
--- p.9
자아의 근저에는 타자가 있으며, 타자의 삶이 있기에 ‘나’의 삶이 있는 것이다.
아렌트Arendt는 사유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라 한다.
애도와 공감을 통해 제주4.3을 ‘겪은 자’의 입장에서 현재 ‘겪지 않은 자’가 사는 이 세계를 바라보았다.
--- p.15
『순이 삼촌』의 모티브는 주민을 소개疏開한다고 유인하여 수백 명을 학살했던 조천읍 북촌리의 사건이다.
국가는 인간의 선익善益을 위한 방편이 아님을 알게 된다.
국가는 인간의 선익을 위한 도구이며, 인간이 결코 국가의 도구가 될 수 없다.
국가 내지는 특정 권력이 요구해야 하는 것은 매 순간 인간적인 선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실천하는 인간주의적 양심을 일깨우고 확충해 가는 일이다.
니버Neibur는 “도덕을 정치적인 지평에 올려놓지 않고 개인의 사고와 행동의 문제 혹은 사회 전반의 정신과 문화의 문제로 간주하는 이런 식의 진단과 처방은 모두 개인적 도덕성과 사회적 부도덕성은 공존하며 강렬한 이해 앞에서 도덕주의적 훈계는 무력화된다.”고 한다.
이는 도덕을 정치적 지평 위에 올려놓고, 사회적 부도덕성은 정치적 책임과 책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1
마음을 이해하지 않고 이루어내는 공감은 공감이 아니다.
공감한다는 착각은 결국 상대를 내 기준과 내 경험에 동화시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잣대를 강요하는 일이 될 뿐이다.
내가 비인으로써 제주도에서 써 내려간 문장은 마음이 없는 비문일 뿐이었다.
마음을 가지고 슬픔의 문장을 작성하기 위해 제 주도에 다시 한번 가보려고 한다.
--- p.37
제주4.3사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나는 점점 더 그 상처가 어떻게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졌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고통이었지만, 그 아픔이 제 주도 사람들, 그리고 그 상처를 이어받은 후손들에게 얼마나 깊이 남아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4.3사건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그 아픔이 지금의 우리와 후손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 p.43~45
애기무덤을 지나니 아름다운 제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보였다.
그곳에는 제주4.3사건 북촌리 희생자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비석이 있었다.
비석의 뒤로 돌아서자 당시 북촌리에서 희생되었던 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천천히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읊조리며 나는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학살당한 것이었다.
그중에는 이름을 알 수 없어서 ‘누구누구 처’, ‘자’, ‘모’ 등으로 기록된 이들도 있었다.
--- p.51
제주 해군기지가 세월호 참사에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 적재된 철근 중 일부가 제주 해군기지에 사용될 자 재였다는 것이었다.
세월호가 상습적으로 철근을 과적해 실었으며, 선원들이 철근 등 화물을 선수에 적재하지 말라고 문제를 제기했으며, 세월호가 기울어지자, 청해진해운이 화물 적재 상태부터 확인했다는 점 등이 선원의 진술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웠다.
--- p.59
그곳에는 ‘순이 삼촌’이 있었다.
죽은 사람만이 피해자가 아니다.
죽음을 목도하고, 그럼에도 침묵 당한 살아남 은 사람도 피해자이다.
순이 삼촌은 당시 북촌리 학살 현장의 생존자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던 그녀는 결국 옴팡 밭에서 자살한다.
순이 삼촌의 비석을 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아무리 역사를 공부하고 책을 읽어도 직접 눈으로 보는 죽음의 흔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p.70
양개왓은 4.3사건 당시 숲속에 숨어 있던 주민들이 학살당한 장소로, 지금은 아름다운 숲으로 변했지만, 그 속에 스며 있는 비통함이 느껴졌다.
그날 들렸을 비명과 울음소리가 바람에 섞여 들리는 듯했다.
그곳에서 나는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쉽게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서로를 지키려 했던 이들의 용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손을 모아 그들에게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p.84
일행을 따라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곤을동이었다.
곤을동은 최근에 나온 『곤을동이 있어요.』라는 동화책의 표지로 알았던 장소였다.
곤을동은 해안가에 있는 마을이었다.
그럼에 도 제주4.3 당시 군경의 폭력으로 폐허로 남았다.
왜 그런 것일까.
당시 송요찬 9연대장의 포고문에 따라, 해안에서 5km의 지역만 남기고, 남은 중산간 지역과 산간 지역을 초토화하는 작전이 이루어졌다.
곤을동은 해안에 바로 붙은, 제주항이 바로 내다보이는 장소였다.
그러나 1949년 1월 5일 군경은 마을에 들이닥쳐 젊은 사람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웠다.
해안의 마을임에도 화마를 피하지 못해 폐허로 남은 까닭은 무엇일까.
--- p.98
제주4.3사건은 북촌 사람들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죄 없이 목숨을 잃었던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제주도민들은 단지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으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총격 난사, 무차별적인 학살, 그리고 긴 침묵이었다.
--- p.108
단순히 잔인한 일이 벌어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너무 슬픈 일이라서 과거사가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소해 보이는 차별, 혐오, 국가권력의 억압이 8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으니 기억되어야 한다.
여전히 국가는 강 정마을 해군기지, 제2공항 건설과 같은 갈등이 생겨날 때 강자의 논리로 제주도민을 억압하려 하고 있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육지에서도 ‘빨갱이’라는 단어는 상대를 비난할 때 자주 소환된다.
예컨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 빨갱이라 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희생된 노동자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요구해도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이 문제였는지 정확히 알고 기억해야 한다.
--- p.136
제주의 바다는 이제 평화의 섬이 되었지만, 과거 이곳에 서 일어난 사건들은 평화의 섬 제주의 아이러니한 역사를 여실히 드러낸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 사태와 1954년 9월 21일까지 이어진 7년간의 무력 충돌과 대량 학살을 포함한 참혹한 사건이었다.
당시 많은 제주도민의 목숨과 삶이 무참히 빼앗겼다.
--- p.141
제주4.3기념관에 가면 이름 없는 비석인 ‘백비’가 덩그러니 놓인 곳이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사건의 성격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4.3사건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사건, 누군가는 봉기, 누군가는 사태, 누군가는 학살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우린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4.3사 건의 성격을 규정하고 백비에 이름을 새겨 넣어 억울하게 죽 임당한 혼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p.156
이번 제주 평화여행을 통해 나는 ‘평화’라는 단어가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실천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깊이 깨달았다.
평화로운 삶과 사회란 결코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온전히 마주하고, 그 아픔을 기억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제주4.3사건이 남긴 상처는 여전히 이곳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그들의 아픔과 슬픔은 단순히 역사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삶과 정신 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그 기억을 이어받아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 p.169
나는 그저 여행을 즐겼고, 내일 시작될 다크투어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주도의 자연을 감상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어떻게 그런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을까? 어떻게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람들이 무참히 희생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 p.176
당시의 사람들은 국가가 주는 공포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곤을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고,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대신 말해줄 사람도 없었다.
‘빨갱이’라는 단어는 그들을 두 번 죽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했고, 죽은 자들은 이름도 남기지 못했다.
--- p.190
너븐숭이4.3기념관 앞에는 너븐숭이4.3유적지가 있다.
그곳에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해주는 애기무덤들이 남아 있다.
아기들이 무엇을 알기에 또 무얼 했기에 죽어야 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죽음을 결정했던 지휘부와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긴 사람들은 아기들이 죽어야 할 이유를 알았을까? 난 그들 역시 모른다고 본다.
죽어야 할 이유가 없는 아기들은 제 꿈도 맘껏 펼쳐보지도, 마음껏 놀아보지도 못한 채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너븐숭이에 여전히 남아 있다.
--- p.196
제주 평화여행은 나에게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그것은 단지 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평화란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역사를 되짚고 그 고통 속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공감과 책임에서 시작되며, 그것은 단 순한 감정적 연민을 넘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 p.208
북촌리 참사가 일어난 것은 1949년 1월 17일이다.1 그날 새벽 너븐숭이 고갯길을 지나가던 군인 차가 무장대의 습격 을 받아 군인 2명이 희생되자 그 보복으로 대참사가 시작되 었다.
그리고 17~18일 이틀간 4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총살되었단다.
노형리와 가시리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희생자가 나온 마을이다.
이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 이전부터 제주4.3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제주도에 도착한 토벌대에서는 북촌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예컨대 북촌리 참사가 일 어나기 2년 전(1947년 8월 13일), 북촌리에는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항의하다가 경찰을 폭행한 사건이라든가, 그다음 해(1948년 6월 16일), 포구에 피항한 배를 조사하던 마을 청년들이 우도 지서 경찰 2명을 살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으로 북촌리 마을 청년들은 토벌대의 눈을 피해 마을을 떠나거나 한라산 자락에 숨어 지냈단다.
물론 무장대에 합류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12월 16일, 북촌리에서 첫 주민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다.
민보단을 조직해서 마을을 지키고 토벌대에 협조하던 주민 22명이 군토벌대에 끌려가 총살을 당한 것이다
--- p.222~223
출판사 리뷰
애도와 공감을 통해 제주4.3사건을
“겪은 자”의 입장에서 현재 “겪지 않은 자”가
사는 이 세계를 바라보았다.
사람(人間)과 삶(世界)에 관한 평화 담론을 함께 나눈다.
창밖으로 겨울눈이 내릴 때 써 내려간 이 마중물이 공감(共感)의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는 지혜이다.이 책은 우연의 점들을 찍어 나가다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되고 ‘함께’ 되어진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평화를 그리다』출판
공감(共感)의 공간으로서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의 대화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단장 문경숙)이 첫 번째 단행본으로『평화를 그리다』(동남풍, 2025)를 출판하였다.
지난 2024년 12월 제주 평화여행 이후에, 사람(人間)과 삶(世界)에 관한 평화 담론을 담아냈으며 현장에서의 배움을 통한 비판적 사고와 인문적 성찰의 감각을 평화를 꿈꾸고 희망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평화를 그리다』는 여러 개의 ‘중요 의미’로 구성되었으며, 각 ‘중요 의미’는 서로 공감하고 공유함으로써 연결된다.
이야기들의 ‘중요 의미’는 평화, 비(悲), 마주한 기억, 아픔을 넘어, 새로움, 나를 위한, 고요한 약속, 과거의 폭력, 물음, 듣는다, 느림보 작가, 파도, 존엄, 작은 실천, 마주하다, 숨 쉬었을 뿐인데, 변하지 않는 사실, 봉합된 손가락, 통일의 이해 등이다.
세계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통일동아리 회장 김수민(역사교육과) 학생은 “제주4.3의 역사적 흔적은 책이나 문자가 아닌 바로 내 앞의 사람으로서 인식하게 해주었다며, 현재 사회가 정말 정의와 평화를 위한 건지 끊임없이 곱씹어봐야 한다.”는 의미를 ‘나를 위한 여행’을 주제로 담아내었다.
통일교육사업단 사무국장 전철후(생명교양교육원) 교수는 “과거가 만들어낸 현재의 이면에 숨겨진 평화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애도와 공감의 깊은 세계관에서 ‘겪은 자’의 기억을 ‘겪지 않은 자’의 기억으로 은유함으로서 새로움을 창조하고 생기 넘치는 사유로 이끄는 책이다.”며, “필자들의 지혜로움이 독자들과의 사유적 관계 맺음을 갖기 바란다.”고 책의 가치를 전했다.
“겪은 자”의 입장에서 현재 “겪지 않은 자”가
사는 이 세계를 바라보았다.
사람(人間)과 삶(世界)에 관한 평화 담론을 함께 나눈다.
창밖으로 겨울눈이 내릴 때 써 내려간 이 마중물이 공감(共感)의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함께’는 지혜이다.이 책은 우연의 점들을 찍어 나가다 서로 연결되어 선이 되고 ‘함께’ 되어진 지혜로운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평화를 그리다』출판
공감(共感)의 공간으로서 ‘겪은 자’와 ‘겪지 않은 자’의 대화
원광대학교 통일교육사업단(단장 문경숙)이 첫 번째 단행본으로『평화를 그리다』(동남풍, 2025)를 출판하였다.
지난 2024년 12월 제주 평화여행 이후에, 사람(人間)과 삶(世界)에 관한 평화 담론을 담아냈으며 현장에서의 배움을 통한 비판적 사고와 인문적 성찰의 감각을 평화를 꿈꾸고 희망하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평화를 그리다』는 여러 개의 ‘중요 의미’로 구성되었으며, 각 ‘중요 의미’는 서로 공감하고 공유함으로써 연결된다.
이야기들의 ‘중요 의미’는 평화, 비(悲), 마주한 기억, 아픔을 넘어, 새로움, 나를 위한, 고요한 약속, 과거의 폭력, 물음, 듣는다, 느림보 작가, 파도, 존엄, 작은 실천, 마주하다, 숨 쉬었을 뿐인데, 변하지 않는 사실, 봉합된 손가락, 통일의 이해 등이다.
세계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를 탐구하고 있는 통일동아리 회장 김수민(역사교육과) 학생은 “제주4.3의 역사적 흔적은 책이나 문자가 아닌 바로 내 앞의 사람으로서 인식하게 해주었다며, 현재 사회가 정말 정의와 평화를 위한 건지 끊임없이 곱씹어봐야 한다.”는 의미를 ‘나를 위한 여행’을 주제로 담아내었다.
통일교육사업단 사무국장 전철후(생명교양교육원) 교수는 “과거가 만들어낸 현재의 이면에 숨겨진 평화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였으며, 애도와 공감의 깊은 세계관에서 ‘겪은 자’의 기억을 ‘겪지 않은 자’의 기억으로 은유함으로서 새로움을 창조하고 생기 넘치는 사유로 이끄는 책이다.”며, “필자들의 지혜로움이 독자들과의 사유적 관계 맺음을 갖기 바란다.”고 책의 가치를 전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04월 03일
- 쪽수, 무게, 크기 : 244쪽 | 135*195*20mm
- ISBN13 : 9788962880588
- ISBN10 : 89628805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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