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Description
책소개
4·3 5·18 4·16 12·3… 누군가의 삶이 부서졌던 그날들 이후,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또 어떻게 나아져야 할까.
‘함께 회복하는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제시하는 책.
- 우원식 | 국회의장
2025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는 붉은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열세 명의 여성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모임 ‘열매’의 일원인 이들이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45년 만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서 용기 있는 행보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그러나 국가 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늘상 따라다니는 싸늘한 시선도 여전히 존재했다.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하느냐’ ‘그만 좀 하자, 진절머리 난다’ ‘얼마나 혜택을 받으려고 그러냐’ 등.
이 책은 그 오래된 ‘싸늘한 시선’을 향한 가슴 아픈 반박이자, 도전적인 제언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열매’의 자문의를 맡고 있는 정찬영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외에도 세월호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을 오랫동안 치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악몽이 긴 시간 후에도 끝나지 않는 이유와 해결책을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책에서 다양한 트라우마 감정들, 즉 외상적 슬픔, 독성 수치심, 산 자의 죄책감, 도덕적 손상 등이 실제로 어떤 양상으로 발현하며 이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일지,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이런 사건의 주역이 계속 나타나는 이유를 정신과 의사 특유의 관점으로 짚어보며, 정치인?종교인 나르시시스트와 그들의 추종자들이 얽히게 되는 메커니즘, 이를 막기 위한 구조적인 해법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방안에 대해 지금껏 어느 책에서도 들려주지 않았던 종합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점점 외집단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사회적 트라우마의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그가 제시하는 ‘탈 극단주의 센터’나 ‘시민 감정 교육’이란 해법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는 얼마나 나아졌을까.
또 어떻게 나아져야 할까.
‘함께 회복하는 민주주의’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 깊은 성찰을 제시하는 책.
- 우원식 | 국회의장
2025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는 붉은 꽃무늬 스카프를 두른 열세 명의 여성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모임 ‘열매’의 일원인 이들이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에 대해 45년 만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서 용기 있는 행보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그러나 국가 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늘상 따라다니는 싸늘한 시선도 여전히 존재했다.
‘진짜인지 어떻게 증명하느냐’ ‘그만 좀 하자, 진절머리 난다’ ‘얼마나 혜택을 받으려고 그러냐’ 등.
이 책은 그 오래된 ‘싸늘한 시선’을 향한 가슴 아픈 반박이자, 도전적인 제언이다.
이 책의 저자이자 ‘열매’의 자문의를 맡고 있는 정찬영은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외에도 세월호 참사,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비롯한 사회적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이들을 오랫동안 치유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들의 악몽이 긴 시간 후에도 끝나지 않는 이유와 해결책을 깊이 연구할 수 있었다.
그는 책에서 다양한 트라우마 감정들, 즉 외상적 슬픔, 독성 수치심, 산 자의 죄책감, 도덕적 손상 등이 실제로 어떤 양상으로 발현하며 이를 회복할 방법이 무엇일지, 피해자들의 인터뷰와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나아가, 이런 사건의 주역이 계속 나타나는 이유를 정신과 의사 특유의 관점으로 짚어보며, 정치인?종교인 나르시시스트와 그들의 추종자들이 얽히게 되는 메커니즘, 이를 막기 위한 구조적인 해법을 살펴본다.
무엇보다,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방안에 대해 지금껏 어느 책에서도 들려주지 않았던 종합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점점 외집단에 대한 혐오가 깊어지고, 사회적 트라우마의 피해자를 2차 가해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그가 제시하는 ‘탈 극단주의 센터’나 ‘시민 감정 교육’이란 해법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프롤로그_ 과거와 현재의 선한 별들
1부_ 과거가 나를 돕는다
1장_ 남은 자의 가눌 길 없는 비탄
지속적 비탄 장애의 이유 | 슬픔이 삶을 물들이다 | 외상적 애도 경험 | 슬픔은 사라짐과 영원함 사이의 갈등 | 애도에 모범이 있는가
2장_ 산 자의 죄책감을 품고 산다는 것
생존자 죄책감은 어디로 이어질까 | 도움을 거부하는 마음 |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 | 희생의 의미를 찾을 때
3장_ 독성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최적의 수치심을 향해 | 죽음과 가장 가까운 감정 | 학대는 수치심을 영혼에 새긴다 | 수치심과 격노의 위험한 사이클 |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건강한 사회적 감정이 되려면
4장_ 우리에게 트라우마란
기억에 일어난 지진, PTSD | 트라우마 치료의 핵심 기제 | 그날, 집단 기억은 어떻게 작동했는가 |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 | 트라우마를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가 | 끈기 있는 관심과 주의력
5장_ 내란성 울분 장애와 계엄군의 도덕적 손상
내란성 울분 장애 | 12·3 계엄이 불러온 트라우마의 재경험 | 부당한 명령에 의한 도덕적 손상 | 베트남전의 악몽과 회복적 정의 | 사람이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
6장_ 우리 곁의 나르시시스트들
어둠의 삼위일체 | 무엇이 세상을 정글로 만드는가 | 나르시시스트의 유형 | 나르시시스트가 만들어지기까지 |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2부_ 과거가 우리를 돕는다
7장_ 정치인 나르시시스트와 영적 나르시시스트
권력은 나르시시스트의 치트 키 | 나르시시스트가 왕국을 만드는 법 | 영적 나르시시스트와 마주친 오월 어머니 | 유일신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하면 | 나르시시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8장_ 계엄군의 성폭력이 만든 섬
계엄에 고개 드는 성폭력 | 국가 폭력과 손잡은 성폭력의 파괴성 | 몸과 마음, 생애에 끼친 영향들 | 존엄성을 산산조각 내는 성 고문 | 치유로 가는 길
9장_ 공동체를 뒤흔드는 국가 폭력 트라우마
트라우마의 물결 효과 | 국가 폭력이 새긴 상흔 | 세대를 건너 남겨지는 유산 | 생채기 깊은 나무들로 우거진 숲
3부_ 과거가 미래를 돕는다
10장_ 고통은 의미를 얻을 때 극복된다
우리 사회의 파편화 현상 | 치유의 물결 효과 | 집단 증언 치유와 집단 간 증언 치유 | 탈 극단주의 센터의 필요성 | 시민 감정 교육이 가져오는 효과들 | 회복탄력성의 생태계를 위하여
에필로그_ 선한 시민들과 함께 지은 지혜의 전당
끝나지 않은 이야기_ 12·3 계엄이 실행됐다면
주
1부_ 과거가 나를 돕는다
1장_ 남은 자의 가눌 길 없는 비탄
지속적 비탄 장애의 이유 | 슬픔이 삶을 물들이다 | 외상적 애도 경험 | 슬픔은 사라짐과 영원함 사이의 갈등 | 애도에 모범이 있는가
2장_ 산 자의 죄책감을 품고 산다는 것
생존자 죄책감은 어디로 이어질까 | 도움을 거부하는 마음 |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 | 희생의 의미를 찾을 때
3장_ 독성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최적의 수치심을 향해 | 죽음과 가장 가까운 감정 | 학대는 수치심을 영혼에 새긴다 | 수치심과 격노의 위험한 사이클 | 이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 건강한 사회적 감정이 되려면
4장_ 우리에게 트라우마란
기억에 일어난 지진, PTSD | 트라우마 치료의 핵심 기제 | 그날, 집단 기억은 어떻게 작동했는가 | 트라우마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 | 트라우마를 공감하는 것이 가능한가 | 끈기 있는 관심과 주의력
5장_ 내란성 울분 장애와 계엄군의 도덕적 손상
내란성 울분 장애 | 12·3 계엄이 불러온 트라우마의 재경험 | 부당한 명령에 의한 도덕적 손상 | 베트남전의 악몽과 회복적 정의 | 사람이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
6장_ 우리 곁의 나르시시스트들
어둠의 삼위일체 | 무엇이 세상을 정글로 만드는가 | 나르시시스트의 유형 | 나르시시스트가 만들어지기까지 | 완전히 피할 수 없다면
2부_ 과거가 우리를 돕는다
7장_ 정치인 나르시시스트와 영적 나르시시스트
권력은 나르시시스트의 치트 키 | 나르시시스트가 왕국을 만드는 법 | 영적 나르시시스트와 마주친 오월 어머니 | 유일신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가 결합하면 | 나르시시스트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8장_ 계엄군의 성폭력이 만든 섬
계엄에 고개 드는 성폭력 | 국가 폭력과 손잡은 성폭력의 파괴성 | 몸과 마음, 생애에 끼친 영향들 | 존엄성을 산산조각 내는 성 고문 | 치유로 가는 길
9장_ 공동체를 뒤흔드는 국가 폭력 트라우마
트라우마의 물결 효과 | 국가 폭력이 새긴 상흔 | 세대를 건너 남겨지는 유산 | 생채기 깊은 나무들로 우거진 숲
3부_ 과거가 미래를 돕는다
10장_ 고통은 의미를 얻을 때 극복된다
우리 사회의 파편화 현상 | 치유의 물결 효과 | 집단 증언 치유와 집단 간 증언 치유 | 탈 극단주의 센터의 필요성 | 시민 감정 교육이 가져오는 효과들 | 회복탄력성의 생태계를 위하여
에필로그_ 선한 시민들과 함께 지은 지혜의 전당
끝나지 않은 이야기_ 12·3 계엄이 실행됐다면
주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내가 증언 치유를 하며 만난 이들은 장이 끊어질 듯한 상실의 슬픔과 영혼을 산산조각 내는 트라우마의 고통 앞에서도 선한 분투를 잃지 않는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사연 속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만큼이나 많은 선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비상 스위치가 켜진 듯한 이타심, 역사의 격랑에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헌신했던 초월성, 산 자의 죄책감과 책임감, 그것들과 상호작용 하는 집단 기억을, 그들은 번번이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적 자원이자 집단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녀가 죽임당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가해자는 권력을 쥐고 있었다.
유가족에 대한 감시와 차별은 지속되었고, 고인이 된 젊은 자녀에게 찍힌 ‘폭도’와 ‘빨갱이’라는 낙인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감정은 제한되었고, 투쟁과 양육 이외의 삶의 영역에서 의미를 쉽게 찾지 못했다.
부모로서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거대하고 강렬한 비탄의 심연을 숨죽여 헤아리다 보면 나는 현기증이 나거나 멍해지곤 했다.
--- 「1장_남은 자의 가눌 길 없는 비탄」 중에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김경철 님의 어머니 임금단 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 자신이 마이신을 과량 투여하여 아들의 청력 장애를 유발했고, 그 때문에 소리를 못 들어서 계엄군이 수를 쓴다고 더 때리는 바람에 아들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임금단 님은 그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다.
사건의 원인이 된 복잡한 여러 요인 중 자신과 관련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이런 심리 기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계엄군의 살인적인 폭력에 의한 사망을 상상하고 그로 인한 비탄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것보다, 혹시나 다르게 펼쳐질 수 있었을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끔찍한 사망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에는 사건을 되돌려 고인을 살려내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속 깊이 오래 지속되는 생존자 죄책감은 PTSD의 일부로 간주되어 간과되는 경우가 많고, 완화도 쉽지 않다.
--- 「2장_산 자의 죄책감을 품고 산다는 것」 중에서
그들의 초기 인생사를 듣고 있으면 방임, 학대, 성폭력, 빈곤, 학업 중단, 부모 부재, 사회적 지지 부재와 같은 성장기 역경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탈 성매매 여성들 중에는 제대로 사랑받고 교육받을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성매매를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청소년이거나 막 청소년기를 지난 그들을 성매매하도록 유인하고 이용한 성매매 사업주와 알선인들, 그 과정에서 성폭행이나 폭행ㆍ감금을 저지른 가해자들, 성 구매자들, 성장기 역경에 책임이 있는 부모들은 탈 성매매 여성들만큼의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는다.
수치심은 왜 각자의 책임만큼 지분을 가져가지 않는가? 나는 다양한 폭력이나 성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생존자를 치료할 때 이 불공평한 분담을 ‘수치심의 불공정’이라 일컫고 이에 주목해 왔다.
탈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수치심의 크기를 가늠하거나 그것에 공감하려고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가 죽어라”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경화 님 부모의 수치심은 부모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치심보다는 자신의 체면을 걱정하는 수치심에 가까웠을 것이다.
--- 「3장_독성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중에서
5·18 생존자와 유가족 들은 12·3 계엄으로 트라우마를 재경험해야 했다.
계엄령 포고 후 고 문재학 님의 어머니 김길자 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준 위로는 얼마 가지 못했어요.
대통령이 느닷없이 TV에 나와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떠들잖아요.
날벼락이었어요.
아들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데.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손이 떨렸어요.
대통령이랑 계엄군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나도 모르게 지팡이로 몇 번이나 내려칠 뻔했어요.
장갑차가 도로에 나오고 헬기에서 내린 군인들이 국회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다 보니 가슴이 방망이질 쳤어요.
5·18이 다시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계엄이라고 하면 그날(5월 27일) 아침이 생각나요.
오메! 도청 앞에서 사람 다 죽여 놓고 즈그가 승리했다고 군홧발 쾅쾅 울리면서 군가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요.”
--- 「4장_내란성 울분 장애와 계엄군의 도덕적 손상」 중에서
여느 조직에서도 나르시시스트 리더와 핵심 추종자들의 유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조력자들을 특별한 애정 표현이나 칭찬, 분노나 수치심 혹은 죄책감 유발, 학대, 가스라이팅 등으로 조종한다.
조력자는 나르시시스트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일시적으로 나르시시스트가 소중히 여겨주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특히 연애 초기의 나르시시스트는 로맨틱한 사랑을 폭탄처럼 퍼붓기도 한다.
또한 조력자들은 매력적이거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도 실제보다 더 성공적이고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
그 결과, 조력자들은 나르시시스트의 경비원, 공격견, 수습 요원, 응원단, 청소부 등의 역할을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의 인정에 중독되어 있다면 조력자는 나르시시스트에 빠진 중독자라 할 수 있다.
--- 「7장_정치인 나르시시스트와 영적 나르시시스트」 중에서
면담을 하면서 그가 새로 기억해 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성폭력을 당할 때 차 열쇠를 계엄군에게서 건네받아 그들이 못 찾게 의자 밑으로 얼른 밀어 넣어두었던 기억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이들 엄마라고, 살려달라고 적극적으로 간청했던 행동과 함께 그가 적극적인 생존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그의 행동은 그의 삶과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의 의미에 반복적으로 머물렀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 이들일수록 트라우마의 회복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민희 님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를 지켜냈다.
그리고 결국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 점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반복해서 전했다.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 「8장_계엄군의 성폭력이 많든 섬」 중에서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효과가 사회 전체에 퍼지는 물결 효과는 역으로도 일으킬 수 있다.
즉, 트라우마의 치유도 사회에 긍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증언하고 치유되는 경험은 다시 가족과 공동체에 희망과 회복력을 퍼뜨릴 수 있다.
이는 집단 치료, 피해자 공동체 활동, 집단 증언 치료나 사회적 기억 활동, 시민 사회 연대와 함께할 때 비로소 제대로 일어난다.
그들의 사연 속에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만큼이나 많은 선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비상 스위치가 켜진 듯한 이타심, 역사의 격랑에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헌신했던 초월성, 산 자의 죄책감과 책임감, 그것들과 상호작용 하는 집단 기억을, 그들은 번번이 보여주었다.
나는 이것이 우리 민주주의를 지키는 사회적 자원이자 집단 정체성의 뿌리가 되었다고 믿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녀가 죽임당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가해자는 권력을 쥐고 있었다.
유가족에 대한 감시와 차별은 지속되었고, 고인이 된 젊은 자녀에게 찍힌 ‘폭도’와 ‘빨갱이’라는 낙인은 수십 년간 지속되었다.
감정은 제한되었고, 투쟁과 양육 이외의 삶의 영역에서 의미를 쉽게 찾지 못했다.
부모로서 그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거대하고 강렬한 비탄의 심연을 숨죽여 헤아리다 보면 나는 현기증이 나거나 멍해지곤 했다.
--- 「1장_남은 자의 가눌 길 없는 비탄」 중에서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김경철 님의 어머니 임금단 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흐느꼈다.
그는 아들이 어렸을 때 자신이 마이신을 과량 투여하여 아들의 청력 장애를 유발했고, 그 때문에 소리를 못 들어서 계엄군이 수를 쓴다고 더 때리는 바람에 아들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믿었다.
임금단 님은 그 죄책감에 평생 시달렸다.
사건의 원인이 된 복잡한 여러 요인 중 자신과 관련된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괴로워했던 것이다.
이런 심리 기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계엄군의 살인적인 폭력에 의한 사망을 상상하고 그로 인한 비탄을 정면에서 마주하는 것보다, 혹시나 다르게 펼쳐질 수 있었을 가능성을 시뮬레이션해 보며 자신을 탓하는 편이 덜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막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끔찍한 사망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느끼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심리에는 사건을 되돌려 고인을 살려내고 싶은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이렇게 마음속 깊이 오래 지속되는 생존자 죄책감은 PTSD의 일부로 간주되어 간과되는 경우가 많고, 완화도 쉽지 않다.
--- 「2장_산 자의 죄책감을 품고 산다는 것」 중에서
그들의 초기 인생사를 듣고 있으면 방임, 학대, 성폭력, 빈곤, 학업 중단, 부모 부재, 사회적 지지 부재와 같은 성장기 역경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난 탈 성매매 여성들 중에는 제대로 사랑받고 교육받을 수 있었는데도, 스스로 성매매를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청소년이거나 막 청소년기를 지난 그들을 성매매하도록 유인하고 이용한 성매매 사업주와 알선인들, 그 과정에서 성폭행이나 폭행ㆍ감금을 저지른 가해자들, 성 구매자들, 성장기 역경에 책임이 있는 부모들은 탈 성매매 여성들만큼의 수치심을 경험하지 않는다.
수치심은 왜 각자의 책임만큼 지분을 가져가지 않는가? 나는 다양한 폭력이나 성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생존자를 치료할 때 이 불공평한 분담을 ‘수치심의 불공정’이라 일컫고 이에 주목해 왔다.
탈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수치심의 크기를 가늠하거나 그것에 공감하려고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가 죽어라”라는 말 뒤에 숨어 있던 경화 님 부모의 수치심은 부모로서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수치심보다는 자신의 체면을 걱정하는 수치심에 가까웠을 것이다.
--- 「3장_독성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중에서
5·18 생존자와 유가족 들은 12·3 계엄으로 트라우마를 재경험해야 했다.
계엄령 포고 후 고 문재학 님의 어머니 김길자 님에게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준 위로는 얼마 가지 못했어요.
대통령이 느닷없이 TV에 나와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떠들잖아요.
날벼락이었어요.
아들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데.
머리끝까지 화가 나고 손이 떨렸어요.
대통령이랑 계엄군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나도 모르게 지팡이로 몇 번이나 내려칠 뻔했어요.
장갑차가 도로에 나오고 헬기에서 내린 군인들이 국회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다 보니 가슴이 방망이질 쳤어요.
5·18이 다시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계엄이라고 하면 그날(5월 27일) 아침이 생각나요.
오메! 도청 앞에서 사람 다 죽여 놓고 즈그가 승리했다고 군홧발 쾅쾅 울리면서 군가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요.”
--- 「4장_내란성 울분 장애와 계엄군의 도덕적 손상」 중에서
여느 조직에서도 나르시시스트 리더와 핵심 추종자들의 유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는 조력자들을 특별한 애정 표현이나 칭찬, 분노나 수치심 혹은 죄책감 유발, 학대, 가스라이팅 등으로 조종한다.
조력자는 나르시시스트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일시적으로 나르시시스트가 소중히 여겨주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특히 연애 초기의 나르시시스트는 로맨틱한 사랑을 폭탄처럼 퍼붓기도 한다.
또한 조력자들은 매력적이거나 성공적인 삶을 사는 듯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도 실제보다 더 성공적이고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
그 결과, 조력자들은 나르시시스트의 경비원, 공격견, 수습 요원, 응원단, 청소부 등의 역할을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의 인정에 중독되어 있다면 조력자는 나르시시스트에 빠진 중독자라 할 수 있다.
--- 「7장_정치인 나르시시스트와 영적 나르시시스트」 중에서
면담을 하면서 그가 새로 기억해 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성폭력을 당할 때 차 열쇠를 계엄군에게서 건네받아 그들이 못 찾게 의자 밑으로 얼른 밀어 넣어두었던 기억이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이들 엄마라고, 살려달라고 적극적으로 간청했던 행동과 함께 그가 적극적인 생존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였다.
그의 행동은 그의 삶과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의 의미에 반복적으로 머물렀다.
트라우마 상황에서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한 이들일수록 트라우마의 회복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민희 님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를 지켜냈다.
그리고 결국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냈다.
그 점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반복해서 전했다.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 「8장_계엄군의 성폭력이 많든 섬」 중에서
트라우마의 부정적인 효과가 사회 전체에 퍼지는 물결 효과는 역으로도 일으킬 수 있다.
즉, 트라우마의 치유도 사회에 긍정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가 증언하고 치유되는 경험은 다시 가족과 공동체에 희망과 회복력을 퍼뜨릴 수 있다.
이는 집단 치료, 피해자 공동체 활동, 집단 증언 치료나 사회적 기억 활동, 시민 사회 연대와 함께할 때 비로소 제대로 일어난다.
--- 「10장_고통은 의미를 얻을 때 극복된다」 중에서
출판사 리뷰
독성 수치심, 외상적 애도, 산 자의 죄책감, 도덕적 손상…
지독한 트라우마 감정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TV에 나와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떠들잖아요.
날벼락이었어요.
아들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데.
(…) 5?18이 다시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계엄이라고 하면 그날(5월 27일) 아침이 생각나요.
오메! 도청 앞에서 사람 다 죽여 놓고 즈그가 승리했다고 군홧발 쾅쾅 울리면서 군가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요.” “내란을 일으킨 사람을 어째서 석방시킨대요.
그 사람 나온다고 하니 심장마비 올 것 같애요.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줄 모르겠어요.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 ‘동호’의 모티브가 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님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후, 저자와 나눈 통화에서 이런 심정을 토로했다.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중에 트라우마 재경험을 호소한 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무려 45년이 지난 일임에도 그들에게 국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대체 손에 잡히지조차 않고 측정마저 불가능한 이 상처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그들을, 또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지난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국가 폭력 및 사회적 참사 피해자를 치유하고 연구해 온 저자는 이들이 시달리는 트라우마 감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상세히 분석했다.
그중 스스로를 자기 의심과 자기부정으로 마비시키는 ‘독성 수치심’은 방어 기제로서 ‘분노’를 불러오고 이 격노가 또다시 수치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특히 헤어나오기 힘든 악순환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작 수치심의 가해자는 책임만큼 지분을 가져가지 않으면서 피해자 홀로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을 지켜보며, 이 불공평한 분담을 ‘수치심의 불공정’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자기혐오에 빠진 피해자에게 이 개념을 제시하면서 그들 스스로 자신을 친절하고 이해심 있게 대하는 자기연민을 갖도록 이끈다.
그는 부당한 명령이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비윤리적인 경험을 하게 된 이들에게 발생하는 ‘도덕적 손상’에도 주목했다.
주로 전투에 참여해 인명 살상 등의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이 증상은 12?3 계엄 후 계엄군들에게도 일부 나타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외에도 사랑하는 대상을 폭력적이거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잃게 되었을 때 극심한 슬픔으로 애도 반응이 중단되거나 왜곡되는 ‘외상적 애도’와, 희생자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자들이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며, 각각의 회복 방안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트라우마는 물결처럼 번져나간다
이는 역으로도 가능하다.
회복도, 결국 물결처럼 온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그치지 않는다.
자연재해, 대형 참사, 국가 폭력 사건, 테러나 전쟁 등이 발생한 후 공동체 내에는 우울증, 불안, PTSD 등 정신건강 문제가 물결처럼 번져 나간다.
뒤이어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 역시 생존자 죄책감을 비롯해 트라우마 감정에 시달릴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전 국민이 느낀 짙은 절망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듯 트라우마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집단에게까지 번져 가는 것을 ‘물결 효과’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역으로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 치료와 피해자의 공동체 활동, 집단 증언이나 사회적 기억 활동, 시민 사회의 연대 등이 필수적이다.
피해자들의 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과 ‘의미 찾기’이다.
즉, 내가 겪은 고통이 실제로 발생한 것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이 희생이 어떤 식으로든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증언 치유는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는 피해자에게 감정적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여러 참여자의 기억이 서로 덧대어지면서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으로 검증된 기억’으로 전환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무고함과 고통의 생애사를 공동체가 인정해 주는 사회적 증명이 일어난다.
한 발 더 나아가, 피해 집단과 가해 집단, 서로 다른 피해 집단, 갈등 양측 공동체 등이 만나는 ‘집단 간 증언 치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부작용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동안 악마화하고 불신했던 상대와의 인간적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런 집단 트라우마를 관장하고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사회적 트라우마 사건들의 피해자들을 두고 ‘그만 좀 하자, 진절머리 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대답이 숨어 있다.
지금껏 국가는 ‘그만 좀 하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 것이 없었다.
참사 이후 진상 규명은 관련 분야에 문외한인 유가족들의 몫이 되어버린 경우가 허다했고, 국가 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은폐와 부인주의로 일관하곤 했다.
그럼에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무분별한 2차 가해를 퍼부었다.
제대로 치유된 적 없으므로 그들의 상처는 곪아 갔고, 분노는 쌓여갔다.
그 결과, 그들의 생애는 글로 다 담지 못할 만큼 무너져 내렸고, 그 영향은 자녀 세대에까지 뻗어갔다.
저자는 묻는다.
“살해 협박과 윤간 후 유산, 냄새나 군인 등의 단서에 의한 트라우마 재경험, 성 생활 장애와 부부 불화, 직업 기능의 손상, 우울증, 수치심과 두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같은 그의 긴 생애사적 고통을, 국가는 과연 피해 범위에 담아낼 수 있을까?”(8장 계엄군의 성폭력이 만든 섬/p.203)
책에는 실제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서로 연결되는 동안 집단 트라우마로 인한 분열과 갈등도 서서히 통합되어 갈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느리지만 단단한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것 혹은 내 가족이나 이웃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숨죽이고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지독한 트라우마 감정은, 결코 사적이지 않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TV에 나와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떠들잖아요.
날벼락이었어요.
아들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데.
(…) 5?18이 다시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계엄이라고 하면 그날(5월 27일) 아침이 생각나요.
오메! 도청 앞에서 사람 다 죽여 놓고 즈그가 승리했다고 군홧발 쾅쾅 울리면서 군가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요.” “내란을 일으킨 사람을 어째서 석방시킨대요.
그 사람 나온다고 하니 심장마비 올 것 같애요.
내 마음을 어떻게 할 줄 모르겠어요.
이 나라가 어떻게 될까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등장인물 ‘동호’의 모티브가 된 고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님은 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후, 저자와 나눈 통화에서 이런 심정을 토로했다.
실제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중에 트라우마 재경험을 호소한 이는 한둘이 아니었다.
무려 45년이 지난 일임에도 그들에게 국가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대체 손에 잡히지조차 않고 측정마저 불가능한 이 상처는 왜 이토록 오랫동안 그들을, 또 우리를 괴롭히는 것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지난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오랜 시간 국가 폭력 및 사회적 참사 피해자를 치유하고 연구해 온 저자는 이들이 시달리는 트라우마 감정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상세히 분석했다.
그중 스스로를 자기 의심과 자기부정으로 마비시키는 ‘독성 수치심’은 방어 기제로서 ‘분노’를 불러오고 이 격노가 또다시 수치심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특히 헤어나오기 힘든 악순환을 보여준다.
저자는 정작 수치심의 가해자는 책임만큼 지분을 가져가지 않으면서 피해자 홀로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 내는 것을 지켜보며, 이 불공평한 분담을 ‘수치심의 불공정’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자기혐오에 빠진 피해자에게 이 개념을 제시하면서 그들 스스로 자신을 친절하고 이해심 있게 대하는 자기연민을 갖도록 이끈다.
그는 부당한 명령이나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비윤리적인 경험을 하게 된 이들에게 발생하는 ‘도덕적 손상’에도 주목했다.
주로 전투에 참여해 인명 살상 등의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이 증상은 12?3 계엄 후 계엄군들에게도 일부 나타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외에도 사랑하는 대상을 폭력적이거나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잃게 되었을 때 극심한 슬픔으로 애도 반응이 중단되거나 왜곡되는 ‘외상적 애도’와, 희생자들을 먼저 보내고 남은 자들이 느끼는 ‘생존자 죄책감’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다루며, 각각의 회복 방안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트라우마는 물결처럼 번져나간다
이는 역으로도 가능하다.
회복도, 결국 물결처럼 온다
사회적 트라우마는 개인에게 그치지 않는다.
자연재해, 대형 참사, 국가 폭력 사건, 테러나 전쟁 등이 발생한 후 공동체 내에는 우울증, 불안, PTSD 등 정신건강 문제가 물결처럼 번져 나간다.
뒤이어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이들 역시 생존자 죄책감을 비롯해 트라우마 감정에 시달릴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지켜보며 전 국민이 느낀 짙은 절망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듯 트라우마가 그것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집단에게까지 번져 가는 것을 ‘물결 효과’라고 한다.
저자는 이것을 역으로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집단 치료와 피해자의 공동체 활동, 집단 증언이나 사회적 기억 활동, 시민 사회의 연대 등이 필수적이다.
피해자들의 회복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정’과 ‘의미 찾기’이다.
즉, 내가 겪은 고통이 실제로 발생한 것임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이 희생이 어떤 식으로든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적 차원의 치유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차원의 움직임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증언 치유는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이는 피해자에게 감정적 지지를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여러 참여자의 기억이 서로 덧대어지면서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으로 검증된 기억’으로 전환되도록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무고함과 고통의 생애사를 공동체가 인정해 주는 사회적 증명이 일어난다.
한 발 더 나아가, 피해 집단과 가해 집단, 서로 다른 피해 집단, 갈등 양측 공동체 등이 만나는 ‘집단 간 증언 치유’도 눈여겨볼 만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부작용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동안 악마화하고 불신했던 상대와의 인간적 연결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런 집단 트라우마를 관장하고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사회적 트라우마 사건들의 피해자들을 두고 ‘그만 좀 하자, 진절머리 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건네는 대답이 숨어 있다.
지금껏 국가는 ‘그만 좀 하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 것이 없었다.
참사 이후 진상 규명은 관련 분야에 문외한인 유가족들의 몫이 되어버린 경우가 허다했고, 국가 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이를 책임져야 할 국가는 은폐와 부인주의로 일관하곤 했다.
그럼에도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은 피해자들에게 무분별한 2차 가해를 퍼부었다.
제대로 치유된 적 없으므로 그들의 상처는 곪아 갔고, 분노는 쌓여갔다.
그 결과, 그들의 생애는 글로 다 담지 못할 만큼 무너져 내렸고, 그 영향은 자녀 세대에까지 뻗어갔다.
저자는 묻는다.
“살해 협박과 윤간 후 유산, 냄새나 군인 등의 단서에 의한 트라우마 재경험, 성 생활 장애와 부부 불화, 직업 기능의 손상, 우울증, 수치심과 두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과 같은 그의 긴 생애사적 고통을, 국가는 과연 피해 범위에 담아낼 수 있을까?”(8장 계엄군의 성폭력이 만든 섬/p.203)
책에는 실제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생생한 인터뷰가 고스란히 실려 있다.
저자는 우리가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서로 연결되는 동안 집단 트라우마로 인한 분열과 갈등도 서서히 통합되어 갈 것이며, 그것이 민주주의로 가는 느리지만 단단한 길이라고 이야기한다.
내 것 혹은 내 가족이나 이웃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숨죽이고 이 책을 펼쳐보길 권한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2월 01일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500g | 146*215*19mm
- ISBN13 : 9791198068477
- ISBN10 : 1198068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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