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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감각으로 : 클랑쿤스트 Klangkunst
모든 감각으로 : 클랑쿤스트 Klangkunst
Description
책소개
사운드 아트(Sound Art)로는 번역되지 못한 클랑쿤스트(Klangkunst)의 음(音)

“클랑쿤스트(Klangkunst) :
삶과 자연, 소리-미학적 실험실에서 작곡된 사운드는 시각적 오브제 예술로 간주되며, 정교하게 배치된 공간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감각하고 다르게 보게되는 것, 그 사이에서의 발견과 놀라움.
클랑쿤스트(Klangkunst)는 하나의 상호 감각적 예술로써, 새로운 질문들을 던지며 새로운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현대미술은 기존의 미술이 가지고 있는 관습과 질서, 규범을 깨며 새로운 장르를 출현했다.
그것은 다른 관점과 실험, 재료로 아방가르드의 정신을 실천했고, 다른 감각과의 협업까지 시도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사운드 아트, 즉 ‘소리로 이루어지는 미술작품’이다.
음악가가 아닌 시각예술가가 주체가 되어 청각과 시각을 함께 사용한 사운드 아트는, 안타깝게도 국내에 부분적인 정의(시각예술과 청각예술의 협업 등)나, 백남준, 라운셴버그, 존 케이지 등의 대표 작가 외에는 크게 알려진 바가 없다.


미술과 음악장르가 협업하여 탄생한 현대미술 장르 사운드 아트의 어원과 의미는 독일어 클랑쿤스트(Klangkunst)에서 그 태생을 찾아볼 수 있다.(한국의 ‘미술’ 또한 영미권의 art가 아닌 독일어 kunst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클랑쿤스트의 번역어인 ‘사운드 아트’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소리 예술’ 정도로 직역할 수 있겠으나, 클랑(klang)이라는 단어에는 단순히 ‘소리’ 외에 ‘음조’, ‘청’ 등의 좀더 소리의 원소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사운드 아트는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자 자연스럽게 한국에 정착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사운드 아트’의 본거지이자 현재까지도 활발한 사운드 아트 창작 씬인 독일에서의 클랑쿤스트는, 엮은 이 오현주의 관점에서는 좀 더 까다롭고, 용어와 장르의 본질을 파고들만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클랑쿤스트는 분명 사운드 아트와는 다른 성질을 띠기 때문이다.


이 책은 클랑쿤스트의 본고장인 독일과 사운드 아티스트의 마음의 고향 베를린에서 클랑쿤스트의 초기 정신과 형태를 형성했다고 평가 받는 5명의 전범을 인터뷰하여 엮은 책이다.
5명의 전범은 각각 소리, 공간, 미디어, 신체 등 현대미술의 화두와 결합되어 있다.


이 책은 한국 출판에 전무하다시피한 사운드 아트, 혹은 클랑쿤스트의 출판되었으며, 보다 넓은 지평을 열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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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7 서문
사운드 아트(Sound Art) 또는 클랑쿤스트(Klangkunst)
― 오현주
13 “저는 종아리보다 무릎을 통해 소리를 더 잘 듣죠.”
― Bernhard Leitner(베른하르트 라이트너)
51 “클랑쿤스트(Klangkusnt)는 제 삶입니다.”
― Christian Kubisch(크리스티나 쿠비쉬)
99 “우리의 귀도 조율해야하죠.”
― Arnold Dreyblatt(아놀드 드레이블랫)
133 “모든 음향 및 시각적 사건들은 주제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 Franz Martin Olbrisch(프란츠 마틴 올브리쉬)
181 “클랑쿤스트(Klangkunst), 그것은 개척해야 할 분야입니다.”
― Helga de la Motte-Haber(헬가 드 라 모테-하버)
195 후문
동독(DDR)에서 유래된 용어 - ‘클랑쿤스트’(Klangkunst)
― Stefan Fricke(슈테판 프리케)

책 속으로
하루는 슈테판 프리케(Stefan Fricke)에게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클랑쿤스트(Klangkunst)는 무엇이고 사운드 아트(Sound Art)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실, 그 어떠한 용어보다도 ‘예술’이 더 중요하죠.”

2011년 음악과 미술 분야를 접목한 예술, 그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에 오른 독일행.
그 뿌리 중 한 곳인 독일에서 수많은 전시와 페스티벌을 다니며 체험한 사운드 아트.
그러나 이 분야에 대해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 이 씬의 아티스트로서 작업하면 할수록 / 다른 아티스트-작곡가들의 작품을 접하면 접할수록 /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풀리지 않을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소리와 예술을 접목한 장르를 ‘사운드 아트’라고 부르며, 그 종류 또한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 안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여러 소리/음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인 작곡 또한 사운드 아트일 수 있으며 이에 따른 비디오 아트를 동시에 선보이는 것 또한 같은 개념이 될 수 있다.
즉, 청각 중심의 실험적인 예술 형태나, 시각과 청각의 두 감각에서 인지할 수 있는 예술 등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아티스트들이나 행사 주최자들의 예술적 뿌리에 따라 방향성이 크게 나뉘는 현상 또한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용어 사용이 과도하게 이루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한국에서 사용하는 이 개념 ‘사운드 아트’는 국제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자 자연스럽게 한국에 정착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운드 아트의 본거지 중 하나이자 활발한 씬을 가진 독일에서 본 클랑쿤스트의 기준은 나에게 좀 더 까다롭게만 느껴졌고, 그렇기에 이 용어와 장르의 본질부터 다시 파악하고 싶었다.
이는 분명, ‘사운드 아트’와는 다른 성질을 띄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온 질문 중 하나, 클랑쿤스트(Klangkunst)는 도대체 무엇인가.

---「오현주 ‘서문’」중에서

슈테판 프리케: 역사적으로 많은 뿌리를 가진 장르이죠.
존 케이지는 신음악(新音樂,Neue Musik/현대음악)에서도 새로운 것, 클랑쿤스트(Klangkunst), 라디오포닉 아르스 아쿠스티카 및 시각 예술의 수많은 트렌드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죠.
그렇다면 작가님은 클랑쿤스트 형성의 또 다른 뿌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이는 학자들에 의해 종종 연구되어 왔는데요, (놀랍지 않게도) 미래주의와 1920년대의 다다이즘 일부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죠.
물론 1960년대 플럭서스에도 발견됩니다.
이 견해에 동의할 수 있지만, 또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고요.

크리스티나 쿠비쉬: 저는 모든 역사적 문화학 측면을 제외, 이를 완전히 다른 뿌리로 봅니다.
제 예술가 친구 한스 페터 쿤(Hans Peter Kuhn, *1952), 루돌프 율리우스(Rudolf Julius, 1939-2011) 그리고 저, 우리 모두가 독일 북부 출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많은 소리들이 있는 곳이 아니죠.
그곳의 풍경은 평평합니다.
항상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지만 큰 변함은 거의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멋진 소리들이 존재했죠.
이 지역은 우리가 하는 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많은 것이 파괴되고 모든 부분들이 격변의 상태인 전후(戰後) 시기였다는거죠.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말해주는 특별한 전기(傳記)가 되고요.
1970년대에는 여전히 무언가에 적대적 태도를 갖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반대할 수도, 음악 교육에 반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서 남성에 반대할 수도 있었죠.
저항할 수 있는 대상은 정말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이 저항은 창의적일 수도, 좋은 결과로 이끌 수도 있었죠.
오늘날 특히 젊은 예술가들에게 그것은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죠.
---「크리스티나 쿠비쉬 와의 인터뷰」중에서

오현주: 예술적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베른하르트 라이트너: 호기심입니다.
모든 예술 작품의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내재된 호기심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호기심은 “무엇이 가능한가?” 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호기심이 없다면 예술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는 예술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죠.
공간 속 몸의 몸짓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춤에 관심이 없거나 발레는 불필요한 것이라 여겼을 겁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예를 들어 무용수들의 공간적 변형에 탐구심이 생긴다면 큰 기쁨으로 이를 바라보고 무언가 발견하게 되겠죠.
호기심과 발견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베른하르트 라이트너와의 인터뷰」중에서

오현주: 작업할 때 작가님의 미술과 음악이 서로 영향을 끼치나요?

아놀드 드레이브랫: 당신은 작곡가입니까? 아니면 시각 예술가입니까? 세상은 여전히 이렇게 구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죠.
저를 뮤지션으로 아는 사람들은 제가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일부는 제 예술적 활동이 시간 낭비라며 음악에만 집중해야한다 생각하기도 하죠.
미술계 사람들은 제 음악을 ‘귀엽다’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전에는 이 두 가지 포지션으로 조금 장난도 치곤 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내년 암스테르담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음악/사운드의 공연을 말하는 것인지, 예술 쪽 공연을 말하는 것인지”를 물어봤죠.
“음악입니다.” 라는 대답을 받으면, 저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라고 말한 다음 전화를 끊는 듯한 소리를 냈어요.
그런 다음 다시 전화를 들고 “안녕하세요! 음악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죠?”라고 말하죠.


제가 이렇게 하면 다들 마치 쌍둥이를 대하는 것처럼 완전히 혼란스러워해요.
사실 음악을 만드는 일과 미술 작업을 하는 일이 서로 너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운 부분이긴 합니다.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는 젊은 세대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서서히 바뀌고 있지만 대부분의 기관들은 여전히 이런 식으로 대합니다.
최근에는 오케스트라의 워밍업 세션(warm up session), 즉 조율 과정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Warm-Up’(워밍업, 2021)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미니멀리스트인 저는 이 부분에 관심이 많죠.
아쉽게도 이러한 조율은 사실 훨씬 더 길게 잡고 해야하는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러한 조율 과정을 시각 예술의 맥락에서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설치물로 만들었죠.
지금은 한 오케스트라와 이를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논의 중에 있고요.
이는 미술에서 시작한 프로젝트가 음악으로 발전한 프로젝트 중 하나입니다.
음악적 맥락, 그리고 미술적 맥락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변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죠.
---「아놀드 드레이블랫과의 인터뷰」중에서

출판사 리뷰
베른하르트 라이트너 (Bernhard Leitner)

1938년 오스트리아 포랄베르크주의 펠트키르히(Feldkirch, Vorarlberg)에서 태어나 티롤주의 수도인 인스부르크(Insbruck, Tirol)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1956년부터 1963년까지 비엔나 국립공과대학(Technische Universitat Wien)에서 건축학을 공부했으며, 디플롬 학위 취득 후 파리에서 3년간 파리의, 그 이후 비엔나의 건축사무소에서 근무했다.
1968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뉴욕시 도시계획국에서 도시 디자이너로 활동했으며, 1972년,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부교수로 임명되어 1981년까지 강의 활동을 이어갔다.
1982년부터 4년간 베를린(서독)에서 예술가로 활동했으며, 1987년 비엔나 국립응용예술대학교(Universitat fur angewandte Kunst Wien)의 크로스 미디어 아트학과 교수로 임명, 2005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현재 비엔나와 니더외스터라이히주 가인도르프(Gaindorf, Niederosterreich)에서 작업하고 있으며, 1993년에 옛 제분 공장을 개조한 대형 스튜디오와 건축가이자 조명 디자이너인 그의 아들 루카스 라이트너(Lukas Leitner)와 함께 실험 및 전시 공간인 &톤라움할레&(Tonraumhalle)를 2022년에 구축했다.
베른하르트 라이트너는 2016년부터 독일연방국 예술진흥기관인 독일예술원(Akademie der Kunste)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 중에 있다.
www.bernhardleitner.at

크리스티나 쿠비쉬 / Christina Kubisch

1944년 독일 브레멘 출신으로 1967/68년 슈투트가르트 국립예술대학(Akademie der Bildenden Kunste Stuttgart)의 존더보그(K.R.H.
Sonderborg)에게 페인팅을, 1969년부터 1974년까지 독일 함부르크, 오스트리아 그라츠, 스위스 취리히의 음악대학에서 플루트와 음악을 전공했으며,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취리히 순수미술학교(Freie Kunstschule Zurich)에서 스위스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제르쉬 슈타우페어(Serge Stauffer)에게 미술을 배웠다.
1974년 이탈리아 밀라노로 이주, 밀라노 베르디국립음악원(Conservatorio Giuseppe Verdi)의 프랑코 도나토니(Franco Donatoni)에게 작곡을 사사하였으며, 전자음악을 공부하여 1976년 디플롬(Diplom)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부터 1980년까지 이탈리아 예술가 파브리지오 플레시(Fabrizio Plessi)와 함께 작업을 했으며, 1987년 베를린(서독)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1989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 위치한 얀 반 아이크 아카데미(Jan van Eyck-Akademie)에서, 1990/91년 독일 뮌스터 국립예술대학(Kunstakademie Munster),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서베를린 국립예술대학(Hochschule der Kunste Berlin), 1994/95년에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Paris)에 출강하였다.
1994년 독일 자브뤼켄의 국립예술대학(Hochschule der Bildenden Kunste Saar)의 오디오 비주얼 아트 교수로 임명되어 2013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쳤다.
크리스티나 쿠비쉬는 1997년부터 독일연방국 예술진흥기관인 독일예술원(Akademie der Kunste)의 위원으로 임명, 현재 베를린에서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https://christinakubisch.de

아놀드 드레이블랫 / Arnold Dreyblatt

1953년 뉴욕 출생인 그는 1970년부터 1974년까지 뉴욕주 뉴팔츠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New Paltz)에서 문학과 미디어 비평(1974년 B.A.)을 올버니 위치한 뉴욕주립대학교(University at Albany, SUNY)에서 조엘 차다베(Joel Chadabe)에게 전자 음악 작곡을 공부했다.
1974/75년 버팔로(Buffalo, NY)에 있는 뉴욕주립대학교(University at Buffalo, SUNY)의 미디어 연구 센터에서 비디오 아트를 공부(1976년 M.A.),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 모튼 펠트만(Morton Feldman), 존 케이지(John Cage)의 여름작곡워크샵 과정에도 참여했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 다시 뉴욕으로 오면서, 작곡가 라 몬테 영(La Monte Young)의 조수로 일하며 개인 레슨을 받았고, 비디오 아티스트 구보타 시게코(Shigeko Kubota)와 백남준의 조수로도 활동했다.
1979년에 그는 앙상블 &The Orchestra of Excited Strings&(신나는 현의 오케스트라) 창단하여 활동했으며,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코네티컷(Connecticut)에 위치한 웨슬리언 대학교(Wesleyan University)에서 앨빈 루시어(Alvin Lucier)에게 작곡을 배웠다.(1982년 M.A.) 1983년부터 1986년까지 서베를린과 부다페스트에서 해외 프로젝트 장학금으로 체류하였으며, 1987년부터 1989년까지 벨기에의 리에주(Liege)에서 살았다.
그는 1989년부터 현재까지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다.
1996년에는 뤼네부르크 국립대학교(Universitat Luneburg), 1998/99년에는 베를린 바이쎈제 국립예술대(Kunsthochschule Berlin-Weißensee),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자브뤼켄(Saarbrucken) 국립조형예술대학(Hochschule der Bildenden Kunste Saar)에서 미디어 아트를 가르쳤다.
2009년에는 독일 킬(Kiel)의 무테지우스 국립예술대학(Muthesius Kunsthochschule)에서 미디어 아트 교수로 임명되어 2022년까지 가르쳤으며, 2007년부터 독일연방국 예술진흥기관인 독일예술원(Akademie der Kunste)의 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www.dreyblatt.net

프란츠 마틴 올브리쉬 / Franz Martin Olbrisch

1952년 독일 뮐 하임 안 데어 루르(Mullheim an der Ruhr) 출생인 그는 측량사 직업교육을 받았으며, 그 이후 1979년부터 1985년까지 서베를린 국립예술대학교(Hochschule der Kunste in West-Berlin)의 작곡과 프랑크 미하엘 바이어(Frank Michael Beyer)에게 사사했다.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개신교 교회음악학교(Kirchenmusikschule der evangelischen Landeskirche Berlin-Brandenburg)에서 음악 이론을 가르쳤으며, 1988년부터 2008년까지 베를린 국립예술대학교에서 작곡을 비롯한 스튜디오 테크닉에 대한 강의를 맡았다.
1999년부터 2004년까지 베를린 국립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at Berlin)에서 오디오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현대음악다름슈타트(Darmstadt)에서 열리는 국제현대음악제의 신음악을 위한 국제여름강좌(Darmstadter Ferienkurse)에서 여러 차례 강의를 진행했다.
2008년에 드레스덴 국립음악대학(Hochschule fur Musik Carl Maria von Weber)의 작곡과 교수로 임명되어 현재까지 강의를 진행하며 제자 육성에 힘쓰고 있다.
동시에 2020년까지 동대학 전자 음악 스튜디오 디렉터를 맡아왔으며,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국제현대음악협회(ISCM) 독일지부 부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독일 작센주 예술원 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프란츠 마틴 올브리쉬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아내인 비디오 아티스트인 베아테 올브리쉬(Beate Olbrisch, *1951)와 함께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http://olbrisch-online.de

헬가 드 라 모테-하버 / Helga de la Motte-Haber

1938년 독일 루드빅스하펜 암 라인(Ludwigshafen am Rhein) 출생으로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독일 마인츠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심리학(Diplom)을 공부했다.
그 후 독일 함부르크에서 학업을 이어갔으며,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베를린 국립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at Berlin)에 출강했다.
(1971년 독일교수자격 Habilitation 취득) 1972년에 쾰른 교육대학교(Padagogische Hochschule Koln)의 교수직을 시작으로, 1978년부터 2005년까지 베를린 국립공과대학교(Technische Universitat Berlin)의 시스템 음악학 교수로 역임하였다.
1982년에는 독일 음악심리학회(Deutsche Gesellschaft fur Musikpsychologie)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2015년에는 독일 하노버 국립 음악, 연극 및 미디어 대학(Hochschule fu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헬가 드 라 모테-하버는 1980년부터 사운드 아트 연구에 전념해 왔으며, 이 주제에 관한 수많은 학술 출판물을 집필하고 편집했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4년 11월 18일
- 쪽수, 무게, 크기 : 200쪽 | 288g | 130*205*11mm
- ISBN13 : 9791197785375
- ISBN10 : 11977853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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