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전들
Description
책소개
2023년 전미 도서상 수상작
〈그 어떤 책과도 닮지 않은, 미국 문학의 강력하고 새로운 목소리〉
검열된 욕망과 정체성, 어긋난 기억의 매혹적인 복원
퀴어 문학의 가장 강렬한 현재
삭제되고 억눌린 것들에 의해 길을 잃는 것 또는 흡수되는 것 ─ 때로는 홀리는 것, 때로는 넘치는 것 ― 373면
데뷔작 We the Animals(2011)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올라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퀴어 작가로 자리매김한 저스틴 토레스의 장편소설 『암전들』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데뷔작으로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가장 중요한 책〉에 올랐으며, 단 두 편의 소설로 영미권 문학에서 〈퀴어 문학〉을 다시 한번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했다는 평을 듣는 그는 1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암전들』로 2023년 전미 도서상을 거머쥐었다.
『암전들』은 〈문화적 유산의 시적이고 풍부한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낸 걸작이다.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검열된 퀴어들의 목소리에 관한 아카이브 자료를 독특하게 재구성하는 이 소설은 실존하는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Sex Variants: A Study in Homosexual Patterns』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초 퀴어 사회학자 잰 게이가 실제 퀴어들로부터 수집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획기적인 연구는 이후 〈성적 변종 연구 위원회〉에 의해 전용되었고, 그의 이름은 묻혀 버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떠돌이들의 집, 사막의 〈팰리스〉에 살고 있는 노인 후안 게이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이름 없는 화자에게 검게 칠해진 페이지로 얼룩진 이 연구서를 넘겨준다.
후안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세대가 다른 두 퀴어는 암전된 역사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 가기 시작하는데…….
〈그 어떤 책과도 닮지 않은, 미국 문학의 강력하고 새로운 목소리〉
검열된 욕망과 정체성, 어긋난 기억의 매혹적인 복원
퀴어 문학의 가장 강렬한 현재
삭제되고 억눌린 것들에 의해 길을 잃는 것 또는 흡수되는 것 ─ 때로는 홀리는 것, 때로는 넘치는 것 ― 373면
데뷔작 We the Animals(2011)로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로 올라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퀴어 작가로 자리매김한 저스틴 토레스의 장편소설 『암전들』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데뷔작으로 『뉴욕 타임스』 선정 〈21세기 가장 중요한 책〉에 올랐으며, 단 두 편의 소설로 영미권 문학에서 〈퀴어 문학〉을 다시 한번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했다는 평을 듣는 그는 12년 만에 발표한 장편소설 『암전들』로 2023년 전미 도서상을 거머쥐었다.
『암전들』은 〈문화적 유산의 시적이고 풍부한 재발견〉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낸 걸작이다.
역사 속에서 지워지고 검열된 퀴어들의 목소리에 관한 아카이브 자료를 독특하게 재구성하는 이 소설은 실존하는 연구서 『성적 변종들: 동성애 패턴 연구Sex Variants: A Study in Homosexual Patterns』에서 출발한다.
20세기 초 퀴어 사회학자 잰 게이가 실제 퀴어들로부터 수집한 인터뷰를 담고 있는 이 획기적인 연구는 이후 〈성적 변종 연구 위원회〉에 의해 전용되었고, 그의 이름은 묻혀 버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있는 떠돌이들의 집, 사막의 〈팰리스〉에 살고 있는 노인 후안 게이는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이름 없는 화자에게 검게 칠해진 페이지로 얼룩진 이 연구서를 넘겨준다.
후안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세대가 다른 두 퀴어는 암전된 역사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 가기 시작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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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블랙아웃 속에서, 나는 기억했다, 아니면 다시 살았다, 그리고 때로는 내 것이 아닌 삶을 다시 살았다.
--- p.35
밤이 깊었을 무렵,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렇게 떨면 안 됩니다.」 내가 몸을 떨고 있는지도 몰랐다.
간호사가 말했다.
「줄 수 있는 게 있어요.」 뭘요? 묻고 싶었다.
당신이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요? 나는 그저 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간호사가 내 팔의 통통한 부분을 꼬집도록 내버려두었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음.
--- p.43
꿈과 현실이 혼재하는 상태에서, 지난 삶으로 이루어진 몽상 속에서 문득 깨어나며 나는 맙소사,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때때로 그 말을 입 밖에 내기도 했는지, 간혹 후안은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아무 일도 없단다, 네네.
그저 네가 지닌 없음뿐, 이라고 대답했다.
--- p.95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그리고 계속 타오르도록, 네네.」
--- p.112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 p.117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어.
나 자신을 벗어나는 것.
솟아오르는 것.
--- pp.128-129
반쯤은 진짜이고, 반쯤은 잠든 정신의 재배열이니…….
이 비슷한 말이었는데.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땐 경고처럼 느껴지더구나 - 그곳, 잘못 기억한 과거, 탈출하는 법이 기억나지 않는, 반쯤은 꿈인 그 구역으로 또다시 돌아가 길을
잃지 말라는 경고.
--- p.142
「파피의 손마디를 뒤덮은 거미 다리와 닮은 검은 털…….
뺨을 후려치던 손의 회전력…….
마미, 울부짖음, 전기, 마스카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짤막한 동요 한 소절,〈아로스 콘 레체, 세 케레 카사르〉…….
신체적 차이가 빚어낸 모든 사소한 충격과 잔여들…… 나, 누이들, 형, 어머니의 뼈밖에 없는 몸속에 강제로 욱여넣어진 낯섦, 감각할 수 있는 괴팍함…… 피부 아래 갇혀 있다가, 어느 날 파열되어 튀어나오고 게거품을 일으켜도 놀랍지 않은…….
그리고 네네, 지금도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형언할 수 없는 중심으로부터 너무나 먼 동시에 너무나 가깝고, 때문에 놀라운 동시에 또 실망스러워.」
--- p.157
10년.
나는 10년이나 그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 사실이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사람이어서다.
만성적 상실자chronic loser.
--- p.177
부르건 부르지 않았건, 어제가 이곳에 있다.
나는 이 말을 묘비명으로 새겨 주겠다고 농담했고, 곧바로 후회했다.
시력검사 받을 때 기억나니, 네네? 손가락 하나를 관자놀이 한쪽에 대고는 서서히 눈 쪽으로 움직였지.
과거는 늘 바로 그곳, 네 주변 시야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법이다.
--- p.35
밤이 깊었을 무렵, 간호사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그렇게 떨면 안 됩니다.」 내가 몸을 떨고 있는지도 몰랐다.
간호사가 말했다.
「줄 수 있는 게 있어요.」 뭘요? 묻고 싶었다.
당신이 나한테 뭘 줄 수 있는데요? 나는 그저 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간호사가 내 팔의 통통한 부분을 꼬집도록 내버려두었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없음.
--- p.43
꿈과 현실이 혼재하는 상태에서, 지난 삶으로 이루어진 몽상 속에서 문득 깨어나며 나는 맙소사,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거지? 생각하곤 했다.
어쩌면 때때로 그 말을 입 밖에 내기도 했는지, 간혹 후안은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분명한 목소리로, 아무 일도 없단다, 네네.
그저 네가 지닌 없음뿐, 이라고 대답했다.
--- p.95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그리고 계속 타오르도록, 네네.」
--- p.112
책을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 p.117
나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었어.
나 자신을 벗어나는 것.
솟아오르는 것.
--- pp.128-129
반쯤은 진짜이고, 반쯤은 잠든 정신의 재배열이니…….
이 비슷한 말이었는데.
이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땐 경고처럼 느껴지더구나 - 그곳, 잘못 기억한 과거, 탈출하는 법이 기억나지 않는, 반쯤은 꿈인 그 구역으로 또다시 돌아가 길을
잃지 말라는 경고.
--- p.142
「파피의 손마디를 뒤덮은 거미 다리와 닮은 검은 털…….
뺨을 후려치던 손의 회전력…….
마미, 울부짖음, 전기, 마스카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던 짤막한 동요 한 소절,〈아로스 콘 레체, 세 케레 카사르〉…….
신체적 차이가 빚어낸 모든 사소한 충격과 잔여들…… 나, 누이들, 형, 어머니의 뼈밖에 없는 몸속에 강제로 욱여넣어진 낯섦, 감각할 수 있는 괴팍함…… 피부 아래 갇혀 있다가, 어느 날 파열되어 튀어나오고 게거품을 일으켜도 놀랍지 않은…….
그리고 네네, 지금도 내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형언할 수 없는 중심으로부터 너무나 먼 동시에 너무나 가깝고, 때문에 놀라운 동시에 또 실망스러워.」
--- p.157
10년.
나는 10년이나 그 목걸이를 하고 다녔다.
그 사실이 중요한 건, 내가 무엇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리는 사람이어서다.
만성적 상실자chronic loser.
--- p.177
부르건 부르지 않았건, 어제가 이곳에 있다.
나는 이 말을 묘비명으로 새겨 주겠다고 농담했고, 곧바로 후회했다.
시력검사 받을 때 기억나니, 네네? 손가락 하나를 관자놀이 한쪽에 대고는 서서히 눈 쪽으로 움직였지.
과거는 늘 바로 그곳, 네 주변 시야 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수면으로 올라오는 법이다.
--- p.371
출판사 리뷰
삭제된 텍스트, 조각난 기억, 구멍난 역사를 가로지르며
어둠 속에서 경로를 다시 짓기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는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 117면
원제 〈블랙아웃blackouts〉은 소설 속에서 암전, 일시적 기억 상실, 글씨를 검게 지우는 것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띤다.
책을 펼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검은 마커로 칠해진 페이지들을 마주한다.
이 삭제된 텍스트의 중심에는 실존 연구서 『성적 변종들』과 그 뒤편의 잊힌 이름, 잰 게이가 있다.
1930년대 퀴어 연구가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사회학자 잰 게이는 3백 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삶과 욕망에 관한 증언들을 수집한다.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만 출판할 수 있었던 제도적 한계로 인해 게이는 자신의 연구를 타인의 손에 넘기게 된다.?그는 이 연구를 마침내 세상에 꺼내 놓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 증언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잰 게이의 이름은 지워지고, 퀴어들의 증언은 병리학적 진단들로 채워지며 욕망은 장애로 번역된다.
자신을 증언하러 온 이들은 흐릿하게 처리된 누드 사진으로 남는다.
소설은 바로 그 지워진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둠, 구멍, 암전으로부터 생겨난 공백을 매혹적으로 전유하는 이 소설은 허구를 통해 억압된 역사의 빈틈 사이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복원해 낸다.
수많은 이미지와 사례 연구, 영화 대본과 플래시백이 얽히는 독특한 형식은 독자를 순식간에 끌어들이고, 삭제된 텍스트 사이 불안정하게 잘려 나간 말들은 낯설음과 더불어 시적이고 어긋난 음조로 되살아난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어둠 속에서만 드러나고 다가설 수 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다채롭게 그려 낸다.
우리의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
퀴어적인 의미의 〈다시 읽는〉 방법
그러나 약속해 주렴, 네네.
뒤틀고, 거짓말하고, 지어내서 비활성인 것을 세공하겠다고.
약속할게요, 후안.
― 147면
떠돌이들의 집이자 사막의 폐허인 〈팰리스〉의 작은 방 안, 오갈 곳 없는 이름 없는 화자는 죽어 가는 노인 후안 게이를 돌보게 된다.
후안은 검게 칠해진 페이지로 얼룩진 연구서『성적 변종들』을 〈네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화자에게 넘겨준다.
후안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세대가 다른 두 퀴어는 이 암전된 역사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 가기 시작한다.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시절에 나누었던 〈교정〉하는 말들에 관한 지독한 농담, 후안이 유년 시절 잰 게이와 함께했던 나날, 네네가 어린 성 노동자로 남성들을 거침없이 유혹했던 것들과 같이 조각난 기억들을 주고받는다.
네네는 자신의 존재와 욕망을 질문하고, 후안은 광범위한 퀴어 역사 - 푸에르토리코 인종과 이민, 병리화와 차별의 역사를 드러내며 또 하나의 증언을 이어 간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채우는 것은 사소하고 감각적인 것들이다.
머릿속을 맴도는 동요, 빛나는 아버지의 목걸이,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 줄 것 같은 경찰관의 이미지, 비싼 재킷을 입고 짖는 개, 더없이 〈퀴어적〉으로 다가왔던 동화의 아름답게 속삭이는 구절들…….
마치 부분이 날아간 『성적 변종들』 의 페이지처럼, 그들은 조각나고 어긋난 이야기들을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엮어 낸다.
수시로 암전되었다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욕망과 기억이라는 장소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후안과 네네의 이야기들은 허구를 지어내는 일이다.
이 〈뒤틀고, 지어내는 거짓말〉들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를, 침묵으로 강요받은 역사를, 삭제되고 누락된 것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기억과 욕망, 정체성 사이로 떠오르고 충돌하는 불협화음 같은 말들은 그 자체로 〈내내 노래하는, 그러므로 내내 불타오를 수 있는〉복원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잰 게이의 누락된 역사를 포함하여 접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장소로 다가가는 새로운 경로를, 역사와 과거를 퀴어적인 의미로 다시 읽는 방법을, 〈삭제되고 억눌린 것들에 의해 길을 잃는 것.
때로는 홀리는 것, 때로는 풍요로워지는〉 방법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내내 노래하도록, 내내 타오르도록
우리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걸 하나 알려 줄게.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어.
― 274~275면
토레스는 『암전들』 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잰 게이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퀴어 역사에 관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병리적인 설명이 가득하단 점이다.
또한 그 역사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것들 - 이 모든 일시적 유물들, 사진들, 편지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떤 맥락에 놓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것들에 관한 어려움이 있다.
(……) 그러나 나는 독자들로 하여금 모호함 속에 그저 머무르게 만들면서, 모든 것을 명확히 하려 들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더불어 과거가 지닌 서사적인 잠재력에 관한 호기심을 불붙이고 싶었다.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거는 방식에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 송섬별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은 침묵을 강요받은 역사를 말하는 법에 관한 책이자,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듣는 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각주,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암전 속에서 그것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줄곧 생각하며 옮겼다.
퀴어의 역사는 곧 회복과 복원의 역사이며, 우리는 그 다정한 수수께끼를 서로 전한다.〉 이처럼 『암전들』은 어둡게 꺼진 곳, 쓸린 흔적들로부터 이야기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도 충만해질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와 만들어 낸 과거 사이, 유령 같은 그림자와 진실의 번뜩이는 순간들로 가득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쥐여 준다.
옮긴이의 한마디
『암전들』은 침묵을 강요받은 역사를 말하는 법에 관한 책이자,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듣는 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각주,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암전 속에서 그것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줄곧 생각하며 옮겼다.
퀴어의 역사는 곧 회복과 복원의 역사이며, 우리는 그 다정한 수수께끼를 서로 전한다.
독자들도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 나란히 누운 몸들이 되어서, 끝까지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서 경로를 다시 짓기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는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 117면
원제 〈블랙아웃blackouts〉은 소설 속에서 암전, 일시적 기억 상실, 글씨를 검게 지우는 것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띤다.
책을 펼치면 우리는 가장 먼저 검은 마커로 칠해진 페이지들을 마주한다.
이 삭제된 텍스트의 중심에는 실존 연구서 『성적 변종들』과 그 뒤편의 잊힌 이름, 잰 게이가 있다.
1930년대 퀴어 연구가이자 레즈비언이었던 사회학자 잰 게이는 3백 명이 넘는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삶과 욕망에 관한 증언들을 수집한다.
권위 있는 남성 의사의 이름으로만 출판할 수 있었던 제도적 한계로 인해 게이는 자신의 연구를 타인의 손에 넘기게 된다.?그는 이 연구를 마침내 세상에 꺼내 놓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 증언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잰 게이의 이름은 지워지고, 퀴어들의 증언은 병리학적 진단들로 채워지며 욕망은 장애로 번역된다.
자신을 증언하러 온 이들은 흐릿하게 처리된 누드 사진으로 남는다.
소설은 바로 그 지워진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둠, 구멍, 암전으로부터 생겨난 공백을 매혹적으로 전유하는 이 소설은 허구를 통해 억압된 역사의 빈틈 사이로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복원해 낸다.
수많은 이미지와 사례 연구, 영화 대본과 플래시백이 얽히는 독특한 형식은 독자를 순식간에 끌어들이고, 삭제된 텍스트 사이 불안정하게 잘려 나간 말들은 낯설음과 더불어 시적이고 어긋난 음조로 되살아난다.
소설은 바로 그러한 어둠 속에서만 드러나고 다가설 수 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다채롭게 그려 낸다.
우리의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
퀴어적인 의미의 〈다시 읽는〉 방법
그러나 약속해 주렴, 네네.
뒤틀고, 거짓말하고, 지어내서 비활성인 것을 세공하겠다고.
약속할게요, 후안.
― 147면
떠돌이들의 집이자 사막의 폐허인 〈팰리스〉의 작은 방 안, 오갈 곳 없는 이름 없는 화자는 죽어 가는 노인 후안 게이를 돌보게 된다.
후안은 검게 칠해진 페이지로 얼룩진 연구서『성적 변종들』을 〈네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화자에게 넘겨준다.
후안이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세대가 다른 두 퀴어는 이 암전된 역사 위로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며 자신들의 삶과 사랑을, 기억과 이야기를 이어 가기 시작한다.
정신 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시절에 나누었던 〈교정〉하는 말들에 관한 지독한 농담, 후안이 유년 시절 잰 게이와 함께했던 나날, 네네가 어린 성 노동자로 남성들을 거침없이 유혹했던 것들과 같이 조각난 기억들을 주고받는다.
네네는 자신의 존재와 욕망을 질문하고, 후안은 광범위한 퀴어 역사 - 푸에르토리코 인종과 이민, 병리화와 차별의 역사를 드러내며 또 하나의 증언을 이어 간다.
한편 그들의 대화를 채우는 것은 사소하고 감각적인 것들이다.
머릿속을 맴도는 동요, 빛나는 아버지의 목걸이, 이곳 아닌 다른 어딘가로 나를 데려가 줄 것 같은 경찰관의 이미지, 비싼 재킷을 입고 짖는 개, 더없이 〈퀴어적〉으로 다가왔던 동화의 아름답게 속삭이는 구절들…….
마치 부분이 날아간 『성적 변종들』 의 페이지처럼, 그들은 조각나고 어긋난 이야기들을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엮어 낸다.
수시로 암전되었다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욕망과 기억이라는 장소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후안과 네네의 이야기들은 허구를 지어내는 일이다.
이 〈뒤틀고, 지어내는 거짓말〉들은 고정된 것처럼 보이는 과거를, 침묵으로 강요받은 역사를, 삭제되고 누락된 것들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기억과 욕망, 정체성 사이로 떠오르고 충돌하는 불협화음 같은 말들은 그 자체로 〈내내 노래하는, 그러므로 내내 불타오를 수 있는〉복원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잰 게이의 누락된 역사를 포함하여 접근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장소로 다가가는 새로운 경로를, 역사와 과거를 퀴어적인 의미로 다시 읽는 방법을, 〈삭제되고 억눌린 것들에 의해 길을 잃는 것.
때로는 홀리는 것, 때로는 풍요로워지는〉 방법을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내내 노래하도록, 내내 타오르도록
우리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네가 잊지 말아야 할 걸 하나 알려 줄게.
모호한 것이 모조리 해소될 필요는 없어.
― 274~275면
토레스는 『암전들』 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잰 게이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퀴어 역사에 관해 가장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병리적인 설명이 가득하단 점이다.
또한 그 역사 속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것들 - 이 모든 일시적 유물들, 사진들, 편지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떤 맥락에 놓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것들에 관한 어려움이 있다.
(……) 그러나 나는 독자들로 하여금 모호함 속에 그저 머무르게 만들면서, 모든 것을 명확히 하려 들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었다.
더불어 과거가 지닌 서사적인 잠재력에 관한 호기심을 불붙이고 싶었다.
과거가 현재에 말을 거는 방식에 깊이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나아가 송섬별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은 침묵을 강요받은 역사를 말하는 법에 관한 책이자,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듣는 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각주,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암전 속에서 그것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줄곧 생각하며 옮겼다.
퀴어의 역사는 곧 회복과 복원의 역사이며, 우리는 그 다정한 수수께끼를 서로 전한다.〉 이처럼 『암전들』은 어둡게 꺼진 곳, 쓸린 흔적들로부터 이야기를 다시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모호함 속에서 길을 잃으면서도 충만해질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물려받은 과거와 만들어 낸 과거 사이, 유령 같은 그림자와 진실의 번뜩이는 순간들로 가득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쥐여 준다.
옮긴이의 한마디
『암전들』은 침묵을 강요받은 역사를 말하는 법에 관한 책이자,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그 이야기를 듣는 법에 관한 책이다.
우리의 진짜 이야기는 침묵, 은둔, 누락, 각주, 공백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암전 속에서 그것들을 구해 내기 위해서는 말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줄곧 생각하며 옮겼다.
퀴어의 역사는 곧 회복과 복원의 역사이며, 우리는 그 다정한 수수께끼를 서로 전한다.
독자들도 귀를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
어둠 속에 나란히 누운 몸들이 되어서, 끝까지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0월 20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416쪽 | 506g | 128*188*28mm
- ISBN13 : 9788932925448
- ISBN10 : 893292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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