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 직지설법 2
Description
책소개
곧장 마음을 가리켜 본래 성품을 깨닫게 하는 금강경 설법!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무심선원에서 공부인들을 지도하는 김태완 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달음으로 이끈다.
『금강경 직지설법 2』는 다수의 금강경 해설서와는 달리, 금강경의 구절을 해설하여 알음알이를 늘리거나 생각으로 이해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에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켜 보여 주고자 하는 것, 본래 마음을 깨닫고 체험하도록 계속 반복하여 가리키므로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이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명백한 것이지만, 의식의 대상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먼저 깨친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면서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빠른 지름길이다.
이 책은 본래 마음과 존재의 실상에 관해 바르게 알도록 다양한 비유와 설명으로 안내하며, 공부인들을 위한 도움말도 상세히 담고 있다.
공부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더라도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들이 뿌리 깊어서 지적해 주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김태완 선원장은 20년 이상 공부인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도움말을 전하며, 공부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무심선원에서 공부인들을 지도하는 김태완 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달음으로 이끈다.
『금강경 직지설법 2』는 다수의 금강경 해설서와는 달리, 금강경의 구절을 해설하여 알음알이를 늘리거나 생각으로 이해하게 하지 않는다.
대신에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켜 보여 주고자 하는 것, 본래 마음을 깨닫고 체험하도록 계속 반복하여 가리키므로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이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명백한 것이지만, 의식의 대상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먼저 깨친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면서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빠른 지름길이다.
이 책은 본래 마음과 존재의 실상에 관해 바르게 알도록 다양한 비유와 설명으로 안내하며, 공부인들을 위한 도움말도 상세히 담고 있다.
공부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더라도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들이 뿌리 깊어서 지적해 주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김태완 선원장은 20년 이상 공부인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도움말을 전하며, 공부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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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13.
여법수지분: 법에 알맞게 받아서 지닌다
14.
이상적멸분: 모양을 떠나 고요히 사라진다
15.
지경공덕분: 경을 지니면 공덕이 있다
16.
능정업장분: 업장을 잘 소멸시킨다
17.
구경무아분: 마침내 나는 없다
13.
여법수지분: 법에 알맞게 받아서 지닌다
14.
이상적멸분: 모양을 떠나 고요히 사라진다
15.
지경공덕분: 경을 지니면 공덕이 있다
16.
능정업장분: 업장을 잘 소멸시킨다
17.
구경무아분: 마침내 나는 없다
책 속으로
이것을 못 깨달았다고 해서 열등감 느낄 것도 없고, 깨달았다고 해서 잘났다고 생각할 것도 없고, 다 똑같아요.
이미 이렇게 있는 일입니다.
없는 걸 깨달으라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법상을 톡 두드리며) 누구나 똑같습니다.
똑같이 이것 하나가 있는 겁니다.
아무 특별한 게 없어요.
(손가락을 들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이 일 하나가 있을 뿐이에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뭐가 있으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다르니까 대단한 게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뭐 대단한 게 있겠습니까?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이 일 하나가 있을 뿐이에요.
이 하나.
다만 이 일 하나입니다.
--- p.83
우리한테는 근원적으로, 근본적으로 이 진실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손댈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원래부터 항상 이대로 있는 것이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통하면 영원에 통하는 겁니다.
시간 속에서 시간이 없는 영원함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시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 어제, 오늘, 이 속에서 살다가… 그것이 다 분별이거든요.
이것이 딱 통하면, 여기는 시간이 없어요.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영원함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죠.
영원함이라는 건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그래서 이것 하나가 있을 뿐이고 다른 법은 없습니다.
--- p.220
마음이 근본이고 근원이고, 여기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도 보고, 춥니 덥니 가려우니 온갖 느낌, 기분이 좋니 나쁘니, 온갖 욕망도 나오고, 하여튼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겁니다.
모든 일이 여기서 다 벌어지는 거예요.
마음 하나가 진짜란 말이에요.
정해진 모양이 없고 물질도 아니고, 공이라고 억지로 표현하죠.
그런데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에요.
모든 게 여기서 나타나고 있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죠.
어떤 모양이 정해진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이라고 하는 거예요.
방편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거고, 하여튼 이겁니다.
이것 하나.
공이라는 말도 하나의 방편이죠.
마음은 허공이구나,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방편의 말일 뿐입니다.
--- pp.222-223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자기가 툭 체험을 해서 이 자리에 제대로 안착되고 나서 보면, 원래 이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데, 단지 6식이라는 놈이 괜히 망상을 해서 안이 있고 밖이 있고,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망상하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꿈같은 망상일 뿐이고, 본래 항상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꿈도 그렇잖아요.
자기 방에 누워 자면서 꿈속에서는 온갖 곳을 다 왔다 갔다 하는데, 깨 보면 그냥 자기 방에 누워 있어요.
처음부터 왔다 갔다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법을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 p.272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다 보면 한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고 좋아했던 공(空)이란 놈이 마치 비눗방울이 사라지듯이 없어져 버려요.
깜짝 놀랍니다.
공이 없어지고 나니까 남은 건 분별 세계인 색(色)밖에 없어요.
예전에 살았던 세계.
내 공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나? 공부가 사라지고 내가 다시 예전 중생으로 돌아갔나? 처음에는 깜짝 놀라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 보면, 그게 아니라 온갖 분별되는 색 이 자체가 바로 공이에요.
공이 앞에 있고 색이 뒤에 있는 게 아니고, 분별 세계 자체가 그냥 그대로 공이에요.
그때 비로소, 이제 할 일이 없구나… 이제는 좋아할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고, 내가 법이라고 그렇게 추구할 게 없어져 버려요.
이것이 중도가 성취되는 거예요.
취하고 버리는 게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불법인 겁니다.
불이중도라고 공과 색이 딱 하나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더이상 할 게 없어요.
…… 색을 버리고 공을 따르는 게 아니고, 세간을 버리고 출세간으로 나가는 게 아닌, 세간이 바로 출세간이고, 중생이 바로 부처고, 색이 바로 공이고, 생사가 바로 열반이고, 번뇌가 바로 보리고… 이런 말들이 그대로 쫙 실현되는 거예요.
--- pp.294-295
공이라는 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고 살아 있는 거거든요.
공 자체가, 허공이 본질이에요.
허공이라는 게, 분별할 수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라는 겁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생명의 근원이고 진짜라는 거예요.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그 위에 현상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순간의 일이고,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라니까요.
항상 우주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똑같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매 순간순간 변해 가는데, 그건 모습이고 헛되고 허망한 거죠.
우주 자체에, 허공에 확실히 통해서 무한함 속에서 사는 게 충분히 익숙해지면, 그것도 생각이지만, ‘우주와 하나 되는, 우주라는 게 바로 우리의 본질이구나, 우주라는 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 살아 있는 우주구나, 우주는 애초에 변하는 게 아니구나, 늘 똑같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직접 체험해 봐야 하는 겁니다.
이미 이렇게 있는 일입니다.
없는 걸 깨달으라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고 본인에게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반드시 깨닫게 됩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법상을 톡 두드리며) 누구나 똑같습니다.
똑같이 이것 하나가 있는 겁니다.
아무 특별한 게 없어요.
(손가락을 들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이 일 하나가 있을 뿐이에요.
모든 사람이 똑같습니다.
뭐가 있으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다 다르니까 대단한 게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그런데 뭐 대단한 게 있겠습니까?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이 일 하나가 있을 뿐이에요.
이 하나.
다만 이 일 하나입니다.
--- p.83
우리한테는 근원적으로, 근본적으로 이 진실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없는 겁니다.
손댈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떻게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원래부터 항상 이대로 있는 것이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영원한 것이 이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통하면 영원에 통하는 겁니다.
시간 속에서 시간이 없는 영원함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시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 어제, 오늘, 이 속에서 살다가… 그것이 다 분별이거든요.
이것이 딱 통하면, 여기는 시간이 없어요.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어요.
영원함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죠.
영원함이라는 건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고, 앞도 없고, 뒤도 없고, 그래서 이것 하나가 있을 뿐이고 다른 법은 없습니다.
--- p.220
마음이 근본이고 근원이고, 여기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도 보고, 춥니 덥니 가려우니 온갖 느낌, 기분이 좋니 나쁘니, 온갖 욕망도 나오고, 하여튼 별의별 일이 다 벌어지는 겁니다.
모든 일이 여기서 다 벌어지는 거예요.
마음 하나가 진짜란 말이에요.
정해진 모양이 없고 물질도 아니고, 공이라고 억지로 표현하죠.
그런데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에요.
모든 게 여기서 나타나고 있으니 아무것도 없다고 할 수는 없죠.
어떤 모양이 정해진 게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이라고 하는 거예요.
방편으로 그렇게 이름을 붙인 거고, 하여튼 이겁니다.
이것 하나.
공이라는 말도 하나의 방편이죠.
마음은 허공이구나, 이렇게 하면 안 돼요.
방편의 말일 뿐입니다.
--- pp.222-223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자기가 툭 체험을 해서 이 자리에 제대로 안착되고 나서 보면, 원래 이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데, 단지 6식이라는 놈이 괜히 망상을 해서 안이 있고 밖이 있고,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망상하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꿈같은 망상일 뿐이고, 본래 항상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꿈도 그렇잖아요.
자기 방에 누워 자면서 꿈속에서는 온갖 곳을 다 왔다 갔다 하는데, 깨 보면 그냥 자기 방에 누워 있어요.
처음부터 왔다 갔다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법을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 p.272
그래서 계속 공부를 하다 보면 한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쳐다보고 좋아했던 공(空)이란 놈이 마치 비눗방울이 사라지듯이 없어져 버려요.
깜짝 놀랍니다.
공이 없어지고 나니까 남은 건 분별 세계인 색(色)밖에 없어요.
예전에 살았던 세계.
내 공부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나? 공부가 사라지고 내가 다시 예전 중생으로 돌아갔나? 처음에는 깜짝 놀라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살아 보면, 그게 아니라 온갖 분별되는 색 이 자체가 바로 공이에요.
공이 앞에 있고 색이 뒤에 있는 게 아니고, 분별 세계 자체가 그냥 그대로 공이에요.
그때 비로소, 이제 할 일이 없구나… 이제는 좋아할 것도 없고, 싫어할 것도 없고, 내가 법이라고 그렇게 추구할 게 없어져 버려요.
이것이 중도가 성취되는 거예요.
취하고 버리는 게 없어져 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불법인 겁니다.
불이중도라고 공과 색이 딱 하나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더이상 할 게 없어요.
…… 색을 버리고 공을 따르는 게 아니고, 세간을 버리고 출세간으로 나가는 게 아닌, 세간이 바로 출세간이고, 중생이 바로 부처고, 색이 바로 공이고, 생사가 바로 열반이고, 번뇌가 바로 보리고… 이런 말들이 그대로 쫙 실현되는 거예요.
--- pp.294-295
공이라는 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고 살아 있는 거거든요.
공 자체가, 허공이 본질이에요.
허공이라는 게, 분별할 수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라는 겁니다.
이것이 살아 있는 생명의 근원이고 진짜라는 거예요.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그 위에 현상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순간순간의 일이고,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라니까요.
항상 우주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똑같아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매 순간순간 변해 가는데, 그건 모습이고 헛되고 허망한 거죠.
우주 자체에, 허공에 확실히 통해서 무한함 속에서 사는 게 충분히 익숙해지면, 그것도 생각이지만, ‘우주와 하나 되는, 우주라는 게 바로 우리의 본질이구나, 우주라는 게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이놈이 진짜배기 살아 있는 우주구나, 우주는 애초에 변하는 게 아니구나, 늘 똑같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직접 체험해 봐야 하는 겁니다.
--- p.322
출판사 리뷰
직지인심 견성성불,
곧장 마음을 가리켜 본래 성품을 깨닫게 하는 금강경 설법!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무심선원에서 공부인들을 지도하는 김태완 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달음으로 이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독송된 금강경은 선종, 교종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진다.
육조 혜능 대사는 출가 전 장작 팔러 시장에 나왔다가 어느 탁발승이 외우던 금강경 구절을 듣고서 처음 법을 깨쳤으며, 금강경은 육조 혜능의 법맥을 계승한 한국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도 금강경 해설서는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김태완 무심선원장이 설법한 《금강경 직지설법 2》는 다수의 해설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금강경의 구절을 해설하여 알음알이를 늘리거나 생각으로 이해하게 하는 대신,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켜 보여 주고자 하는 것, 즉 모든 것의 바탕인 본래 마음을 시종일관 분명히 가리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듣기만 하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 늘 있는 그것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금강경 직지설법》 전 3권 중 2권이다.
금강경의 주제,
깨닫고자 한다면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고 어떻게 머물 것인가?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면,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마음을 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켜야 하는가? 수보리의 이 질문은 금강경 전체의 주제다.
금강경 전체에서 부처님은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해 설법한다.
만약 누가 수보리처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대다수 수행 단체는 저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수행법을 제시할 것이다.
그것들은 대개 개인이 노력해서 갈고닦는 유위(有爲)의 수행법일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그런 수행법을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러면 어떻게 마음속 상(想)을 다 항복시켜서 극복하느냐?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대상화될 수 없어요.
대상이 된다면 내가 손을 대서 어떻게 해 보겠지만, 마음은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 내가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따로 있고 내 마음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갈고닦을 수 없습니다.
단지 깨달을 수는 있어요.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불가사의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법을 말하는 대신, 진실을 가리키고 또 가리킬 뿐이다.
변함없는 존재의 진실을 깨닫고 그 진실에 자리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은 거짓이고, 모든 모습은 허망하다
진실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한지를 알려면, 먼저 무엇이 진실하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금강경은 진실하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알아차리도록 거듭거듭 얘기해 준다.
앞서 5장에서는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님을 보게 되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여, 모든 모습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그 모든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곧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꿈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꿈속에서 모든 모습을 보고 그 세계를 경험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모든 모습이 따로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나타난,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시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세계도 실제로는 이와 비슷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는 이름이다.
13장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시길,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이름이 세계라고 하셨다”라고 하듯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느낌, 욕망, 생각, 의식 등 지각되는 모든 모습에 각각 이름을 붙여 나누고 분별하여 그 모든 것을 나와 (수많은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인식하지만, 금강경은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이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보살, 부처, 깨달음조차 이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따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부처도, 깨달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제로 있다는 것일까?
“공부라는 것은 ‘결국 뭐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진실로 뭐가 있느냐? 이 세상을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실제로 뭐가 있느냐? 모든 건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지나가는 건 다 허망한 겁니다.
헛거죠.
그런데 지나가지 않는 게 있어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게 있어요.
그것이 바로 이거예요.
(손을 세우며) 이것.
이것 하나만이 유일하게 헛것이 아니에요.
이것이 유일하게 항상 있는 진실입니다.
이것 하나가.” (100쪽)
“깨달음이란 건 딴 게 아니고, 허망한 일에서 벗어나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고, 진실이 밝혀지면 일이 없어요.
아무 일이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져 버리면 세상에 아무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진실은 어떤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물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어떤 무엇이 아니에요.
여기에 ‘마음이다, 도(道)다’ 이름 붙이는 건 방편으로 이름을 붙이는 거고, 이것은 사실 어떤 이름도 있을 수가 없어요.
…… (손가락을 흔들며) 실제로는 이것 하나가 항상 살아 있는 거고, 이것이 살아서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온갖 걸 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체유심조’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을 마음이라고 이름 붙이면, 일체는 다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고,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마음 하나입니다.” (100~101쪽)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
공부인들을 위한 풍부한 도움말!
유일하게 항상 있는 진실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며, 깨달음이란 이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공(空), 마음, 불이중도, 도(道), 부처, 보리, 진여자성, 진공묘유 등 이런 방편의 이름들은 모두 이것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분별심은 나와 세계가 조각조각 나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나뉘어 있지 않으며 유일한 진실인 이것만이 실재한다.
불교란 분별망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이것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자기가 툭 체험을 해서 이 자리에 제대로 안착되고 나서 보면, 원래 이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데, 단지 6식이라는 놈이 괜히 망상을 해서 안이 있고 밖이 있고,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망상하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꿈같은 망상일 뿐이고, 본래 항상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꿈도 그렇잖아요.
자기 방에 누워 자면서 꿈속에서는 온갖 곳을 다 왔다 갔다 하는데, 깨 보면 그냥 자기 방에 누워 있어요.
처음부터 왔다 갔다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법을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272쪽)
우리의 본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명백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먼저 깨친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면서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빠른 지름길이며,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완 무심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본래 마음을 깨닫고 체험하도록 계속 반복하여 가리키므로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이다.
본래 마음과 존재의 실상에 관해 바르게 알게 하는 비유와 설명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려준다.
이 책에는 공부인들을 위한 도움말도 상세히 담겨 있다.
공부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더라도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들이 뿌리 깊어서 지적해 주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김태완 선원장은 20년 이상 공부인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도움말을 전하며, 공부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곧장 마음을 가리켜 본래 성품을 깨닫게 하는 금강경 설법!
조사선(祖師禪)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이자, 실제 눈을 뜬 공부 체험을 바탕으로 2001년부터 무심선원에서 공부인들을 지도하는 김태완 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직지인심(直指人心)이라는 선불교의 정신에 충실하게 곧바로 우리의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달음으로 이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널리 독송된 금강경은 선종, 교종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 여겨진다.
육조 혜능 대사는 출가 전 장작 팔러 시장에 나왔다가 어느 탁발승이 외우던 금강경 구절을 듣고서 처음 법을 깨쳤으며, 금강경은 육조 혜능의 법맥을 계승한 한국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그동안 국내에서도 금강경 해설서는 수없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김태완 무심선원장이 설법한 《금강경 직지설법 2》는 다수의 해설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금강경의 구절을 해설하여 알음알이를 늘리거나 생각으로 이해하게 하는 대신, 금강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가리켜 보여 주고자 하는 것, 즉 모든 것의 바탕인 본래 마음을 시종일관 분명히 가리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며 법문을 듣기만 하면 누구나 지금 여기에 늘 있는 그것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책은 《금강경 직지설법》 전 3권 중 2권이다.
금강경의 주제,
깨닫고자 한다면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키고 어떻게 머물 것인가?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면, 어떻게 머물고,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시켜야 합니까?”
위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마음을 낸 사람이라면, 그 마음을 어떻게 머물고,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시켜야 하는가? 수보리의 이 질문은 금강경 전체의 주제다.
금강경 전체에서 부처님은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해 설법한다.
만약 누가 수보리처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면, 대다수 수행 단체는 저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수행법을 제시할 것이다.
그것들은 대개 개인이 노력해서 갈고닦는 유위(有爲)의 수행법일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그런 수행법을 전혀 얘기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러면 어떻게 마음속 상(想)을 다 항복시켜서 극복하느냐? 방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은 대상화될 수 없어요.
대상이 된다면 내가 손을 대서 어떻게 해 보겠지만, 마음은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 내가 바로 내 마음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내가 따로 있고 내 마음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마음을 갈고닦을 수 없습니다.
단지 깨달을 수는 있어요.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불가사의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직지인심 견성성불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법을 말하는 대신, 진실을 가리키고 또 가리킬 뿐이다.
변함없는 존재의 진실을 깨닫고 그 진실에 자리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름은 거짓이고, 모든 모습은 허망하다
진실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실한지를 알려면, 먼저 무엇이 진실하지 않은지를 알아야 한다.
금강경은 진실하지 않은 것들을 분명히 알아차리도록 거듭거듭 얘기해 준다.
앞서 5장에서는 “만약 모든 모습이 모습이 아님을 보게 되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다”라고 하여, 모든 모습은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그 모든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으면 곧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꿈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꿈속에서 모든 모습을 보고 그 세계를 경험하지만, 꿈에서 깨고 나면 그 모든 모습이 따로따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마음에 나타난, 마음으로 이루어진 일시적인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세계도 실제로는 이와 비슷할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또 하나는 이름이다.
13장에서 “여래께서 말씀하시길, 세계는 세계가 아니라 이름이 세계라고 하셨다”라고 하듯이,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느낌, 욕망, 생각, 의식 등 지각되는 모든 모습에 각각 이름을 붙여 나누고 분별하여 그 모든 것을 나와 (수많은 것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인식하지만, 금강경은 그 모든 것이 사실은 이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뿐 아니라 보살, 부처, 깨달음조차 이름일 뿐이라고 말한다.
결국 따로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부처도, 깨달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실제로 있다는 것일까?
“공부라는 것은 ‘결국 뭐가 있느냐?’ 하는 거예요.
진실로 뭐가 있느냐? 이 세상을 매일매일 살아가는데, 실제로 뭐가 있느냐? 모든 건 지나간다고 하잖아요.
지나가는 건 다 허망한 겁니다.
헛거죠.
그런데 지나가지 않는 게 있어요.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 게 있어요.
그것이 바로 이거예요.
(손을 세우며) 이것.
이것 하나만이 유일하게 헛것이 아니에요.
이것이 유일하게 항상 있는 진실입니다.
이것 하나가.” (100쪽)
“깨달음이란 건 딴 게 아니고, 허망한 일에서 벗어나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고, 진실이 밝혀지면 일이 없어요.
아무 일이 없습니다.
진실이 밝혀져 버리면 세상에 아무 일이 없어요.
왜냐하면 진실은 어떤 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물건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어떤 무엇이 아니에요.
여기에 ‘마음이다, 도(道)다’ 이름 붙이는 건 방편으로 이름을 붙이는 거고, 이것은 사실 어떤 이름도 있을 수가 없어요.
…… (손가락을 흔들며) 실제로는 이것 하나가 항상 살아 있는 거고, 이것이 살아서 생각도 하고,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온갖 걸 다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일체유심조’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것을 마음이라고 이름 붙이면, 일체는 다 마음이 만들어 내고 있고,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마음 하나입니다.” (100~101쪽)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
공부인들을 위한 풍부한 도움말!
유일하게 항상 있는 진실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며, 깨달음이란 이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공(空), 마음, 불이중도, 도(道), 부처, 보리, 진여자성, 진공묘유 등 이런 방편의 이름들은 모두 이것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분별심은 나와 세계가 조각조각 나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나뉘어 있지 않으며 유일한 진실인 이것만이 실재한다.
불교란 분별망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이것을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다.
“(법상을 톡톡 두드리며) 자기가 툭 체험을 해서 이 자리에 제대로 안착되고 나서 보면, 원래 이 자리에 있었고, 언제나 이 자리에 있는데, 단지 6식이라는 놈이 괜히 망상을 해서 안이 있고 밖이 있고, 중생이 있고 부처가 있고,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망상하는 거예요.
어디까지나 꿈같은 망상일 뿐이고, 본래 항상 처음부터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리고 꿈도 그렇잖아요.
자기 방에 누워 자면서 꿈속에서는 온갖 곳을 다 왔다 갔다 하는데, 깨 보면 그냥 자기 방에 누워 있어요.
처음부터 왔다 갔다 한 적이 없단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우리가 법을 깨닫고 보면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272쪽)
우리의 본래 마음은 늘 지금 여기에 명백한 것이지만, 객관적인 대상이 아니므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먼저 깨친 선지식의 법문을 들으면서 지도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자 빠른 지름길이며,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태완 무심선원장의 금강경 설법은 본래 마음을 깨닫고 체험하도록 계속 반복하여 가리키므로 깨달음에 최적화된 설법이다.
본래 마음과 존재의 실상에 관해 바르게 알게 하는 비유와 설명도 다양하고 풍부하게 들려준다.
이 책에는 공부인들을 위한 도움말도 상세히 담겨 있다.
공부인들을 바르게 인도하려면 수많은 오해와 착각을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자신은 잘 알고 있다고 믿더라도 실제로는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오해들이 뿌리 깊어서 지적해 주어도 쉽게 바뀌지 않을 때가 많다.
김태완 선원장은 20년 이상 공부인을 지도한 경험을 바탕으로 풍부한 도움말을 전하며, 공부인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고 바른 길을 걷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24일
- 쪽수, 무게, 크기 : 357쪽 | 152*225*30mm
- ISBN13 : 9791199076594
- ISBN10 : 1199076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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