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막을 말하다
Description
책소개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 마음이 어땠을까? 그때부터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꿈이 되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니까 하나님과 다시 함께하는 것이 구원인 셈이다.
즉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구원이다.
그런 하나님의 꿈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임마누엘이 이루어졌다.
우리 구원이 완성되면 하나님의 꿈이 완벽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꿈의 일환을 보여주는 것이 성막이다.
성막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다음부터 성전이 성막을 대신한다.
이런 성전은 다분히 구약 개념이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왕궁이 왕궁인 이유는 왕이 거처하기 때문인 것처럼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가 성전이다.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성전 건축이나 성전 이전은 죄다 잘못된 표현이다.
예배당 건축이나 교회당 이전이라고 해야 한다.
진정한 성전 건축은 호화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바로 서는 것이다.
아담,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나님 마음이 어땠을까? 그때부터 임마누엘이 하나님의 꿈이 되었다.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으니까 하나님과 다시 함께하는 것이 구원인 셈이다.
즉 하나님의 꿈은 우리의 구원이다.
그런 하나님의 꿈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임마누엘이 이루어졌다.
우리 구원이 완성되면 하나님의 꿈이 완벽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런 하나님의 꿈의 일환을 보여주는 것이 성막이다.
성막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다음부터 성전이 성막을 대신한다.
이런 성전은 다분히 구약 개념이다.
건물로서의 성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왕궁이 왕궁인 이유는 왕이 거처하기 때문인 것처럼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우리가 성전이다.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성전 건축이나 성전 이전은 죄다 잘못된 표현이다.
예배당 건축이나 교회당 이전이라고 해야 한다.
진정한 성전 건축은 호화로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바로 서는 것이다.
목차
머리말 06
01 성막 개관 ……………………………… 09
02 울타리 ………………………………… 37
03 문 ……………………………………… 47
04 번제단 ………………………………… 55
05 물두멍 ………………………………… 71
06 성소 …………………………………… 91
07 널판 …………………………………… 119
08 떡상 …………………………………… 131
09 등잔대 ………………………………… 149
10 분향단 ………………………………… 163
11 휘장 …………………………………… 175
12 언약궤 ………………………………… 187
권말부록 대제사장 복장 ………………… 203
01 성막 개관 ……………………………… 09
02 울타리 ………………………………… 37
03 문 ……………………………………… 47
04 번제단 ………………………………… 55
05 물두멍 ………………………………… 71
06 성소 …………………………………… 91
07 널판 …………………………………… 119
08 떡상 …………………………………… 131
09 등잔대 ………………………………… 149
10 분향단 ………………………………… 163
11 휘장 …………………………………… 175
12 언약궤 ………………………………… 187
권말부록 대제사장 복장 ………………… 203
출판사 리뷰
머리글
부교역자 시절, 제 설교를 유난히 좋아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설교가 일정 분량 모이면 그때마다 마스터인쇄로 제본을 해주셨습니다.
청년회 수련회 때 성막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그렇게 만들어주셔서 친구들한테 한 권씩 나눠줬습니다.
마침 친구가 사역하는 교회에 출판사를 운영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교역자실에서 우연히 그것을 보시고는 책으로 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첫 번째 책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이 나왔습니다.
책으로 나온 것은 1999년이지만, 원고는 1997년에 작성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신학대학원을 갓 졸업한 전도사였습니다.
그런 제가 성막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성막을 잘 알아서 강의를 했다기보다 성막을 잘 몰라서 강의를 했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막 때문에 골치를 앓았으니 차라리 강의를 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문득 문득 “아! 그게 아닌데 잘못 얘기했구나.” 싶은 대목들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라는 욥 23:10 말씀을 욥의 신앙고백으로 잘못 설명하기도 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말씀입니다.) 언약궤를 옮기던 중에 웃사가 죽은 얘기도 잘못 설명했습니다.
흔히 언약궤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성막을 강해하면서 대제사장 의복을 빠뜨린 것도 서운했습니다.
개정판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손을 댔는데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입니다.
다분히 유치합니다.
다듬어야 할 곳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개, 보수를 하려고 손을 댔다가 리모델링을 한 격일까요? 그래서 제목도 바꿨습니다.
지난 1997년의 청년회 동계 수련회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12시 넘은 시간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던 청년들이 50대 중년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부교역자 시절, 때마다 제 설교 원고를 제본해주셨던 이동성 장로님과 김은실 권사님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 덕에 제가 지금까지 스무 권 넘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 인사가 늦은 점이 송구합니다.
출판을 위해 애쓰신 베드로서원 방주석 장로님과 정진혁 부장님, 그리고 베드로서원 가족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께 성막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은혜가 그대로 전달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주후 2025년 11월
부교역자 시절, 제 설교를 유난히 좋아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설교가 일정 분량 모이면 그때마다 마스터인쇄로 제본을 해주셨습니다.
청년회 수련회 때 성막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그렇게 만들어주셔서 친구들한테 한 권씩 나눠줬습니다.
마침 친구가 사역하는 교회에 출판사를 운영하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교역자실에서 우연히 그것을 보시고는 책으로 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첫 번째 책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이 나왔습니다.
책으로 나온 것은 1999년이지만, 원고는 1997년에 작성한 것입니다.
당시 저는 신학대학원을 갓 졸업한 전도사였습니다.
그런 제가 성막에 대해서 무엇을 알았을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모양입니다.
사실 성막을 잘 알아서 강의를 했다기보다 성막을 잘 몰라서 강의를 했다는 말이 맞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성막 때문에 골치를 앓았으니 차라리 강의를 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이었습니다.
3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문득 문득 “아! 그게 아닌데 잘못 얘기했구나.” 싶은 대목들이 떠올랐습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라는 욥 23:10 말씀을 욥의 신앙고백으로 잘못 설명하기도 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말씀입니다.) 언약궤를 옮기던 중에 웃사가 죽은 얘기도 잘못 설명했습니다.
흔히 언약궤에는 십계명 돌판과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성막을 강해하면서 대제사장 의복을 빠뜨린 것도 서운했습니다.
개정판을 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다가 손을 댔는데 고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쉽게 보는 어려운 성막」은 성경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내용입니다.
다분히 유치합니다.
다듬어야 할 곳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개, 보수를 하려고 손을 댔다가 리모델링을 한 격일까요? 그래서 제목도 바꿨습니다.
지난 1997년의 청년회 동계 수련회가 갑자기 생각납니다.
12시 넘은 시간까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의를 듣던 청년들이 50대 중년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무엇보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부교역자 시절, 때마다 제 설교 원고를 제본해주셨던 이동성 장로님과 김은실 권사님께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그 덕에 제가 지금까지 스무 권 넘는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감사 인사가 늦은 점이 송구합니다.
출판을 위해 애쓰신 베드로서원 방주석 장로님과 정진혁 부장님, 그리고 베드로서원 가족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느낍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께 성막을 통해서 제가 깨달은 은혜가 그대로 전달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두 손을 모읍니다.
주후 2025년 11월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04일
- 쪽수, 무게, 크기 : 208쪽 | 145*210*20mm
- ISBN13 : 9791191921403
- ISBN10 : 119192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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