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H. 로렌스 유럽사 이야기
Description
책소개
영미 문학의 거장이 펼쳐낸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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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7
I 로마 13
II 콘스탄티노플 29
III 기독교 47
IV 게르만족 81
V 고트족과 반달족 101
VI 훈족 125
VII 갈리아 147
VIII 프랑크족과 샤를마뉴 171
IX 교황과 황제들 197
X 십자군 231
XI 호엔슈타우펜 왕조 이후의 이탈리아 266
XII 신앙시대의 종말 289
XIII 르네상스 319
XIV 종교개혁 349
XV 대군주 371
XVI 프랑스혁명 393
XVII 프로이센 425
XVIII 이탈리아 451
XIX 독일의 통일 491
옮긴이의 말 515
I 로마 13
II 콘스탄티노플 29
III 기독교 47
IV 게르만족 81
V 고트족과 반달족 101
VI 훈족 125
VII 갈리아 147
VIII 프랑크족과 샤를마뉴 171
IX 교황과 황제들 197
X 십자군 231
XI 호엔슈타우펜 왕조 이후의 이탈리아 266
XII 신앙시대의 종말 289
XIII 르네상스 319
XIV 종교개혁 349
XV 대군주 371
XVI 프랑스혁명 393
XVII 프로이센 425
XVIII 이탈리아 451
XIX 독일의 통일 491
옮긴이의 말 515
상세 이미지
책 속으로
우리에게는 불운하게도 지나간 시대의 ‘사적’인 현실을 재구성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장소와 시간에 매여 있는 존재다.
한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인간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로마 시대가 아닌 엘리자베스 시대의 카이사르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도 빅토리아 시대의 카이사르이며, 이 중 어느 쪽도 진짜 카이사르와는 거리가 멀다
--- 「서문」 중에서
로마인의 마음속 밑바탕에는 소박하고 실제적인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이 점은 심지어 예수의 재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들 개개인은 허영심이 있거나 비도덕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 활동에 있어서는, 특히 정의와 인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정함이나 개인과 국가 간의 정의를 추구했고, 논쟁이 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총체적인 진리를 추구했다.
황제나 총독이 잔인하거나 어리석을 때에도 여전히 그들은 진실하고 옳은 것을 가리려고 들었다.
비록 그들이 항상 옳은 것을 선택해서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로마」 중에서
정황이야 어쨌든, 기독교도에게 가련하고도 끔찍한 운명이 닥쳤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해는 그것이 갑작스럽고 모질었던 것만큼이나 금세 끝나고 말았다.
네로는 박해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기독교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키투스와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독교도에 대한 막연하지만 깊은 증오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퍼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왜 타키투스는 이 불쌍한 사람들의 죄가 극형에 처해져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의 죄는 무엇이기에? 그 대답은 바로 유대인이 갖고 있다는 ‘인류에 대한 증오’였다.
--- 「기독교」 중에서
한편으로 전사들은 게으르고 난폭했다.
그들을 일생 중 절반을 집안의 난로가나 집 밖의 풀밭에 드러누워 취할 때까지 마시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노름을 하며 보냈다.
아니면 나무로 만든 족장 집의 넓은 방에 앉아 엄청난 양의 고기를 포식하거나 알몸의 청년들이 예리한 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민첩하고 재빠르게 위험한 춤을 추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런 바보스러운 놀이에 진력이 나면 벌떡 일어나서는 나팔을 불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 곰과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전쟁을 위해 모이는 것이었다.
--- 「게르만족」 중에서
위대한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의 경계 안에서 쇠락해가는 동안 유럽은 나머지 지역은 게르마니아와 러시아와 아시아에서 들어온 야만족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이 야만인들도 마침내 한곳에 정착했는데, 그곳의 원주민들과 섞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지만 이들은 위대한 근대 국가의 기초를 닦거나 형성했다.
이들이 오늘날의 영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롬바르드인, 스위스인, 불가리아인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각 종족들의 야생적인 혼혈의 산물이었다.
--- 「고트족과 반달족」 중에서
인간이든 아니든, 로마인들은 곧 이들 훈족을 상대해야 했다.
이 무리들의 주력 부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네들은 대여섯 마리의 황소들이 끄는 크고 어설프게 만든 수레에 실려 왔다.
전리품을 실은 커다란 마차의 곁을 포로들과 노예들이 걸어서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 가축의 무리가 줄을 섰다.
그래서 무리의 행군은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 「훈족」 중에서
그러나 그의 희망은 실현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486년 젊은 프랑크인 클로비스가 시아그리우스를 공격했다.
시아그리우스는 살아남기 위해 저 남쪽, 젊은 서고트왕 알라리크의 수도인 툴루즈까지 도망을 쳤다.
클로비스는 지중해까지 사신과 전사들을 보내어, 툴루즈의 알라리크에게 시아그리우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알라리크는 무서운 이웃을 자신의 영토로 불러들인다는 점을 알지 못한 채 시아그리우스를 그에게 넘겼고, 클로비스는 시아그리우스를 그 자리에서 참수했다
--- 「프랑크족과 샤를마뉴」 중에서
금과 은, 보석과 비단, 정교한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이런 보물들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떤 정복전쟁이라도 주저하겠는가?” 탐욕스런 노르만족 보헤몽이 말했다.
그는 탐욕에 이끌려 그 보물을 다 차지했다.
그 뒤부터 그리스인들은 보헤몽이 물욕에 굴복했다고 생각했다.
노르망디의 로베르,샤르트르의 스테판, 툴루즈의 레이몽이 모두 차례로 비잔티움의 화려하고 눈부신 황제의 옥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십자군」 중에서
이 새로운 기독교 세계는 단테가 파악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서 그에게 천국은 지옥보다 훨씬 덜 생생한 곳이었다.
그가 가장 잘 아는 세계는 지옥에서 벌을 받는, 과거의 소란스럽고 난폭한 정열의 세계였다.
정신적 행복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구세계에 속해 있었다.
--- 「르네상스」 중에서
“친애하는 형제여,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만약 나의 적이 나를 사형대로 보내면, 그대가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면서 그 진리를 가르치시오.
그대가 살아남는다면, 나의 죽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오.” 그는 죽음을 각오하면서 길을 떠났다.
--- 「종교개혁」 중에서
“저 사람을 보세요.” 뒤바리 부인이 슬픈 표정의 미남 왕 찰스의 얼굴을 가리켰다.
“당신의 의회도 당
신의 머리를 자를 거예요.” 뒤바리 부인은 사사건건 간섭하는 법률가들에게 왕이 매우 화를 내도록 부추겼다.
루이는 의회의 가장 중요한 의원들을 체포해서 국외로 추방했고 의회 자체를 완전히 해산시켜버렸다.
--- 「프랑스혁명」 중에서
“친애하는 가리발디군, 잘 지내시는가?”
“예, 폐하.
폐하께서는 어떻습니까?”
“최고일세.”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가리발디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서로 기분이 상한 채 나폴리 시내를 말을 타고 행진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행진을 하는 동안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가리발디였다.
이것이 왕을 더욱 못마땅하게 만들었다.
--- 「이탈리아」 중에서
“국가는 국가에 의해 깨어나고 왕은 왕에 의해 사라진다.”
위대한 게르만족은 중세 이후 한 번도 하나의 왕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민족국가가 된 적도 없었다.
독일 자체는 여러 민족들의 어머니였지만 민족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있었다.
독일은 오직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서만 통일될 수 있었다.
지도자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투쟁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 일어났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장소와 시간에 매여 있는 존재다.
한 시대에는 그에 걸맞는 인간의 모습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로마 시대가 아닌 엘리자베스 시대의 카이사르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도 빅토리아 시대의 카이사르이며, 이 중 어느 쪽도 진짜 카이사르와는 거리가 멀다
--- 「서문」 중에서
로마인의 마음속 밑바탕에는 소박하고 실제적인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이 점은 심지어 예수의 재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들 개개인은 허영심이 있거나 비도덕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 활동에 있어서는, 특히 정의와 인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공정함이나 개인과 국가 간의 정의를 추구했고, 논쟁이 되는 어떤 문제에 대해서든 총체적인 진리를 추구했다.
황제나 총독이 잔인하거나 어리석을 때에도 여전히 그들은 진실하고 옳은 것을 가리려고 들었다.
비록 그들이 항상 옳은 것을 선택해서 행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 「로마」 중에서
정황이야 어쨌든, 기독교도에게 가련하고도 끔찍한 운명이 닥쳤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해는 그것이 갑작스럽고 모질었던 것만큼이나 금세 끝나고 말았다.
네로는 박해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기독교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키투스와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기독교도에 대한 막연하지만 깊은 증오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퍼져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왜 타키투스는 이 불쌍한 사람들의 죄가 극형에 처해져도 마땅한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들의 죄는 무엇이기에? 그 대답은 바로 유대인이 갖고 있다는 ‘인류에 대한 증오’였다.
--- 「기독교」 중에서
한편으로 전사들은 게으르고 난폭했다.
그들을 일생 중 절반을 집안의 난로가나 집 밖의 풀밭에 드러누워 취할 때까지 마시거나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노름을 하며 보냈다.
아니면 나무로 만든 족장 집의 넓은 방에 앉아 엄청난 양의 고기를 포식하거나 알몸의 청년들이 예리한 창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민첩하고 재빠르게 위험한 춤을 추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이런 바보스러운 놀이에 진력이 나면 벌떡 일어나서는 나팔을 불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 곰과 멧돼지와 사슴을 사냥했다.
물론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전쟁을 위해 모이는 것이었다.
--- 「게르만족」 중에서
위대한 로마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의 경계 안에서 쇠락해가는 동안 유럽은 나머지 지역은 게르마니아와 러시아와 아시아에서 들어온 야만족으로 홍수를 이루었다.
이 야만인들도 마침내 한곳에 정착했는데, 그곳의 원주민들과 섞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지만 이들은 위대한 근대 국가의 기초를 닦거나 형성했다.
이들이 오늘날의 영국인, 프랑스인, 스페인인, 롬바르드인, 스위스인, 불가리아인 등등이다.
이들은 모두 각 종족들의 야생적인 혼혈의 산물이었다.
--- 「고트족과 반달족」 중에서
인간이든 아니든, 로마인들은 곧 이들 훈족을 상대해야 했다.
이 무리들의 주력 부대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네들은 대여섯 마리의 황소들이 끄는 크고 어설프게 만든 수레에 실려 왔다.
전리품을 실은 커다란 마차의 곁을 포로들과 노예들이 걸어서 따르고 있었다.
그 뒤로 가축의 무리가 줄을 섰다.
그래서 무리의 행군은 자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 「훈족」 중에서
그러나 그의 희망은 실현될 수 없는 운명이었다.
486년 젊은 프랑크인 클로비스가 시아그리우스를 공격했다.
시아그리우스는 살아남기 위해 저 남쪽, 젊은 서고트왕 알라리크의 수도인 툴루즈까지 도망을 쳤다.
클로비스는 지중해까지 사신과 전사들을 보내어, 툴루즈의 알라리크에게 시아그리우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알라리크는 무서운 이웃을 자신의 영토로 불러들인다는 점을 알지 못한 채 시아그리우스를 그에게 넘겼고, 클로비스는 시아그리우스를 그 자리에서 참수했다
--- 「프랑크족과 샤를마뉴」 중에서
금과 은, 보석과 비단, 정교한 가구들이 무질서하게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이런 보물들을 가질 수만 있다면 어떤 정복전쟁이라도 주저하겠는가?” 탐욕스런 노르만족 보헤몽이 말했다.
그는 탐욕에 이끌려 그 보물을 다 차지했다.
그 뒤부터 그리스인들은 보헤몽이 물욕에 굴복했다고 생각했다.
노르망디의 로베르,샤르트르의 스테판, 툴루즈의 레이몽이 모두 차례로 비잔티움의 화려하고 눈부신 황제의 옥좌 앞에 무릎을 꿇었다.
--- 「십자군」 중에서
이 새로운 기독교 세계는 단테가 파악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래서 그에게 천국은 지옥보다 훨씬 덜 생생한 곳이었다.
그가 가장 잘 아는 세계는 지옥에서 벌을 받는, 과거의 소란스럽고 난폭한 정열의 세계였다.
정신적 행복은 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구세계에 속해 있었다.
--- 「르네상스」 중에서
“친애하는 형제여, 만약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만약 나의 적이 나를 사형대로 보내면, 그대가 진리를 끝까지 고수하면서 그 진리를 가르치시오.
그대가 살아남는다면, 나의 죽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오.” 그는 죽음을 각오하면서 길을 떠났다.
--- 「종교개혁」 중에서
“저 사람을 보세요.” 뒤바리 부인이 슬픈 표정의 미남 왕 찰스의 얼굴을 가리켰다.
“당신의 의회도 당
신의 머리를 자를 거예요.” 뒤바리 부인은 사사건건 간섭하는 법률가들에게 왕이 매우 화를 내도록 부추겼다.
루이는 의회의 가장 중요한 의원들을 체포해서 국외로 추방했고 의회 자체를 완전히 해산시켜버렸다.
--- 「프랑스혁명」 중에서
“친애하는 가리발디군, 잘 지내시는가?”
“예, 폐하.
폐하께서는 어떻습니까?”
“최고일세.”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가리발디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는 서로 기분이 상한 채 나폴리 시내를 말을 타고 행진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행진을 하는 동안 가장 열렬한 환영을 받은 것은 가리발디였다.
이것이 왕을 더욱 못마땅하게 만들었다.
--- 「이탈리아」 중에서
“국가는 국가에 의해 깨어나고 왕은 왕에 의해 사라진다.”
위대한 게르만족은 중세 이후 한 번도 하나의 왕을 가져본 적이 없었고 민족국가가 된 적도 없었다.
독일 자체는 여러 민족들의 어머니였지만 민족적 통일을 이루지 못한 채 있었다.
독일은 오직 강력한 지도자에 의해서만 통일될 수 있었다.
지도자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투쟁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사이에 일어났다.
--- 「독일의 통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영미 문학의 거장이 펼쳐낸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거기에 ‘역사란 무엇인가’와 ‘역사에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알려진 역사가 중에 로렌스 H.
데이비슨Lawrence H.
Davison라는 이름은 없었다.
교육자나 문학인 중에서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소설가와 평론가, 역사가, 교육자의 역할에 모두 능통한 이 저자의 정체가 알려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었다.
작가는 당시 창작의 최고 절정기에서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대학 시절 도와준 은사의 부인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도로 잡혀 들어와 몇 년 뒤 가까스로 결혼에 성공했지만, 출간한 책마다 외설 시비를 받고 출간 정지되었고, 독일 국적의 부인은 작가가 활동하는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펜을 들 때마다 신들린 듯이 글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무차별 검열을 당하거나 출간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질이 잇달았고, 경제 사정 역시 어려워졌다.
그때 그에게 역사책의 집필 제의를 해온 곳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한때 교육자였으며, 평론가였고, 화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인 그에게 고답을 탈피한 일종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맡긴다는 것은 옥스퍼드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저자를 찾아낸 선택이기도 했다.
작가는 의뢰를 받자마자 일필휘지로 원고를 완성했고,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출간된 이후 하나의 대학에서 시작된 반향은 어느새 다른 대학과 일반 독자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 책이 『유럽사 이야기』이며 작가는 바로 우리에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지개』, 『아들과 연인』 등 문제적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D.
H. 로렌스다.
인간의 욕망이 사건을 만들어내듯
역사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이 만들어낸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적어도 흥미 면에서는, 특히 독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매혹적으로 읽힐 수 있는 방식이지만 로렌스는 이 방식이 오히려 역사에서 역사성을 제거해버리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반박한다.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로마 시대가 아닌 엘리자베스 시대의 카이사르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도 빅토리아 시대의 카이사르이며, 이 중 어느 쪽도 비록 매력적일지언정 진짜 카이사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치 과학처럼 논리와 인과를 중시하는 역사서다.
역사가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밝혀낸 후 그 사건을 관통하는 커다란 고리를 만들어낸다.
훌륭한 학자가 작업한다면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역사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 전개 모두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그 모든 논리가 실제 사실이 아니라 고작해야 유추의 결과일 뿐이라는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로렌스에 따르면 과학적인 역사는 다르게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그럴듯하니 사실로 인정하라’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는 상식처럼 떠올리는 말이지만, 그 요즘 시대조차 그 말을 엄밀히 적용해 서술한 역사책은 로렌스의 이 책, 『유럽사 이야기』 말고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야심만만한 ?서문?에 어울리게 책은 흥미롭지만, 엄밀하고, 엄밀하지만 생생한 역사의 장면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소설가라면 으레 할 법한 지어낸 장면은 하나도 없이, 건조한 역사의 기록만으로 역사에 생동감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왜 외설작가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평론가들이 로렌스를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로마 역사의 주요 사건인 콘스탄티노플 천도는 그 많은 역사적 사료를 참고해본들 조각난 사실의 파편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묘사하는 로렌스의 콘스탄티노플은 대리석을 실은 배가 정박해 있고, 목재를 실은 상선이 입항하는 동안 석회를 굽는 가마솥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수천 명의 노예들이 짐을 나르고 돌아다니며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활개 치는 생명력 넘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그 배경 속에는 자주색 옷을 입고 하역을 지켜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있고, 그의 시야 저편으로는 갓 건설을 시작한 콘스탄티누스 성벽의 해자가 비친다.
아치를 두른 광장으로 짐을 실은 마차가 들어오고, 포장을 벗기자 그 안에서 그리스와 아시아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는 넘볼 수 없는 대가의 힘
교훈이 담길 곳은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다
그러나 생동감 넘치는 이러한 묘사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 귀에도 익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국가가 생겨나는 긴 호흡의 서술들이다.
로렌스는 간략하게 말한다면 역사 속 인간에게는 두 개의 충동, 즉 행동의 동기가 번갈아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는 생산에 의한 번영이라는 평화에 대한 욕구이며, 다른 하나는 군대에 의한 승리하는 전쟁에 대한 욕구다.
이 두 욕구가 서로 번갈아 적용하며 인간을 그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러나 역사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 만들어가기에 이 모든 것이 모인 역사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기란 힘들다.
그러니까, “십자군 운동처럼 너무나 거대하고 미친 듯한 사건에는 어떤 세속적인 이유가 없”으며.
같은 의미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난 원인에 대한 ‘이유’도 지빠귀가 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시를 살지 못한 후대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역사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충동의 소용돌이, 이른바 역사의 흐름 그 자체를 감동에 잠겨 지켜보는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기존의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들이 해내지 못한 어떤 작용이 관찰자이자 후대인이며 이 책의 독자인 우리들 속에서 일어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때로는 이성적이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드라마와 그 결과, 그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독자는 흔하디흔한 교훈을 넘어 역사에서 길어 올린 진정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역사의 교훈’이라 부르며 어떤 이는 ‘삶의 지혜’ 혹은 짧게 줄여 ‘통찰’이라 부르는 그것을.
“생명은 그 자신의 커다란 몸짓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이 몸짓의 구성 요소이다.
역사는 이 몸짓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 몸짓을 다시 한번 되살리며 과거 속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인간의 이야기, 옥스퍼드 유럽사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백 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들은 궁금증에 휩싸여야 했다.
눈앞에 놓인 이 유려한 문체와 재기 넘치는 서술의 역사서가 도대체 누구의 저작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고대 로마의 성립부터 근대 유럽 국가가 형성되기까지의 과정을 그야말로 숨 막히듯 서술해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이 만들어내는 인간사 스캔들을 탐구하듯, 역사 속 인간과 그 사건을 분석해낸 이 책은 엄밀해야 할 역사책과 흥미로워야 할 소설의 장점을 두루 갖고 있으면서, 교육이라는 목적에조차 더할 나위 없이 충실했다.
거기에 ‘역사란 무엇인가’와 ‘역사에서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구의 작품이란 말인가? 알려진 역사가 중에 로렌스 H.
데이비슨Lawrence H.
Davison라는 이름은 없었다.
교육자나 문학인 중에서 찾아도 마찬가지였다.
소설가와 평론가, 역사가, 교육자의 역할에 모두 능통한 이 저자의 정체가 알려지기까지는 그로부터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란 것이 있었다.
작가는 당시 창작의 최고 절정기에서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대학 시절 도와준 은사의 부인과 사랑의 도피를 했다가 도로 잡혀 들어와 몇 년 뒤 가까스로 결혼에 성공했지만, 출간한 책마다 외설 시비를 받고 출간 정지되었고, 독일 국적의 부인은 작가가 활동하는 영국에서 스파이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펜을 들 때마다 신들린 듯이 글이 쏟아져 나왔지만, 대부분의 글들은 무차별 검열을 당하거나 출간조차 불가능했다.
손가락질이 잇달았고, 경제 사정 역시 어려워졌다.
그때 그에게 역사책의 집필 제의를 해온 곳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이었다.
한때 교육자였으며, 평론가였고, 화가이자 시인이며 소설가인 그에게 고답을 탈피한 일종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의 집필을 맡긴다는 것은 옥스퍼드로서는 새로운 도전이면서 동시에 최고의 저자를 찾아낸 선택이기도 했다.
작가는 의뢰를 받자마자 일필휘지로 원고를 완성했고, 본명이 아닌 가명으로 출간된 이후 하나의 대학에서 시작된 반향은 어느새 다른 대학과 일반 독자에게까지 퍼져나갔다.
그 책이 『유럽사 이야기』이며 작가는 바로 우리에게 『채털리 부인의 연인』, 『무지개』, 『아들과 연인』 등 문제적 소설의 작가로 유명한 D.
H. 로렌스다.
인간의 욕망이 사건을 만들어내듯
역사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행동이 만들어낸다
2500년 유럽의 역사를 한 권에 담아내며, 로렌스는 지금은 정론이지만 당시에는 어느 역사가도 하지 못했던 야심만만한 주장을 책 속에 선보인다.
이를 위해 로렌스는 정확히 세 가지의 역사 서술 방식을 비판하며 자신의 책을 시작한다.
첫 번째는 사실만을 나열하며 담백하게 쓰여진 기존의 역사서다.
이런 방식은 역사를 이야기가 아닌 책 속의 죽은 지식으로 전락시켜버린다.
두 번째는 사진처럼 생생함을 추구하는 역사서다.
이런 역사서는 역사 속 인간들을 마치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묘사한다.
위대한 인물, 영웅 혹은 희대의 악인들이 음모와 갈등에 휘말리며, 사랑에 빠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다.
적어도 흥미 면에서는, 특히 독자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매혹적으로 읽힐 수 있는 방식이지만 로렌스는 이 방식이 오히려 역사에서 역사성을 제거해버리는 악영향을 끼친다고 반박한다.
셰익스피어의 카이사르는 로마 시대가 아닌 엘리자베스 시대의 카이사르이고, 버나드 쇼의 카이사르도 빅토리아 시대의 카이사르이며, 이 중 어느 쪽도 비록 매력적일지언정 진짜 카이사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치 과학처럼 논리와 인과를 중시하는 역사서다.
역사가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밝혀낸 후 그 사건을 관통하는 커다란 고리를 만들어낸다.
훌륭한 학자가 작업한다면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역사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 전개 모두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가 없다.
그 모든 논리가 실제 사실이 아니라 고작해야 유추의 결과일 뿐이라는 문제를 애써 외면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로렌스에 따르면 과학적인 역사는 다르게 말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그럴듯하니 사실로 인정하라’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는 상식처럼 떠올리는 말이지만, 그 요즘 시대조차 그 말을 엄밀히 적용해 서술한 역사책은 로렌스의 이 책, 『유럽사 이야기』 말고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야심만만한 ?서문?에 어울리게 책은 흥미롭지만, 엄밀하고, 엄밀하지만 생생한 역사의 장면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소설가라면 으레 할 법한 지어낸 장면은 하나도 없이, 건조한 역사의 기록만으로 역사에 생동감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왜 외설작가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평론가들이 로렌스를 영미 문학의 거장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지 실감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로마 역사의 주요 사건인 콘스탄티노플 천도는 그 많은 역사적 사료를 참고해본들 조각난 사실의 파편일 뿐이지만, 이를 통해 묘사하는 로렌스의 콘스탄티노플은 대리석을 실은 배가 정박해 있고, 목재를 실은 상선이 입항하는 동안 석회를 굽는 가마솥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수천 명의 노예들이 짐을 나르고 돌아다니며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활개 치는 생명력 넘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그 배경 속에는 자주색 옷을 입고 하역을 지켜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있고, 그의 시야 저편으로는 갓 건설을 시작한 콘스탄티누스 성벽의 해자가 비친다.
아치를 두른 광장으로 짐을 실은 마차가 들어오고, 포장을 벗기자 그 안에서 그리스와 아시아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는 넘볼 수 없는 대가의 힘
교훈이 담길 곳은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다
그러나 생동감 넘치는 이러한 묘사보다 더욱 돋보이는 것은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러 오늘날 우리 귀에도 익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국가가 생겨나는 긴 호흡의 서술들이다.
로렌스는 간략하게 말한다면 역사 속 인간에게는 두 개의 충동, 즉 행동의 동기가 번갈아 존재한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는 생산에 의한 번영이라는 평화에 대한 욕구이며, 다른 하나는 군대에 의한 승리하는 전쟁에 대한 욕구다.
이 두 욕구가 서로 번갈아 적용하며 인간을 그 시대에 맞는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러나 역사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 만들어가기에 이 모든 것이 모인 역사를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기란 힘들다.
그러니까, “십자군 운동처럼 너무나 거대하고 미친 듯한 사건에는 어떤 세속적인 이유가 없”으며.
같은 의미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난 원인에 대한 ‘이유’도 지빠귀가 우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시를 살지 못한 후대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역사를 관찰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내는 충동의 소용돌이, 이른바 역사의 흐름 그 자체를 감동에 잠겨 지켜보는 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기존의 ‘지나치게 교과서적인’ 역사서들이 해내지 못한 어떤 작용이 관찰자이자 후대인이며 이 책의 독자인 우리들 속에서 일어난다.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때로는 이성적이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드라마와 그 결과, 그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독자는 흔하디흔한 교훈을 넘어 역사에서 길어 올린 진정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혹자는 ‘역사의 교훈’이라 부르며 어떤 이는 ‘삶의 지혜’ 혹은 짧게 줄여 ‘통찰’이라 부르는 그것을.
“생명은 그 자신의 커다란 몸짓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이 몸짓의 구성 요소이다.
역사는 이 몸짓을 반복한다.
그래서 인간은 그 몸짓을 다시 한번 되살리며 과거 속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과거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 저자의 말 중에서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1년 03월 19일
- 쪽수, 무게, 크기 : 520쪽 | 774g | 152*224*30mm
- ISBN13 : 9791190475419
- ISBN10 : 119047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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