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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2
조선시대사 2
Description
책소개
현재와 과거가 소통하는 역사서를 꿈꾸며,
역사를 읽는 또 다른 창窓을 열다!


과학적·실천적 역사학의 수립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주화와 자주화에 기여하기 위해 창립해 현재 700여 명의 학자들이 참여하는, 명실상부하게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학회로 자리매김한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의 대중화에 새 지평을 연 푸른역사가 함께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를 펴낸다.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역사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참가해 총 10권(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각 2권)으로 완간 예정이며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출간으로 그 첫걸음을 뗀다.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전 시대 전 분야를 망라해서 서술하는 대신, 시대별로 그 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주제를 선정해 그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깊이 있는 역사 읽기를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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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리학적 인간의 형성-조선 사람들, 성리학의 시대를 살다
성리학적 인간, 박성의 출생 | 성리학과 성리학적 인간 | 성리학을 위한 텍스트 | 성리학적인 삶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학파와 학문교류
학파의 형성 | 학문 교류의 방식과 내용 | 학문적 네트워크의 구조

재지사족, 향촌의 지배자가 되다-사족의 향촌 지배, 그 성립과 변화
재지사족과 향촌 지배 | 16~17세기 향촌 지배의 확립과 구조 | 16~17세기 향촌 지배의 내용과 성격 |
18~19세기 향촌 지배의 변화와 ‘새로운 세력’의 등장

가족에서 문중으로-집안의 내력과 형성 이야기
장가가는 남자, 무남독녀가 이어간 제사 | 장자와 동성동족이 최고 | 분화, 분열되는 친족조직 | 조선 후기의 문중화 경향: 동족마을과 문중서원

농사짓는 작인, 수취하는 지주-양반들의 농업경영
노비를 부려 농사짓던 시절 | 모내기의 보급과 밭농사의 집약화와 다각화 | 지대를 더 수취하려고 애쓰는 양반 | 양반들의 땅에 의지하던 사람들

조선의 일상-의식주를 통해 본 조선의 생활 문화
신분과 질서를 입다 | 조선 사람들의 밥과 끼니 | 초가삼간에도 예를 담다

약과 의사가 넘치는 서울, 먹을 것도 부족한 시골 18세기 후반-조선의 의료 풍경
서울의 의료 풍경과 유만주의 일기 | 김약행의 시골 생활

일탈과 저항-체제를 벗어나려는 자, 체제에 저항하는 자
마을을 떠나는 자들 | 모이면 도적, 흩어지면 농민 | 현실에 저항하는 자들 |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자들

출판사 리뷰
소통하는 역사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 편찬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편찬위원회’를 구성, 집필 원칙과 편찬 일정을 정하고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각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기획안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해 집필에 들어갔다.
60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참가해 공동 작업으로 10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으는 작업부터 완성된 원고들을 팀별로 수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상징하듯이 세계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체제와 이념의 대립보다는 화해와 교류의 방향으로 나가며 21세기를 맞이했다.
한반도도 1998년 ‘현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화해와 교류·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1세기도 15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미국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진영의 대립,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국가의 등장 등 중동 내부의 갈등과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등이 계속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념 대립보다는 종교·문명 대립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와 정치 사회적 부패의 사슬에 의해 일상생활의 안전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2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복지도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 정의는 실종하고 신뢰와 희망 대신 불신과 체념만이 가득 찬 사회에서 과연 역사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한국 역사의 체계화와 소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이를 이루기 위해 역사를 부단히 새로 써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조망한다.

조선시대사, 허구와 가상의 역사가 아닌
실증과 사실의 역사를 위하여


최근 조선시대에 관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은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역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교양물, 사극史 등 영상물도 그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은 연대기 자료의 원문과 번역문을 비롯해 각종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등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진 덕분이며, 일반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인의 관심과 교양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그에 대응하는 여러 형태의 교양물이나 문화상품, 영상물이 다량 산출되는 것은 우선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역사 서술은 사실을 재구성하는 실증의 기반 위에 자료와 사실에 대한 해석이 결합해 이루어진다.
실증 작업을 수행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가 있다 해도 역사라고 할 수 없고, 정확한 사료 비판과 해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서술은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주변에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어긋나는 허구와 가상이 역사로 둔갑해 유포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로 착각하는 것은 그 후폐가 크지 않을 수 없다.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6인이,
개인-사회-국가-세계의 틀로 바라본 조선시대


이러한 연구 영역 내외의 상황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게 서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했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홍순민·한상권·손병규·김성우·고동환·한명기·배우성·노대환)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김훈식·고영진·정진영·이해준·김건태·정연식·김 호·한희숙) 집필한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에 소속된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조선시대를 새롭게 그려내려면 그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조선시대를 개인(가족)-사회-국가-세계의 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각각의 범주에 맞는 16개의 소주제를 선정해서 두 권의 책에 담았다.

예를 들면 소주제 중 [성리학적 인간의 형성]과 [가족에서 문중으로] 등은 개인(가족)의 차원에서,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지사족, 향촌의 지배자가 되다] 등은 사회의 차원에서,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와 [교화와 형정] 등은 국가의 차원에서, [국제 관계와 전쟁]과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 등은 세계의 차원에서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언 듯 보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독자가 책 전체를 다 읽고 나면 하나의 ‘조선시대상’이 떠오르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마치 서양 역사학계의 고전인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처럼.

따라서 이 책은 기존의 시대사를 망라한 책들처럼 개설서나 통사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실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그 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개인(가족), 사회, 국가, 세계의 창을 통해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어 조선시대를 새롭게 보려는 필자들의 공통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설명틀 아래 기존의 개설서나 통사가 담을 수 없는 소주제를 개발해 깊이 있게 서술한 이 책은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구성과 내용

‘조선시대사 2’에서는 ‘개인(가족)’과 ‘사회’라는 범주 아래 조선의 성리학, 향촌 사회, 의식주, 농업 문화 전반을 살핀다.
[성리학적 인간의 형성]은 성리학의 시대를 산 박성이라는 선비의 삶을 통해 조선시대에 한 인간이 어떻게 성리학적 인간으로 길러지며, 그들의 삶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살폈다.
경상도 현풍 출신인 박성은 부유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리학적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다.
그의 집안 분위기 역시 그가 성리학적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에서는 조선시대 학파와 학문교류를 개관한다.
조선 학인들은 가족·학파·지역 등 여러 층위에 걸쳐 다양한 학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그 기반 위에서 활발한 학문 교류를 전개했다.
그 결과 개인 또는 집단의 학문적성격도 그 안에서 위치가 정해졌다.
또한 학문적 네트워크의 성격도 시기별로 조금씩 변화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학인들의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을 학파의 성립, 지역 간 학문 교류의 방식과 내용, 학문적 네트워크의 구조를 중심으로 살폈다.
[재지사족, 향촌의 지배자가 되다]는 사족의 향촌 지배와 그 성립·변화를 정리한다.
재지사족은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지배세력이다.
이들은 중앙집권화를 추구했던 국가의 입장과는 달리 향촌사회를 자치적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따라서 향촌 지배의 문제를 두고 국가 혹은 훈구세력과 여러 차례 충돌했다.
16세기 중반에 이르러 사림파의 정치적 승리와 더불어 그들은 마침내 향촌사회에 지배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유향소와 향약·향규 혹은 동계·동약, 서원과 향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재지사족은 이러한 조직과 규약을 통해 향촌사회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그들 자신의 공동체 적 이익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가족에서 문중으로]에서는 집안의 내력과 형성을 본다.
조선시대 가족 구성과 친족관계는 과연 어떠한 모습이었고, 또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현재에 이르렀을까? 우리는 조선시대가 완벽하게 남성 우위의 가부장적 구조로 일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가부장적 친족체계는 조선시대 말에 정착된 것이고, 오랫동안 부계와 모계가 동등하게 인식되는 양계 친족 의식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이후가 이러한 친족체계는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친족체계로 변화한다.
18세기 후반 이후는 가문별 문중 활동이 많아진 시기이다.
족계, 혹은 종계로 불리는 친족 조직, 종가·선영·재실·족보(파보) 간행, 선조 추숭과 서원·사우건립 등을 활발하게 추진했다.
[농사짓는 작인, 수취하는 지주]에서는 양반들의 농업경영을 정리한다.
15∼16세기 조선 양반들은 작인을 활용하기보다 노비와 토지가 결합된 농장農庄을 통해 농업을 경영했다.
조선 후기에는 인구증가율이 토지증가율을 앞서면서 농민들의 평균 농지소유 규모가 줄어들었다.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은 점차 줄어든 반면, 소규모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은 증가해 영세화된 농민들이 늘어났다.
이 시기 빈농들은 토지를 대여받기 위해 양반들의 통제를 따를 수밖에 없었고 양반 지주들은 이러한 상황을 활용해 지주제를 강화시켰다.
[조선의 일상]은 의식주를 통해 조선의 생활 문화를 살핀다.
조선시대의 일상생활은 지위, 신분에 따라 일정한 제약이 따랐으며 생활양식에서의 변화는 느리게 진행되었다.
의생활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목화가 본격적으로 재배되어 무명의 삼베와 함께 보편적인 옷감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방한용 솜도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보통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낮에 적은양의 점심을 먹기도 했다.
점심은 주로 해가 길고 활동량도 많은 봄부터 가을까지 먹었는데 민간의 풍속에 첫서리가 내리면 점심 먹는 것을 그쳤다.
주거생활의 경우, 집에도 신분과 지위에 따른 차별이 가해져서 각기 일정한 규모 이상의 집을 짓지 못하게 규제를 가했지만 철저히 지켜지지는 않았다.
[약과 의사가 넘치는 서울, 먹을 것도 부족한 시골]에서는 18세기 후반 조선의 의료 문화를 개관한다.
유만주의 일기를 통해 서울의 의료 풍경을 김약행의 적소일기를 통해 유배지의 열악학 의료 풍경을 비교해 보여준다.
서울의 사족과 평민들은 의원으로부터 진단과 처방을 받은 후 약국에서 약물을 조제하거나 스스로 만들어 복용할 수 있었다.
지방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여전히 약재의 구득이 서울만큼 쉽지 않았다.
[일탈과 저항]은 조선시대 민들의 저항을 정리했다.
조선시대 민은 세금을 감당하기 어렵거나 자연재해가 극심해지면 먹을 것을 찾아 다른 지역으로 유망했다.
유망은 농업 국가의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민의 소극적인 저항 형태로 전 기간을 거쳐 가장 광범위하게 나타났다.
16~17세기에 이르면 훈구·척신세력들의 탐학이 심해져 공물과 군역·신역의 과다한 부과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한 민들이 몰락하여 유망과 피역이 늘어났다.
자연재해와 세금의 과다로 인한 농민층의 피해는 17세기에 더욱 심해져 일탈을 꾀하는 민들은 산속에 근거지를 두고 군도群盜를 형성해 마을이나 관아를 습격하고 약탈하며, 체제를 위협하였다.
연산군대 홍길동, 명종대 임꺽정, 숙종대 장길산 그리고 명화적明火賊들의 활동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더욱이 19세기 세도정권하에서 토지 소유를 둘러싸고 농민층 분화가 심화되고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三政이 극도로 문란해지자 적극적인 농민저항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러나 봉건적 모순이 개혁되지 못하자 농민항쟁의 불길은 더욱 고조되어 1894년 반봉건 반제를 부르짖는 동학농민항쟁으로 이어진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15년 06월 25일
- 쪽수, 무게, 크기 : 356쪽 | 660g | 153*224*22mm
- ISBN13 : 9791156120483
- ISBN10 : 1156120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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