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베트남전쟁 참전군인 여섯 명과 참전군인 2세,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집이다.
또, 참전군인과의 만남을 자처한 학생, 예술가, 활동가 등 시민 여덟 명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과거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은 어느새 칠팔십 대 할아버지가 되었다.
이들은 한국의 첫 해외 파병과 귀국박스, 김신조 사건과 5·18민주화운동, 경부고속도로와 관제 데모,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운동과 고엽제 피해, 참전명예수당 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는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와 군대식 조직 문화, 가부장적 사회 구조의 폐해와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을 조망할 수 있는 여러 단서가 담겨 있다.
베트남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참전군인 2세의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드러나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와 목소리는 국가와 사회가 오래도록 외면해 온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참전군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남을 자처한 이들의 존재와 목소리이다.
이들은 참전군인을 가해의 자리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이야기의 자리에 초대하여, 그들과 함께 전쟁과 평화, 모순과 균열을 성찰하려고 시도한다.
주저하거나 아득함을 느끼면서도 만남과 듣기를 시도했던 마음을 고백한다.

“군대에 갔더니 밥이 얼마나 맛있던지요.
우리가 밖에서 밥을 먹으면 나무껍질이 구십이고 곡식이 십이에요.
(중략) 군대 가서 밥을 먹으니까 살살 녹아요.
쌀이 반, 잡곡이 반이에요.
얼마나 맛있어요!”
--- 「월남에서 돌아온 교련 선생님」 중에서

그때 미신이 있었는데, 전투 나갈 때 여자 팬티를 갖고 가면 안 죽는다고.
그래서 연예인들이 저녁에 팬티를 빨아 널어놓으면 다음 날 팬티가 싹 없어져요.
그럼 원망들을 많이 하죠.
하도 그렇게 되니까 그 사람들이 올 때 내가 미리 사정을 얘기했어요.
팬티 좀 많이 늘어놓으라고 부탁도 했죠.
살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어떡하겠어요.
이해 좀 해달라고 내가 그랬죠.”
--- 「월남에서 돌아온 교련 선생님」 중에서

묘지 하러 가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는디, 바람이 요쪽에서 부니까 저쪽에 가서 먹었는데.
아니, 바람이 쏙 불어부러갖고 우리 군인들 쪽으로 불더만 그 냄새를 한번 맡아가지고는.
그냥 그 썩은 냄새를 맡으니까 코에서 코피가 나와버리더라고.

--- 「‘전쟁’의 소리와 냄새가 아직도 나는 것 같아」 중에서

나는 『태백산맥』 보면서 많은 걸 느꼈어.
내가 다녀온 월남전이 뭣도 아니었다는 것도 그 책 보면서 깨달았어.
괜히 남의 나라 통일 전쟁에 끼어들어서 훼방이나 논 거야.
그래서 내가 조정래 선생 책은 다 봤어.
--- 「전쟁을 기념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에서

작전에 나가게 되면 며칠 전부터 병사들은 마음을 다잡으려 애들을 쓰죠.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매일매일 다짐을 해요.
그런데 큰 작전을 나가게 되면 군종목사가 와서 기도를 해줘요.
그게 너무너무 싫은 거예요.
목사가 와서 ‘여러분 기도합시다.
부모님들을 위해서 여러분들 꼭 살아 가야 하고.’ 이야기를 해요.
꼭 저승사자가 와가지고 기도하는 것처럼 너무 싫은 거예요.

--- 「어린 병사의 슬픔과 서울의 봄」 중에서

의무중대 치과에 있었으니까 마을에 찾아가서 이빨 뽑아주고 그랬어요.
월남 사람들은 대부분 치아가 나빠요.
이를 제대로 안 닦는지, 뭐 몸 자체에서 냄새가 많이 나요.
왜냐면 거기는 주로 여름이라, 더운 나라라.

--- 「일주일에 한 번 월남 마을로 갔지」 중에서

송금술의 이야기는 무언가가 ‘없는’ 부족한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경험과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해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혼란스러운 이야기들이 더 전쟁의 진실과 닿아 있는데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감추거나 가리는 사회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 「일주일에 한 번 월남 마을로 갔지」 중에서

나는 진짜 월남 다시 한번 가라면 또 갈 자신 있어.
아니, 그렇잖아.
나라를 위해서 다녀오면 좋은 거고.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사니까 월남에 간 거를 안 좋게도 말하지, 만약에 우리가 지금도 잘 못살았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안 했어.

--- 「나는 군복을 입고 살아갈 운명이었나 봐」 중에서

경험하지 않은 낯선 역사가 나의 경험으로 온전히 다가올 수는 없다는 것, 나에게 다른 관점이 있기에 온전히 구술을 따라갈 수만은 없다는 것, 이 긴장을 마주하면서 최홍희의 기억을 들었다.
--- 「나는 군복을 입고 살아갈 운명이었나 봐」 중에서

나는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이고, 고엽제후유증으로 사망한 참전군인의 아들이다.
고엽제 2세 피해로 추정되는 뇌병변 증상과 징후를 지니고 있다.
나의 ‘아픈 몸’은 몸을 경험하는 방식, 할 수 있는 것, 삶의 공간을 흔들어놓았다.

--- 「나는 참전군인 2세, 비가시화된 전쟁 2세」 중에서

동생이 죽어서 안장식까지 다 끝났는데 편지가 계속 오는 거예요.
--- 「현충원은 누구를 위한 곳인가요」 중에서

문제는 전쟁의 참상을 아무리 잘 기록하거나 재현하려 애쓴다 해도, 그런 ‘몸의 기억’들은 기록으로 전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말과 글이 아무리 애쓰려 해도 전할 수 없는 그 ‘몸의 기억’들을 놓치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이 전쟁을 극도로 단순하게 사고하거나 쉽사리 낭만화해버리는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 「몸의 기억들로 전쟁을 듣기」 중에서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쉽게 혐오하는 문화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하기에 참전군인을 만난다는 것은 폭력의 구조를 마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구조 안에서 나와 다른 당신이, 내가 잘 모르는 당신과 나는 어떻게 함께 해방을 찾아갈 수 있을까.
---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 당신을 만나고 싶은 이유」 중에서

어떠한 폭력에 대한 책임과 화해는 가해자와 피해자 둘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는 없는 것 같다.
듣는 사람이 없다면, 즉 증언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말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 가해의 증언이 미래의 듣기와 만날 수 있으려면」 중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들을 예상했다.
그러나 쉽게 끄덕여지지 않는 말들을 만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만남은 의미를 찾아갔다.
이 만남은 이해할 수 없는, 참전군인을 만나러 가는 일이었다.

---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 주저하며 듣기」 중에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국가폭력에 동원되어 삶의 개인성을 잃어버린 피해자로서의 참전군인,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가담 혹은 방관한 가해자로서의 참전군인, 가부장제 하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으로서의 참전군인은 모두 각각 다른 사람이 아닌 한 사람의 몸에 남아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 「참전군인을 만났습니다 : 아득함을 넘어 알아차린 것」 중에서

나에게는 한국 사회가 겪은 전쟁 기억을 평화의 기회로 삼겠다는 포부가 있다.

--- 「평화를 발굴하기 위한 전쟁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