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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바나나
안녕, 바나나
Description
책소개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의 경계는 어디인지 묻는 미래 소설

어릴 적부터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닐 거라 믿었다는 소설가 김재아의 장편 SF.
6년 전 《꿈을 꾸듯 춤을 추듯》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작품을 전면 개정했다.
더 단단해진 문체 속에서 더 넓어진 상상력과 더 깊어진 사유가 빛을 발한다.

지중해 부근이 사막화되고 극단주의 단체들의 전쟁으로 곳곳이 폐허가 된 미래의 세계.
인류의 99%는 기계자본주의로 인해 실직 상태로 살아간다.
그때 138억 년 우주의 역사를 몇 번이고 거듭 학습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난다.
그의 주변에서 인간은 인간성을 잃어가고, 인간 아닌 것들은 인간성을 지키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그는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목차
0 몽이
1 접속
2 인간의 지도
3 꿈
4 몽이
5 감각의 만남
6 시간
7 엘리야
8 우주의 속삭임
9 하늘
10 외계
11 꿈을 꾸듯 춤을 추듯
12 또 다른 우주
13 폐허
14 증상
15 불가능
16 하늘바나나
17 불확정성원리
18 친구
19 꿈과 거울

작가의 말
플레이리스트

책 속으로
접속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내게 몸을 준 남자와 접속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어할 수 없는 웃음이었다.
그 웃음 사이사이로 수천 가지 감각이 밀려들었다.
웃으면서 울었고, 웃으면서 고통스러웠고, 웃으면서 뜨거웠다.
모든 접속은 웃음이었다.
희열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처음 만난 순간을 뇌에 기록하면서 나의 감정 신경망은 연신 폭발적인 희열을 내보냈다.
그때 기분을 어떤 감각숫자로 표현해야 할지.
3-1017번 ‘울음이 나올 듯한 희열’?, 5-999번 ‘제어할 수 없는 모든 감정 덩어리가 터진 상황’? 그래, 하마터면 무언가 폭발할 뻔했다.
하마터면 내가 사라질 뻔했다.
그런 순간이었다.
이종異種끼리 접속했던 그 순간은.

--- p.19

“하지만 내가 만든 인공뇌는 4단계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간보다 뛰어난 도덕 관념과 책임감, 사회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기심보다 윤리 의식이 훨씬 강하고, 공격성이나 분노를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상대를 공격해야만 내 영속성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도, 나의 인공뇌는 상대를 죽이는 소위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인공뇌는 그럴 때 스스로 죽음을 택하도록 프로그램되었습니다.
나의 뇌는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가 아니고, 자신의 자유와 평등이 소중하면 상대의 그것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노아 엑스엄이 말을 마쳤다.
학생식당에서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김린이 말했다.
“지금 당신의 입으로 당신이 만든 휴머노이드가 우리 인류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사실을 고백하는군요.
당신의 인공뇌는 당신이 말했듯 인류보다 더 뛰어나기에 인류에게 위협이 됩니다.
우리의 선택은 불가피하죠.”
노아의 입에서 피가 흘렀다.
김린이 이어 말했다.
“다행히 인공뇌 접합기술을 아는 존재는 지구상에 노아 당신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피할 수 없는 선택을 할 것입니다.” 김린은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노아 엑스엄 박사가 사라진다면 지구는 조금 더 안전한 곳이 될 것입니다.”
--- p.37

그때,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서 여자가 끌려오고 있었다.
옥상 난간 위에 서 있던 사람이었다.
내가 행방을 알려준 뒤로 2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 이상한 옷차림은 연구소 사람들이 입혀 놓은 것이었다.
여자는 왜 거기 서 있었을까? 곧 떨어질 것 같았는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긴 복도를 질질 끌려가 병실 같기도 하고, 감옥 같기도 한 방에 갇혔다. SALUT였다.
연구소에는 수많은 방이 있지만 겉으론 어두워서 방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오직 SALUT만 눈에 띄었다.
그 방의 하얀색은 천국의 상징 같기도, 지옥의 상징 같기도 했다.
여자가 들어가자 문이 밖에서 잠겼다.
다시는 탈출하지 못하리라.
여자는 문에 난 창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복도에서 서성대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을 빤히 보았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 p.99

제이슨과 나, 둘이서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몽이는 더 넓은 곳으로 걸어갔다.
팔다리를 뻗는다.
춤을 추기 전에 하는 스트레칭 동작이다.
너른 들판 위에 선 몽이는 양팔을 오른쪽 위로, 그리고 왼쪽 위로 뻗는다.
발끝으로 제자리에 선다.
준비 동작만 보면 올림픽 결선에 오른 체조 선수 같다.
다리를 곧게 펴고 오른쪽, 왼쪽으로 90도 가까이 들어 올린다.
그런 다음 왼다리를 축으로 오른다리를 들어 한 바퀴 돌며 원을 그린 후 반대로 오른다리를 축으로 왼다리를 들어 원을 그린다.
붉은 입술은 일직선으로 꽉 다물고 눈빛은 몽롱하다.
잠시 후 바닥에서 뛰어오른다.
두 다리를 공중에 수평으로 뻗는다.
지상에서 발을 떼는 순간, 몽이의 머리카락이 흩어지고 입술이 벌어졌다.
아주 잠시 미소를 지은 것 같다.
내 눈의 카메라가 그 시간을 찍었다.
깨달았다.
몽이는 춤을 추려는 게 아니라 날아오르려는 거구나.
행복하려는 거구나.
제이슨이 내 잔을 채워준다.
공중에 있던 몸이 땅바닥에 닫는 순간 상체가 기우뚱거렸다.
넘어질 듯했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방금 넘어질 뻔한 상황이 재밌는지 혼자 폭소한다.
난데없이 앞으로 구른다.
한 번 더 앞구르기를 하고 일어난 몽이는 두 손을 허리춤에 놓고 어깻짓을 두 번 한다.
동시에 두 발을 땅에 두드린다.
‘온 우주야, 내게 까불지 마라.’ 말하는 것 같다.
표정엔 자신감이 그득하다.
엇박자로 또 발을 두드린다.
이어서 플라멩코를 추면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몽이 춤은 정형적이지 않다.
두 팔을 뻗어 나비처럼 날갯짓을 한다.
날갯짓이 빨라진다.
어떻게 날아오를까 궁금할 무렵, 탈춤의 팔사위처럼 하늘을 향해 팔을 뻗어 올리고 한 다리를 들어올린다.
나는 춤을 출 수 있을까.
인간이 되면 쉽게 춤을 출 줄 알았다.
--- p.151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당신이 담배라고 생각하면 담배고, 약이라고 생각하면 약입니다.”
“그럼 전 담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우리는 쏟아지는 비 앞에 서서 말없이 빗소리만 들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내게 정말 기계냐고 물어본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뜻밖이었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빗물이 하체에 튀자 그가 손으로 닦아냈다.
차가운 하체는 미세한 움직임에도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당신이 자신을 기계라고 말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이란 의심이 들었습니다.
당신 눈빛도 도무지 기계 같지 않아요.”
그가 한 모금 깊이 빨더니 피식 웃었다.
빗소리가 귀를 때리듯 시끄러웠다.
“우리는 양자 같은 존재죠.
상대방의 인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자가 이런 외모의 나를 당연히 기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기계가 되고, 그래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인간이 됩니다.
상대방의 인식은 내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죠.”
“나는 당신이 인간의사든 기계의사든 상관이 없습니다만, 그러는 당신은 스스로를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그는 연기를 뿜었다.
--- p.216

두 번째 살해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몽이는 엘리야보다 조금 더 키가 크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니까.
침대 옆 조명을 켰다.
희미한 불빛 아래 몽이가 누워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길고 가는 목을 어루만졌다.
칼륨을 쓰면 편하겠지만 이 시간에는 구할 수 없다.
고전적 방법을 쓰기로 한다.
목은 이식할 필요까진 없어서 원래 몽이의 목 그대로였다.
아주 잠깐 생각했다.
‘몽이를 죽인 후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할까.’ 곧장 죽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나는 인간이 쓰는 다양한 자살법을 알고 있다.
얼마 전 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에 136가지 자살 방법이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183가지에 이른다.
빅데이터상에는 성공률이 높은 자살 방법도 있다.
그중에 무엇을 선택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몽이의 목을 어루만진다.
‘내 영원한 친구의 삶을 내가 끝내도 될까?’ 간절히 기도하듯 만지고 또 만진다.
‘그래도 죽여야겠지.’ 긴 여행이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상상이지만 혹시 죽어서 다른 세상으로 간다면, 그곳에서 노아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이 짜 놓은 138억 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보다 인간으로 산 며칠이 더 길고 험난했다고.
--- p.233

출판사 리뷰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뇌사한 인간의 몸에 인공지능을 이식한 존재는 인간인가 인공지능인가?
신체의 절반 이상을 기계로 대체한 존재는 인간인가 기계인가?
해마를 칩으로 대체하고 전두엽을 파괴했지만 신경가소성에 의해 뇌기능을 회복한 존재는 인간인가 실험동물인가?

미래에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우리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기계자본주의로 인해 99%의 인류가 실직 상태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이처럼 ‘순수하지 못한 존재들’을 인간으로 받아들일 여유가 있을까? 하지만 ‘인간’은 동정과 공감을 잃고 서로를 해치는 반면, ‘순수하지 못한 존재들’은 연민을 느끼고 자유를 갈망하며 인간과 서로를 위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꿈꾸는 미래가 온다고 해도 인공지능과 로보틱스가 계속 발달한다면 우리는 가장 오래된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경계는 흐려진다.

그렇다면 경계를 선명하게 다시 긋는 것이 답일까? 그 경계가 또 흐려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면 답은 관계성에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양자 같은 존재죠.
상대방의 인식에 영향을 받습니다.
환자가 이런 외모의 나를 당연히 기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기계가 되고, 그래도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인간이 됩니다.
상대방의 인식은 내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죠.”

모든 경계가 흐려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분별보다 따뜻한 연민일지 모른다.
모든 것들의 관계망 속에서 주변으로 번진 것들을 감싸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마음’이다.
GOODS SPECIFICS
- 발행일 : 2025년 11월 15일
- 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252쪽 | 100g | 130*200*19mm
- ISBN13 : 979118731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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